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스크리트어 단어들의 어근과 문법 형태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이 세 언어를 비교 연구해 본 학자라면, 이 세 언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공통된 언어의 뿌리에서 생겨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같은 근거에서 고트어(여기서는 게르만어를 지칭함)와 켈트어 등이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추측이 가능하고, 아마도 고대 페르시아어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
인도에서 아시아학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윌리엄 존스는 유럽 학계에 이 사실을 보고합니다. 그 때부터 언어학자들은 인도에서 유럽 지역에 이르는 언어들이 어쩌면 한 언어에서 갈려나왔을지 모른다는 가정 아래 연구를 시작합니다. 언어학 연구사에서 가장 큰 전기를 이루었던 역사비교언어학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연구 결과 언어학자들은 인도와 이란, 러시아, 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하나의 어족에 속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래 한 언어였는데 그게 분화됐다는 겁니다
[출처] [세미나] 산스크리트어로 <금강경> 직독직해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권중혁 선생님 (대안연구공동체(CAS)) |작성자 느리게살기
그는 “한글은 북방 민족의 전통을 이어 만든 문자”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북방 민족은 한자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하기가 어려워 표음 문자를 만들어 썼어요. 티베트 서장 문자, 10세기 거란 문자, 12세기 금나라의 여진 문자가 그래요. 14세기 원나라는 파스파 문자를 만들어 한자음을 기록했죠. 한글도 이들 문자의 영향을 받았어요. 서장 문자, 파스파 문자, 한글 모두 첫 글자가 ‘ㄱ’, 즉 ‘k’ 발음 문자로 시작됩니다. 또 kh, g, ng 발음, 즉 훈민정음의 ㄱ, ㅋ, ㄲ, ㆁ 순서로 문자를 제정했어요.”
처음부터 제주도 구상나무는 아니었구요.
1510년 이전에 북유럽쪽에서는 집안이나 마당을 장식하지 않는 나무를 설치(심는게 아님)하는 풍습이 기원이라는 설이 있고,
1510년 라트비아리가에서 길드 상인들이 종이 장미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들어 행사가 끝나면 태웠던게 기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런 트리가 널리 퍼진게 루터에 의해서 입니다.
어느날 루터가 산책을 하는데 어둡던 숲이 환해져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데 그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나무에 솜, 촛불 등으로 장식한게 오늘날 트리 모습의 시초랍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와 관계가 없죠.
1898년 조선에 와 1902년에 제주도로 간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 식물을 채집해서 가져갑니다.
이후 1920년 하버드 대학의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윌슨이 세계 식물학회에 [아비에스 코리아나]라고 발표를 하고 제주도 구상나무를 수십종으로 개량해 전세계에 퍼트립니다.
지금도 여전히 개량을 하고 있는데 현재 90종 이상까지 개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크리스마스 트리 시장에서 [코리안 퍼]라고 해서 세계 100개국에서 시장을 형성 판매되고 있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구상나무를 선호하는 이유는
1. 키가 작다.
2. 질병에 강하다/
3. 전나무와 달리 장식을 달기에 적합하다.
4. 정원수로 인기가 높다.
5. 구상나무향이 상쾌함을 준다.
이런 이유로 트리로 선호 한답니다.
한가지 모두가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은 북유럽인이나 한국인 모두 버섯신앙을 공유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버섯신앙은 유라시아 전부에 걸쳐서 모습을 보이는데 이스라엘이라는 말에는 버섯교라는 말이 있고 실크교도가 쓰는 터번은 버섯교의 대표적인 영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갓 역시도 터번과 같이 버섯교의 영향을 받은 것 일 수도 있습니다.
바이킹은 버섯교 중에도 홍교의 영향을 받아서 빨간 방망이라는 홍두깨의 계통이고 이들은 이 독버섯을 특별히 가공해서 전쟁전에 복용하고 혼미한 상태로 싸우던 중족 이었습니다. 일종의 마약을 먹고 전쟁의 공포를 피한 것인데 이들이 유명한 바이킹의 광전사들 입니다.
이 신앙은 동아시아 에서는 귀두신앙으로 보이는데 이 귀두와 용두는 같은 말이고 바로 남근을 말하는 것 입니다. 한반도에서 가끔 보이는 남근신앙과 버섯신앙은 비슷한 것 입니다. 거북선과 바이킹 보트의 앞 모양이 용두의 형태를 띤 것 역시 버섯신앙의 영향이고요. 그래서 비문의 받침대로 쓰이는 거북은 보통 온땅이나 남자를 말하는 것 입니다.
조선풍습에서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풍습역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흔히 보이는 다산多産신앙의 연장선으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여신상등은 흔히 출토 되는 유물입니다. 우리는 이 다산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교를 신봉하는 근세조선과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가슴을 보이는 부류는 조선의 천민이 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거짓이라 볼 수는 없고 단지 천민의 풍습을 조선의 풍습이라 왜곡하는 것이고 저런 풍습은 오히려 일본의 풍습에 가까운 것이라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가슴을 드러내는 풍습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세때 까지는 중앙아시아에 남아 있었고 이 풍습이 유럽과 동아시아에 전달되는 것 입니다. 이렇듯 문화는 대부분 고대에도 서로간에 교류가 있었고 나무역시 북유럽의 영생의 나무 신앙이며 이는 우리의 성황당 문화와도 같은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