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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01 22:42
[세계사] 청실록 삼전도기사, 번역 및 해설
 글쓴이 : RaMooh
조회 : 2,341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연려실기술, 여러 일기 등은 동국의 입장에서 기술하였고, 청실록 등은 청나라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라, 기록하는 데에 있어 관심을 두는 점이 다르다. 즉, 서로 비교하여 보완하면 그날의 일을 더 자세하게 그릴 수 있다.


이 삼전도에 관한 기록 중에서, 가장 신뢰성이 높은 기록은 승정원일기이다. 동국의 승지들이 현장에서 수시로 직접 기록한 것이라 비교적 자세하다. 다른 기록들은 다 시간이 지난 후에 기록된 것이라 오류나 왜곡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장면에서 상충한다면 승정원일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삼전도는 치욕의 역사가 맞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교육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치욕은 치욕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치욕은 아니다. 삼전도에서는 청태종의 황제즉위식이 거행되었고,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하였다. 승정원일기 등의 우리나라 기록보다도 더 확실하게, 이 청실록이 삼전도의 진실을 알려준다. 아무리 발뺌을 하고 무엇이라 변명하더라도, 강단학계가 거짓말을 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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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實錄, 崇德二年 正月 三十日 1637년 - 출처: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庚午朝鮮國王李倧以漢江口濱海之地、及江華島城既失妻子及群臣盡被俘獲身復受困南漢。旦夕城陷八道人民流離四散各道援兵皆被擊敗宗社將覆無計可免上降敕曉諭赦過宥罪許其歸降。

於是棄兵器服朝服率文武群臣獻上明國所給敕印自南漢山城來朝見禮臣於漢江東岸三田渡地方築壇設黃幄畢上於辰刻出營旗纛森列奏樂渡漢江。

登壇端坐設鹵簿如常儀將士皆擐甲列隊李倧率文武群臣離南漢山五里許。步行來朝。上命戶部承政英俄爾岱馬福塔等。迎於一里外指示禮儀引至儀仗下立。

上離座。率李倧及其諸子文武群臣。拜天。行三跪九叩頭禮畢。上還座李倧率群臣伏地請罪求我國諸臣代奏於上曰。皇帝天心赦臣萬罪生已死之身。存已亡之國俾得重立宗社緣臣罪過多端故加之罰今臣服罪。來謁皇上。自茲以後。改過自新世世子孫不忘厚澤。於是我國諸臣以其言轉奏。上諭曰。朝鮮國王。既知罪來降朕豈有念舊惡苛責之理今後一心盡忠不忘恩德可也。前事毋再言及。

李倧及其群臣。聞言大悅曰。皇上萬歲恩德小邦不勝頂戴於是令李倧朝見。禮臣贊禮李倧在前。諸子。及群臣。以次列於後行三跪九叩頭禮畢復位禮部官引至儀仗下立奏請李倧班次上諭曰以威懾之不如以德懷之朝鮮王雖迫於兵勢來歸亦一國之王也命近前坐於左側禮部官從儀仗外引王由北向入至壇下東坐西向

其次左側則和碩親王多羅郡王多羅貝勒等依次坐李倧長子李山王坐於貝勒之下右側和碩親王多羅郡王。多羅貝勒等依次坐李倧次子李淏三子李㴭亦坐於貝勒之下坐定

大宴畢江華島所獲李倧妻子子婦及群臣妻子俱行三跪九叩頭禮上命盡還李倧妻子子婦及。群臣家屬

賜李倧黑貂袍套雕鞍馬賜王妃及第三子李㴭黑貂皮套大臣金流土等各賞貂皮套

李倧率眾謝恩行兩跪六叩頭禮畢令李倧及群臣各與其妻子子婦相見皆相抱慟哭曰稍緩數日我等皆為灰燼矣今日幸遇皇帝寬恩普天均被我等方得完聚因哀痛弗止。英俄爾岱、馬福塔等勸止之。上命英俄爾岱馬福塔、送李倧妃、及其第三子、並家口七十六人。群臣妻子家口百六十六名。入王京城。惟留長子山王、次子淏、為質。上於申刻。還營

大清太宗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文皇帝實錄卷之三十三]

경오(1월30일), 조선국왕 이종이 한강입구 바닷가의 땅인 강화도의 성에서 이미 처자를 잃었고, 신하들도 다 포로의 몸이 되어 (정묘호란에 이어) 다시 남한의 곤란함을 받았다. 아침저녁으로 성이 함락되어 팔도인민이 정처 없이 떠돌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각 도의 원병이 모두 공격을 받고 패하여서, 종사가 장차 무너져도 면할 계책이 없었다. 청태종이 칙서를 내려 효유하여, 과를 면해주고 죄를 용서하여 그 귀강(내려와서 돌아가는 것=歸京, 歸鄕)을 허락하였다.

