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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01 15:14
[중국] 원나라 시대 민족별 계층
 글쓴이 : 고독한늑대
조회 : 3,988  

예전 원나라 왜곡된 민족별 계층을 이야기 하시는 분이 있어서 제대로 짚어봅니다.


첫번째.. 색목인을 알짜자리에 많이 기용해서 색목인이 첫번째다..

틀렸습니다.

알짜자리는 고려인들이 더 많이 차지했습니다.


심양왕 고려인.. 여진 다루가치 고려인.. 고려왕 고려인.. 남중국 다루가치 고려인..

통치자들을 놓고 봐도 고려인이 많습니다.

또 북경 옆에 대방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나라시대에 고려인 엘리트들을 착출해서 중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원나라 관리들로 간 사람들이 살던 마을입니다.

쿠빌라이 장례식에 유일하게 참석할수 있었던 민족은 고려인뿐이고..

고려왕족만이 황족대우를 받았습니다.


두번째.. 북방한족이 대우를 받고 남송의 남방한족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것도 틀렸습니다.

그 당시 몽골은 포로를 잡아도 여진족과 고려인은 뿌리가 같다고 해서 놓아줬고요..

한족포로는 귀를 자르고 목을 베었습니다.


또 북방한족?? 그런거 없습니다. 송나라출신 한족들은 모조리 노예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 그러나하면..

당시 금나라입니다.

기존에 금나라를 북방한족으로 간주해버리니 이런 오류를 범하는겁니다.

분명 금나라는 발해와 여진으로 우리민족과 관련된 민족입니다.

이 금나라를 원나라가 차지하면서 그 금나라 인재를 기용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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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17-08-01 15:21
   
금나라에도 한족 있었잖아요.
     
고독한늑대 17-08-01 15:23
   
금나라 관리 중에 한족이 있었다고요???

님 금나라가 북중국을 지배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만주의 금나라인들을 산동성으로 이주시킵니다.

무슨 한족이 있다고 하나요..
노예로요??

왜 중국인들이 산동성 사람들을 산동빵즈라고 불렀는지 모르시나요????

금나라는 중원을 정복하는 족족이 금나라인을 이주시켜서 땅을 빼앗았습니다.
          
촐라롱콘 17-08-01 15:54
   
금나라 황족인 완안씨는 몽골에 의해 거의 절멸에 가까운 멸족을 당했습니다만....??

그리고 쿠빌라이가 막내동생인 이리그부카를 제치고 칸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공헌을 한
세력 가운데 옛 금나라 출신이기는 하지만... 여진족들이 아닌 한족 출신 군벌-세가들의
지지가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여진족들 가운데 몽골세력(특히 만주를 장악한 테무게 옷치긴을 비롯한 칭기스칸 동생들의
후손들인 동방3왕가에 의해서)에 중용된 여진족들은 금나라중심부인 중원쪽의 여진인들이
아니라... 만주에 잔류했던 여진인들이었습니다.

만주지역을 장악한 동방3왕가 휘하의 여러 민족 가운데 여진족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니 중용된 여진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그 당시 몽골은 포로를 잡아도 여진족과 고려인은 뿌리가 같다고 해서 놓아줬고요..
한족포로는 귀를 자르고 목을 베었습니다.]].
.
.
위에 언급된 한족들을 주로 학살했던 시기는 홍건적들을 비롯한 한족세력에 의해 원나라가
북방으로 밀려나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원나라가 몽골고원으로 밀려난 후 북원이 세워진
후에도 당분간은 여진족이 많은 만주지역은 나하추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고, 고려는 친명파와
친원파로 오락가락하기는 했지만... 몽골에 대해 뚜렷한 적대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였으니.....

그리고 쿠빌라이칸 시기부터의 원나라에서 고려왕족이 심양왕에 임명되는 등 나름대로
우대받았던 배경에는... 몽골항쟁기 막바지의 강화를 맺으러 간 고려세자(훗날의 원종)가
대칸 경쟁중이던 쿠빌라이를 찾아갔던 즉 다시말해 줄을 잘 섰던 측면도 있고...
쿠빌라이의 딸과 원종의 아들(충렬왕)이 결혼함으로써 사돈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쿠빌라이칸 시기부터 동방3왕가와의 갈등국면이 증폭되자.. 이를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고려를 우군으로 삼았던 측면이 큽니다! 심양왕도 따지고 보면 동방3왕가에 대한 견제책의
일부분입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16:00
   
님은 지금 제 지적을 그대로 답습하는데요..
금나라는 송나라 황족과 관리들을 대거 이주시켰습니다.
이건 아시나요???
또 금나라가 당시 중원을 정복할때마다 금나라인들을 이주시켜서 그 지역의 호족이 됩니다.
왜 이 내용을 빼고 이야기 하나요??????

님은 지금 금나라의 당시 세력을 무시하고 만주에 있던 여진족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 원나라시대 민족별 대우를 이야기 하는것이지..
그 내막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데.. 동방3가 운운하면서 이유가 있었다 말하는것은 어불성설이죠..
결국 고려인이 대우 받은것은 맞습니다.
또 고려태자의 선택으로 그랬던것이고요..

