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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3 17:47
[세계사] 폴란드의 황금기를 만든, 유럽 역사상 최고의 기병 `윙드 후사르`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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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년 폴란드왕실의 근위경기병대가 창설된다.
초기에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별 다른 차이가 없는 평범한 기병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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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러시아의 전투)

1514년 러시아군 8만여명을 불과 4만의 병력으로 격파하면서 유럽전역에 명성을 떨치게 된다.

'트란실바니아'의 대공출신이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인 '스테판 바토리대왕'은 러시아와의 전투의 승리를 보고 근위경비대에 대한 개혁을 시작하게 된다.
개혁으로 인해 기존의 중기병들 보다 더 많은 숫자를 차지하게 되었고 무장 또한 경기병에 맞지 않게 두꺼운 갑옷을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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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경비대의 이름은 윙드 후사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황금기의 화려한 시작을 만들어준 최강의 기병이 되겠다.

당시 유럽이 쓰던 총은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쓰던 총과 다를게 없었고 그들에게 일본군같은 전술 또한 없어서 기병의 돌진은 엄청난 약점이되었고 윙드 후사르가 전성기를 맞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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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를 넘어 유럽역사상 최고의 기병대장으로 평가받는 '얀 카롤 코드키에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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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키르홀름 전투'에서 '코드키에비츠'가 지휘하는 3천5백명의 폴란드군은 스웨덴 왕 '칼9세'가 지휘하는 1만 1천명의 스웨덴 군을 상대로 이기게 된다.
이 전투에서 승리의 주역은 윙드 후사르였다. 단 300명으로 스웨덴 보병 8200여명을 휘어잡으며 20분만에 승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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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쿠쉰 전투'에서는 '스타니스와프 주키에브스키'가 지휘하는 7천명의 폴란드군이 러시아-스웨덴 연합군 4만명을 상대로 이겼다.
이 전투 또한 5600명의 윙드 후사르기병의 활약이 돋보였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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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게 점령당한 모스크바)

쿠쉰 전투에서 승리한 폴란드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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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체초롱 전투' 에서는 300명의 윙드 후사르 기병이 오스만 제국 기병 1만 5천명을 퇴각시킨 전투로 오스만제국에 윙드 후사르의 이름을 알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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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제국의 정예부대인 예니체리)

폴란드와의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오스만제국은 1621년 코침에서 오스만 제국군대의 정예부대인 '예니체리'를 보내지만 말도 안될 정도로 윙드 후사르에게 전멸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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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시파히 기병대)

윙드 후사르 기병은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 기병대'와도 막상막하로 싸우며 '코침 전투'에서도 승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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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의 최대 영토)

그러나 100년간의 전투에서 무패 신화로 유럽을 휘어잡았던 윙드 후사르 기병에게도 패배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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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아돌프)

윙드 후사르에게 첫 패배를 맛보여준 사람은 바로 스웨덴을 강대국 반열에 올린 명군이자 명장인 북방의 사자 '구스타프 아돌프'였다.


1621년부터 시작된 스웨덴-폴란드간의 전쟁은 근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이자 윙드 후사르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발판이 되었다.

 

1629년 회니히펠데에서 '코니에츠폴스키'가 지휘하는 윙드 후사르들이 스웨덴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만들어내며 그간의 패배를 설욕하는데 성공했지만 계속된 전쟁과 오스트리아,러시아,오스만,스웨덴이라는 강대국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실정이라 점차 강대국들과의 전투에서 패하며 영토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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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스웨덴 등에게 점령 당한 영토,-대홍수시기-)

결국 1655년 스웨덴의 침공을 시작으로 '대홍수'라 불리는 폴란드의 흑역사가 시작된다.


이후 윙드 후사르는 '코사크'를 상대로 한 '주태 보디 전투'에서 사상 최악의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가까스로 대홍수시기는 멈췄지만 예전의 폴란드가 아니었다. 폴란드는 강대국에서 밀려나고 인구 1/3을 잃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승리도 있었다. 1683년 오스만제국의 오스트리아 침공으로 폴란드는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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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포위한 15만의 오스만 대군을 상대로 승리하게 되고, 이 전투가 바로 '빈전투(비엔나 공방전)'가 되겠다.
(반지의 제왕에서 로한 기병의 돌격이 비엔나 공방전에서의 윙드 후사르가 모티브라고 한다.)