이에, 병기와 군복을 버리고 조복으로 문무군신을 이끌고, 명나라가 주었던 조서와 도장을 헌상하면서, 남한산성으로부터 와서 조현하여 예신하였다. 한강 동쪽 언덕 삼전도 지방에 단을 쌓고 누런 휘장을 설치하기를 마쳤다. 청태종이 진각(아침 8시)에 군영을 나와 기독을 촘촘히 늘어세우고 음악을 연주하며 한강을 건넜다.

단에 올라 바르게 앉아, 노부를 설치하고 한결같이 의장사가 모두 갑옷을 입고 대열을 이루었다. 이종이 문무군신을 이끌고 남한산을 떠나, 오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서 내조했다. 청태종이 호부승정 영아이대와 마복탑 등에게 명하여, 일리 밖에서 맞이하게 하였고, 지시하기를 예의로서 의장을 아래로 세우고 인도하여 이르게 하였다.

청태종이 자리를 뜨고, 이종과 그의 여러 아들과 문무군신을 이끌어, 하늘에 절을 하는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쳤다. 청태종이 자리로 돌아오자, 이종이 이끈 군신이 땅에 엎드려 청죄하였고, 구해달라며 청나라 여러 신하가 청태종에게 대신 아뢰었다. 가로되, “황제는 하늘같은 마음으로 신하의 만 가지 죄를 용서하여 이미 죽은 몸을 살리고, 이미 망한 나라의 성책을 존속시키어 종사의 연을 무겁게 세워 얻습니다. 신하의 죄과가 다단하여 벌을 가하여야 하나, 지금 신하가 죄에 대한 벌을 받고자 황상을 찾아뵈었으니, 이때 이후로는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도록 하여, 세세자손이 두터운 은덕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에, 청나라 여러 신하가 그 말을 전하여 아뢰었다. 청태종이 깨우쳐 가로되, “조선국왕이 이미 죄를 알고 내려왔으니, 짐이 어찌 구악을 유념하여 가혹하게 책망하는 이치를 쓰겠는가? 지금 이후로는 일심으로 충성을 다하여 은덕을 잊지 않으면 된다. 앞의 일은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이종과 그 군신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가로되, “황상의 만세은덕을 소방은 머리에 이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 이에 이종이 조현하여 예신하고 찬례하게 하였다. 이종이 지나간 후, 여러 아들과 군신이 차례로 늘어서서 뒤이어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치자, (청태종이) 자리로 돌아갔다. 예부관이 의장을 아래로 세우고 인도하여 이르러서, 이종의 반차를 주청하였다. 청태종이 깨우쳐 가로되, “위엄으로 두렵게 하는 것은 덕으로 품는 것만 같지 않으니, 조선왕이 비록 병세에 몰려서 돌아온 것이지만, 역시 일국의 왕이다.” 가까운 앞쪽 좌측에 앉히도록 명하였다. 예부관이 의장의 밖을 따라 왕을 인도하여, 북향하여 들어가서 이르러 단의 아래 동쪽에 서향하여 앉았다.

그 다음 좌측에 즉, 화석친왕 다라군왕 다라패륵 등의 다음에 이종의 장자 이--가 앉았다. 산왕-가 패륵의 아래 우측에 앉았고, 화석친왕 다라군왕 다라패륵 등의 다음에 이종의 둘째인 이호가 앉고, 셋째인 이묘가 역시 패륵의 아래에 앉아 좌정하였다.

대연을 마치고, 강화도에서 붙잡은 이종의 처자, 자부와 군신의 처자까지 모두가 삼궤구고두례를 행하였다. 청태종이 이종의 처자, 자부와 군신의 가속까지 다 돌려보내도록 명하였다.

이종에게 흑초포투와 독수리 안장을 얹은 말을 하사하고, 왕비와 셋째 이묘까지 흑초피투를 하사하고, 대신 김류 -토 등에게 각각 초피투를 상으로 주었다.

