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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13 06:05
[중국] "中國 역대 역사서"에 기록된 화북,화중,요서 일대를 장악한 ※백제※ 에 대한 사료들
 글쓴이 : 애기째돌
조회 : 5,342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晉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 스스로 백제군을 고려(고구려) 동북(중국측 방향:우리방향 요서)에 두었다."
-[남제서] <백제전>




"그나라(백제) 본래 고구려와 함께요동의 천여리밖에 있었는데, 서진때에 구려(고구려)가
이미요동을 다스리자, 백제역시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령하여 스스로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남제서] <백제전>




"백제 동성왕이 광양태수를 고달로,대방(중국 화북지역)태수로 조선태수를 양무로,광릉태수를 회매로, 청하태수를 모견으로, 조선태수 양무를 광릉태수로, 낙랑태수를 왕무로 임명하여 중국 남조에승인을 요구하였다. 황제는 모두 들어주었다."
"이 해에(서기490년) 위나라가 또 기마병 수십만명을 징발하여 백제 국경선에 침공했으나,
모대가(동성왕)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장군에게 군사를보내 위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남제서 권58] <동남이전 백제편>(양나라 숙자현)

※백제와 북위의 전쟁에 관한 기록
((북위가 바다를 건너 백제를 침략했다는 일부 강단사학자들의 말도안되는 주장이있다. 남제서 기록에 북위의 군사는 수군이 아닌 수십 만의 기병이이라 적혔으므로 북위는 도해(渡海)를 한 것이 아니라 요서백제와 직접 대결을 펼쳤다. 또한 북위는 선비라는 유목민족이 세운 국가로써 전형적인 유목민이므로 한반도로 도해할 해군력이 미약하다.
북위가 대륙을 통일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장강(長江)을 건너지 못한다는점이다. 큰 강 하나 도하하지 못하는데 황해를 건너 백제를 공격했다는 것 자체가 일부강단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현대판 역사왜곡 매국행위가 따로없다.
북위는 동서남북으로 고구려, 토욕혼, 남제, 유연에게 둘러싸여 있고 요서에 백제가 없다면 뜬금없이 바다를 건너 백제를 공격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해군으로 도해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10년(488)에 위(魏)나라가 군사를 보내 침공해 왔으나 우리(백제)에게 패하였다.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삼국사기] <백제본기-동성왕편>

※백제의 장수들이 위나라를 격파한 내용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동성왕편에 라고 짤막하게 기술되어 있을뿐 장수의 이름이나 상황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나라안에 8대 성씨족이 있는데, 사씨, 연(燕)씨, 리(칼 刀가 셋인 글자, 또는 협 協)씨, 해씨, 진씨,
국씨, 목씨, 묘씨 이다."
"백제의 왕족의 성은 부여씨이다"
-[북사 권94 열전82] <백제편> [수서 권81 열전46] <동이편-백제조>

※중국성씨사전에는 부여(夫餘)씨와 복(福)씨 골(骨)씨 등도 8대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백제가 분명한 우리의 역사상의 국가이기 때문에이들 8대 성씨가 백제 멸망과 함께 모두 죽지 않은 이상현재에도그 후손이 남아 있어야만 하는데 2000년도에 발간된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국(國)씨가 2,182명으로 성씨 순위 154위이며
연(燕)씨는 3,549명으로 138위,
진(眞)씨는 1,579명으로 성씨 순위 164위,
묘(苗)씨는 61명으로 성씨 순위 258위 등이며
나머지사(沙)씨나 리(또는 협)씨, 그리고 해(解)씨나 목(木)씨는 단 한 명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확인 사이트 http://www.koreandb.net/Bon/HTML/bon1.htm#마
사서에는 백제의 멸망 당시 200여개의 성(城)이 있었고 호수(戶數)는 76만호로 되어 있다.
구당서(舊唐書) 지리지에서 호당 인구수를 보면 평균 5.7명이며 토지가 비옥한 지역인 양자강 유역은 당 인구수가 7명에 이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백제의 인구는 430만명에서 530만명 정도로 추산이 되며 이중의 8대 성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으리라고 짐작이 가지만, 천삼백여년이 지난 지금 남한에
살고 있는 8대 성씨의 후손이 7300명 정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백제의 주요 강역이
한반도가 아님었음을 반증이 되기엔 충분하다.

