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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7 13:23
[기타] 전근대사, 이미 조선을 압도한 일본의 국력?
 글쓴이 : 아스카라스
조회 : 2,705  

본격적으로 한반도와 일본열도간의 국력차가 역전된 시기로 평가된다. 과거엔 '조선은 일본보다 정치, 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었는데 메이지유신으로 역전되었다' 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조선 통신사들의 기록만 봐도 이미 일본이 에도 막부 시절 네덜란드 등과 접촉하면서 난학을 발전시키고 문물이 발전하여 이런면을 통신사들도 배워야 한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다. 심지어 일본의 우수한 문물은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이미 조선 초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논의들을 살펴보면 제지, 안료, 무기, 광물지식, 화폐경제 등 제조업과 산업분야에서 당시 일본이 조선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다는 근거가 있다.대표사례, 제지, 안료, 광물지식, 무기 물론 화약, 도자기나 기타 다른 문물은 조선이 일본을 앞선 경우도 존재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엔 그마저도 우위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조선초에도 제법 격차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양국의 질적 역전은 고려시대에 발생했을 소지도 충분하기에 이 문제를 조선의 문제로만 돌리기도 곤란하긴 하다. 전근대 농업사회의 국력에 결정적인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라는 면에서 이미 일본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인구면에서 한반도 국가를 압도하고 있었으며 그 절대치의 추월 시기는 통일신라 시기다, 가마쿠라 막부 초기다 등등 다양하나 일단 위 조선 초 일본인구는 한반도를 한참 능가한 시점이었다. 국토면에서도 일본은 혼슈 하나가 압록-두만 이남 한반도보다 약간 더 크고 규슈와 시코쿠 또한 만만치 않게 크다.

게다가 일본은 태평양에 바로 맞닿아 있고, 한반도보다 남쪽에 있어 기후가 훨씬 따뜻하고 강수량 역시 높다. 때문에 농업 부분에서도 당연히 한반도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17세기에 들어서야 정착한 모내기법 또한 일본에서는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이미 15세기 부터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2] 이미 조선시대 이전부터 일본은 큰 국토와 축복받은 기후 덕에 월등한 생산력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전근대 일본은 세계적인 은 생산지로서 당시 세계 은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쯤되면 조선이 일본보다 국력이 우월한 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나무위키의 '조선/평가'항목의 '일본과의 비교'라는 란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발췌했습니다.

이거 확실히 잘못된거같은데요, 가생이분들 말씀은 어떠한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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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라스 16-07-07 13:58
   
조선보다 넓고 기름진 평야를 가지고도 메이지유신이 되서야 조선의 쌀생산량을 따라잡은 일본을 갖고,
단순 땅덩이와 인구수로 국력을 매긴다는 것은
영주들이 작정하고 국가적 사업으로 한반도와 중국 해역을 노략질하고 해적질한 것과, 조공의 기회가 조선과 류쿠에 비해 한없이 적었던 당대의 실정을 전혀 개의치않는 오류를 범합니다.
정말 어이없는 설명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역사 통틀어 지배층의 수탈과 억압으로 농민이 평민이 아니고 빈민이어왔던 1700여년동안 일어난 민란만 3천번에 달한다는데, 극소수 지배층만이 누리던 황금의 사치를 보고 조선통신사가 전한 에도의 이야기를 갖고 일본이 선진국이었다함은 이치가 전혀 안 맞습니다.
일본이 당대 통신사들에게 보여주고싶은 것만 보여줄 루트로 안내하지 않았을까요?
     
shrekandy 16-07-07 14:26
   
그러고 보니 일본이 원래 조선 통신사들 올때마다 엄청 돈 퍼부어서 이곳 저곳을 수리하고 삐까뻔쩍하게 만든게 자국을 현실보다 더 대단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한 이유도 있다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추가로 아스카라스님도 아실것 같지만 조선 통신사들 기록 보면 비록 화려한 일본 도시들을 보고 감탄하는 내용도 있지만 반대로 도시 밖 일본 평민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한탄?하는 내용도 있지요. 당시 일본서 도시인구는 일본 전인구에서 최대 20%밖에 안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아스카라스 16-07-07 14:29
   
에도시대가 그렇게나 발달했으면, 18세기에 조선으로 배만들러온 쪽바리 노동자들이 제발 밥 많이 달라며 큰 그릇들고 조선사람들의 비웃음에 아랑곳않으며 빌었을까요?
친일파새끼들은 자기들 보고싶은 것만 봅니다.
꾸꾸꾸 16-07-07 14:15
   
창작소설을 읽으셨군요.
     
