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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7 10:59
[세계사] 오고타이가 안 죽었다면 몽골이 유럽을 차지했을까?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2,170  

사람들이 유럽군 VS 몽골군에 대해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몽골에게 고통받던 우리였지만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내심 몽골군을 더 띄우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당시 유럽 군인들은 무겁기만 한 철갑옷을 입은 기동성 꽝의

허접한 놈들이라 기동성 좋은 몽골 기병에게 무조건 깨졌다,

혹은 유럽 군대는 닥치고 돌격밖에 할 줄 모르는 무식한 놈들이라

전략 전술을 잘 구사하는 몽골군에게 발리기만 했다,

또는 몽골군은 말 타고 다니며 기막히게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유럽 애들은 접근하기도 전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었다 등.

저런 예를 내세우며 유럽군을 몽골군의 한 주먹도 안 되는

무식한 집단으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일단 당시 유럽 군의 무거운 게임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풀 플레이트 아머는 16세기에 들어서야 등장하는 물건입니다.

몽골군이 날뛰는 13세기에는 아직 체인 메일을 입었습니다.

체인 메일은 플레이트 아머와 같이 무겁지도 않았고

하루 종일 뛰어야 하는 보병들도 입고 다닐 만큼 가벼운 물건이었어요.

(심지어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춤도 추고 덤블링도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애들은 전략 전술이 뭔지도 모르는 돌격만 하는 멍청이들이었다?

몽골군이 자주 사용하던 거짓 퇴각 전술은

유럽에서도 자주 행해지던 흔한 전술이었습니다.

폴란드 기병대 또한 경기병이 주전력이었고요 (마자르족의 후예이기에)

몽골군들도 뛰어났지만 유럽에서 이루어진 몽골군의 승리는 

나름 운이 매우 좋았습니다.

폴란드는 오랜 왕위 계승권 다툼 때문에

전국이 피폐해진 상황이었고, 아예 삭제되다시피 한 키예프 공국도

지들끼리 내전 중인 상태였습니다.

뛰어난 몽골군의 전투력 + 이미 피폐해진 유럽의 상태가

큰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죠.

게다가 당시 유럽군을 상대로 몽골군이 항상 승리를 거둔 건

더더욱 사실이 아니고요.

바투의 부대는 벨라 4세가 이끄는 헝가리군이 다리를 건너는 몽골군에게 

쏜 석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근접전에서도 엄청나게 깨지고요.

13세기에 들어서면 헝가리는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활에서 석궁으로 점차 대체 됩니다.

인터넷을 보면 정확한 소스도 없는 낭설에 가까운 글들이 돌아다니며

당시 유럽군은 힘만 센 무식한 놈들이고

몽골군은 유럽 전체를 식은 죽 먹기로 차지할 수 있었지만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모두 돌아가는 바람에

유럽이 운 좋게 생존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유럽을 깎아내리고

몽골을 한없이 치켜세우는 글들이 많더군요.

일종의 역사 왜곡을 통한 대리 만족이라고 해야 하나? 

몽골군이 뛰어났던 건 사실이나 당연히 무적도 아니었고,

유럽 전체를 먹을 역량도 없었습니다. 

헝가리만 해도 몽골군이 엄청 애 먹었습니다.

중부 유럽의 산맥들과 빽빽한 숲을 넘어야 하는데

중부 유럽은커녕 헝가리에서 막히거든요.

지나치게 몽골군을 부풀릴 이유도, 유럽군을 깎아내릴 이유도 없죠.

P.S. 댓글 중 제가 특정 글을 짜집기 했다는 말이 있길래 링크드립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본 몽골 - 유럽군 전쟁 관련 글 중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잘 정리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글이고

많이 참고한 곳입니다. 

http://blog.naver.com/gkra1203/90028340234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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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6-17 12:46
   
뭐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요.
     
흑요석 17-06-17 12:56
   
꼬마러브 님 말씀 대로 역사에 If는 없기에

사실 "누가 이겼을 것이다!"하는 건 의미도 없고 알 수도 없죠.

