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지금의 요서지역은 현 요하를 기준으로 이르는 말이고, 고대의 요서는 고대 요수인 현재의 난하의 서쪽에 있었고 그 동쪽, 즉 지금의 요서는 고대의 요동이었으니 고구려의 요동은 바로 그 지역인겁니다. 발해가 고구려의 영토를 수복하면서 그 요동땅까지 차지했을테니 지금의 심양을 넘어서 현 요서를 차지한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입니다.
이런 지도를 보니 속이 아주 후려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부여의 강역지도와 고구려의 전성기 강역지도도 그려주세요
부여는 사방 2천리라고 했으나 또한 숙신(읍루-물길)을 복속하고 있었고
이 숙신이 연해주 흑룡강 중하류에 있었습니다
하니 이 지역까지도 부여 강역인 것이죠
고구려가 후에 물길의 반란을 제압하고 부여를 흡수하지 않습니까
또한 몽골 동부에서 고구려성이 발견되었고
지금의 북경지역이 한 때 고구려의 강역이었지 않습니까
한가지 부탁아닌 부탁이... 저같이 전체적인 흐름만 알고 세부적인 내용을 잘모르는 사람은 고대 주요도시가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려면 주요 도시의 위치를 좀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ㅎㅎ 그래야 검색도 해가면서 왜 저당시에 포함되는지 빠지는지 찾아볼수 있거든요 ㅜ.ㅠ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진왕(震王)이라 자칭하였다. 발해 북쪽을 영역을 병합하니 영토가 사방 오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漢末 為 公孫度 所據, 傳子 康 孫 淵 自稱 燕王, 建元紹漢, 魏滅之. 晉 陷 髙麗, 後歸 慕容垂, 子寳 以勾麗王安 為 平州牧 居之. 元魏 太武遣 使 至其所居平壤城, 遼 東京 本此. 唐髙宗 平 髙麗 於此 置 安東都䕶府, 後為 渤海大氏所有. 大氏 始保 挹婁之東牟山, 武后萬歳通天中 為 契丹盡忠 所逼, 有 乞乞仲象者 度 遼水 自固, 武后 封為 震國公. 傳子 祚榮 建 都邑 自稱 震王, 併吞 海北, 地方五千里, 兵數十萬. 中宗 賜 所都 曰 輝罕州, 封 渤海郡王. 十有二世 至 彛震, 僭號 改元 擬建 宫闕, 有 五京十五府六十二州, 為 遼東盛國. 輝罕州 即 故 平壤城也, 號 中京顯徳府.
한나라 말기에 공손탁(公孫度)이 점거하여 아들 공손강(公孫康)을 거쳐 손자 공손연(公孫淵)은 스스로 연왕(燕王)을 자칭하고 소원(紹漢)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위(魏)나라가 멸망시켰다. 진(晉)나라가 고려(高麗 ; 고구려)를 함락시켰고, 나중에는 모용수(慕容垂)에게 귀속하였다. 아들 보(寶)는 고구려 왕 안(安 ; 광개토왕)을 평주목(平州牧)에 임명하여 거주케 하였다. 원위(元魏 ;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거주하는 평양성(平壤城)에 사신을 보냈으니, 요(遼)나라 동경(東京)이 바로 이곳이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였지만, 나중에 발해(渤海)의 대씨(大氏)가 차지하였다. 대씨는 처음 읍루(挹婁)의 동모산(東牟山)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후(武后 ; 측천무후) 만세통천(萬歲通天) 년간에 거란(契丹) 이진충(李盡忠)이 핍박을 받자 걸걸중상(乞乞仲象)이 요수(遼水)를 건너 스스로 지키니 무후가 진국공(震國公)에 봉하였다. 아들 대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진왕(震王)이라 자칭하였다. 발해 북쪽을 영역을 병합하니 영토가 사방 오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나 되었다. 중종(中宗)이 도읍한 곳에 홀한주(忽汗州)라는 명칭을 내려주고 발해군왕(渤海郡王)에 책봉하였다. 12대 지나 대이진(大彝震) 때에 참람되게 연호를 고치고, 궁궐을 본따서 짓고,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두었으니 요동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 홀한주는 바로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 (中京顯德府)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