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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08 23:07
[기타] 임진왜란의 승패?
 글쓴이 : 방각
조회 : 5,724  

아래 어떤 분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패인이란 글을 썼는데 임진왜란은 공식적으로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전쟁입니다.

그냥 종전이 된 것 뿐...

그것도 전쟁 당사자인 조선의 의지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명과 일본의 합의에 의해 그냥 종전이 된 거죠.

그러니 공식적인 승패를 따질 수는 없고 그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따져보면...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바로 조선이죠.

조선 본토가 완전히 개털이 되었고 수많은 조선인이 죽었고 또한 포로로 잡혀갔으며 완전 나라가 개박살이 났습니다.

이순신이란 불세출의 영웅을 탄생시킨 것으로 위안을 삼기엔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조선이란 국가의 정통성이 완전히 바닥으로 내팽겨쳐진 그런 전쟁이었죠.

물론 일본도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그건 조선으로 건너 온 일본군에 국한된 피해였으며 전쟁의 원흉인 풍신수길 개인의 피해일 뿐이었죠. 일본 본토는 전혀 전쟁과 무관했으며 오히려 전국통일 후 남아돌던 무력이 조선으로 건너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본토의 입장에선 더 좋았을 수도 있겠네요. 

또한 전쟁으로 일본이 얻은 성과도 많으니 조선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일본은 피해라고 할 것도 없군요.

명나라는 임진왜란 후 얼마 안 되어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마는데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을 해서 국력이 약해져 망했다는 말도 하지만 그건 너무 과장이죠.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명나라의 멸망은 명나라 내부의 문제로 보는 게 훨씬 타당할 겁니다. 

이자성의 난, 오삼계의 난등이 겹치고 충신 원숭환을 스스로 죽이는 등 명나라는 자멸에 가까운 멸망을 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게 후금의 뛰어난 전략 전술로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당시 후금과 명의 국력은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였습니다. 후금이 명의 뒤을 이어 대륙의 주인이 된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죠.

임진왜란의 승리자는 없습니다.

단지 최악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만이 있을 뿐이죠. 바로 조선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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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팝 16-05-08 23:20
   
보통 침략자가 목적달성을 하지 못하고 물러가면 패배라합니다...

병자호란은 패배지요...

하지만 임진왜란은 패배인가요???

한치의 땅도 못빼앗았는데... 승리는 아니지요...

일본측 군세.

[임진전란사],[일본전사]<조선역>편.

1593년 3월 20일 기준.

* 총병력 53,000명
-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 6,629명
-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5,492명
-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7,644명
-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5,269명
- 오토모 요시무네[大友吉統] 2,052명
-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1,425명
- 다카하시 모토다네[高橋元種] 288명
- 아키츠키 다네나가[秋月種長] 252명
- 이토 스케타카[伊東祐兵] 597명
- 오타니 요시츠구[大谷吉繼] 1,505명
- 마스다 나가모리[增田長盛] 1,629명
-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1,546명
- 시마즈 다다토요[島津忠豊] 293명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 고바야카와 히데카네[小早川秀包], 깃카와 히로이에[吉川廣家] 9,552명
- 다치바나 무네토라[立花統虎], 다카하시 무네마스[高橋統增] 1,132명
- 츠쿠시 히로카도[筑紫廣門] 327명
-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 5,352명
- 가토 미츠야스[加藤光康] 1,400명
- 마에노 나가야스[前野長康] 717명

일본이 펴낸 1924년 일본전사조선역에서...

15만명중 살아남은 숫자라합니다...

정유재란전 군세...

신문에서는 1926년이 편찬일자라하는데... 참고하시길...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40618&parent_no=23&bbs_id=BBSMSTR_000000000125
     
촐라롱콘 16-05-08 23:53
   
모리,시마즈,우키다와 같은 대영주들이 거느린 잔존병력이
각각 1,425명,293명 5,352명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이들 가문에서 조선에 출병한
병력 자체가 적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초에 조선에 출병한 일본군규모를 15만으로 산정할때 모리, 시마즈 가문에서 각각 3만,
1만 4~5천명을 동원했다고 나오는데....

고니시,가토,구로다 등과 같이 최전방에 투입된 것도 아니고, 비교적 후방을 휘젓고 다녔던
모리,시마즈,우키다 가문에서 잔존병력이 저 정도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은....
결코 최전선의 고니시나 가토보다 희생자비율이 높을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학계의 소수입장이기는 하지만 조선에 출병한 일본군 규모가 15만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5만이라는 일본군병력수는 실제병력규모가 아니라 히데요시가 일본 각 지역에 할당했던
병력규모를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젤리팝 16-05-09 00:06
   
일본에서 기록한건 오피셜이겠지용??

님이 발끈하는건 뇌피셜이고...

일본전사 조선역을 보고 와서 반론하는게 예의아닌가?

다른자료를 가지고 와보삼ㅋㅋㅋㅋㅋ

자꾸 본인생각 말하지 말고 ㅋㅋㅋㅋ
          
젤리팝 16-05-09 00:09
   
15만이라는 일본군병력수는 실제병력규모가 아니라 히데요시가 일본 각 지역에 할당했던
병력규모를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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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피셜??

『일본전사 조선역』에 드러난 역사의 진실
임진왜란 발발 초기에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의 핵심 지역을 점령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일본군 1군이 부산 영도에 상륙한 이후, 4월 14일 부산성, 4월 15일 동래성이 함락된 것을 시작으로 5월 3일 한양성, 6월 15일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 조선의 성은 전투다운 전투도 벌이지 못한 채 함락되었다. 관군이 동원된 상주전투, 충주 탄금대전투, 임진강전투, 용인전투에서 조선군은 일방적으로 패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을 뿐더러 관심 밖이었던 임진왜란 과정에서 참전 일본군의 사망자 수를 계산해보면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24년 일본군부가 발간한 『일본전사 조선역』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 기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일본군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더욱이 우리가 그 동안 간과했던 엄청나게 많은 일본군이 전투 중에 사망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도 명나라 군대가 참전하기 이전인 1593년 1월 이전에 말이다.
임진왜란 과정에서 참전한 일본군의 사망자 수에 대해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을 뿐더러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전사 조선역』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 기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일본군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피해만을 기억하느라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명나라 군대가 참전하기 전에도 엄청나게 많은 일본군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개전 초부터 참전한 일본군은 1번대에서 9번대까지 15만 8,700명이고, 규슈의 나고야성(名古屋城)에 예비군으로 준비된 병력은 10번대에서 16번대까지 11만 8,300명으로 총 28만 명이 넘는다.2) 일본 측 기록에는 1592년 4월 1차로 1~9번대가 조선에 상륙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 밖의 부대가 조선에 상륙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 측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고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장수가 조선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시에 1593년 6월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점호 기록에 나고야의 예비대에 속한 대부분의 장수 이름과 이끌던 부대의 군사 수가 기록되어 있다.3) 임진왜란 초기 전투에서부터 일본군의 병력 손실이 막심해서 나고야에 대기하던 예비 병력이 추가 배치됐다는 증거이다. 이는 임진왜란 개전 초부터 조선군의 저항이 격렬하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전사에 참전 기록이 확실한 일본군 숫자만을 계산할 경우, 임진왜란 초기부터 참전한 일본군은 22만 4,774명이고, 2차 진주성전투 개시 전(1593년 6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진주성 공격 명령서에 기록된 9만 3천 명과 예비 병력을 포함한 총 병력 수는 12만여 명이다. 이것을 계산하면 1592년 4월부터 1593년 6월 2차 진주성전투 이전까지 일본군 전사 및 실종자는 10만 명 이상이 된다. 2차 진주성전투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3만 8,000명을 합산하면 13만 8,086명이 임진왜란 동안 사망·행방불명이 되었고,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군 수는 8만 6,688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나고야에 주둔한 것으로 되어 있는 예비 병력 모두가 참전한 것으로 상정할 경우 참전 일본군 수는 28만 6,840명이고 손실자 수는 20만 152명으로 일본군은 1년 3개월 동안 참전자의 69.73%가 조선에서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군이 계속 승리한 것으로 기록된 임진왜란 초기 1년 동안, 일본군의 한양성 점령 이후 조선 8도를 분할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각 군의 지역별 사망자 수치를 살펴보면, 조선군과 백성이 일본군에 대해 얼마나 맹렬히 저항하였는지 알 수 있다. 개전 초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작전명령서를 하달하여 1번대에서 9번대까지의 부대로 하여금 조선 8도를 분할 점령하도록 하였다. 일본군의 선봉에서 가장 많은 전투기록을 남겼고, 평양까지 점령한 바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는 1592년 3월 조선출병 당시 18,700명 규모였으나, 9개월후인 1593년 3월에는 6,626명만이 생존하여 손실률이 64.56%에 달한다. 또한 전투기록이 많지 않은 황해도에 주둔했던 일본군 3번대(대표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같은 기간 동안 손실률이 53.80%, 강원도에 있던 일본군 4번대(대표장수: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의 손실률은 56.35%, 충청도에 주둔했던 5번대(대표장수: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의 손실률은 45.27%에 이른다. 또한 이들의 부대에 지속적으로 병력이 보충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손실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일본군은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촐라롱콘 16-05-09 09:25
   