이것도 웃긴게..
고려가 내분이 있지 않았다면.. 고려가 몽골에 화친을 제의하지도 않았다는것이고..
고려가 몽골과 이어질 일도 없었겠죠..
고려왕실과 쿠빌라이가 서로 조건이 맞아 떨어진것 뿐이죠.

또 몽골이 실위족의 후손들이란것은 중국 기록에 기록된 내용이고..
이 실위족은 철을 생산할수 없어서 고구려에서 철을 공급 받았으니 고구려에 예속된 민족이라고도 볼수 있다는겁니다.
그러다보니 여진 고려인들에 대한 인식과 한족을 다르게 본것이죠..

징기스칸의 복식을 보더라도 흰색 한복과 비슷한 옷으로 동이족의 옷이지..
요나라의 거란복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또 기황후의 이름을 솔롱고 올제이 후투그..
몽골이 고려를 말할때 솔롱고스... 라고 말하는데..
실질적으로 몽골어에서는 솔롱고스에 대한 해답을 얻기 힘들고요..

에벤키족의 언어에서 나오는 솔론은 오소리를 뜻합니다.
즉 한자로 貊입니다.
이 실위족의 직계 후손들은 예벤키족으로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촐라롱콘 17-08-01 17:30
   
고려의 왕족과 지배계층, 원나라 부역자... 등등 고려인 전체로 보자면 지극히
일부만이 우대받은 상황을 마치 고려인 전체가 우대받은 것으로 비약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원나라 시기 여러 차례에 걸쳐서 끌려간 공녀들은 도대체 머란 말인지....???
공녀로 끌려간 이들 가운데는 고려의 피지배층 뿐만 아니라...
원나라 궁중의 시녀들 또는 원나라 관리의 첩의 용도로서의 충당용으로는
고려 권력층의 딸들도 여럿이 끌려갔는데....
예를 들면 충렬왕 시기의 부원군 반열의 최고권력층이던 홍규의 딸은 물론이고
원나라말기에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 또한 원래는 고려 관료층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려가 몽골-원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것은 대몽항쟁에서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몽골의 5~6차 침입은 고작 몽골군 5천 병력에게 전 국토가
아작나고 포로가 20만이상 끌려가는등... 고려의 저항여력이 한계점에 도달한 것
뿐만 아니라... 몽골에 부역하는 고려인들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항쟁을 지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나라가 북중국에 입성하고 나서 송나라 황족과 고위관료들을 죄다 북방으로
압송해서 아작낸 것은 사실이지만....
금나라 치하의 한족 인구만 해도 어림잡아 최소 1,000만~ 최대 2,000만에 달하는
현실에서... 생여진-숙여진-발해인들을 전부 포함해도 100만 미만에다가
서요로 달아나지않고 금나라에 잔류한 거란족을 비롯한 금나라 치하의 몇몇
북방민족까지 전부 포함해도 최대 200만 내외에 불과한 현실에서....
한족유력자들에게 일정부분의 파이를 나눠주지 않고 효과적인 통치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물론 한족들이 맹안모극제에 포함된 여진족을 비롯한 북방민족들에 비해 차별받기는
했지만....
결국 한족들 상당수는 몽골의 금나라침공에서 금나라가 수세에 몰리게 되자 이탈을
가속화하게 됩니다.(몽골로 말을 갈아탄 거란족들과 같이...)

그리고 칭기스칸 이전 시기까지는 기록문화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당시 몽골족은
물론 나이만족을 제외한 몽골고원의 대부분의 민족들의 상황에서 보자면..
민족의 역사는 주로 구전으로 전해졌고(기록에 의존하지 않은 집단의 기억력이
뛰어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당대를 기준으로 대략 200년보다 이전시기의 역사는
거의 신화에 해당할 정도로 머나먼 옛날의 희미한 잔영밖에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몽골족의 기원이 수나라~당나라 시기의 실위족의 일부인 것은 거의 확실하고
당나라말기~5대 10국 시기를 전후한 10세기를 전후해서 흑룡강 북방의
산림수렵민족에서 몽골고원에 진입하여 그들의 나와바리를 옮김은 물론 유목민족으로
업종전환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중국문헌을 비롯한 여러 기록들을 토대로 후대에
드러난 사실일 뿐입니다.

몽골-원 중흥기의 기록인 몽골비사나 집사를 비롯한 당대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족들은
칭기스칸 시기로부터 적어도 200년 이전의 역사는 그냥 신화나 전설의 영역으로
흐릿하게 기록했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몽골 중흥기의 몽골인들이 고구려와 실위의 교류를 포함한 이전 역사까지
인지하여 고려-고려인들에 대해 친밀감을 가졌다는 근거는 확률상 희박합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17:34
   
또 공녀드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몽골에서는 공녀가 안왔나요??

원나라 관리들은 고려여인을 얻어야만 명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고려인들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알수 있는 대목이죠..
무슨 고려 공녀가 노예인듯 왜곡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또 중국 기록을 보더라도 고려에서 간 공녀들이 원나라 대부분 다 원나라 귀족이 되었고요..
원나라에 간 고려인들은 대부분 엘리트들입니다.

