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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28 23:14
[대만] 대만은 왜 혐한의 길로 돌아섰는가?
 글쓴이 : 객님
조회 : 8,021  

오늘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알트탭을 눌러가며 틈틈히 5시간 가량 썼던 글을 날려먹으니 의욕이

조금 떨어졌지만, 많이 이들이 대만이 한국을 왜 싫어 하는가? 를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겉으로

나타난 단편적인 사건만을 가지고 추론하고 자세히 알려고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에 다시 글을

씁니다. 또한 장문의 글이 읽기 지겹고 순간 덜컥 부담부터 되서 읽지 않는 분이 많다는걸 알지만

단 한분이라도 내가 가진 생각에 동조를 하거나 혹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다른 의견을 달아

주시면 나 또한 "아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구나" 라고 또한번 생각하게 되며 그것으로 서로 지식과

상식에 대한 윈윈 전략이 됨으로 이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역사적 사건과 배경, 그리고 대만안에서

갈라진 인식, 또한 글쓴이(나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토대로 작성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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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대만은 왜 한국의 아이돌과 문화를 표절하면서도 한국을 욕하며 일본을 더 좋아할까"

라는 생각을 할것입니다. 그리고 또 의아해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화를 표절 혹은 표방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고, 그러면서 욕한다는 것은 인식의 차이나

어쩌면 왜곡된 정보 전달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궁금증으로 대만에 대해 조사하면서

더욱 많은 의구심, 그리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고정적인 관념처럼

인식하고 있는것 하나중에 제국주의=사회주의=친일= 나쁜것, 이라고 인식하고

민족주의=자유민주주의=반일= 좋은것, 이라고 인식하는것이 평균적인데 이러한 인식이 모든 나라

에 적용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대만인을 통해 알았습니다.


어느정도 대만의 역사를 아시는분들은 대만이라는 나라가 한국과 매우 닮았다는것을 느낄것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으며, 민족이 이념적 갈등으로 나뉘었고, 4.19혁명과 광주사태를 경험

했고 대만은 2만명이나 학살되는 2.28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나라 내에서

지역간 갈등, 그리고 대만에서는 성분간의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서민출신으로 법을 전공하고 인권을 위해 힘썼으며 기득권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고, 기득권의 세력다툼에서 탄핵이 되며, 임기가 끝난후 각종 비리와 의혹

으로 xx을 선택한 대통령이 있다면,

대만에서는 서민출신으로 법을 전공하고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며, 타이베이 시장을 하면서 대만

서민의 희망이 되어 대통령이 되고, 임기중 탄핵이 될뻔하는 위기도 맞으며 임기가 끝난뒤 각종

비리와 비자금 의혹으로 투옥중인 총통이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나 이모님되시는분 세대에게 물어보면 중국본토에 있는 중국인은 짱깨라 욕하면서도

씻지도 않는 지저분한 사람들, 때놈, 온갖 안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대만에 대해서는

나쁜인식보다는 좋은 인식을 가지고 계신분들이 많습니다.

대만은 70년대와 80년대 아시아의 신흥경제국, 즉 한국과 같이 아시아의 용이라 불리며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합니다. 한국과는 이념적으로 동일하고 위로는 사상이 다른 분열된 또다른 민족이

있으며, 식민지 지배도 경험했다는 점에서 많은점이 통했죠.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결국 "지배층"의 인식이였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인식은 어떨지

나 스스로가 한국의 국민이다보니 민족주의적 성향이 없다는 것을 배제할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우리나라는 어떤것인지 정확한 답을 내릴수가 없습니다.


대만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에 대만의 역사를 이야기 식으로 쭉 풀어놓은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글의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적 내용이니 만큼 개인적 판단이나 사견을 최대한 배제한 글이니

만큼 지루하셨을테지만 이제부터는 사견도 첨가 하겠습니다.


대만이라는 땅은 15세기부터 단 1년도 식민지의 지배를 벗어난적이 없는 땅입니다. 네덜란드부터

명나라 정성공- 청나라 - 일본 - 그렇게 현재까지..여기서 중요한것은 대만이라는 땅에서 쭉 살아

왔던 정착민들 즉 본성인 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400년이라는 시간동안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국가의식"  이라는 정체성이 부족했다는것입니다.

