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6-07-17 23:36
[한국사] 대만 드라마 고려와 송나라
 글쓴이 : 고독한늑대
조회 : 8,423  

고려는 황제국입니다.

여진을 정벌하고 조공을 받았죠..

물론 여진추장 또한 신라계 고려인이었습니다.

고려가 송나라 속국이라고 주장하는 희한한 분을 위해서 올려봅니다.


여진 추장은 추후 세력을 키워서 금나라를 세우고 거란의 요나라를 점령한뒤 송나라를 치죠..

그런데 고려는 치지 않죠..

그 이유가 여진추장이 고려인이란 이유로 정벌하지 않고 유지시켜준 고려에 대한 보답인겁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전쟁망치 16-07-18 00:11
   
하하하

송.명.당  모두 그당시 중국 대륙은 사실  각 제후국들의 연합이였습니다.
지금의 소수민족들이 각자의 땅에 왕국을 유지하며 살았던거죠.

그러니 당연히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동쪽의 고려라는 나라는  아주 위협적인 나라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황제라는 칭호를 고려도 사용했구요.

굳이 비슷한 나라를 예로 들자면

로마제국 옆에 위치해 있던 페르시아 같은 존재라고 해야되나?
없습니다 16-07-18 00:38
   
고려는 당시 송이 아니라 금나라에 칭신하면서 전형적인 책봉조공관계를 맺습니다. 따라서 송나라가 아니라 금나라의 신하국가라고 할수있죠.
     
고독한늑대 16-07-18 00:41
   
금나라는 고려 김함보가 여진을 귀합해서 세운 나라이고..
초기에 고려가 여진을 정벌하면서 고려에 조공을 받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모셨고..
추후 거란을 통일하고 송을 정복해서 중원을 통일한뒤에 상황이 역전되어서 금나라 본인들이 형이고 고려는 아우국가라고 하죠..
          
없습니다 16-07-18 01:23
   
금이 1125년 칭신할것을 요구하고 고려가 다음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군신관계가 됩니다.
오히려 형제국가가 된적이 없습니다. 1117년에 금나라가 형제관계(물론 금이 형)를 요구해왔지만 고려에서 거절했었거든요.
               
고독한늑대 16-07-18 02:11
   
이자겸의 난으로 이자겸이 독단적으로 실행된 부분을 이야기 하는군요..
그리고 바로 이자겸은 처형되고 끝났습니다.
고려가 황제국 지위를 포기한것은 원나라 시기입니다.
부분 추출을 해서 먹잇감으로 잘 활용하시는군요 ㅋ
                    
촐라롱콘 16-07-18 09:23
   
어쨌던 이자겸이 고려의 실권을 지니고 있던 시기에 금나라와 맺은 맹약이기
때문에.....

비록 이후에 이자겸이 실각했다 하더라도 국가대 국가와 맺은 맹약은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는 다시 뒤바꾸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이전시기 윤관 휘하에서 활약하여 여진족을 공포에 떨게했던 척준경마저도
금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반면에 금나라는 2대황제 오걸매시기에 고려가 이전 요-금전쟁시기를 이용해
현 의주부근의 보주성을 점거한 이후 이를 돌려주지 않자 고려에 대한 침공까지
고려하지만.... 척준경의 존재때문에 무산되고 말 정도로 척준경이 여진족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는데....)

이후의 묘청의 난의 중요 명분 가운데 하나가 금나라와의 군신관계의
극복이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지요....
                         
고독한늑대 16-07-18 12:23
   
님 금나라와 맺은 맹약요??
그 당시 이자겸이 단독적인 행동으로 고려에서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는데..
뒤바뀌기 어렵다고요???

그리고 묘청의 난이 수도이전을 주장한 사람이고..
그 수도이전을 명분으로 금나라 정벌론을 주장한 사람인데..
군신관계 극복이라고요?????

고려가 군신관계를 인정했다면 스스로 원나라 때처럼 폐하를 전하로 바꾸고 조종을 사용하지 않고 등 이런 조치를 왜 취하지 않았는데 군신관계가 맹약이고 바꿀수 없다고요???
고려는 신하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곡하지 마십시요.

