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야기 하자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동대사는 1980년대 이후의 것임 . 1910년대 부터 시작하여 1980년까지 이것저것 붙히고 휘어진 지붕 철골로 보강하는 등 여러 개조를 거친 후 공개된 것이 현재의 동대사로 앎. 하긴 뭐 오사카성은 엘리베이터도 있는 마당에 동대사정도면 준수한 편
그리고 개인적인 망상으로 123층짜리 놀이공원이든 뭐든 건물이 꼭 크다고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특히 근대 이전.. 건물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민초의 희생이 컸다는 거임..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건축물?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만든 거대한 무덤..
학교를 예로 들면 진짜 일진은 허세나 센척같은 건 안부리죠 그 밑에 있는 양아치들이나 온갖 센척은 다하지. 이건희 회장이 돈자랑하는 거 봄?
진짜 잘사는 선진국들을 굳이 큰 건물 안짓죠. 선진국도 아니고 개발도상국도 아닌.. 이런 애매한 나라가 건물을 크게 지음
넘버4//예 아무의미 없습니다. 우린 그 무의미를 알리면 되는거구요. 문화재나 역사를 왜 배우죠? 역사도 일본처럼 판타지로 바꿀까요? 그리고 님이 걱정 안하셔도 될께 복원을 할것 같긴 한데 우리가 굳이 꾸미며 상상의 나래를 펴 복원한다 해도 당시보다 화려하지 않을꺼란 사실. 너무 열내지 마세요. 저번 잡게에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던거 같은데 지금은 우리도 일본처럼 날조하자 라고 하시면 안되죠.
일단 왜 아무 의미 없다고 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그 무의미를 어떻게 알릴건데요? 전 세계에 대고 「일본의 문화재는 모두 상상력으로 만든 가짜다!」 라고 외칠껀가요? 그게 사실일리도 없고, 누가 들어주지도 않을텐데요? 바보 취급안당하면 다행이죠. 그리고 우리도 동대사 처럼 만들자는건, 고증이고 뭐고 없다고 하니까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하는겁니다.
동대사(토오다이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가 잇는 듯....동대사는 세계문화유산이지요...토쿄 청수사(기요미즈테라)나 히메지의 히메지성과 함께...동대사는 80년대 다시 지어진게 아니고 언제 개축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웅전의 경우 최소한 수백년은 된 목조건물이에요...아마 80년대 다시 지어졌다면 대웅전이 아니고 그 외곽에 있는 회랑일거에요...회랑은 상대적으로 깨끗...대웅전 건물의 처마를 보면 정말 낡았고...기둥은 4개 정도의 큰 나무를 두꺼운 철사줄로 묶어 거대한 건물을 받치고 있어요...대웅전 안에 청동대불이 있는데...청동대불을 먼저 만든 후 대웅전을 지었다고 설명하던데...백제인이 아이디어를 주었다나 뭐라나(요건 기억이 그다지 확실하지 않음)...그리고 본 당 전에 사천왕이 있는 입구건물은 대웅전보다 더 낡았는데...어쨌든 콘크리트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오사카성만 지진으로 소실된 것을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다시 지은 건데...오사카죠 이외에는 일본도 콘크리트로 문화재를 복원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아...그리고...콘크리트로 지어진 최초의 건물이 로마에 있는 판테온 신전인데...콘크리트는 로마시대부터 쓰여 온 건축재료...콘크리트를 나쁘게 본 것은 최근의 관점인 듯...아마 일본 아그들이 오사카죠를 복원할 때...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보다 튼튼히 지으려고 그러려고 했을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콘크리트 복원 구간은 천수각 하단인 토대 부분이지 천수각은 여전히 목조로 복원한 거에요....그리고...엘리베이터...장애자들한테 좋기만 한건데...그리고...안에 있는 현대식 화장실...그것도 관광객에게는 너무 편한데...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문화재 복원보다는 이런 방식이 훨씬 좋은 발상 아닌가???^^
근대 이전 전세계적으로 평민 이하는 사는 게 거기서 거기였다는? 말에는 어느정도 동의합니다만 님이 언급한 세율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당시 조선과 일본의 쌀생산량은 조선이 일본보다 2배가량 많았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인구는 일본이 조선보다 2배가량 더 많은데 불구하고요 ㅋ
단순히 생각해서 당시 조선의 농민이 일본의 농민보다 4배가량 잘살았다는 것인데 설사 님이 전제로 내놓으신 조선과 일본의 세율을 기준으로 계산해본다 쳐도 당시 조선의 농민이 훨씬 더 잘 살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모바일이라서 글 쓰기 힘들군요!