또 마미군 또한 고려인들로 이뤄졌듯이..
고려인들의 세력은 원나라 핵심을 흔들수 있던 세력이었던겁니다.

어딜 보더라도 한족과는 대우가 천지차이라고 보이는데요..
왜 이렇게 어떻게든 아니라고 우겨보려고 할까요
                         
꼬마러브 17-08-01 17:46
   
공녀같은 경우는 ,,

오히려 고려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가족을 공녀로 보내기 위해 안달이 났던 것으로..압니다만 ..

황실에 인맥을 쌓을 수 있는데다 집안의 두둑한 배경이 되니 ..

위안부나 환향녀의 개념이 절대로 아닙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20:04
   
너무 길어서 대충 읽었었는데 못본게 있었네요..

고려가 대몽항쟁 때문에 저항여력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요??
그것은 몽골이나 고려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몽연합을 해서 그 연합군이 삼별초 하나 꺽는데도 그렇게 어렵게 꺽었나요????
무신정권에게 권력을 거의 모두 상실한 고려왕족이 취할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봐야 맞겠죠..

또 몽골 중흥기에 몽골인들이 그 이전 역사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태종도 못꺽었던 고려라고 칭한답니까???

또 몽골의 핵심이 브리야트이고..
예벤키는 이 브리야트와 가장 가까운 민족입니다.
                    
촐라롱콘 17-08-01 17:41
   
님이야말로 왜 이렇게 일부의 상황을 비약해가며 말도 안되게 우겨대는 걸까요....??.^^

고려인들이 원나라에서 한족들보다 우대받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우신지...^^

일제시기에도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의 2등신민"으로, 일제점령하의 중국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그리고 저는 몽골치하에서 한족들보다야 고려인들이 우대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한 적은

없습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17:50
   
님 비약한것 없습니다.
사실을 이야기 한것이죠..
왜 이러시나요..

왜 이렇게 발끈하면서 일제 식민지까지 거론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려 하죠???

또 일제식민지랑 여몽연합이랑 같다는소리는 또 뭐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나라가 일제처럼 공출제로 착취했나요????

있는 사실을 이야기 하면 안되고..
무조건 한국 역사는 깔아 뭉게야만 비약하지 않는건가요????
                    
촐라롱콘 17-08-01 21:15
   
[[또 몽골의 핵심이 브리야트이고..
예벤키는 이 브리야트와 가장 가까운 민족입니다.]]
.
.
.
 몽골의 핵심이 브리야트라니....??? 이 무슨 듣도보도못한 궤변인지....ㅋㅋㅋ

칭기스칸 시기에 몽골제국에 통합되는 칭기스칸 흥기직전까지 산재해있던
몽골고원의 여러 부족들인 케레이트부, 메르키트부, 타타르부, 나이만부, 옹기라트부,
몽골부... (그중 몽골부와 메르키트부는 평원과 산림의 경계지역을 근거지로 했기
때문에 몽골고원의 주력부족들에게 오히려 무시당하기도 했을 정도이고)

님이 언급한 브리야트부족은 초원-평원의 유목민들이 천시하는 바이칼 북쪽의
숲이 나와바리인 삼림족에 가까운... 다시말해 몽골중심부의 부족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인데.... ㅋㅋㅋ

이들 브리야트부족을 포함해 비슷한 처지였던 오이라트부 등은 통합몽골족들 가운데
가장 나중에 편입되었을 만큼 그야말로 방계중의 방계입니다만....ㅋㅋㅋ


[[그래서 여몽연합을 해서 그 연합군이 삼별초 하나 꺽는데도 그렇게 어렵게
꺽었나요????
무신정권에게 권력을 거의 모두 상실한 고려왕족이 취할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봐야
맞겠죠.]]
.
.
.
몽골-원이 고려 또는 삼별초 제압하는데 상당한 국력을 들인 것처럼 말씀하시네....ㅋㅋ

몽골의 고려침입 당시 평균적으로 동원된 병력규모는 대략 3만 내외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몽골의 금나라와 남송을 공략하는 주공에 곁들여
고려침공은 조공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심지어 5차 6차 침입규모는 고작 5천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삼별초 토벌작전에서 진도의 토벌 작전에 동원된 여몽연합군은 6천 규모이고
제주도 토벌작전에 동원된 여몽연합군은 1만여 명입니다.
그 중 몽골군(몽골군에 편입된 여러 민족 다 포함하더라도)은 얼마나 될까요...?? 


[[또 몽골 중흥기에 몽골인들이 그 이전 역사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태종도 못꺽었던 고려라고 칭한답니까???]]
.
.
.
쿠빌라이칸이 칸이 되기 전 고려태자에게 한 언급같은데....
쿠빌라이는 몽골인들 가운데 가장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인물이고,
또한 당태종-고구려 어쩌고저쩌고에 대한 부분은 몽골의 역사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중국역사에 대한 인지도에 포함되며...

정작 이 시기의 몽골인들은 자기 조상들 특히 몽골고원에 진입하기 이전 몽올실위
시절의 역사는 어렴풋한 신화와 전설 수준의 인지도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인데 자꾸 반복적으로 언급하게 만드시네.....^^

그리고 정말 기상천외한 역사관을 지니고 계시네요....ㅋㅋㅋ

몽골족들 밑에서 2등신민-3등신민 지위를 차지하고 몽골족들 X구멍 핥아댄 역사를
좀 무시했기로서니... 이것이 어찌하여 한국 역사를 깔아뭉갠다는 논리가 된다는
말씀이신지... ???

