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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23 16:47
[일본] 궁중연회에서 조차도 맨밥만 먹었던 일본인들
 글쓴이 : Shark
조회 : 6,763  

a1.jpg


왕의 식사는 밥 한 공기가 전부, 밥그릇도 작음


 a2.jpg


다른 사람도 밥상이 없이 바닥에 놓고 먹는 것. 일본인들이 밥그릇을 손에 들고 밥을 먹는 이유는 밥상이 없기 때문.

반찬 비슷한게 조금 있기는 한데 저걸 반찬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점심? 점심식사라는건 원래 일본에 없었음. 


참고로, 이미지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거미집의 성


아울러, 밥그릇 문제는 나무그릇이 위생에 안 좋은데 

왜 한국처럼 놋그릇을 쓰지 않고 나무그릇을 쓰느냐죠.


문제는 일본도 고대에는 한국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이 다 있었다는 거.

어느 시점부터 일본인은 나무그릇에 젓가락만 쓰기 시작했죠.


숟가락이 없으면 국물요리가 발달할 수 없죠.

나무그릇은 가벼워서 밀리므로 손에 들지 않으면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밥을 뜰 수가 없죠.

놋그릇은 무거워서 가벼운 나무그릇으로 먹는다는 거.


http://gujoron.com/xe/755291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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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위해 16-09-23 16:51
   
우와 일본에 어느정도 안다생각했는데 저건 몰랐네요.
     
Shark 16-09-23 17:01
   
역설적으로, 일본놈들이 '니혼노 메시가 사이코니 우마이'((아시아에서) 일본쌀밥이 최고로 맛있다)고 걸핏하면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부실한 반찬 및 찌개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운드르 16-09-24 13:33
   
하지만 실제로 중국에 유명했던 것은 조선 쌀밥이었지 일본이 아니었다는 거...
타샤 16-09-23 17:06
   
우리도 비슷할껄요?
조선시대땐  임금도 소고기를 거의 못먹었으니...
고기를 빼고 나면 나머진 대동소이 하죠.

산나물이나 김치 같은 절임류... 뿐이에요.

참고로 한정식 집...
그렇게는 임금도 못먹었습니다.
거기서 고기는 다 빼고, 남은 반찬중에 절반 정도만 남겨 두면...
아마 그게 임금의 밥상이었을거고..

거기서 채소류만 3가지 골라서 올려 놓으면 잘사는 집안 밥상이었을겁니다.

간장이나 된장이 왜 발달했냐 하면, 절임 채소나 채소를 먹기 위해서 입니다.
     
순대천하 16-09-23 17:35
   
조선 후기조차 중인까지 소고기를 먹었는데요.

거기다 허가제였을 땐 일부러 다치게 해서 먹었어요.

백정이 왜 있을까요.

간장과 된장은 고기요리에도 들어가구요.

임금님 밥상은 6찬
     
굿잡스 16-09-23 19:37
   
식료찬요(食療纂要)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음식과 약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했다. 먹는 것이 바르지 못하면 병이 생기고, 식(食)을 바르게 하면 병이 낫는다는 이른바 '약식동원(藥食同原)'의 원리다.
 
조선시대 어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세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식료찬요(食療纂要)’는 중풍·감기·천식·술병·부인병 등 45종류의 병증을 증상에 따라 수백 개로 세분한 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를 활용한 치료법을 소개한 본격적인 ‘식이요법서’다

.
.
식료찬요의 이색처방…돼지 혀·삵 고기 등 특이한 재료 많아

돼지 혀, 토끼 간, 사슴 콩팥, 삵 고기, 노루 고기, 멧돼지 수컷 생식기 등등
.
.

http://cafe.daum.net/guxiang1012/Pkke/1365?q=%BD%C4%B7%E1%C2%F9%BF%E4


식료찬요
 
조선의 대표적인 식치 의서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54XX50300012


이미 조선은 가난한 백성도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한 45개의 병종을 수백개의 증상으로 분류

175종의 음식재료로 먹고 치료할 수 있는 체계적 의학 먹방서까지 만들어 보급한 나라이군요.
     