후한(後漢) 때의 풍속통의(風俗通義)와 잠부론(潛夫論)과 송(宋)시대의 백가성(百家姓) 등을 근거로 1994년 중국의 진명원 왕종원 등이 북경출판사에서 편찬한 중국성씨사전(中國姓氏辭典)에는
백제 8대 성씨에 관한 기록들이 보이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여씨와 살펴보면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처음으로 보이며 사기 화식전(史記 貨殖傳)에 의하면 한나라 시기에 북쪽의 오환(烏桓), 부여(夫餘) 등이 그 족명을 성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으며,성씨고략
에 의하면 오흥군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고 하는데 오흥군은 지금의 절강성 임안에서 강소성 의흥일대를 말한다.
목(木)씨 또한 부여씨와 마찬가지로 오흥군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유명한 사람은 목간나(木幹那)장군이 있다.
사(沙)씨는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에서 여남군(汝南郡)에 나타난다고 되어 있고, 성씨고략(姓氏考略)에는 동완(東莞), 여남(汝南)에 보인다고 되어 있는데, 여남군은 한나라 고제(高帝)때 설치했으며,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중부상찰현(上察縣) 및 안휘성(安徽省) 회하(淮河)이북지역이며 동완군은 진(晉)무제 태시원년(265년)에 설치되었으며 지금의 산동성 기수(沂水), 영현(營縣)일대이며 백제의 유명한 인물로 사법명(沙法名)이 있다.해(解)씨는 군망백가성에 이르기를 평양군(平陽郡)에 분포되어 있다고 하는데 평양군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 서남이다. 백제의 유명한 인물로는 해례곤(解禮昆)이 있다.연(燕)씨는성씨고략과 군망백가성에 의하면 상곡(上谷), 범양(范陽)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상곡군은 현 하북성 회래현(懷來縣) 동남이며 범양군은 현 하북성 탁현 및 북경시 창평현(昌平縣), 방산현(房山縣) 일대를 말하며,국(國)씨는 군망백가성에 의하면 하비군에 보이는데 하비군은 현 강소성 서남부지역이다.
또한, 묘(苗)씨는 군망백가성에 의하면 동양군에 보이는데 동양군(東陽郡)은 지금의 강소성 금화(金華)지역이며,진(眞)씨는 신(愼)씨가 진(眞)씨로 되었다고 하며 성씨고략에 의하면 진씨는 상곡군(上谷郡)에 보이는데 상곡군은 현 하북성 서남부와 회래현(懷來縣) 동남일대를 말한다.리(또는 협)씨는 성씨고략에 의하면 리씨는 발해군(渤海郡)에 보이는데 발해군은 현 하북성, 요령성 발해만 일대를
말한다고 되어 있으며,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왕(武王)의 조카 복신(福信)으로 유명한복(福)씨는군망백가성에 이르기를 "백제에서 나왔는데, 백제는 옛 국명이며 본래 부여(扶餘)에서 나왔다. 본시 마한의 제국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후한말기에 부여왕 위구대(尉仇台)의 후예이며 (백제) 초기에 백가제해(百家濟海)에서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진(晉)대에 요서, 진평 2군이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골(骨)씨는성씨고략에 의하면 하남군에 보이는데 하남군은 지금의 하남성 낙양시 일대이다라고 되어 있다.

위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백제의 8대 성이 거처하던 지역이 산서성과 하북성 그리고 하남성과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에 이르기까지 주로 옛 동이가 터전을 이루고 살던 지역하고 거의 일치하고 있다. 사서에서 보는 백제의 활동지역과 백제의 성씨들이 분포한 지역이 또한 일치하고 있다. 백제의 요서경략과 동성왕이 북위와 싸운 지역과 일곱명의 태수를 임명한 지역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한 군사가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삼국사기] <최치원전>




"백제국이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사] <백제전>




"봄 정월…백제의 왕 여창을 사지절 도독 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북제서] <후주기> , [삼국사기] <백제본기>

((위덕왕 17년 사지절은 부절이라는 황제의 신임 표시를 소유했다는 뜻이고, 도독은 군사최고책임자, 자사는 행정관할 최고 책임자를 말한다. 북제서의 구절은 북제가 위덕왕에게 동청주의 군사와 행정의 총 책임을 맡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지절도독동청주자사(使持節都督東靑州刺史). 동청주(東靑州)는 산둥성 동남부로 현재의 청도(靑島; 칭다오) 지역을 일켜르며 이 지방은 당시 모든 물산이 모여드는 곳으로 물적, 군사적 요충지였고 백제의 활발한 해상활동을 말해주고 그 이전부터 화북지방까지 영향력이 미쳤다는 설명이다.))

