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6-12-27 06:46
[중국] 만주를 중국사로 포함시켜려고 했던 중국의 근대 사학자 부사년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3,481  

환빠 즉 유사역사학이 보통 인용하고 있는 중국 근대 역사학자 부사년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출처 http://lyuen.egloos.com/5061720

중국의 자원적 조건은 이탈리아보다는 우월하지만 미국과 소련 및 영국에 비할 수 없다. 중국에 동북(만주를 지칭)이 없다면 중국은 단지 이탈리아일 뿐이다. 중국은 땅이 크고 물산이 다양하다고들 하나 오직 동북만이 지대박물(地大博物)할 뿐이다.

동북지역은 중국의 중공업 발전에 필요한 자원의 70%나 매장되어 있으며 화학공업은 전국의 1위다. 이용 가능한 삼림은 동북에만 있으며 농업으로 말하면 평원지대여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용하기 쉽고 또 강수량이 풍부하여 목축업은 무한으로 발전할 수 있다. 동북의 미개발지구와 평원은 중국의 인구 문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동북은 무한히 넓으나 인구는 4000만에 불과하여 4억이나 되는 내지의 사람들을 이민시키기에 가장 적합하다.

동북이 없다면 중국은 명실상부한 1등국이나 중공업 국가가 영원히 될 수 없다. 또한 동북이 없으면 인구 문제 또한 영원히 해결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중국은 반드시 또한 영원히 빈민굴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은 동북을 위해 수천만명을 희생하거나 국가와 국민의 재산과 부(富)의 90%를 희생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동북을 위해서 국가의 흥패, 민족의 존망을 도박하여 보는 것이 어찌 감정적 행위이겠는가. 실제로는 절대 이지적 행위이다.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쇄는 오직 동북에 달려 있다.



이처럼 피를 토하는듯한 문체로 중국의 살 길은 만주에 있다고 외쳤던 인물은 누구였을까. 다름아닌 부사년(傅斯年/푸쓰녠 1896-1950)이다. 부사년이라.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이름 같지 않은가.

역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부사년의 이름 석자는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그 유명한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을 주장했던 주인공이 바로 부사년이니 말이다. 고대 중국에는 동이족과 화하족이라는 양대 집단이 존재했으며 은나라(=상나라)와 주나라의 교체는 단순히 왕조 교체가 아니라 동이족에게서 화하족으로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주장을 펼쳤던 그 인물이 바로 부사년이다.

어디 그 뿐인가. 부사년은 은나라의 시조 설화와 고구려의 주몽 설화가 비슷하다며 은나라와 고구려가 종족적으로 같다는 주장까지 했다. 시경에는 현조(玄鳥)와 융씨녀 사이에 태어난 알이 은나라의 시조가 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런 난생 설화는 고구려 주몽의 설화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은나라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수 있다는 것이 부사년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부사년은 만주에서 기원한 이족(夷族) 집단이 중국 내지로 들어와 산동지방의 동이족을 정복해서 세운 나라가 은나라이고, 은이 망한후 그 집단 중 일부가 다시 만주로 돌아가 세운 나라가 고구려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환빠"적 사고체계와 관련있는 낡은 주장을 펼쳤던 중국의 사학자 정도로 알려진 부사년이 왜 그렇게 만주에 집착했을까. 고구려 지배층과 상나라 지배층은 동족이라는 주장을 펼쳤던 인물이 과연 무슨 의도로 중국이 만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천만명이 죽을 각오는 해야한다고 절규했을까. 동이족과 화하족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중국 고대사에 접근했던 인물이 무슨 생각으로 중국의 국부 중 90%를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만주는 포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을까.

답은 간단하다. 애당초 부사년의 화하동서설이나 은나라=고구려 동족설 같은 주장들이 만주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연고권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주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만주 점령에 대항 논리 차원에서 만들어진 학설 중 하나라는 뜻이다.


