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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2 10:29
[한국사]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역사고 한반도밖의 역사는 우리역사가 아니다?
 글쓴이 : Marauder
조회 : 1,217  

뭐 어그로성 제목같지만 꾸준히 제기하시는 분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식빠니 환빠하는것은 개인이나 단순 집단의 문제이기에 물론 안좋게 보고는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한걸음 빠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편입니다.
나중에 승리하는 쪽이 상대방보고 식빠니 환빠니 몰아붙일 수 있겠고
지금은 누가 승리했다고 보기 어렵거든요.(물론 강단사학계가 우위에있는건맞습니다만)

그 도를 넘어서 한국 전체를 매도하고있는 꼴을 보자니 이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네요.
개인적으로 저런식의 주장은 주류사학계를 뛰어넘어 진짜 답도없는 일뽕 어그로들이 하는 주장으로 보는데그 일부 사용하고계시더군요.

지금 고이왕님이 계속 그러시는데
다민족국가이며 한반도밖의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시던데
말그대로 부여와 발해가 거기에 해당하겠죠.

우리나라 그 어떤사람들도 부여와 발해는 외국으로 생각조차 않으며
외국 학계는 모르겠지만 그냥 간단한 검색이나... 게임같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부여와 발해는 한국으로 칩니다.
저번에 고이왕님 떄문에 브리타니카 백과사전까지 찾아봤었죠.

해당하는 대부분의 조건을 가지고있는 부여와 발해인데도 한국사로친다는겁니다.
 고조선이 그러한일로 우리나라역사밖으로 튕겨나간다면 긴지 아닌지 모르겠는 고조선보다 확실하게 부여와 발해가 먼저 한국역사밖으로 튕겨나가야합니다.
그런데 진짜 한국인을 자칭하는 사람들중에서 부여와 발해를 계속 한국사밖으로 밀어내려고하는 사람은...
역갤종자 일뽕종자밖에 못봤습니다. .
 그런사람들 대부분이 임나일본부설을 세트로 지지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한국사로 보지않으며 조센징을 열등하게보고 일본을 빨아재낍니다.

그 유일한 예외가 딱 이 사이트에 한분계셨습니다.

역사를 잃기 두려워한다고 하시는데 제가보기엔 중국인들의 떼어놓기 작업에 동조하시는건지 그런 시선을 왜 강요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단순히 한사군 재한반도설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자꾸 우리역사를 외부로 밀어내려고 하는 부분이 그렇게 보인다는겁니다)

애초에 고조선이 다민족국가고 그 영역이 한반도밖에있다고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건
 본인이 부여와 발해는 우리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것과도 같게되는것이죠.
그런데 부여와 발해를 우리나라역사에서 밀어내고싶거나 암묵적으로 그런 시각을 심어주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면 그냥 꺼내지를 말았어야합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측이 그렇게 주장하는건 알지만 보통은 대응 논리로 그걸 방어할 생각을 하지 찬동해서 밀어낼 생각은 안하거든요.
부여와 발해를 우리나라역사로 인정할것이었다면 고조선이 어땠든 고조선도 방어를 해야하는데 부여와 발해는 인정하면서 고조선은 인정하기 싫다면 이것이야말로 내로남불이겠죠.

역사란건 힘의 논리가 일부 적용되기에 우리나라가 영토를 잃어버리면 모를까 그 이전까지는
뭐가 바뀌더라도 인식이 바뀔리는 전혀없습니다.
우리나라 일반국민들이 반도사관을 꾸준히 주입받아서 스스로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 전까지는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다민족국가라는게 더 환영입니다. 물론 아닌분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국가들과 친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애초에 한민족이 단일민족이고... 자꾸 고립주의로 나가려고하는데 그게 더 이상하고 문제있다고보입니다. 태평양의 외딴섬도 아니고 고립주의는 우리나라같은 수출국가에서는 해도 안되는 버려야할 노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마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영토가 계속 늘었다가 줄었다가 변천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는건질 모르겠네요? (이부분은 맨마지막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반도의 영토는 현재 주류사학계 기준으로 생각해도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고이왕님은 아마도 지금의 역사가 부끄럽다고 주장하시는건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심어주시는건지 모르겠군요.

물론 재야사학계 주장으로도 세세하게 영토가 계속 줄어들어서 영토가 한번도 늘어나지 않은것은 아니고 늘었다가 줄어들은 때가있죠.
고이왕님도 그건아실테니 아마 전체적인 경향이 계속 줄었다 이런이야기 하시는것 같은데
그런 주류사학계도 전체적인 영토경향은 계속 줄어들은게 맞고 그논리대로라면 한국의 역사는 그냥 부끄러운 역사의 연속입니다. 단지 조금 잃어서 조금부끄럽냐 많이 잃어서 많이 부끄럽냐가 다를 뿐이죠.