그노스 16-09-23 19:39
   
세종대왕은 고기없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박제가의 북학의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하루에만 도살되는 소가 5백마리였다고 하고 성균관과 한양 5부에 24개의 대형 푸줏간, 3백 여 고을의 관아에도 빠짐없이 고깃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서울 인문 지리지)에 나오는 시전의 풍경을 보면, 쇠고기를 뺀 나머지만 해도 생치전(산뀡), 건치전(말린꿩), 생선전, 닭전, 저육전이 골고루 있어서 민가에 보급했다고 합니다.
중종 실록에 따르면 반촌(백정들의 거주 지역)민들의 도살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쇠고기를 반찬으로 독점 제공한 것이 오랜 유래였는데, 유생들이 성균관에서는 고기를 금하고 기숙사와 명륜당에서는 먹기로 했다는 별난 기록도 있습니다(기록한 사관에 따르면 유생들이 튀어보이고 싶어 했다고)
     
돌돌맨 16-09-24 00:06
   
모르면서 왜 아는척 하는것임 난 또 그런줄 알았는데 댓글보니 아니네...
     
아스카라스 16-09-24 00:34
   
조선왕이 한정식보다 못먹어요?
국그릇 김치그릇 빼고 12반찬을 임금님 수라상이라 불렀는데밤이나ㄴ낮이나 배고플때 과자와 술로 간식을 먹던 게 임금이고
부잣집 역시 약과 한과에 과일 청주로 간식을 삼았는데
고기를 못 먹어요? 임금조차?
조선초기에 한양 저잣거리에 나뒹구는 게 소뼈다귀일 정도로 소를 많이잡아먹는바람에 조정에서 금지를 내릴 정도였어요.
가난한 백성조차도 숨어살지만 않으면 고기구경은 명절이나 마을잔치, 혼례식마다 했을 겁니다. 애초에 세율도 겁나 낮고 자급자족식 농경정책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먹을게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헬본이라 하니 헬조선이라 답하시네
          
디바2 16-09-24 11:25
   
세율이낮았다?근거는요?
농사짓고수확량의10퍼른 일제시대에 법으로 정해진후 그리된거고요.
조선초는 50퍼로였다가 후기로 넘어가면서 백퍼로 심지어 이백프로였다던데요.
이백프로 쌀농사와  보리농사두번지으니 200퍼로가나오는거니딴지걸지마세요
세율이아니고 소작료요
               
순대천하 16-09-24 19:18
   
넹? 일본이 50퍼로고 조선이 10퍼로 였는데요?
               
아스카라스 16-09-24 20:04
   
세율이 그렇게 빡세서 밥솥크기로 한끼를 먹었나요?
좆본은 세율이 그렇게 낮아서 먹는 게 그따위였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패럴림픽 대표선수시네 ㅋㅋㅋ
     
구름위하늘 16-09-26 08:58
   
무슨 자료보고 이런 소리를 하는건지.
에고....
     
햄돌 16-09-30 15:06
   
조선시대때 임금도 소고기를 거의 못 먹었다는건

어디서 배워온 개소리여?

전국 각지 귀한 특산물 갖다가 만드는게 임금님 수랏상이었는데
굿잡스 16-09-23 17:52
   
열도는  잽극우들이 말하는 찬란한 에도시대 조차 밥이 귀했답니다.ㅋ
디바2 16-09-23 18:00
   
음 호도마끼 오뎅 라면 스시 회  우동 이일본거죠.
우리 김치하난데 김치가 임진난때 일본이  마구뿌려대고 다닌덕택에 김치가만들어지게되죠.
중국이 김치를지네가윈조라고하는게 임진난때까지만해도 중국김치가 한국보다 월등했는데 임진난이후
한국김치가 급발전하게된거라.