 

'빈'을 구원하며 '크리스트교 세계의 방파제'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폴란드의 내부는 혼란스러웠고 1696년 '얀3세 소비에스키'가 사망한 이 후 폴란드는 가속도로 몰락했다.

 

그후 윙드 후사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찰대로 변했고 무장 또한 빈약해졌다.


그리고 1775년 윙드 후사르는 정식으로 해체된다.

 

 

 

 

 

그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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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부터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 당시 폴란드인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나폴레옹의 군대와 함께 싸웠는데, 그중 후사르의 후예인 '율린 창기병'은 적군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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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호랭이 17-10-13 20:16
 
사실상 폴란드 국뽕이죠
     
Blizzard 17-10-14 11:37
 
실제로 활약을 많이 했던 기병인데 굳이 국뽕이라고 비하하실 필요는..
민족의번영 17-10-14 00:48
 
몽골이랑은 안 싸웠나요??
     
그루메냐 17-10-14 01:37
 
몽골은 후사르가 생기기 전에 유럽을 침략했죠... 아뭏튼 폴란드와도 붙었고 폴란드가 와장창 깨짐... 하지만 몽골군은 돌연 철군하는데 To Be Continue...........
G평선 17-10-14 01:29
 
다른건 몰라도. 명명은 멋지네요. 이채로워서 그런가...
구르미그린 17-10-14 04:10
 
폴란드뽕에 취하는군요....

역사상

폴란드의 지리조건,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차라리 한국이 낫습니다.
     
납땜질 17-10-14 10:33
 
글쎄요...
사실 폴란드 주변 강국들 중에 오스만 오스트리아 빼고는 폴란드가
자뻑해서 탄생된 얘들이 많아서,,,
보야르들이 지들끼리 삽질하고 황금의 자유니 뭐니해서
나라 팔아먹지 않았으면 동유럽 전체가 폴란드로 남아 있었을것ㅅ임.
     
그루메냐 17-10-14 12:57
 
한국이 낳다고 하기에는 폴란드도 힘있었을 때는 지역깡패 노릇하던 애들이라 우리랑 비교하긴 무리죠...
          
꼬마러브 17-10-14 14:10
 
낳다 - 낫다

어느 나라 역사가 낫네 이 나라가 더 낫네 하며 비교하는 것은 정말로 무의미한 일..

역사는 그냥 역사 그 자체일 뿐 ......
국산아몬드 17-10-14 13:03
 
그런데 전쟁 규모가 너무 적지 않나요? 한국에서는 전쟁한번 났다고 하면 20~30만은 기본이고 3백만 전쟁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유럽은 고작 4만-8만이 격돌해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니 근대 이전에는 유럽의 전쟁규모는 너무 적은 것 같아요
     
멍게 17-10-14 13:45
 
사실상 허수아비에 가까운 농민징집병이나 실제 전투를 하지 않는 보급 운송 같은 병력이 포함되니 많아보이는겁니다
우리나라도 귀주대첩에서 20만을 동원했다고 하지만 실제 전투는 1만 2천의 기병이 했죠
          
국산아몬드 17-10-14 14:37
 
농민병 20만이 아무것도 안한것이 아니라 요나라의 10만 정예기병과 대등하게 맞붙어 싸우고 있었고 김종현의 1만2천 철기병은 특공대의 성격이 강하죠.
송을 밀어내고 연운 16주를 뺏았은 주력이었던 요의 10만 정예기병을 상대로 말입니다

농민병이라고 우습습니까? 몽고침입때도 몽고와 일전을 벌여 승리한 처인성전투,충주성 전투도 주력은 농민병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국가들은 농한기인 봄과 초겨울 주기적으로 농민병을 징집해서 진법훈련을 하였고 꾸준히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농사만 짓고 있던 순수 농민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임진왜란때 의병이 어떻게 전쟁으로 단련된 왜군을 상대로 수많은 승전을 했겠어요?
          