생각해보죠. 우리나라에 고조선있을때 영토는 어땠나요. 물론 고조선 초창기 영토는 아무도 고증못하지만
일단 고조선이 초기 중심지는 요동이었는데 연나라에게 패한후 중심지가 평양으로 이동하고 그마저도 멸망하게 되어 계속해서 영토가 줄어들었죠. 

둘째로 부여가 있을 당시를보죠.
물론 고구려 전성기때는 일시적으로 고조선수준을 회복했습니다만 그나마도 청동기문명의 기존 강역이나 기타 한국국가를 생각하면 넓혔다고 말하기엔 부족함이있고
(물론 고조선 "만"을 한국 국가고 그외에 국가를 외국으로 본다면 고구려가 고토회복을 한게아니라 자랑스러운 영토확장을 한것이겠죠. 물론 그렇게되면 다물이라던가 고토회복의 의지가... 좀 의심스럽게되지만..)
고조선이 빼앗긴 요동을 고구려 대에 와서야 되찾았지만
부여 멸망후 동북방면은 그대로 잃어버리죠.
멀게는 기원전 8세기경에서 약 5세기경 부여가 있었고 고구려때문에 북부로 밀려났는데
뭐 좋아서 밀려난건아니고 원래 부여땅이 아닌곳으로 간건지, 아니면 부여땅인곳으로 간건지는 모르겠으나
한가지 확실한건 부여멸망 이후로는 땅이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삼국시대 정립 이후는 말할것도 없고(만약 왜로 진출한것이나 요서경략설을 채용한다면 모르겠지만)
주류사학계는 유주 점령도 인정안하죠? 그저 고조선 당시 영토를 유지하는 선에서 그치다가

남북국 시대에는 요동을 잃고

고려시대에는 정안국이나 심양등의 땅을 가지고있다가 잃어버리고

조선 국경이 조금 넓혀져서 명초에는 압록 두만강 밖이었는데(간도)
청나라때는 그나마 대부분 잃어버려서 백두산 정계비로
국경을 강으로 일단락 짓죠.
그나마 간도가 매우 축소되었어도 두만강밖에 한국인들이 살고있었는데
그이후로 계속줄어들고 북한은 백두산 절반을 중국에 팔아버렸죠.

계속 역사의 흐름을 봤는데 줄어들기만했지 늘어난 적은 없는데
(굳이있다면 고려 중기 후기에 잃어버렸다가 조선이 다시 되찾은정도)
 이게 부끄럽다는게 아닙니까. 물론 솔찍히 저도 부끄럽습니다만... 
이게 환빠들의 주장이건 강단의 주장이건 부끄러운건 똑같다는겁니다.
 설마 영토를 조금만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덜부끄러우니까 남에게 줘버리자 이런논리도아니고... 말도안되는거죠.

물론 여기서 계속 땅을 잃어버린것이 아닌것처럼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여사와 기타 초기 만주에있던 한국계 국가들, 발해사를 한국사에서 빼버리고 정안국과 심양땅도 빼버린다면...

고구려는 우리나라 영토를 최대로 개척한 국가가되고 고려는 통일신라땅에서 영토를 넓혔으며 조선은 고려땅에서 또 땅을 넓힌 국가가 되겠죠.
참 여기까지보니까 이게 일뽕이나 화교가아닌 정상적인 한국인 시각인지는 의문스럽습니다만...
일뽕은 아니라고 생각되니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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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7-06-12 14:53
   
설령 한때 한반도의 일부에 중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이 이식된 시기가 있었다 한들,
이 부분이 어째서 부끄러운 역사가 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낙랑을 예로 들더라도 길게 잡아 400년이라는 기간은 우리 한민족 역사 전체와 비교하면 한시적인 기간이며,
게다가 근현대 시기의 식민지라는 개념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는 지배구조인데요!

오히려 외세를 몰아내고, 오히려 그 외세의 문화와 인적자원까지 우리 것으로 흡수해서
더욱 강대한 나라를 만드는 초석으로 삼았던 부분이 더욱 가치있고 높게 평가될 부분이 아닌가요...???

