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이 전성기의 고대 로마제국과 동등히 비교되기에는 부족하고, 동로마 제국이 그리스 제국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말씀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이지만,
나라마다 팽창기-전성기-쇠퇴기가 있다면, 동로마도 여러 시대에 걸쳐 다방면에 그 화려한 획을 그은 후 점차 쇠퇴기를 맞이했다고 생각됩니다.
동로마 초기에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두각을 나타내며 불과 수천의 군사로 10만이 넘는 반달 왕국과 싸워 고대 로마제국의 아프리카를 수복한 적이 있고,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 같은 장군 등이 또 다시 불과 수천에서 만 여명의 병력만을 가지고 역시 10만이 넘는 동고트 왕국과 싸워 로마를 수복하고 북이탈리아만 남기며 이탈리아 전체를 거의 회복하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중세를 거치며 동로마 군사 숫자가 잘못 필사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전성기 동로마 제국의 군사 편제는 동시대 지중해 국가들 중에 기병+보병+궁병의 조합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제국의 후기처럼 동로마가 점차 방어에 치중하다 보니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전투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변에 다양한 적국들이 많다 보니 그에 따른 방어를 위해 적절한 무장, 훈련 체계가 조직화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서방과 동방과의 문화적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므로 동로마 제국이 사실상 서방을 여러 면에서 방치, 무시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사실 서방의 신성로마제국도 초기에는 거창하게 들렸으나, 나중에는 별로 신성하지도, 로마적이지도, 제국도 아니라고 까였던 것을 보면...동방의 동로마 제국은 더 나은 상황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근대의 유명 역사가들이 대체로 동로마를 좋지않게 취급한 탓에, 이 역사가들의 영향을 받은 많은 후세 역사가들도 동로마를 오랫동안 평가절하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는 국뽕도싫다 님과 같은 분들에게 동로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주효한 역할을 하였죠.
그나마 현대에 들어서 동로마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면서 앞서 근대의 평가는 크게 반전하게 됩니다. 지금에 이르러서 동로마는 유럽의 수호자, 로마의 정통 계승자, 로마의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보존한 금고 등으로 상당히 호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것이든 한번즈음은 보셨을 것입니다.
위에서 많은 분들이 다루어주셨지만, 동로마제국은 서유럽국가들과 달리 언제나 막강한 세력을 가진 국가들과 대립해왔습니다. 그것도 한면이 아니라, 유럽 본토와 동지중해 일대 전반에 이르는 드넓은 면이 모두 적으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게, 고대 로마는 더 넓은 영토를 지켜내었으니 동로마가 역량이 크게 떨어진 것이 아니냐고 하시지만. 로마 전성기때는 로마를 본격적으로 위협할만한 세력이 몇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로마에 공세적인 입장이 아니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동로마는 그 존속시기에 마주한 모든 세력들이 공세적인 입장이었고, 게다가 지역 단위를 기본적으로 평정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들이었기에, 동로마는 언제나 많은 자원을 소모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시는 내용에서 로마 문화의 정수와 그 깊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면서, 동로마를 단순히 군사적 팽창에 미온적이었다, 세력권이 위축되었다 라는 식으로 비판하시는 것은 매우 그릇된 평가입니다. 이는 동로마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아니하고, 수박 겉핡기에 따른 폐해라 생각됩니다. 동로마 역사에 관한 현대 학자들의 최신 저서들을 여럿 대여하여 읽어보시기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국내에도 동로마 역사에 대해서 상당히 진취적으로 다루고 있는 역사학도가 있으므로, 그 분의 자료를 원하신다면 링크를 공유하겠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존 노리치의 비잔틴 연대기 3권을 모두 읽어보셨다면 더더욱 이런 박한 평가는 말이 안되는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각 황제 시기 때의 디테일한 부분들을 열거하는 것만 보더라도, 동로마 제국이 서유럽보다 약하다고 하는 것도 매우 이상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서유럽이라고 뭉퉁그려 표현하시는데. 서유럽이 본격적으로 상비군 체제를 완성하게 된건 10세기 안밖부터인데. 이미 상비군에 준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던 동로마보다 군사력에서 약하다고 평가하시는 건 도대체 어딜 보고서 그렇게 생각하신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집트와 안티오크 등의 주요 도시가 함락된 이후로도 베네치아가 이를 강탈해가기까지 동지중해와 흑해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제적 기반에서 운영된 상비군 체제를 무엇때문에 그렇게 폄하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연대기를 보셨다면, 동로마 제국을 앞뒤로 두들기는 세력들과의 전쟁기간과 지역 등이 다 나와있을탠데. 그 더러운 빈도와 규모를 보고도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는게 매우 이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유럽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신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말입니다.