아스카라스 16-07-07 14:23
   
곳곳에 일뽕은 존재합니다. 넝쿨 속 가시처럼.
고독한늑대 16-07-07 14:28
   
그렇게 국력이 높아서 기저귀차고 먹을게 없어서 대륙으로 도망쳐오나????
     
아스카라스 16-07-07 14:31
   
높디높은 철옹성만큼이나 드높은 영주님들의 대의를 위해 그 한몸들 버티지 못할 게 없겠습니까.ㅋㅋㅋㅋ
참으로 충심없는 종자들이로군요, 덴노 고마운 줄도 모르고 도망이나 치다니 ㅋㅋ
한산대첩 16-07-07 17:13
   
나무위키에 개소리 하는 게 많아

수정하면 바로 바로 딴 놈들이 수정하더군요

정말 누가 상주하면서 조직적으로 관리 하나 봄

하여튼 결론은 개소리고 나무위키는 신뢰할게 못 됩니다.

난학을 받아 들였으나 난학의 의학 서적보다

메이지에도 가장 신뢰하는 의학 서작은 동의보감이고

자체 민간 의학 치료법으로 메이지 때까지 똥을 약으로 쓴 수준이었죠

교욕하고 받아 들이면 뭐합니까??

활용 할 줄을 몰랐는데

본격적으로 역전한건 왜정때 수탈 시작하고서 부터죠
햄돌 16-07-07 17:37
   
나무위키는 신뢰도 없음

누구나 꼴리는대로 수정할수 있기때문에

조선 초 이미 일본이 조선을 앞질렀으면

왜란 때 쳐들어온 왜군들이 왜 개밥그릇을 도자기로 쓰는걸 보며 놀라며

조선인들은 평민들까지 다 글을 안다고 까지 했을까
Centurion 16-07-07 19:50
   
저게 일뽕 자료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일본은 외세침략이 거의 없었던 나라입니다.
우리는 외세(중국을 제패한 북방 기마민족)와의 전쟁을 여러차례 심각한 수준으로 겪은 나라이구요.

몽골 침략 때 경주의 황룡사 8층 목탑이 불타버린것에서 알 수 있듯...
본래는 좀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지어진 삼국시대, 고려시대 건축 양식들이 이 시대에 많이 불타버렸죠.

조선은 유교 사상으로 탄생한 나라라서 왕이 사는 궁궐을 기준으로,
건축재료 등에도 철저히 신분적 질서와 검소함을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 다이묘들은 자기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천수각에 금붙이를 장식할 지경인데..
(이것도 대부분 당나라 시기 건축양식이 적용된 것.. 일본 건축은 당나라를 쏙 빼닮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영의정의 녹봉조차도 많이 잡아도 100석이 넘어가지 않는 판인데..
일본 다이묘들은 영지의 생산량이 백만석 쯤 되는 다이묘도 여럿 있었습니다.(50% 세금으로 잡아도 50만석)

아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선은 애시당초 세금이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인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양반들은 세금을 안내고, 그 밑에 노비들 역시 세금을 안내고, 부역을 안하기 때문에..
양반들이 자산이 많을수록 국가 예산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반면, 일본은 그런게 별로 없는거죠.
그냥 무조건 세금은 4공6민, 5공5민, 6공4민, 즉 세율 40~60% 많게는 70%도 거둬버리는데..
이걸 봉건제로 해서.. 다이묘가 밑에 가신들, 병사들한테 다시 땅을 갈라주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가신이 몇천석에서 몇십석짜리 무사까지 쭉 존재하는 것이죠.

그러니 조선이 부정부패로 망가진 이유 중에 하나가..
과거에 합격해서 일하는 중앙 관료들의 녹봉이 너무 적고,
지방 사또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이방, 호방 이런 향리들 경우엔 아예 월급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중앙관료들 녹봉이야 먹고 살만하다 치더라도,
아예 월급이 없는 향리들은 권력을 이용한 부정부패를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일본의 인구와 쌀 생산량은.. 조선에 비해서 많았던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에 제가 임진왜란 논쟁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대략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파악한 조선의 쌀생산량이 1200만석 정도 예상하는데..

당시 일본의 쌀생산량이 한 1800만석 쯤 됐거든요.
이것도 고온다습한 일본의 기후에 비하면, 조선이 아주 선방한 것이죠.
쌀은 동남아 같은 기후에서 더 잘자라는 아열대성 식물이니까요.
(일조량 풍부, 물이 많고, 고온다습해야 잘자람)

그런데 일본은 원채 섹스에 환장한 족속들이었고,
그 많은 내전 속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니, 한편으론 여자 과부들을 상대로나,
지나가는 민간인 여자들 상대로 성욕을 풀게 만든 인간들이기도 합니다.