정말 기상천외한 역사관의 소유자시네요...ㅎㅎㅎ
                         
올바름 17-08-01 23:25
   
어찌어찌 객관적인척 논리를 펴 상대하고싶겠지만 한족의 역사는 노예의 역사인게 자명한데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나요? 결국에는 논리도 무너지고 열등감에 쩔어 빽~ 우기기나 하는꼴이 참 못났네요
민족적으로 몽골족과 한민족이 연관돼있어서 몽골한테 노예지배당할때 덩달아 한민족한테도 일정부분 지배당한걸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은맘은 이해하지만 너무 나갔습니다
주인집에 하인이 있는데 주인네 친척이 놀러와서 그 하인한테 물한잔 떠오라고한다면 위계질서에 의해 당연한거지 친척이 주인을 핥은게 아니죠 설사 주인과 친척이 싸우다 친척이 져서 주인한테 한수접어주는 상황이 발생했다쳐도 서로간에 친족이라는 의식과 관계가 유지되고있다면 주인의 하인은 친척에게도 하인의 신분인겁니다
가린다고 가려지는 한족의 노예역사가 아니니 그냥 쿨하게 인정하고 대신 한족의 뛰어났던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위안 삼으세요
                         
고독한늑대 17-08-02 09:59
   
아주 소설을 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리야트가 핵심이 아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당시의 부족이 아니고 지금을 이야기 합니다.
그 당시에 브리야트 부족이 있었답니까??????
아 진짜 왜 이러나 모르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옹기라트부족이 변경중에 변경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아 원나라 황후들이 대부분 옹기라트 출신들입니다. 왜 이러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발 님 말도 안되는 소리 좀 그만하세요..

또 고려가 님 말처럼 그렇게 쉽게 함락할수 있었다면 왜 40년이나 전쟁을 했답니까?????

또 고려를 칠때 몽골이 대군을 몰고오면 오히려 몽골의 입장에서 독이 될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겁니다..
역사적으로 증명하니까요..

그리고 어떻게든 고려를 깍아 내리려고 안달났나본데요ㅋㅋ
님 원이던 어떤 나라던.. 고려나 조선을 완벽하게 정복시키기는 굉장히 어렵다는것을 알기에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했던것입니다..

부여가 여진족을 완벽히 토벌하지 못한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님 진짜 골때리는데요. ㅋㅋㅋ
님 실위한테 주변국은 고려와 요나라였는데 고려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개소리는 또 뭐죠???????
실위가 어디 유럽에 있답니까?? 아니면 중앙아시아에 있었답니까?????
아 중앙아시아도 오히려 고려와 동맹이라 고려가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를 치자고 제안했을정도였죠..
무슨 아프리카나 유럽에 있었나요???
실위는 고구려에 복속되었다가 거란에 복속되었다가 그랬었죠..,.
발해가 번성했을때는 또 발해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것이고요..

님은 참 골때린게 실위는 부족이지만 중국으로 무역을 진행했던 부족입니다.
무슨 저 윗쪽에 쳐박혀서 아무것도 모르는것처럼 그러실까요?????
아주 짱골라 한족만 최고이고 나머지는 미개하다 뭐 이런 논리를 형성하고 싶었나요?????
그리고 징기스칸이 그래서 역사를 기술할때..
고구려 역사를 카피해서 기록한답니까????
테무진??
님 대무신 왕이 주몽의 손자이고 무휼왕입니다.
전설도 우리 전설과 비슷하죠... 이름만 조금씩 다르고..
우리가 우리 민족을 이야기 하는 배달겨레 박달겨레와도 비슷하죠..

또 왕건 또한 고구려 대씨(태씨)가문의 후손이라고 하죠..

님이야 말로 기상천외한 역사관의 소유자네요..

몽골족의 대우이야기를 할때 한족보다 나았다니까 무슨 비약 운운하면서 몽골족들 뭘 빨아요??
한족은 그냥 노예였다니까 발끈하기나 하고말이죠....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언제 누가 어디서 몽골을 빨았는지 좀 구체적으로 설명좀 해볼래요???????
왜 고려가 몽골족에게 노예가 아니었는데 노예였다 이렇게 말해야 님은 안빨아댄건가요???

아주 가관이 아니네
내가 볼땐 님에게는 고려인이 한족보다 못했다 뭐 이런 개논리를 형성해줘야.. 만족할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아대긴 본인이 몽골이 고려를 순삭할정도로 대단한것처럼 몽골족을 빨아대고 있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아시아에서 힘으로 완벽하게 정복당해본적이 없었던 유일한 나라입니다.

거란의 요나라 또한 몽골 만주 모든 민족을 복속시켰지만..
결국 고려와 싸우다가 고려에 탈탈 털렸습니다.
무슨 고려를 맘만 먹으면 순삭할듯 말한답니까..
     
