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군이 313년에 미천왕이 멸망시켰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낙랑군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313년 이후에도 낙랑군이 존재했다. 물론 이 낙랑군은 평양에 있던 그 낙랑군과는 다르다.
313년에 평양의 낙랑군이 멸망한 후 낙랑군 유민들은 모용외에게로 갔다. 모용외는 이 유민들을 위하여 요서에 낙랑군을 새로 뒀다. 이 요서의 낙랑군은 이름만 있는 낙랑군이 아니라 엄연히 태수가 존재하는 실재하는 낙랑군이었다. 그후 432년에는 북위 세조가 낙랑군 백성을 유주로 옮겨버렸고 이때쯤 새로운 낙랑군은 쇠락해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20년대에 다시 북위에서 영주에 낙랑군을 설치했다가 얼마 안 되어 다시 없어졌고 537년에 또다시 요서의 남영주에 낙랑군이 설치됐다.
어쨌든 몇차례의 변화는 있었지만 313년 이후의 새로운 낙랑군은 요서에 있던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가 세운 기존의 낙랑군이 요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새로운 요서 낙랑군에 대한 기록들을 기존의 낙랑군에 대한 기록인 듯이 왜곡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하기도 한다."
저 기사에 분명히 북조시대라고 되어있죠? 기존학설을 뒷받침하는 유물입니다. 저게 3세기 이전 유물이라면 모르겠지만..
원위(元魏) 때에 이르러서는 낙랑, 대방 등의 군현을 요서(遼西) 지역에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중략)...중국의 서책에서 혹 요동의 여러 현을 한나라 때의 낙랑 지역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 한치윤, 《해동역사》〈지리고〉4 ‘사군’
“모용외가 낙랑군을 두어 장통(張統)으로 태수를 삼았다 하였으니 이것은 별도로 요계(遼界)에 두어 옛 이름을 그대로 칭하기를 마치 후세의 요령(遙領)하는 예와 같이 한 것이지 한나라 때의 옛 군은 아니다.” - 안정복, 《동사강목》〈사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