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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27 10:38
[세계사] 무쿠리 제국의 진실
 글쓴이 : 북명
조회 : 5,969  



Re:고구려는 또 뭐고 고선지는 또 뭔가 너희들이 그런 나라를 가진적이 있느냐| 서양사

카마이카노|조회 254|추천 0|2003.05.16. 17:06

무쿠리제국만이 있었을뿐이다. 


너희는 과연 고구려가 너희의 나라라고 하는가 고구려는 무쿠리제국이며 파울 펠리오라는 학자가 밝힌적이 있으며 
티베트의 기록에 무쿠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투르크의 기록에도 보크리로 비잔틴제국의 기록에는 모우쿠리로 기록되어 있다. 
이제껏 니녀석들이 알고 있는 고구려역사는 다 조작되어 있는 것이며 실제 무쿠리제국의 땅은 킵챠크,쿠만 일대까지 있었다. 
니칸의 역사에도 증명된다. 

하여튼 고조선,부여,옥저,백제,발해 또한 에케 울루스의 국가이며 너희 하느쿵의 정통국가는 쉰라,괴려,좃선이다. 

고조선=쥬르친 

부여=부리야트(나의 스승님 에유르님의 고향도 부리야트로 그와 비슷한 유적이 있다) 

옥저=오호츠크 

백제=베르체 

발해=바르하이 

단군=탱그리(에케 울루스의 천신으로 너희들의 단군은 한자식으로 하찮게 조작한 것이며 탱그리는 몽골,하느쿵 두나라의 시조이다) 

베르체는 서베르체와 동베르체,중베르체등으로 나누어졌으며 남베르체는 쿠빌라이칸 시대까지 남어 국서를 보낸적이 있다. 

이것은 니칸의 역사에도 증명된다. 

어떻게 너희 나라의 역사서는 러시아인들의 역사서만도 못하냐!!! 

러시아인들은 동방 시베리아를 정복하면서 수많은 유적들을 발굴하였고 그곳에서 소그드인들의 유물을 발굴할 정도였다. 

무쿠리는 니칸만을 통치한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서시베리아,쿠만,킵챠크 일대까지 진출한 적이 있다

광개토왕의 본래 이름은 레리 토크토부하칸이며 고선지의 본래 이름도 코리챠 샨치이니라... 

장수왕의 본래 이름은 차이슈트칸이다. 

고구려의 무기도 직검이 아니라 티무르 무할셀레라는 날카로운 그 당시 최고의 제련술을 자랑하는 반월도였다. 

너희녀석들이야 말로 남의 나라 역사서를 훔쳐다가 자기 나라의 역사로 알고 고구려 최강이니 하고 있으니 쯧쯧쯧... 

또 이글 쓰면 미친놈이니.. 개자식이니 100% 욕이 나올께 뻔하지 

자세히 생각하고 답변을 달기 바란다. 


돌궐의 비문과 사서엔 ...동방의 해뜨는 곳 뵈클리가 나오고 그걸 고구려라 예견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돌궐사엔 정확히 "무쿠리"로 고구려를 호칭했음도 나타난다.

 

고구려의 북방 속령인 말갈을 무쿠리로 보는 견해도 있고...

후대 발해(대진국)의 다른 호칭으로 보는 견해도 많은데...

시대와 지역의 다소 차이는 있어도 대동소이한 한가지 호칭같다.

 

비잔틴사에도 고구려는 무쿠리로 나오고...

일본사엔 일본정벌에 나선 려몽연합군을 고쿠리(고려), 무쿠리(몽골)이라 적시했음도 나타난다.

서방을 뒤흔든 아발스도 무쿠리의 유종이라니...기원전후 고구려(무쿠리)의 영향력은 유라시아를 누비던 천자국의 위치일까 싶다.

 

왜 고구려가 무쿠리일까...?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를 맥(貊)족이라 명기했다.

맥고려..정확한 발음은 맥구리(막구리)...무쿠리와 대동소이하다.

 

고로, 고구려의 북방 속령이란 말갈(물길)은 크게 보면 무쿠리의 또다른 한자 음차표기일지 싶다.

후대 사서들이 말갈과 무쿠리(맥구리,고구려)를 분리해 적음은...

말갈이 곧 대조영의 대진국 백성들이고...대진국(발해)가 바로 무쿠리(고구려) 부흥국임을 감추기 위한 심리에서 일 것이다.

 

무쿠리(고구려)가 곧, 발해&말갈을 뜻하는 용어란걸 인정하면...

같이 구리(고려)란 명칭으로 천자국 고구려를 형식상 계승한 왕건고려는 고구려(무쿠리)의 적통이 아닌격이 되기에...

당대 고려나 송나라..이를 이은 근세조선사가들은...이를 따로 분리해 표기했을 것이라 사료?다.

 

몽골제국이 서역에 건설한 차가타이지역등지는 후대에 무굴(무갈)제국이라 호칭되는데...