이종이 무리를 이끌고 은혜에 감사하는 양궤육고두례를 행하고 마쳤다. 이종과 군신에게 각 그 처자와 자부를 서로 만나보게 하자, 모두가 서로 안고 통곡하며 가로되, “며칠만 지체했어도 우리 모두는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 행운을 만나 황제의 너그러운 은혜가 온 세상에 퍼져 우리들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게 되었다”며, 애통함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영아이대와 마복탑 등이 울음을 그치길 권하였다. 청태종이 영아이대와 마복탑에게 명하여, 이종의 비와 셋째 아들을 보내라 하였고, 아울러 76인의 가솔들과 군신의 처자와 가솔 166명을 왕경성에 들어가게 했다. 다만, 장자 --과 산왕 -와 둘째 아들 호를 머무르게 하여 인질로 삼았다. 청태종이 신각(오후 4시)에 군영으로 돌아왔다.

대청 태종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조정륭도현공문황제 실록 권지삼십삼


[庚午朝鮮國王李倧以漢江口濱海之地、及江華島城既失妻子及群臣盡被俘獲身復受困南漢。旦夕城陷八道人民流離四散各道援兵皆被擊敗宗社將覆無計可免上降敕曉諭赦過宥罪許其歸降。

한강입구 해안지방과 강화도성이 함락되었고 조선왕의 처자(비빈), 여러 대신들이 포로로 잡혔고, 남한산성에서 곤궁한 형세에 처해서 언제 성이 함락될지 모르고, 팔도의 백성이 사방에 흩어지고 각도의 구원병이 모두 격파되어 패하여, 종사가 장차 무너져도 방책이 없었다. 황제가 조선국왕 이종(인조)에게 죄를 사면하고 과오를 용서하는 조칙을 내리고 항복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경오(1월30일), 조선국왕 이종이 한강입구 바닷가의 땅인 강화도의 성에서 이미 처자를 잃었고, 신하들도 다 포로의 몸이 되어 (정묘호란에 이어) 다시 남한의 곤란함을 받았다. 아침저녁으로 성이 함락되어 팔도인민이 정처 없이 떠돌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각 도의 원병이 모두 공격을 받고 패하여서, 종사가 장차 무너져도 면할 계책이 없었다. 청태종이 칙서를 내려 효유하여, 과를 면해주고 죄를 용서하여 그 귀강(내려와서 돌아가는 것=歸京, 歸鄕)을 허락하였다.


***해설=> 항복을 받아준다는 것은 이미 그 죄과를 용서해준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죄과를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면, 항복을 받아주지 않고 멸절하면 되는 것이다. 항복을 받아주면서 죄과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으로서, 위계(僞計)이다. 즉, 죄과를 용서하고 항복을 허락한다는 것은, 중복이 되어 문법상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죄과를 용서하고 귀향(歸鄕)하는 것을 허락한다가, 문법상으로도 뜻으로도 맞는 말이 된다.


降은 내리다와 항복하다의 뜻이 있다. 항(降)은 상대방의 권위나 뜻에 순응하는 것으로서, 원래는 하늘의 뜻에 순응한다는 의미였으나, 의미가 확장되어 인간들 사이에서도 통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하늘의 뜻에 의해 일으키는 것이고,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도 하늘의 뜻이 자기에게 있었기 때문이라 믿었다. 즉, 상대방에게 굴복하는 것은 하늘에 굴복하는 것과 같게 된다. 그리고, 항복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그 모양이 전혀 다를 수 있다. 남남이 서로 다투었다가 항복하는 경우와, 형제끼리 다투었다가 형이 동생에게 항복하는 경우, 아버지와 아들이 다투었다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항복하는 경우는 그 모양새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강(降)은 원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서, 하늘의 뜻이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발음이 다르면 그 뜻도 다르게 쓰이기는 하지만, 깊이 따져보면 그 뜻이 서로 다르지 않다. 하늘의 뜻에 자신이 순응하는 항이나, 하늘의 뜻이 자신에게 내리는 강이나, 결국은 같은 의미가 된다. 歸降은, 하늘의 뜻이 청태종에게 있으니, 귀항으로 발음하면 항복의 의미가 되어 청태종에게 굴복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귀강으로 발음하면 내려가다의 의미가 되어 청태종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


於是棄兵器服朝服率文武群臣獻上明國所給敕印自南漢山城來朝見禮臣於漢江東岸三田渡地方築壇設黃幄畢上於辰刻出營旗纛森列奏樂渡漢江。

이에 경오일 (이종이) 병기를 버리고 조복朝服(t신하가 조정에 나갈 때 입는 옷)을 입고 문무대신들을 이끌고 명나라가 준 인장을 헌상하며 남한산성에서 나와 황제를 배알하려고 하였다. 예부의 관원이 한강 동쪽기슭 삼전도 땅에 단을 쌓고 황악(황제의 군막인 듯)을 설치하였다. 황제가 진각(아침 9시경?)에 군영을 나와 기치(깃발)가 늘어서고 주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한강을 건넜다.