2차 진주성 전투에서 3만 8천의 일본군이 전사하다니.....??? 그근거는 어딘가요?

실제교전이 벌어졌던 8~9일동안 교전이 가장 치열한 날의 일본군 전사자가 쳔 여명
이라고, 약간의 과장이 가미된 우리 기록에도 엄연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8~9일 내내 매일매일 천 여명의 일본군을 전사시켰다고 가정하더라도 1만 이상은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수치인데.....

그리고 그렇게 일본군 병력 및 일본선박 등의 피해수치를 그렇게 높게 잡을수록
일본의 잠재력만 높여주는 결과라는 것을 왜 모르실까.....

님의 논리대로 임진왜란에서만 20만이 전사했고 정유재란까지 합치면 30만 이상이
전사했다는 논리인데....

그러고도 일본은 조선에서의 전란이 종료되고, 불과 2년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전투에서도 동서군 합쳐 15만을 동원하는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네요!

이것으로도 16세기말 ~17세기초의 양국의 국력비교는 넘사벽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는 결론입니다...!!!
                    
젤리팝 16-05-09 10:25
   
일본전사조선역 1924년...

일본측 자료가지고 왔더니 발광한다...ㅋㅋㅋ

또 뇌피셜로 결론내리네 ㅋㅋㅋㅋ

하 습관참... 도대체 본인이뭔데

결론을 내림 ㅋㅋㅋㅋ

9시간 구글링해서 답변은 없고 근거는이라니? ㅋㅋㅋㅋ

것도 진작줬는데

2번 말하게하네 ㅋㅋㅋㅋㅋ
                         
촐라롱콘 16-05-09 11:13
   
1593년 3월 20일 기준으로 일본군 잔존병력이 총병력 53,000명이라면서....

1593년 6월의 2차진주성 전투에서 직접 전투에 참여한 일본군만 93,000명에

예비병력까지 포함하면 12만명이라니.....???

이제는 더하기 빼기조차도 죄다 모순투성이인 자료를 들이밀고서

이것을 믿으라고 주장하니 실소를 금치 못하겠군요~~~ ㅋㅋㅋㅋㅋ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일본측이 조선측은 물론 명나라측에게까지

전투의지를 상실케 하기 위해 허장성세로 떠벌린 병력규모를 그냥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적용하다니...... ㅋㅋㅋㅋㅋㅋ
                         
젤리팝 16-05-09 14:55
   
자료가 모순투성이라니...

일본정부에 따져야지...

헐 일본자료인데...

이걸 가르쳐야 하나 고민된다...ㅋㅋㅋㅋ

계산을 못하네???ㅋㅋㅋㅋ

덧셈 뺄셈 ㅋㅋㅋㅋㅋ

나고야에 예비병력이

투입되었겠지...

차근차근히 보면서 계산해보길...

ㅋㅋㅋㅋ

내가 계산기임?? 이거까지 계산해주게 ㅋㅋㅋㅋㅋ
                         
촐라롱콘 16-05-09 15:28
   
이젠 대놓고 반말이시네...

그럼 님은 왜 그런 모순투성이 자료를 근거자료라고 올리는 것임..??

맥락으로 봐서는 엉터리자료라고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올린 것은

아닌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적어도 사학계에서는 국방부에서 호국용의

목적을 띄고 발간한 자료는 참고자료정도의 가치밖에 두지 않는데....

님은 제국주의~군국주의 시대의 일본군부가 편찬한 자료를 신빙성 있는

자료인양 인용하고 있으니..... ^^

당시 일본사학자들이 편찬한 자료를 인용했다면 또 모를까~~~
                         
젤리팝 16-05-09 15:36
   
제국주의~군국주의 시대의 일본군부가 편찬한 자료를 신빙성 있는

자료인양 인용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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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부가 편찬했으니 더욱 신빙성있는거 아닌가...ㅋㅋㅋㅋ

우리나라 국방일보에서도 보도된 내용인데... 헐~!!!

http://iss.ndl.go.jp/books/R100000039-I001696053-00

여기가서 일본전사 조선역 읽어보고

감상문 제출~!!!

일본국회도서관...출처줬음...

ㅋㅋㅋㅋㅋ

총 325페이지...

뇌피셜 그만할때도 되지않았음???ㅋㅋㅋㅋㅋ

니혼징이니깐 일본어는 읽을수 있죠???ㅋㅋㅋㅋㅋ

님이 니혼징이라 니혼자료만 주는 친절함...

ㅋㅋㅋㅋ
                         
촐라롱콘 16-05-09 15:52
   
일본군부에서 편찬했으니 더욱 신빙성 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무슨 외계인하고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참~~~

그리고 일본전사 조선역을 아주 금과옥조로 여기는구만.......

그런데 어쩐다나.......

그 자료에 따르면 명량해전도 일본이 전선 몇 척 정도의 다소의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서해로 진출하면서 일본수군이 압도한 해전으로 나오는데~


내가 무슨 역사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별로 땡기지 않은 자료까지 찾아가며 읽는 수고는 하고싶지 않은데....

미안하지만 출처는 그냥 넘어가겠음.........
                         
젤리팝 16-05-09 15:55
   
이야 또 자료주니깐 딴소리하네...

명량해전 내용 어디 몇페이지에 나옴??ㅋㅋㅋ

또 뇌피셜 한거 아님???

몇페이지인지 가져와보삼...