이로 보아선 몽골이 곧 무굴(무갈)란 말이고...몽골리아식으로 무굴에 지역을 뜻하는 "리"가 붙으면 정확히 무굴리(무쿠리)가 

몽골의 또다른 호칭이 돼는 이치다.이게 억지 같은가...?

 

몽고(몽골)의 어원에 데해선...고대 몽올실위에 있단 설부터...

몽고"는 곧 만주어(여진어) "몽쿤"으로...은(銀)을 뜻한다하는 학설이 있다.

실제로 몽골어의 "몽고(먼고)"는 은화(돈)을 호칭하는 언어다.

몽고라는 족명이 원래부터 상용됐다기 보단 몽골제국 선포당시에 "무칼리"가 제안한 국호란 설도 있다.

 

료나라(힛타이트,카라키타이)가 빈철의 강함을 상징한 국명이라하고...

금나라(알튼오르스)는...황금의 영구불변을 상징하는 국명이라 하고...

몽고(몽골)은...은(몽군,銀)을 상징하는 국명이라는 학설이 있다.

 

그럼, 징기스칸은 왜 금속 중 가장 귀한 황금보다 떨어지는 몽고(銀)을 국호로 정했냔 의문이 있다.

첫짼...이미 금나라가 알튼오르스(금나라)란 명칭으로 불리웠기에 구별하기 위함이요...

어쩌면...금나라가 자신들 다음의  두번째 귀한 제후국이란  의미로 지정해 줬을 확률이다.

몽고란 국호는...징기스칸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칭한 국명이라기 보단...

타의(금나라황제)에 의해 이미 주어져 불려졌던 국명일 수 있는 정황은...

 

징기스칸 가문을 몽골씨족이라 하질 않고... 황금(알튼)씨족이라 자칭한데 의하면...

몽고도 은(銀) 보단 황금을 더 신성시하고 태양의 상징물로 했다 봐야 하겠다.

 

 

고로, 몽고가 자신들의 국명을 징기스한의 개국 전부터 몽고라 하고...이는 강함을 상징한단 설은 후대의 억측일지 싶고...

아랍과 유럽이 그렇게 불렀듯이...왜놈들이 그렇게 호칭했듯이...몽고의 원래 전통국명은 무쿠리(무굴)일 확률이 많다 사료?다.

무쿠리(무굴)은 곧, 고구려를 의미하고...발해말갈을 의미한다.

금나라의 주 종족도 발해말갈인 무쿠리(고구려)유민들이며...단지 금태조의 가계는 신라계 고려인이기에...

신라를 상징하는 금(金,안출=알튼)이 아구타의 국명이 됐으리라 사료?다.

여기서 고려(구리)는...꼭히 고구려만의 단독국명이라기 보단...서방의 고구려격인 돌궐(돌고리)도 쓰던...

치우천자의 그 배달 구리국서부터 기원한 동이족들의 국명유래일지 싶다.

특정민족이나 국가의 단독 국명이 구리(고려)라기 보다는...같은 문명권 나라와 민족들의 공통용어로서...

나라(國)을 뜻하는 용어가 구리(고려)였을 가능성 많단 것이다.

 

그래 요동땅의 임자가늠에서...서희가 거란(계단,키탄)에게 우리도 고구려를 계승해 

나라이름이 구리(고려)라도 설명했어야 했고...대진국(발해)도 국명에 고려(구리)가 들어가는 이치다.

몽골어 유사한 만주어(여진어)로는...대진국은...친구리(진고려,틴굴)라 했어도 법에 걸릴 일 없단 것이다.

 

 

중요하고 분명한건...

서역과 왜놈들은...몽골을 무쿠리라 했고...돌궐과 서역은 고구려나 발해를 무쿠리라 했단 점이고...

징기스칸이 사구사준 중 하나인 무카리(목화려)이게 분봉하며...

태행의 북쪽은 짐이 다스릴테니...태행의 남쪽(중국남부)는...경이 다스리라 했단 구절로 보아...

징기스칸이 무카리에게 분봉한 중국 남부땅이란 건...무카리가 다스려 무굴제국인 이치라 할 수 있겠고...

반대로 태행의 남쪽은 원래 무굴이란 지역명이라 그 통치자가 무칼리왕(하남왕?)이란 호칭으로 불리웠다고도 사료?다.

 

여기서 태행산맥은...현 하북성과 산서성을 동서로 나누는 산맥이 아닌...

신장성을 남북으로 나누는  텐산(天山)산맥을 의미한다 보인다.

태행'은 곧 텐(天)의 몽골어 발음의 한자 음차표기고...천국(天國) 할 땐 탱그리(당굴,텐구리)란 용어인데...

현 몽골어론 하늘님(天君,단군)을 탱그리라 하는 변형이 생긴거라 보인다.

 

 

더 팩트만을 요약하면...무쿠리는 무굴이고...고구려(맥고려)라 한다.