그러나 대만의 식민적 지배가 대만땅에서 살아온 본성인에게 많은 인식적 타격과 혼란을 가져온건

청나라 말기와 일제 통치시대, 그리고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부터입니다.


역사적 사건에서도 설명했지만 청나라 지배 212년동안 대만이라는 땅은 반청복명의 기치를 걸고

정성공이 본토 수복을 위한 최후의 보루 기지였던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본토와 떨어진 섬이라서

인지 청나라에게 있어서는 명나라를 추종하는 잔재 세력을 없앤뒤 지금의 표현으로 따지면

본토에서 가난한 사람들 혹은 죄를 지은 관리들의 귀향처 같은 곳으로도 활용되곤 했습니다.

그것은 212년 동안 세계적으로 산업혁명이라는 흐름을 떠나 지정학적 중요성을 모르던 무지에서

온 결과라고 볼수있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전 세계는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촉진되었고 일찍이 개화를 한

국가들간에 노골적인 식민지 쟁탈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뒤늦게 개화에 참여했

지만 동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룩한 나라였습니다.

조선 말기 쇄국정책을 펴 발전에 늦은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던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에게 동시에 원군을 요청하게 됩니다.

두 강대국의 군대가 조선에 유입되고 동학운동은 두 나라가 진압을 시도하기도 전에 세력이 약해져

조선은 철군은 요청하지만 조선에 군을 들이댄 두 강대국은 조선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충돌하게 됩니다. 이것이 청일 전쟁이고 청일전쟁에 패한 청나라는 이토히로부미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면서 대만을 일본에 넘겨주게 됩니다.

대만인(갓 중국본토에서 유입된 중국인 제외)들에겐 일본은 자신의 나라를 잃었다는 인식보다는

통치자가 바뀐것밖에 안되었습니다.(대통령이 바뀐 정도) 그러한 이유는 15세기에 명나라 사람이

조금 유입되고 200년간 청나라 사람들이 조금씩 유입되었었지만 그 이전부터 대만이라는 땅은

고산족이라 불리던 남도어계 폴리네시안 원주민이였고 그들이 1만년 가량 대만이라는 땅에

살아왔기에 본토 중국과 언어가 통하는 본토 중국인보다 고산족의 숫자가 많았기에

그 대만인들에겐 일본은 하나의 통치자 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통치는 대만 땅 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통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도로와 학교 그리고 사회 각종 인프라 건설을

하였기에 일본통치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일본의 내선일치, 즉 일본의

언어와 일본화가 되는것에 있어서 조선이나 다른 식민지 국가의 민족들과는 달리 반발이 적었으며

반발이 적었던것 만큼 탄압도 적었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며 아시아에서 정복사업을 하던 일본에게 있어서 조선은 만주로 진격하는

일본군의 군수전초기지였고 그렇기에 조선에서도 전쟁을 철도 및 사회 인프라를 구축했죠,

또한 조선에서는 징집도 징용도 많았지만 대만은 중국의 해상을 견제하고 동남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군수전초기지로 쓰였기에 사회 인프라도 그 중심에 맞춰 구축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주에서 지상전에 쓰일 징병을 굳이 대만인을 착출해서 데려갈 필요보다는 대만은 대만

내에서 인프라 구축과 동남아로 진출하는 해군전초기지성 성격이 있었기에 대만인에게 있어서

일본은 마냥 좋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사상 가장 좋은 통치자였습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프랑스,영,소의 연합과 이탈리아, 독일, 일본 연합과 대립할때,

대만에게 있어서 일본이 승리하는것이 좋은것인가? 미국진영이 승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군수전초기지였으니깐요

1945년 미국의 핵공격으로 일본이 투항하고 일본의 식민지국가는 자동적으로 해방을 맞이 하지만

대만은 본토 사람들 보다 본성인이 많은 땅이였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 동안 많은 이들이 일본말을

쓰는 이상한 땅으로 되있었습니다.

미국은 일본 천황의 항복을 받으며 무장을 해체하고 식민지 아닌 반 식민지처럼 미국의 통제를

받으며 중국 본토는 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과 중국

그리고 동유럽과 외몽고에 공산주의 정권의 영향을 퍼트렸습니다.