자기자신 17-10-15 02:57
 
멍게//옛날우리나라민중을 얕보지마세요 민중 백성들이 오히려 관군보다도  더잘싸운 사례가 많습니다 몽골군과의전투에서도 고려관군은 쉽게 패했지만 민중 즉 백성들이 몽골군을 이긴 전투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때에도 의병들이 일본군을 이긴전투도 아주 많고요 심각한피해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또 정묘호란때 정봉수가 이끄는 의병들이 용골산성에서 수만에 달하는 청나라군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했군요
     
Blizzard 17-10-14 14:28
 
베레스테츠코 전투에서 폴란드는 단 700명의 손실을 입고 20만의 코사크-타타르 연합군을 괴멸시켰습니다. 2차 빈 포위전에선 약 15만의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무려 1만 8천 명의 윙드 후사르가 기병 돌격으로 오스만 제국군을 붕괴시킵니다. 규모도 결코 작지 않았고 윙드 후사르의 활약도 대단했죠. 윙드 후사르는 크고 작은 여러 전투에서 많은 활약을 했고 이는 깎아내릴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전쟁 규모가 너무 작지 않냐고 그러셨는데 전쟁 규모가 무슨 상관입니까?
          
국산아몬드 17-10-14 15:15
 
당연히 전쟁의 규모가 중요하죠
그만한 군사를 동원한다는 것은 그나라의 인구,경제력,행정력을 포함한 국력을 나타내는 거니까

그런데 근대 이전 중세까지 유럽의 전쟁규모가 크지는 않다는 느낌입니다
백년전쟁때도 영국군은 달랑 1만여명으로 크래시, 푸아티에, 아쟁쿠르 전투를 벌여가며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죠.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정복을 위해 동원한 군사가 달랑 7천명입니다
전유럽이 참여한 십자군 전쟁때도 평균 2~4만명이 동원되었을 뿐입니다
러시아는 크루시노전투에서 3만 5천을 동원했다가 패하자 모스크바가 털려버렸죠
님이 언급하신 베레스테츠코 전투가 비엔나 공성전과 더불어 중세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투였습니다.
코삭-타타르 군대규모도 10~20만으로 아직까지 정설은 없고요

물론 3천명 안팎의 중갑기병으로 그만한 성과를 낸 폴단드 기병이 대단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단지 그당시 유럽국가들의 국력에 대한 평가이고 전체적으로 중세 유럽의 국력이 동아시아보다 밀린다는 느낌입니다
               
Blizzard 17-10-14 15:39
 
애초에 국력 비교하는 글이 아닌데 전쟁의 규모가 왜 중요한가요? 글 작성하신 분이 폴란드를 동아시아 국가랑 비교하셨어요? 유럽의 인구가 동아시아보다 적으니 전쟁의 규모도 작은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갑자기 유럽 전쟁의 규모가 동아시아보다 적으니 우리 국력이 더 셈~ 이게 왜 나오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요. 눈 씻고 본문을 다시 읽어봐도 국력 비교하는 문장은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예전부터 동아시아 게시판을 보고 느낀 거지만 정말 서양 역사에 배타적입니다. 언급하지도 않은 동아시아를 끄집어내서 우리보다는 약했니 어쩌니 소리가 꼭 나오더군요.
                    
Marauder 17-10-14 21:15
 
글쓴이가 안쓴내용 쓰지말라는 법도 없지 않나요. 애초에 게시판 이름도 동아시아 게시판인데
                         
Blizzard 17-10-14 21:27
 
쓰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윙드 후사르가 어떻게 활약하였는지에 대한 글에 "근데 유럽의 전쟁은 규모도 작고 국력이 동아시아보다는 밀리는 느낌." 하니까 진짜 뜬금없잖아요. 윙드 후사르가 아니라 우리 민족 군사 관련 글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기분 나쁠 걸요? 누군가가 우리 민족 군사에 대한 글을 썼는데 댓글에, "근데 ~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고 국력도 밀리는 느낌." 하면 얼마나 뜬금없습니까? 왜 언급하지도 않은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끄집어내서 비교하며 깎아내리냐 이거죠.
                         
Marauder 17-10-14 23:23
 
저말만가지고 깎아내리는것까지 가는건 너무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애초에 국력 이야기도 더 말하지 않았으면 그말까지 나오진 않았을텐데요. 맨날 꺼내는것도 아니고 그냥 할 수 있는말 같은데...
                         
Blizzard 17-10-14 23:33
 
긴 설명 필요 없고, 님이 고구려 개마무사에 대한 글을 썼는데 누군가가 댓글에, "근데 ~보다는 규모도 더 작고 국력도 딸리는 것 같네요." 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뭔가 부정적이죠? 뜬금없이 왜 저런 소리를 하지? 하는 느낌이잖아요. 이만 댓글 그만 쓰겠습니다. 저분의 정확한 의중은 저도 잘 모르니까요. 아무튼 갑자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규모가 더 작니 어쩌니 하는 건 뜬금없다는 생각뿐입니다.
                         