아 회하고 김은 우리거라고요?
마자요 회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시절부터무그죠. 아마일본보다빠를거에요.
근데 회집이름이다뭐죠? 일식집이죠. 지금의회는 일본이  구성한거니까요,
김도 우리도  선사시대부터먹었겠죠. 그땐 뭐라고안무그게서요. 근데종이식김이게 일본에서개발한거거든요
     
순대천하 16-09-23 18:08
   
잘알고 계시네요
     
굿잡스 16-09-23 18:10
   
우리 김치하난데 김치가 임진난때 일본이  마구뿌려대고 다닌덕택에 김치가만들어지게되죠>??ㅋ

디바 2 이 사람은 아래 글이나 댓글들이고 보면 진짜 뭘 알고 이런 글들을 적은지?? 쯧.

(요즘 가생이 보면 잡게고 다중닉으로 어그로 자기 글에 지원 자격이고 무차별적이더만.)
     
콜라코카 16-09-23 18:16
   
문헌에도 나와있는걸 왜곡하고 자빠졌네 ㅋㅋㅋ
          
디바2 16-09-23 18:25
   
회는우리가원조마즐거에요.선사시대 네안타르인이 ㅎ생선을잡아그냥무근게 회의기원이죠.아미 김도그때부터무그설게요.그게 대락 사오만년전인데 고작 천여년전에 회를처음 무근 쪽본이  아닥하지않고 웃기죠.
김하고회는우리가원조마자요. 인정합니다.
     
규니 16-09-23 18:23
   
김에 대한 유래나 찾아 보고 그런 소리하세요..
김을 양식한 사람이 조선의 김여익으로 
나무 가지등을  이용한 김 양식 방법을 창안 보급했고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 소비량이 한국이 더 많고 일본은  수심이 깊어서 김이 맛도 없고
양식하기도 힘들고 값도 비싼 곳입니다..
     
굿잡스 16-09-23 18:34
   
호도마끼 오뎅 라면 스시 회  우동 이일본거죠> ??

왜인들은 고대에서부터 이런 거 만들어 먹고 살았구만 ㅋㅋ(어이없음)
     
Irene 16-09-23 18:42
   
김은 일본인 조차 노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해태나 한국김이라고 하지요.
종이김의 경우 해의라고 최소 1400년대 부터
먹었습니다.
당시에 해의의 단위를 첩, 즉 종이다발이나
종이책에 쓰는 단위를 사용했죠.
일본에서 종이김이라고 만든게 1700년대
입니다.
일본에서도 종이노리(일본식 종이김)의
원조라고는 해도 한국 김의 원조란 말은
못합니다.
기록상으로 봐도 조금씩 다 일본이 늦거든요
영어로도 김과 노리는 다릅니다
          
디바2 16-09-24 11:28
   
김씨가해서김이었다.이거말하는건가요? 이거랑 잉카마야문화를 한국이세웠다는 말과 뭐가다른가요?
어거지는 앞뒤맞추어  해야죠.
               
무라드 16-09-24 18:16
   
븅신 ㅋㅋㅋㅋ
               
순대천하 16-09-24 19:19
   
넹? 실록에 나오는데요?
               
귀환자 16-09-24 19:56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스카라스 16-09-24 20:02
   
아니 잉카마야가 왜ㄴ나와요ㅋㅋㅋㅋㅋ 샌드위치는 샌드위치 백작 이름에서 따온건데 이것도 말 좆도 안됩니까??
               
햄돌 16-09-28 15:03
   
이미 기록은 신라가 김 발견하고 양식하고 했다는 기록 다 있는데

이건 뭔 개소리 시전이세연?
     
섬나라호빗 16-09-23 19:00
   
일본이 뭘 뿌림?
     
까피까피룬 16-09-24 19:20
   
이사람 이상하네요. 왜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려요.
추리의세계 16-09-23 18:03
   
점심 개념은 조선에도 없었어요. 참의 개념만 있을 뿐. 대신 아침과 저녁의 식사량이 지금의 개념으로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지요.

조선시대도 생선을 제외한 육류의 소비는 후기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발전합니다.

/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이래로 식도락이 발전합니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무라이도 있었고요.

