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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4 01:42
[한국사] 낙랑과 대방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061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
14년(서기 37), 무휼(無恤, 대무신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키자, 그 나라 백성 5천 명이 투항해왔다. 그들을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17년(서기 40) 가을 9월, 화려(華麗)와 불내(不耐) 두 현(縣)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쪽 국경을 침범하였다. 맥국(貊國)의 우두머리가 병사를 동원하여 곡하(曲河) 서쪽에서 맞아 공격하여 이들을 물리쳤다. 임금이 기뻐하여 맥국과 친교를 맺었다.

탈해 이사금
5년(서기 61) 가을 8월, 마한 장수 맹소(孟召)가 복암성(覆巖城)을 바쳐 항복하였다.
五年秋八月 馬韓將孟召 以覆巖城降

7년(서기 63) 겨울 10월, 백제왕이 영토를 개척하여, 낭자곡성(娘子谷城)까지 이르러 사신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으나, 임금은 가지 않았다.

8년(서기 64) 가을 8월, 백제가 병사를 보내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였다.
겨울 10월, 백제가 다시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자 임금은 기병 2천 명을 보내 공격하여 물리쳤다.
12월, 지진이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

파사 이사금
8년(서기 87) 가을 7월, 임금이 명을 내렸다.
“내가 덕이 없는데도 나라를 맡았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는 백제를 이웃하고 남쪽으로 가야와 닿아있다. 나의 덕망은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그들로 하여금 두렵도록 하기에 부족하니, 성과 보루를 수리하여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쌓았다.

지마 이사금
14년(서기 125) 봄 정월, 말갈(靺鞨)이 북쪽 변경을 크게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했다.
가을 7월, 그들은 또다시 대령(大嶺) 목책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넘어왔다. 임금이 백제에 서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자, 백제는 다섯 명의 장군을 보내 돕게 하였다. 적병은 이 소식을 듣고 물러갔다.

일성 이사금
4년(서기 137) 봄 2월, 말갈이 국경에 쳐들어와서, 장령(長嶺) 지방의 다섯 군데 목책을 불태웠다.

조분 이사금
16년(서기 245) 겨울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침입하였다. 우로가 병사를 이끌고 나가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은 매우 추웠는데, 우로가 병졸들을 위로하고 몸소 나무로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해주니 모두 마음속으로 감격하였다.

첨해 이사금
2년(서기 248) 봄 정월, 이찬 장훤(長萱)을 서불한으로 삼아 나라의 정사에 참여시켰다.
2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내물 이사금
37년(서기 392) 봄 정월,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고구려가 강성하였으므로 임금은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을 볼모로 보냈다.


<백제 본기>

온조왕
8년(기원전 11) 봄 2월, 말갈군 3천 명이 침입하여 위례성을 포위하니 임금은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적병이 군량미가 떨어져 돌아가므로, 임금이 날쌘 병사를 이끌고 추격하여 대부현(大斧峴)에서 크게 싸워 죽이고 사로잡은 자가 5백여 명이었다.
가을 7월,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웠다. 낙랑태수(樂浪太守)가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지난날 서로 사신을 보내고 우호를 맺어 한 집안처럼 지냈는데 이제 우리 땅 가까이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니, 혹 우리 국토를 야금야금 차지하려는 계책이 아닌가? 만일 지금까지의 우호를 생각하여 성을 헐고 목책을 부순다면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번 싸워 승부를 내겠다.”
임금이 답하여 말하였다.
“요새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떳떳한 일이다. 어찌 이 일로 우호관계에 변함이 있겠는가? 당연히 태수가 의심할 일이 아니다. 만약 태수가 강함을 믿고 군대를 일으킨다면 우리도 대비책이 있다.”
이로 인하여 낙랑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

27년(서기 9) 여름 4월, 원산과 금현 두 성이 항복해서 그 백성을 한산(漢山)의 북쪽으로 옮기었다. 이것으로 마한이 드디어 멸망하였다.
가을 7월, 대두산성(大豆山城)을 쌓았다.

