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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5 10:47
[세계사] 630년에 동돌궐이 항복하고 당태종이 유목민의 칸이 되다
 글쓴이 : 옐로우황
조회 : 3,637  

630년 당나라가 동돌궐을 복속시키는 사건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중국사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왕조는 당唐이다. 원이나 청에 비해 “한족의 왕조”라는 정체성이 있고, 송나라 못지않은 문물을 이룩한 데다 명나라 이상의 국위를 떨쳐, 당시 이슬람제국과 함께 세계 2대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왕조가 당이기 때문이다. 그런 당나라를 만든 주인공이 다름 아닌 태종 이세민(재위 626년~649년)이다. 그의 연호인 ‘정관(貞觀)’에서 딴 “정관의 치”는 오랫동안 신화적인 이상정치의 시대인 “삼대(三代)” 다음 가는 최고의 태평성대로 일컬어졌다.
 
중앙유라시아 초원에서 552년 돌궐(突厥,투르크)이라는 알타이 산맥의 유목민 부족이 국가를 만들고, 이전의 흉노를 능가하는 대유목 제국으로 성장했다.
6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자 수나라는 서돌궐이 동돌궐을 공격하도록 부추겨 동돌궐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동돌궐은 수나라에 신속하고 둘 사이는 군신관계가 성립되었다. 수나라와 돌궐 사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새롭게 당나라가 건국되는데,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린 당나라는 돌궐에게 신하로서 복종하고 양국의 군신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중국의 혼란에 편승한 돌궐의 우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동돌궐의 새로운 카간인 힐리 카간(頡利 可汗, 620~630년 재위)은 이제 막 건국한 당을 자주 침략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즉 그는 내부 문제와 철륵鐵勒(투르크)계 부족들의 반란, 고르지 못한 기후로 인한 가축의 손실이 겹치면서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당태종은 돌궐의 분열을 최대한 유도한 끝에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공격, 힐리가한을 포로로 잡아버렸다. 이로써 630년 동돌궐은 종말을 고한다.
 
당태종은 서방의 토욕혼(635년), 서남의 토번 역시 무찔렀고, 멀리 서역의 고창(640년), 구자까지 정복했다. 사실 당태종 본인도  선비족 과의 혼혈이므로 북방민족다운 성격이 없지 않았지만, 실로 수백 년 동안 이민족의 침략 앞에 수세를 면치 못한 한족 왕조가 공세로 돌아섰던 것이다. 당태종은 귀순한 북방민족에게서 ‘ 천가한 (天可汗)’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한족의 황제인 동시에, 북방민족의 맹주로 군림한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무대가 이제까지는 중국뿐이었지만 여기서 비로소 중앙유라시아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역사적 사례로 17세기 몽골인들이 청조淸朝 황제를 칸, 18세기 카자흐인들이 러시아의 차르를 차간 칸(白王)이라 부르며 그들의 지배를 수용한 것이 있다.
 
당인唐人이라는 이름을 낳고, 그 당인들의 국가 당이 세계제국으로 거듭나고 무너지기까지. 당은 한인들의 국가가 아니었다. 유목민과 한족, 즉 胡와 漢이 결합한 국가였다. 당인들은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민족을 배경으로 등장한 사람들이었다. 640년경의 정황으로서 8000인 이상의 외국인 유학생이 장안의 국자학(國子學)에서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당인들에게 문명과 야만, 화하와 이적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차별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개념이 아니었다. 당이 성장하고 강성해진 배경에는 유목민 역시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돌궐은 630년부터 약 50년간 당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하여 증흥을 꾀했으나 744년에 철륵의 일파인 위구르에게 멸망하였다. 서돌궐은 일시 위세를 떨치다가 결국 당에게 복속되었다.
고구려는 동돌궐이 멸망한 630년 다음 해에 곧바로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한다.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630
 

1.png
- 630년의 돌궐과 당
 
자세한 내용은 http://yellow.kr/blog/?p=1004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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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비두밥두 17-05-05 11:11
   
부여의 땅을 왜 고구려가 아닌 투르크가 차지하고 있는지?

거란이나 말갈의 땅도 왜 투르크가 뭉뚱그려서 차지하고 있는지?

고구려 동쪽 요충지인 책성은 두만강 일대에 존재했다고 비정합니다만, 두만강 동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고구려의 동쪽 경계가 두만강으로 되어있는지?

지적할 것이야 더 있지만, 이런 초보적인 오류부터 고쳤으면 하네요.
     