라틴제국의 성립과정도 땅따먹기라고 간단히 표현하시는 걸 보면, 제대로 정독을 하셨는지 조차 심란합니다. 같은 책을 보았는지 정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비잔틴 연대기 3권을 대충 읽으셨다고 믿고 싶지 않기에, 이를 보충해줄 게오르크의 저서도 참고하기 좋고, 주다스 헤렌의 저서들도 좋은 편이니 이도 참고하여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http://blog.naver.com/bc586 블로그를 참고하시면, 국내 역사학도가 동로마 제국의 세심한 내정과 기록, 상황들을 다루고 있으니 이또한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로마는 로마를 점유해야 로마 입니다. 로마가 북부의 에투루리아를 점령하고 이들의 발달된 석조건물에 감탄한 일부 로마인들이 로마를 이동하자는 주장에 로마는 로마에 있어야 로마다 라고 로마에 그냥 있습니다.
이는 징키스칸이 몽골은 초원에 있어서 몽골이다 라는 말과 영국 앵글로 족은 말을 탈줄 알아야 한다 등등과 같은 말이죠. 최근에는 한국은 서울이 수도인 나라다 라는 말도 있었죠.
똑 같이 로마제국 이나 로마의 계승자를 자처 할려면 로마시 지역을 지배해야 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로마지역을 상실한 동로마 제국은 로마제국이 아니에요 그래서 비잔틴 제국이라 부르는 것 이고요.
어차피 로마제국은 너무 광대한 국토를 관리 하기 어려워 제국을 4등분 해서 관리했고 그러다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서 관리 한 것 뿐 입니다. 본질은 로마를 수도로 하는 로마제국의 한 지역이란 말이죠. 실제는 서로마 제국이 진짜 로마제국 입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시점과 동로마 제국이 로마를 탈환 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로마제국은 망한 것 입니다.
그래서 신성로마제국이 끊임없이 이태리 공략을 하게 되는 것인데 결국은 이태리 공략을 실패 했기에 신성로마제국 역시 로마제국이 아닌 것 입니다. 오히려 프랑크 제국이 이태리 전역을 점령 했기에 프랑크 제국이야 말로 실질적인 로마제국 인것 이죠.
로마시민은 로마시에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 이고요.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속주민 입니다. 그리고 속주민 가운데 로마시민권을 가질수 있는 사람도 굉장히 제한적 이었고요.
다시 말해서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 속주를 기반으로 하는 제국이란 말이에요. 당연히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극 소수이고 로마시가 사라지는 순간 로마시민권을 무용이 되는 것 입니다.
현대도 마찮가지 입니다. 미국 시민권이 미국이란 나라가 사라졌는데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란 말입니다. 워싱턴의 주인이 미국이 주인이지 그럼 누가 미국의 주인이란 말입니까? 워싱턴이 사라지면 미국도 사라지는 것이고 동경이 사라지면 일본이 사라지는 것이고 서울이 사라지면 한국이 사라지는 것이란 말이에요.
지금 누가 로마제국의 전통을 이었을 까요? 동로마 제국이 있었던 그리스? 아님 터어키? 당연히 이태리죠. 이태리가 로마시를 점유해서란 말입니다. 심지어 지금의 이태리는 원래의 로마인도 아니고 게르만 혼혈 내지는 아예 게르만족 입니다. 하지만 로마시를 점유 하기기에 로마의 전통을 잇는다고 보는 것이란 말이죠.
잘못알고 계신 것이 있는데. 로마 시에 사는 사람이 로마시민인게 아니라, 동맹시를 제외한 라틴 영역 전반의 시민들이 로마시민입니다. 비좀와라 님이 말씀하시는 로마시민의 개념은 로마 공화정 초-중반에 이르는 매우 일부의 시간대를 일컫는 협소한 의미의 시민개념입니다. 그럼 이것만 로마의 역사고, 그 이후는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고 부정하시는 건지 의미심장합니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또 하나의 수도로서 건립됩니다. 모든 기능과 역할을 로마와 동일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건설되었으며, 콘스탄티노플의 전신이 되는 도시는 작은 소도시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 속주만이 아니라, 그리스, 터키반도를 비롯한 동지중해연안, 이집트, 흑해 일대를 모두 아울러서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이를 너무 제외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로 충고드리는 말씀인데. 고대 역사를 현대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현대로 재단하기에, 괴리가 생기고 안맞는 부분이 연달아 생기는 것입니다. 과거 유럽인들의 관점으로 볼까요?