다만 추측은 가능하기에 개인적으로 몽골의 한계는 동유럽까지였다고 생각해요.

그마저도 얼마 안 가 모조리 축출당하지만요;;
촐라롱콘 17-06-17 12:57
   
오고타이칸의 죽음이라는 변수없이 몽골군이 동유럽을 제압하고 그대로 서유럽까지 진격했다면....

물론 여러가지 추론이 가능하겠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를 결론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서유럽 상당지역이 일시적으로 초토화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크겠지만....

몽골군의 지속적인 점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몽골군은 초원-평원지역에서의 전투에서 가장 우세한 병력입니다.

헝가리-폴란드지역까지 비교적 평원으로 이어지는 동유럽과는 달리 서유럽은

산악지대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몽골군의 기동력이 큰 제약을 받을 것이고,

(실제로 평원과 산악지역의 접점지대인 동유럽 폴란드-헝가리지역에서 벌어진 발슈타트,모히전투에서조차

몽골군에게 특화된 야전전투임에도 몽골군이 고전하여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사람도 사람이지만 병사 1인당 5~6마리의 말들을 보유한 만큼 말들이 먹어대는 마초의 양도

실로 어마어마한데, 서유럽은 몽골군이 보유한 수 십만 마리에 달하는 말들의 먹이를 제공할 초지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이기 때문에... 사람보다도 말들이 먼저 아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유럽지역은 몽골군이 정복했던 러시아-동유럽지역의 목조성곽과는 달리(몽골군은 비교적 약한

목조성채를 상대로 한 공성전에서도 고전한 사례가 빈번했을 정도로...)

비교적 튼튼한 석조성곽이기 때문에 더욱 고전을 면치못할 것입니다.

훗날 러시아초원지역에 바투와 그의 후손들이 킵차크칸국이라는 튼튼한 배후지를 건설했음에도

두 번 다시 동유럽과 서유럽을 넘보지는 못했습니다.(물론 중동지역의 일칸국과의 경쟁과 알력때문에

유럽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 자체가 부족했겠지만...)

바투와 수부타이의 초기 유럽원정에서는 훗날의 킵차크칸국같은 지속적으로

물자와 식량, 병력을 조달할 배후지역이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유럽까지 도모하려했다면

더욱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물론 몽골군이 타 국가나 민족들의 장점을 흡수하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출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몽골군의 장점인 기동성이 발휘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한 지역보다

몇 배 이상의 시간과 병력-물자를 동원해야만 겨우 제압했을 정도로....

사례를 들면 금나라 멸망 이후 남송을 멸망시키는데 40년 이상 소모, 고려도 28년만에 겨우 제압,

일본과 자바원정 실패, 델리술탄왕국 침공실패, 맘룩왕조와의 아인잘루트전투에서의 패배... 등등

몽골-내륙중앙아시아평원지역에서 점점 지역이 멀어질수록(현지의 물자와 인력을 징발함에도 불구하고)

고전하는 양상을 보이며... 더 먼 지역은 몽골로서도 공세종말점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유럽 또한 몽골군에게는 공세종말점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Marauder 17-06-17 13:12
   
이게 정답에 가까운...
     
흑요석 17-06-17 13:25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셨네요.

당시 서유럽은 전 세계에서 석조 성곽을 가장 잘 만드는 곳 중 하나였는데

셀 수도 없이 많은 석조 요새가 들어서있는 서유럽 중부 유럽에 발을 들였다면

지옥을 맛봤을 겁니다. 일단 중부 유럽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뿐더러

모히 전투에서 바투의 군대는 헝가리군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으로도 붕괴 직전까지 가지요.

일단 근접전에 들어서면 몽골군이 깨졌습니다.

게다가 헝가리는 서유럽 스타일로 군제가 변화해 갈수록 몽골군이 더욱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서유럽 스타일로 성을 쌓고 중기병을 들이고 석궁류의 도입이 늘어날수록

몽골군은 헝가리의 방어선을 못 뚫습니다.

