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무엇이었기에?
2017년 06월 15일(목) 00:00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장관에 지명되자 이른바 강단사학계에서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그중 하나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발주한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중지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 의원을 비판하는 이른바 강단사학자들과 보수·진보 언론에 포진한 언론카르텔은 ‘정치가가 학자들의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식으로만 비판하고 이 사업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고 47억 원을 이른바 강단사학자 60여 명에게 주어 지도를 만들게 한 사업이다. 2008년부터 시작해 2015년에 완성했어야 하는데, 지도 제작 측에서 3년 연장에 30억 원 추가 신청을 하면서 도종환 의원이 속해 있던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게 된 것이었다. 특위 소속의 여야 의원들이 필자가 속해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 이 지도에 대한 분석을 부탁하기에 필자는 이 지도가 대한민국 정부 발행으로 나가면 앞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 ‘한사군=한반도설’에 따라서 북한 강역을 모두 중국 영토로 표기했는데, 북한 위기 시에 중국이 북한을 차지하고 ‘북한은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였다’라고 주장하면 한국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조조의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점령했다고 그렸다. 시진핑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런 역사 인식의 뿌리를 찾아보면 당연히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있다.
둘째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 신라, 백제, 가야를 그리지 않았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추종한 것이다. 일제는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주장했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발명했는데, ‘동북아역사지도’는 이를 추종해 4세기인데도 신라·백제·가야를 그리지 않은 것이었다. 셋째, 독도를 일관되게 누락시켰다.
대략 이런 의견서를 제출했더니 동북아특위에서 2015년 4월 필자와 지도 제작 측의 대표인 임 모 서울교대 교수를 참고인으로 불러서 진술회를 가졌다. 이 진술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국회속기록에 생생하게 나와 있으니 생략하겠다. 다만 독도 문제는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임 모 교수는 독도를 그리지 않은 것은 ‘실수’이고 아직 완성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후 5개월간의 수정 기한을 주었는데도 독도는 끝내 그려 오지 않았다. 독도는 한국 영토가 아니라 일본 영토라는 것이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진의 역사 인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의 과장이 아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이 지도 제작을 담당했던 배 모 연구위원이 논문과 잡지에 기고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독도가 우리 것일까? 독도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은 명백한 ‘진실’을 왜곡하고 독도를 빼앗으려는 일본의 음흉한 음모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독도문제를 보는 비판적 시각을 위하여’, ‘문화과학’ 42, 2005)”라고 썼다. 독도는 일본 것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2016년 7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최한 ‘요서 지역 조사와 현장토론회’라는데 참석해 동북아역사재단 최고위층으로부터 놀랄 만한 소식을 들었다. 재단 최고위층이 5개월간의 수정 기간에 지도 제작 책임자들을 불러 ‘독도는 꼭 그려 넣어라. 대한민국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지도니 독도에 점이라도 찍어 와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끝내 그려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런 지도 사업을 중단시켰다고 대한민국 문체부 장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이른바 강단사학계의 논리고 이들과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일부 보수·진보 언론카르텔의 논리다. 필자가 이 카르텔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겪은 수모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 우리 스스로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비극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순국선열들의 피로 되찾은 이 나라, 이제 정상화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