다만 육류는 정황상 소비하기 힘들었고요. 채소와 생선류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반찬의 개념이 크게 발달하지않아서 한두개만 놓고 먹는데, 이 개념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여러개 반찬이 나오는 경우는 세계에서도 아주 희귀한 경우입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이후 토쿠가와가 집요하게 조선에 수신사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는데요. (안정적인 지배를 위해 지배철학이 필요했던 도쿠가와 막부는 성리학자를 보내달라고 했죠.)

이 수신사에게 들어간 돈이 막부 1년 예산의 1/3이라고 합니다. 그 중 상당 액이 식비라고합니다.

다시 말해 요리가 발달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한 번의 식사에 여러 종류의 요리를 먹지는 않았다가 정답입니다.
     
굿잡스 16-09-23 18:19
   
이 수신사에게 들어간 돈이 막부 1년 예산의 1/3이라고 합니다. 그 중 상당 액이 식비라고합니다>??

그 중 상당수가 식비라는 데이타는 어디서 나오는가요??(조선 통신사들 음식에 대접

받는 품평보면 불평 불만이 많은데 ㅋ. 도리어 왜인들 조선의 의복이나 가져간 음식들 보면

부러움에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더라는 기록이 보이고)

상식적으로 조선 통신사들이고 사람들이 얼마나 먹방으로 먹는다고 먹는거에 재정의 3분의

일이 날아갈 수 있다는 말인지??
          
추리의세계 16-09-23 18:31
   
오버하시네. 제 글 어디에 1/3이 다 식비로 쓰였다고 나오는지.
               
굿잡스 16-09-23 18:34
   
수신사에게 들어간 돈이 막부 1년 예산의 1/3이라고 합니다. 그 중 상당 액이 식비라고합니다>??
                    
추리의세계 16-09-24 03:27
   
님은 역사보다 국어부터 배우는 게 우선일듯.
                         
아스카라스 16-09-24 20:05
   
님은 훈장님께 배우러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굿잡스 16-09-23 18:24
   
당시 에도 시대에 조선 통신사를 위한 접대에 왜의 국부 즉  농업생산량에서

대략  3.2에서 최대 11프로가 써였다는 논문 연구 내용들은

지금으로 치면 올림픽에 외국인들 보여주기

식으로 치장한다고 자국의 초라한 도시 모습 정비에  즉 조선 통신사가 지나가는

도로신설, 교각 정비나 휴게소 건립등에 수만명의 노역과 재정을 가져가서 짓다보니 휘청했다는

말이군요. (물론 어느 정도의 후한 향응도 있었지만. 이건 조선이나 서토에도 사신 접대에

어느 정도의 국격과 대접이 따르는 건 기본 사항들이고)

이때문에 당시 조선 통신사는 새로 지어진 왜의 건물들을 보면서 이런 속사정은 모르고

건물은 크고 좋다라는 일부 품평도 있었고.(그러나 이건 일정 보여지는 부분이고 당시 에도시대의

서민들의 가옥이나 식량난은 중후기로 갈수록 더욱 악화. 실제 에도시대의 왜인의

성장점이 역대 이전 야요이 나라 헤이안 시대등보다 최저점이였군요.)
지우개 16-09-23 18:39
   
올만에 들어와보니 후진국 일본 빠는 애들은 여전히 몇몇이서 애쓰네..ㅋㅋ 아님 안쓰러운 종자 일본애들인가...ㅉㅉ
굿잡스 16-09-23 19:44
   
여기서 국적 불명의 어그로들 지들 열등감에 근대 이전의 특히나

조선의 문화나 사회상을 까봤자 서토나 왜국은

조선을 깔수록 자신들의 허접함을 더 드러냄을 알려나? ㅋ

비록 조선이 근대시기에 세계적 근대화의 신문물 수용이 왜국에 비해 늦어지면서 35년 잽강점기라는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남을 오점을 보였지만 중근세시절 이미 조선이 이룩한 사회 문화상이나 철학은

알면 알수록 사이즈 자랑질 쳐하지만 이민족에 정복당하는걸 밥먹듯 하던 서토인이나

미개한 왜인들이 깔  수준이 전혀 아닙니다요.
옥철아줌마 16-09-23 19:49
   
ㄷ 지금 북한꽃제비들이 그나마 더 화려해보이네
그노스 16-09-23 20:03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0&key=20130326.22020194738