 


"백제란 조상이 동이다. 동이는 세 한국이 있으니 첫째 마한, 둘째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열 두 나라가 있고마한은 54국이나 된다. 그 중에 큰 나라는 인가가 만여 호가 되고 작은 나라는 수천 호가 되어 모두 합치면 도합 10여만 호가되는데 백제란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후대에 점점 강성해져 모든 조그마한 나라들을 병합했다. 그 나라는 본래 구려(句麗)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晉)대에 구려(句麗)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의 두 군(郡)의 땅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다스렸다."
-[양서] <백제전>

 


"백제는 예부터 내려오는 동이의 마한에 속한다. 진(晉)말에 구려(駒麗)가 요동을 차지하니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을 차지했다."
-[양직공도]

 


"백제는 군현을담로라고 부른다. 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어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웅거하게 하였다.(...)서기450년 백제 비유왕이 방물을 바치며 사사로이 대사풍야부를 서하태수로 삼을것을 요구하고 역림,서림(기문둔갑)등점술서와 쇠뇌 등 병기도 요구하였다.(...) 황제는 이를 모두 들어주었다."
-[남사]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남방 월주에 닿고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 고구려 국경까지
남쪽은 왜국에 이른다. 백제는 동(한반도),서(중국대륙)두곳에 서울을 두고있다."
-[구당서] <백제전>

 


"백제가 망한후 그 땅(한반도,대륙백제 영토)은 신라,발해,말갈에 의해 나눠어졌다."
-[구당서] <백제전>, -[신당서] <백제전>

 


"처음 백가(百家)로서 바다를 건넜다하여 백제라 한다. 진대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의 두 군을 차지했다(현재의 유성(柳城)과 북평(北平) 사이)"
-[통전] <제도사>(당나라 제상 두우 편찬)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를 좌안을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 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때에는 중원을
차지하였다."
-[주서 49권] <백제전>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후 고려가 요동을 침략하여 차지하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소유하게 되었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하였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서는 백제가 다스리던 곳으로 진평군을 거론하고 그 도성을 거발성이다 라고 하였다. 거발성은 진평성이다. 그 곳은 지금 금주,영원,광녕의 경내(요서 지역)에 있다. 백제의 또 다른 도성인고마성은 조선국(한반도)에 있다.
-[흠정만주원류고] <대청제국 건륭제>




"금주, 의주, 애춘을 포함한 지역이 다 백제의 강역이다."
-[만주원류고] 


 

"백제왕은 동,서의 두성에서 거주하는데, 동쪽 성은 공주(충청도)로서 당시 국왕의 제2의 수도였다. 서쪽성은 지금의 부여현이니 양나라때 명농왕이 이산성에서 살았으며 성산으로도 쓰고 산동 영성현 동쪽에 있다."
-[신당서 각외국전 지리고증] <대청제국 말기학자 정겸>





 