Marauder 17-08-01 16:49
   
금나라 영토가 만리장성을 넘었는데 뭐 땅만 빼앗는다고 사람이 사라지나요. 북중국을 지배하려고 금나라인들을 이주할때 그 지배대상은 한족 아닌가요. 거기에 산동뿐만 아니라 더 아래쪽도 지배했던걸로 아는데...

위키백과중
금나라는 한족을 통치하려고 여진족을 화베이로 이주케 한 다음 토지와 소를 지급하고 세금을 줄여 정착을 도왔다. 여진족은 사회 지위도 일반 한족보다 높아서 형벌을 받을 때에도 유리한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여진족이 화베이로 이주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여진족과 한족의 관계가 나빠지고, 여진족은 국가의 보호만 믿다가 점차 몰락해 유랑민이 되었다. 또한 여진족 사이에서도 계층간의 격차가 심해졌다. 그러자 세종은 여진 정신을 고취하고 근면 검약한 생활을 유도했고, 한족의 토지와 여진족 권력자의 토지를 몰수해 여진족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차별정책으로 한족과 여진족 사이의 반목이 더욱 깊어져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고독한늑대 17-08-01 17:01
   
님이 위키에 퍼온 내용도 제 말과 전혀 다를바 없는데요..

금나라는 결국 여진인들에게 토지를 나눠줬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약탈을 강력하게 진행했던 나라가 바로 금나라입니다.

금나라때 한족이 당연히 있었죠.. 농사일을 시켜야는데 없으면 안되죠..
그러나 그들이 주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겁니다.

금나라때 노예를 원나라가 기용했다??? 이것처럼 황당한 일이 어딨나요 ㅋ
               
Marauder 17-08-01 17:05
   
그냥 한족 있다 없다 이말만 했는데요.... 땅 없다고 그게 다 노예되는것도 아니고...
                    
고독한늑대 17-08-01 17:09
   
ㅡㅡ;;
아니 당연히 중국땅에 한족이 없을수없죠...
또 금나라는 한족을 굉장히 부당하게 대우했다는겁니다.
금나라 관리들은 대부분 발해인들과 여진인들이고요..
특히 핵심은 고려세력(신라출신)+발해인들이라고 봐야 맞습니다.

발해가 망하고 내투한 사람들도 보면 박씨가 1000명을 데리고 내투했다.
박씨가 3000명을 이끌고 내투했다.. 김씨가 몇명을 데리고 내투했다 이런 기록들이 있죠..

땅이 없으면 호족이 될수가 없죠.
                         
Marauder 17-08-01 17:27
   
글 내용중에 북방한족? 그런것 없습니다라고 하시길래... 금나라 출신에도 명색이 한족재상은 있던걸로 기억하고...
 금나라 멸망하고 몽골이 송나라를 침략하기 전까지는 몽골이 한족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뉘앙스처럼 변하는듯해서요.
아마 북중국인과 남중국인을 차별했다 뭐 이런 이야기가 말도안된다고 하신거같은데 제가알기로 족속도 족속이지만 금인과 송인으로 구분해서 금인으로 살던 한족은 송인보다는 대우가 괜찮았다고 들어서요.
                         
촐라롱콘 17-08-01 17:36
   
발해인들은 금나라 초기에는 한족들보다 상대적으로 우대받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는 맹안모극제에서 탈퇴되고, 산동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어

한족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으며... 서서히 발해인들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17:37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중국이 왜 송나라를 침략해요.. 송나라가 중국인데??
또 몽골이 한족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뤼앙스는 무슨 말인가요???
그러니까 그게 몽골이 기용했던 북방한족 운운하는게 과거 북송인을 말하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17:58
   
이건 뭐 골때리네 금나라가 중원을 정복하고 발해인과 여진인을 구분했나요????
한족과 다를바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arauder 17-08-01 17:58
   
오타나서 수정했네요... 중국이아니라 몽골루... 저는 북송인 + 금인이 포함된걸로 알고있어서요. 늑대님이 그걸 아니다라고 부정하셨으니까... 그에 관련된 자료를 가져오시는게 옳지 않을지... 대부분사람들의 생각도 그럴텐데요...
                         
고독한늑대 17-08-01 18:02
   
마라우더님 금나라는 송나라를 정복하고 송나라 황실과 백관 수천을 이주시켰다고 금사 완안앙전에 나옵니다.

금나라는 북송을 점령하고 그 지역에 모든 북송인들을 이리 저리 이주시킨 기록들이 있습니다.
어디지역은 어디로 어디 지역은 어디로..
그리고 땅을 여진인들에게 나눠줍니다.
자꾸 말을 돌리는데요.. 송나라 사람들을 이주시킨다는것은 재산을 몰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땅을 빼앗기 위해서 이주시키는것이죠..
그리고 여진인들에게 땅을 나눠준것이고요..
왜 자꾸 사람이 있다고만 하나요.. 당연히 남아있을수 밖에 없다니까요..
                         
