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확히 고문서가 남아있어요
에도막부는 전국을 분배하고 각 다이묘별로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표고'라고해서 총생산량을 조사해서
제출할 것을 명하였고 통상 이 문서를 집대해서 "郷帳(향장)"이라고 불리어요
그리고 여기서 표고란 '내고'의 반대 개념으로 1580년대 최초로 히데요시에 의해 석고가 조사된 후에
대체로 17중후반c 부터는 표고가 거의 정체하거든요 이는 실제 양상이라기 보다는 무라등의 반발로 인해
세금의 상승을 우려하여 실제 생산력인 '내고'를 정확히 조사하지 못한 결과물인 것이죠
그래서 에도초기 오공오민이라고 해서 세율이 50%였지만 표면에서는 에도말에 조사한 실제 세율은
25~30%정도에 머물러 있던 것이고 이렇게 전국적 조사의 규모가 실시된게 일본의 연호로
慶長・正保・元禄・天保 4차례인데 아직도 지역별로 자료가 온전히 보전되어 있죠 ㅋ
제 기억으로는 일본 국회도서관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영인본을 직접 정독할수 있었는데 몇년전 일이라 정확한 주소나 현재의 실시여부는 알지 못하겠네용 ^^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점이 세율이 50~30%라는 것이 꽤나 가혹한 세율이었다라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이 일본인들은 정부에다 50~30%의 세금을 납부한 것이고
조선의 경우도 최소한 절반이상을 소작농이라고 한다면 결국 이들의 세율은 변함없이 언제나
50%이거든요 즉 자작농이 아닌이상 과연 일반 '민'이 생활하기에는 어디의 제도가 좋았냐는
별개의 문제일수 있다는 점 ..더불어 인구증가의 면에서도 말이죵
조용조의 개념이에요
여기서
조는 =토지세
용은=노동착출(군사포함)
조는=토산물(지역 특산물)인데
기본적으로 조/조를 기반으로해서=역을 징발하는 형태이죠
그리고 일본의 석고란 통상 그 개념이 일관되지 않고 사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조(토지에서의 농업 생산량)+조(지역 특산물)을 석맹이라고 해서 모두 쌀의 가치로
환산한 것이고 조선은 이 두개의 분리가 일어나서 토산물의 환산 가치를 명확히
알수있는 길은 없지만 대동법을 통해 대략 유추는 가능한 것이고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