따라서 일본이 패망했을때 중국 본토는 국책이라는것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모택동의 공산당

정권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으로 분열되 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공산국가 진영의 확산 방지 뜻에 따라 대만은 일본에게서 장개석의 국민당정권으로 이양

됩니다. 그러부터 대만은 국민당정권 통치하에 있으면서 1946년부터 시작된 국공내전은 49년

공산당정권인 모택동의 승리로 끝날때까지 장개석의 국민당정권에게 숱한 탈취를 당하게 됩니다.

49년 국민당 정권은 완전히 대만으로 쫒겨나게 되고, 명나라 정성공처럼 반청복명의 기치를 걸고

다시 본토를 수복하겠다는 칼을 갈면서 패잔병처럼 대만으로 쫒겨난것입니다.

그리하여 49년 본토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대만에서는 국민당의 자유중국이 수립

됩니다.

45년에 장개석과 유입된 200만명이 넘는 중국인을 외성인이라고 하는데 국민당의 이 외성인이

대만에 도착했을때 대만은 본토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또 많은 이들이 일본말을

쓰는 이상한 땅이였습니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학교 및 모든 기관의 장을 국민당 외성인으로 교체하고 군림하기 시작합니다.

대만 본성인에게 있어서 국민당 정부는 일제 식민지 통치자보다 더 무질서 하고 악랄한 수탈을

일삼는 외래의 정복자 뿐이였습니다.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던 대만 본성인의 시각에선

악랄한 수탈을 일삼는 자유이념의 국민당정권과 자신들에게 좋은 인프라를 건설해주고 좋았던

통치자를 무장해체 시키고 반식민지 처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과 같은 이념이기에

국민당과 미국이 오버랩되고 자신들의 처지와 일본인의 처지가 동일시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수의 본성인과 소수의 외성인 간의 갈등이 점차 생기고 국공내전으로 인하여 국민당

정권에게 일본보다 더 심한 탈취를 당하던 본성인들에게 47년 2.28 사건

(http://ko.wikipedia.org/wiki/2%C2%B728_%EC%82%AC%ED%83%9C)이 터지면서

대만은 49년부터 87년까지 세계최장의 계엄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사건으로 본성인 2만명이 학살되고 대만은 본성인과 외성인 간의 뿌리깊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대만은 국제사회의 눈으로 봤을때는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지양하고 있었기에

국제사회로 부터 공산국가와 항거하여 싸운 이미지를 인정 받았고 UN의 상임이사를 하였지만

내부적 본성인에게 있어서 대만은 계엄령하의 고립된 폐쇄국가였습니다.


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

하게 됩니다. 79년 장개석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집권하게 되는데 본성인의 시각에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변질된 공산국가나 왕족국가처럼 세습하는것에 대한 외성인에 대한

노골적인 붊만이 표출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점차적 단교를 당하며 고립되는 대만을 경제적 부흥과

더불어 발전 시키려면 다수의 외성인의 지지가 필요했기에 84년 장개석의 아들은 본성인 출신인

이등휘를 러닝메이트로 삼아 부총통급으로 임명하고 본성인과 외성인의 융화를 꾀하려 합니다.

그러나 400년 이라는 시간동안 한번도 국가 의식이 없었던 본성인들은 최초로 국가의식을 가지자는

생각을 하게되어 계엄령하에서 86년 130명의 본성인이 민주진보당를 창당하고 장개석가문에 반대

하면서 국회에서 의석을 확보하게 됩니다. 88년 장경국이 사망하고 이등휘가 그 뒤를 잇게되면서

민진당은 본성인의 권리와 대만의 자주적 독립을 외치게 되지만 기존 국민당의 기득세력을 넘기

에는 부족했습니다. 1995년 이등휘가 미국을 방문하며 호전적인 외교를 펼치자 중국본토는 대만을

고립시키고 대만 민중의 마음을 흔들 요량으로 대만 해안 가까운곳에 집중적인 군사 훈련을 실시

하게됩니다.

경제적 개방은 했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선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 이득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기에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

했지만 속으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잠재적 경쟁자로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대만이라는

땅은 영원히 잠기지 않는 거대한 항공모함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구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장착하여 미국이 쿠바를 봉쇄령 하듯이)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세계 경찰관으로서의 액션을 취하면서 대만 주변에 전함도 파송하고.