※백제가 점령한 진평군

<<송서>> 지리지 광주군조를 보게 되면 올림군에 진평군이 있었다고 기록되있고. 이곳은 지금의광시좡족자치구 (廣西壯族自治區) 옹녕현(邕寧縣)으로서 옹녕현에는 현재 백제향(百濟鄕)이라는 땅이름이 명백히 남아있다. 또 백제향 안에는 백제허(百濟墟)가 있는데, ‘허(墟)’는 성터가 있던 곳에 붙이는 땅 이름이므로 한때 이곳에 백제 군사 요충지라는 것을 알수있다 단순한 무역기구였다면 성터를 지었다는건 상상조차 할수없는 노릇이다.
중국<역사지명사전>(http://katnani.egloos.com/1646043)을 참고하면, 진평군은 468년에 지금의 복건성 복주시에 설치되었으나, 471년에 진안군으로 이름을 고친 것으로 되어있다. 백제가 해상항로와 관련하여 중국 복주시 지역에 설치한 진평군은, 3년후 이곳을 둘러싼 유송(劉宋)과의 갈등으로 인해 3년만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유균인(劉鈞仁)의 <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 의하면 진평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진평은 현 이름인데, 진(晉)나라가 설치하여 광주(廣州) 울림군에 소속시켰고, 남송(유송을 가리킴)과 남제도 그대로 하였다.지금은 없어졌으나 광서(廣西) 경계에 있었다."
바로 그곳이 백제의 문화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광서 장족자치구 창오현 일대이다. 이어서 백제군에 대해서는"백제는 지명인데, 광동 흠현 서북쪽 1백80리에 소재하였고, 터가 있는데 오문과 계림 2성의 경계가 교차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광서 장족자치구에도 존재한다.

또한 진평군이 설치된 지역은 북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팥 문화권에 속한다. 이 팥 문화는 한반도와 백제가 진출한 일본 열도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에서 (대륙백제-한반도-일본열도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공유를 짐작할 수 있게끔 한다. 이 지역과 인접한 운남성에서 김병호박사가 이끈 <중앙일보>탐사팀이 우리 민족 고유 풍습인 지게가 발견되었다. 탐사팀은 운남성의 첩첩산골인 호도협을 지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 처녀들이 지게에 나무를 져 나르는 모습을 발견했는데, 지게는 한국민족의 독창적 발명품으로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운반도구이자 우리가 사용하는 지게모습과 그대로 일치하고 백제에서 전해져온 문화적 풍습이 오늘날 나시족한테까지 전해져있다. 

중국의 역사책 <신당서>와 <구당서>에서도 백제의 서쪽 경계를 월주, 즉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 부근인데 백제의 국경이한반도만이아니라 중국 해안지방일때까지 뻗쳐있었다는 것이다.


※남중국 계열의 사서에서만 대륙 백제가 보인다?? -그렇지 않다-
구당서, 자치통감, 통전, 북사, 북제서, 만주원류고 등은 북중국 계열의 왕조 또는 후예가 남긴 사서로, 강단사학자들이 밥그릇챙기기에 급급하고 반도사관을 버리지못한 억지 주장이다.


※강단사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중국의 송서,양서,남제서,북제서,남사,구당서,신당서,양직공도,통전,흠정만주원류고 등
백제를 기록한 이십사사(二十四史)중 중국정사 역사서들이 위서라는 주장이된다.


※중국이 미쳤다고 오랑캐라고 여기는 변방국한테 "한궈. 니네 역사불쌍하다해. 우리가 잘써준다해." 이러고 호구짓 할까?????


※이게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면서까지 한국을 5천년간 짝사랑 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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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11-05-13 11:09
   
만주원류고에 보면, 그쪽이 아니고, 요서의 그냥 변두리지역을 잠시 점령했었죠. 중국대륙이 혼란스러울때

말입니다.

금나라, 청나라는 애써 부인하시는 분들이 이딴건 철석같이 믿는군요~... 글쎄요...별로 신빙성이 없네요..

열심히 믿으세요. 요동, 요서 만주쪽 얘기라면 모를까??? 좀 황당스럽기 까지 하군요~
     
s 11-05-13 12:00
   
웃기군ㅋㅋㅋ  삼국사기. 북사, 구당서, 남제서가 도리어 만주원류고보다 더

정확성 높은 사서 아닌가? ㅋㅋ 만주원류고는 청황제 칙령으로 스스로 자신들이 신라의 뿌리와 정체성을 밝힌

부분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거지.
          
ㅋㅋ 11-05-13 13:02
   
옛날 지명이라고 저렇게 함부로 지도로 그려서 우리영토라고 지껄이면 안되죠.

별로 영양가도 없고, 딱 중공애들이 보며 비웃을 자료를 들이밀면서.

그냥 왜 왕가가 그쪽 뿌리라고 자랑하세요. 그게 더 보기 좋습니다. ㅋㅋㅋ
               
사서 11-05-13 13:05
   
짱개들 비웃기 전에 저 사서들 다 불태워 버리던지 ㅋㅋ

지들이 무슨 사서니 고고학 근거로 역사공정했던가???

