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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5-05 15:51
[일본] 일본군 학도병 지원 징집 그 실상
 글쓴이 : skeinlove
조회 : 6,257  

 

일본학도지원병, 탈출의 좌절        
        
나는 집이 가난했다. 그래서 진학을 단념하고 졸업 후 부모님 봉양이나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4학년을 마치고 5

학년에 진급하면서 억제할 수 없는 진학 욕심에 학비부담 능력의 전무상태와 부모를 비롯한 집안의 만류, 최소한         

 

1년은 늦은 수험준비 착수 등 온갖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오직 남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 하나만 가지고         

 

1942년 2월에 경성고등상업학교의 좁디좁은 교문을 뚫어냈다.        

        
당시는 전반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오늘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특히 조선인에 대
        

 

한 제한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만해서 조선 내에는 유일한 경제부문 관립(국립) 전문학교임에도 불구하고 1년         

 

모집 인원은 20명 안팎이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입학금 100원을 조달하고 입학 후에는 가정교사와 장학금으로 겨우 학업을 유
        

 

지해가던 중, 패전으로 치닫던 일제는 병역의무가 없는 조선인 학생에게까지 학도특별지원병이란 이름을 씌워         

 

강제징집에 나섰다.        

        
나는 전기한 정영택씨(상해임시정부에가 있다가 귀국해 잠적해 있었다.)에게 대책을 자문했으나 그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출진해서 중국내륙으로 가게 되면 임시정부 편으로 도망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학병문제로 함        

 

께 고민하던 학우 장경문과 모의해서 일본군에 나가질 않고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내가 노자를 구하러 고향으로 백부를 찾아가던 날, 학교에서는 지원대상 학생을 전원 강당에 모아 놓고
        

 

배속장교가 칼까지 빼어들고 지원을 강요하고 있었고, 사세의 급박함을 깨달은 친구 장경문은 변소에 간다는 구        

 

실로 나와서 그 길로 혼자 도망을 쳐버렸다.(탈주에 성공한 그는 중국대륙에 있다가 해방 후 돌아와서 주소조선        

 

대사관에 근무했고 내가 남파될 무렵 내각정보국에서 일했다.) 경찰의 추적을 받은 나는 어리석게도 등교를 해         

 

지원서에 도장을 찍고 일본군에 들어갔다. 이 점에 나의 부끄러움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다. 도망칠 용기와 지혜        

 

가 있다면 지원서에 도장찍은 게 무슨 문젯거리가 되고 돈이 없다고 해서 어찌 살길을 못 찾겠나. 잡혀서 형무소        

 

에 들어갈 각오는 왜 못했나. 혁명가로서의 자질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나의 균형 잡힌 체격과 단련된 체력 그리고 7년간이나 학교에서 받은 교련실력은 일본군 초급장교가 되는 데 아
        

 

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초년병 훈련을 받은 후 일본군중부군교육대 (쿄도후 후구지야마시 소재)에서 6개월 간 초급장교 과정을 교육받        

 

고 1945년 7월 동부군 도쿄사단 제64부대(치바현소재)에 배속됐다. 그리고 ‘도망’이라는 꿈만 품은 채, 8월 15        

 

일에 일본군의 항복을 맞이했다.  

[출처] 1940년대, 조선인 학도병 "지원"자들이 말하는 일제 학도병지원제의 실상 (『역개루』대한민국 대표 역사 카페) |작성자 슬픈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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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부산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자, 일본인형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붙들고 학도병 지원을 강요했다. 아버님이 걱정되어 일각이 여삼추 같은 판에 추근추근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열이 뻗쳐 한주먹에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군수품공장 부분은 쏙 빼고 미후네 선생과 내각은급국을 십분 팔아 내 신분을 과시하며, 나 이러이러한 사람이라 아버님 뵙고 급히 도로 일본에 가야한다고 뻗대었다. 결국 형사를 따돌리는 데 성공하고 부리나케 부산역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전북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의 집에 도착한 나는 대문을 들어서다 말고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병환으로 사경을 헤매실 줄 알았던 아버님이 평상시나 다름없는 건장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머님이랑 다른 식구들의 반김에 답례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냐고 물었다.         