1930년대 일본은 만주를 군사적으로 사실상 장악했다. 일본이 만주를 강점한 1차적인 원동력은 물론 군사력이었다. 이를 뒷받침한 명분은 만주는 중국 내지와 분리된 별도의 역사적 공간이라는 시각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꼭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은나라와 주나라는 만주 외곽에도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고 진나라와 한나라는 기껏해야 요동반도와 한반도 서북 지방 일대에 세력을 미쳤을 뿐이다. 수나라도 요하 이동지역을 점령하지 못했고 당나라가 요동지방에 세력을 유지한 시기도 매우 짧다. 명나라 시대에도 명나라가 직접 통제할 수 있었던 요동반도 주변 일대는 전체 만주 면적에서 겨우 10% 정도에 불과한 공간이다. 전형적인 중국 한족 왕조에 있어 만주는 사실상 이역(異域)에 가까운 땅이었다.

물론 요와 금, 원, 청은 만주 전반에 걸친 영유권을 행사했지만 이들 정복왕조를 전형적인 중국 한족 왕조와는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었다. 현실적으로 만주의 독립 혹은 분리를 지원한 상태에서 역사 속에서도 중국과 만주를 구별하려 시도했던 것이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존립하기 위해서 만주가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부사년 입장에선 이같은 일본의 시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부사년이 1932년 집필한 역사책인 동북사강(東北史綱)의 머리말에서 "최근에 들어 일본인들은 만주와 몽골은 역사상에서 중국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망설로 세상을 현혹시키고 있다"며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말로 본시 이것은 따질 가치조차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본인들이 이런 주장을 동북침략의 구실로 삼고 있으니 부득이 그 진위를 가릴수 밖에 없다"고 한 것은 부사년의 사고 방식을 잘 보여준다.

부사년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중국 내지와 만주의 연결 고리가 필요했고 그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중국 내지와 만주가 뒤섞여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적 모델이 필요했다. 부사년에게 은나라와 고구려 동족설은 그같은 역사적 모델 중의 하나였다. 7세기 가까이 존재했던 고구려가 중국 내지(은나라)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가 된다면 만주에 대한 빈약한 중국의 역사적 연고권을 보충하는 이상적 사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같은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삼한은 잡종이며 고구려와 삼한은 전혀 종족적으로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부사년은 이밖에도 은나라의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왕이되었다는 기자 동천설 등 온갖 잡다한 근거들을 집대성해 동북과 중국 내지는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적 동일체라고 주장한다. 부사년의 주장은 단순히 학술적인 주장으로 멈춘 것이 아니다. 국제연맹이 일본의 만주 점령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리튼 조사단을 중국에 파견했을 때 부사년은 자신이 지은 역사책 동북사강을 영문판(Manchuria in History)으로 요약 번역해 제출했다.

영문판 동북사강이 국제연맹 소속 리튼 조사단의 1932년도 조사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하간 최종적으로 리튼 조사단은 만주가 중국 영토의 일부라는 중국측의 주장을 인정했다. 나아가 리튼 조사단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의 분리 독립을 지원한 것은 침략으로 간주했다.

이에 반발한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했고 이는 일본의 외교적 고립의 출발점이 된다. 그 고립은 결국 태평양전쟁으로 연결되고 더 길게 보면 일본의 패망과 중국의 만주 재확보로 연결되었으니 부사년의 동북사강은 어찌됐건 현실세계에서 학술로써 나라를 구한다(學術求國)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오늘날 부사년의 개별적인 주장은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중국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고증이 너무 거칠고 사료 인용도 부정확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실 동북사강이 일본의 만주 점령 움직임에 대항해 불과 몇개월만에 학술구국의 입장에서 급조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같은 비판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지와 만주가 역사적으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주장을 역사학적으로 최초로 체계화했고 그 같은 결론 자체는 중국 학계에 계승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같은 주장이 만주를 놓고 일본과 중국 사이에 국제정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부사년의 주장 중 상당수는 김육불을 거쳐 장박천 등으로 이어지면서 동북공정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군사적으로 일본에 대항할 수 없었던 한 중국의 지식인은 역사를 무기 삼아 일본에 대항했고 그 시도는 결국 실패하지 않았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사건이 아니다. 만주가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은 중국이 만주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선 무척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청왕조의 몰락을 전후한 혼란기에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부사년의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왕조에 대항한 중국의 혁명가 중 한명인 유사배는 1907년에 쓴 한 글에서 만주족의 발상지인 건주위는 결코 명제국의 영토가 아니었으며, 이 지역(건주위를 중심으로 한 만주)은 결코 역사적으로 중국에 속했던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유사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만주와 중국은 별개이니 만주족은 만주로 돌아가고 중국 내지는 한족에게 돌려달라는 것. 유사배가 중국 한족 모두의 사고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만해도 일부 지식인들은 만주가 중국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부사년은 중국 내지와 만주의 그 처럼 약한 연결고리를 다시 튼튼하게 이어놓은 인물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이런 큰 그림을 보자면 부사년의 화하동서설이나 은(상)=고구려 동족설을 우리 고대사 연구에 슬쩍 차용하는 방식의 접근법은 대단히 안이하다고 할 수 있다. 애당초 부사년의 주장은 고구려와 삼한족은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사년의 주장은 웅대한 한국 고대사상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고구려와 한국의 연결고리를 끊고 중국 내지와 만주가 역사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편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위에서 여러차례 설명한 대로다.

