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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舊來夷馬韓之屬: 백제(百濟)는 옛날의 래이(來夷)로 마한 馬韓)에 속한 나라 중 하나이다.
교동반도 동쪽의 원주민은 래이(萊夷)사람으로 불린다. 이들의 내력에 대해서는 심혈을 기울여 추측해야 한다.
고고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중의 일부 내지 대부분은 아주 먼 옛날 바이칼호 이남에서 이 광대한 교동반도
지역으로 왔으며 용맹한 유목민족에 속한다.그 당시 요동반도 이남의 노철산(老鐵山)해협에는 아직 침몰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즉 옛 등주와 동북지역 사이에는 커다란 수역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로는 육지로
서로 통해 있었다. 그들은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혹한지대
에서 줄곧 남하하여 사계절이 분명하고 토지가 비옥한 교동반도 지역에 정착했다. 새로운 지리환경 속에서,
준마를 몰던 민족은 점차 마음을 다잡고서 뽕나무를 심고 농사지으며 정밀농업의 초창자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지역의 것들과 비교했을 때, 이곳에서 출토된 도기(陶器)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고고발굴을 통해 계속해서 증명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래나라를 세웠다.가장 흥성했던 시기의 래나라
영토는 매우 광활했다. 오늘날의 교동반도 동쪽을 포괄했을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황하(黃河)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태악(太岳)에 이르렀다. 이는 후에 제나라가 가장 강성했을 때의 강역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융적(戎狄)이 동진하던 과정에서, 래나라는 종종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잔혹한 전쟁을 여러번 겪는 동안
원래 연합 관계에 있던 부족들의 배반 행위까지 발생하면서 영토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결국 교동반도 부분만 남게
되었다.가장 위급하던 시기에 래나라의 최정예 인재들이 노철산 해협을 지나 북상했던 것은, 아마도 민족의 대이주를
위한 선발대로서의 사전 준비였을 것이다. 물론 이상의 추축은 후대 사람들이 고고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일반적인
상상에 비해 좀더 실증적인 것에 불과하다.
어찌됐든 간에 래나라 사람들은 안분자족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이점에서 래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인 농경민족과는
달랐다.유목하던 야성이 그들의 혈관 속에 잠복되어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바로 뛰쳐나와서 그 옛날 휘돌아다니던
습관을 회복했다. 그래서 많은 세대가 흐른뒤, 교동반도에서 출생한 사람들이 선조의 내력을 일찌감치 잊어버렸을때
조차도 핏줄의 힘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다.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밤에 자주 꿈을 꾸는데, 꿈결에서 깨어난 뒤
에도 그것은 꿈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은 물론 꿈속의 모든 것이 정말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가본 적도 없는
꿈의 장소가 언젠가 정마로 갔던 곳인 듯한 느낌이 드는 것과 같다.이런 상황은 아마도 핏줄의 작용, 핏줄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제나라 동쪽을 차지하고 있던 래나라는 비단업의 최초 발상지이자 제철술을 발명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식량 창고와
가장 많은 준마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논벼를 최초로 제배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곳은 동이(東夷)라도도 불린다.
기록에 따르면 래나라는 제나라 양공 6년에 멸망당했다. 하지만 래나라는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동쪽으로
옮겨가서 역사상 동래(東萊)라는 나라가 되었다.
출처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가 ( 장웨이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588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