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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1 17:32
[일본] 왜와 우리의 쌀생산과 쌀소비 등
 글쓴이 : 윈도우폰
조회 : 1,520  

왜가 우리 보다 쌀생산량이 많았다 또는 쌀생산량이 높은 이유로 기후 등의 얘기를 하던데...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을 듯

1. 우리가 먹는 쌀을 자포니카라고 하는 것은 왜가 우리 나라보다 좀더 일찍 그리고 더 잘 알려졌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입니다. 롱그레인의 인디카와 숏그레인인 자포니카 명칭과 수확량 및 원산지랑은 상관이 없습니다. 자포니카를 먹는 곳은 우리랑 왜, 그리고 만주지역 뿐입니다.

2. 쌀 생산량은 기후의 영향도 있지만 파종법에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왜가 우리 보다 이양법을 조금 먼저 도입하여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높았던 적도 있지만...왜의 경우 절대 농지가 부족해서 수확량은 우리 나라에 못 미쳤습니다.

3. 우리 나라는 여말선초 때 이양법이 확산되기 시작하지만 본격적인 이양법 도입은 왜보다 쪼금 늦었습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탓도 있습니다. 왜와 달리 모내기 하는 싯점에 추위가 찾아오는 온대기후였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이양법에 따른 모내기 리스크가 커서 좀 늦게 확산되었는데 이양법을 몰라서 확산이 늦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이양법과 직파법에 의한 수확량 차이는 기후 차이에 의한 수확량 보다도 더 크지요.

4. 왜가 우리 보다 쌀 생산량이 떨어지는 이유는 일본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혼슈우 지방에 논농사 지울 땅이 별로 없습니다. 왜의 고속철(신깐센) 같은 것 타고 가다 보면 알 수 있지요...그냥 바다 옆에 약간의 농지가 있고 그냥 다 산입니다. 왜의 땅이 우리보다 넓어도 농지가 넓지는 않지습니다.

그리고 왜의 도시들은 평지에 있는데, 우리 나라 같으면 농사지을 땅에 도시를 만들어서 야들의 절대농지는 우리보다 많이 부족합니다. 간토지방(동경)은 임란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습지였고, 이에야스가 하바마쓰에서 영지교환으로 간토지역에 가면서 개간이 이루어지면 에도시대 들어 논농사 지을 땅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5. 왜가 우리보다 쬐끔 먼저 이양법을 도입하여 단위당 생산량을 높이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왜는 농기구가 목제였습니다. 반면 우리는 쇠이고요...왜의 경우 무기 외에는 철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다 목기인데...목제 농기구로 논갈이 하다보니 한계가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만(이건 근거를 확인 못해서^^) 

6. 왜의 인구수와 우리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소비량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추정하여 비교하기도 하는데...여기에는 식사량을 고려하지 않은 추정이라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 왜인보다 쌀 소비량이 세 배 이상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쌀 소비량은 현재 한국인의 쌀 소비량의 두 세배가 넘습니다. 제 경우 어렸을 때 밥공기가 확산되었는데...그 전의 밥 그릇은 현재 공기그릇의 세 배 이상됩니다. 왜인들이 키가 작은 이유는 한마디로 못 먹어서 유전이 된 이유도 있지요. 그런 점에서 쌀 소비량에 많은 인구수를 곱하여 왜의 쌀 수확량을 계산하는 것은 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왜가 우리 보다 쌀생산량이 높았다는 것은 낭설입니다. 최소한 간토지방이 개간되기 전 즉, 임란 전에 우리보다 쌀 생산량은 높을 수 없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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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7-07-11 17:53
   
왜인보다 1인당 쌀소비량이 3배라는 것은 무슨 근거인가요.....???

당시 우리나라도 삼남지방과 경기도 이남이 상대적으로 밭보다 논의 비율이 높았을뿐
강원도와 현 북한지역은 논보다 밭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을 텐데요~~~

다시말해 적어도 조선시대의 강원도와 현 북한지역 사람들은 권력층-부유층에 속하지 않는다면
일반 평민 이하는 쌀로 끼니를 떼우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케이스였을텐데.....

