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1. 조공 = 공무역
2. 당시에는 근대적 속국개념이 개입되지 않은 형식적 관계정도
라고 낮추시는데
문제는
왜 그런 형식적 관계를 맺게 되었는가는 아무도 떠들지 않고 있죠.
그 이유는 이겁니다.
중화주의, 화이관, 중심-주변적 관계
누가 강하냐 약하냐는 사실 일시적인 이야기일뿐이고 이런건 오래가지 않지만
어쨌거나 대륙의 왕조들은 자기가 중심, 본질이라고 주변국에 인식시키고 납득시키는데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의 세계로서 중심부인 대륙과 주변부인 번국들의 질서가 정의되고 실질적 국력여부와는 관련없이
이러한 체계를 스스로가 납득이 가도록 만든건 분명한 역사적 실패 맞습니다.
조선이 조공무역을 1년에 3회를 해서 우리가 승리자다? 라는 인식은 조금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3년에 1회를 할걸 1년에 3회를 해서 얻은 그 이익들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명분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개는 어설픈 실리주의를 빙자하면서 명분을 내어주고 실리를 취한다라고 하는 본인만의 함수가 있는듯함)
사실 제일 강력하고 오래 살아남는건 그 명분입니다.
천자, 시민의 추대를 받은 일인자. 이러한 것들이 겉보기에는 허황되어 보이지만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하기에는 막대한 자원과 끈기가 필요한겁니다.
(유럽역사에서도 그 로마제국이라는 환상이 무너진 사례는 나폴레옹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봐야 하죠.
왜 한국사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중심, 천하라고 자처하지 못했을까?
왜 중국에 연결된 부속 세계라는 인식속에서 국력이 강하다고 하는 지극히 50년단위로만 생각하는 단기적 시야로만 볼까?
이 명분과 형식적 관계가 진짜로 위험해지는 시기는 구한말에 와서
조선과 청의 관계를 서양국가들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서 아무 생각없이 '중국속국'이라는 정의를 붙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조공이라는 형식행위만 있을뿐이고 실질은 다르다? 라고 우겨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중국중심의 세계에서 자의로, 타의로 이탈하면서 소박한 에도시절을 보내다가 서양문물을 접하게 되면서 서양중심적인 세계로 근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아각성에서 나온것이 '탈아론'이고요.
그 뒤의 일본역사가 침략적이다라는 도덕적 비평을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듯이 어쨌거나 그들은 스스로가
중국과 떨어진 세계라는 어필을 했었고 지금도 이러한 이해가 세계인들 사이에서는 먹혀 들어갑니다.
결국 요지는 이겁니다.
'명분을 소홀히 하면서 얻어야 하는 실리라는건 대체로 자기만의 정신승리일것이다'
현대에는 조공관계가 있을수도 없고 있지도 않으니까 과거의 조공관계를 놓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건 상관없지만 그 조공을 놓고 근대적 속국으로 해석을 한건 바로 그 근현대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걸 자꾸 잊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과거에도 조공도 형식적 관계도 맺어서는 안되었을 일입니다. 그 실리라는것이 뭔지는 모르겟지만요.
역사는 반복됩니다. 허황된 실리는 실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명분을 잡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