조선통신사 사신에게 주연에서 제공되었던 '753선'. 이는 7종류의 음식을 차린 상, 5종류의 음식을 차린상, 3종류의 음식을 차린 상이 순차적으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

- 500명가량 구성된 사절단에
- 숙수 도척 등 요리사 8명 동행

- 왜인들 술 곁들인 주연 때는
- 7·5·3 종류 음식 차례차례 제공
- 식사 땐 '3즙15채' 상차림 내놔
- 지방 봉건영주보다 융숭한 대접

- 숙박지 외 장소선 조리 가능케
- 식품 재료 5일에 한 번씩 제공

- 불교 국교로 삼았던 까닭에
- 공식적으론 육류 섭취 금기시
- 별도 출입문 만들어 수육 제공

조선통신사 일행은 정사, 부사, 종사관, 통역관, 격군 외에 도척(刀尺·음식 만드는 노자, 칼자라고도 함) 7명과 숙수(熟手·전문 조리사) 1명 등을 포함해 약 50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쌀, 찹쌀, 콩, 팥, 좁쌀, 메밀, 율무, 녹두, 녹말, 밀가루, 육포, 편포, 건장(노루 말린 것), 건치(꿩 말린 것), 건전복, 건해삼, 건홍합, 굴비, 미역, 김, 꿀, 참깨, 참기름, 소금, 간장, 겨자, 생강, 표고버섯, 인삼, 곶감, 호두, 밤, 황율, 잣, 배, 누룩, 소주 등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에서 노자(여비) 명목으로 징수한 물품을 받고 에도(지금의 도쿄)로 향한 여행길에 올랐다. 물론 식품 외에도 생지황에서 적작약에 이르는 43종의 약재와 종지, 사발, 대접, 숟가락, 젓가락, 주전자, 칼, 바가지, 솥 , 번철, 석쇠, 독, 항아리, 밥상 등도 노자가 되었다.

이들은 기선(사람 태우는 배) 3척과 복선(화물선) 3척에 사람과 짐을 나누어 싣고 부산 영가대를 출발하여 이즈하라, 이키, 아이노시마, 시모노세키, 가미노세키, 가마가리, 도모, 우시마도, 무로쓰, 효고, 오사카, 요도, 교토, 모리야마, 히코네, 오가키, 나고야, 오카자키, 요시다, 하마마쓰, 가케가와, 후지에다, 에지리, 미시마, 오다와라, 후지사와, 시나가와, 에도에서 숙박했는데 에도까지 순탄한 여행길일 경우 약 3개월이 소요돼 부산으로 귀향까지 적어도 6개월이 걸렸다.

대마도 부중이었던 이즈하라와 이키, 아이노시마를 지나면 시모노세키에 들어간다. 약 500명의 통신사 일행 외에 통신사를 수행하는 대마번주 일행과 대마도에서 외교사무를 막부로부터 위임받고 있는 윤번승 그리고 그 수하 직원 500명 및 선물과 일행의 짐을 운반하는 자 1000~2000명을 합하여 총 2000~3000명의 대행열이 숙박지에 묵어가면서 에도까지 가기 때문에 시모노세키 이후의 각 숙박지에서는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접대에 동원되었다. 그래서 이즈하라에서 에도까지 왕복에 동원된 사람은 대략 33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막부의 일년 세입인 76~77만 냥을 훨씬 넘는 100만 냥(약 500억 엔)이 1회의 통신사 접대에 쓰였다.

■최상의 접대 '753선'


가마가리에서의 1711년 접대를 예로 들어 각 숙박지의 상황을 엿보자.