그리고 부여와 고구려는 고조선에 대해서 직접적인 계승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한반도서북부일대라는 제한적인 지역에서 전승되던 단군신화를 고구려가 한반도서북부지역을
점유하면서 다른 몇몇의 신화와 더불어, 단군신화 또한 지역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나마 계속 전승되었고...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 우리 한민족 전체범위의 개국신화로 격상되었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조선시대를 거치며 국토면적은 특히 북방지역으로는 꾸준히 확대되었습니다만....???

그리고 조선초기 영역이 압록강~두만강 이북이었다니요....???
조선초기에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여진부족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가지고
우리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큰 비약입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 명나라의 직접지배지역인 요동도사관할 지역이 아니라...
만주-연해주 일대의 광범지한 지역의 여진부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던 노아간도사의 범위 또한
저 개인적으로는 명나라의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초기 세종시기에 압록강~두만강 바로 이남의 4군과 6진의 개척은 우리 영토안에서
뻘짓거리를 한 것인지.....???
더구나 압록강중류 이남의 4군지역은 개척된 이후에도 무려 100~200년 동안이나 안정되지 못하고
폐지와 재설치를 반복하다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여진-만주족 흥기시기 후금~청나라 초기시기에 만주족이 대거 중원쪽으로 진출한
이후 시기에야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만.....???

간도가 우리 땅으로 주장하는 근거가 된 것은 아니러니하기는 하지만... 만주족이 대거 중원으로 진출하여
만주~연해주 일대가 무주공산이 된 비어있는 땅에... 특히 조선인접지역인 현 간도지역으로는
흉년과 가렴주구에 시달린 조선북방의 유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조선인 인구가 압도적인 지역으로
변한 것이며....
청일전쟁~의화단 사건을 거치며 청나라의 행정-군사력이 간도일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 공백상태를 기회로
당시 조선-대한제국이 우리 영역으로 포함시키려 시도한 것이 국경분쟁의 주된 이유입니다.

조선말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지도의 결정판인 대동여지도를 보면 정확히 압록강~두만강이 국경입니다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0년대 압록강~두만강일대의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확정한 조-중 변계조약은....
개인적으로 북한정권을 경멸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조-중 변계조약만큼은 인정해주고 싶을 만큼
조금이나마 우리국토를 넓힌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시대적 배경으로 당시 공산권의 중-소 분쟁으로 우군이 절실한 중국이 북한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양보한 측면이 크지만.....
이전까지 경계가 불분명했던 압록강~두만강의 하중도 대부분이 북한령으로 인정되었고
(심지어 조약 당시는 하중도였지만 수 십년 동안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중국땅에 붙어버린
황금평일대까지도 여전히 북한령인 것처럼....)

조선후기 백두산 천지일대 지역보다 북한지역으로 안쪽에 설치되었던 백두산정계비가 설치된 지역을 넘어
오히려 천지일대를 확보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입니다.
     
Marauder 17-06-12 17:45
   
그당시엔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국경지대만 있던걸로 알고있는데 그 국경지대가 청나라 이후로 국경선으로 바뀌었죠. 명백하게 중국의 땅은 늘어나고 우리가 쓸수있는 땅은 줄어든거죠. 국경지대에서 국경선으로 바뀌면 지대의 중간을 선으로 그어야지 국경지대를 통째로 가져가는 곳이 어딨답니까? d.m.z 폐지되면 중간에 선을 그어야지 북한이 다 가져가도 손 놓으라는 생각이신건지...
 그리고 세종때는 조선 초 아닙니까? 뭐 그떄도 조선 중기로 치실것인지? 제가 분명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갔을때는 국경이 늘어났다고 했습니다만.... 그게 조선 개국하자마자만을
 뜻하는건 아니잖습니까?
 동북국경의 경우 글썌요 전 그 전부터 그쪽지역은 명에 복속하기도하고 조선에 복속하기도하고 그냥 잃었다 뺏겼다 하는 국경으로 보거든요. 그런데 백두산 정계비 이후에는 땅이 완전히 정해진거고
물론 청나라때는 그곳의 주인인 만주족이 힘이 세졌으니까 국경이 확실히 토문강으로 정해졌죠.  그런데 두만강과 토문강 오류때문에 발생한것도 있지만 동북의 국경은 확실한게 아니었던걸 백두산 정계비때 국경을 확실히 지음으로써 영유권을 잃어버렸는데 이때 토문과 두만사이에서 이견이있었는데 청나라에서는 두만을 토문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국경을 확정지은것이고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식으로 토문강 또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냥 내준것이고요.(뭐 사실 세상을 정직하고 손해보고만 살려면 그냥 두만강을 토문강이라고 주장할수야있는것이죠)
조선후기에는 대동여지도... 말했듯이 청나라 이후 국경선이 거기로 정해졌다고 했던말 또하시는군요.
그나마 북한부분은 제가 거론자체를 별로 안하긴 했지만 이미 간도 부분을 생각하면 늘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고 생각해서요.