서로마제국 붕괴 이후, 로마 제국의 계승과 관련해 여러 일화가 있지만. 동로마제국이 쇠락하기 전까지만해도, 자칭 '로마제국의 계승자'라고 이야기하는 프랑크왕국이나 신성로마제국 모두 동로마제국에 그 의중을 확인하였습니다. 로마가 진짜 멸망해서 사라진 것이면 고대인들의 인식에서 동로마는 어차피 가짜고, 거리도 멀고, 당장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도 아니어야 하는데. 왜 자신들이 로마의 계승자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서 일일이 그 의중을 확인했을까요?
당대 유럽인들에게는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이라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확립되어있었기에 나타난 현상인 것입니다.
웃기는 이야기 알려드릴까요? 이민족의 대대적인 침략과 이민족 왕이 스스로를 로마황제로 참칭하는 시기(사실상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알려진 시기)에, 서로마 일대에서 로마의 역할을 하며 그나마 지탱하던 지역이 '라벤나'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라벤나는 동로마 제국이 그 아무것도 남지않은 로마 지역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더 오랜 시간동안 점유하였습니다. 동로마가 진정 로마가 아니었다면, 이 라벤나를 확보하고 유지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지금 누가 로마제국의 전통을 이었느냐는 질문에. 로마의 황제에서부터 의원, 시민(속주민을 포함하여) 모두가 그 로마라는 시스템을 인정하였던 영역. 그 모두가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단지 전통은 파편화되고, 소실되기도 하고, 그 영역의 거주민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그게 어떠한 형태로 변형이 되고 일그러졌더라도 결국엔 그 모두가 계승한 것입니다.
이탈리아가 로마를 점유해서 로마의 전통을 이었다? 그 파괴되고 수백명밖에 살아남지 않은 황폐한 도시를 점유했다고 로마의 전통을 이었다? 로마 제국의 시스템과 문화를 계승한 수많은 지역과 도시와 퍼져있는 시민들을 무시하고 단지 그 아무것도 없는 땅을 점유했기에 전통을 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로마사를 가장 일그러진 관점으로 보고 계신 것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좀와라 님의 관점은, 로마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우리와 다른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서도 결국엔 부정적인 결과로 오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점유했기에, 그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단순화시킨다면. 우리는 중국과 사이좋게 고구려사를 나누어 가져야 하고(빼앗기거나), 현대 독일은 자국의 성립과정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프로이센을 제외하여야 하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도와 수도가 수없이 더럽게 변한 동유럽 일대는 정통성없는 불량국가들만 가득할 것입니다.
'만일 인간의 기준으로 로마제국을 구분하면 당시 로마의 속국인 그리스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갈리아(영국 프랑스 스페인) 모두가 로마인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로마인 입니까? 당연히 아니죠.' 라는 말씀에 저는 반대라고 답하겠습니다.
완전한 의미의 로마시민권은 제정 로마 중반기부터 의미가 퇴색됩니다. 참정권을 제외한 시민권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었고, 참정권만으로 완전한 로마 시민을 구분하기에는, 오현제와 군인황제 시기를 거치면서 참정권의 의미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원로원 의원과 평의회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반대로 총인원은 거의 배로 늘었으나, 그 인원의 출신은 로마 제국 각기로 다변화됩니다.
황제는 형식적으로 원로원의 재가를 받는다지만, 전반적으로 전임 황제가 결정한 이가 황제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극단적인 경우로 미리 준비된 후보자가 없거나 군인황제 시기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만 형식적인 선출(그마저도 부정당하기 일수)을 하다가, 로마 제정 말기에는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집니다.
비좀와라 님이 생각하시는 로마의 그 '시민권'과 '선출방식'이 갖는 의의는 이미 제정 로마 시대때 붕괴되었는데. 그럼 그 때 로마는 사라진 것입니까? 이는 단순히 방식과 형식이 달라진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방식과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 동로마 제국입니다. 시스템을 생각하신다면, 동로마는 훌륭하게 서로마의 시스템을 가져가 자기들 입맛에 맞게 수정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초에 훌륭한지도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그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동서분열의 단초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누가 로마제국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현대 로마제국의 권위자들 상당수가 동로마 역시 로마 제국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설령 완전한 계승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의 불완전한 계승자라는 관점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모두가 그렇게 여긴다고 말씀하시는 근거가 궁금합니다. 근대에 동로마를 폄하하던 시기의 구닥다리 관점을 아직도 현재의 주류 관점으로 착각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반하는 학자와 단체를 이야기해주시길 바랍니다. 공신력있는 단체나 학자의 의견이 있다면, 이와 대비되는 동로마사의 권위자들의 의견도 같이 결부해보도록하죠.
