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연구에 있어서는 자료의 빈약 때문에 후대의 기록을 통해서 그 앞의 시대를 유추하는 연구 방법이 채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당시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거나 당시의 기록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불가피한 경우에 하는 것이며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경우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위치와 강역, 국가구조, 사회성격 등을 밝힐 수 있는 기록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에 관한 종래의 연구를 보면 매우 늦은 시대의 자료의 의존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이미 변화된 후대의 상황을 고조선시대에다 복원시킬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방법은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사료 활용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으로 매우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국고대사신론>> 중
이어서
고조선에 관한 문헌 사료는 한국 문헌과 외국 문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은 한국사의 일부분이므로 마땅히 한국 문헌이 기본사료가 되어야 하겠다. 고조선에 관한 기록을 싣고 있는 한국 문헌으로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가 있다. 근세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와 <응제시주>에 고조선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실려 있는 내용을 담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들이 편찬된 시기는 앞에 책들보다 늦으므로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고조선연구>> 18쪽
고조선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사기 조선열전>이 가장 기본되는 사료라고 생각하는 학자가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조선열전>이라는 편명때문에 그것이 한국 고대사, 특히 고조선에 관한 가장 기본 되는 사료일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고조선, 기자조선, 한사군의 조선현 등을 그냥 조선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중국 문헌에 조선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면 그것이 어느 조선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확인해보아야 한다. <사기 조선열전>의 조선은 위만조선을 말한다 . -23쪽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을 포함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후한서 동이열전>보다는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이 더 가치 있는 사료라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삼국지>가 <후한서> 보다 먼저 편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국지>가 <후한서>보다 먼저 편찬되었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이 <후한서 동이열전>보다 사료로서 가치가 더 높다는 견해는 옳지 않다. <후한서>와 <삼국지>가 동일한 시대에 관한 역사서라면 먼저 쓰여진 것이 사료로서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후한서>와 <삼국지>는 동일한 시대에 관한 역사서가 아니다. <후한서>는 중국의 동한시대에 관한 역사서이고 <삼국지>는 동한의 뒤를 이은 삼국시대에 관한 역사서이다.
<삼국지>가 먼저 쓰여진 책이라 하여 중국의 동한시대를 연구하는 데 <삼국지>를 기본사료로 삼을 수는 없다. 동한시대를 연구하는 데는 <후한서>가 기본사료가 되는 것이며, 삼국시대를 연구하는 데는 <삼국지>가 기본사료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와 만주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도, 중국 동한시대의 한반도와 만주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는 <후한서 동이열전>이 기본사료가 되는 것이고 중국 삼국시대의 한반도와 만주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는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이 기본사료가 되는 것이다. - 25쪽
그러므로 필자가 얻어낸 결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서한시대나 그 이전의 문헌들로부터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모든 기록의 내용을 뒤집을 만한 기록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충분한 근거 없이 그보다 훨씬 후대의 역사서인 <후한서>나 <삼국지> 또는 동한시대 이후에 쓰여진 문헌들의 기록을 근거로 하거나 그러한 기록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역사 연구의 기본방법을 벗어난 것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학문도 학술 논쟁도 될 수 없는 것이다. - 195쪽
- 윤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