묘청의 난은 수도이전에 실패한것입니다.
수도 이전후 금나라를 정복해야한다 이 논리인겁니다.
군신관계 극복이 아니고요..
묘청의 난이 실패한 이유도 세력이 커진 금나라와 전쟁을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지..
그게 군신관계였다가 아닙니다.
금나라 또한 고려와의 전쟁을 자제했었습니다.
무슨 군신관계 극복이라고 매도하고 있나요??
고려는 신하의 나라를 자처하고 왕을 부를때 전하로 격하시키고 세자로 격하시키고 황제국이 아니기에 조 종을 사용하지 않고 충을 붙인 시기가 바로 원나라 시기입니다.

또 금나라를 멸망시킨 원나라 또한 당시 고려와 전쟁후 고려가 화친을 제의하자..
쿠빌라이칸은 당태종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고려가 자기한테 굴복했다고 좋아했습니다.
만약 금나라의 신하국이었다면 쿠빌라이칸이 이런 발언을 할 이유도 없는겁니다.

님 말처럼 금나라에 굴복한 고려라면 왜 굳이 쿠빌라이칸은 당태종까지 운운했을까요????
또 윤관의 아들 윤언이는 수도이전은 반대했지만 금나라 정복론에는 동의한 인물입니다.
                    
촐라롱콘 16-07-18 13:03
   
금나라 정벌이라는 표현이 금나라에 대한 고려의 군신관계 극복이라는 표현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는다 여겨지는데.......

그리고 고려보다도 중국왕조들에게 머리를 더욱 굽힌 조선조차도 내부적으로는
조-종의 칭호를 사용했기 때문에....

물론 고려가 요나라-금나라와 맺은 군신관계는 다분히 형식적이고, 대외적인
측면이 컸고 고려내부적으로는 독자적인 연호와 황제 칭호를 사용하는
[외왕내제]를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칸이 고려태자(훗날의 원종)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좋아했던
당시 배경에는.... 쿠빌라이칸이 몽케칸(헌종) 사후에 막내동생인 이리그부카와
대칸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어려운 처지에서... 고려태자가 이리그부카 대신
자신을 찾아옴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신에게 더욱 유리한 명분과 정당성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고려태자(원종)의 선택도 신의 한 수라 여길 정도로 이후
고려-몽골과의 화의조건을 완화시켰음은(적어도 고려의 국체를 보존한) 물론
훗날 원종이 무신정권으로부터 권력을 되찾는데 몽골의 힘을 이용할 수 있었던
큰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고독한늑대 16-07-18 13:38
   
님 금나라와 언제 고려가 군신관계를 맺었다고 자꾸 이렇게 왜곡하죠???

금나라 정벌이 군신관계 극복이다???
한 문장을 놓고 해석하는게 거의 일본인 수준인데요..

자꾸 말을 지어내서 왜곡시키려고 하지 말라니까요..

그리고 요나라와 고려가 언제 군신관계를 맺었다고 이러는지????
요나라가 망하게 된 계기 또한 고려와 전쟁에서 대패한뒤 세력이 약화되어서 망한겁니다.
금나라가 고려를 두려워 한 배경 또한..
여진정벌도 이유겠지만.. 당시 가장 군사력이 막강했던 요나라까지 고려에 대파되었다는겁니다.
요나라는 대군을 이끌고 고려와 전투를 벌여서 패전하고 쇠퇴했고..
금나라와 송나라는 협공으로 그 요나라의 패잔병들을 소탕한것이죠..
또 여진이 당시 모든 전투에서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지만 과거 고려에게 만큼은 탈탈 털리면서 쩔쩔맸다는 기억들도 있었겠고요...

이분 소설이 너무 심하군요ㅋㅋ

군신관계인데 전쟁한다??
거의 왜곡의 경지에 올랐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쿠빌라이칸이 당태종을 언급한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반박도 못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상식적으로 고려가 금나라 요나라에 군신관계 였다면..

왜 쿠빌라이칸이 당태종까지 끌고 올라가서 언급하냐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말대로면그냥 여기저기 모든 나라의 호구인 나라라는건데 대륙을 통일한 몽골이 님이 말하는 그런 호구나라가 굽히고 들어왔다고 좋아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상력이 너무 심각하군요 ㅋ
                    
촐라롱콘 16-07-18 16:58
   
난독증이 있으신가....????

쿠빌라이가 고려태자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하여 무척 기뻐한 내막을
언급했는데도 반복해서 또 언급하게 만드시네.....!!!

