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주변 국가의 관계를 알려면
당시 조선, 몽골, 여진, 거란의 역사 배경을 알고 봐야합니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요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요나라를 멸망시킨게 여진의 금나라입니다.
금나라는 중원 북부로 진출해 몽골에 이이제이 정책으로 몽골을 분열시켰고,
금에 속해있던 거란족은 몽골과 협력해 금나라를 무너뜨리는걸 도왔습니다.
몽골의 원나라는 홍건적이 일으킨 명나라에 밀려 초원으로 돌아갔고,
이시기에 원과 밀접하게 지냈던 고려는 쿠데타로 조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병력과 부하장수들 다수가 여진족입니다.
당시 몽골의 적은 명이었지만
내부 혼란으로 힘을쓰지 못했습니다.
군사력은 있었지만 치고나갈 힘을 모을수 없었다는거죠.
징기스칸의 선조를 목마에 못박아죽인게 금나라고 이 금나라를 멸망시킨게 몽골입니다.
신라와 백제처럼 역사적으로 은원이 꼬여있는 관계였고,
약소 세력이었던 누루하치는 명에대한 복수를 위해 연합할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누루하치는 몽골 부족들과 혼인동맹을 성사시키고 만주의 여러부족들과 몽골족까지 끌어들여 후금을 세웠습니다.
조선은 고려시절부터 여진과 우호적이었습니다.
고려와 거란이 싸울때 여진은 계속 고려의 편을 들었고,
고려, 조선 시대에 여진의 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고려, 조선인의 여진지역 이주도 있었습니다.
금이 건국된후 고려와의 관계 재정립도 충돌없이 되었고,
금과 국교를 맺은후 고려는 남송을 멀리하고 금과 친하게 지내며
여러 분쟁에서 금이 고려에 양보하는등 금도 고려를 우대했습니다.
그후 몽골에 금나라가 멸망하고 여진족의 중심지역을 위임 통치한게 고려 충선왕이었지만,
충선왕이 권력을 나누어 물려주어 심양왕의 통치지역이 고려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원의 패퇴 고려의 멸망후 여진지역은 조선을 따르는 부족과 명을 따르는 부족으로 나눠졌습니다.
여진지역은 조선과 명의 완충지대같은 성격이 되었고,
초기엔 조선에서 명으로 돌아서는 부족은 조선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기도 했었습니다.
여진지역에는 조선계도 많이 살고있었습니다.
임진왜란에 명의 원군으로 들어온 이여송이 조선계 명나라 사람이었고,
그 부친 이성량이 명나라 요동총병으로 누루하치의 조부와 부친이 죽었을때 그곳에 있던 사람입니다.
여진의 금,청이 지리적으로 더 가까웠던 고구려의 명분을 내세우지 않고 신라를 내세웠던 이유는,
고구려를 잇는 정통인 고려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건이 칭한 고려는 이미 고구려시절부터의 정식 국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