비잔틴과 돌궐은 고구려를 무쿠리라 했다.

왜와 중앙아는 무쿠리는 곧 몽골의 다른 표기라 한다.

 

그럼, 무쿠리(고구려)를 가장 잘 계승한 나라는...몽골(무쿠리)이란 이치며...

근세의 역사조작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역사를 왜곡한 것은...

징기스칸제국의 몽골(무쿠리)이 곧 대조영(말갈고구려)의 후손이요...

그 직계 조상이 곧 유리시아를 호령하던 흉노족들의 우두머리인 고구려(무쿠리)임을 가리려는 발버둥이라 사료?다.

 

현 중국대륙중동부에 있던 왕건고려와 근세조선...?

그건 그 다음의 왜곡대상였지 싶다.

 

 

유라시아를 제패한 징기스한의 몽골(무쿠리)족은...

유리시아의 북동부를 제패한 발해말갈(대진국)의 유민들이며...

그 윗대인  유라시아 전체를 뒤흔든 흉로이자 동족 스키타이격인 고구려(무쿠리)의 후손들임을 가리려...

징기스칸의 발흥기 전후 원조몽골족들은...동이족계 발해말갈 유민들임을 가리려...

몽골(무굴)족을 고구려(무쿠리)와 별개의 서북방 야만족 오랑케종족이란 요상한 뉘앙스의 소스를 뿌리는 설들에 휘말리며...

그를 뭔 대단한 역사의 진실이나 찾은듯 하는 자세는...

어쩌면...역사왜곡세력들의 가장 핵심수작질에 말려들어 스스로 선전해 주는 헤프닝이 ? 수도 있다 걱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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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인 고려 무쿠리高麗(畝俱理) "당唐저서 범어잡명梵語雜名 기록"

무굴제국은 몽고의 후손들이 세운 우즈베크 공화국에서 태어난 바부르로부터 시작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ddleway49&logNo=110082700288
러시아인들이 우즈베크 공화국 으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 역사적 아이러니한 순환구조가 아닐수없다


무굴 제국
http://ko.mythology.wikia.com/wiki/%EB%AC%B4%EA%B5%B4_%EC%A0%9C%EA%B5%AD
무굴 제국의 시조 바부르는 본래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티무르의 5대 직계후손으로, 

1483년 2월 14일 우즈베크(Uzbek)의 시르 천(川) 상류 페르가나에서 태어났다.[4][5] 

그의 아버지의 왕국은 중앙아시아 바다크샨(Badakshan)에 있는 페르가나의 조그마한 공화국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1).무굴은 몽골인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이다.
한반도의 고대와 서역간의 직접문명 중국 실크로드보다 앞선 몽골리안 루트 교류가 
고대 서역의 몽골로이드mongoloid 동서양간 교류를 이끌었던 고아시아인들
동양서양 반씩 닮은 위그르인

(2).내몽고內蒙古(현재 중국 영토 내몽고자치구)에 있다는 이른바 "고구려 성터"
만주국시대의 지도에 고려성(高麗城)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몽고학자 헤페를레가 발표
몽골지역에서 6개의 고구려 성터 발견
성터는 동몽골에서 바이칼 호수근처의 중서부 몽고지역에 걸쳐 


(3).중국 당나라때 예언(禮言)이 저술한 [범어잡명]
중국어 학습 자료에도 (상대적 언어)산스크리트어로 정렬
중문편배적범문학습자료中文編排的梵文學習資料에도 고려 무쿠리高麗畝俱理mu ku ri 라는 국명을 

중국인 스스로가 명백한 기록이 존재 한다 (한국의 고구려가 지방정권이면 당나라 덕종(德宗) 때에 편찬한 

『범어잡명(梵語雜名)』기록은 중국 당나라 역사는 가짜가 된다 

(4).

11세기 이전에 인도에는 역사는 있어도 역사서가 없었다
무굴 제국 시기에 형성된 문화는 인도 역사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특히 건축,문학,음악 등은 

힌두 문화와 터키-페르시아계 문화의 융합으로 오늘날 인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5).고대 비잔틴 역사에 Mouxri로 쓰여 있는 
“무쿠리(畝俱理; 木骨閭)”가
어느 나라인가에 관해 서양학자들 사이에 설이 분분했으나 
최근에야 이것이 “한반도 Korea”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6).당나라 덕종(德宗) 때에 편찬한 『범어잡명(梵語雜名)』에서도
당의 예언(禮言)이 저술한 [범어잡명]에는 "고려(高麗), 무구리(畝俱理)"로 되어 있고, 

그 아래 고대 산스크리트어가 표기되어 있다. 