가마가리 도착은 9월이었지만, 다른 번의 접대 모습을 탐색하기 위하여 1월에 대마도, 3월과 6월에 아이노시마, 시모노세키, 가미노세키로 사람을 보내 접대 상황을 탐색한 다음, 통신사를 대접하는 사람, 술 봉행자, 과자 봉행자, 랍촉 봉행자, 술안주 봉행자, 과일 봉행자, 기타 여러 도구 봉행자, 통역자, 의사, 요리인 등 759명을 대기시키고, 송선(送船) 135척을 준비했다. 또 정사, 부사, 종사관에게 아침밥과 저녁밥은 '753선(膳)'과 '3즙(汁) 15채(菜)'로 올리고 점심밥은 '553선'과 '3즙15채'를 접대하도록 하였다. 식사를 위한 것이 '3즙15채'라면 술 향응을 위한 주연(酒宴) 상차림이 '753선', '553선'이다.

1663년 에도막부는 연회 때 다이묘(大名, 봉록이 1만 석 이상인 무사)에게는 '2즙7채', 고급공무원은 '2즙5채', 천석(千石) 이상은 '1즙3채', 500석 이상은 '1즙2채'를 하도록 명하여 이후 엄격히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삼사(三使)에게 제공된 '3즙15채'는 지극 정성을 다한 접대였다. 식사 전에 주연 부분에서 나오는'753선'은 에도시대 때 손님에게 제공되는 일정한 기준과 정해진 규칙하에서 만들어진 최상의 요리였다. 그래서 대마도, 가마가리, 오사카, 나고야, 에도 등 거의 전국이 똑같이 만들어져 나왔다. 이는 7종류의 음식을 차린 상, 5종류의 음식을 차린 상, 3종류의 음식을 차린 상이 차례로 나오는 것으로 가장 화려한 연회에서는 7개의 상이 점차 배선되었다. 1636년 종사관으로 따라갔던 황호는'753선'에 대하여 '동사록'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잔치 때에는 753제도가 있다. 처음에 7그릇을 차린 반(상)이 나온다. 물고기 또는 채소를 가늘게 썰어 고여 담아 높게 고인 것이 마치 우리나라의 과반(果盤)과 같다. 다음에 5그릇을 차린 반, 그다음에는 3그릇을 차린 반이 나온다. 물새를 잡아서 그 깃털을 그대로 둔 채 두 날개를 펴고 등에 금칠을 하여 반에 차린다. 과일, 국수, 떡, 생선, 고기 등에 모두 금박을 입혔다. 술잔을 올려놓는 반에는 조화로 만든 꽃과 나무로 장식하였다. 음식을 담는 질그릇에는 금과 은을 입혔고, 흰 목판으로 만든 반(상)에도 또한 금과 은을 입혔다. 연회가 끝나면 그릇과 반을 깨 버리고 두 번 다시는 쓰지 않았다.'

이 극도로 화려한 금과 은을 입힌 질그릇과 반을 한 번만 사용하고 깨뜨려 버려 두 번 다시 쓰지 않음을 손님에게 보이는 것은 손님을 지극히 공경한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1607년 부사로 파견된 경섬도 '해사록'에서 이 괴이하고 극도의 사치스러운 장면에 대해 피력하였다. 그러니까 학, 기러기, 오리, 도요새, 메추라기, 종달새, 고래고기, 달걀, 각종 어개류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든 '753선'의 제도는 어느 시대든 어느 지역이든 임진왜란 이후 12회 일본에 다녀온 조선통신사의 고위 관리에게 주연에서 제공된 상차림이었다. 주연 이후 식사 때에 제공된 '3즙15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시대와 지역을 벗어나 일정한 규칙하에서 제공되었다.