당시 쿠빌라이는 정식 대칸의 자리에 오르기 전이고,
더구나 동생과 대칸 자리를 놓고 쟁투중이던 상황이었고,

더더군다나 당시 대칸자리의 정통성은 몽골제국-몽골고원의 도읍인
카라코룸을 비롯한 몽골-중앙아시아 일대의 몽골인들이 지지했던
쿠빌라이의 막내동생인 이리그부카에게 더욱 정통성에 우위가 있었던 상황이고

쿠빌라이는 정식 쿠릴타이가 아닌 중국방면의 자신을 따르는 몽골인-중국한인
귀족들을 모아놓고 개최한 변칙적인 쿠릴타이를 통해 스스로 대칸에 오른
정통성이 상당히 결여된 사이비 대칸에 불과한 어려운 상황에서...
고려태자가 카라코룸의 이리그부카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왔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려태자인 훗날의 원종도 신의 선택을 한 셈이 되었고......
                         
고독한늑대 16-07-18 20:05
   
이분 자꾸 말돌려서 딴소리 하시는데..
쿠빌라이가 왜 당태종을 언급했냐니까 자꾸 몽골의 상황을 이야기 합니까????
몽골의 상황과 당태종과 무슨 상관이냐니까요???
천군만마를 얻어서 고구려때부터 한번도 제대로 굴복시켜보지 못했던 고려라고 합니까????
그럼 님 수준으로는 이것은 몽골의 립서비스입니까???
참 모든것을 쉽게 해석하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그런 몽골의 상황을 이야기 할거면..
고려 또한 당시 두부류로 나뉘게 되고..
고려 조정이 엎어지게 생겨 부랴부랴 몽골에게 화친을 제의해서 몽골과 고려군이 함께 대몽항쟁을 주도했던 삼별초와 맞서싸우게 됩니다.
그 전투가 무려 40년간 이어졌고요..
그 삼별초가 진도에서 항쟁하다가 제주로 옮겨 또 항쟁하고..
제주에서 사라진뒤 오키나와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었죠..
유구왕국의 왕무덤이 고려식 무덤방식이며 고려와장조라고 적힌 고려기와며..
고려식 씨름인 씨마며..
고려식 한복인 도복이며..
고려가 약해진 시기가 바로 이때라고 봐야합니다.
     
버섹 16-07-18 03:09
   
원래 여진족은 고려를 모국으로 섬기며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고려가 요나라와 오랜 전쟁을 하는 동안 방치되어 있던 흑룡강 변의 완안부 생여진이 힘을 키워 압록강으로 내려옵니다.

1103년 여진족 추장 오아속이 3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해 옵니다.
평안도 정주에서 27세의 아골타가 이끄는 5000 명의 기병들에게 임간이 이끄는 2만의 고려의 보병들이 패하게 됩니다.

이에 발칵 뒤집힌 고려 조정은
윤관에게 3만의 병사를 주어 토벌케 합니다.
평양성 외곽에서 공방전을 펼쳤지만 윤관도 패하게 되죠.

여진은 평양에서 함흥에 이르는 영토를 점령하고 휴전을 하게 됩니다.

이 사이 고려는 3년 동안 여진을 정벌하기 위한 병력을 키웁니다.
17만의 별무반과 궁수 등 20만 대군을 양성합니다.

그리고 1107년 총대장 윤관을 비롯해 부장 오연총, 척준경 등이 17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을 하게 됩니다.

17만의 고려 정예군과 싸우게 된 3만의 여진 병사는 전멸하다시피 합니다.
아골타가 겨우 살아남은 천여 명의 병사들만 데리고 북으로 도망갔죠.

이후 1115년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그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고려를 조상의 나라로 섬기고 조공을 바칠 것이다. 금나라 백성은 고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는 등의 말을 하며 고려를 안심시킵니다.

1118년 송나라는 금나라에 동맹을 맺고 함께 요나라를 치자고 제의합니다.
송나라 내부에서도 금나라와 동맹은 안된다며 반발하는 신하들이 많았지만 결국 1120년 동맹을 체결하게 됩니다.
동맹의 조건은

"금나라는 중경을 공격하고 송나라는 연경을 공격한다. 요를 정벌하면 송과 금나라는 만리장성을 국경으로 나누며 송은 요에 바치던 조공을 금나라에 바친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데 요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송나라의 재정이 바닥나게 되자 방랍, 송강 등이 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100만 대군으로 반란을 일으키자 송나라는 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금이 병사를 파견해 이들의 진압을 돕습니다.