웃기지도 않네. 도리어 우리가 사서고 고고학 근거로 말하며 이런 헛소리나 나오고.

누가 비웃을지  ㅋㅋ
                    
ㅋㅋ 11-05-13 13:25
   
시대상황이 이렇단 말이죠.
위,진 남북조. 중국은 상당히 혼란스럽던 시절이죠.. 그딴 자료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 모르겠지만...
통일 수왕조가 나타나기까지, 중국은 약 3세기 반 동안 분열을 거듭했다. ‘위진남북조’시대라 통칭되는 이 시대에도 잠깐의 통일은 있었으나(진(晋)나라의 삼국통일), 대분열기 초기의 일시적인 봉합이었을 뿐, 수백 년 동안 중국은 분열된 상태가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45개 왕조의 235명의 군주가 이 시대에 명멸했다. 한족뿐 아니라 흉노족, 선비족, 강족 등 몽골, 터키, 티베트계의 이민족들이 저마다 왕조를 세워 할거했다. 전쟁, 쿠데타, 암살은 다반사였다. 세워진 지 몇 년 안 되는 왕조가 전쟁으로 없어지거나, 그런 전쟁에서 어떤 신하가 공을 세우고는(방어 쪽에서든 공격 쪽에서든) 얼마 후 그 신하의 손으로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생겨나거나 했다.
고글 11-05-13 13:37
   
구한말 조선시대만 해도 저기 그려진 지도 상당부분을 조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래된 얘기가 아니지.
시대상황에 따라 남의 조상을 자신의 조상이라고 우기는 짱궈의 행태는 언젠가 철퇴를 맞게 될거야
모르면 다… 11-05-13 13:38
   
ㅋㅋ>무식한 소리군.

남북조 시대가 혼란 스러웠다고 역사서가 혼란 스럽다?

역사서란 후대에 편찬되는 것이 기본이고. 그 기록에서 과장이나 축소가 있을 순 있어도 사서의 있는 기록 자체를 없니로 말하는 건

글자 그대로 비난을 위한 비판일 뿐이고.


백제의 해상활동 세력은 워낙 강했고 독자성을 유지해서 열도의 오사카고 관서 관동 지역을 지배한 백제인들에게

본토에서 후왕을 인정한 철검에 새겨진 유물연구에서도 보이듯 도리어 백제가 오카사로 가는 항로보다

산둥으로 가는 뱃길이 직항에 단거리로 빠른 곳이었다.



지금의 국경선이야 선이지만 당시는 교통이고 통신이고 발달한 시절도 아니고 점에 의해 지켜지는 방어 선으로 얼마든지

넓은 영토는 혼란한 시기에 여러 세력이 할거하거나 들어갈수 있었고

백제의 당시 군사력이나 철의 무기수준 그리고 강력한 해상활동에는 얼마든지 저런 시기에 자신의 영역을 넓히거나

들어가서 침투할 방법은 존재했고  북위에 밀려난 남조사의 왕조를 봤을때 당시의 남조는 이런 백제의 활동을 저지할 수준보다는

도리어 감지덕지 수준으로 반길 상황이였다.
     
모르면 다… 11-05-13 13:45
   
실제 저기에

짱국 동해안 지역에 임명되는 관직명들 보면 아예 남조가 백제 힘을 빌리려고

부른 것 보다 백제 스스로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아예 북조와 맞땅 뜨고 스스로 그냥 남조에 통보한 정황으로 보이는데

이건 당연하지.

결국 당시는 정복왕조 시절이고 무력이 강하면 영토를 넓히고 가질수 있던 시절이니.

선비족 북위에 밀려나서 남조로 내려온 한족들이 북위 기병 수십만 대군을 백제가 대패시켜 버렸는데

지들이 백제에 허락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부분이고 그런 시대적 상황이고.
이야 11-05-13 17:34
   
글쓴이 밥통이네 ㅋㅋㅋ

정작 침략당한 북조 사서에는 백제 기록이 한줄도 안나오는데..

더군다나 삼국사기 도대체 어디에 백제가 중국을 침략했다고 그랬냐?

설마 최치원전에 나오는 100만 이야기 얼버부릴려는 초딩짓은 안하겠지??