Marauder 17-10-14 23:48
 
뭐 거짓말만 아니면 그냥 넘어가긴 하겠지만 내국가와 남의 국가가 같은 감정이긴 힘들겠죠. 그래도 상습범이 아니라면 별생각은 없을듯 하군요
                    
국산아몬드 17-10-15 00:06
 
님 너무 까칠하네요.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다를수도 있지 않나요? 반드시 글의 주제에 맞게 댓글을 달아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나요?
                    
Blizzard 17-10-15 00:09
 
까칠하게 보였다면 미안합니다. 근데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동아게를 보고 느낀 게 서양 역사에 되게 배타적입니다. 서양 역사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꼭 언급하지도 않은 우리나라 또는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며 우리가 더 크고 더 세다 같은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그런 걸 계속 보면서 많이 불편했을 뿐입니다. 님 말대로 그런 댓글 달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에 저도 그만하겠습니다.
                         
국산아몬드 17-10-15 00:14
 
팩트만 가지고 얘기하시면 됩니다. 제가 의도를 가지고 서양역사에 비판적이었다고 해도 거짓말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불쾌하시더라도 팩트로 반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서양역사가 서양 역사학자들의 인종 우월주의에 의해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너무 미화되고 과대평가되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사적인 전투 리스트라고 발간된 책에서 세계역사에 별 영향도 없고 겨우 1~2만명이 치른 유럽 전투들이 부지기수 입니다.

서양역사학자들은 치욕스러운 몽골과의 전투에서도 패한 서양의 군사 수를 줄일려고 무지 연구하고 있죠. 동양역사에서의 군대 규모도 가능하면 축소하려하고 있고요.

저는 진실을 알기위해 열심히 팩트를 찾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뜬금없지 않을까 싶어서요"라고 하셨는데 누가 기분나쁘다는 건가요? 폴란드 인이? 아니면 레스토랑스 님이?

레스토랑스 님이 기분나쁘시다면 표현을 하셨겠죠. 그렇지만 제가 폴란드 기병의 활약상을 왜곡하지도 않았는데 기분나빠하실까요?

그리고 "만약 우리 민족 역사에 관한 글에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규모가 더 작니 국력이 더 약하니 하는 댓글이 달렸다면 그 댓글 단 사람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겠죠"하셨는데
팩트가 아니면 까이지 않겠죠 .팩트라면 당연한 거고요
                         
Blizzard 17-10-15 00:23
 
저도 팩트만 말했지 뭔가를 왜곡한 적은 없어요. 단지 뜬금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불필요한 비교를 하시니까요. 폴란드의 활약에 대한 글에 동아시아를 꺼내 비교하시면서 규모가 너무 작고 우리보다는 국력이 약한 것 같다고 하시니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뜬금없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윙드 후사르는 우리와 싸운 적도 없잖아요? 님과 싸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몽골에 관해선 인터넷상에서 역으로 몽골이 과대평가 되는 경향도 적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전투도 많음에도 무적처럼 묘사될 때가 많죠. 이건 뭐 끝나지 않을 논쟁이니 여기까지 합시다.
                         
Blizzard 17-10-15 00:31
 
"누가 기분 나쁘다는 건가요? 폴란드인이? 아니면 레스토랑스 님이?" 라고 하셨는데, 입장을 바꿔 보면 우리가 기분 나쁘겠죠. 뜬금없는 비교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요. 만약 우리 민족 역사에 관한 글에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규모가 더 작니 국력이 더 약하니 하는 댓글이 달렸다면 그 댓글을 단 사람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겁니다;;
루리호 17-10-14 22:59
 
폴란드인들이 유럽인이라기보다는 훈족계열이라 말을잘탔어요

중세 서양과동양 전쟁을보면 규모의차이가 좀큽니다만 서양은 한명한명에 더 집중한거고 동양은 마을농부들 몽땅끌고와서 쌈하는거라 같이보긴어렵죠

그리고 로마시대부터  유럽은 용병들이 많았는대 이 인원은 전투인원으로 기록이 안되는게 대부분이라 수가더 작아보입니다

십자군전쟁때만봐도 기사30명으로 10000명의 오스만 병사를 상대로 승리하고하는거보면 단순히 머리숫자로 이야기할게 아닙니다
     
Blizzard 17-10-14 23:01
 
폴란드인들은 훈족과 아무 상관도 없는 서슬라브족입니다. 아시아인 아니면 말 잘 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코카서스 인종인 페르시아인들도 말 끝장나게 잘 탔어요.
          
