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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3 20:33
[한국사] 한국인들의 역사왜곡
 글쓴이 : 핑골
조회 : 1,056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제대로 된 교류가 끊긴 통일신라와 일본.
『삼국사기』를 보면, 일본은 통일 신라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서기 698년, 사신을 파견한다.

효소왕(孝昭王) 7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므로, 왕이 숭례전(崇禮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三月, 日本國使至, 王引見於崇禮殿.)

- 방문 이후, 통일신라의 선진문화와 발전상에 경악한 일본은 이를 배우기 위하여 서기 703년 대규모 사절단 파견을 결심-실행에 옮기는데...

성덕왕(聖德王) 2년,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모두 204명이었다. (日本國使至, 摠二百四人)

- 그러나… 통일신라의 수준을 견신라사(遣新羅使) 파견만으로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선진적임을 깨달은 일본. 결국 서기 731년 신라 침공을 통해 강제로 뺏으려고 하는데...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 제대로 상륙도 하지 못하고 박살난 일본, 결국 용서를 빌기 위해 서기 742년에 사신을 파견하지만‥

경덕왕(景德王) 원년,
겨울 10월에 일본국(日本國)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 들이지 않았다. (元年冬十月, 日本國使至, 不納. )

- 완전히 무시당한 일본, 그러나 자존심은 있어서 허세를 부리면서 다시 사과하려고 하지만..

경덕왕(景德王) 12년,
가을 8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었으므로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돌아갔다. (十二年秋八月, 日本國使至, 慢而無禮, 王不見之, 乃廻.)

- 재차 무시당한 불쌍한 일본. 결국 서기 804년, 통일신라의 속국이 되기로 결심, 조공을 바친다.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 이를 기특하게 여긴 통일신라는 드디어 일본을 용서하고 속국으로서 인정한다. 서기 806년 속국에게 하교하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 사찰을 수리하는 것조차 '종주국' 신라의 허락이 없으면 감히 하지 못했던 일본. 이후 '속국' 일본에 대한 종주국 신라의 사랑은 계속되고… 신라의 어버이와 같은 사랑에 감동한 일본은 서기 882년, 보답한다.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 이후 한반도의 정세는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어, 통일신라가 무너지고 왕건의 고려가 건국된다. 애석하게도 고려와 일본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대단히 적어서, 제 3자의 자료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측의 자료를 보자.

倭國乃日本國也. 本名倭旣恥其名. 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 今則臣屬高麗也 - 郭若虛.『圖畵見聞志』 卷6. 高麗國
왜국은 일본국이다. 倭라는 원래 이름을 부끄러워했는데, 극동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일본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속국이다