촐라롱콘 17-08-01 18:05
   
와 완전 골때리시네요.....!!! ^^

금나라가 북중국을 장악하고 난 후에 발해인들이 토사구팽당한 사실 자체를

이제껏 모르고 계셨네요~~~ ㅋㅋㅋ
                         
고독한늑대 17-08-01 18:10
   
이건 또 뭔소린지 금나라에 발해인들이 토사구팽당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럼 황족이 팽당했나요?????
혹시 금나라의 세력 다툼을 두고서 그런말을 하는건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금사를 보더라도 스스로 함보는 신라출신이라고 밝혔지만 정체성을 발해인으로 가지고 있었는데요..
                         
Marauder 17-08-01 18:18
   
이번에는 단순히 사람있다고만 한건아니고 둘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에 끝나지 않을것을 직감하고 몽골인의 3계층에 북송인이 포함되었있다는 자료는 꽤 많은걸로 아는데 본인의 주장은 어디내용을 근거로 말하는것인지 알려달라는 뜻으로 말한겁니다. 가령 금을 칠때도 한족들 귀를자르고... 어쩌구했었나 이런 내용이 있냐는거죠.
 북송인이 금에서 어떤 취급을 당했든... 어쨌든 완전히 유목민족으로 남았던 몽골과 달리 금나라는 농경으로 전환되었고 몽골인이 금 내부의 한족을 일일이 선별해서 대우를 했을만큼 섬세했을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고독한늑대 17-08-01 18:20
   
몽골의 민족별 대응을 이야기 한것입니다.
그게 금나라를 정복할때 그랬다는게 아니고요.

또 님이야말로 원나라때 북송인을 기용했다는 기록이 어디있답니까??
마라우더님은 맨 아래 덩굴덩굴님의 글이나 보세요..
                         
Marauder 17-08-01 18:35
   
기용했다고는 못봤는데 애초에 3계층 자체가 벼슬을 못하는데 기용했다는 내용이 무슨 관련인지 모르겠네요. 그건 2, 3계층을 가르는거지 3, 4계층을 가르는건 아니잖아요.
또한 밑에 글은 봤는데 언급을 안했는데... 그런 의미라면 북송인 또한 금인과 같이 한인으로 분류되었을수도 있는것이죠.
 조선인들은 백정과 양반 평민으로 나뉘어있지만 만주인들이 포로로 끌고갔을때 그런거 신경 썼나요 어디. 물론 관료라면 신경좀 더썼을수는 있겠지만...
                         
고독한늑대 17-08-01 18:48
   
마라우더님 계층 등급 이런거 없었고요.. 그거는 추후에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일제가 식민등급을 만들기 위해서 계층 등급을 만들기 위해서 써먹던 논리죠..
그리고 후금이 끌고 갔던것은 만주에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것이고요..
후금의 국력을 만들기 위해서 백성이 필요한것이죠..
어차피 가서 만주족이 된것입니다.
                         
Marauder 17-08-01 19:01
   
거기에 백정 양반 차별안했듯 그냥 금나라 사람 한인이면 과거가 북송이건 원래 금이건 큰 차이가 있었을까 싶어서요. 제가 잘아는것도 아니니 그냥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뭐 아는사람이 있겠죠.
                         
고독한늑대 17-08-01 19:08
   
네 님 말도 맞는데요..
내 말은 금나라는 북송인의 재산을 몰수해서 이주시켰다는것이고요..
후금은 조선인을 데려다가 토지를 줬다는데 있다는겁니다.

한마디로 후금이 조선인을 데려간것은 금나라가 여진인을 중원으로 데려와 땅을 준것과 같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땅을 줬냐 땅을 빼앗았냐 차이겠죠..

일제가 조선인을 만주로 이주시키면서 땅을 공짜로 준다고 꼬드겨서 이주시켰죠..
경상도쪽에서 척박한데 살던 사람들이 땅을 준다니까 많이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것과 같은 논리인것이죠..
만주국을 세울때 국가 체계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가장 핵심이 백성이고 국민이죠..

그래서 만주에 흑룡강성쪽 조선족은 남도치들이 많다고 하고..
연변은 북도치라고하죠..
탈레스 17-08-01 15:39
   
층렬왕 아내가 쿠발라이 딸 아닌가요?
그 아들이 충선왕으로 고려왕겸 선양왕이였다죠
정욱 17-08-01 16:45
   
월래 한족따윈 없어요. 그냥 지나가 만들었어요.
덩굴덩굴 17-08-01 17:21
   
과거에는 하나의 민족으로 한족이라는 것이 없었고 중원 일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인 한인(漢人)만 있었습니다. 그러니 금나라 시기에는 금인이 한인이 되겠지요. 예를 들면, 금나라 황실은 편지에서 스스로를 한인이라고 자칭했습니다. 한족은 썩 후에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민족입니다
스파게티 17-08-01 18:33
   
댓글들 쭉보니까      과거에 있지도않던  종족인 한족    이거때문에  쓰잘대기없이

말꼬리가  길어진거네요
Windrider 17-08-02 00:33
   
⊙ 오히려 중국인들이 한국인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앞에서 말했다시피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중국 한족을 물리치고 중원을 점령했던 금나라의 여진족(훗날 만주족)이 신라인의 후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사(金史)에는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 금을 계승한 청나라의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루원류고'에는 금나라의 명칭이 신라 김(金)씨에서 비롯됐다는 내용까지 등장하는 형편이다.