그리고 카톨릭에 대해서 잘못알고 계시는데. 카톨릭은 로마 하나만이 중심이 아닙니다.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로마, 칼데아, 곱트 등 본래부터 각 지역을 기반으로 갈라진 상태로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총대주교좌이며, 교황이 이들보다 더 우위에 있거나 한게 아니었습니다. 로마 교황의 권위가 인정된 것은, 이슬람 세력의 대두로 동방교회들이 몰락하고, 동로마제국의 영향력이 제한되면서부터 인정된 것이지. 그 이전부터 각자 노선으로 향한 것입니다.
하 정말.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라면 차라리 편할 정도로, 잘못알고 계신 것들이 많은데. 종교적인 대립으로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이것도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근본적인 원인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1. 제 3차 십자군 전쟁 이후, 십자군이 오리엔트 지역에 상륙할 안전한 해안 지역을 크게
상실하였고. 동로마 제국은 앞선 십자군의 배신(동로마 입장에서)으로 오리엔트 지역의
십자군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단절하였으며,
2. 제 3차 십자군 전쟁 이후, 십자군 전쟁에 대한 열기는 수그러들어 당초 기대한 병력조차 모이지 못할 정도였으며. 이전 십자군과 달리 유력한 왕과 제후의 참여가 없는 상태였고,
3. 제 4차 십자군 전쟁에서 선박과 물자를 준비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기대 이하로 저조한 십자군 참여로 인해 크나큰 경제적/정치적 손실을 염려하였고.
4. 제 4차 십자군 전쟁 이전,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로마 제국과의 마찰로 동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대한 상업적 지배권을 위협받고. 더 나아가 제노바 등의 경쟁자들이 성장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꼇으며.
5. 결국, 제 4차 십자군의 지휘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타파하려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무엇보다 비좀와라 님은 이걸 종교적은 문제로 파악하고 계신 것에 크나큰 오류가 있는데. 제 4차 십자군이 진군한 경로에는 '헝가리가 지배하는 같은 카톨릭계 도시인 자라'가 있었고, 자라는 이 4차 십자군에 의해 철저하게 약탈당하였으며, 이후 동로마 제국의 내부 문제로 인해 폐위된 황제인 알렉시오스가 제 4차 십자군에게 자신을 도와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웃긴건 당대 십자군을 주창하였던 인노켄티우스 3세 교황은 이 자라에의 공격도, 콘스탄티노플로의 공격도 모두 부정하였습니다.
자, 교황이 거부하였고, 상인들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도제가 주도하는 제 4차 십자군이 이런 매우 기본적인 배경을 두고서도 여전히 종교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참담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뒤에... 하 말도 안되는... 차마 이렇게 표현하기 싫었지만, 헛소리에도 가급적 세세하게 답해드리는 게 도리이니 계속하겠습니다.
카톨릭이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었을 때, 카톨릭은 앞서 로마 각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비등한 위치에서, 각자 믿는 교리대로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각자 밎는 교리 대로 말입니다. 각자 믿는 교리.
서로 갈등도 있고 반목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본격적으로 표면화 되면서 이단 여부가 최초로 판가름하게 된 것은 동로마제국의 기반이 되는 콘스탄티노플을 세운 콘스탄티누스 1세입니다. 게다가 이걸 판가름한 장소는 다름 아닌 니케아였죠. 니케아가 어딘 줄 아십니까? 콘스탄티노플 건너편에 터키반도에 있는 대도시입니다. 이때는 아직 동서로마 분열되기 전이니, 말씀하시는 내용과 정 반대의 사실이지 말입니다.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이 둘이 형식적으로라도 서로 비등한 관계라는 건 앞서 이야기했지만, 혹여 글을 읽으시는 내내 잊어먹으실까봐 다시 한 번 언급해드립니다.)가 서로 갈라지게 된건 서로마는 이미 옛적에 멸망해서 없어지고, 이탈리아는 소국가들로 아웅다웅하던 80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전에도 반목하고 몇차례나 있었던 공의회 내용도 로마 교황들이 거부한 적도 있었지만. 재미있게도 로마 교황이 반대되는 공의회를 열게 되는 건 80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이즈음 되어서야 로마 교황이 서유럽과 함께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동로마는 앞뒤로 몰려드는 타국의 침략에 동분서주하고 있었을 시기였으니 말입니다.
이 때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다른 총대주교좌들은 이슬람 세력이 먹히거나, 크게 공격받아 세력이 축소되던 시기였다고 쳐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아주 단순히, 서유럽에서 교황을 떠밀어준다고 교황만이 올곧고 정당한 로마 정통성과 문화권의 수호자이자, 카톨릭의 진실된 정점이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이라면.
저는 비좀와라 님의 역사적 지식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고, 아니 이미 크게 실망하였지만.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른 분들이 판단하시기에 어떨진 몰라도. 적어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된 지식과 모자란 지식으로 그리고 현대적인 기준을 자의적으로 고대사에 대입하면서 보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