국뽕들이 이 증거를 가지고 일본이 고려와 통일신라의 속국이었다고 우기는데 도화견문지에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라고 적혀있다고 일본이 고려의 속국이라고 우기는 증거도 되지못함.
왜냐하면  일본은 고려한테 아무런 내정간섭이나 받지 않았고 교류도 거의 없었으며 또한 일본같은경우는 고유연호까지 사용하였음.
고유연호를 쓰는건 상대방과 똑같은 독립적인 국가를 뜻하기 때문에 세상의 어느 속국이 고유연호를 쓸수 있음?
애초에 속국의 개념자체가 법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다른나라의 직접적인 정치적인 내정간섭을 받는국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치적인 내정간섭을 받아야만 속국이되기때문에  일본같은 경우는 고려한테 어떠한 정치적인 내정간섭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고려의 속국이 아니고 그리고 또한 옛날부터 근대이전까지는 그냥 조공바치면 속국이나 신하라고 생각했는데 속국이란 단어가 종속국(종속된 국가)의 줄인말인데 옛날부터 근대이전까지는 그냥 조공바치면 자신들의 신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거나 또는 자신들한테 종속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선같은경우도 명나라와 청나라한테 조공을바쳐서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에 속국이라고 적은기록도 있고 또한 중국의 기록에도 중국과 조공무역을 하기위해서 자신들한테 조공을 바친 조선,고려,고구려는 물론 심지어 영국도 중국의 속국이나 아니면 신하라고 적혀져 있고 또한 삼국시대 당시에 남제도 고구려가 조공무역을 하기위해서 조공바쳐서 남제에 사서에 고구려는 자신들의 신하라고 적혀져 있고 또한 조선도 청나라한테 조공을 바쳐서 청나라가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청나라가 조선과맺은 조청상민무역장정의 장정에 조선은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적혀져있기 때문에 일본이 고려의 속국이라고 도화견문지에 적혀져있는건 사실상 옛날부터 그때당시는 조공을 바치면 속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이 고려하고 일본이 고려한테 조공을바치면 고려가 일본한테 금이나,비단같은 물건을 주는 조공무역을 해와서 일본이 고려한테 금이나 은같은 조공품을 바치면 고려한테 그에 대응하는 홍삼이나,비단같은 물건을 받는 조공무역을 계속해서 하기위해서 조공을바친걸 가지고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적은거에 불과함.참고로 조선같은 경우도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한테 조공을바쳐서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적은기록도 있음.
애초에 근대이전까지는 조공을바치면 자신들의 신하거나 또한 자신들의 영향력아래에 있거나 자신들한테 종속받는다고 생각해서 속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근대이전에 그때당시 속국이나 신하라는 말은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내정간섭을 받는 국가를 의미하는 속국이라는 개념하고 다름.
기록에 영국,고구려,조선도 중국의 속국이나 아니면 신하라고 적혀져있으니깐 조선,고려,고구려,영국 이나라 전부다 속국이나 아니면 신하임?
애초에 옛날부터 근대이전까지는 그냥 조공바치면 속국이나 신하라고 생각했는데 속국이라는 단어가 종속국(종속된 국가)의 줄인말인데 옛날부터 근대이전까지는 조공을바치면 신하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영향력아래에 있거나 또는 자신들한테 종속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서에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라고 적은거에 불과하고 그예로 조선같은경우도 명나라와 청나라한테 조공을바쳐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에 속국이라고 적은기록도  있고 또한 중국한테 조공을바친 영국이나,고구려,조선,고려도 전부다 중국의 기록에 중국의속국이나 아니면 신하라고 적혀져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그때당시는 그냥 조공바치면 속국이라고 생각을해서 일본이 고려하고 조공무역을 계속해서 하기위해서 조공을 바치니깐 속국이라고 적은거에 불과하고 또한 속국의 개념자체가 법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직접적으로 다른나라의 내정간섭을 받는국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본같은 경우는 고려한테 아무런 정치적인 내정간섭을 받지않았고 또한 조선같은경우는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자처한기록도 있기때문에 당연히 속국이라고 적혀져있다고 해서 속국이 아니기때문에 그걸가지고 아무런 내정간섭도 받지 않았고 독립적인 고유연호까지쓴 독립국인 일본을 고려의 속국이라고 말하는건 말도안됨.