(7).아직 소멸되지 않고 남아 연관 있는 
코리아,불가리아,헝가리아Hungária ,몽골리아, 
카레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남이있는 
루마니아 북서쪽 헝가리아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도시명칭은 헝가리 귀족 카롤리(Károlyi)에서 유래하였다 
러시아인를이 코리안을 칭할때 카레이스키라는것은 
이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당범양어쌍대집《唐梵兩語雙對集》卷1
http://www.cbeta.org/result/normal/T54/2136_001.htm
중국 사이트 

“무쿠리(畝俱理; 木骨閭)”
高麗畝俱理mu ku ri
高麗(畝俱理)

당나라 덕종(德宗) 때에 편찬한 『범어잡명(梵語雜名)』에서도
당의 예언(禮言)이 저술한 [범어잡명]에는 "고려(高麗), 무구리(畝俱理)"로 되어 있고, 

그 아래 고대 산스크리트어가 표기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상 매우 강력한 국가였던 고구려는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어떤 이름으로 알려졌을까? 

당의 예언(禮言)이 저술한 “범어잡명”에 의하면 고려(高麗, 즉 高句麗)는 범어 (산스크리트어)로 Mukuri라 하고, 

한자로는 무구리(畝俱理)이었다 한다. 이를 근거로 펠리오(Pelliot)은 마르코 폴로 여행기에 단 주석에서 “Cauli는 

한문의 Kao-li (高麗), 즉 코레아(Corea)이다. 코레아의 옛 이름은 고구려(Kao-kou-li)이다. 

코레아의 또다른 고대 명칭이 중앙 아시아에 알려졌으니, 범어의 무쿠리(mukuri)이며 티벳어로 무그리그 (mug-lig), 

그리고 15세기 중엽에 고리 (Gori)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전해진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펠리오는 또한 1253-55년에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롬을 다녀간 프랑스 수사 뤼브룩의 여행기에 대한 주석에서 

무쿠리가 고려를 뜻하며, 칭기스칸의 부관이었던 무칼리(Jalair Muqali, 木華黎)라는 이름도 ‘무쿠리’ 출신, 

즉 고려인이라 봐야한다고 했다. 

송나라의 맹공은 이 무칼리에 대한 기록에서 몽골의 “원훈인 그 태사 국왕의 몰흑조(沒黑助)라는 이름은 어릴 적 이름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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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명 16-04-27 10:44
   
테오피락투스가 628년경에 저술한 “역사(Historiarum)”는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담은 것으로 “아발스족은461-465년에
사비르족(the sabirs)을 서방으로 쫓아 낸, 5세기에 동방에서 온 위대한 정복 민족이었다.”라고 적고 있으며,
이들은 후에 돌궐족에게 패해 그들의 일부는 북위의 탁발씨 왕조에게 도주하고,
다른 일부는 무크리(Moukri)에게로 피난했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무크리는 말갈, 물길 등으로 일컬어지는
고구려인 것으로 서양학자들은 보고 있다.



한편 징기스칸의 몽골은 아랍인들에 의해 모골(Mogol)로 표기되었다.
후에 몽골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티무르 제국이 국호를 무굴(mughul)이라 했다.
이 또한 무쿠리(畝俱理)에서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3세기에 유대인 의사가 고대 시리아어로 쓴 세계사 연대기에서 ‘몽골’을 ‘무글라예(mughlaye)’로 표기했는데,
이는 고대 테벳어로 표기된 고구려의 이름 ‘무그리그(mug-lig)’와 아주 흡사하다.
북명 16-04-27 10:45
   
몽골이 ‘무쿠리(畝俱理)’ 또는 ‘모코리(木骨閭)’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일본 고어 ‘むくり, こくり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고어 대사전]에 의하면 ‘무쿠리(むくり)는 몽고, 코쿠리(こくり)는 고구려라는 뜻.
몽골.고구려가 우리 나라를 내습한 것으로부터) 1. 무서운 귀신, 2. 무리비도(無理非道)’ 등의 뜻이 있다.
그 바로 앞의 단어는 무쿠리(むくり)이며, 뜻은 ‘몽고’이다.
따라서 칭기스칸에 의해 크게 흥성한 대제국의 이름을 몽골이라 지은 사람은 금나라에서 항복하여 신하가 된 야율초재로
위대한 주신의 제국이었던 고구려의 또 다른 이름 무쿠리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고구려사 복원, 송동건 – 발췌]




고구리
http://blog.naver.com/nada5582?Redirect=Log&logNo=10104210466


http://blog.daum.net/sallyeojuseyo/4200379
북명 16-04-27 10:45
   
이 Mouxri(고구려)라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은, 비록 Taugast(중국 북제)에 비해 소수였으나 체격이 크고 건강했으며

위험에 대처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일상처럼 행해지는 혹독한 군사훈련으로 그 투지가 매우 높았다.