결국 5년 후인 1125년에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아골타의 동생이며 금나라 2대 왕이 된 완안종필 오걸매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 금나라가 형이고, 고려가 아우라는 관계를 맺자고 압력을 가합니다.
고려의 문무백관들은 모두 반대하는데, 당시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고려황실을 쥐락펴락하고 있던 이자겸의 무리들만 찬성합니다.

이때 과거 여진을 정벌했던 적이 있던 척준경이 앞장을 서게 되는데, 그는 국제정세로 보아 금을 형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불가론을 내세우죠.

이자겸은 정응문을 금나라로 보내 화친을 상의하게 되는데,
이때 금나라는 한 술 더 떠서 고려변방에 귀화하여 살고 있는 여진인들을 모두 송환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자겸의 무리들이 받아들여 성사되는데,
이걸 고려가 정식으로 칭신을 했다느니 할 만한 사항은 아닌 듯 합니다.
정식으로 고려황제가 나서서 한 일이 아니라 반란세력이 주도한 일이니 말이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골타가 왕이고, 윤관이 살아 있었다면 금나라는 그런 식의 무례한 제안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촐라롱콘 16-07-18 10:04
   
버섹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위의 글에서 나타난 몇 가지 사소한 오류를 언급하자면....

1. [고려를 조상의 나라로 섬기고 조공을 바칠 것이다. 금나라 백성은 고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는 여진족들의 언급은....
  아골타가 금을 건국할 시기가 아니라, 바로 이전시기 아골타의 형 오아속이 자도자일
  당시 고려에게 빼앗긴 동북9성 일대를 돌려받기 위해서 고려에 약조한 립서비스
  의 내용입니다.

2. 송나라 방랍의 난 당시에 금나라군이 개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다만 송나라군 주력이
  방랍의 난 진압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요나라에 대한 금나라와의 연합에 병력동원
  시일이 늦어져 이후 연운16주 탈환 및 금나라와의 관계에서의 자리매김에 치명적인
  불리함으로 작용합니다.
 
3. 완안종필과 오걸매는 서로 다른 인물입니다. 오걸매는 금나라2대 황제로 아골타의
  동생이며, 완안종필은 아골타의 4째 아들로 오걸매와 완안종필은 삼촌-조카관계입니다.

4. 이자겸이 훗날에는 반란세력으로 규정되었다 하더라도 이전까지는 엄연히 고려의
  실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더구나 이자겸의 무력기반인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척준경마저도 금나라의 요구를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비록 이후에 이자겸이 실각했다 하더라도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한 번 맺은
  맹약을 뒤집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5. 윤관이 활약한 고려-여진간의 전쟁 당시에 3만의 여진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려측의 기록에 의하더라도 당시 고려군의 공세로 여진인들 6천을 죽이고 5천을
  사로잡았다는 규모이니....이마저도 과장된 전과일 가능성도 다분하며, 민간인들까지
  포함한 수치일 확률이 절대적입니다.

  11세기 말에서 12세기에 접어드는 시기 추장 [영가]가 이끄는 시기에 완안부
  직속병력이 1,000명~2,500명을 넘어서게 되며....
  뒤이은 [오아속]이 이끌던 시기 12세기 초 임간-윤관의 고려군의 대결하던 시기에
  비로소 완안부 병력이 근 1만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완안부 뿐만 아니라 완안부의 영향력하에 놓은 여러 여진부족들의 장정을
  모두 소집한다면 3만 또는 수 만명도 가능하겠지만.....

  참고로 이후시기 아골타가 금을 건국할 시기의 완안부병력이 2만을 넘지
  못했습니다. 

  고려-여진 전쟁 당시에 동원된 여진족 장정들이 2만~3만에 이를수는 있지만
  이들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만약 여진족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면 고려가 동북9성지역을 차지하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고려를 괴롭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동북9성 지역에 대한 고려-여진간의 전쟁은 당시 고려에게도 지긋지긋하고
 피말리는 전쟁으로 다가왔지만... 여진족들에게도 고려가 지긋지긋한 존재로
 각인되어 이후 금나라가 요나라는 물론 송나라까지 멸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고려가 보주성 문제를 비롯하여 금나라의 권익을 침범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묘청의 난과 무신정권 시기 조위총의 난의 경우처럼 고려반란세력이 금나라에
 땅을 바치겠다고 접근했었던 경우에서조차도.......

