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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0 15:55
[일본] 칼을 버리는 사무라이들, 메이지 유신 시대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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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사냥을 나선 일본 : 조선침공


(조선은 호랑이로 상징된다)


사냥 선봉장은 가토 기요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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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정벌실패와 사망 이후, 

다이묘의 한명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로운 막부를 세운다.

도쿠가와 막부.

일본사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일본사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 최후의 막부.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들이 지배한 이 264년간의 시기를 에도 시대, 도쿠가와 시대라 부른다.

임진왜란으로 조선과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에도 막부의시간은 흐르고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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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쿠로후네(黑船)를 타고온 미국의 페리제독

이 시기의 유럽의 배는 타르로 선체를 검게 칠하고 있었다.

열강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한편으론 강해지고 싶다는 진화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1854년

막부 타도세력의 선봉, 조슈 번

막부의 대외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불평등조약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커졌다. 

특히 조슈(지금의 야마구치) 번이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존왕양이)"을 주장하며 

외국인과 막부에 대해 반감이 컸는데, 고메이 천황또한 그런 정서에 동의했다

*(번=다이묘의 영지)

1863년 조슈 번은 통고 없이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함선에 포격을 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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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4개국 연합군에 의해 포대가 파괴되고 100문의 대포를 빼았겼다.

결국 일본은 항복하고 막부는 30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1864년 6월 조슈 번과 외국함대의 전쟁 소식을 듣고 이토 히로부미 귀국. 

그는 영국견학으로 일본과 압도적인 국력차이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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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왕양이론자가 개화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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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히로부미의 스승, 요시다 쇼인

존왕양이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다.

*정한론(征韓論)=조선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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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의 스승, 사쿠마 쇼잔

사카모토 료마의 스승이기도 했다.

사쿠마 쇼잔은 가와카미 겐사이에게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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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사이, 150cm 정도에 살갗이 희어 여성 같았다고 한다.

('바람의 검심'의 켄신의 모티브가 가와카미 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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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

이 때 사쓰마와 조슈의

관계의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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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

1866년 반목하고 있던 사쓰마와 조슈를 중재, 삿초 동맹이 맺어지다

막부가 조슈 번을 공격했지만 근대화의 무장을 갖추고, 사쓰마의 지원까지 있으니

참패한 막부는 휴전이 불가피했다.

사카모토 료마가 여관에서 암살당하자

1순위로 용의자 선상에 오른 조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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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의 칼잡이들 '신선조'

쇼균의 경호를 목적으로 주인 없는 무사들을 모집했는데, 이때 결성된 낭인집단이 시초가 되어 

세리자와 일파 숙청후 '신선조'라는 무사집단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들은 유신지사들에게 극악무도 했다.

*유신지사 : 지사 : '높은 뜻이 있는 사람들' 존왕양이 집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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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대정봉환 

도쿠가와 막부, 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하다

이제 일본의 천하는 

천황을 중심으로 돌아가려 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

: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를 붕괴시키고

천황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킨 근대 일본의 정치·사회적 변혁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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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

1867년 왕정복고 후 메이지 신정부는 외국에 대해 천황정부의 성립을 알려 

승인을 받음과 함께 중앙관제 정비에 착수했다.

신정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도쿠가와 막부에 적대적이었던 젊은 무사들로서 

주로 내정문제와 서구 열강의 침략 위협에 자극을 받았다.

이들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표어 아래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민족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사임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정권 장악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이를 견디지 못한 사쓰마 번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12월 9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쿄토를 장악하고, 

막부 폐지와 함께 신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1868년 막부의 군함이 사쓰마 번 군함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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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군의 후퇴는 계속 되었고 결국 신정부에게 항복한다.

이로써

에도 시대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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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다.

그는 특사 자격으로 조선을 방문한 뒤 일부러 무례한 행동을 하여 

조선인에 의해 피살되도록 함으로써 이를 계기로 조선에 선전포고를 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히고낙향해서 사학교를 건립한다.

이에 일본 각지의 사무라이들이 몰려들어 

1877년에는 학생수가 2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1877년 1월 28일 정부의 조치에 반발한 사이고 제자들이 가고시마 무기고와 해군 공창을 공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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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세이난 전쟁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도하여 일으킨 사무라이의 반란.

일본 역사상 마지막 내전.

톰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도 이 전투에 배경을 두고 있다.

사무라이는 죽고, 일본제국군이 탄생한다.

조슈번 출신의 하급사무라이가

일본 육군을 창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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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국주의의 아버지, 야마가타 아리토모"

독일제국의 전쟁과 승리를 목격한 그는 

약육강식의 원칙을 배웠고 군대와 총칼의 힘을 확신했다.