 당연히 알고 쓴건데 이상한 부분에서 태클을 거시네요. 뭐 예전부터 그런 느낌 많이받긴했습니다만
          
촐라롱콘 17-06-12 20:14
   
[[ 그리고 세종때는 조선 초 아닙니까? 뭐 그때도 조선 중기로 치실것인지?...]]
.
.
님이야말로 독해능력이 떨어지시는게... 외국분이아닐까 의심됩니다만....^^

위의 저의 댓글에 언제 제가 세종시기를 조선중기로 인식한 부분이 있는지....??

오히려 "조선초기 세종시기에"라고 분명히 연급했습니다만.....

그리고 님 말씀대로 하면 조선초기에 압록강~두만강 이북 너머지역이 국경이었는데....

어째서 비슷한 시기인 조선초기 세종시기에 압록강~두만강 이남인 4군6진을 개척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쳐댔는지.....???

그리고 조선동북쪽 국경방면으로는 세종시기 고려시기 동북9성의 북단지역이 두만강까지

미쳤다는 등의 역사적 근거 등을 명나라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한 결과로 인해 획득하게 된

부분입니다만... 물론 문서상으로야 명나라의 승인을 받았지만, 해당지역의 실제거주민인

여진족들을 기미하고 제압해야 하는 현실적인 난제는 조선의 몫이었지만....

그리고 국경문제가 어느정도 정리된 이후인 조선중후기 시기의 국경의 대부분의 경계는

압록강~두만강이라는 경계가 확실히 뚜렷한 구분선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다만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지역인 백두산부근 일대에 한정해서

압록강-두만강의 수원지가 불분명하고, 수많은 지류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경계가 불확실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조-청 양국이 조선후기 숙종시기인 1712년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정했지만... 이때에도 정확한 측량과 명확한 해석이 미진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일백 수십년이 흐른 고종시기 정계비 해석문제를 두고 국경문제가 다시

대두된 것입니다만.....
               
촐라롱콘 17-06-12 20:32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 해석문제로 고종시기에 조-청간에 논란이 되었지만....

조선측은 이미 정계비가 세워진 후 몇 십년 세월이 흐른 영-정조 시기부터

토문강이 두만강의 오류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정조시기와 이후 시기에 걸쳐 어전회의에서도 몇 차레나 대두된

토문강-두만강 오류문제는 청나라와의 분쟁을 염려한 국왕과 대신들에 의해

쉬쉬하며 그냥 넘어가고 맙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 백두산일대는 조선의 입장에서도 변방오지였지만...

청나라 입장에서는 더욱 먼 변방오지였음은 물론 봉금정책으로 청나라방면에서의

인적 또한 뜸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선이 정계비가 세워진지 불과 수 십년 후에는 오류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청나라는 고종시기에 국경문제가 대두될 때까지도 오류를 인지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은 오히려 고종대의 국경분쟁 시기에는 토문강이 두만강의 오류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두만강 북쪽에 수 만명 이상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

아예 정계비상의 토문강은 토문강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님은 상식적인 의문이 들지는 않는지요....???

두만강은 바다로 흐르기 때문에 경계가 확실하게 정해질 수 있지만

토문강은 북쪽으로 흘러 역시 만주내륙을 흐르는 송화강에 합류되는 강이기 때문에...

토문강-송화강 합류점에서부터 바다가 있는 동해안까지는 수 백km나 떨어져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경계를 또다시 정해야 상식이 아닌지요....???

그리고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해 연해주가 청나라에서 러시아에게 할양되어

두만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었는데....

만약 두만강 이북의 상당부분이 조선령이었다면... 상식적으로 청나라와 러시아가

조선과의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고 두만강 이북땅을 할양하는 것이 어찌 가능할

것이며... 조선 또한 두만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후에 국경문제로

어떠한 항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조선 중후기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 선이 절대불변의 진리입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강들의 상류일대에서의 정확한 경계와 강들 한가운데의 하중도와

관련해서는 예외겠습니다만....
                    