청나라 황실의 만주어성(姓)'아이신줴뤄'중 씨족을 가리키는 명칭인 아이신은 금(金)을 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는 아이신줴뤄를 한자로 가차한 애신각라(愛新覺羅)에 '신라(新羅)를 사랑하고,기억하자'는 뜻이 담겼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6669&c1=03&c2=06

짱개들이 동북공정으로 정신승리해봤자 지들이 알고보면 별거아니라는 근거만 계속 나옵니다.
Windrider 17-08-02 00:34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은 바로 중국의 한족이다. 중국 인구 13억명 가운데 91%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9% 그리고 아시아 인구의 48.1%를 차지하고 있다. 한족이라는 명칭은 천하장사 항우를 제압했던 유방이 세웠던 한(漢)나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황제(黃帝)를 시조로 숭앙하고 있다. 황제가 염제(炎帝)를 정복한 뒤 이들 두 부락이 결합해 연맹이 되었고, 그리하여 오늘날 한족들은 자신들을 ‘염황(炎黃)의 자손’이라고 칭하며 화하족(華夏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중국에서 순종 한족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족의 개념은 심지어 DNA 검사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란저우 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 교수는 중국 서북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의 DNA 연구를 통해 과거 중국에서 중원(中原) 지역의 범주에 포함되었던 허난 성과 장수 성, 서부 및 안후이 성 서·북부 지역에 살았던 사람 정도가 중원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들이 비교적 순수한 한족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2천~3천년 전인 상나라와 주나라 시기에서만 타당했을 뿐, 이미 춘추 전국 시기의 진나라만 해도 그 민족은 융족(戎族)으로서 소수 민족이었다. 셰 교수는, 따라서 한족은 과거 한 시기의 지역적 구분에 해당될 뿐, 특정한 정의를 지닌 민족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28605

요약:한족 그런거 없다.
     
햄돌 17-08-02 01:35
   
수천년 착취당해서 한족의 주체는 없어진지 오랜데 이거 모르는 사람 있나
햄돌 17-08-02 01:35
   
북방한족이란게 있나요?

한족은 남방민족 아님?
국산아몬드 17-08-02 23:14
   
고독한 늑대님
"고려를 칠때 몽골이 대군을 몰고오면 오히려 몽골의 입장에서 독이 될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겁니다..
역사적으로 증명하니까요" 라고 하셨는데 몰라서 그런데 대군을 몰고오는것이 어떤 의미에서 독이 된다는 거죠?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증명하는거죠?
     
고독한늑대 17-08-03 10:30
   
우리나라는 특성상 산악지형이 많고요..
그러다보니 고대에는 농경보다 사냥위주의 삶을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활이 발달했고요..
전 세계 어느나라도 우리와 같이 군편제에 궁수가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월등한 활의 기술과..
또 우리 민족의 특성상 활은 정신수양이라고 해서 글을 배우는것 만큼 중요시 하게 여긴게 바로 활쏘기 문화라는겁니다.
이런 민족적 특성 때문에 수성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보유한것이죠..

그런데 이런 나라를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다???
그건 역대 모든 나라들이 다 대군을 이끌고 굴욕을 당해봐서 결론이 난 사안들이고요.
그래서 몽골도 기마병 위주로 찔렀다 뺐다를 한겁니다.
일단 보급로 차단될 가능성이 가장 크고요..
또 수성으로 돌입하면 쉽게 뚫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냥 기동성을 발휘해서 아무것도 모른체 무대응 상태에서 당할수 있게 약탈식의 공격만 감행한것입니다.

원나라가 진심으로 대군을 이끌고 모든 성들을 차례로 공략해 가려고 했다면 벌써 보급로 차단되고 수성하는 고려군들을 쉽게 뚫기 어려웠다는것이죠..
쉽게 말해서 지형상 보급지원하기 어려운 지형이라는것이죠..

원나라 이전에 몽골의 요나라가 망한 이유가 바로 고려를 전력을 다해서 침공했다가 대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려도 타격을 받아서 한동안 고전했지만요..
요나라는 무너져버렸죠..

그리고 고려는 무신정권시대였습니다. 당시에는요..
즉 사병들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사병들 일부가 조정에 반대해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바로 진압된것도 아니고 삼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삼별초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고려는 급속도로 약화되었다는것이죠..
          
국산아몬드 17-08-03 22:12
   
그런 이유라면 병자호란때 청태조가 10만 대기병을 몰고 조선을 침략해서 성공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귀주대첩은 활로 이겼다기 보다는 김종현의 중장기병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 몽골의 침략규모가 적었던 이유는 몽골병사가 부족했기 떄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몽골은 3군데서 동시전쟁을 수행중이었습니다. 남송과 유럽 그리고 고려입니다.