구당서 이딴건 한참 후에 나온 사료니 때려 치우고, 니가 댄 사서 대부분은 남조 사서들인데

왜 정작 침략당한 북조나 침략한 우리측 기록은 명명백백하게 백제가 어딜 공격했다는 내용이 없냐?

백제 유물이 하나도 안나오는건 둘째치고 멀좀 알아보고 지껄여라 ㅋㅋ
     
fd 11-05-13 20:01
   
삼국사기는 백제가 편찬한게  아니라 백제를 정벌한  신라입장에서 편찬한것이니 기록안하는게 당연하다

북조입장에서도 얻어맞은걸  뭐하러  쓰냐?  백제가 침략한  땅은 북조땅도 아니었다.  북조도 침략자였을 뿐이다.
     
fds 11-05-13 20:03
   
백제유물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네가 어떻게 아는데?  백제유물도 중국땅에 있으니 다  중국유물로 알려지는 것이지.  지금 중국유물로 알려진  것중에 진짜 중국유물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하나?  다 중국을 침략하고 정복한  외국인들의  유물이다.  청나라,  원나라,  금나라,  요나라,  수나라,  5호십륙국  등  다 중국유물이  아니다.
          
11-05-13 21:21
   
이야> 무식하네

삼국사기에 광개토 태왕 글 몇자 있는 지 봐라.

광개토 태왕 비문때문에 정복 활동을 알게된 거지.

그럼 삼국사기에 안나오니 삼국사기는 구라인가? 광개토 태왕 정복은 삼국사기에 없는 거니 구라인거야?
          
응? 11-05-14 04:01
   
고고학적 근거가 전혀없는 이야기이잖슴... 점령을 했다면 백제양식에 유물이 나와야 성립이 되죠... 나라마다 양식이라는 것이 있었고 중국에는 그것이 없었을뿐임...
rew 11-05-13 22:56
   
당시  백제가 북조를 쳐서  나라를  중국으로 넓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북조자체가 중국도 아니고 북방이민족이 중국을 쳐들어와 식민지배한  나라입니다.  백제가  산동지역에 진출할  당시 산동지역은 원래 동이의 지역이었고  같은 종족이니 별  저항없이 영역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백제 이전에 산동지역은 한나라  한족에 의해 식민지배당하고 있었는데 한나라가 망하니 그지역 동이인들은  해방을 맞았고,  같은 동족 백제인의 지배를 반가와 했을겁니다.  말도안통하는 외래민족 한족보다  훨씬  좋죠.

중국땅을 정복하는 것을  무슨  엄청난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어마어마한  사건쯤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당시 백제가 차지했던 산동지역은  중국의  일부자체가 아니었고 전통적으로 백제와 같은 동이족의 영역이었습니다.
이야 11-05-14 05:08
   
꼬꼬마 새뀌들아..아주 xx을 해라 ㅋㅋㅋㅋㅋㅋㅋ

북조가 얻어맞은 역사를 멋하러 기술하냐고?

전진이 동진 정벌할때 90만명이 8만명한테 깨진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건 둘째치고,

북조가 5개 이민족으로 갈기고 찢기고 거의 300년 동안 이민족 침입을 받았는데,

백제가 그것도 중국의 핵심적인 부분인 북경지역을 점령했다는걸 기술하는게 머가 어렵냐??

완전 이거 어이가 하늘을 찌르네 ㅋㅋㅋㅋ

그리고 광개토태왕이 정복활동했다는게 광기토태왕비 때문이라는건 먼 개솔임??

그 내용의 분량의 차이가 있어서지 분명 삼국사기에 광개토태왕 정복 활동이 기술되어있는데?????????????

그리고 자꾸 삼국사기 부정하려 하는데....

그럼 이제 아주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나와있는 고구려, 백제 1~2세기 왕국형태도 부정할려는 기세다?

풍납토성이 발견되면서 백제가 1~2세기에도 왕국형태를 갖췄다는게 증명되었는데도 말이지..

니들 그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부정하면 머가 남는지 알고나 지껄이냐???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고구려, 백제 1~2세기 부락형태랑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일본부설이 남는데..

이것들 가만보니 교묘한 짱깨, 쪽발 아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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