■황금을 돌처럼 여긴 통신사

숙박지 이외의 장소에서는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식품 재료를 제공하였다. 쌀, 팥, 밀가루, 소라, 도미, 농어, 생전복, 건전복, 고래, 건해삼, 건가다랭이, 은어, 방어, 고등어, 건어, 오리, 달걀, 닭, 꿩, 메추라기, 소, 돼지, 멧돼지, 사슴, 돼지족, 토란, 두부, 말린박, 우엉, 무, 파, 생강잎, 동아, 가지, 홍작약, 백작약, 죽순, 오이, 고사리, 표고버섯, 미나리, 백합, 군고구마, 나물, 장과, 채소, 송이버섯, 다시마, 미역, 후추, 겨자, 참기름, 된장, 간장, 초, 소금, 배, 감, 포도, 수박, 밤, 황귤, 귤, 감귤, 청귤, 용안, 여지, 비자, 감, 곶감, 유자, 비파, 복분자, 참외, 꿀에 잰 토란, 꿀에 잰 과일, 천문동당, 빙당, 화당, 사탕, 설탕, 정과, 정실주, 오향주, 등주, 소주, 백주, 인동주, 제백주, 요아주, 복분주, 상매주, 시화주, 매화차, 차, 귤차, 우지차, 천지차, 녹차 등이 재료가 되었는데, 이들은 조선에서 데리고 간 숙수의 지도로 도척들에 의하여 조리되어 현지식이 되었다.

이렇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받는 식품은 대게 5일하정(五日下程)이라 하여 5일에 한 번씩 제공되었다. 하정은 상당히 풍부해 1636년에는 통신사가 귀국길에 오를 때 에도에서 먹고 남은 쌀 수백 섬을 황금 170정(錠·일천수백 냥)으로 바꾸어 사신에게 주었으나 하마마쓰의 강(今絶河)에 군관과 역관을 시켜 모두 던져 버렸다고 황호는 '동사록'에서 기술하고 있다.

■돼지 출입문을 별도로


에도시대의 일본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까닭에 소, 돼지 등의 육류 섭취는 금기시되었다. 히코네에서 통신사는 종안사(宗安寺)에서 머물렀다. 종안사는 정문으로 수육이 들어오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통신사에게 제공되는 돼지 등의 출입문을 별도로 만들어 흑문(黑門)이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접대받은 '753선'과 '3즙15채'를 조선정부가 일본사신에게 접대했던 음식과 간단히 비교해 보자.

조선왕조는 일본사신에게 아침밥(朝飯), 점심밥(晝飯), 저녁밥(夕飯)으로 7첩상, 5첩상, 3첩상을 제공하였다. 장(醬)을 제외하고 7그릇, 5그릇, 3그릇으로 차린 7, 5, 3 숫자는 일본이 주연에서 제공하였던 '753선'의 7, 5, 3과 같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는 일본사신에게 조반(早飯)을 하루에서의 공식적인 의례용 밥상으로 삼아 거식오과상(車食五果床)을 제공했다. 이것은 15기의 찬품과 3기의 탕으로 되어 일본이 주연 후에 음식으로 제공했던 '3즙15채'와 구성이 같다. 또한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 '753선'에서 차려진 높이 고여 담는 차림법은 조선왕조의 과반(果盤) 차림법과 같은 것이었다. 양국의 상차림법만 보더라도 당시 조선과 일본의 음식문화교류는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김상보 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

듣기로 통신사 접대로 국가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었다고 하니 저 시대 일본이 무리를 많이 했네요.
저 시절의 예의와 정성이 지금은 다 어디갔는지...
코리아헌터 16-09-23 20:45
   
근래까지도 일본인들의 도시락은 쌀밥에  우메보시(매실짱아찌) 한 두개만 반찬 삼아 먹었어요.
화려한외출 16-09-24 02:04
   
방사능 오염에 뇌도 슬슬 녹아내리는듯 ㅋㅋㅋ

그냥 역사책에 나오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 일본

관심좀 갖지마 한국에,.....사요나라.
나이테 16-09-24 04:28
   
추측인데 맨날 전쟁통에 놋그릇은 다 군수용으로 뺏기지 않았을까.. 역시 도자기 그릇은 발전하지 못했고..

그리고 국물을 해먹으려면 보통 고기육수가 베이직인데 고기도 안막고,  역시 전쟁통에 옮겨다니면서 먹기좋게
가볍고 간단한 요리만 발전한게 아닐까요.

나무그릇에만 이용하려니 국도 사실 위생상 먹기 어렵죠.
     