또한 위에있는 글에 ​경덕왕때 일본의 사신이 오자 통일신라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경덕왕때 일본의 사신이 오자 통일신라가 거절하였다는 기록의 진짜 이유는 734년 성덕왕이 일본의 소소한 침공을 격퇴한 직후 일본에 그동안 써오던 신라라는 나라 이름대신 왕성국이라는 이름을 국서에 써서 일본에 보냈는데 왕성국이라 이름은 통일신라는 서경에 근거하여 통일신라는 왕성국이고 일본은 번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 입장에서는 왕성국이라는 이름으로 국서를 받았다간 이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사신을 돌려보낼수 밖에 없었고 이미 일본이 통일신라를 여러번 침공한일 때문에 통일신라와 일본은 서로 관계가 많이 악화된마당에 이후 2년이 지나 736년에 일본이 이사건에에 대해서 항의하고 따질려고 사신을 보냈고 통일신라입장에서는 일본이 자신들의 이미 여러번 침공한마당에 그일에 대해서 사죄도 하지않은채 그런 자신한테 왕성국라고 적은 국서를 보냈다고 따질려고 하는 일본을 당연히 좋게 볼수 없었기때문에 그래서 통일신라가 일본의 사신을 거절하였는 기록임. 따라서 위에있는글에 경덕왕때 일본이 사신이 보내자 신라가 거절하였다는 기록에서 일본이 사신을 보냈는 이유는 성덕왕때 신라를 침략했는 일에 대해서 사죄하러 사신을 보냈는게 아니라 단순히 신라가 자신들한테 왕성국이라는 이름을 국서에 써서 보낸일을 가지러 항의하러 사신을 보냈는것에 불과함.
따라서 위에있는 글에 적혀져있는 각삼국사기 기록밑에 적혀져 있는 각삼국사기 기록들을 해석해놓은 글들은 위에있는글을 쓴 작성자가 위에있는 증거에 적혀져있는 삼국사기 기록을 보고 그냥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적었는거에 불과함.
참고로 일본이 성덕왕30년때 신라를 침략한일에 대해서 국서를 보내 정식으로 사과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음.
​또한 일본같은 경우는 730년에 성덕왕때 신라를 침공하러 가다가 실패한 이후 통일신라한테 그일에 대해서 국서를 보내 정식으로 사과한적이 없고 그래서 통일신라역시 2년후 일본을 도발하기 위해서 736년에 일본에 보내는 사신에 그동안써오던 통일신라라는 이름대신 일본을 자신들의 번국이라는 의미를 가진 왕성국이라는 이름을 국서에 써서 보냈고 그후 일본은 성덕왕 다음왕인 경덕왕 원년(임금이 즉위한 첫해)하고 경덕왕 12년에 2번이나 그일에 대해서 따지고 항의할려다가 두번이나 통일신라한테 거절된마당에 통일신라하고 사이가 엄청나게 나빠져서 759년에 통일신라를 침공할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런데 일본정부는 이미 이전에 통일신라를 공격하다가 실패한일이 있어서 자신들 혼자서는 통일신라를 침략해서 무너뜨리는게 역부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발해에 사신을 보내서 발해한테 같이 통일신라를 쳐서 통일신라를 무너뜨리자고 제안까지 하였고 발해가 이에 동의하자 일본은 759년에 전국에 배를 500척을 만들라고 명령해 762년 통일신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지만 같이 통일신라를 침략하자는 일본의 제안에 동의한 발해가 정작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움직이도 보여주지 않자 일본정부는 혼자서는 통일신라를 침략해서 무너뜨리는게 역부족이라고 생각해서 정작 일본이 통일신라를 침략할려고 하던 762년 일본이 통일신라를 침략하자 않자 계획은 사실상 취소되었고 764년 신라침공계획은 취소되었고 신라침공계획을 준비하였던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764년 죽으므로서 일본의 신라침공계획은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졌음
또한 헌강왕 8년에 일본이 조공(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은 사실상 일본이 신라하고 조공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조공을 바쳤는거에 불과함
일본이 통일신라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거하거는 별개로 무역에 있어서는 서로 긴밀하게 통교하였기 때문에 일본하고 통일신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서로가 경제적인 이들을 얻기위해서 일본이 조공을 바치면 신라가 일본한테 비단이나,가죽같은걸 주어서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조공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헌강왕 8년에 일본이 조공(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역시 사실상 일본이 통일신라하고 조공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조공을 바쳤는것에 불과함.
일본이 통일신라하고 하던 조공무역은  사실상 한쪽만 이득을 보는 그런무역관계가 아니라 일본같은 경우는 통일신라한테 조공을 바치므로서 자신들한테 필요한 물건을 받아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수있고 통일신라역시 일본하고 조공무역을 하므로서 자신들한테 필요한 물건을 조공으로 받아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수 있어서 서로가 이득을 보는 무역관계였기 때문에 서로한테 필요한 조공무역관계였음.
조공무역에는 한쪽이 조공을 바치면 다른쪽은 더많이 헌상해서 어느한쪽만 사실상 이득을 보는 조공무역도 있었지만 서로 비슷하게 물건을 주고받아서 서로가 비슷하게 주고받지만 교역을 하므로서 서로가 필요한물건을 얻어서 서로가 전부다 이득을 보는 조공무역도 있었음.