이에, 병기와 군복을 버리고 조복으로 문무군신을 이끌고, 명나라가 주었던 조서와 도장을 헌상하면서, 남한산성으로부터 와서 조현하여 예신하였다. 한강 동쪽 언덕 삼전도 지방에 단을 쌓고 누런 휘장을 설치하기를 마쳤다. 청태종이 진각(아침 8시)에 군영을 나와 기독을 촘촘히 늘어세우고 음악을 연주하며 한강을 건넜다.


***해설=> 인조가 조복을 입은 이유는, 신하인 인조가 임금인 청태종을 찾아뵙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조가 용포를 입는 것을 동국에서는 당연시하려 하였지만, 청나라의 요구로 조복인 남염의를 입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인조가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이라 한다. 동국에서는 용포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 청나라가 계속 인조의 존경(尊敬)을 깎아내리려 하였다는 점, 인조가 첫 번째 삼배고두를 하고 나서 ‘천은(天恩)이 망극하다’고 말한 점, 첫 번째 삼배고두의 대상이 청태종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인조가 죄를 지은 대상은 청태종이 아니라 하늘이다. 천토(天討)를 부른 것은 천명을 거슬렀기 때문이며, 청태종을 거스른 것은 천명을 받은 청태종을 거스른 것으로서, 하늘에 죄를 지은 것이다.


조현(朝見) : 신하(臣下)가 조정(朝廷)에 나아가 임금을 뵘

현신(現身) : 1.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처음으로 뵘 2. 옥송(獄訟)에 관계된 원고와 피고가 법정 기일 안에 관가에 출두함 3. 도망했던 노비(奴婢)나 죄수가 관가에 자수하여 옴 4. 부처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 몸을 나타냄

예신(禮臣) : 신하(臣下)가 병들거나 곤궁(困窮)할 때에, 임금이 의약(醫藥)이나 물품(物品)을 주는 일


조현은 보통 ‘아랫사람인 신하가 조정에서 윗사람인 임금을 뵙는 것’을 가리키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조정에 나타남’을 가리켜서, 반드시 상하관계가 고정되어 있는 단어가 아니다. 見(사동사, 나타내다)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글자가 現(자동사, 나타나다)인데, 역시 상하관계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임금은 조정에서 상주하고 신하는 멀리에서 조정에 나타나는 것이라, 조현이라는 단어가 ‘신하가 임금을 조정에서 뵙는 것’이라 말하지만, 반드시 신하가 임금을 뵙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즉, 임금 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어서, 그 존재가 조정에 나타나 임금을 만나는 것도 조현이 되는 것이다.


예신(禮臣)을 예부관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글에서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이 있을 때, 무조건 같은 뜻으로 번역하는 것은 정말 큰 잘못이다. 中國과 中華와 華夏와 中朝와 中原 등을 모두 다 중국(中國)으로 번역하는 것이 잘못이듯, 上과 皇帝와 皇上을 모두 같은 뜻으로 번역하는 것, 禮臣을 禮部官이라 번역하는 것 등은 잘못이다. 같은 글에서 禮臣이라는 단어가 두 번, 禮部官이라는 단어가 두 번 쓰였는데, 예신은 ‘朝見禮臣, 朝見禮臣贊禮’로, 예부관은 ‘禮部官引至~, 禮部官從儀仗外引~’으로 써져있어, 예신이 예부관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예신(禮臣)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존재한다. 즉, 예신은 특정한 어떤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인 것이다.


언뜻 ‘한국’과 ‘Korea’가 같은 객체를 가리키는 같은 의미의 단어들로 보이지만, 그 의미가 분명히 다르다. 한국은 우리나 동양권의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부르는 호칭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남한만을 또는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Korea는 서양에서 우리를 부르는 호칭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남과 북을 명시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역대한국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즉, 요즘도 그러한데, 한자로 써진 글에서는 그 글자가 다르면 더욱더 신중하게 의미 파악을 하여야 한다.