그렇다고 해서 학설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도 없이 적군인지 아군인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주장인지 아닌지도 구별하지 못하고 온갖 잡다한 학설(일본의 만선사관이나 중국의 중만 일체론)을 뒤섞어서 열심히 괴물을 창조하는데 정력을 낭비하는 이른바 "환빠"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주장에 대한 가치 평가보다) 역사와 국제정치, 전쟁, 영토 문제가 뒤섞인 이 기묘한 세계 그 자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본측 학계의 동향에서도 역사와 국제정치, 영토문제가 뒤섞인 이 기묘한 세계의 특성은 더욱 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도쿄제국대와 함께 일본 동양사학계를 지배해 왔던 교토제국대의 나이토 고난 교수는 1914년 집필한 지나론이라는 글에서 "중국은 응당 중국의 주변 영토를 방기해야 하며, 중국 본부를 보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나이토 교수가 주장한 본부에 만주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일본 군부가 만주 전역에 대해 군사적 실력 행사에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일본 학계에서 침략의 손길을 먼저 내뻗고 있었던 것이다. 토쿄제국대의 시라토리 교수 또한 만철이 수행하던 만주 현지조사를 통해 일본의 만주 점령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흔히 "역사는 과거를 대상으로 행하는 정치"라는 소리를 하지만 이처럼 실제로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를 놓고 행하는 외교나 전쟁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역사"다. 만주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 연고권에서는 할 말이 적지 않은 우리 입장에서 부사년이나 일본 동양사학계의 주장들이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일수는 없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수십년 전에 역사전쟁에 들고 나갔던 무기들의 파편과 폐품을 조합해 열심히 정체불명의 괴물을 만들거나 그 괴물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기에 앞서 한번쯤은 이 냉혹한 세계를 되돌아보면서 멀리서 감상하고 고민해 볼 여유도 필요할 것 같다. 과연 우리는 무슨 무기를 들고 어떤 전쟁터에 나가야 할까.


*참조
-김창규, 傅斯年의 민족문제 이해와 동북 인식, 역사학보
-이병호, 동북공정 전사-부사년의 동북사강, 동북아 역사논총 20호
-중국의 한국 고대사 연구 분석, 동북아역사재단 2005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흑요석 16-12-27 09:30
   
동북지역이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건 개소리네요.

한반도보다 훨씬 더 건조한 지역이 중국 동북지방인데;;

아무튼 그걸 감안하더라도 만주는 탐할만한 땅이죠..
     
아비요 16-12-28 15:46
   
음 큰 강이 많죠. 그리고 의외로 호수가 많습니다. 건조한 지역도 있고 습윤한 지역도 있는 것이죠.
          
흑요석 16-12-28 16:56
   
제가 잘못 말했네요. 본문에서 만주의 겨울만 말하는 줄 ㅋㅋ

한반도의 겨울보다 만주의 겨울이 훨씬 더 건조하다라고 했어야하는데 ㅎㅎ

만주가 높은 위도와 겨울철에 어마어마한 추위에 반해 습도는 굉장히 낮고 건조해서 눈은 생각만큼 많이 오진 않아요.