Avars - 유연, 4~5세기 시베리아에서 맹위를 떨친 강력한 유목제국
Turks - 돌궐, 6세기에 유연을 몰아내고 시베리아를 지배한 현재 터키의 조상국
Taugast barbarians - 중국 북제
India - 인도
Mouxri(Moukli, Mucri) -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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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비잔틴 역사에 Mouxri로 쓰여 있는
“무쿠리(畝俱理; 木骨閭)”가
어느 나라인가에 관해 서양학자들 사이에 설이 분분했으나
최근에야 이것이 “반도 Korea”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북명 16-04-27 10:46
   
고구려의 시조는 주몽이라고 알고 있으나, 고구려 탄생 설화에 수신(水神) 하백의 딸이라고 되어 있는 주몽의 어머니가
흉노의 시조라는 것은 잘 모르는 사실이다. 이 책 [고구려와 흉노]에 의하면, 고구려와 흉노는 같은 민족이다.
흉노는 아시아 대륙에 큰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영향력이 컸으나, 우리 역사에는 오랑캐로 등장하여
우리에게는 그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러나 흉노의 시조가 주몽의 어머니라는 것은 흉노를 더 이상 오랑캐 이방 민족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 [고구려와 흉노]에서는 현존하는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흉노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며,
고구려는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던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의 역사에도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일제의 식민사관과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한 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역사가 수 없이 상처입고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고구려와 흉노]에서 짚어주는 왜곡의 증거들이 결코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국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역사를 함께 알아야 우리의 바른 역사를 찾을 수 있다. 동·서양의 역사를 종합하여,
과연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었던 나라인가를 꼭 다시 검증해 보아야 한다.
중국,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는 아시아대륙 동쪽 끝 작은 나라의 역사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서양 자료에는 고구려가 유럽에까지 세력을 미쳤다는 것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고대 비잔틴 역사에 Mouxri로 쓰여 있는 “무쿠리(畝俱理; 木骨閭)”가 어느 나라인가에 관해 서양학자들 사이에 설이 분분했으나
최근에야 이것이 “반도 Korea”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 이것은 곧 고구려가 비잔틴 역사에 영향을 줄 만큼 세력을 뻗쳤다는 것이다.
이 책 [고구려와 흉노]에서는 고구려가 영향을 미쳤던 유럽의 지역에 관하여도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서양인과 씨름하는 벽화와 지도 등을 또 다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북명 16-04-27 10:46
   
고구려는 200년경에 중앙아시아를 영토로 편입했다. 이것을 ‘갱작신국(更作新國)’했다고 하는데,
3세기 후반에는 어엿한 국가 형태를 갖춘다. 유연(柔然) 혹은 연연으로 알려진 나라다.
304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서역으로 원정을 하여 발칸반도까지 진출하고, 5~6세기에는 비잔틴제국을 공략한다.
9세기까지 이들은 비잔틴제국의 변방 속주인 파노니아(Panonia)에 식민제국을 건설한다. 지금의 헝가리다.
가히 Pax Coreana라 할 만하다.

역사적 자료들을 토대로 책이 쓰여서, 다소 딱딱한 문체와 많은 한자가 어렵게 보일 수 있으나,
말로만 주장하는 역사가 아닌 구체적 자료를 토대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면에서는 충분히 흥미롭다.
우리가 직접 연구하기 어려운 중국에 있는 비문들에 일어난 역사 왜곡의 증거들도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는데,
중국이 글자의 모양을 변형하여 우리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바꿔놓은 증거들도 볼 수 있다.

저자 송동건은 우리의 잃어버린 고구려 역사를 찾고자 수십 년간 노력해 왔으며,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고구려 역사에만 매달려 [고구려와 흉노]를 완성하였다
북명 16-04-27 10:47
   
1. 부여(夫餘)와 ‘가수여(餘)’
2. 해본(忽本)과 양 ...
이 책 [고구려와 흉노]는 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쓰인 책이다. 즉, 영토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중국 대륙에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반도에 온 적이 없다. 그의 훈적비가 반도에 있다고 해서
광개토대왕의 활동 무대가 반도일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 가정은 틀렸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은 지금부터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100여 년의 연구는 이 틀린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부 틀린 것이다.
그렇다고 삼국이 반도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한족(漢族)은 원래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도로 올 수가 없다.
고대사회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묘가 도굴이나 파손을 피하기 위해서 반도에 있은 삼국은 조상 묘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그나마도 백제의 왕릉은 반도에 하나도 없다. 무령왕릉으로 이 논지를 반박하겠지만,
소위 무령왕릉은 사마왕의 능이지 무령왕의 것은 아니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포괄적으로 쓰이는 것은 한자(漢字)의 자형과 뜻을 고쳐 놓는 것이다.
고대의 중국 정사(正史)에서 우리나라와 연관된 인명이나 지명을 제대로 쓴 것은 없다.
유일한 예외는 ‘비류(沸流)’ 정도일 뿐이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신라성(新羅城)’이 나오지만 반도에는 ‘신라성’은 없다.
따라서 반도에서 신라성을 찾는 것은 헛수고다. 지금의 복건성 천주(泉州)에는 아직도 신라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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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비문]에는 ‘막신라성(莫新羅城)’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반도에는 없는 것이다.