황악(黃幄)은 피륙을 여러 폭으로 이어서 빙 둘러치는 장막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제단의 위에 설치하여 병풍의 역할을 하는 휘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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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壇端坐設鹵簿如常儀將士皆擐甲列隊李倧率文武群臣離南漢山五里許。步行來朝。上命戶部承政英俄爾岱馬福塔等。迎於一里外指示禮儀引至儀仗下立。

황제가 단에 올라 바르게 앉았고, 의장을 상례에 따라 행하고 장수와 군병들이 갑옷을 입고 대열을 이루었다. 이종이 문무대신들을 이끌고 남한산성에서 걸어서 나와 내조하였다. 황제가 호부승정 英俄爾岱馬福塔에게 일리 밖에서 맞이하게 하였다. 예법에 따라 의장에 이끌려 아래에 섰다.


단에 올라 바르게 앉아, 노부를 설치하고 한결같이 의장사가 모두 갑옷을 입고 대열을 이루었다. 이종이 문무군신을 이끌고 남한산을 떠나, 오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서 내조했다. 청태종이 호부승정 영아이대와 마복탑 등에게 명하여, 일리 밖에서 맞이하게 하였고, 지시하기를 예의로서 의장을 아래로 세우고 인도하여 이르게 하였다.


***해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청태종의 숙소나 어좌(御座)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기 어려웠으나, 이 청실록이 쉽게 알려준다. 우리의 기록만으로는, 청나라의 군영이 삼전도에 있었고 그 군영 안에 단(壇)을 쌓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으나, 청나라의 기록에서는, 청나라의 군영과 청태종의 숙소는, 단이 있는 삼전도에서 물(한강)을 건너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단순히 항복을 받는 행위라면 청나라의 군영에 단을 쌓고 그 곳에서 받으면 되는데, 일부러 강을 건너 삼전도라는 좁은 장소를 택하여 그 곳에 단을 쌓았다는 것은, 단순한 항복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삼전도의 단은 높은 곳에 황제의 어좌를 올려놓기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어떤 제례를 행하기 위해 쌓은 제단이 되는 것이다. 또, 굳이 단을 삼전도에 쌓은 것은 비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청태종의 숙소나 어좌가 있는 군영은 삼전도에서 강을 건너야 하는 곳에 있었고, 단 위의 어좌는 제례를 위해 따로 설치한 것이 된다. 청태종은 예식이 시작할 때까지 단 위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기록에서 계속 의장이나 예식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항복식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부(鹵簿), 의장사(儀將士), 의장(儀仗), 예신(禮臣), 찬례(贊禮), 예부관(禮部官), 주악(奏樂) 등은 특별한 국가적 행사가 열리는 것을 말한다.


이 청실록에서도 인조의 이름을 막 언급하는 등, 청나라가 인조의 존경을 깎는 행위를 계속 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존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나름 예의를 지키려 한다. 마중을 나가는데, 이는 손님에 대한 예의이지, 패자(敗者)를 호송하는 모습이 아니다. 儀仗下立은 의장을 아래로 세우는 것으로서, 군대에서 기수가 경례를 하거나 특정한 의사를 표현하는 동작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인조는 나름의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신분이 가장 높고, 자기를 위한 행사이고, 상대방은 항복하러 오는 패자이고, 틈만 나면 상대를 깎아내리려 하는데, 단을 쌓고 노부를 설치하는 등의 모든 예식 준비를 자기가 다 해놓고, 예의를 갖추어서 마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쉽게 이해가 되는가? 단순히, 일국의 왕에 대한 예의인가? 분명히, 청나라에서 인조가 죄를 지은 죄인이라 했는데, 이러한 대우가 죄인에 대한 예의인가? 정말로 청태종의 신분이 인조의 신분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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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離座。率李倧及其諸子文武群臣。拜天。行三跪九叩頭禮畢。上還座李倧率群臣伏地請罪求我國諸臣代奏於上曰。皇帝天心赦臣萬罪生已死之身。存已亡之國俾得重立宗社緣臣罪過多端故加之罰今臣服罪。來謁皇上。自茲以後。改過自新世世子孫不忘厚澤。於是我國諸臣以其言轉奏。上諭曰。朝鮮國王。既知罪來降朕豈有念舊惡苛責之理今後一心盡忠不忘恩德可也。前事毋再言及。