그건 제3자적 관점에서 준

루이스프로이스 일본사를 참고하시라고 퍼주겠음 ㅋㅋㅋㅋ
                         
젤리팝 16-05-09 15:56
   
"일본군이 부딪힌 두번째 난관은 조선군이 궁여지책으로 서로 단결하여서 연합군을 편성, 수많은 배에 승선하여 공격해온 사실이었다.
그들의 배는 견고하고 높았으며 무기,탄약,식량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들이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해적질을 하였는데,
일본 배를 발견하면 곧바로 습격하고 약탈하였다.    조선군은 일본군보다도 해전에 훨씬 익숙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많은 손해를 입혔는데
이러한 일본군의 재난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계속 이런 약탈전의 반복)
.... 관백의 두 지휘관 곧 가토 도라노스케(가토 요시아키를 일부러 가토 도라노스케라 적음: 실제로 명량해전 참전)와
아와노쿠니의 영주인 다른 한 사람
(하치스카 이에마사:실제로 명량해전 참전)는 바다에서 조선인이 일본군에게 끼쳤던 막대한 손해를 보고서 가지고 있던
300척의 함대를 조선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 회전會戰에 필요한 무기,탄약을 (300척 함대에) 적재하고서 유능한 정예병력을 승선시켰다.
그들은 수많은 총포,창,활과 화살을 휴대하였다.
이렇듯 일본군은 자신들의 우수한 장비를 믿고서 약간의 배 밖에 보유하지않은 조선의 해적을 찾아서 출격하였다.
그런데 이전부터 조선인은 일본 배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조우하자 큰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며 배를 몰아 일본의 함대를 공격했다.
조선의 선박은 높고 튼튼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 배를 압도하였다. 우선 조선 수군 쪽에서 화기에 의한
공격이 있었는데, 이것이 일본인을 몹시 애먹이고 괴롭혔다 .....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노를 저어 배와 함께 달아날 수 없게끔 튼튼한 갈고리로 만든 쇠사슬을 ... 사용하여
....일본 배들은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
이 해전이 몇 시간 지속되면서 일본군은 의기소침해지고 전황은 이미 그들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이 해전에서 가토 쪽(가토 요시아키)의 장수 한 사람이 전사하였다. 그는 대단히 용감한 전사로 그의 용기와 뛰어난 전술 덕택으로
시코쿠라고 불리는 4개의 령국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관백이 매우 총애하는 심복이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島通?. 1585년 히데요시의 시코쿠 정벌군을 맡아 1만 4000석의 영주가 된 인물이다.
명량해전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여 목이 잘린 놈이다.)
아와노쿠니의 다른 장수도 패배를 당하고나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적의 손에 사로잡히기 전에
할복하기도 했다. 이 싸움에서 조선인들은 70척의 일본 배를 빼앗고 병사 대부분을 살해하였다.
나머지 병사들은 겨우 목숨만 건지고서 도망쳤다."
---------------------------------------------------------------------------------------------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의 명량대첩 기록

이건 명량 아래 언급했는데...

어디가 압도적으로 이겼는지 좀...ㅋㅋㅋㅋㅋ
                         
촐라롱콘 16-05-09 15:59
   
잘 놀았으니 이제 그만 합시다~~~ ^^

좀전부터는 그냥 말장난수준밖에 안되니........

그리고 이제껏 일본전사 조선역 자료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는 왜 튀어나오는건지.....^^
                         
젤리팝 16-05-09 16:01
   
갑자기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는 왜 튀어나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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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제국주의~군국주의 시대의 일본군부가 편찬한 자료를 신빙성 있는

자료인양 인용하고 있으니..... ^^

당시 일본사학자들이 편찬한 자료를 인용했다면 또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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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당대 서양 선교사 자료주니깐 ㅋㅋㅋㅋㅋㅋ

또 헛소리 작렬

이거 다 캡쳐떠서 망신주면 재미겠지만...

더 놀아봅시다...ㅋㅋㅋㅋ

그니깐 본인이 망상했다는거네요...

ㅋㅋㅋ

그니깐 어디서 그 이야기 나오는지...ㅋㅋㅋ

출처주삼??? 일본국립도서관 기준

명량해전...

어디 몇페이지인지... 좀... 줘봐요...ㅋㅋㅋㅋ

도망가려하네...

도망가삼... 안말림...ㅋㅋㅋㅋㅋ

다시올때는 페이지 가지고 와바요...ㅋㅋㅋㅋ
          
Centurion 16-05-09 02:31
   
허허~ 이 분 평소엔 객관적인 척 한국 깔 땐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더니만..
일본 쉴드칠 때엔 본인 정체성을 너무 티나게 노출하시네.. ㅋㅋ

이보세요.
일본 사료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고,
이걸 일본 후세 역사학계가 꼼꼼히 조사하고 기록해서 편찬한 역사책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걸.. 본인만 이해 안되는 핑계로 안믿겠다는 게 말이 되요?

그리고..
모리, 시마즈, 우키다도 죄다 싸움 여기저기 참전하고 다니며 병력 많이 깍아먹었고..
본래 가토 같은 경우는 본인 직할병력 1만에, 나베시마가 1만2천임.

임진왜란이 최전방 후방이 없는 전쟁이었던터라..

솔직히 저 정도 깍인건 딱 고증과 사료에 적당한 수준이고..
참고로 의병 병력이 제일 많고, 활동이 제일 왕성한 곳이 바로 경상도지역임.

https://ko.wikipedia.org/wiki/%EC%9E%84%EC%A7%84%EC%99%9C%EB%9E%80_%EA%B5%B0%EB%8C%80_%EB%AA%A9%EB%A1%9D#.EC.A0.9C1.EA.B5.B0_.EA.B3.A0.EB.8B.88.EC.8B.9C_.EC.9C.A0.ED.82.A4.EB.82.98.EA.B0.80.281.EB.A7.8C_8700.EB.AA.85.29

임진왜란 장계보면..
경상도에만 몰려있는 관군, 의병 숫자가 7만명 이상임..

글고, 시마즈 같은 경우엔 임진왜란보다는 정유재란 때 활약이 많았고..
조명연합군의 대병력과 부딪힌 상당한 규모의 육상전과 노량해전 등을 거쳤고,
특히 노량해전에서 병력 대부분을 상실함.

우키다도 행주대첩에서 부하 등에 업혀갈 정도로 다쳤던 사람이고.
나름 이 전투 저 전투 많이 참전하고, 병력소모도 겪음.

저기 위에 숫자 얼마 안되는 모리 요시나리는 참고로..
거대 다이묘 모리 가문의 당주 모리 데루모토가 아니라..
히데요시의 직할 가신인 모리 요시나리임.

https://ko.wikipedia.org/wiki/%EB%AA%A8%EB%A6%AC_%EA%B0%80%EC%93%B0%EB%85%B8%EB%B6%80

그러니, 일본군사학계도 뻔히 내막을 다 아니까, 본인들이 조사, 수집한 내용으로
딱! 적어내는건데.. 팩트를 부정하는 부질없는 몸부림은 그만 두시오.

저거 출판자가 제국주의 일뽕 잔뜩 들이킨 1924년의 일본군 참모본부인데..
이걸 부정하는 사람이 있네.. 사람이 아무리 억지쉴드를 치고 싶더라도 양심은 있어야지요.
               
촐라롱콘 16-05-09 09:53
   
모리 데루모토와 모리 요시나리는 제가 혼동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노량해전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병력 대부분을 상실했다는 것은 무슨
근거인가요...??

조선수군사령관격인 통제사 이순신과, 명나라수군부사령관격인 부총병 등자룡을
포함하여 장수급 지휘관급만 10여명이 전사하고 조선수군과 명나라수군이 각각
수 백명씩이 전사한 치열한 해전이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시마즈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니.....???

노량해전에서 불과 2년후인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끌고 나온 병력이 무려 1,500명입니다.

그것도 가문에 속한 대부분의 친인척과 가신들이 반대하여 일부만 이끌고 나온
병력규모가 그 정도입니다.

게다가 시마즈가문은 노량해전에서 불과 11년 후인 1609년 유구를 침공할때
직접 출정한 병력규모만 3천이 넘고 예비병력까지 포함해 무려 7천 규모였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면, 결코 이후에 저런 규모의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Centurion 16-05-09 12:54
   
여기서도 어김없이 또 조명연합군의 피해만 부각시키는 거 보소.
일본사람치고 한국말 잘하시네 ㅋ

그리고, 일본에서도 큐슈 남부지역을 석권한
나름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73만석 다이묘 시마즈 가문이..
무려(!!!!) 1500명씩이나 끌고 왔다고 놀랜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고..
뭔 1609년에 병력 3천 7천 갖고 놀래는 건 더 신기한 일이네.

