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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3 09:39
[기타] 읍락-호민-하호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740  

삼국시대 이전 부족국가시대에 존재했던 지역공동체. 기록에 따르면 초기국가 중 국가에 따라 읍락이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부여의 경우 읍락은 가()의 통치를 받으며 읍락에는 호민과 하호가 있었다. 고구려의 경우도 읍락 단위에서 공동생활이 이루어졌으며, 군장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부경이라는 창고를 갖추고 있었다. 동옥저의 읍락에는 군장이 없고 장수가 있었다. 예()에서는 읍락들 간의 경계가 확실하게 있어 다른 읍락지역을 침범했을 경우 소나 말·노비로써 변상하게 하는 책화가 있었다. 읍락의 존재를 통해서 사회를 파악할 경우에는 읍락을 원시공동체 사회로 보는 경우, 아시아적 공동체로 파악하는 경우, 노예제 사회로 파악하는 경우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읍락 [邑落]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


본래 중국에서 일반민 가운데 소작을 위주로 하는 가난한 농민을 뜻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삼국의 국가체제가 정비되기 이전인 1~3세기 무렵 한반도의 상황을 서술하면서, 읍락사회 일반구성원들을 자신들의 하호와 비슷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당시 읍락사회는 지배자인 수장()과 호민()들이 지배계층을 이루었고, 일반민인 하호와 천민인 노비가 피지배계층을 이루었다. 하호는 독립된 자기경영을 유지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읍락사회에 예속되었고, 국가의 공민()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그 결과 호민층의 인신적 지배와 가혹한 수탈로 인해 중국인들이 보기에 마치 노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될 정도였다. 만약 외적이 침입하면 읍락사회가 독자적으로 싸웠는데, 이때 하호는 병사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고 물자를 운반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하호는 자신이 속한 읍락사회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존재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고구려나 부여와 같이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지역의 하호는 발달된 생산조건과 정치체제의 진전으로 비교적 나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옥저동예와 같이 다른 집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에서는 호민층에게 당하는 수탈 이외에도 인근의 종주국에 보낼 공물 부담까지 모두 하호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생산도구의 발전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로 개별가호 단위의 경영능력이 진전되면서 공동체적인 읍락사회는 급속히 해체되었다. 호민층은 빈번한 전쟁 과정에서 몰락하거나 일부는 새로이 등장하는 국가에 포섭되어 지방세력으로 전화되었다. 반면에 하호는 개별적인 생산능력의 증대로 읍락사회에 얽매이지 않은 채 점차 독립적인 농업경영이 가능해짐에 따라, 삼국시대에는 조세, 요역, 공물의 의무를 담당하는 공민()으로 전화되어 정치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호 [下戶] (두산백과)


호민은 우리나라 초기국가 발전과정에서 읍락의 공동체적인 질서가 해체되어 구성원의 계층 분화가 진행되면서 등장하였다. 부여처럼 연맹왕()이 대두하던 단계에서 연맹체제에 참여한 중앙 귀족층인 대가()가 자신의 세력기반인 읍락에 대한 지배를 호민을 매개로 했기 때문에, 호민은 읍락 안에서 그 구성원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신분층이었다.

호민을 부여와 같은 연맹왕국체제에 등장한 존재로 상정할 때, 고구려의 호민은 『삼국지』 동이전의 “나라 안의 대가는 농사를 짓지 않으며, 좌식자()가 1만여 인이 된다. 하호가 식량·고기·소금을 운반해 공급한다.”라는 기록에 보이는 좌식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존재였다.

실제로 동천왕(, 227∼248) 때 위()의 관구검()이 침입하자, 전공을 세워 사자(使)가 된 유유()처럼 전문 행정 및 군사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뒤에 을불()이 미천왕(, 300∼331)으로 등극하기 전, 봉상왕(, 292∼300)의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을불을 용작()한 수실촌()의 음모()와 같이 용작민이나 노비를 생산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경우도 보인다.

부여보다 사회발전이 늦게 진행되었던 삼한의 경우, 낙랑군에 조알()하며, 의책()·인수()를 스스로 입은 하호 천여 명은 부여의 호민과 맥이 닿는다. 신라의 경우, 『삼국사기』 유례이사금() 10년(293)조의 ‘사벌주()의 호민이 군사적 요충지인 사도성()의 개축과 함께 이주하는’ 기록을 통해 이들이 사도성의 성주를 도와 군역 동원과 전투에 임했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민 [豪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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