설민석 17-05-05 21:14
   
터키 환빠들이 하는말 들어보면 한국 몽골 일본 역사도 자기네 역사라고 우김
Marauder 17-05-05 11:35
   
여기서도 북방민족이란 말이 있군요ᆢᆢ
관심병자 17-05-05 11:38
   
한족에게 당나라는
"자랑스러운 주인님들의 역사" 입니다.
당나라의 황제들은 선비족의 혼혈이 아니라,
순수 선비족 입니다.
당을 건국한이가 수나라의 황족 출신이었습니다.
한족과 혼인을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백인이 노예로 온 흑인과의 혼혈을 거친 백인인가?
오늘날 남아공의 백인이 지배를 당하던 흑인과의 혼혈을 거친 백인인가?
     
올만재가입 17-05-06 11:50
   
맞는 말 입니다.
헌데 한족들은 마음이 현실과 틀린 것 같아요.
한족이 중국역사에 4천년에서 3천9백년을 노예로 살았지만 당 만큼은 한족에 관대했나 봐요.
선비족이 세운 다른 여러 나라들은 부정해도 당나라 만큼은 한족과 동일시 합니다.
해서 한족은 자신들의 별칭으로 당인이라고 합니다.
건국 족속으로 따지면 선비족=수=당 이러지만 한족에게 있어 한족=당인≠수인 이렇게 된답니다.
감방친구 17-05-05 12:17
   
북방민족이라는 표현은 충분히 잘못된 것입니다
흉노가 있고, 돌궐이 있고, 선비가 있고, 거란이 있고 몽골이 있습니다


북방민족이라는 말은 다분히 중국(지역 개념으로 현재의 중국의 산해관 이남에서 패자를 자처한 여러 국가와 이합집산한 여러 국가로 현재의 중국이 역사종주권을 주장하며 행세하는 여러 국가) 중심적 사고의 발로입니다. 싸그리 뭉뚱그려서 제 민족의 주체성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역사주권과 그 영토를 현재의 한반도로 국한하고자 하는 비주체적, 비사실적 사고의 발로입니다 우리가 왜 저들을 북방민족, 혹은 북방 제민족, 혹은 북방계 민족이라 불러야 합니까? 고려--발해(고려)의 남북국시대까지 저들 민족과 그 정치체는 우리의 서방에 위치했습니다 우리에게 저들은 서방국가, 서방에 위치했던 국가요 민족입니다

당나라 역사를 설명하며 북방민족이라 했다?
그것도 앞의 논리로 수긍이 안 됩니다
감방친구 17-05-05 12:27
   
630 년 지도가 왜 저 모양입니까?
고구려 땅이 왜 저리 작으며 돌궐 땅이 씨부랄 왜 고구려 영토를 침식했습니까?

이 시기면 이미 고구려가 부여를 먹고 물길을 복속시킨 지 수백 년이 흐른 뒤입니다

부여는 읍루(숙신의 후신, 물길의 전신)를 복속한 나라였습니다.
후에 물길의 반란과 선비족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며 고구려에 귀부한 나라이며 고구려는 물길을 완전히 제압, 복속합니다.

읍루(물길의 전신)는 연해주에 있던 종족입니다. 그런데 이 읍루를 부여는 복속하여 차지하고 있었고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세금을 거두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습니까? 읍루까지도 부여의 실질영토였다는 말입니다. 읍루의 후신인 물길이 이런 부여의 세금에 반발하며 거세게 반란을 일으켰고

고구려가 그런 물길을 완전제압, 복속시킵니다

이렇다면 고구려 영토가 어디까지 뻗어야 하겠습니까?

역사지도를 큰 뜻을 품고 만드시려면
이제까지의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여 만들어야지
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옐로우황 17-05-05 13:14
   
교과서나 백과사전에 대략 저 정도로 나오는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이 글이 그런 영역에 대한 글도 아닌데...
          
위구르 17-05-08 21:04
   
교과서에 나온 그 영토가 거짓이라는게 문제죠
감방친구 17-05-05 12:36
   
이 사람 하는 거 가만히 보니 한국인이 아니구만?
카노 17-05-05 14:52
   
고구려 영토는 아주 쥐똥만하게 쳐그려놨네.
그리고 돌궐이 카파간 가한때 측천무후의 주나라를 어떻게 쳐발랐는지나 공부하시지?
     
옐로우황 17-05-05 15:07
   
외국 사이트에 있는 지도입니다. 그리고 고구려를 태평양 처럼 그린 지도를 교과서나 백과사전에서 본 적이 없다니깐요. 책 이름하고 출판사를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당태종 얘기하는데 측천무후는 왜요?
          
