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왕 공격에 밀리자 요서지역에 있던 낙랑군의 실력자 장통이 요서 북쪽에 있던 모용외의 회유로 당시 낙랑군 사람들 수천여명을 데리고 모용외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 평양에 있던 낙랑군이 요서 모용외 지역으로 훌쩍 이치된 것이다?
평양과 요서간의 거리가 수천여명의 피난민을 데리고 무주공산처럼 이동할 수 있는 중립지대였나요?
육로로 가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되고 배로 간다고 해도 그배 백수십척은 어디서 구할 것이며 설사 배를 구한다한들 고구려 수군이 백수십척의 배가 지나가는 것을 두눈 뜨고 그냥 지켜본다라?
역사를 공상소설로 만드는 그 탁월한 망상력만은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낙랑군은 멸망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대폭 세가 위축된 채로 사료상 6세기까지는 요서지역에 잔존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