근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들을 보면

무슨 헝가리군은 몽골군의 한 주먹도 안 되었던 것처럼 묘사를 하더군요 -_-
     
Marauder 17-06-17 13:50
   
이분은 알고 쓴거같지만 다른사람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몽골의 초기전법은 공성전이 아니었죠. 그저 성을 포위한채로 몇년동안 죽치고있다가 성을 빠져나오면 공략하는것이었죠. 적이 많으면 도망치고 적으면 공격하고... 아무리 비축물자가 많아도 결국에는 진이 빠지고 역병이돌고 공포에 휩싸이게 되니 질수밖에 없죠. 예외는 오직 바다길이 뚫려있는 경우...
     
비좀와라 17-06-17 14:06
   
몽골군이 공성전에 약하다고요?

당시 서유럽의 성곽보다 앞선 것이 이슬람 성곽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는 합니까?

서유럽 성곽의 원형도 루마니아 성곽인데?

몽골 원정 당시 가장 성곽이 발달된 곳은 고려와 사마르칸트 지역 이었고 남송도 이에 못지 않았지만 간단하게 돌파한게 몽골 입니다.

산상노인 족을 이슬람이 토벌 못한것은 이들이 산악지역에 철옹성과 같은 요새를 건설 해서 인데 이것을 몽골은 격파 합니다.

사마르칸트의 성곽은 당시 최강의 요새로 일컫든 지역인데 연을 이용한 화공법으로 점령 한것이 몽골인데 무슨 몽골이 성곽공략을 못한다고.

어디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비웃음 사기 딱 좋은 소리입니다.
          
TheCosm.. 17-06-17 14:40
   
몽골군이 공성전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서유럽의 성곽보다 이슬람의 성곽이 앞섰다는 건 틀립니다. 애초에 성곽의 우열을 가리는 것 부터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보통 요새는 그것이 들어서는 장소의 지형과 주변 환경에 얼마나 적합하게 만들었는가를 두고 평가를 하는 것이지, 성곽에 어떤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진 않습니다. 우열은 더더욱 그렇고 말입니다.

얼마나 잘 만든 요새이든, 그것이 처한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함락당하는 건 흔한 이야기이고, 또 버려지는 것또한 흔한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사마르칸트의 성곽은 중앙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도시를 아우르는 성채도시로서는 대단하였다고 평가받았지만, 순수하게 군사적 의미로서의 요새와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를 함락한 몽골원정대의 활약이 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서유럽 성곽의 원형이 루마니아라는 것도 어디서 들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루마니아가 중세 초창기무렵 동로마제국과 함께 상당한 부흥기를 누려왔다는 점은 사실이고, 군사적 역량또한 대단하였지만.

루마니아의 성곽이 서유럽까지 전파된 전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루마니아의 사정을 고려하면 루마니아 식 성곽이 서유럽에 전파될 이유가 없기도 합니다. 당시 서유럽에서 성곽이 가지는 의미는 요새에의 접근을 지연시키거나 방지하기 위한 방해물의 역할이 더 컸습니다.

이는 성곽과 요새를 별개로 구분하는 건설기법에 따른 것인데. 이것과 별개로 성채도시는, 후에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대도시에선 2중성벽, 3중성벽, 성채궁전 등이 등장할 정도로 루마니아와의 영향을 찾기가 되려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현시창 17-06-17 14:40
   
십자군 전쟁이래 레반트 지역 최강의 요새는 그 유럽애들이 지어놓은 요새들이었습니다만...
심지어 오스만 투르크 시대까지 가도 유럽인들이 건드려 놓은 요새는 그 지역 최강요새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습니다. 당대 중동인들도 축성술에선 한 수 접어준게 서유럽 축성술인데 서유럽보다 앞선게 이슬람 성곽이란건 도체 무슨 소린지...