위구르 17-05-08 21:05
   
외국놈들 죄다 짱개 중화주의에 은연중에 선동당해서 그들이 쓴 것들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인류제국 17-05-05 15:48
   
엘로우님 잘못이 아니죠


제대로된 역사를 알리지 않는 한국 주류역사학계의 잘못이죠

왜교부과 더불어 한국 주류역사학계는 제대로 일을 안합니다 한국의 역사관점이 없고 중국 일본만의 관점으로만 대충보죠

한국 주류역사학계들은 자기들 밥벌이나 관심있지 제대로된 역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들 밥그릇이 깨지거든요

주류사학계들은 제대로된 근거도 못내밀더군요 상고사 토론회에서도 같은 말만 죽어라 반복할뿐


충격적인것은 이런 주류사학계를 추종하는 카페및 사이트도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사람입니다 대체 개네들을 왜 추종하는건지? 어이가 없더군요 개네들 추종한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위구르 17-05-05 16:28
   
밥밥c 17-05-05 20:16
   
그래도 주류사학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큰편이기는 하네요 ^^;

 현재의 요하를 넘어간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죠.


 그런데, 아래는 본래 주류사학의 주장인데 사서와는 조금 다릅니다.


 낙랑군은 한사군 중 가장 오랫동안 존재하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 고구려가 낙랑군을 공략해서 이를 함락함으로써 한사군은 소멸하였다. ( 세계사 연표중)


 실제로는 이 이후에도 낙랑군은 계속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북위시절의 정사인 (386∼534) 위서지형지에는 낙랑군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5. 영주(營州)

④ 낙랑군(樂浪郡)
낙랑군(樂浪郡), 전한(前漢) 무제(武帝)가 설치하였고 두 한(漢)과 진(晉)에서 락랑(樂浪)이라 했으며 후에 고쳤다가 폐하였다. 정광(正光) 말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련성(連城)에서 다스린다.
다스리는 현은 2개이고 가수수는 219이고 인구수는 1008명이다.
1) 영락현(永洛縣), 정광(正光) 말년에 설치하였다. 조산(鳥山)이 있다.
2) 대방현(帶方縣), 두 한(漢)에 속했고 진(晉)에서는 대방군(帶方郡)에 속했으며 후에 폐하였다가 정광(正光) 말년에 다시 속하였다.
樂浪郡, 前漢武帝置二漢晉曰樂浪後改罷正光末復治連城.
領縣二, 戸二百一十九, 口一千八.
永洛, 正光末置有鳥山. 帶方, 二漢屬晉屬帶方後罷正光末復屬.

http://history-backup.tistory.com/307 (위서지형지 , 5.영주 , 4.낙랑군 )


 실제 정사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사상으로 본다면 낙랑군은 수나라시절 상곡군과 통폐합됩니다.

 여기서 낙랑군이 313년에 사라졌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며, 이 낙랑군이 옮겨졌다는 것은

 본문에서 한나라시절부터 그대로 였다고 적혀있기에 또다른 거짓말입니다.
밥밥c 17-05-05 20:49
   
수서지리지 , 기주 , 상곡군

 여기에서 상곡군의 4번인 수성현이 본래의 낙랑군입니다. ( 북위시절 '영주 낙랑군'에서 다시 '기주 수성현')

 본래는 인구가 줄어들어서 상곡군으로 통폐합 된 것입니다. (북위시절 1000명, 바로위 영주 낙랑군)


4) 수성현(遂城縣). 옛날에는 무수현(武遂)이라고 하였는데 북위(北魏)가 남영주(南營州)를 설치하였는데 이에 준하여 영주(營州)를 설치하였었다.

특히, 북위시절 영주 낙랑군 영락현에 대한 설명도 있지요.

, 영락현(永樂縣)은 락랑군(樂浪郡)에 속하였고, 부평현(富平縣)과 대방현(帶方縣)과 영안현(永安縣)은 영구군(營丘郡)에 속하였다. 북제(北齊)에서는 오직 창려군(黎) 한 개만을 남겨 놓았었는데 영락현(永樂縣)과 신창현(新昌縣) 등 2개의 현을 다스렸었는데,




② 상곡군(上谷郡)

상곡군(上谷郡). 개황(開皇) 원년에 역주(易州)를 설치하였다. 다스리는 현은 6개이고 가구수는 3,8700이다.

