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62년경에 생긴 일이다. 소위 말하는 3년 자연재해(역주-중공 정권의 무모한 대약진운동으로 4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아사한 시기)가 막 끝날 때쯤에 누군가 고대의 비방이라며 사람의 뇌수로 제조한 보약 제조법을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선물했다. 저우언라이는 이를 즉시 마오쩌둥에게 바쳤는데 마오쩌둥은 당시 매우 기뻐하면서 즉시 사람을 동원해 이를 제조하게 했다. 이 약은 이후 ‘저우궁탕(周公湯)’이라고 불렸던 그런 보약을 말한다.
이것을 먹고 난 마오쩌둥의 성욕은 대단히 왕성해졌다.
이후 마오쩌둥은 이 보약을 며칠에 한 번씩 즐겨먹었으며 나중에는 일부 지도자들까지 청해 함께 먹기도 했다.
이 일은 극히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약은 보통 중난하이(中南海-베이징 중공 관리들의 집단 거주지) 중앙경위국에서 비밀리에 사람을 살해하고 뇌를 꺼내 특정 주방장에게 맡겨 제조하게 했다. 이후에는 사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뇌를 꺼냈는데 이 방법으로 만든 약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주방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람들은 이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 약재가 사람의 뇌인줄 모르는 일부 지도자들은 이 약을 마음 편히 먹기도 했다.
마오쩌둥은 기분이 좋을 때면 다른 지도자들을 청하는데 류사오치(劉少奇-제2기 국가주석을 역임)와 다른 원로들을 청해 함께 먹었다.
단지 린뱌오(林彪-중공의 군사지도자로 마오쩌둥을 암살하려다 실패함)는 이를 한입 먹는 척 하다가 나중에 화장실에 가서 토해냈다. 펑더화이(彭德懷-중공의 군사지도자로 대약진운동을 비판하다 숙청당함)와 린뱌오는 나중에 이 약으로 인해 마오쩌둥을 크게 비난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던 마오쩌둥 시기에는 이런 일이 많았지만 마오가 죽은 후에는 기본상 중지됐다. 이 일은 다만 중공 고위층에서만 알고 있다. 약을 만들었던 주방에서도 한 두 사람밖에 알지 못한다. 만약 비밀을 누설하게 되면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주치의도 이 사건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약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지만 마오쩌둥의 초대를 받을 때면 이를 공손히 받아먹었다고 한다.
마오쩌둥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됐던 화궈펑(華國鋒-전 국가주석)에서 덩샤오핑에 이르기까지 이 약에 대한 관심도는 차차 사라졌다. 하지만 전 국가주석 장쩌민은 최고 권력을 잡게 되자 여러 차례 시험 삼아 이 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는 문화혁명 시기처럼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고 뇌를 꺼내 먹지 못했다. 게다가 90년대 중반에는 장쩌민이 아직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당시 리루이환(李瑞環)과 웨이젠싱(尉健行) 등 지도자들이 늘 장쩌민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쩌민은 사람의 뇌를 먹으면 정력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늘 고민했지만 나중에 대체품으로 광둥성에서 보내준 영아탕을 받고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