이보시오. 니혼징씨.
큐슈 중부에 있는 12만5천석 영지를 가진 구로다 칸베에가..
본래 1만석 당 250명 동원한다는 개념으로 따지면, 고작 3125명 동원하는게 고작인데..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모아둔 돈 뿌려서 동원한 병력이 1만이요.

그리고 시마즈 요시히로가 집안 내부의 분열을 겪고 있었다지만..
분명히 히데요시가 인정한 시마즈의 당주였고.. 본인이 갖고 있는 석고만으로 따져도
1500명 동원은 전혀 무리가 안가는 수준이오.

일본 전국시대라는게.. 모아둔 돈만 있으면...
평소 상비군이 얼마 안되던 다이묘도 한방에 10만씩 모병하는것도 가능해진단 말이오.

낭인이랑 농민들을 바글바글하게 동원할 수 있는 시대였소.
(ex) 호조 오다와라 공성전이나, 히데요리의 오사카성 전투..

소위 1만석 당 250명 동원 이런 공식도..
실제로 쌀 2~3석이면 사람이 1년 먹을 양식이 되고..
영지의 실제 인구가 그 쌀 생산량만큼 부양인구가 존재한단 소리요.

말이 1만석당 병력 250명이지.
그 영지에 있는 인구는 1만석 당 수천명도 더 되는거유.

본래 시마즈 가문 73만석은..
상비군 연간 동원규모만 대략 18250명 정도 되어야 되는 영지이고..
유사시 돈 좀 뿌리면 이거 2~3배도 일시동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면 되오.

임진왜란 때 시마즈 요시히로 수하병력이 떼죽음 당했어도..
시마즈 가문이 통째로 모조리 출전한 것도 아니었고..(1만명 출병)

그 시대는 솔직히 밥먹을 능력만 있으면 애를 숭펑숭펑 낳던 시대라..
장남이 죽으면 차남이, 차남이 죽으면 삼남이 죽은 형제의 지위를 세습하면 되던 시대라.
이것도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였소.

참.. 이런 메카니즘을 뻔히 다 아니까.
1924년 일본군 참모본부조차도 다 인정하는건데..
혼자서 "아니다"고 근거도 없이 부정하는게 더 코미디올시다.
                         
촐라롱콘 16-05-09 13:15
   
73만석 규모에 18,000여 명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다니....
일시적으로 단기간 소집했다가 해산하는 병력도 아니고~~~

시마즈 가문의 사쓰마번이 완전히 무한한 생산력과 동원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네요!

조선의 총 생산능력이 쌀로 환산하자면 그래도 사쓰마번의 10배 가까운
규모는 될텐데도 불구하고 17세기 시기 조선의 상비군규모가 일반적으로
고작 2만명 내외에 불과한데.....   

사쓰마번(일본 전체로 보자면 1/30가량 될까요!!)의 생산력과 동원능력이
조선 전체의 생산력과 동원능력과 맞먹는다는 논리를 펴시고 계시네요.....^^

어떻게 임란 전후 당시의 일본만 유독 병력면에도 그렇고 선박,물자 등
여타 생산력 측면에서도 그렇고... 전멸에 가깝게 소진했으면서도
이후시기에도 이전과 별 차이없이 끊임없이 유지되는 것일까요...??
                         
Centurion 16-05-09 14:44
   
니혼징 분이 자국사인 일본 전국시대 사정을 모르시네.

참고로 1만석 당 250명..
이건 일시적으로 단기간 소집했다 해산하는 병력이 아니고. 일본 전국시대 내내 그랬슴.

한마디로.. 너 땅하고 돈, 식량 줄테니까, 내 밑에 있어. 이게 일본식 봉건제고..
이게 높은 가신부터 저 밑에 말단 병사까지 쭉 피라미드 체계화되어 있었슴.

본래는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이 날뛰던 시대만 하더라도..
(얘네들도 전투 시 거의 1~2만씩 이상 동원)
밑에 가신들이나 말단 졸병들이 농사 짓는 걸 감안해서 농번기 피해서 전쟁을 했슴.

그러다 나중에 오다 노부나가가 돈으로 모병하는 직업군인제도를 탄생시켜서..
4계절 어느때든 전쟁함.

일본 전국시대사를 좀 만 읽어봤으면 내가 하는 말이 구라가 아닌걸 알텐데.. .
하다못해 "대망" 같은 전국시대 역사소설이나 만화라도 좀 떼고 오시길..

그리고, 일본은 잦은 내전으로 영지의 세금이 50~60% 가까이 되는 사회고..
조선은 태평성세라 세금이 20% 안팎이며,
심지어 병역대상자들에게도.. 군역부담을 가볍게하려는 의도에서,
군인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보인이 병력자원의 2~3배 정도 많이 편성되어 있었슴.
(심지어 양반계층과 그에 딸린 노비들은 병역과 세금에서 면제)

한마디로, 일본이 전쟁에 특화된 사회라 과도하게 쥐어짜서 많이 동원하는거고.
조선은 너무 평화로워서 나라의 병력동원체제가 엉망이 된 상황.

일본의 인구와 최대동원병력이 대략 조선의 2배인데..
조선도 사실 정상작동했다면, 대략 병력은 30~40만은 뽑을 수 있는 나라였슴.

고려시대처럼 국가의 존망이 왔다리 갔다리하는 시대였으면,
조선보다 인구도 적은 시절임에도 30만 전멸하고,
또 얼마뒤 30만 뽑아내는 그런 것도 가능했겠지만..

조선의 경우.. 조선의 농경지가 대부분 작살이 나는 바람에..
명나라군 식량 대기도 어렵다고,
이미 징병된 병력까지도 고향에 돌려보내 농사짓게 하던 시절이 임진왜란 시절이었슴..

고려는 홍건적과 왜구가 날뛰던 hell of hell 시즌에도..
최영 장군이 20만 대군 징집해서, 군선 2천척을 건조하던 시절이 있었슴.
(오랜 전란으로 많은 인구가 줄었슴에도..)

즉, 고려와 조선의 인구와 생산력 자체만 놓고 보면. 조선이 훨씬 위쪽인데..
그냥 나라가 백성들을 아주 많이 배려하는 제도로 바뀌었다고 보면 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 병력규모가 대략 40만에 육박함.
문제는 이게 후기로 가면서 군정이 개판이 되었다는게 문제임.

당시 조선의 인구는 보통 낮게 잡으면 4~500만명.. 높게 잡으면 7~8백만...
개인적으로 한 1천만명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일본의 당시 인구는 대략 1~2천만 잡을 수 있슴..

쌀 1석(160kg)이 도정한걸로 따지면 대략 144kg로..
성인 남성의 1년치 식사량 수준인데..
일본은 소식으로 유명한 나라고.. 조선은 대식가로 불리던 나라임.

어쨌든 영지 1만석이면.. 사실상 1만명을 먹여살리는 땅이란 소린데..
거기 영지에 수천명 없을거라 생각하는게 더 신기한 노릇이고..

조선의 경우 중앙군이 2만~4만 정도 되고,
나머지는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전라도 등 상비군이 필요한 지역에
대략 배치되어 있었고, 이 병력들만 다 합쳐도 사실 10만은 넘어감.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은 후세의 창작이거나, 서인 자화자찬용 소재,
 혹은 조선 한양의 중앙군 병력을 10만으로 늘려라는 썰이 있슴)

글고, 저런 인력소모를 못견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2차대전 때... 독일은 인구 7500만의 나라임에도.. 거의 1천만 가까운 군인이 전사함.
소련은 인구 3억명 중 1억명이 죽음. 그런데 나라가 없어진게 아니라, 요즘도 강대국임.