따라서  일본하고 통일신라가 사이가 서로 나빴는데도 일본이 신라하고 조공무역을 서로가 필요해서 하였는걸보면  일본같은 경우는 신라하고는 한쪽이 조공을 바치면 다른쪽이 더많이 헌상해서 어느한쪽만 사실상 이득을 보는 조공무역을 한게 아니라 서로 비슷하게 물건을 주고받아서 서로 비슷하게 공물을 주고받지만  서로가 자가한테 필요한걸 얻어서 서로가 전부다 이득을 보는 조공무역을 하였는걸 알수있음.
또한 쇼소인에 남아 있는 보물을 통해,일본하고 신라가 사이가 좋지 않았는거와는 별개로 통일신라와 나라시대의 일본이 활발히 서로 무역에 관련된 부분에 관해서는 교루하였음을 알수있음.
또한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방다이묘들도 신라하고 조공무역을 하기위해서 통일신라한테 조공을 바쳐서 신라하고 조공무역을 하기도 하였고 또한 통일신라시대 당시 일본은 또 삼국시대 기록당시 통일신라왕이 멋대로 일본의 사신한테 사찰짓는거에 대해서 멋대로 명령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기록은 일본기록에는 없고 삼국사기에만 있기 때문에 신비성이 낮는데다가 거기다가 또한 일본이 그걸따랐다는 기록도 없기때문에 통일신라왕이 멋대로 일본의 사신한테 사찰짓는거에 대해서 멋대로 명령하는 기록은 그냥 통일신라 혼자서 멋대로 일본이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일본사신이 일이 있어서 신라에오자 일본사신한테 멋​대로 그냥 저런 무례한 명령한거에 불과함. 물론 그냥 신라혼자서 일본이 자신들의 속국이라고쳐 생각하고 한명령이기 때문에 일본이 따를 필요도 전혀 없었고 또한 따랐다는 기록도 없음.
그리고 또한 일본같은 경우도 신라가 자신들한테 조공을 바쳤다고 생각해서 신라한테 사신이나 편지를 보낼때 조공국이라고 적은적이 있음.
​그리고 일본이 고려나 통일신라한테 조공을 바친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당시 일본은 고려하고
일본이 고려한테 조공을 바치면 그댓가로 고려가 일본한테 금이나 가죽같은걸 주는 조공무역을 해왔기 때문에 일본이 고려나 신라한테 조공을 바친것은 일본이 고려나 신라한테 금이나 은같은 조공품을 바치면 고려와 신라한테 그에 대응하는 홍삼이나,비단같은 물건을 받는 조공무역을 계속해서 하기위해서 바친것에 불과하고 한국또한 중국한테 사대하면서 삼국시대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까지 계속 조공을 바쳤고 그리고 애초에 속국의 개념자체가 법적으로는 독립국이지만 다른나라한테 직접적인 내정간섭을 받는국가를 의미하기때문에 단순히 조공을 바쳤다고해서 속국이 아니라 직접적인 내정간섭을 받아야지만 속국이되기 때문에 일본같은 경우는 고려한테 아무런 내정간섭을 받지 않았기때문에 당연히 고려의 속국이 아니여서 일본이 고려에 속국이라고 도화견문지에 적혀져있는건 옛날부터 근대이전까지는 조공을 바치면 속국이나 신하라고 생각해서 일본은 고려하고 조공무역을 해와서 일본이 고려하고 조공무역을 계속해서 하기위해서 고려한테 조공을 바친걸가지고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멋대로 사서에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라고 적은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예로 조선같은경우도 명나라와 청나라한테 조공을바쳐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에 속국이라고 적은기록도 있고 또한 역시 조공을 바친 고구려나,영국,조선역시 중국의기록에 자신들의 속국이나 아니면 신하라고 적혀져있음.그리고 또한 조선같은경우는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자처한기록도 있음.
또한 단순히 조공무역을하기위한 조공을 바친걸 가지고 속국이라고 말하는것역시 개소리에 불과함.
그리고 삼국사기에 신라왕이 멋대로 일본의 사신한테 사찰짓는거에 대해서 명령하는 기록은 일본이 그걸 따랐다는 기록도 없기때문에 그냥 통일신라가혼자서 멋대로 일본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일본사신이 일이 있어서 통일신라에오자 일본사신한테 멋대로 저런 무례한 명령한거에 불과하고 따라서 일본이 그걸  따랐다는 기록도 없기때문에 고려와,통일신라한테 아무런 정치적인 내정간섭도 받지않았고 독립적인 고유연호까지쓴 일본을 위에 있는 증거가지고 고려와 신라의 속국이라고 우기는건 개소리에 불과함.
​애초에 일본같은경우는 고려와 신라한테 아무런 내정간섭을 받지 않았는데 꼴랑 이런 조작한 기록 가지고 자신이 그냥 믿고 싶은대로 일본이 고려와 신라의 속국이라고 쳐우기는 국뽕들.
이렇게 따지면 전세계가 다 속국됨.
애초에 그때당시는 그냥 조공을바치면 속국이나 신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선역시 명나라와 청나라한테 조공을 바쳐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스스로가 자신들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적은기록도있고 그리고 또한 일본같은 경우도 신라가 자신들한테 조공을 바쳤다고 생각해서 신라한테 사신이나 편지를 보낼때 조공국이라고 적은적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거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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