물론 위치가 위치다보니까 눈이 한 번 오면 엄청 많이 오지만요.
도편수 16-12-27 10:13
   
탐나요 만주...
탐난다는 말만해도 ㅂㄷㅂㄷ하는 떼늠들이 있던데 ㅋ
꼬마러브 16-12-27 15:51
   
부사년이 주장 중 옳은 부분이 있다면 차용할 수 있는 것이고 이병도의 주장 중 옳은 부분이 있다면 차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는 것이죠. 우리는 그저 그 주장들에 대한 팩트들을 차용하면 되는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제는 정당하다 라고 주장했다고해서 그의 학설이 현재까지 폐기되지않고 존중받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지요.
그리고 또한 역사를 전쟁터에 비유하는게 거슬리네요
역사학은 일본의 역사학이든 중국이든 우리나라든  진실을 찾는 것이 1목표입니다. 그 나라의 이익에 맞게 바꿀 수 없는 진실말입니다.
한반도와 만주를 역사학에서 떼어 놓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흑요석 16-12-27 18:56
   
동의합니다.

꼬마러브님 댓글들 잘 보고 있어요.

배워가는 입장에서요.
 
 
Total 46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19 [중국] 후한의 유수는 조백하 인가 ? (5) 도배시러 01-02 1720
218 [중국] 미국은 북한이 아닌 중국을 반드시 조진다(펌) (6) 고이왕 01-01 2888
217 [중국] 위서지리지와 낙랑군 조선현 한현도의 수수께끼 (28) 도배시러 12-20 1901
216 [중국] 만주족의 잔혹한 중국 정복사 (13) 고이왕 12-09 4618
215 [중국] 위만조선 멸망전 창해군은 요서 부근에 존재했다. (3) 도배시러 12-05 1797
214 [중국] [습유장초]현대한어(북경관화)를 재구한 영상. Ichbin타냐 11-22 673
213 [중국] [습유장초]근고한어를 재구한 영상. Ichbin타냐 11-22 671
212 [중국] [습유장초]중고한어를 재구한 영상. Ichbin타냐 11-22 667
211 [중국] [습유장초]상고한어를 재구한 영상. Ichbin타냐 11-22 922
210 [중국] 무서운 중국의 한민족 전략.. (3) 대박행운 11-13 2136
209 [중국] 예맥과 접경하던 상곡군의 위치 (1) 도배시러 11-12 1021
208 [중국] 후한과 서진 유주 낙랑군의 인구지도 (10) 도배시러 11-11 1918
207 [중국] 대충만든 전한의 인구지도 (7) 도배시러 11-11 1730
206 [중국] 중국이 백제를 먹는 방법.. (6) 대박행운 11-10 1669
205 [중국] 통전으로 보는 요하의 위치 지도 (20) 도배시러 11-09 1817
204 [중국] 장수왕에게 굴복한 북연의 화룡성 위치 (28) 도배시러 11-09 2330
203 [중국] 서진의 갈석산과 진장성 (7) 도배시러 11-05 1344
202 [중국] 서양이 바라본 서안 피라미드, 마운드 (5) 도배시러 11-05 1635
201 [중국] 나무위키 보다가... 소름돋았네요 (6) Marauder 11-01 2307
200 [중국] 중국이 마약에 민감한 이유 (10) 레스토랑스 10-27 1904
199 [중국] 시작부터 치트키 쓴 중국의 황제 (2) 레스토랑스 10-22 2160
198 [중국] 몽골이 뚫는데 40년 걸린 양양성 (4) 레스토랑스 10-22 3952
197 [중국] 남송의 최후- 3탄 [양양성의 함락] (5) mymiky 10-22 1869
196 [중국] 남송의 최후-2탄 (1) mymiky 10-22 1368
195 [중국] 악비버린건 남송의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3) 콜라맛치킨 10-21 1358
194 [중국] 1. 남송의 최후 (6) mymiky 10-20 2047
193 [중국] 과학승리 노리다 망한나라 (4) 레스토랑스 10-20 1778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