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북아역사재단 상고사 토론회는 지난 해에 이어서 올해도
심백강 박사의 주장(문헌연구)과 이후석 박사(고고물질문화연구)의 주장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맞서는 양상입니다
이거 참 답답한 노릇이죠
저 같은 역사문청자가 봤을 때에는 심백강ㆍ윤내현 계통연구자들의 주장이 일리가 더 있어보이는데
고고물질문화 연구로와는 들어맞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2.동호로 비정하는 하가점상층문화 (bc 1,000~300)의 주인공의 실체가 상당히 애매합니다
ㅡ 북방계와 비파형청동기 문화가 섞여있고 여기에 중원계 문화도 섞여있습니다
ㅡ 저는 이 하가점상층문화의 주체가 부여와 선비족의 공통조상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합니다
3. 춘추전국시대와 진한시대에 많은 이주민들이 조선땅으로 몰려들었는데 이들이 보유했을 물질문화는 당연히 중원계였겠지요
ㅡ 위만의 무리가 1,000 여명, 그리고 이들이 조선의 서쪽 변방을 지키면서 중원계 유이민들을 계속 규합하여 나중에 역성혁명하는데 당연히 이들의 물질문화 역시 중원계였지 않겠습니까
4.낙랑유물의 문제
ㅡ 그러면 일본열도에서 발굴되는 무수한 우리 계통 고분, 각종 물질문화를 그곳이 우리 영토였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느냐의 문제
ㅡ 정창원 신라 문서는 또 뭐여?
5. 대방군 설치 전에 대방군 지역이 거의 황무지요 공지로 방치돼 있었다 하는데 아니 연백평야 재령평야 등의 옥토가 있는데 이게 뭔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