그리고 몽골이 무슨 남송을 간단히 격파했나요?
몽골은 공성전 능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남송의 가사도 같은 또라이의 삽질로 뚫어낸 겁니다. 양양성만 해도 10년을 넘게 공성했어도 뚫지 못했고, 남송의 요새러쉬로 지금의 충칭일대는 뚫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남송 중앙정부의 붕괴 이후에나 공으로 이들 요새지대를 넘겨받았지요.)

양양성 공성이후로 몽골군은 무려 1년이 넘는 기간을 재정비에 보낼 정도로 소모된 상태였습니다. 당대 세계최대최강의 요새지대 남송이 보유하고 있었고, 그 효용 역시 충분했습니다만...역시 그런 요새지대 역시 지도부가 바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벨루가 17-06-17 13:58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ang623&logNo=110106385127&proxyReferer=https%3A%2F%2F

이 블로그 글 짜깁기 했네요 단어나 표현들 적당히 바꾸면서
     
흑요석 17-06-17 14:10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으고 유럽 - 몽골군의 전투에 대한 글은 옛날부터 동아게에 자주 올렸는데

뭔 특정 블로그 글을 짜집기 합니까 -_-

시리우스 님의 블로그를 포함한 네이버 역사 카페 + 기타 글들을 보고 필터링하고 정보를 모읍니다.

예전엔 동아시아 역사를 주로 다루던 만쭈리 블로그에 빠졌다가 이상한 사람인 걸 알고 그만뒀었고요.

전 이 글을 참고했습니다:

http://blog.naver.com/gkra1203/90028340234
          
벨루가 17-06-17 14:13
   
하하하 뻔뻔하시네요
               
흑요석 17-06-17 14:16
   
유럽 - 몽골군 전투의 실상은 제가 드린 링크에 설명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들 중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정리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 쭈욱 읽어보세요.
                    
벨루가 17-06-17 15:18
   
본문 수정하셨네 ㅋㅋㅋㅋㅋ

[한편으로 몽골군이 가죽 갑옷만 입었다는 이야기도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몽골군은 철갑옷도 즐겨 입었거든요. 아, 물론 직접 만들진 않고요... "뺏어" 입었습니다]

[당시 몽골군이 '기본 전술'이라 칭할 만큼 자주 행해졌던 "거짓 퇴각- 일격" 작전은 사실 유럽에서도 자주 행해지던 전술이었습니다.]

[승전을 부각시키고 그들에게 굴욕 당하는 유럽인들의 역사를 되새김질 하며 역오리엔탈리즘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려는 심리가 말이죠.]

수정 전 글엔 위 내용 있었는데 지웠네요
애잔합니다
                         
흑요석 17-06-17 15:27
   
'폴란드' 기병대 또한 경기병이 주전력이었고요 (마자르족의 후예이기에)

를 '헝가리'로 수정하려다 댓글이 많아 수정하지 못하고 있고요

이 문장뿐 아니라 글을 쓴 시점에서 전체적으로 계속해서 몇 번이나 지우고 덧붙이고

맞춤법 고치고를 반복했는데 특정 문장을 빼버린 게 제가 짜집기 했다는 근거가 됩니까?

님의 지적 때문에 제가 참고했던 블로그 글은 지금 본문에 추신으로 넣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추신에 넣은 찛러꿰뚫는가시창 님의 글을 참고했지

시리우스 님의 글을 짜집기 하지 않았습니다 -_-

시리우스 님의 글이나 나무위키나 다른 분들의 블로그나 제가 쓴 글이나

겹치는 내용은 많고도 많은데, 똑같은 내용이 있다고 내가 짜집기 한 거라니;;

몽골군의 거짓 퇴각 전술 문장은 여전히 본문에 남아 있습니다만?;;

카타르시스 얘기는 너무 비꼬는 것 같아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지운 겁니다.
                         