꼬마러브 16-09-24 10:58
   
역사를 보면 한국의 전쟁과 일본의 전쟁은 성격이 다릅니다.
한국과 같은 대륙국가의 전쟁은 전쟁이 나면 상대국가가 그 국가의 백성들을 약탈하지만
일본과 같은 섬나라의 전쟁은 전쟁이 나도 상대국가의 그 국가의 백성들을 약탈하지 않습니다
          
그노스 16-09-24 11:27
   
글쎄요. 일본군은 해외 원정시 강간, 약탈이 빈번했고, 만약 전국시대의 일본 자국내에서 영주들간의 전쟁을 의미하시는 거라도 약탈은 분명 있었습니다. 패자에 대한 약탈이 벌어지면 영토를 빼앗은 영주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분명 손해이니 영주가 상대 백성들을 지켜줬다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께서 계시는데, 사실 전국시대 영주들간의 약탈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백성들에 대한 신체 약탈, 즉 인신매매였다고 합니다. 불가에 귀의하여 인의의 사무라이라고 알려진 우에스기 겐신마저도 이 인신매매로 악명을 떨쳤다고 합니다.
빼앗기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숨길수 있는건 모조리 숨기는 것이 당연하니 민간인을 납치하면 가족들이 알아서 재물을 가져오니 어떻게 보면 더 합리적(?) 이었겠지요.
더욱이 빼앗긴 백성들이 보복하고자 패배해서 도주하는 무사들을 털었던건 꽤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순대천하 16-09-24 19:23
   
약탈을 안하는데 해적질을 왜하죠?
               
꼬마러브 16-09-24 21:35
   
제가 말한 것은 자국 내의 다이묘들간의 전쟁을 말한 것인데 확실히 근세에 백성들을 인신매매한 기록이 있습니다
잘못 생각했네요
          
구름위하늘 16-09-26 09:05
   
뉘앙스가 다릅니다.

노예는 내 재산이기 때문에 약탈이 필요없지만,
국민은 내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약탈이 필요할 수 있지요.

각국의 백성을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것 뿐입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노예로 보는 거죠.

그리고, 대륙국가와 섬나라의 비교도 조금 무리한 비교 입니다.
영국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나누어서 보시면...
샤랄라야 16-09-24 17:20
   
이런 글이 의미가 있나?ㅋㅋㅋㅋ50~60년대의 한국을 빈곤국으로 기억하는 외국인이 당신한테 초콜릿이나 1달러
주면서 불쌍하게 쳐다보면 당신은 어떻게 할건가요?? 그냥 무시하겠죠...^^
저런 원숭이들이 과거에는 저랬다고 아무리 거품물어봤자..임진왜란 때 털리고 을사조약으로 나라 뺏겨서 식민지가 된 과거가 없어지는것도 아닙니다. 부끄러운줄 아세요^^
     
순대천하 16-09-24 19:32
   
어떻게 하면 과거를 없애려고 하는걸로 보이는 거죠?ㅋ
     
아스카라스 16-09-24 20:10
   
미국이 지금 잘나간다고 영국 식민지 시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로마가 화려하디 발달한 제국이라 해도 야만족한테 따먹히며 망했구요.
그렇게치면 쪽본도 지금 아무리 잘나간다해도
메이지유신 이전, 도래인이 정벌하러 갔을 때부터 시작해 약 2천여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변방의 외딴 해적소굴로 지내온 게 잊혀지나요??
근대화로 앞선지 겨우 200년조차 안된 주제에, 2천년동안 굽신대던 좆밥나라가 말이에요 ^^
니나 부끄러운 줄 알아
의로운자 16-09-26 22:35
   
인간적으로 전통음식이 얼마나많은데 한장의 사진만보고 밥만먹었다고 생각할수있는지..
그게 가능하다는게 신기할정도입니다.
돌개바람 16-09-27 07:59
   
조선은 궁중요리가 굉장히 발달한 시기인데 무슨 일본하고 다를바 없었다고 헛소리 하는 사람이 있네
참고로 조선은 왕실전용 고기를 공급하기 위한 가축 관리 시설이 있었습니다. 소,돼지. 사슴, 닭 ,오리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을 왕실 공급응으로 키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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