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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9 01:07
[기타] 이지란 ~ 동부여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685  

이지란


본관 청해(). 자 식형(). 본성 퉁[]. 초명은 몽고식 이름인 쿠란투란티무르[]이다. 시호 양렬(). 여진의 금패천호() 아라부카()의 아들이며, 화영()의 아버지이다. 함경도 북청에 거주하면서 이성계와 친밀하게 지냈다. 원나라가 쇠퇴하고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자 고려 공민왕 때 부하를 이끌고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에 귀화한 뒤에 이씨() 성과 청해를 본관으로 받았다. 이성계() 휘하에서 운봉()전투 등에 공을 세워 공양왕 때 문하부지사()·판도평의사사사(使)를 역임하고 1392년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청해군()에 봉해지고 참찬문하부사()가 되었으며 1393년 경상도절제사(使)로 왜구를 방어했다.

후에 동북면도안무사(使)가 되어 갑주()와 공주() 두 성을 축조했으며 1398년 문하시랑평장사() 때 제l차 왕자의 난을 수습하여 정사공신() 2등이 되었다. 후에 명나라를 도와 건주위() 정벌에 공을 세웠다. 1400년(정종 2) 방간의 난(제2차 왕자의 난) 때 재차 공을 세워 좌명공신() 3등이 되고, 좌찬성()에 이르렀다. 태조가 은퇴하자 영흥()에 시종했다가 승려가 되었다.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지란 [李之蘭] (두산백과)


청해


청해()는 남옥저 이후 고구려 영토였으며, 698년(신라 효소왕 7) 발해의 남경남해부()를 설치하였고, 고려시대에 들어와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했으며, 1392년(공양왕 2)에 북청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8년(태조 7) 청주부로 고쳤다가 얼마 후 다시 북청으로 고쳤고, 1427년(세종 9)에는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북청군이 되었고, 1896년 함경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 지역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해이씨 [靑海李氏] (성씨와 본관, 2011. 1. 14., 한국학중앙연구원)


남옥저


현재의 함경남도 함흥지역으로 여겨진다. 『삼국지』 권28 구검전()에는 왕이 매구()로 달아났다가 왕기의 추격을 받고 옥저()에서 천 여 리를 지나 숙신() 남쪽 경계에까지 달아났다고 하였다. 이 매구()를 남옥저의 일부로 현재의 함경남도 문천()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삼국지』 권30 위서 옥저전에 ‘(으로 곧 --주석자) () ’라 한 것에 의거하여 동천왕이 북옥저 지역 곧 간도()지방으로 도망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옥저 [南沃沮]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북옥저


《삼국지》에 의하면 읍루의 남쪽, 남옥저의 북쪽 800리 되는 곳에 있었다고 하는 바, 그 위치는 대략 지금의 함경북도 북부와 간도()지역으로 추측된다.

또, 《삼국지》에서는 일명이 ‘치구루()’라고 했으나, 이는 북옥저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중심지의 명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 위치에 대해서는 경성설()·혼춘설() 등이 있다.

북옥저의 형성시기는 미상이나 최근 전국시대()에서 후한시대()에 걸쳐 두만강·목단강()·수분하() 유역에 분포한 단결문화유형()을 북옥저문화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바, 그렇다면 그것은 서기전 4세기까지로 올려볼 수도 있다.

여름에는 읍루족이 배를 타고 와 노략질을 하기 때문에 산 속 동굴에서 살다가 얼음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못하는 겨울이 되면 마을로 내려와 살았고, 그래서 사회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서기전 28년(동명왕 10) 고구려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하는데, 비록 그 연대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우나 북옥저가 비교적 일찍 고구려의 세력권에 흡수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245년(동천왕 19)에는 위나라의 침입을 받은 고구려의 동천왕이 위나라 현도태수 왕기()의 추격군에 쫓겨 북옥저까지 피신한 적도 있었다. 북옥저의 풍속은 남옥저와 같다고 한다. →옥저()

[네이버 지식백과] 북옥저 [北沃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부여


그런데「광개토대왕릉비」를 통해서 적어도 5세기 초에 실재하는 동부여가 확인된다. 이때의 동부여는『삼국지()』동이전()에 보이는 북옥저()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대체로 두만강 유역에 해당된다. 이것은『삼국지』관구검전()에서 동천왕()이 위()에게 쫓겨 피난했던 매구루()가 동옥저전()에서는 치구루()로 표기되었고, 이것이 바로 두만강 유역의 책성()이며「광개토대왕릉비」에서 전하는 동부여의 미구루()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3세기경 동부여는 두만강 유역에 있었다고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부여 [東夫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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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좀와라 17-08-19 10:19
   
청주에 대한 의견 때문에 이글을 올리신 것 같은데요.

이글 역시 한반도로 모든 영토를 규정하고 만든 이론이라 과거의 역사를 이해 하기는 어렵죠.

훈요십조에 대한 내용을 이해 할려면 먼저 부여국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하고 백제유민을 안정화 시키고 발해와 신라를 견제 하려고 의자왕을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을 건설 합니다. 이 부여국이 삼대인가 사대 쯤에서 남성 혈손이 끊기고 부여공주가 왕위를 잇는데 이 부여공주가 당나라 이씨 황족과 결혼을 하여서 이씨로 부여국이 이어지는 것 이고요.

당연히 전주 이씨는 이 부여국의 후손 이라는 것을 자칭하게 되는 것 이고요. 사실 여부는 모르지만 하여간 자신들은 그 들의 후손이라 주장 하는 것이고 결국 전주이씨는 선비족인 당나라 이씨 왕족과 백제계 부여국 부여씨의 후손이라 하는 것이죠.

하여간 부여국은 지금의 산동성이나 하남성에 존재 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이 부여국이 후일 발해와 통일신라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약해지고 결국은 발해에 의해서 망합니다.

그리고 이 부여국의 잔존세력이 황소의 세력이나 이정기의 세력 일 꺼라 보인다는 것이죠. 일단 고려 왕씨는 장보고의 잔존세력인데 이 장보고는 이정기 세력과 싸운 무장으로 이 싸움의 공으로 세력을 쌓은 사람입니다. 당연히 고려 왕씨와 산동성에 있었던 치청국의 이정기 세력과 대립하는 세력이지 공존하는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죠.

신라 역시 부여국을 공격했던 세력이며 부여국은 대륙에 있던 세력이라 절대로 신라가 한반도에만 있었다면 이 둘이 싸웠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는 것 이죠. 그리고 최치원은 황소의 세력과 싸워서 유명한 인물로 역시 산동에 있던 세력과 씨웠던 인물 입니다.

결국 고려와 발해 그리고 신라는 산동셍에 있던 어떤 세력과 계속적인 전쟁을 벌였는데 이 세력이 부여국 / 이진충의 해족(거란족의 원족?) 황소의 반란세력 과 이정기의 군벌세력과 지속적으로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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