벨루가 17-06-17 15:34
   
본문 수정되는줄 알았으면 원글 캡처라도 해둘걸 그랬어요
계속 발뺌하면서 아닌척 하네요
                         
흑요석 17-06-17 15:40
   
아니 ㅋㅋ 이런 긴 글을 쓰면 그 후에 수정을 얼마나 많이 반복하는데

계속 새로고침 하시면서 일일이 수정되가는 글 다 캡처하시지 그랬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저 모든 글이 다 제 머릿속에서 나온 거라고 한 적 없습니다.

당연히 역사 관련 지식은 누군가가 쓴 글을 보고 배우는 거고요.

추신에 넣은 링크를 참고했습니다. 그분 글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댓글에도 논쟁이 많거든요.

님은 앞으로 제가 동아게에 쓰는 글 일일이 다 캡처하시고 딴지 거십쇼.
                         
벨루가 17-06-17 15:46
   
블로그 글 베낀거 탄로나니 부랴부랴 수정한거면서
마치 무슨 퇴고라도 한것처럼 말하네요 ㅋㅋㅋ
첼파 17-06-17 15:39
   
무슨 성곽이고 석궁이고 세세하게 이유를 나열 해봤자 if 죠
국가 역량 자체가 비교가 안되는걸요...
손바닥 만한 유럽 관심없어서 걍 둔거지 마음먹었으면 아예 쓸려나갔을듯.
부자동네 중동에 앉아서 따박 따박 돈이나 받아먹으면 됫지 가난한 유럽까지 갈 이유가 없죠.
그냥 상식선이었을듯... 서유럽하고 관계가 나쁜것도 아니었으니까...
관심병자 17-06-17 21:11
   
몽골군은 평지에서 전투에 강했지만,
공성능력이 약하지는 않았습니다.

호라즘 원정에서 보여줬듯이 이슬람의 석조성곽도 단기간에 함락시켰습니다.
호라즘 원정당시 금나라에 남겨둔 점령군 사령관 무카리가 징기스칸에게 공성병기 기술자들을 보냈고 공성병기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쥬치에게 배정하기로한 영지를 공격할때 자기가 가질영지라 피해를 최소화 하려 공성을 7개월이나 끌자,
명령권을 박탈하고 다른 장수를 보내 1개월만에 함락시켜버립니다.

동유럽으로 들어간 수부타이의 부대는,
원래 호라즘 공격에 참가한 여러 부대중의 일부에 불과했고
계획에 없던 원정이었습니다.
그후 바투의 원정도 당시 몽골제국은 송나라, 고려, 페르시아와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전력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전투경험이 적었던 바투와 왕족들의 지휘능력이 문제가 됐지만 경험많고 유능한 지휘관들도 많았기 때문에,
철수하지 않고 계속 바투를 도와서 원정을 계속했다면 유럽의 피해는 더욱 커졌을 겁니다.

당시 몽골군은 기본적으로 대부분 기병이고,
궁기병입니다.
유럽에 경기병이 있었다고 하지만, 유인하는 몽골기병은 후퇴하면서도 활로 계속공격할수 있고,
유럽의 경기병은 일방적으로 활을 맞아 피해를 입으며 추격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기병인 몽골군과는 달리,
유럽의 군대는 아무리 기병을 많이 동원해도 반수 이상이 보병입니다.
결국 유인당한 유럽군은 기병 단독으로 몽골군 거의 전병력과 싸우며 기병전력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거고,
그후 보병만으로 궁기병에 포위되서 상대해야하는 식의 전투가 되버립니다.
     