  고려를 침공하거나 고려와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한 모습을 보일정도로
 결과적으로 고려와 여진족의 전쟁은 고려가 훗날 금나라와의 전쟁을 방지했던
 예방적 성격의 전쟁으로 작용했습니다!
               
고독한늑대 16-07-18 12:27
   
자꾸 개인이 난을 일으켜서 독자적인 행동을 해서 추출 당한 인물이 추진한게 맹약이라고 호도 하시는군요..
그럼 왜 님이 말하는 맹약을 채결한 당사자가 추출 되었는데도 금나라는 가만히 있었을까요???
또 고려가 신하국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제발 그런 왜곡 논리는 안하셨음 합니다.
신하국이 금나라 정복론으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 했답니까????
금나라와 전쟁을 하냐 마냐라는 상황을 군신관계 극복이라고 호도하시면 안되죠..
                    
촐라롱콘 16-07-18 12:52
   
이자겸이 축출된 것은 금나라와의 관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왕권을 위협하고, 심지어 이자겸 자신이 인종을 제거하고 왕이 되려는 야심을
지녔기 때문에 제거된 것입니다.

금나라 입장에서야 요-북송을 멸망시킨 후에도 남송세력과의 대치때문에
고려와의 분쟁을 자제하던 처지였는데......

고려가 이후 금나라와의 맹약을 스스로 깨뜨리지 않는 이상, 굳이 고려를 건드릴
이유가 없지요!

물론 고려가 요나라-금나라 등과 맺었던 군신관계는 훗날 조선이
명나라-청나라와 맺었던 군신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적인 측면이 강하고 심지어 고려의 필요에 의한 측면이 컸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만, 형식적으로만 군신관계였을 뿐~~ 고려는 내부적으로는 연호도
따로 제정하고 고려국왕이 스스로 황제로 자처하기도 하는 [외왕내제]를
취했습니다.
                         
고독한늑대 16-07-18 13:44
   
님 고려는 금나라에게 대외적으로 군신관계를 이행할 정도의 태도를 보인게 하나도 없습니다.

고려가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것이..
이자겸의 독단적인 행동을 이행하기 위해서 진압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윤관의 여진정벌로 인해서 여진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서 고려를 부모지국으로 섬기겠다고 했는데..
동북 9성을 돌려받기 위한 립서비스였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상식이하의 수준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진은 립서비스라고 주장하고..
어떠한 군신관계의 형태도 없었던 고려와 금나라는 군신관계라고 주장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이 어떤 부류인지 그냥 딱 나오네요
국서에서도 형인 금나라 황제가 아우인 고려 황제에게.... 라고 나오는데..
군신관계인데 황제인가요?? ㅋㅋㅋㅋㅋ

제발 소설 좀 그만 쓰세요..
               
버섹 16-07-18 14:06
   
금나라 태조가 고려에 보낸 국서는 내용은 형과 동생이 바뀌었지만, 동북9성을 돌려줄 때와 유사한 말을 하게 됩니다.
"형인 대여진금국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글을 부치노라. 우리의 조상은 한 조각 땅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이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하여 공손히 하였다..."
라는 내용이죠.
아골타가 거란과 싸우기 위해 처음 2500명을 규합해 시작했다는 것이지, 그들의 총병력이 그 정도인 게 아닙니다.
원래 여진족은 새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데, 순식간에 병력이 모이고 흩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려가 고작 2,3천 명을 상대하기 위해 17만 대군을 동원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방납의 난 때 송나라는 고려에 병력지원을 요청합니다.
고려는 병력을 증파할 수 없다며 거절했지요...
한데 이때 금나라의 강화사절단이 동맹 협상을 하고 완안부로 가기 위해 하북을 돌아가는데, 방납의 반란군 2천 명이 금나라 사신단을 습격하게 됩니다.
이에 금나라 18기병들이 달려와 반란군 2천 명을 전멸시켜 개입하게 되었죠...
                    
촐라롱콘 16-07-18 17:00
   
고려가 불과 2,3천명의 여진족과 싸웠다는 언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위의 제가 언급한 글에서 2~3만이라고 언급했는데.....
                         
버섹 16-07-18 19:37
   
"추장 [영가]가 이끄는 시기에 완안부 직속병력이 1,000명~2,500명을 넘어서게 되며....
뒤이은 [오아속]이 이끌던 시기 12세기 초 임간-윤관의 고려군의 대결하던 시기에 비로소 완안부 병력이 근 1만에 이르게 됩니다...고려-여진 전쟁 당시에 동원된 여진족 장정들이 2만~3만에 이를수는 있지만..."