그리고 상대적으로 논의 비중이 높은 삼남지방과 경기도라 하더라도 일반 평민 이하 계층은
수중에 쌀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훨씬 저렴한 보리나 다른 잡곡으로 교환하여 질보다는 양을
선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전반적으로 삼남-경기도 사람들이 강원-북한지역 사람들보다 쌀의 섭취량 자체는 많았겠지만....
     
꼬마러브 17-07-11 18:26
   
마사모토 키타지마(北島正元)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1인당 쌀 생산량

에도시대 일본

1700년의 농지 면적은 282만 헥타아르... 이 중 60%가 논이라고 한다면 논의 면적은 169.2만 헥타아르.. 그리고 인구는 28,287,200명, 에도시대 단위 면적당 쌀생산량 190kg/反을 고려하면
1인당 쌀 생산량은 대략 0.758석/反

여기서 세금 50%를 공제하면 0.379석/反...
(참깨의 기름과 백성은, 짜면 짤수록 나오는 것이야...!!!)

조선시대 한국

<탁지전부고>에 따르면 1744년 전국의 원장부는 1,401,135결. 경제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은 황무지를 뜻하는 유래진잡탈이 395,864결. 호조의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전국의 면세는 191,561결. 한발이나 홍수로 피해를 입어 그 해에 한하여 면세의 혜택을 받는 경지인 급재가 41,484결. 아지막으로 원장부에서 유래진잡탈과 면세와 급재를 제한.. 과세대상 토지가 854,303결

총 50만결!

<목민심서>에 따르면 논 1결의 생산량이 벼 600-800두이니..
중간값인 700두로 계산했을 때
조선시대 벼의 총생산량은 2,345만 석(1석=100리터)
이걸 일본석으로 환산하면 약 1300만석이니..

- 인구 1300만이라 가정했을시 1석/人이 됩니다.
(세금 계산 안 함)

앞서 에도시대의 쌀생산량이 0.379석/反  이므로
에도시대 농민들의 1인당 농지면적이 0.598反이니 결국 0.228석/人..

이를 비교했을 때 당시 조선사람이 니혼진보다 3배 이상 잘 먹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사실상 일본은 고대 한반도계 도래인이 농업기술을 전파해준 이후.. 농업생산량의 발전이 없었음
          
촐라롱콘 17-07-11 20:43
   
꼬마러브님이 올려주신 댓글에 나타난 조선의 농지가 전부 논이라는 말씀인가요....???

조선후기인 18세기 무렵에도 전국의 농지 가운데 논이 차지하는 면적은 1/3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논에서 생산되는 쌀이... 주로 밭에서 생산되는 여타 곡물들에 비해서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월등하기 때문에...
전체 곡물생산량 측면에서는 쌀이 대략적으로 45% 가량을 차지했다고는 합니다만.....
               
꼬마러브 17-07-11 21:08
   
자료를 들여다보니

조선총독부통계연보 (1910년)에 따르면

출세결수의 내역
논 516,039결, 밭 472,787결, 火田 1,864, 宅地 31,315, 草坪 3,400, 雜地 2,332, 합계 1,027,736결

이라 나오네요.

조선 성종시기에 총 결수가 150만결을 넘었고.. 임진왜란 이후 이를 회복-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결수를 참작한다면

제가 위에서 인용했던 마사모토 키타지마(北島正元)교수의 견해처럼 1700년 당시에 논 50만결이 나올 듯 합니다.

실제로 정조시기 <탁지지>에 따르면
논이 40만결 밭이 50만결 이라고 나오는군요.

http://m.blog.naver.com/okyes0612/187112406

무슨 자료를 이용하든 간에 1인당 쌀생산량을 보았을 때 조선이 에도시대의 일본보다 월등히 위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보입니다.

일단 세금부터 차이가 나는걸요.
               
4번째정지 17-07-12 12:07
   
아직도 여기서 왜인의 시각으로 가면쓰고 이러고 있네요.
     