TheCosm.. 17-06-17 22:16
   
앞에 내용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뒤의 기병 이야기는 너무 전쟁을 단순화하여 보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몽골이 대대적으로 침공하던 시기에, 서유럽에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궁기병과의 전투를 산전수전 겪어본 이들이 많았고 동유럽에서의 몽골군 침략상을 실시간으로 전해듣고 있었는데. 멍청하게 평지에서 대놓고 궁기병과 맞서 싸울 지휘관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원정대는 생각하시는 것보다 보병의 비중이 매우 컸습니다. 몽골에 대한 이미지때문에 몽골원정대가 기병이 주된 병력이라고 생각하시는 경향들이 많으신데, 호라산 공격 때에도 동유럽 공격 때에도 현지 징집과 고용 등 다채롭게 구성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추가로, 몽골 기병이 궁기병 이미지가 강하지만, 궁은 어디까지나 무장의 하나일 뿐 상황과 전술에 따라 기마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궁기병이라는 병과 자체가 별개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관심병자 17-06-18 09:20
   
정주민 군대가 유목민 군대를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이유가
그들의 전략 목표가 점령, 지배가 아닌 약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A라는 지역에 병력을 모아서 방어준비를 철저히 계획해도, 지나쳐서 B라는 지역을 약탈하고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A,B를 방어하면 다른 C라는 지역을 약탈하고,
결국 군대를 쪼개서 방어지역을 늘리면 각개격파 당하게 되는것입니다.

이들을 방어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길목을 병력으로 틀어막아 배치해 전투를 할수밖에 없게 해야하는데,
그런 평야에서의 전투는 유목민들이 기동력을 살려 유리하게 싸울수있는 전투입니다.
그렇다고 성에서 수비를 하면 우회해 버리거나 포위해서 식량이 고갈될때까지 기다리는식으로,
전장의 선택권을 기동력에서 유리한 유목민 군대에게 뺏기게되는 것이고,

몽골군의 보병은 현지에서 적에서 항복한 군사를 앞장세워서 몽골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것이거나, 공성이나 보병전투를 위해 말에서 내려 보병역할을 하는 병사입니다.
이들이 보병전투를 준비해서 말에서 내리지 않으면 그냥 기병입니다.

몽골을 궁기병이라 표현한 이유는.
북방 기병은 활이 기본 무기입니다.
그에비해 유럽의 기병은 기사가 중심이고,
기사는 장거리 무기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의 조선 기병의 전술을 봐도 활을쏘다가 거리가 가까워지면 근접무기를 들고 돌격했습니다.
기동력에서 앞서니 근접 백병전투를 할지 원거리무기로 전투를 할지 선택권을 가지게 되는것이고,
어떤식으로 싸우던 불리하다면 회피하고 유리해질때까지 안싸우면 됩니다.
이것이 몽골군이 소수로 다수의 적에게 이기면서 피해가 적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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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세계사] 선진 시기 동이족이 상나라인이고 우리민족의 선조… (2) 고이왕 08-29 1140
261 [세계사] 흑인이 백인처럼 문명을 발달시키지 못한 이유 (10) 레스토랑스 08-29 1619
260 [세계사] 세계 각국 왕관 TOP100 (10) 레스토랑스 08-2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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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세계사]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건축물 베르사유 궁전.JPG (4) 샤를마뉴 08-21 1866
256 [세계사] 흑사병이 활개치던 중세시대의 의사 (3) 레스토랑스 08-21 2840
255 [세계사] 무어인들의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 알함브라 궁전 (6) 샤를마뉴 08-20 1968
254 [세계사] 모세의 출애굽 - 기원전 16세기 ? (1) 옐로우황 08-16 2484
253 [세계사] 중국 정사는 한국 번역본이 아예 없나요? (7) 솔루나 08-14 1631
252 [세계사] 오스만 제국.JPG (7) 샤를마뉴 08-11 1729
251 [세계사] 김정민 박사가 주장하는 카자흐민족 발해이동설 설… (9) Marauder 08-08 2633
250 [세계사] 고대 로마 제국 보병.jpg (24) 샤를마뉴 08-07 4285
249 [세계사] 16세기 일본군이 전세계적으로 보면 힘이 별로였나요 (26) 툴카스 08-07 2294
248 [세계사] 네덜란드의 코리아호 (1) 붉은깃발 08-06 3629
247 [세계사] 스파르타가 '저출산' 때문에 멸망했다고? (3) 인류제국 08-0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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