이러한 고조된 분위기속에서도 이등휘는 96년 대만 최초로 직접선거에서 승리하지만 99년 최악의

지진강타로 200명이 사망하고 도시가 파괴 되었을때 이등휘 정권은 대만 내부의 수습보다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끊이질 않았기에, 중국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않고 구조를 돕기위해 대만으로

입국 하는 어떤 나라도 먼저 중국 정보의 허가를 받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에 대해 전 세계 인도주의적 조직들과 그 외 나라들은 달갑지 않지만 동의를 하게

되고. 이로서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하에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으며 대만의 목소리는

국제 사회에 힘을 잃게 되었다. 2000년까지 이등휘는 대만 국정국정을 주도했으며 대만의

독립정신을 고취 시켰습니다.


내부적으로는 국민당에 의한 계엄령하의 불안한 국정, 그리고 소수의 외성인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불평등한 사회, 이러한 요소로 인해 본성인의 민진당은 더욱 자주적 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79년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진수편은 90년대 타이페이 시장을 하며 본성인의

아들, 이라는 타이틀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2000년 선거때 국민당과 선거에서 부딪히지만

YS와 DJ가 분열하듯 국민당의 송초유가 연전과 분열하여 친민당을 창당하고, 결국 대선은 3파전

으로 되며 송초유와 연전의 분열로 인해 진수편이 총통이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다수의 본성인의 입장에서는 소수의 외성인 국민당이 너무도 싫었고

국민당이 초기에 많은 착취를 할때 같은 노선에 있었던 미국이 좋아보일리가 없었습니다.

대만에게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은 미국의 또다른 동맹국인 일본과 다른 시각의 동맹국이였습니다.

대만에게 있어 남한의 정권은 자신들은 착취했던 국민당이 지원하던 상해임시정부의 계통을 세운

정권이고 자신들은 이해하기 힘든 끝없는 반일의 국가 입니다.


미국이 단교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대만은 적극적인 해외 투자와 기업활동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지만 일본과 많은 량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경제교류가 활발했기에 일본과의 단교에 있어서도

많은 불만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92년 한국이 단교를 하면서 노태우 정권은 대한민국내에

있는 대만의 재산을 중국에게 수교 기념으로 선물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대만 본성인에게

혐한의 불씨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709/h2007090319365584800.htm)



97년 홍콩이 영국으로 부터 중국으로 반환이 체결된후 입지가 좁아진 국민당은 사태를 지켜보게

됩니다. 민진당의 진수편(천수이볜)이 대선이 당선될 경우, 대만내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

리게 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중국은 경제는 시장경제노선을 추구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공산당 1당체제의 사회주의 국가 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방의 단체장을 민주주의 국가처럼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것이 아니라 당 중앙에서 지목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홍콩의 반환을 보니 반환되기전 홍콩의 기득권이 중국으로 박탈되는것이 아니라 중국정부에서

그대로 기존의 기득권을 인정해주는것을 목격한 대만의 국민당은 대만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행동을 하게됩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피를 흘리며 반대해고 싸워왔던 공산체제, 그것이

싫어서 대만으로 피신온 그들이 본성인 중심의 민진당의 세력이 커지고 자신들의 기득권이 빼앗

기기전에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념을 변경하기 시작합니다.(반공에서 친공으로.)

중국 본토와 하나가 되야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국민당을 보면서 본성인은 과거 국민당의 2.28

사건과 장개석의 세습정치, 기득권을 위한 이념변경 이 모든것이 복합되어 본성인과 외성인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2000년 국민당의 YS와 DJ가 분열하듯 국민당의 송초유가 연전과 분열하여 친민당을 창당하고,

결국 대선은 3파전으로 되며 진수편이 총통이 되지만 국제사회에서 조금은 고립되어 있는 대만이

단시간에 기존의 국민당 기득권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진수편의 당선후 국민당의 분열을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2000년부터 진수편 총통은 각종 비리와

비자금 문제로 탄핵의 위기까지 가지만 결국 2008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투옥되고 맙니다.


그러나 진수편은 옥중에서 많은 책을 발간하며 자신의 무죄와 국민당의 모함 및 폭로에 관한 책을

발간합니다. 지금도 다수의 본성인은 진수편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현재의 대만은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정권을 잡고 있으며, 중국본토와 본격적인 대화를 하고있습니다.