        
쯧쯧! 이 고지식하고 미련한 놈아,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더냐?”        
아버님이 대뜸 꾸중을 하셨다. 문제의 전보는 나를 감쪽같이 귀국시켜 학도병으로 보내려고 김제경찰서에서 저희들 멋대로 보낸 날조전보였던 것이다. 사정을 알고 나니 하도 어이가 없어 기가 꽉 막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귀국한 줄 알고 다음날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서에서 형사가 찾아와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등쌀에 견딜 수 없어 착잡한 심경으로 상경해서 모교인 배재중학교에 찾아가 정용화 교장선생께 경위와 사정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오랜만인 만남의 기쁨도 잠시뿐,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난 교장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씀하셨다. “장군, 어쩔 도리가 없네.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이것밖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없구나.”         

사실은 나 자신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상경한 것이 아니라, 정든 모교와 선생님들을 마지막으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던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학도병에 지원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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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길 : 내가 도쿄대학에 입학한 것은 1943년 가을이어서 그야말로 태평양전쟁이 고조에 달할 무렵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어요. 조선인 대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으로서 일본 군대에 입대하기를 강요하는 압력이 날로 강해졌으며 일본 본토에도 미군 항공기의 폭격이 임박했음을 느끼게 하는 조짐이 보였습니다. 이름은 ‘학도지원병’이었으나, 인문사회학 계통의 조선인 대학생들은 빠짐없이 지원하도록 만들자는 것이 일본 정부의 확고한 의도였습니다. 학도병 지원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서는 고향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군의 폭격이 임박한 때에 도쿄에 머물러서 공부에 열중한다는 것도 사실상 어려울 것 같아서, 충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나의 오산이 컸습니다. 조선인 고등계 형사는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하여 고향에서도 학도병 지원을 모면할 도리가 없었고, 시골에 엎드려서 구체적 목표도 없는 독학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당시 학도병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단식을 해서 체중을 급격히 감량했어요. 그래서 고등계 형사에게 폐병이라고 둘러대며 신체검사를 피했더니 도립병원 진단서를 받아오란 겁니다. 당시 도립병원 원장도 일본인이었는데, 내 X레이 사진을 보더니 “이 사진에 나타난 것으로는 학도병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직접적인 말로는 아니지만 체중을 좀더 줄이면 학도병을 피할 수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더군요. 그 원장이 무슨 심정으로 나를 그렇게 도와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그 일본인이 암시를 보내주어서 징병은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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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일제는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고 나섰다. 1943년 2월에는 9회 재학생을 대구 80연대로 끌고 가 신체 및 적성검사를 받게 하였다. 여기에서 통과된 학생들은 단기교육을 마치고 신풍특공대(神風特攻隊)가 되는 것이었다. 그 결과 3월에 김형규(金亨奎)와 김재규(金載圭)가 소년 항공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1943년 7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풀베기와 관솔(비행기의 연료가 되는 송탄유의 원료) 채취에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권영동(權寧東)·고제하(高濟夏)·서정인(徐正寅) 등은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므로, 소년 항공병, 소년 전차병으로 끌려가 죽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고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방책을 모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출처 = http://cafe.naver.com/historygall.caf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085&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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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도끼 11-05-05 17:51
   
..그 당시에 반일 감정은 (대개의 경우) 계급감정에 가까왔다고 합니다.

..문화정치가 더 지속되었거나, 침략기간이 더 길었다면 어찌 되었을 지 참..
..북한 주민보고 뭐라고들 하는 분 많은 듯 한데..일제 침략기간과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더 길죠..
  그 사람들 머리가 원숭이어서가 아니라, 국제 세계(외부)와 단절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합니다..
  내부로부터의 혁명을 기대하기는 좀..(쿠데타라면 모르지만)

..안타까운 세월들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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