Marauder 17-06-12 21:33
   
글쌔요. 딱히 간도나 독도라고 해서 우리 손에 의해 땅이 떠난게 아닌데 동북경계마저 그러리라는 법은 없죠. 간도문제는 뭐 제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검색해보면 나오는 부분이 많으니까 넘어가도록하고... 백두산 정계비 이후에 사실상 국경이 확정됬다는 내용은 저로써도 몇번이나 말했던 내용이라... 굳이 여러번 거듭 확인하시는 의향을 모르겠군요... 서로 동의하는 내용을 굳이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언급해야만하나... 회의감이 드네요...
두만강 토문강은 은근슬쩍 꼽사리 낄 기회를 날려버렸다는것인데...
               
Marauder 17-06-12 21:37
   
딱히 다르지 않은 내용을 두번 언급하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수밖에없죠. 제가 본문을 수정한것도 아닌데..? 왜 계속 같은말을 중언부언하는걸까... 혹시 내 의견에 찬성하는건가? 근데 말하는것보면 반대하는것 같은데 말하는걸 보면 같은말...
               
Marauder 17-06-12 21:45
   
일단 서북방면 문제에있어서 다시 언급해보자면
제가 명초기라고 하고 님은 물론 세종부분을 언급했는데 문제는 제가 국경이 넓혀져서 명초에는 압록강 이북이 명나라와의 국경지대라고 했는데 촐라롱콘님이 아니다. 세종때 국경을 넓혔는데 (뭔 명초에 국경을 넓혔냐) 이런 소리를 하고있으니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여기서 조선초가 아니라 명초라고 잘못 언급했고 후에도 혼용한 부분은 있긴 하지만  조선 국경은 그즈음에 확립되었으니 명초... 혹은 조선초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물론 명나라는 조선보다 빨리 망했으니 이때가 명중기다 뭐 이렇게 지적하셨으면 뭐 제가 할말이 없겠지만요.
               
Marauder 17-06-12 21:49
   
뭐 앞서 썼지만 청나라가 들이선 이후에는 저도 국경이 확정된걸 인정하는편이라... 굳이 왜 계속해서 같은 주장을 하시는건지... 알수가 없는... 뭐 여기서도 조선 중기 명나라시절이라면 더 토론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이 경우엔 지금 제시해주신 내용들이 아니라 그시절 이야기를 하셨어야죠.

그런데 문제는 촐라롱콘님의 많은글들... 글의 편향성이아니라 글을 씀에있어서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말도안되는 이야기를 한적이 이전에도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라고 물어본겁니다. 뭐 이거는 증명할 방도도없는데 하도 답답해서 한 이야기고요.
     
Marauder 17-06-12 18:01
   
부끄러운 역사라고한건 제가 아니라 다른분이... 제가 의미한건 싸움에서 진게 부끄럽지 자랑스럽진 않잖습니까. 그런 뜻이구요.
     
Marauder 17-06-12 18:03
   
예전부터 보면 지식은 많은데 독해능력이 떨어지시는게... 외국분이아닐까 의심되는데 맞죠?
고이왕 17-06-12 15:31
   
저는 "다민족국가이며 한반도밖의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시던데 말그대로 부여와 발해가 거기에 해당하겠죠."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뭐라 할까 어쩌구니가 없습니다 여기 유사역사학자들은 정말 토론 자체가 안됩니다.. 제가 A를 말하는데 C를 가져오고 더구나 어거지를 피고 있습니다 전 중국인들과 위키피디아에서 싸운 적도 있고 님이 말한 부여랑 발해를 우리 역사로 넣기 위해서 컬럼비아 대학교에 동북아역사재단의 부여 고구려 발해라는 책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보낸 사람입니다 책도 직접 보냈고요...정작 사학과도 아닌 저도 그렇게 했는데 여기 유사역사학자들은 도대체 뭘 우리나라을 위해서 했습니까?
     
꼬마러브 17-06-12 15:35
   
우리나라을 - 우리나라를

앞에 받침이 없을 때는 을이 아니라 를을 써야 합니다. 한국어 조금 더 공부하시길
          
고이왕 17-06-12 15:46
   
맞춤법까지 신경쓰니까 님 맞춤법도 체크해야겠네요
               
정욱 17-06-12 17:01
   
ㅋㅋ ㅂㅅ
     
Marauder 17-06-12 17:47
   
     
북명 17-06-12 21:21
   
굉장히 뭐라 할까 어쩌구니가 없습니다

굉장히 뭐라 할까 일본놈 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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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9 [일본] 일본 여당, 소녀상 조기철거 촉구 내각에 요청키로 (1) 블루하와이 01-26 1299
2948 [한국사] 중국의 역사 사기질 (7) 감방친구 11-09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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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0 [한국사] 중국 파오차이에는 없는 세가지 ㅡ 김치와 어떻게 … (2) mymiky 02-04 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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