과거 반공주의자 들이였던 국민당정권을 미국이 암암리에 지지했다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친공주의자로 탈바꿈하고 대만을 재집권한 국민당을 미국이 지지하지 않고있다는것은 일본이

조어도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중국과 대만이 한목소리로 일본에게 항의할때 일본의 편을 들어

주는것을 보아도 알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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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낮에 사실을 바탕으로 왜 혐한이 되었는가에 대해 꽤나 번득이는 발상으로 쓴게

생각이 잘 안나네 ㅠㅠ 자꾸만 역사적 사실만 기술하게 된듯...안올리자니 쓴게 아까워서....

불교나 쓰러 갈랍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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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님 10-10-28 23:22
   
우리의 기준으로 봤을때 대만은(본성인) 좌입니까? 우입니까?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친일입니까? 반일입니까?

그렇다면 국민당(외성인은?)
탱이군 10-10-28 23:24
   
다쓰셨넹... 정말 잘읽고 갑니다~

왜이리 혐한인가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렸네요 ㅜ
이차원흑곰 10-10-29 00:57
   
잘봤습니다~ 효오..

중국본토랑 통일할 가능성도 있어 보이네요?..

그럼 중국본토 성향을 띄게 되려나..
싸대기 10-10-29 14:13
   
잘봤습니다
단교와 중국수교건을 시대적 배경과 함께
세밀히 다루면 혐한을 부추긴 사연과 기타 재미난 사건들이 꽤 나올텐데 말이죠

일본이 단교를 했을시(수상이 한마디로 간단하게 단교를 선언해버립니다)
일본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했던 대만 정부는 자국 언론을 총동원하여
일본국민이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했고 수상은 고개숙여 사과했다는둥
허위 날조기사를 대량살포하였죠

프랑스와 단교시엔 대사관을 집거하고 대항하다 기동타격대에게 강제적으로 철수당합니다.

다음편 기다립니다 ^.^
12 10-10-29 17:25
   
본성이 개라
밥 잘주던 주인 더 좋아라하고 꼬랑지 흔든다는거군 -_-
ㅇㅇ 10-10-30 05:38
   
원래 17세기까지 대만은 중국역사와 아무 관련없는 동남마 원주민 땅이었죠

지금 대만의 모습은 마치 한국에 외국인 수천만이 이주하고 원주민은 씨가 마른 형국(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이러함)과 똑같습니다.
총통 10-10-30 14:19
   
고맙읍니다..덕분에 많은걸 알게 되엇네요..  저런 역사적배경이라면 우리처럼 뚜렷한 정체성을 갖
기 힘들겠군요...  암튼 가급적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일본과 달리 정말 그들과 우린 역사적
으로 원한,증오할 만한 국가적 다툼도 없으니깐요..
새옹지마 10-10-30 23:36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다시한번 머리를 짜내시어 날려버렸던글을 기억하시고 올려주세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정말 잼있네요..^^
떡볶이 10-10-31 02:00
   
대만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많이 알아가네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제목과 내용이 조금 동 떨어지네요..
참..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한 국민당 세력인데..
이제와서 뿌리를 바꾸려 하다니.. 정말 권력은 사람을 썩게 만드나봐요.
     
객님 10-10-31 14:23
   
그러게요ㅠㅠ이만큼 쓴거 쓰다가 날려먹고나서 자꾸만 역사쪽으로만 치중되서 혐한으로돌아선 이유를 외교단절에서 일어난 사건만 언급했으니..ㅠㅠ날려먹기전에 썼던게 역사적 사건에서 발상적 전환에 대한 이유가 많았는데 그걸 다시 쓰자니 자꾸만 입에서 헛돌아서..ㅠㅠ
10-11-19 02:34
   
잘읽고 갑니다
대만이 왜케 일본후장을 핥는지 이제 알겠네요
악의공룡둘… 10-11-19 03:55
   
해박한 식견에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혈사로야 11-04-24 16:46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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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1988년 대만의 반한감정에 관한 기사. 단교는 1992년임. (9) sd 11-22 5929
202 올케이팝, 한국인 행세하는 화교들 화교는 11-22 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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