오아속이 이끌던 시기엔 1만 많게는 2,3만명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군요...
그 뒤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우기 직전 거란과 전쟁할 때 2500명으로 시작하는데, 영가 시기의 2500명과 맞아 떨어져 완안부 규모를 그 정도로 생각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촐라롱콘 16-07-18 20:14
   
당시 여진족들을 완안부가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안부 이외에도
여러 부족들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완안부도 점차적으로 주변 부족들을 흡수하면서 완안부 자체의 인구와 세력을
더욱 확장하게 되니......

아골타가 생여진 부족들을 어느정도 통일하여 금나라를 세우기 직전의 대략 30년간은
추장 영가 시기의 완안부 직할 병력이 1,000명 정도 병력부터 확장을 시작하여
영가 시기 끝무렵에는 2,500명 정도에 이르렀고......

뒤이은 오아속 시기(고려와 피말리는 접전을 벌일 당시)에는 완안부 직할병력이
대략 1만에 이르렀고, 완안부의 영향력하에 있는 현 함경도~간도 지역의 여진족들인
갈라전을 비롯하여 고려와 대적한 여진족병력 총규모를 최소 2만~최대 3만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 다음 아골타가 금을 세울 당시에는 완안부 직할병력이 2만에 이르렀고, 완안부의
영향력하에 있었던 타부족들을 합산하면 수 만명 병력규모 정도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라와 전쟁을 벌일 당시에는 요나라 영향아래 있었던 숙여진인들과
발해인들까지 포섭하여 더욱 병력수를 늘리게 되지요...!!!

하지만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하고 북송을 쳐들어갈 당시의 병력 규모가 6만 정도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1125년~1127년 무렵에도 금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총병력규모는
10만을 크게 상회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후 남송과 대치하던 시기에 거란인들과 북중국의 중국한인들을 병력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병력수 자체는 수 십만 규모로 비약적으로 늘어났을 것입니다.
               
냉면제국 16-07-18 14:21
   
이 분은 예전부터 보면 한국 역사 축소의 대가 이신듯.. [고려를 조상의 나라로 섬기고 조공을 바칠 것이다. 금나라 백성은 고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단순 립서비스 이지만 이자겸이 한 말은 국가적 맹약.
                    
고독한늑대 16-07-18 21:0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 여진의 수장이 한것은 립서비스이고..
추출 당한 반란군 개인이 한것은 국가적인 맹약이라고 하니 황당할뿐이죠..
닥터챔프 16-07-18 07:14
   
역사저널 그 날보면 되는 일입니다
꼬꼬동아리 16-07-18 13:08
   
촐라롱콘 한테 먹이주지마세요 엄청난 일뽕입니다
말 자체가 통하지도 않고 자기할말만 하고 나갑니다
일뽕논리에 의거해서  자기가 유식한지 압니다
자기가 논리적인지  아는 덜떨어진 사람이니
상대 안하는게 낫습니다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자기혼자  다른말하거나
다른 화제로 돌립니다 한마디로 그냥 ㅂㅅ입니다
     
촐라롱콘 16-07-18 13:20
   
여기서 일뽕이 왜 나오시나.....????

일본은 단 한 글자도 언급된 적 없는데..... ^^

댓글들이나 제대로 읽어보고 지껄이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않고 자기 혼자 다른말한다는

근거를 좀 대 보시기를.....

그런 근거없이 그냥 나에 대한 감정때문에 무작정 인신공격한 것이라면

님 표현대로 하면.... 님이 말그대로 ㅂㅅ이라는 논리밖에는

성립이 안 되는 것이지요~~~
          
고독한늑대 16-07-18 13:45
   
소설 좀 그만 쓰세요..
근거는 님이 자꾸 근거 없는 소설로 역사를 창조하고 있잖습니까..

고려가 금나라에 대한 태도가 군신관계의 태도였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촐라롱콘님인지 욜라뽕따이님인지 제발 소설 좀 그만 쓰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두부국 16-07-18 15:11
   
제왕운기에 보면 요나라 작살내고 송나라를 노예취급 하던 금나라 황제가

고려에 서신을 보내면서

대금(大金)황제가 고려국 황제(皇帝)에게 글을 보낸다.
'(大金皇帝奇書于高麗國皇帝)
금나라 황제가 고려국 황제가 생일일때 보냈다는 서신내용.