13년(기원전 6) 봄 2월, 서울에서 한 늙은 할미가 남자로 변하였다.
호랑이 다섯 마리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61세로 돌아가셨다.
여름 5월, 임금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 국경을 침범하므로 편한 날이 없다. 하물며 요즈음 요상한 징조가 자주 나타나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니, 형세가 불안하여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시하여 한강의 남쪽을 살펴보았는데 토지가 매우 비옥하였다. 그곳에 도읍을 옮겨 오랫동안 편안할 계획을 세울 것이다.”

34년(서기 16) 겨울 10월, 마한의 옛 장수 주근(周勤)이 우곡성(牛谷城)에 웅거하여 배반하였다. 임금이 친히 병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치니 주근이 목을 매어 xx하였다. 그 시체의 허리를 베고 그의 처자도 죽였다.

37년(서기 19) 봄 3월, 달걀만한 우박이 떨어져 새들이 맞아 죽었다.
여름 4월, 가뭄이 들었는데, 6월이 되어서야 비가 왔다. 한수의 동북 마을에 흉년이 들어 민가 1천여 호가 고구려로 도망가니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책계왕 (286 ~ 298)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쳐서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임금이 대방왕의 딸 보과(寶菓)를 부인으로 삼았기에, 임금이 이르기를 “대방은 장인의 나라이니 그 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드디어 병사를 내어 구원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임금은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아차성(阿旦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여 대비하였다.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20년(서기 37), 임금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27년(서기 44) 가을 9월, 한나라 광무제가 병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서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살수(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미천왕
12년(서기 311) 가을 8월, 장수를 보내 요동의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十二年 秋八月 遣將襲取遼東西安平
14년(서기 313) 겨울 10월, 낙랑군을 침범하여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十四年 冬十月 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15년(서기 314) 봄 정월, 왕자 사유(斯由)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가을 9월, 남쪽으로 대방군(帶方郡)을 침공하였다.
十五年 春正月 立王子斯由爲太子 秋九月 南侵帶方郡
16년(서기 315) 봄 2월, 현도성을 침공하여 깨뜨렸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가을 8월, 혜성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十六年 春二月 攻破玄菟城 殺獲甚衆 秋八月 星孛于東北

20년(서기 319) 겨울 12월, 진(晉)나라 평주자사(平州刺使) 최비(崔毖)가 도망쳐왔다. 예전에 최비는 은밀히 우리와 단씨(段氏)ㆍ우문씨(宇文氏)를 달래어 함께 모용외를 공격하게 하였다. 세 나라가 극성(棘城)으로 나아가 공격하자, 모용외는 문을 닫고 지키면서 우문씨에게만 쇠고기와 술을 보내 위로하였다. 다른 두 나라는 우문씨와 모용외가 함께 은밀한 계획이 있다고 의심하여, 각각 병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중략)
우리나라 장수 여노(如孥)가 하성(河城)을 막아 지키고 있었는데, 모용외가 장군 장통(張統)을 보내 공격하여 그를 사로잡고, 그 무리 천여 가(家)를 포로로 잡아 극성으로 돌아갔다. 임금은 자주 병사를 보내 요동을 침공하였다. 모용외는 모용한(慕容翰)과 모용인(慕容仁)을 보내 우리를 치게 하였는데, 임금이 동맹을 구하자 모용한과 모용인이 곧 돌아갔다.

21년(서기 320) 겨울 12월, 병사를 보내 요동을 침공하였는데, 모용인이 막아 싸워 우리가 패하였다.


<책부원구>
한국(韓國)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蘇馬諟) 등이 낙랑으로 와서 공물을 바치니 황제께서 소마시(蘇馬諟)를 염사읍(廉斯邑)의 군사로 삼아 낙랑군에 속하게 하여 계절마다 조알하게 하였다.
 
<후한서>
건무(建武) 20년(서기 44년), 한국(韓國)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蘇馬諟) 등이 낙랑군에 배알하고 조공을 바쳤다. 광무제는 한염사읍군(漢廉斯邑君)에 봉하고, 낙랑군에 복속시켜 사철마다 입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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