중국 정사는 삼국의 왕들이 중국 왕조로부터 봉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적어도 고구려와 관련해서는 그렇다.
고구려는 중국의 남북에 황제를 번신(藩臣)으로 거느렸다. 기자조선부터 그러했는데
기자조선이나 고구려는 번병(藩屛)을 번(藩)이라는 용어 대신에 ‘장(?)’이라고 불렀다.

고구려는 200년경에 중앙아시아를 영토로 편입했다. 이것을 ‘갱작신국(更作新國)’했다고 하는데,
3세기 후반에는 어엿한 국가 형태를 갖춘다. 유연(柔然) 혹은 연연으로 알려진 나라다.
304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서역으로 원정을 하여 발칸반도까지 진출하고, 5~6세기에는 비잔틴제국을 공략한다.
9세기까지 이들은 비잔틴제국의 변방 속주인 파노니아(Panonia)에 식민제국을 건설한다. 지금의 헝가리다.
가히 Pax Coreana라 할 만하다.
(/ 머리말 중에서)

수(隋)가 망하자 수 많은 인걸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 중의한 면에 이밀(李密)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고구려 5부의 한 분 부(部)의 대가(大加)였다. 끝내 당(唐)에 반란하다가 결국 잡혀 죽는다.
이밀의 부(部)에서 가신으로 있었던 이적(李勣)의 간청으로 이밀의 묘를 쓰는데 묘지명은 위징(魏徵)이 찬(撰)한다.
그 시작은 이밀을 “악와용종(渥龍種)”이라 부른다. "악와“는 [사기]악서, [한서]에악지에서 천마가 나온 곳이라 한다.
그러나 다른 어느곳에서도 ”악와“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천마가“의 천마(天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천마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져 있는데 앞의 것은 주몽의 어머니를, 그리고 뒤의 것은 주몽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말 말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당초(唐初)에 당이 [한서]와 [후한서]를 개편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천마(天馬)를 정말 말로 만든 것이다. 천신(天神)이 주몽 모자를 이적을 행하여 땅에 내려 보낸 것이다.
북명 16-04-27 10:47
   
우리는 여기서 우리 국명 ‘한국(韓國)’을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역사상 우리나라는 한번도 ‘한(韓)’이라는 국명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삼한’은 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남부에 있었던 것이다. 또 정작 한국에는 없는 ‘한강(韓江)’이 앞서 말한 신라현지(新羅縣地)였던 복건성의 장정현에서
남하하여 광동성의 징해(澄海)에서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우리가 ‘한국(韓國)’이라는 국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 말기에 일본의 입김이 증대되어
고종(高宗)을 황제로 격상시키면서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는 국호로 바꾸면서다.
여기에는 그들의 오랜 음모가 숨어 있다.
명분은 ‘한국(韓國)’이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자율권(自律權)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을 그들의 세력권에 편입시켜 궁극적으로 합병을 하겠다는 의도다.
그들의 이런 흉계는 역사의 왜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삼한이 반도에 있었다는 이론도 일본이 개발한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기자(箕子)’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들이 보는 조선사(朝鮮史)는 삼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모든 조선은 설화(說話)쯤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箕子)’의 후손으로 중국에서 왕씨를 비롯하여 이씨, 선우씨 등 많은 역사적 인물이 확인되고 있다.
또 기자(箕子)의 ‘홍범구주(洪範九疇)’ 사상은 청나라 말엽까지 국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청나라 말의 고위 관료 공자진(自珍)은 “중국이 우(禹)와 기자(箕子) 이래 식화(食貨)를 똑같이 중하게 여겨 왔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삼종결정의’를 논하고 있다. 또 그의 시에 ‘고구려’와 관련된 것이 있는데,
그 주(注)에 1812년에 조선이 글을 한 편 올렸는데 그 내용에 고구려의 세계(世系)에 관해 틀린 것이 있어
지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선이 가지고 있던 우리 역사가 틀린 것이다.
북명 16-04-27 10:48
   
[일본서기] 신공 섭정 전기 10월조에 ‘삼한’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현대판의 주에는 “보통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4세기에 정립 상태에 들어간 백제, 신라, 고구려의 삼국이다.”)라고 한다.
신공 섭정 전기를 어째서 4세기 삼국 정족(鼎足)시대의 사건으로 보는지는 의문이다.
보다 오래된 [일본서기통증]의 주는 “생각건대 [후한서] [동이전]에 백제, 고려 외에 따로 삼한을 다루고 있다.
[당서] [동이전]의 해동 삼국은 신라, 고려, 백제다.
[동국통감]에서는 분명히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일컬어 삼한이라고 한다.
이는 즉 백제, 고구려, 신라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후한서]와 [위지]에는 ‘한(韓)’이라고만 되어 있고,
그 중에 삼종이 있다고 했을 뿐 ‘삼한전’이나 ‘삼한’이라는 표현은 없다.
나아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묶어서 삼한이라고 한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마땅히 이들은 삼국으로 불려야 한다. 더욱이 시대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삼한론’을 정당화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논리적이라 할 수 없다. [광개토대왕 비문]의 내용에 삼국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고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서열이 있다.
조선의 학자들이 일본에 관해 그저 왜(倭)라고만 치부하고 무시하는 동안,
그들은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그들 나름의 우리 역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조선시대만 탓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국사학계도 이들이 가르쳐 온 학설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다.
역사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며 미래의 진로다.
북명 16-04-27 10:48
   