당시 조선은 인구 4~5백만,
많게는 800만~1천만에서 한 수십만명, 최대 백만명 정도 죽은걸로 알려져 있고,
일본은 인구 1~2천만에서 한 20만명 안팎으로 죽은건데..

이걸 인디언, 인디오 인구감소처럼 엄청난 인구감소라도 되는듯 생각하심?
                         
촐라롱콘 16-05-09 15:19
   
Centurion님의 상세하고 해박한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부분을 보완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니혼징이라고 지칭하는 건 상당히 불쾌하네요... -.-

그리고 본문맥락상 그리 중요한 오류는 아니지만....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 전사자규모는 제가 알기로는 300만명대,
아무리 최대치로 잡더라도 400만명은 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까지 전부 합산하여 1,000만에 달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2차대전 당시의 소련 인구는 3억이 아니라 2억내외 수준이었고
물론 소련이 2차대전 당시에 어느나라보다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인의 사망자규모는 2천~3천만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1억은 너무 과장된 것 같습니다.
(2~3천만명도 당시 한반도인구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규모이긴 하지만...)

그리고 국방이 비교적 충실했던 조선초기인 15세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의 일반적인 조선의 상비군 규모가 중앙에만 2~4만,
지방까지 합쳐 10만을 상시적으로 유지했다는 것은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달라 현재로서는 선듯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당시 조선의 일반적인 조세수입규모를 감안하면(쌀로 환산하여
대략 60~70만석 규모로 알고 있습니다) 거둬들인 조세를 대부분
국방에 투자했다면 모를까.....
                         
Centurion 16-05-09 16:48
   
일본인 분이 니혼징 소리 들으면 좀 불쾌하신가요?
전 저한테 한국인이라고 해도 뭐 그닥 불쾌할거 같진 않은데..
본인이 싫으시다니..  앞으로 그럼 촐라롱콘 상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아니 근데 촐라롱콘이 태국 도시 이름 그거 맞음? 태국 사시는 일본인이신가?)

일단 2차대전 사상자 숫자는 내 착각인거 인정합니다.

http://www.infoplease.com/ipa/A0004619.html

독일 전사자 325만 + 부상자 725만
소련 인명피해 2천만.

근데.. 소련 인구의 1억8천만명 중 10%가 넘게 죽어나가고..
독일은 7천만 인구 중 1천만이 죽고 다친 사상자였는데..
이건 임진왜란 때 조선이 입은 피해와 비견될만한 수준이고...

일본은 인구 1~2천만 중에 20만이 죽었는데,
이건 크게 보면 다시 충원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는 아닌게 사실임.

중요한건 숫자가 정확하냐 마냐가 아니라,
어느 나라건 그만한 인명피해는 딛고 일어설만하다는 것이라는 이야기임..
님 주장처럼 회복불능의 타격이 아니라는 소리고.

또한, 앞서도 말했지만..
조선의 경우엔 병력동원체제가 상당히 느슨하고,
인구에 비해 동원병력 자체가 많은 편도 아닌데..

조선의 경우
상비군 형태의 진관체제와 제승방략체제로 군대가 운영되었고..
특히나, 조선 중앙군의 경우엔
병역에 편성된 상비군 인원들이 교대로 상경하여 수도의 중앙군에 순환근무하는 형태였슴.

즉, 사실상 태평성대라 군대에 몇십만씩 잡아두는 건 무익한 일이 때문에..
대부분의 병력은 농사짓다가, 농사 끝난 계절에 잠시 훈련받는 그런 예비군 형태였고,
그래도 좀 외적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함경도, 평안도, 경남, 전라도 같은 곳에..
수만명 단위로 군대가 유지된 건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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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 병력 관련 기록

총 군액
35만 - 팔도군안, <서애집 18권>
301,280 기사년(1509년) 군적
311,765 계미년(1523년) 군적

함경북도(함경도 북병사 관할) 군액 23,870 (성종24년 기준)
갑사 2,400 기병 3,200 보병 1,060 보인 17,210
함경남도 군액 16,736 (성종24년 기준)
갑사 1,000 기병 3,288 보병 936 보인 11,512

전라수군 11,836 보인 포함 47,300 <선조실록 27년 6월 21일>
충청수군 6,853 보인 포함 27,400 <선조실록 27년 6월 21일>
경상수군 15,934 보인 포함 63,736 <세종실록>
- 경상수군 2만여 <선조실록 26년 9월 3일>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num=43415


태조 2년 때 20만 8백여명(평안,함경도 제외)
태종 3년 296,310명
세종 31년 191,989명
성종 6년 정병 72,190명, 수군 48,800, 전국 군사 수 148,449명
성종 21년 158,127명
중종 4년 177,322명 雜軍 123,958명 총수 301,280명
중종 18년 정군 186,691명, 잡군 125,074명 총수 311,765명

http://dvdprime.donga.com/g5/bbs/board.php?bo_table=archive_comm_2010&wr_id=2144771

**************************************************************

저게 숫자가 좀 들락날락하는데.. 앞서도 말했지만..

조선은 일본에 비해 세금이 상당히 낮고,
병력자원의 입대시 이를 경제적으로 보조하는 보인을 두는 형태라..
병력 동원규모 자체가 적은 편이고, 병력자원들 역시 교대근무 형태로..
상비군으로 유지되는 규모가 전체 동원규모에 비해 적어보일 수 밖에 없슴.

그래도, 여진족의 준동이 예상되는 북방 국경지역과
왜구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수군의 경우엔 몇만 단위로 항상 준비되어 있었슴.
중앙군은 일종의 예비대 겸 기동타격대 개념으로 증원가는 것이고..

양반계층과 양반지주에 속한 노비들은 저기 포함이 안되는터라..
인구규모에 비해 조선은 사실 세금이 걷히는 규모나 병력동원에서도 누락되는 인원이 많음.
반면, 일본은 다이묘들이 거의 50~60%의 살인적인 세율로 걷어들이는데다,
이걸로 농민들도 군에 복무하면 출세의 길이 열려있던 시대라.. 군대에 사람이 엄청 몰림.

다이묘들 입장에서는 옆동네 다이묘한테 자기 영지를 뺏기면 목이 달아나고,
가족들도 대부분 떼죽음당하는 그런게 일본 전국시대의 전쟁이었슴.

주군이 망하면,
그 밑에 따르던 가신들이나, 쫄병들조차도 땅을 뺏겨서,
거렁뱅이 떠돌이 무사 낭인이 되어야 했슴.
그래서 전쟁에 임하는 각오가 다이묘와 가신들, 병사들 모두 남달랐슴.

하여튼, 그래서 조선과 일본을 그냥 비교하는 건 사실 의미가 없는게..
세율이 다르고, 군대의 위상이 다르고, 군사제도도 다름.

글고.. 특히나 일본은 병사가 되거나,
무사가 되면 평균적인 민간인들보다 녹봉을 많이 받지만...

조선은 군인이 되어도, 무기, 갑옷, 군마 이런걸 자력조달해야됨..
물론 이걸 보인들이 낸 돈으로 보조해준다고는 하지만,
이걸로 인한 병폐가 많았고, 군대가기 싫어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보면됨..
심지어 식량조차도 어쩔 땐 자력조달해야될 때가 있을 정도였슴.
                         
Centurion 16-05-09 17:20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5&wr_id=963999

그리고 조선의 쌀 생산량은 대략 1400만석 기준으로..
이걸 상평통보로 환산하면 대략 7천만냥인데..

조선의 1년 예산은 대략 700~800만냥..
쌀로 환산하면 대략 140~160만석 규모임..

즉, GDP의 10% 수준으로 결코 많은 편은 아님..
일본의 경우엔 GDP의 50~60%가 예산이 되는 나라니까..
요즘으로 치면 북한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될 정도의 HELL..