순수 몽골병사는 총 10만 정도 되는데 거대한 남송과 유럽에 겨우 4~5만 씩을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 1차 침입때 고려에 2~3만 정도 병력을 보냈으니 결코 적은 병력이 아니었던 겁니다

6차때 5천 정도로 적은 규모로 보낸 건 그만큼 남송과의 전쟁이 급박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고독한늑대 17-08-03 22:24
   
국산아몬드//
님 병자호란때 상황을 님이 모르고 있으니까 그러죠..
병자호란은 조선이 임진란을 거치면서 바닦을 기고 있을때고요..
임진란 직후에 들어온게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거기에 조선의 최북방을 지키던 장수와 조정의 마찰 때문에 그 최북방의 장수가 후금에 투항해버렸죠..
그런 연유로 후금은 아무런 재제도 없이 조선인 장수의 도움으로 지름길을 통해서 한양까지 순식간에 들어와 버린겁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사병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기이고요..
명나라가 조선의 침략을 두려워해서 조선에 물소의 뿔 수출량을 조절해서 수입을 소량밖에 할수 없었습니다.
임진란 이전까지만 해도 병력이 너무 부족해서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는데..
이것 마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진란을 치뤘습니다.
안그래도 없던 병력들을 대부분 잃고..
그것도 대부분 기마병력들을 조총에 모두 희생시켰죠..

그런 상황과 고려의 무인시대와 비교하면 안되죠..
                    
국산아몬드 17-08-04 21:51
   
제가 이괄의 난도 모른다고 생각하나요? 정말 너무하시네.
게다가 무신정권시대 군사력은 150년전의 요나라를 물리쳤던 현종시대에 비해 엄청나게 약해졌어요. 병자호란때 군사력과 별 차이 없었습니다
강감찬장군, 윤관장군시절 20만을 쉽게 동원하던 군사력이 동선령전투,안북성전투에서 겨우 1~2만명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나마 군사를 절반이나 잃게 되자 대규모 전투는 벌일 생각도 못하게 되죠.

그리고 시간이 아까우니 논쟁은 이쯤에서 관두죠
                         
고독한늑대 17-08-05 11:35
   
아몬드님 무신정권시절에는 솔직히 조정과 무신정권과의 대립으로 군사력이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국내 여론 자체가 무신정권에 대한 반발감이 컸고..
무신정권을 걷어내기 위해서 조정에서 오히려 몽골군을 끌어들인 상황이라고 봐야 맞습니다.
게다가 무신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사병을 내놓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임진란직후와는 군량미 상황이라던지 경제상황이 비교가 되지 않죠..
                    
촐라롱콘 17-08-05 08:02
   
[[임진란 직후에 들어온게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거기에 조선의 최북방을 지키던 장수와 조정의 마찰 때문에 그 최북방의 장수가 후금에 투항해버렸죠..
그런 연유로 후금은 아무런 재제도 없이 조선인 장수의 도움으로 지름길을 통해서 한양까지 순식간에 들어와 버린겁니다.]]
.
.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서로 헤깔리고 계시네요...^^

정묘호란을 일으킬 당시의 여진-만주족의 국호는 후금이고
병자호란을 일으킬 당시의 만주족의 국호는 청나라입니다!

그리고 후금의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은 3만규모의 비교적 적은 병력이었기 때문에
(이 제한된 병력으로 가도와 청천강 이북 해안지역에 주둔한 명나라 모문룡군까지
제압해야했기 때문에...)
한양까지 입성하지는 못하고 예성강 인근의 황해도 평산까지만 진출하고 강화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위의 국산아몬드님 밀씀대로 고려는 무인시대로 접어들면서 군사력이
폭망하게 됩니다만...?? 특히 최충헌 집권기에 정규군도 아닌 거란족유민들을 상대로도
이를 제압하지 못해 몽골-동진국 연합군을 불러들어와 훗날 지긋지긋한 몽골침략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만...??
                         
고독한늑대 17-08-05 11:45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무슨 몇백년 걸린듯이 말하는군요..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기간입니다.
몽골항쟁때도 민간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한 지역에 민간인들이 뭉쳐서도 몽골군을 대파시키기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명나라 또한 임진란 이후 병력을 보낼 능력이 없어서 쩔쩔매던 시기입니다.
그런 상황하고는 천지 차이죠..

대규모 전투는 가장 핵심이 군량미입니다. 이 군량미 확보가 가장 핵심이라는것이죠..
625때 국민 방위군을 모집했지만 친일파들의 부패로 인해서 국민 방위군은 전투한번 못치뤄보고 전쟁의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봤습니다.

또 거란족의 유민요??
유민이 아니라 거란군이 몽골에 밀리면서 고려로 들어왔고.. 고려는 몽골과 강화관계를 맺고 함께 거란을 마무리 한것입니다...
유민은 내투한 사람들을 유민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 몽골사신이 돌아가던중 압록강에서 살해당하면서 몽골은 그를 빌미로 고려와의 강화를 깬겁니다.
왜곡해서 비약하려고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고려시대에 병력이 모이지 않았던 배경은 권력의 분산으로 인해서 서로 사병을 내놓지 않았던데 있었고요..
대규모 전면전을 치룰경우 분열된 고려의 권력체계를 통합시켜주는 역활을 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맞습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경우에는 임진란으로 인해서 나라 자체가 피폐해진 상황인겁니다.

명나라 또한 임진란으로 피폐해진 틈을 타서 후금이 성장했고요..
요동 총사령관이 군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와서 걸레가 되어버렸으니..
후금으로썬 세력확장의 절호의 기회이고 성장의 배경이 되었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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