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대의 나이에 다시 학부에 입학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요즘 들어서 굴뚝 같습니다.
다시 사학을 선택해 학부에 입학, 졸업 후 석박사를 따고 공부와 연구를 계속해 우리 역사의 쟁점을 정리하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박사과정만 마쳐도 50 은 훌쩍 넘을텐데 대체 '소는 누가 키우나?'하는 걱정이 들어서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10 대 시절부터 높아서 그 시절부터 근 30 년을 적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은 역사, 문화인류학, 의복사, 민속학 등의 독서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흥미의 수준이어서 독서내용을 정리한다든가 외운다든가 하지 않고 그저 읽는 수준이다 보니 이곳의 여러분처럼 과학적 방법론으로 자료를, 물질적 사실을 분석하고, 그를 근거로 시대를 개관한다든가 첨예한 쟁점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근사한 주장을 펼치지 못 하는 수준입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 이후 근 20 년 쟁점의 현장을 구경하면서 항상, 또 더욱 더 든 생각은
맞서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다 한 곳에 정리하여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지럽고 부딪히는 양단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한 곳에 정리하면 그래도 보다 사실에, 진실에 근사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사군(낙랑군 위치, 왕검성 위치, 패수 위치 등 제반) 문제에 있어서
ㅡ 사료해석에 있어서는 소위 강단비주류사학계의 주장이 훨씬 타당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른 바 1차 사료를 중심한, 기록에 근거한
ㅡ 그런데 고고물질문화 상으로는, 지난 해와 올해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상고사 토론회에서 이후석 박사가 제시한 바와 같이 1차 사료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의 여러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소위 강단주류사학계가 써온 통설, 주류설로 국사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배우면서 의문이 종종 들곤 했습니다
ㅡ 고인돌은 연원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든다는데 왜 모습을 원시인처럼 묘사했을까
ㅡ 연나라는 전국7웅 가운데 제일 약했다는데 위아래로 털리면서 어떻게 요서요동의 길고 거대한 정복지를 유지했을까
ㅡ 한나라는 세계 최강대국이라면서 왜 천문학적인 경비를 써가면서 수 년에 걸쳐 한반도 북부의 조만한 나라인 위만조선을 정벌하려 했을까
ㅡ 세계 최강대국 한나라가 왜 위만조선과의 전투에서 매번 패했을까
ㅡ 낙랑토성이 왕검성이라는데 어떻게 이렇게 작은 토성을 세계 최강의 한나라 대군이 함락을 못 했을까
ㅡ 전투에서는 매번 패했어도 전쟁에서는 이겼는데 왜 자기 지휘관들은 벌주고 위만조선 앞잡이들은 상주었을까
ㅡ 왜 우리 역사에서는 위만조선은 강조하면서 동시대의 부여는 찬밥 취급할까
ㅡ 부여가 위만조선보다 먼저, 또는 비슷한 시기에 건국되었고, 위만조선을 계승했다는 나라는 없어도 고구려, 백제, 심지어 발해까지도 부여를 계승했다고 하는데 왜 부여는 찬밥 취급일까
ㅡ 왜 우리 문화를 기술할 때 항상 "~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비주체적으로 기술할까?
ㅡ 청동기와 토기는 시베리아, 철기는 중국, 의복은 호복
ㅡ 정말인가?
새로운 연구 결과, 발굴 자료가 제시가 되면 이것이 검증을 거쳐서 반영이 돼야 하는데
ㅡ 너무 느리고
ㅡ 걸핏 하면 유사역사학 취급 받는 현실
양단의 주장과 근거에 허점이 있는데 무턱대고 식민사학이다, 환빠다 몰아세우는 극단성
역사대중은 학문의 문제에 판단력과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학계의 오만함
ㅡ 우리가 자라나며 배운 게 바로 근대적 교육으로 과학적 사고력, 합리적 추론력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