사실, 조선도 정조관념이 있어서 그렇지. 그 시대엔 피임 이런게 없었기에..
2명의 부부가 많이 낳으면 8명 정도도  흔히 낳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데, 굶주림과 질병 등으로 평균 수명이 짧았으니, 계속 인구가 증가를 못하고 제자리 수였던거지..
조선이고 일본이고 가를 것 없이.. 저 시대는 먹고 살만하면 애를 순풍순풍 낳던 시기라서..
쌀 생산량이 인구 부양력과 밀접하게 연관된 시대였죠.

그런데.. 조선이 희한한게 식사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http://fyeong1.tistory.com/entry/%ED%95%9C%EB%AF%BC%EC%A1%B1%EC%9D%98-%EC%8B%9D%EC%82%AC%EB%9F%89-%ED%81%B4%EB%9D%BC%EC%8A%A4%EB%A5%BC-%EC%95%8C%EB%A0%A4%EC%A3%BC%EB%8A%94-%EA%B8%B0%EB%A1%9D%EB%93%A4

현대 한국인들의 식사량을 몇배는 쉽게 뛰어넘는 수준이지요.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식량을 거의 3배 정도에서 많게는 5배 정도 많이 먹었습니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식사하는 거 보고,
"쟤네들이 쌀 아껴 먹으려고 김치종지에 밥을 담아 먹었다"라고 할 정도니..

어쨌든... 서민 기준에서 보면.. 조선이 일본보다는 살만한 나라였는데..

근데.. 좀 조선의 문제점은...
세금 납부를 안하는 특권층 양반층 자산과 노비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력이 약해진다는 점..

앞서도 말했지만,
관료들 녹봉이 지나치게 적고, 향리는 아예 녹봉이 없는터라, 대놓고 부정부패를 조장한 점..

유교적 이상을 건국이념으로 건국하였기에..
건물 치장이 지나치게 검소하고 소박한 점..
(왕궁에도 금붙이 장식을 안하는데, 그 밑으론 아예 못하죠. 병장 밑으로 화장품 못쓰는거랑 비슷.)
(거상 임상옥이 큰 집을 지었다가, 지나가던 암행어사가 집을 부숴버렸죠)

그러니 통신사들이 보기에는 일본이 워낙에 규제가 없던 나라라서. 좀 그럴싸하게 보일 수 밖에 없죠.

특히,. 조선은 집을 지을 때, 벽돌이나, 흙을 많이 쓰는데..
일본은 나무 판자와 목재를 쓰는터라.. 소재의 특성상 깔끔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목재가옥은 겉에서 보면 반듯해 보이거든요. (동남아 열대지방 가옥들도 대부분 목조주택이 많죠.)

반면, 우리나라는 그런씩으로 집 지으면 얼어죽습니다.
그래서 흙을 사용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지내지요.
그러니 이런 집들은 난방을 위해서 방도 크게 하질 않습니다.
바닥 난방을 해야되는데.. 방이 크고 천장이 높으면 춥거든요.
당연히 방 면적이 넓어지면 온돌을 2개, 3개 더 깔려면, 그만큼 장작도 많이 들어가고 낭비로 이어지겠지요.
그래서 재력이 빵빵한 왕이나 양반들조차 자는 방 자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 난방방식과 소재 차이때문에 조선쪽 건물이 다소 아담하고, 소박해 보이고..
일본은 쓸데없을만큼 넓고 커보이는 것이죠. 물론 사회지도층인 다이묘들이나 상급 무사들이..
부정부패는 없으나, 50~70% 가량의 무거운 세금을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나라가 일본이기에..
부정부패 없이도 시스템 상 가렴주구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다이묘들이나 무사들의 집이 커지기 딱 좋죠.

게다가, 전국시대에 일본에 포르투칼, 네덜란드 상인들이 들락거리던 것도 있었고,
나중에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정책을 취하던 시대에도 큐슈의 데지마라는 작은 섬에서 수백년간 교류를 합니다.

조선은 이런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고,
외국배가 오면 식량과 물을 줘서 그냥 중국이나 일본으로 돌려보내던가..
난파선 선원인 벨테브레, 하멜처럼 데리고 있었죠.
그래서 수석식 소총이나 홍이포(캘버린)을 복제하기도 했었는데..
돈아깝다고 시제품 만들어놓고 대량 생산을 안했죠.