게다가, 조선은 군역을
정병과 이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보인으로 짜뒀고..
무기, 갑옷, 군마, 심지어 식량도 어쩔 땐 자급자족, 자력조달시키곤 했고..
요즘으로 치면.. 사실 이게 복무기간만 긴 예비군 형태와 유사했슴..

당연히 적은 예산에도 굴러가긴 가는데..
뭔가 좀 당나라 군대가 되기 쉬운 헛점도 존재함..

일본은 세금을 빡시게 거둬서..
무기, 갑옷, 식량을 다 지급하는 형태니까..
병사 개인은 경제적 부담감이 별로 없고,
오히려 수탈만 당하는 농민을 하느니,
출세를 꿈꾸고 군대에 입대하는 그런 효과도 없지 않았슴..
                    
Centurion 16-05-09 16:52
   
병역 제도

고려 말에 끊임없이 외환에 시달린 경험을 살려 조선 초기에는 국방강화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군대를 늘리고 정예화하였다.

건국 직후에는 우선 귀족 관료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私兵)을 혁파하여 공병(公兵)으로 귀속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이 사업은 태종 때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기왕의 군대만으로는 부족하여 모든 양인은 군역을 지게 하는 양인개병제를 밀고 나갔다.
즉,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양인 남자는 군병(軍兵)이 되거나,
아니면 군병이 군역을 지는 동안 필요한 식량, 의복 등 경비를 부담하는 보조원[3]이 되도록 하였다.

토지가 3~4결 이상 되는 자립농민에게는 보조원을 주지 않았으나,
영세농민 출신의 군인에게는 보조원을 지급하여 주었다.

보조원은 군병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매년 무명 1필을 국가에 바쳤다.

정부는 군역 담당자를 확보하기 위해
호적조사사업을 강화하고, 양인 인구를 확대하는 정책을 써서
 태조 6년에 37만 명이던 군역 담당자가
세종 12년경에는 70만 명으로,
세조 때에는 80만에서 1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중에서 군병이 약 30만, 보조원이 약 60만 명이었다.

군역에서 면제되는 것은 현직관료와 학생이었다.
왕의 친척인 종실과 외척, 공신이나 고급관료의 자제들도 군역을 지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그들의 군역은 국왕의 호위와 시종, 왕의 경비를 담당하는
고급특수부대에 소속되어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이 다른 점이다.

일반 평민은 정병(正兵), 유방군(留防軍), 혹은 수군(水軍)에 편입되어,
정병은 1년에 두 달, 유방군은 석 달, 수군은 두 달씩 복무했고,
복무기간에 따라 산계(散階)를 받았다.

이 밖에 직업군인으로서 갑사(甲士), 별시위, 내금위 등이 있어
무재(武才)가 있는 사람들이 시험을 쳐서 들어왔으며
정식 무반에 속히 품계와 녹봉을 받고, 중앙에서는 왕궁과 서울의 수비를 맡고,
지방에서는 하급 지휘관이 되었다.

조선 초기에 군대를 통솔하는 기관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였다.
여기에는 다섯 개의 군단이 있어서 이들이 중앙군(府兵)을 구성했는데,
그 지휘책임은 문반관료가 맡았다.

이 밖에 군인의 훈련, 시험 등을 관장하는 훈련원(訓練院),
무관의 최고기관으로 중추부(中樞府)가 있었다.

지방의 육군은 세조대 이후로 이른바 진관체제(鎭管體制)로 편성되었다.
즉 각도마다 한 개 혹은 두 개의 병영(兵營)을 두어 병마절도사(兵使)가
정해진 구역의 지휘권을 장악하고,

병영 밑에서 몇 개의 거진(巨鎭)을 두어,
거진의 수령이 주변 군현의 군대통수권을 장악하였다.
말하자면, 전국이 지역단위의 방어체제를 형성한 것이다.

그리고 요새지의 읍에는 읍성(邑城)을 쌓아 지방의 방어체제를 강화하였는데,
특히 바닷가 요새지에 해당하는 읍에 읍성을 많이 쌓았다.
이로써 지금까지의 산성(山城)시대에서
읍성(邑城)시대로 바뀌면서 국방이 한층 강화되었다.

한편, 중앙군과 지방군의 유기적인 통합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방군의 일부를 교대로 서울에 올라와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이 번상병(番上兵)이다.

수군은 육군과 비슷한 체제로 편성되었다.
즉, 연해 각 도에 몇 개의 수영(水營)을 두고
수군절제사(水使)를 파견하여 자기 관할구역의 수군을 통솔하게 했다.
수영 밑에는 포진(浦鎭)과 포(浦)를 두고,
첨절제사와 만호(萬戶)를 각각 파견하여 관하 수군을 통할하게 했다.

조선 초에는 정규군인 이외에 일부의 예비군인 잡색군(雜色軍)이라는 것이 있어서
평시에는 자기 생업에 종사하고, 일정한 기간 군사훈련을 받아 유사시에 대비했다.
여기에는 서리, 잡학인, 신량역천인, 노비 등이 배속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9D%98_%EC%82%AC%ED%9A%8C%EC%A0%9C%EB%8F%84

솔직히... 조선이 쌀 생산량이나 추정 인구 수에 비해선..
군역 담당인 16-60세 양인 장정들 숫자가 너무 적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임..
                         
shrekandy 16-05-09 17:43
   
와...걍 센츄리온님 존경스럽습니다 맘 같아선 제자라도 되고싶네요 ㅋㅋ
                         
Centurion 16-05-09 18:53
   
아니. 슈렉켄디님 같은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전 그냥 대충 허접 라이트 전쟁사 덕후라.. 진짜 쎈 분들은 따로 있죠..
저야 검색질이랑 눈팅으로 주워들은 지식 나열하는것이고..
                    
자기자신 16-05-10 02:40
   
촐랑롱콘//책에도 나와요 님아 임진왜란.정유재란때 일본군피해가 너무나도 막대하다고 살아서 돌아간 일본군숫자가 약80,000명정도라고 나옵니다 그만큼 조선군에 저항이 얼마나 거세고 완강했는지 보여주는자료입니다 일본자기스스로가 인정한것죠 일본군이 20만명이 쳐들어갔어 살아서 돌아온자가 약8만명
                    
자기자신 16-05-10 04:28
   
촐랑롱콘//교과서가 말하지않은 임진왜란이야기 읽어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사이트에 가보세요 검색창에 진주성이라고 검색해보시고요
여기에 제2차진주성전투에 관한 자세한기록이 나오니까
http://sillok.history.go.kr/id/knb_12606001_005
mymiky 16-05-09 00:48
   
애초에, 왜란 원인이 도요토미의 망상에서 출발하는데-.-;;
최대 패배자는 도요토미 아님?
몇년 지나지 않아 지 아들도 동군의 이에야스한테 죽고, 집안도 멸망...

조선은 왜란이후에도 종묘사직을 보존시키고, 300년은 더 갔으나
직접적인 전쟁터였기에, 피해가 극심했고, 잃은 것도 많음.

명은, 왜란참전이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도 아니지만,
오랫동안 만력제가 정치하지 않고 손 놓고 있었던 것, 무능력한 후계자들로 인해
정치 불안정이 농민 반란군들을 일으키게 되었고,
때마침.. 옆동네 여진족들한테 남 좋은일만 시켜줌;;

최대 이득을 본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누르하치
최대 손해를 본 사람은 도요토미
겨우 체면 치례한게 명나라와 조선
북창 16-05-09 09:09
   
전쟁사의 관점에서는 조선 승, 일본 패
지도자의 관점에서 선조 승, 도요토미 패
백성의 관점에서 조선 패, 일본 승
역사적인 관점(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되었는가?)에서 조선 패, 일본 승
뭐...그렇습니다.
단순히 조선이 승리했다고 하는건...그냥 전쟁사 즉...싸움의 승패란 단순한 판정일 뿐이죠.
모니터회원 16-05-09 11:58
   
애초 전쟁의 목적이 일본의 침략전쟁이고 조선의 방어적 개념의 전쟁인데 피해로 승패를 논하는게 넌센스죠.
일본은 전국시대 통일이후 다이묘들의 넘쳐나는 군사력을 소모시키려고 왜란을 일으켰으니 군사력만 소모된게 당연하고요.

