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실제로는 매번 일만있으면 백제가 신라를 털었고 진흥왕 때 잠깐 빼면 심지어 의자왕 때도 마찬가지아니었나요. 생각해보면 웃긴게 백제가 황산벌에서 동원한 군사가 5천인데 신라가 5만... 당나라 때문에 지방호족들이 병력을 동원 안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정도 병력차면 신라 혼자서도 이길것같은데...
그런 인식이..신라의 역사왜곡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즉, 백제는 황산벌전투에 패배해서 망한 것이 아니란 겁니다.
실제로 절대적인 수의 열세였던 백제의 입장에서는.. 수륙으로 들어오는 나당연합군을 막기 위해, 군사를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고 - 따라서 5000명의 결사대라는 것도.. 의자왕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병사 숫자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분산된 백제의 군사 중 하나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홤산벌전투에서 밀리자..백제는 황산벌에 투입된 병사를 바로 퇴각시켜..백강전투에 합류하게 합니다.
흑요석 님이 말하는 마한이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마한과 같은 존재 인 것에 대한 의문이 있기에 그런 것이죠.
마한은 아직도 미스테리한 왕국으로 여깁니다.
밑에 글들에서 백제는 요동이나 요서 또는 산동에서 건국 하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그럼 요동이나 요서에 있었던 온조왕이 배를 타고 영산강 유역을 정복 했다는 말이 됩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기록도 있어야 하는 것 이고요.
그런데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모두 부정하면서 마한에 대한 기록만을 인정 하자는 것이 지금 주류학계의 의견 이에요. 참으로 뻔뻔한 수작이란 말입니다. 저 영산강 유역의 유적이 마한이라고 주장한 이는 이병도 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도 중국기록과 일본서기란 말이죠. 일본서기???? ㅋㅋㅋ
적어도 저 영산강 유역의 문물이 마한 유적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는 충족 해야 한단 말입니다. 신뢰성 있는 기록과 마한이라고 명문이 써 있는 어떤 유적이요.
영산강 유역의 유적이 마한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 자체가 없습니다. 다른 어떤 존재의 유적이란 말이죠.
이게 정답이지요. 말도 안되는 뇌피셜로 백제의 영역을 최소화시키고, 임나일본부를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주류사학계의 행태를 보면.. 고려대 최재석교수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 한국 고대사학자들을 한국인의 가면을 쓴 일본인이라고 칭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라는 말밖에 나오질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