" 대금 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보낸다. " 라고 했습니다.
          
호랭이해 16-07-18 15:12
   
다른건 몰라도 촐라롱큰님이 일본에
엄청 호의적인건 알수있더군요
창경원이 전화위복이라..
두부국 16-07-18 14:38
   
이런걸 좆문가라고 하는겁니다




전문가와 좆문가의 차이점
Q. 머리를 감을때 트리트먼트를 사용하면 어떤점이 좋나요?

좆문가: 트리트먼트에는 ~~성분이 있어서 ~~어쩌구 ~~

전문가: 모발이 서로 엉키지 않게 도와줍니다
     
rozenia 16-07-18 18:11
   
본의 아니게 스크롤을 내리며 다 읽다가 마지막에 빵 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8 16-07-19 03:3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 터졌네여.. ㅋㅋㅋㅋㅋㅋㅋ
가남 16-07-18 19:48
   
9성 반환을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면
금 건국후 고려와의 관계를 외교관계 재조정선에서 마무리 짓고 끝내기엔 석연치 않네요.
이미 고려의 위력을 체감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켰다고 봅니다.

고려, 북진을 꿈꾸다 라는 책소개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네요.
금나라 제 4대 임금 해릉이 등극한 후 넓어진 영토를 보고 의기양양해하자, 한 신하가 "본국은 강토는 넓지만 천하에 군주가 넷이옵니다. 남에는 송, 동에는 고려, 서에는 서하가 있어 이를 통일해야 진정 넓다 하겠습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전략설계 16-07-18 23:54
   
금나라와 어쩌고를 떠나..

내가 이 계시판에서 "고려" "고려" 했던게 바로 이런 장면 때문입니다.
저 중국드라마 제작에 우리가 압력 넣은 일도 없고, 우리가 압력 넣는다고
중화 애들이 고려를 일부러 띄워줄 일도 만무한데.

남송 황제가 고려를 같은 레벨로 보고, 요나라에 붙을 지 엄청 걱정하는 장면..
고려를 동북아의 삼각축의 한나로 대우해주는..

조선이람 생각도 못 할 일고.. (고려는 초기 빼곤 요, 금이 등장해 중원이 둘로 갈린 차이가 있죠)
으례 잠재적으로 중국을 섬긴다는 '사대'의식은 조선시대의 것이었다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몽골이야 역사상 멕시멈 제국이라 흡수를 막은 것만도 다행이고)

암튼 고려는 저랬습니다.
고려때 중국과 저랬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 모르는데,
내가 여기서 "고려" "고려" 하면 없는걸 가져다 고려를 띄우는 사람인줄 아는데.

한족국가를 위협하던 요나라와 당당히 1:1로 싸워 힘을 빼버려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온 고려.
그 고려에 대한 인식이 대를 이어서,
현대 중화애들이 그 시대 고려의 위상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합니다.
로적성해 16-07-19 15:03
   
촐라롱콘인가 저 사람은 그냥 외국인 같은데 어그로 아이디 네요,  상대 안하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듯,, 

금나라 건국에 발해인들이 일정한 역할을 했고 금 건국 후에도  금 지배층의 대부분이 발해인이었던 걸 감안하면 발해 멸망후 고려에 망명했던 발해인들과 금 상위 지배층들인 발해인들과의 교류가 있었고 그 당시 금,고려간 서로 우호적이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선동질하고 ㅈㄹ,, 

금나라 , 후금과 고려의 관계
https://www.youtube.com/watch?v=yz2YqsolBm0

금나라 태조는 신라인
https://www.youtube.com/watch?v=GyE_enR5UMQ

-----------------------------------------------------

아골타의 형 요아석 -
"일찍이 우리 선조가 고려로 부터 나왔으니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기왓장 한장 던지지 않겠습니다."

금황제 아골타 -
"고려는 형제지간이며 일찍이 고려는 부모의 땅으로 여겨 조심스럽게 섬겨 왔으며 "

여진인과 조선반도의 신라인 나중의 고려인은 민족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거란 몽고와는 완전 다른 민족 공동체
 
https://www.youtube.com/watch?v=e0Hm-SRD9CQ

급한분은 3분 30초 부터 보세요
 
 
Total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