한국(韓國)이라는 국명은 당장 바꾸어야 한다. 일제(日帝)의 잔재를 없앤다면서 조선을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친
이 일본의 흉계에 대해서 아직 아무 논의도 없다.

묘청의 난이 일어난 것은 중국 땅의 북송(北宋)에서 1035년에 있었던 것을,
[고려사]는 그보다 정확히 100년 후인 1135년에 반도 고려에서 있은 것처럼 조작해 놓은 것이다.
이 사실은 [일본서기]가 60년 즉 1주갑(周甲)을 기준으로 상하로 옮겨 실제 사건이 있었던 해를 조작해 놓은 것과 같이,
[고려사]는 100년의 연차를 두고 조작해 놓은 것이다.
100년 전에 북송의 서경(西京)에서 고려인이 일으킨 난을 100년 후에 김부식이 평정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신채호 선생이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분통해 했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묘청이 북송의 ‘서경(西京)’에서 난을 일으켰으니 이 서경(西京)은 곧 ‘평양(平壤)’이다.
“묘청이 송(宋)에서 난을 일으켰다.”는 또 하나의 전거(典據)는
Le P. Mathias Tschang, S. J.가 편찬(編纂)한 Synchronismes Chinois가 있다.
이 책은 광서(光緖) 30년(1904)까지를 정리하고 있다.
북명 16-04-27 10:48
   
보다 확실하게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이 중국의 장안성(長安城)이었다는 결정적 자료가 있다.
당나라 초기에 장초금이 편찬하고 옹공예가 주(注)한 [한원(翰苑)]은 정말 소중한 자료가 담긴 책이다.
특히 [고려전]의 주(注)에 인용된 [고려기]라는 책은 누가 편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
한원] 본문의 “오골 가파른 산(烏骨巖)) 두 봉우리가 솟아 있으니 한나라에 공을 세웠다(二峯而功漢).”라는 구절에,
[고려기]를 인용하여 주석(註釋)을 달고 있다. 인용된 [고려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골산은 (고구려)국의 서북에 있으니, 동이(東夷) 말로 지붕(屋山)이라고 한다. 평양(平壤) 서북 700리에 있다.
동서에 두 개의 산이 있는데, 깎아지른 절벽이 천인(天)이나 된다. 산 아래서 정상까지는 모두 창석(蒼石)으로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그 험준함이 형문(荊門) 삼협(三峽)을 닮았다. 산 위에는 초목이 별로 없으며 오직 푸른 소나무만 자란다.
길게 뻗은 줄기는 구름에 닿아 있다. 고려는 남북 협구(口)에 단을 쌍아 성을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말하자면 이번(夷藩)의 중추가 되는 추요(樞要)지이다.”)

이 글에는 오골산이 평양의 서북 700리라 했으니, ‘평양(平壤)’은 ‘오골산(焉骨山)’에서 동남(東南)으로 700리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골산(焉骨山)’의 위치가 평양을 찾는 준거가 된다.
20세기 초 돈황에서 수많은 고대 필사본이 출토된 바 있다.
그 가운데 당초에 필사한 것으로 알려진 [서주지잔권(西州志殘卷)]이 있다. 몇 장 안 되는 이 [잔권]에 ‘오골산’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북명 16-04-27 10:49
   
서주(西州)는 당 태종이 고창국(高昌國)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설치한 주(州)다.
‘오골도’에 관한 간단한 설명에 의하면, “오골도는 고창현계(高昌縣界)의 북, 오골산에서 출발하여 정주(庭州)를 향하여 가는데,
거리는 400리(里)다. 수초(水草)가 많다. 준험(峻險)하여 큰 바위가 많다. 오직 사람만 통과할 수 있으며,
말이 지나면 많은 손상을 입는다.”)
오골산 또는 오골성은 정주(庭州)에서 남으로 400리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골성(焉骨城)’은 돈황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다. 정주(庭州)는 카라코룸(Karakolum) 즉 화림(和林)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정주(庭州)에서 남으로 400리 거리에 있으면서 형문(荊門) 삼협(三峽)과 닮은 험한 산세를 가진 곳이 오골성(焉骨城)이다.
남북에 두 개의 성이 설치되어 있다. 이 오골산에서 동남으로 700리 거리라면 반도의 평양일 수는 없다.
이수(里數)의 단위를 어떻게 계산하든지 간에 700리 거리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또 고창국(高昌國)은 장안의 서북에 위치해 있었다. 이들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평양성(平壤城) 곧 장안성(長安城)’일 뿐 아니라
‘장안성(長安城) 곧 평양성(平壤城)’인 것이다.