어쨌든.. 일본은 외부침략이 없었다.
(지들끼리 내전은 간혹 벌였으나, 그걸로 인해.. 문화유산이 대거 불타는 일은 적었슴)

조선과 달리 불교국가였다.
(조선도 고려시절까지만 해도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웠으며, 남녀관계도 문란할 정도로 자유분방했죠..)

사실 고려시대 불교가 워낙에 썩어서 문제점이 많기도 했었지만,
삼국시대 이래 불교는 나라를 지키는 호국 종교이기도 했죠.
(물론 유교도 의병항쟁을 불러일으키는 호국 종교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고려가 좀 외세와 많이 충돌하고,
호족들의 연맹체 수준으로 나라가 이뤄지기도 해서, 중앙조정의 힘이 좀 약한 편이었는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 변화할 때의 느낌이..
뭐랄까... 이란의 친서방적인 자본주의 국가 팔레비 왕조가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으로 바뀌던 느낌? 전 그런 인상을 좀 받곤 합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유적이 크게 많이 안남아있고,
대부분 조선시대 양식이 많이 남아있죠. 고려 시기에 거란, 몽골, 홍건적, 왜구 등등..
워낙에 노략질을 많이 당해서 그 이전 시대 흔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남아있어서..
지금의 한국 이미지에서 조선의 색깔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하다 싶을만큼 강합니다.

그래서 일뽕들 말처럼... 조선이 볼품 없었다고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일본이 사실 서민들이 살기엔 지옥이지만, 사회지도층들은 아주 호사스럽게 살았던 나라였고,
인구와 쌀 생산량이 많았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워낙에 지네들 입장에서도 먹을게 없다보니, 조선에서 쌀 사거나, 약탈하러 온 것도 사실이죠.
밑에 백성들이 먹을 게 없으니, 훔쳐오든 사오든 일본 내에 쌀 들여와서 판매하면 당연히 돈벌이가 좋았겠죠.
그러니 왜구들이 바글바글하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어찌보면.. 일본의 저런 시스템이..
삼국시대 귀족이나 호족들의 생활과도 몹시 비슷한데..
이 시절은 귀족들이 식읍을 거느리고, 사병을 거느린 채 아주 호사스럽게 살던 시대였죠.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호족화되고,
이런 사람들의 사병들만 쭉 모아도 갑자기 몇만~몇십만 대군이 툭 튀어나오는 그런 나라였죠.
그런데 조선에서 이런 귀족, 호족의 요소는 싹 사라지고, 사병혁파도 되었죠.

물론, 재력을 갖춘 향반들이 사재를 털어서 의병활동을 하기도 했었지만..
예전 귀족, 호족만큼은 아니였구요.
     
아스카라스 16-07-07 20:14
   
말씀 잘들었습니다. 기나긴 설명을 핵심만 추려 요약하자면은

일본 - 외세침략 전무, 지들끼리 싸워도 문화재 훼손 ㄴㄴ
조선 - 외세침략 다수, 그로인한 훼손이 허다함.

일본 - 온돌기술이 없어 귀족의 집은 크고 넓게 높게 지음
조선 - 온돌기술이 있고 절대적이기에 집을 높고 넓게 높게 짓는 데 한계가 큼.

일본 - 그렇기에 목재건물을 높고 크고 넓게 지음.
조선 - 그렇기에 목재건물을 크고 높고 넓게 짓는데 제약이 많았고 국가가 검소함을 지향, 더더욱 그러했음.

일본 - 세금을 졸라 부과함. 귀족들이 세금을 걷어 조선 관리의 100배나 되는 이익을 얻음.
조선 - 세금을 정말 낮게 부과함. 귀족들은 적디적은 녹봉에만 의존.

일본 - 그렇기에 부정부패는 없었음. 절대적인 봉건제 때문에 평민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음.
조선 - 그렇기에 부정부패가 만연해갔음. 향리는 심지어 녹봉조차 없었기에 해당 관할지역에서 뜯어먹는 수 밖에 없었음.

일본 - 연간 1800만석. 섬나라로서 열대성 기후를 띄기에 쌀생산량이 상당히 높을 수 밖에 없음.
조선 - 연간 1200만석. 이정도는 일본보다 쌀만들기 깨나 불리한 환경임에도 선방한 수준임.