윈도우폰 17-07-12 00:55
   
얼마 전까지만 해도...그러니까 60년대말까지만 해도 서울 등 도시 지역의 밥그릇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공기그릇에 2배반 정도 크기이고...왜식집 밥그릇 대비 세 배는 더 큰 용량입니다. 어쨌든 그 당시 썼던 놋그릇이나 사기 그릇들을 보면 지금보다 엄청 큽니다. 그 밥그릇에 쌀밥만 먹지 않았겠지만^^ 서울은 두 세끼지만...시골은 참까지 하루 다섯끼(농번기 막걸리까지 포함) 정도 먹었지요...물론 농한기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없는 통계자료로 소비량을 추정하는 것보다 그냥 밥그릇 사이즈만 봐도 식사량은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강원도와 북한지역은 논농사 지을 땅도 별로 없지만 동시에 삼남지역에 비하면 인구가 얼마 안 되지요...지금도 얼마 안 되지만 조선시대 때는 사실 그냥 빈 땅 수준이었는데...인구수로 함경도 지역과 삼남지역을 비교하기는 그렇지요 .. 그런 점에서 아무리 행정구역으로 같은 급이라고 해도 인구가 적은 지역의 쌀 생산량은 별 고려사항이 아닐 것입니다.

생산과 소비는 다르지요...많이 생산해도 쌓아두고 썩어 문드러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봉기도 일어나고 그런건데... 하지만 강원도같은 지역에서는 쌀 대신 감자먹고 살면서 사냥으로 단백질 섭취도 좋았을 터이니 칼로리에서는 쌀 못먹어도 아마 비등비등했을겁니다^^
Marauder 17-07-11 18:10
   
2배정도일듯 합니다. 정확한건 아닌데 통계가 확실히 남아있는 일제시대 초기가 1.6배정도였던 기억이 있네요. 1.3배인지 둘중하나인데 기억이...
북창 17-07-11 18:56
   
일본이 한국보다 이앙법이 빨랐다는 근거는 확실히 있는건가요?
     
Marauder 17-07-11 20:07
   
고려때 도입됬다는 설은 문장 하나에 근거한 소설이라고 알고있지만 조금 일찍 됬을거라고 하긴 하더군요...
          
북창 17-07-11 20:37
   
이앙법이 자체 개발이면 그럴 수 있어도...이게 건너온거면...일본이 먼저일 수가 없을거 같은데...
     
윈도우폰 17-07-12 01:12
   
이양법이란게 뭐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비가 많이 오거나 관계시설이 잘 되어 물이 풍부한 지역 즉, 중국 양자강 이남 아열대 지역에서 발전된 농법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 원나라 시기 중국이랑 교류하면서 이양법을 알고는 있었지만...문제는 우리 나라는 중국이나 왜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나라가 아니지요...그래서 조선초까지만 해도 조정에서 이양법에 의한 농사를 금지시켰다고 하지요...모내기 할 때 비가 안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이양한 것 죽어버리고 그래서 못하게까지 했다고 하지요...어쨌든 제 때 이양을 못하면 한 해 농사를 완전 망치기 때문에...

왜가 우리 보다 이양법 도입이 조금 빠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왜가 관계농법 같은 것이 발전해서가 아니고 이양할 수 있을만큼 강수량이 풍부(특히 4월경 쯔유라고 죽창 비가 내리는 시기 등)했기 때문이지요.

삼국시대는 왜가 우리를 거쳐 문물을 도입하였지만...여말선초 시기에는 왜가 우리보다 매우 할동적이었습니다. 가장 활동적인 왜인이 바로 그 유명한 왜구... 이들은 약탈하러 중국에 갔다가 이양법도 배워오고 그런 것 같은데 ...하여간 이 당시 왜인들은 상업을 위해 말레이까지 배타고 나갈 정도였으니 우리 보다는 좀더 많이 본게 있었던듯...
뭐꼬이떡밥 17-07-11 23:37
   
묵은 떡밥이 또,,,, 라고 해서 왔더니

굳이 댓글을 달 필요가 없군

이제 좀있으면 은광 이야기 나오겠지

그리고 더 좀있으면

근세 경제력 나올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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