현재 한국과 일본의 쌀 생산량이 님이 말씀하신 정도의 차이가 나지요! 현재도 2배는 오바~
임진왜란 전 조선의 싼 생산량은 150만결로 3000만석 입니다?당시 일본은 1650만석이였던 걸로 말고 있고요!
밍진왜란 후 조선의 농토가 황폐화되었지만 조선 후기때 150만결가량을 다시 화복한걸로 알고요! 특히 생산기술이 발달하여 6000 만석가량입니다.
일본이 6000만석 정도의 쌀생산량을 가지게 된 것은 메이지시대이후입니다!
그리고 조선통신사가 올 때 당시 일본이 통신사를 위해 한 해 싼 생산량의 12%가량을 사용한 것을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현재도 한국(그것도 낭한이지요!조선땅의 반!)의 식량자급률은 50%대이고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30%대입니다.에도시대때보다 훗카이도같은 식량기지를 얻었음에도 30%대입니다! 이건 통계청에서도 볼 수 있어요!
일본의 인구는 현재 기준으로 한반도 인구의 2배가량이구요!
현재 기준으로도 한국은 쌀생산량만큼은 거의 10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중후기를 기준으로 조선의 1년 단위의 일반적인 전세수입의 평균치가
60여만석 수준이었습니다.
10%세율을 적용한다면 명목상의 총 생산량은 600여만석 정도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토지대장에 누락된 토지와 면세로 잡히는 토지까지 감안하면 총 누락율이
최대 절반에 달한다고 치고..... 이 부분까지 감안하여 조선의 1년 총 생산량을
1,200만석, 학자에 따라서는 최대 1,400만석으로 잡는 것이 공식적인 학계의
최대치입니다.
도대체 3,000만석, 6,000만석은 어디에 근거한 자료인가요....???
남한인구 4,500만인 현재 기준으로 꼬마러브님 말씀대로 쌀만큼은 거의 100% 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남한의 1년 쌀생산량이 석 단위로 환산하면 6,000만석 수준인데~~~
인구 1천만에서 최대 1,500만명 수준인 조선후기에 이미 3,000만석, 6,000만석을
생산했다면 유통과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조선 전체 백성이 쌀로 배를
채워도 남아돌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당시 조선북부지역과 강원도에서는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쌀로 밥을 지어먹는다는 것은 경조사와 같은 특별한 날에나 가능한 형편이었고....
생산량이 비교적 풍부한 중남부지방에서조차도 일반 농민계층 이하에게는 수중에
비록 쌀이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저렴한 보리와 여타 잡곡으로 교환하여 식량의 양을
늘리는 편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정도로....
쌀 생산량이 비교적 풍부한 중남부지방에서조차 일반농민들 이하 계층에서는 쌀이
매 끼니 맛볼 수 있는 주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식량자급률과 일본의 식량자급률의 %퍼센티지가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일본보다 다소 높기는 하지만 도찐개찐 수준일 정도로
확연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2015년 기준으로도 한국의 자급률은 50% 미만인 40%대 중후반이며
일본의 자급률은 거의 40%에 육박하는 30% 후반이므로 큰 차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사료까지 감안한 총 자급률은 한국과 일본이 다같이 25% 미만일 정도로
미세한 차이에 불과합니다.
이 댓글 중에서 민초 이야기를 한 사람은 저 밖에 없네요 흐음
건축물이 당대의 권력 표출이라 하셨는데 권력과 국력은 같은 개념이 아니지요ㅋ 두 단에에서 같은 점은 초성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높은 건축물이 높은 국력을 상징한다면 현대에서 가장 국력이 강한 국가는 부르즈할리파가 있는 아랍에미리트겠군요! 미국따위는 씹어버리는 아랍에미리트 키야~ 아뽕에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