어떤 전쟁이든 가장큰 피해는 전쟁터가 된 지역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목적을 이뤘는가로 봐야죠.
따라서 처음 목적인 침략에 실패한 일본은 패전, 방어에 성공한 조선은 승전이 되는 것이죠.
위에 글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 전 국토가 털렸다고 프랑스가 패전국이라고 주장할 논리네요.
눈으로 16-05-09 14:04
   
이휴~ 이겨도 이겼다고 할수 없는게 임진왜란... 이걸 이겼다고 해야할지;;;; 일본의 침략전을 저지했다란

관점에선 승리라고 할수도 있지만 ... 그 내용과 피해상황등으론 도저히 ;;;;
지우개 16-05-09 14:12
   
저런 사람들이 러일전쟁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일본 승리라고 떠벌리고 다닌다지요...ㅋ 암튼 이중성에...
전장이 우리땅이고 침략자가 맘먹고 통수치고 들어왔는데 그럼 제아무리 조선이라한들 무사할까... 수백년을 전쟁준비에 전쟁으로 살아온 족속들이 맘먹고 처들어와서는 그걸 끝내 이기지도 못한 왜구들은 정말 ㅂㅅ이고 왜구들의 총체적 한계를 들어낸거지 무승부 운운하긴...ㅉㅉ
코코로 16-05-09 15:35
   
역사적으로는 승전이죠. 피해의 크기가 어느쪽이 더 크냐로 분간하는게 아니라, 일본의 침략전쟁이었기 때문에, 영토를 얻지 못한 일본의 패전 맞습니다. 반면 디팬스 입장인 조선의 경우 수성을 해냈느니, 승전이구요
alskla9 16-05-09 16:20
   
생각보다 간단한건데.. 일본이라는 나라를 현재시점에서 바라보니 일본이 이겼다느니 이런소리를하지

당대시대로 보자면 나라를 다스리는 '집안'이 있고 조선은 당시 이씨왕조
일본은 전국을 막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런데 전쟁후 결과는?
일본 - 도요토미가 멸문
조선 - 이씨왕조 500년 지속
     
지우개 16-05-09 16:53
   
그러게요. 저 발제 자체가 편향적 시각을 담고 있는데다.. 일부 간신배 같은 작자 또는 왜구피가 섞인 인간들이 계속 떡밥을 던져 놓습니다. 밑져야 본전이거든요. 저 논리라면 러시아는 독일한테 졌고 러일전쟁도 마땅히 러시아 승리죠. 물론 저 논리가 아니더라도 러일전쟁은 영국등의 똘마니로 그 엄청난 지원을 업은 일본이 망하기 직전 가까스로 비긴 전쟁정도가 맞지만요...ㅋ
꼬꼬동아리 16-05-09 17:40
   
자료 가져다 주면 뭐하것노 소귀에 경읽기인데
일뽕및 헬니뽕진들 특징
1:눈깔이 썪어서 자료를 보여줘도 못본다
2:자료를 보더라도 이해를못한다
3:조금 이해를 하더라도 상대편  말이 맞으면다른말로
  돌린다 
4:다시얘기해줘도 돌림노래된다
왜나라호빗 16-05-09 17:50
   
근데 마라도 아이디 두개 쓰나
햄돌 16-05-09 18:00
   
촐라롱콘이라는 사람 정체성이 궁금하네 ㅋ
     
꼬꼬동아리 16-05-09 20:41
   
헬니뽕진  같은데요
꿈꾸는자 16-05-09 20:08
   
임진왜란 우리가 진 전쟁이다..적군만 물러가면 이긴건가???...도요토미가 병사하고 철군령이 내려져서 물러간거지..자력으로 물리친것도 아니다...다 떠나서...
임란전 조선인구 현대 학자들의 추측으론 최소 800만에서 최대 1200만으로 본다..헌데 임진왜란.정유재란후 조선인구 최소 200만에서 최대400만....이게 어떻게 이긴 전쟁인가...조선인구가 대부분 다 전란중에 죽었고 전국토가 초토화 됐다..20만~30만은 노예로 일본으로 끌려갔고...그렇다고 침략한 적군을 자력으로 대규모 전투로 전멸시킨게 있긴하나?..
수군으로 일본수군을 전멸시켰지만 그건 적군의 일부일뿐..어차피 적의 주력은 육군..
이순신장군의 활약으로 적의 보급선이 끊어져 일본육군은 보급이 용이한 남해안일대로 전략적인 후퇴...이때 임진왜란때 데려운 부대 대부분 철수 약2만명정도만 남아서 남해안 일대의 여러 왜성에 주둔...조선군은 그것도 못물리쳤다..
그렇게 수년동안 현상유지상태에서 정유재란 대규모 지원군으로 재침...역시 이순신장군의 수군의 활약으로 다시한번 적의 보급선을 끊었고...적은 다시 남해안 왜성으로 후퇴...마침 도요토미 히데요시 병사로 철군령 떨어져서 왜군 철수...
이게 어떻게 이긴 전쟁인가???....적의 주력대군을 전멸시켜서 전쟁을 끝낸것도 아니요...적에게 복수전을 펼친것도 아니고..순전히 조선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가장 큰 피해는 백성 대부분이 어육이 되서 죽었다는거...
고구려처럼 침략해온 적의 대군을 자력으로 몇달만에 전멸시키고 도주하는 적들을 끝까지 적의 영토까지 쫓아가서 전멸시켜야 이긴거지.......아무리 봐도 임진왜란을 승전이라고 말 못하겠다....
     
지우개 16-05-09 20:22
   
네 맞아요. 베트남전도 미국의 대승리로 끝났죠.
왜란얘기니 2차 진주성 전투도 진주성민의 대승리로 끝났고..
     
꼬꼬동아리 16-05-09 20:27
   
예 맞습니다 6.25도 북한승리로 끝났죠
     
꼬꼬동아리 16-05-09 20:33
   
6.25도 국토 초토화되고 un군 미군도 많이 죽었으니 도주하는 북한군전멸 못시켰으니
6.25는 un군의 완벽한 패배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없고 여기는 북한입니다
이게 당신 논리입니다
     
왜나라호빗 16-05-09 20:58
   
안되니 철수명령 내린 거지 이기는 중에 내리겠음? 패전국 중 후퇴명령 안 내린 국가도 있나 후퇴중인 거 잡은 건 왜 복수로 안 침?
의느님 16-05-09 20:25
   
이겨도 이긴게아닌 대표적인 전쟁이 임진왜란 아닌가????
반대세력 약화+중앙집권강화+도공들 전부 잡아다가 도자기 구워서 서양에 신나게 팔아먹은 일본놈들인데
우리가 승패를 논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으리
게다가 된통 당해놓고 정신못차려 호란맞은건 보너스
     
지우개 16-05-09 20:35
   
정신못차리고 호란 맞은게 보너스라는 말은 이런 기회주의적 역사인식을 가진사람이 할 소린 아닌듯...ㅋ  뭐 자유긴하지만..^^
어차피 역사적 인식조차 국력을 반영하는 것... 예전엔 더했지...일본의 과거 미화에는 침묵 자국의 극심한 피해끝에 이겨낸 국난은 뭐 사실상 진거...ㅋ
예전엔 더 많았죠. 이런 부류....ㅋ
지금은 겨우겨우 분란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것도 끝물이라... 정작 왜구들 밑천은 점점 들어나는데 어쩔거냐...^^
꼬꼬동아리 16-05-09 20:29
   
오늘 일뽕들 총 출동 했네 땅을먹고 식민지배해야 이긴전쟁이지
대가리에 돌만 쳐담고사나
꿈꾸는자 16-05-09 20:40
   
한심한 넘들 많네..전쟁에 졌다고 나라가 다 망하는줄 아나...전쟁에 져도 나라가 유지되고 계속 될수있다는건 우리나라역사나 다른 동서양 역사를 봐도 많고 많은데...적군이 철수하고 조선이 유지됐기때문에 임진왜란이 이긴전쟁이라고 볼순없지...ㅉㅉㅉ...
     