1) 역현(易縣). 개황(開皇) 초에 려군(黎郡)를 설치하였다가 다시(尋) 폐하였다. 개황 16년에 현을 설치하였다. 대업(大業)초에 상곡군(上谷郡)를 설치하였다. 옛날에는 고안현(故安縣)이 있었는데 북제(北齊)가 폐하였다. 박우산(駮牛山)과 오회령(五迴嶺)이 있다. 역수(易水)와 제수(除水)가 있다.

2) 래수현(淶水縣). 옛날에는 주현(逎縣)이라고 불렀는데 후주(後周)가 폐하였다. 개황(開皇) 원년에 범양현(范陽)을 주현(逎)이라고 하고 범양현(范陽)을 여기에 고쳐 설치하였다. 개황 6년에 고안현(固安)이라 고쳤고 개황8년에 폐하였다가 개황 10년에 또한 다시 영양현(永陽)으로 설치하였으며 개황18년에 래수현(淶水)으로 고쳤다.

3) 주현(逎縣). 옛날에는 범양현(范陽)이 이곳에 있었는데 세속에서는 소범양(小范陽)이라고 불렀다. 개황(開皇) 초에 주현(逎)으로 고쳤다.

4) 수성현(遂城縣). 옛날에는 무수현(武遂)이라고 하였는데 북위(北魏)가 남영주(南營州)를 설치하였는데 이에 준하여 영주(營州)를 설치하였었다. 군은 5개이고 【현은 11개였다. 룡성현(龍城縣)과 광흥현(廣興縣)과 정황현(定荒縣)은 창려군(昌黎郡)에 속하였고, 석성현(石城縣)과 양무현(陽武縣)과 】 광도현(廣都縣)은 건덕군(建德郡)에 속하였고, 양평현(襄平縣)과 신창현(新昌縣)은 료동군(遼東郡)에 속하였으며, 영락현(永樂縣)은 락랑군(樂浪郡)에 속하였고, 부평현(富平縣)과 대방현(帶方縣)과 영안현(永安縣)은 영구군(營丘郡)에 속하였다. 북제(北齊)에서는 오직 창려군(黎) 한 개만을 남겨 놓았었는데 영락현(永樂縣)과 신창현(新昌縣) 등 2개의 현을 다스렸었는데, 나머지는 모두 없앴다(餘並省). 개황(開皇) 원년에 주(州, 營州 ?)를 옮겼고 3년에는 군(郡, 昌黎郡 ?)을 폐하였고, 18년에는 수성현(遂城)으로 고쳤다. 룡산(龍山)이 있다.

5) 영락현(永樂縣). 옛날에는 북평현(北平)이라고 하였는데, 후주(後周)가 이름을 고쳤다. 랑산(郎山)이 있다.

6) 비호현(飛狐縣). 후주(後周)가 광창현(廣昌)을 설치하였었다. 인수(仁壽) 초에 이름을 고쳤다. 률산(栗山)이 있고 거마하(巨馬河)가 있다.
上谷郡. 開皇元年置易州. 統縣六, 戸三萬八千七百.
易. 開皇初置黎郡, 尋廢. 十六年置縣. 大業初置上谷郡. 舊有故安縣, 後齊廢. 有駮牛山 五迴嶺. 有易水 除水. 淶水. 舊曰逎縣, 後周廢. 開皇元年, 以范陽為逎, 更置范陽於此. 六年改為固安, 八年廢. 十年又置為永陽, 十八年改為淶水. 逎. 舊范陽居此, 俗號小范陽. 開皇初改為逎. 遂城. 舊曰武遂. 後魏置南營州, 准營州置, 五郡十【一縣. 龍城 廣興 定荒 屬 昌黎郡, 石城 陽武 廣】都 屬建德郡, 襄平 新昌 屬遼東郡, 永樂屬樂浪郡, 富平 帶方 永安 屬營丘郡. 後齊唯留黎一郡, 領 永樂 新昌 二縣, 餘並省. 開皇元年州移, 三年郡廢, 十八年改為遂城. 有龍山. 永樂. 舊曰北平, 後周改名焉. 有郎山. 飛狐. 後周置曰廣昌. 仁壽初改焉. 有栗山. 有巨馬河.

http://history-backup.tistory.com/308 (수서지리지, 기주, 상곡군 )


 정사로만 본다면 한나라시절에는  유주 낙랑군 ,

                          북위시절에는    영주 낙랑군 ,

                          수나라시절에는  기주 수성현 이 됩니다.




한나라시절에는 인구가 아주 많았는데, 점차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은 본래 '낙랑군'으로서의 지명을 가진 현이 많았다가 점차 '낙랑군'이 아닌 다른 군으로

관련 행정구역명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을 보면 낙랑군 인구수와 낙랑군에 포함된 현의 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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