위서(魏書)]태조기(太祖紀) 11월(月)조에 노양왕왜노(魯陽王倭奴)란 이름이 나온다.
이 왜노(倭奴)는 왜국도 아니고 해적질을 하는 왜도 아니다. 환현의 일당도 물론 아니다.
이렇게 보면 왜(倭)라는 개념은 문화개념이다.
북명 16-04-27 10:49
   
참고로 진(晉) 경제(景帝)는 사마의의 아들로 사후에 추존된 인물이다.
그의 후비인 경헌양황후(景獻羊皇后)는 고구려인으로 진의 태부를 지낸 양호(羊祜)의 누이다.
진(晉)을 세워 무제(武帝)가 되는 사마염(司馬炎)은 경헌양황후의 조카다. 이렇게 매 왕조마다 고구려인은 언제나 고위직에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이 책 [고구려와 흉노]는 민족 중심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쓰인 책이다.
즉, 영토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중국 대륙에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반도에 온 적이 없다. 그의 훈적비가 반도에 있다고 해서 광개토대왕의 활동 무대가 반도일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 가정은 틀렸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은 지금부터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100여 년의 연구는 이 틀린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부 틀린 것이다. 그렇다고 삼국이 반도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한족(漢族)은 원래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도로 올 수가 없다.
고대사회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묘가 도굴이나 파손을 피하기 위해서 반도에 있은 삼국은 조상 묘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그나마도 백제의 왕릉은 반도에 하나도 없다.
무령왕릉으로 이 논지를 반박하겠지만, 소위 무령왕릉은 사마왕의 능이지 무령왕의 것은 아니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포괄적으로 쓰이는 것은 한자(漢字)의 자형과 뜻을 고쳐 놓는 것이다. 고대의 중국 정사(正史)에서 우리나라와 ...
송동건 [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법학사)
뉴욕대학교(NYU) 행정대학원 졸업(MPA)
뉴욕대학교 대학원 졸업(행정학 Ph.D.)
한양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교수
UNESCO 지원 아시아-태평양지역 청년지도자 현장연구 공동회장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교수(학과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강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박사과정 강사
한국행정학회 이사
5급승진 행정고시 출제위원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북명 16-04-27 10:50
   
북명 16-04-27 11:18
   
이상 살펴 본 바로는 치우라는 이름과 모쿠리라는 명칭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임을 알 수 있다.
기원 전에는 치우가  기원 후에는 모쿠리가 이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한반도는? 하는 부류들이 잇다. 진정한 실체를 밝히는 데 우리가 중요한가?
세상은 동이가 주류가 되어 질서를 만들어왔고 우리는 그 동이의 후손이다.
북방민족은 피가 다 같다. 카자흐스탄에서도 탱그리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스탄계열은 다 비슷하지 싶다.
켈트족들은 치우가 자신들의 영웅이고 몽골에서는 고구려가 자신들의 정신적지주인거 같다.
그러나 내가 볼때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반도로 좁혀짔지만 임진왜란을 근거로 볼때 주인공은 지금 반도에 있는 사람들이다.
임란이 유럽과 아시아의 대전이든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든 카자흐스탄도 몽골도 임란을 자신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명 16-04-27 11:56
   
과거 역사스페셜에서 고구려성 탐험을 떠난적이 있죠... 몽고지역근처에 고려성이 있다고 원주민이 말했죠...
둔황석굴 있는곳에도 고려성이 있다는 말도 있었죠... 기원 후에는 세상 모든 곳에 모쿠리라는 명칭이 도배됩니다.
물론 나라마다 발음이 달라 아직도 안밝혀진 것들도 많겠죠...
조선과 관련해서는 중국도 관련이 있고 아메리카도 관련이 있는 듯 보이기는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이해못할 설명들이 간혹 나오거든요... 하나의예로 이순신이 초기 부임했던 녹둔도는 러시아 말로 사할린입니다.

만약 이와같은 말들이 빈말이 아니라면 조선이 한반도로 축소된거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모쿠리라는 역사를 갈기갈기 해체하려는 의도가 군데군데 보이니까요...
꽐랄라 16-04-27 13:00
   
글설리
레종프렌치 16-04-27 18:45
   
인류의 역사는 한민족의 문명개척사임.
krell 16-04-27 23:00
   
정말 동서양의 역사학자들이 합심하여 한민족의 역사를 파헤쳤으면 좋겠습니다.  신화로 치부하기엔, 야사로 치부하기엔 기록들이 너무 무궁무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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