1873년 징병제 실시

메이지 유신의 동료 사이고 다카모리 진압.

1882년 '황군'복무규율 선포.

1887년 자유민권운동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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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야스쿠니 신사 탄생

메이지 유신을 위해 목숨 바친 3588명을 위한도쿄의 초혼사(東京招魂社),

국가를 위해 순국한 자를 기념한다는 뜻의 야스쿠니 신사로 개명.

"일본, 아시아를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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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화의 선생님, 후쿠자와 유키치

네덜란드, 영국, 미국의 학문들을 배웠고 세계 각국을 돌며 견문을 넓혔다.

서구사상과 문물을 도입에 앞장서고, 힘써 배워 독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구미 각국을 돌아보고 쓴 <서양사정(西洋事情)>은 초판이 15만 부 넘게 팔릴 정도로

서양 문명에 대한 지식을 광범위하게 보급했다

구한말의 개화파, 김옥균의 후원자였던 그는 조선의 개혁을 기대했다가

갑신정변 실패 이후 그의 기대는 냉소와 증오로 바뀌어서 

조선의 멸망을 바라게 되었다.

특히 조선 조정의 부패와 잔인성을 극도로 비판하였다.

1885년 일본의 서구문명화와 탈아시아 주장

(그는 상당히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유신 3걸의 시대는 지고,

제국의 시대가 본격적으로열리는데

그 배의 선장이 바로 이토히로부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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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12월 일본 제국의 제 1대 내각총리 대신 이토 히로부미

근대화 일본 제국의 기초를 만들고,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다.

1889년 헌법제정, 메이지 유신 종료

明治維新


이제 

군국주의 팽창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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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ride 17-09-20 16:10
   
다음 편도 있나요?
     
레스토랑스 17-09-20 16:16
   
찾아 봤는데 없는것 같네요
뭐꼬이떡밥 17-09-20 18:15
   
칼을 버린다라...
칼을 버린다는 에도시대 를 말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도쿠가와의 유교 사상으로 그리고 막부의 막대한 영지및 이에미쓰의 정책으로
싸울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전까지는 사무라이로서 공은 칼로 (무력)으로 성취하는 것에서  이젠 칼로 공을 세울수 없게 되어버린겁니다

대표적인게 우에스기 가문인데 원래는 에치고에서 히데요시 명으로 아이즈 로 가봉이 되어 영지를 옮기게되지만
나오에 나네쓰구라는 가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세키가하라 이후  요네자와 35만석으로  1/3로 줄어 들게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우에스키는 사키가하라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될거라 생각하여 120만석 시절의 가신을 모두 끌고 가서
번의 재정이 망하게 됩니다 .. 무사란 오롯이 텃밭수입으로 버틸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몇대후 가난한 번을 양자로 들어온 영주가 상업을 키워서 번을 부유하게 한다는 불꽃이라는 소설이
유명했지요
그래성 17-09-20 21:56
   
이토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하고,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때를 틈다,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단행되죠.  만약 일본 군국주의를 견인한 군부가 집권하지 않았다면, 진주만 공습도 없었을거라는 가정이 허무맹랑한 말만은 아닐겁니다. 러일전쟁때 영국을 상대로 능수능란한 외교전을 구사하며, 자신들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히 자각하고 있던 관료집단은 강경일변도인 군부와 달리 미국에 대해 대단히 유화적인 입장이었죠. 만약 이들이 계속 집권하고있었다면, 공습 대신에 외교적 타협을 했을겁니다. 일단 자신들과 미국의 국력차를 정확히 알고있었기에, 진주만 공습이 단기전으로 마무리될거라는 오판을 안했을겁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지면, 임진왜란 직전 전세계 총기류 70%정도를 일본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Banff 17-09-21 16:39
   
안중근 암살로 군부독재가 40년대까지 이어진게 아니라, 진주만 공습관련 쿠데타는 32년 5.15 반란과 36년 2.26 쿠데타로 알고 있어요.  그전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나름 내각제 정당정치 하다가, 수많은 암살사건들과 5.15 사건이후로 군부독재 파쇼시대로.
도련님납쇼 17-09-22 18:42
   
그리구 에도시대 를 계획하고 만들어놓은건 도요토미히데요시 이죠
도쿠가와 막부는 솔찍히 무능력한 집단으루 보입니다
꼬꼬동아리 17-09-30 17:16
   
김옥균 부분은 미화됬네요 김옥균 선생님 갑신정변때
일본군 지원을 바랬지만 오지않아 실패했죠 원래 처음부터
계획된겁니다 실패해서 화난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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