일본 - 그러나 정작 평민들 먹을 것은 없어서 자연스레 조선으로 노략질을 하러감. 남의나라 쌀을 팔아서라도 이익을 챙겨야했기 때문.
조선 - 평민들의 식사량이 엄청났음. 부익부 빈익빈이 강했던 일본에 비해 조선은 평민이 살만했었음.

일본 - 영주들은 식읍과 사병을 거느리며 아주 호화스럽게 살길 오랫동안 체제가 굳혀짐.
조선 - 고려의 호족이 그러했어서 중앙집권이 힘들었으나, 조선에선 사병을 철폐시키며 이러한 요소를 없앰. 그로서 양반계층의 비슷한 움직임이 있어도 호족만하지는 못 했음.
          
Centurion 16-07-07 20:18
   
요약 잘하셨네요. GOOD~~!
     
아스카라스 16-07-07 20:22
   

일본은 쌀생산량 많고, 귀족들 사치스럽고 호화스럽게 살며, 부정부패도 적은 봉건제임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한 세율 덕에 부정부패가 적었기에 평민들은 빈민이나 다름없었고, 때문에 해적질로라도 먹고살고자 함.
또한, 높디높은 목조건물이 많은 것은 외세의침략이 전무한 역사와 조선보다 비교적 따뜻한 기후, 온돌기술이 없어서임.

조선은 세율이 낮고, 쌀생산량도 일본의 2/3정도이나 불리한 기후에 비해 선방했으며, 평민들이 먹고살기 좋은, 중앙집권을 성공적으로 꾀한 나라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리들의 녹봉이 변변치않아 부정부패를 할수밖에없는 구조였으며, 외침이 한번 오면 거세게 와서 나라의 공든탑을 다 태워버리는 역사였다.
낮고 좁은 집을 지은 것은 온돌기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잦은 외세의 침략 때문이기도 하여, 고려의 사치스런 폐단과 말기의 외침으로 불탄 사치스런 건물들을 거울삼아, 조선정부는 아예 검소하게 집지을 것을 못박았다.


이렇게 긴 답변을 댓글로 달 수 있는지 처음알았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Centurion 16-07-07 20:34
   
그리고 일본 건축양식들이 대부분 중국양식이 많습니다.

일본여자들 헤어스타일, 복식, 화장법,
건물 양식 이런게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풍이 막 섞여 있거든요.

우리나라가 그런거 보면 상당히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고...
일본은 은근히 불법카피 수준의 베끼기가 많습니다.

뭐.. 저도 일본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해당 위키 내용이 학술적으로 따지자면.. 그렇게 틀렸다곤 안봅니다.

애시당초 일본이 지진 이런거 빼놓곤
워낙에 외세침략이 드물고, 기후가 온난다습해서 쌀 키우기도 좋고,

심지어.. 일본 내에 삼국시대 무렵부터
지진 나면 이를 복구하던 금강조(곤고구미)라는 집단이 있었는데..
일본 쇼토쿠 태자 시절부터 시텐노지(사천왕사)를 지은
백제계 건축 기술을 가지고 대를 이어가는 집단입니다.

이 금강조란 집단이 일본의 어지간한 건축들은 다 만든거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성인 오사카성 천수각도 이 사람들 작품이란 말이 있구요.

백제 자체도 사실 삼국 중에서 유난히 문화적으로 개방적이고,
중국 문화를 좋아하던 국가였구요.
     
아스카라스 16-07-07 20:51
   
근현대 메이지유신으로 베낀 서양식 음식이나 문화만 해도...
현대 일식이란 게 초밥말고는 언제 시작했는지 뻔합니다.
카피는 드럽게도 잘해요 ㅋㅋ
국산아몬드 16-07-10 16:05
   
제지, 안료, 무기, 광물지식, 화폐경제 등 제조업과 산업분야에서 당시 일본이 조선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다는 근거가 있다?
제지 기술을 일본이 앞섰다고? 제지기술은 조선은 중국조차 부러워했는데 일본이 앞서?
그리고 안료? 염색기술이 일본이 앞서다니 고구려시절에는 땡땡이 염색도 했는데
무기? 일본에 어떤 앞선 무기가 있었죠? 대포도 제대로 못만들던 것들이?
화승총은 유럽에서 전래받은 거고 스스로 만든 제대로 된 무기하나 없으면서
광물 지식은 또 뭐지? 은 추출법도 조선에서 전수받아 겨우 생산하던 것들이

뜯어보니 왜곡아닌 것이 없군요
     
아스카라스 16-07-13 07:36
   
크~ 속이 시원합니다 ㅋㅋ
그런데 화폐보급만큼은 어떤 이유에서건 일본이 발달치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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