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병과 보조병이 존재하는데, 이 보조병이 대개 이민족출신입니다. 그리고 이 보조병은 군단병과 숫자가 엇비슷하거나 더 많습니다. 결국 상비군의 절반이 이민족 출신인데, 외국군대를 믿지 못한 편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한무제 시기 한나라는 대규모 유목민출신 용병들을 운용했습니다. 농민출신 징집병들이 흉노에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이 소위 말하는 4대문명발상지중 2개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라는 걸 간과하신 것 같군요. 두 제국의 기술수준은 엇비슷했습니다. 제국이 전면 붕괴하며 극적인 타락을 보였기 때문에 낮춰 볼 수도 있긴합니다만. 출토되는 철제병기들 수준을 보면 양자간의 제련기술은 비슷했습니다.
거기에 정작 철생산량은 로마쪽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연간 약 8만톤을 생산했는데, 이는 한제국의 연간 5000톤의 거의 18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구리와 납, 은등의 생산량도 월등했습니다. 경화로서의 금 그리고 은의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에 중국은 실크로드를 이용해 비단을 팔아 은과 금, 그리고 구리를 꾸준히 흡수하게 됩니다.(이건 인도도 마찬가지지요.)
이러한 높은 생산능력 때문에 로마는 국영공장에서 생산한 강철제 제식병기와 갑옷. 그리고 각종 지급품들을 병사들에게 공급할 수 있었고. 그 상비군단병의 수효가 전성기엔 30만에 달했습니다. 통상 군단병의 숫자와 비슷한 보조군단병이 존재했으니. 상비군의 수만 60만이란 뜻입니다. 이건 동시기 한나라는 물론 전성기라할 한무제때조차도 꿈꿀 수 없는 호사입니다. 한무제시기조차도 모든 병사들에게 강철갑옷을 지급해주진 못 했습니다. 그게 가능해진 시기는 위진남북조 말기나 되어서 황제를 시위하는 중앙군에 한정해서나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사용하는 군마의 수준 역시 로마쪽이 더 높았습니다.
초원길을 따라 바로 이 서방의 말들을 구해 호마등으로 호칭하며 열심히 품종개량에 나설 정도였습니다. 당대 한제국은 전한 한무제때까지 말의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해 여전히 전차를 주력으로 운용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한무제시기 다수의 북방유목민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흡수해 대흉노족 전쟁을 치루면서 기병의 개량이 이루어졌습니다. 막대한 재정을 지출해 바로 초원길 너머 건너온 이 서양산 호마들을 대량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또 포(砲)라고 불리우는 투석병기의 수준은 외려 로마쪽이 앞서 있었습니다. 유효사거리와 정확도면에서 더 우세했지요. 발리스타, 캐터펄트, 오나거, 폴리볼로스, 팔린토논등은 중국과는 달리 비틀림 힘을 저장하는 일종의 토션식 스프링장치 혹은 무거운 무게추. 여기에 톱니식 윈치를 이용해 당대 중국의 대형노궁이나 석포등의 위력을 크게 능가했습니다.
특히나 3세기경 발명되는 트레뷰세라는 무게추를 이용하는 대형투석기는 훗날 회회포란 이름으로 몽골군에게 도입되어 남송을 공격하는데 사용됩니다. 이외에도 중근동 지역에선 보편화되어 있던 수차관개기술이 당나라 시절 전래되어 중국의 농업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지요.
즉, 양 제국간의 기술차이는 크게 나진 않았지만. 기계와 공학, 수학, 천문학등은 외려 로마가 더 앞서 있었습니다. 여기에 광업생산성은 물론 토지단위당 생산성도 로마가 더 앞서 있었습니다. 로마의 농법과 관개수로 건설법들은 거의 발전없이 고스란히 동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13세기까지 동로마의 농업생산성은 당대 유럽최고였습니다. 당나라 시기 이런 로마의 관개수로 기술과 수차기술등이 전래되어 송나라때 꽃을 피우게 됩니다.(소위 말하는 주판부터가 중국의 발명품이 아니라, 그리스-로마의 발명품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기원전 25세기경 현재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달했던 수메르에서 철기를 만들었으며 이란, 팔레스티나 등지에서는 기원전 1200~1000년경에 연철을 열처리하여 강철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대 유럽에서 생산된 철기는 전부 연철(시우쇠, 단철이라고도 하며 탄소 함량은 0.035% 이하)이고 주철(선철이라고도 하며 탄소 함량은 1.7~4.5%)은 그보다 늦어 14세기경 독일의 라인 지방에서 처음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강철(탄소 함량 0.035~1.7%)은 선철의 경우 보다 높은 온도 즉 보통 1,500도 이상에서 가열하여 탄소와 그 밖의 원소들을 연소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강철을 만드는 비법은 철의 용융점이 1,539도이므로 제련로 안의 온도를 1,500도 이상 올려야 한다.
중국에서의 철기 사용은 기원전 1,100년경이지만 기원전 7세기인 춘추전국시대에 비로소 주철의 주조에 성공했는데 중국 전국시대의 유적지 가운데 철기가 출토된 20여 군데 지방은 대부분 고조선 영역이다. 이것은 이들 유물이 중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고조선인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개발되었다고 믿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즉, 중국과 완전히 다른 청동기술을 발전시킨 고조선에서 철기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는 뜻이다.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 이미 세계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첨단 기술인 강철을 주조하는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_- 휴... 이미 이부분은 서양애덜하고 몇년간이나 논쟁됐던 부분임..
님이 뭘보고 그런얘기하는지 압니다.
암튼 다 따져보면 이게 그 근원임.
"There appears to be no reliable way to estimate pig-iron production per day or(more relevant) per year. Perhaps we can assume that production per year was of the same order of magnitude as that of 19th-and 20th-century Chinese traditional blast furnaces of the same size, a few hundred tones per year. If we were to assume an average annual production of 100 tonnes per Iron Office, then total annual legal production in the Han empire as a whole would have been about 5000 tonnes, or about .1 kg per person. Obviously it would not be wise to lend much credence to this figure, but perhaps it gives a feel for the general scale of Han iron production." -pg 236 in Science and Civilization: Chemistry and Chemical Technology
저책의 저부분에서 한나라 5000톤이란 얘기가 첨 나온것임.
간단히 설명하면 한나라때 정부가 철을 독점했는데.. iron office가 49군데 있었다를 근거로.. 한 office(철관)에 한 제철소만 있었다란 추측으로 19~20세기때 비슷한 사이즈의 중국의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철생산량 (a few hundred tons per year)을 근거로 최소 5천톤이란 수치가 나온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