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랑군의 통치방식은 자유로웠으며 한반도의 토착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주장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갱단들에게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들도 아는 겁니다.
중원에서 5개의 왕조가 교체될 때, 바다 건너 한반도에 낙랑군이 400년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은 ..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사군이 본국의 지원없이 자립했다는 식의 논리를 새롭게 만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논리가 정말 사실과 부합하는가?
저의 대답은 "아니다" 이올씨다.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낙랑군의 통치방식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낙랑군의 통치방식이 엄했는지 자유로웠는지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들의 통치방식이 자유로웠다고 말하는 사서 기록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낙랑군의 통치방식이 자유로웠다는 주장은 사료에 근거한 '팩트'가 아니라 그저 '추측'에 불과하단 것입니다.
2. 한사군은 중국의 군사기지였다.
다음은 <삼국사기> 고이왕조의 기록입니다.
가을 8월, 위(魏)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삭방태수 왕준과 함께 고구려를 쳤다
秋八月 魏幽州刺史毌丘儉 與樂浪太守劉茂朔方太守王遵 伐高句麗
기록에 따르면 당시 위나라는 유주,낙랑,삭방의 태수들과 함께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이는 낙랑군과 대방군이 군사력을 갖추고 중국의 군사기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중앙의 통치방식 아래에 놓아져 있다는 뜻입니다.
낙랑군의 통치방식이 중앙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여러 사서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한사군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기지 역할을 하는 중국 동쪽 변방의 군현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앞서 말했듯, 낙랑군의 통치방식이 자유로웠다고 말하는 사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3. 상식
만약 한사군이 본국의 통치방식에서 자유로웠다면 진작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거나 주변국가들에게 점령당했을 것입니다. 본국의 지원이나 군사력 없이 바다 건너 400년 간이나 한반도에서 버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낙랑군은 고구려를 견제하는 중국의 군사기지입니다. 중국 변방의 군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결론
갱단들은 한사군한반도설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괴상한 억지논리들을 갖다 붙여 한사군이 본국의 지원이나 군사력 없이 400년 동안이나 자립했다는 괴논리를 만들어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한사군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 창조경제에 이은 창초역사 ㅎㄷㄷ )
사서를 보았을 때 한사군은 요동 내지는 요서에 위치하여 중국의 군사적 기지 역할을 하는 동쪽 변방의 군현입니다. 아무리 통치방식이 자유로웠다고 한들 근본적으로 [군현]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요.
근거가 없는 주장은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