꼬꼬동아리 16-05-09 20:42
   
마 여거나라 싸이트 가서 놀아라 대한미국이 그래좋냐? 여거나라 싸이트 재미있는게없나?
     
지우개 16-05-09 20:48
   
이 사람 실망이네..ㅋ
꿈꾸는자 16-05-09 20:42
   
침략해온 적군이 철수하고 나라만 유지되면 무조건 다 이긴전쟁이냐 ㅋㅋㅋ...
병자호란 청군 철수..조선의 영토도 그대로 유지되고 조선은 그 후로 몇백년 더 유지됨...근데 병자호란가지고 이긴전쟁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임지왜란도 비슷한거다....ㅉㅉㅉ...
     
꼬꼬동아리 16-05-09 20:43
   
병자호란은 진전쟁 맞잖아 대가리가 똥으로 도배됬냐
     
닥터챔프 16-05-09 23:30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아예 결과가 다른 사건인데 갑자기 병자호란이 왜 튀어나오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꿈꾸는자 16-05-09 20:47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수있어야 발전이 있단다..
조상의 역사라고 무조건적인 미화는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울수 없게된다...
난 간다...바빠서~~~^^
     
꼬꼬동아리 16-05-09 20:53
   
여거나라가 미화 작살이지 짜장면인지 쪽빨이 인지는 모르는겠는데 둘다 자기역사 미화시키는거는 그어떤 나라가 따라가냐 ㅋㅋ
여거나라가서 미화하지말라고 전해라
     
왜나라호빗 16-05-09 20:59
   
근데 님은 왜 직시 안 함?
     
닥터챔프 16-05-09 23:31
   
바쁜 사람이 이런 뻘글 쓸 시간은 있었나보네 ㅋㅋ
지우개 16-05-09 21:38
   
어차피 이런 발제 자체가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문제임.
따라서 각자가 일반적 룰(전쟁의 승패에 대한 일반적 정의)을 패기한다면 걍 순전히 본인들의 주관(사관)의 문제가 될뿐임. 따라서 승패에 대한 논쟁자체보다 어느 이익에 복무하냐의 정체성(사관) 논쟁이 되게됨.
전쟁의 승패 기준을 은연중에 피해의 정도로 바꾸는 이른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를 사용하면서 폄하하려하고 특히 유독 특정전쟁에서만 그렇다면 그냥 왜나라뽕이거나 왜구 또는 짜장일 가능성이 크다고 밖에...

꿈꾸는자에 대한 실망은 그런거임. (원발제자나 몇몇 애들음 원래 그런 애들이지만..꿈꾸는자도 같은 급이었다니...ㅇㅇ) 그 감정의 일단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ㅋ
남궁동자 16-05-09 21:44
   
촐라롱콘은 여기서도 거짓말 하다가 도망가네 ㅋㅋㅋㅋ
엘비스 16-05-09 23:35
   
말도 안되는 논리.. 저그가 자기부대를 대부분 이끌고 테란을 치려갔다. 대부분 죽고 일부의 저글링들이 돌아갔다..근데 테란도 피해를 많이 입었다.. 그래서 테란도 피해를 입었으니 테란이  패배한것이다..?
Centurion 16-05-09 23:44
   
이 발제글이 승패를 따지고 있다고 했는데..
누구 글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제 글은 아닌듯..

제가 쓴 아래의 글은 임진왜란 일본군의 실패의 주된 원인에 관한 글이고..
그게 "해상보급로 단절"에 기인한다는 글이지.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지고의 글이 아니었슴.

글고, 사실..
마이밀키님 말씀한 바와 같 임진왜란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이미 다 거기서 거기임.

1. 조선의 상처뿐인 승리.
2. 일본의 졌지만 개이득인 전쟁.
3. 히데요시 사후 일본을 접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4  명나라의 망테크에 살짝 가속화..
5. 명나라의 요동군 파병 등으로 감시와 통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만주족을 통일하고 후금의 기반을 마련한 누르하치.

사실상 진정한 승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누르하치이고..
조명연합군은 승리는 했으나, 상처 뿐인 승리.

명나라는 일찌감치 망테크를 탔지만, 여기서도 돈과 인력을 소모했고,
특히 만주족 누르하치에 대한 통제능력을 잃음.

다만, 전쟁의 승패에 대한 평가는 간단명쾌한데..
전략목표를 달성못하고 GG치고 나간 일본이 패배한 전쟁이 맞음..

본래는 조선을 첫 발판으로 삼아, 명나라, 인도까지 진격하려던
일본 통치자 히데요시의 전략과 야망이 박살남.
고로, 일본에 나라 안뺏기고 나라 지킨 조선은 분명한 승리자.

토탈워 해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방어측 요새를 부수든, 병력을 죽이든...
최후의 깃발 못꼽으면 그건 패배한것임.

이건 모든 전략게임이 마찬가지임.

일본이 이득은 봤지만,
승리를 주장하려면 본래 전략목표를 달성하여, 조선을 점령해야만 함.
이게 실패했기에 일본은 패배가 맞고,
조선은 방어에 성공했다. 승리했다라고 말할 자격이 충분함.
     
지우개 16-05-10 00:28
   
안타깝지만 피해국가 입장에서 짜증날법한 떡밥이나  던져놓고 싸움구경이나하는 발제자나 그에 부화뇌동하는 그 동조자들한테는 이런 설명이 필요없음. 차라리 게네들이 금이야 옥이야 하는 부분을 끌어들여 그 예를 드는게 게네들을 싸움장에 끼어들게 하거나 적어도 발제의도를 무력화하늠 것임. 같은 논리로 분명 러일전쟁에 대한 우리 역사교과서 표현은 수정되어야함. 영국의 대리전이라든지 결과는 일본의 승리가 아닌 일본측의 극적인 강화조약성공정도로. 암튼 우리 역사책에서 일본은 고대나 근현대사나 너무 과장되어 있음.
자기자신 16-05-10 03:02
   
임진왜란은 이긴전쟁이지 왜 진전쟁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임진왜란이 조선이 진 전쟁이라는일뽕들 이해가 안가네 ㅋㅋㅋㅋㅋㅋㅋ한반도를 점령못했는데 당연히 일본이 진것지 이긴것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유재란마지막전투이자 해전이고 이순신장군님일생의마지막해전이 노량해전을 봐라 조선이 진전쟁이라면 한반도전체가 일본군손아귀에 들어가야 조선이 진것지 한반도를 점령못했는데 이게 일본이 이긴전쟁이냐 진것지 에휴 ㅉㅉㅉㅉㅉ
카노 16-05-10 17:40
   
식민사학에 쩔은 사람들의 자기 역사에 대한 자학증상은 가히 정신병 수준인 듯
관심병자 16-05-15 22:57
   
승자 : 조선, 명이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
패자 : 왜
진정한 승자 :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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