루리호 17-10-15 14:50
 
물론 페니키아인이나 시리아쪽사람들이 밀을잘탄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걸떠나서 폴란드는 아틸라를 자신들의 선조로 역사를 배웁니다

유럽에서 폴란드만 언어가 전혀다르고 인종또한 슬라브계라고하기엔 생김새가 많이 다릅니다
          
Blizzard 17-10-15 16:35
 
폴란드의 어느 누가 아틸라를 자신들의 선조로 역사를 배우던가요?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폴란드, 천년의 예술'을 보고 온 저로서는 어이가 없군요;; 폴란드 역사의 시작은 960년 미에슈코 1세가 나라를 세우면서 시작합니다. 유럽에서 폴란드만 언어가 전혀 다르다고요? 도대체 누가 그러던가요? -_- 폴란드어는 인도유럽어족 서슬라브어에 속하며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와 아주 유사합니다. 도대체 누가 유럽에서 폴란드만 언어가 전혀 다르답니까? 어디에서 이상한 것만 보고 오셨네;; 자신들이 훈족의 후예라고 외치는 나라는 유럽에서 헝가리입니다. 다만 그것도 소수의 헝가리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고 헝가리인의 직계 조상은 마자르족입니다. 훈족이 한때 유럽에서 맹위를 떨친 적이 있으니 일부 헝가리 민족주의자들이 훈족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폴란드는 훈족과 전혀 관계없는 나라입니다. 팩트만 말씀하세요. 그리고 페니키아인은 배를 잘 탔겠죠. 페르시아인 얘기에 갑자기 페니키아인이 왜 나오나요 -_-;;
     
국산아몬드 17-10-14 23:42
 
숨겨진 머리 숫자가 많다고요?
몽고가 전멸시킨 레그니차 전투의 폴란드 군 2만 5천, 모히전투의 헝가리+튜튼기사단+폴란드 연합군 10만은 단지 기사만 계산한 걸까요?

기사는 대부분 귀족출신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장남에게 모든 재산이 상속되니 차남부터는 대부분 기사가 되었죠. 유럽의 귀족비율은 지금도 1~3%밖에 안되니 기사의 수가  수만명이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십자군도 대부분은 평민인 보병이었고 전투에 참여한 기사의 수는 안티호크 전투 기사 700명, 아스칼론 전투 기사 1200명, 람라 전투 260명, 자파전투 기시 200명에서 보듯이 1000명도 되지 않고 보통 2~300명 수준이었습니다. (http://blog.naver.com/knightblack/14382064)

백년전쟁에서도 영국군은 대부분 농민병 출신이었습니다. 원래 장궁은 농민병의 무기였지요. 중세 유럽 전투에서 기사끼리만 싸운게 아닙니다.

그리고 용병은 전투인원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니 좀 어이가 없네요.
원래 용병이란 것 자체가 유럽에서 나온 개념이고 고대부터 유럽은 용병으로 전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용병이란건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동아시아 어느 나라가 돈주고 남의 군대로 전쟁을 했습니까?

고대에 유명한 유명한 피로스의 군대도 용병이었고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군 대부분은 용병이었습니다. 그리스 용병은 페르시아에 많이 고용되었고요
중세에도 베네치아, 밀라노같은  도시국가들은 전부 용병으로 전쟁을 했고 프러시아도 용병으로 국토를 넓혀나갔습니다.
로마만 그것도 초기에 용병을 사용하지 않았지 중기 이후부터는 주로 게르만 용병으로 전쟁을 했습니다. 로마제국이 게르만 용병때문에 망한 것은 유명한데 그 용병을 전투인원에 넣지 않았다고요?
Banff 17-10-15 01:36
 
잘봤어요.. 댓글도 만선이네요. ㅎㅎ 

영프사관중심의 세계사책에서 잘 다뤄지지않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제국은 폴란드뽕으로 폄하할 대상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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