황제가 자리(어좌)를 뜨고 이종과 그의 여러 아들과 문무대신들을 이끌고 배천(하늘에 경배하는?)하는 삼궤구고두례를 행하였다. 이를 마치고 황제가 자리(어좌)로 돌아왔고, 이종이 여러 신하들을 이끌고 땅에 엎드려 죄줄 것을 청하였다. “황제께서 살았으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의 죄를 용서하였고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종사를 잇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이 지은 죄가 많으므로 벌을 주십시오. 지금부터는 과오를 바로잡아 새롭게 처신하여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우리나라 대신들이 대신 주청하였다. 황제가 말하였다. “조선국왕이 그 죄를 알고서 항복하러 왔으므로 짐이 어찌 옛날의 잘못을 책망하겠는가? 이제부터는 일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은덕을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이전의 일은 다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청태종이 자리를 뜨고, 이종과 그의 여러 아들과 문무군신을 이끌어, 하늘에 절을 하는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쳤다. 청태종이 자리로 돌아오자, 이종이 이끈 군신이 땅에 엎드려 청죄하였고, 구해달라며 청나라 여러 신하가 청태종에게 대신 아뢰었다. 가로되, “황제는 하늘같은 마음으로 신하의 만 가지 죄를 용서하여 이미 죽은 몸을 살리고, 이미 망한 나라의 성책을 존속시키어 종사의 연을 무겁게 세워 얻습니다. 신하의 죄과가 다단하여 벌을 가하여야 하나, 지금 신하가 죄에 대한 벌을 받고자 황상을 찾아뵈었으니, 이때 이후로는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도록 하여, 세세자손이 두터운 은덕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에, 청나라 여러 신하가 그 말을 전하여 아뢰었다. 청태종이 깨우쳐 가로되, “조선국왕이 이미 죄를 알고 내려왔으니, 짐이 어찌 구악을 유념하여 가혹하게 책망하는 이치를 쓰겠는가? 지금 이후로는 일심으로 충성을 다하여 은덕을 잊지 않으면 된다. 앞의 일은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해설=> 승정원일기에서는 상당한 분량으로 다루었던 부분, 인조가 첫 번째 삼배고두를 행한 다음부터, 두 번째 삼배고두를 행하고 방위놀이를 하고 난 다음, 청태종이 등단을 청하는 과정까지가, 청실록에서는 간단히 한 줄로 기록되어 있다. 두 나라의 시각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上離座。率李倧及其諸子文武群臣。拜天。行三跪九叩頭禮畢。上還座’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데에 있어, ‘청태종이 하늘에 절을 했다’고 독해하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우리나라 기록에서는 인조가 절을 하였다고 하였지, 그 누구도 절을 하였다고 하지 않았다. 이 청실록 전체에서도 청태종이 절을 하였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만 청태종이 절을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 부분은, [청태종이 자리를 비켜주고, (청태종이, 청나라가) 인조와 그 일행을 이끌어 하늘에 절을 하는 삼궤구고두의 예식을 행하게 하고 (인조와 그 일행이 예식을) 마치자, 청태종이 자리로 돌아왔다.]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의 해석이 문제인데, 만약 ‘이종과 그 일행을 이끌고, 청태종이 하늘에 절을 했다’라고 해석한다 치면, ‘인조가 청태종에게 절을 하면서 항복했다’는 강단학계의 학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자인(自認)하는 것이고, 인조가 절을 한 대상이 하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주인공인 청태종이 하늘에 절을 하면서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왜 청태종 혼자서 하늘에 절을 하지 않은 것인가? 혼자서 절을 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왜 청나라 신하가 아닌 동국인을 이끌고 절을 한 것인가? 즉, 청태종은 하늘에 절을 하지 않았고, 인조가 하늘에 절을 하도록, 청태종이 인조에게 강요한 것이다.


필자의 해석이든 강단학계의 해석이든, 인조가 하늘에 절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하늘에 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황제가 독점하였고, 번국인 동국의 임금은 하늘에 절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동국의 임금인 인조가, 그것도 항복하러 온 패자(敗者)가 하늘에 절을 하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대들은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다.


이 날 삼전도에서 하늘에 절을 한 사람은 인조 밖에 없다. 인조의 일행은 인조를 수행한 것일 뿐, 하늘에 절을 한 것이 아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청태종이다. 그러나, 그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사람은 동국의 임금인 인조이다. 삼전도의 진실은, 삼전도에서 청태종이 황제로 즉위했고, 그 즉위식을 인조가 진행한 것이다. 즉, 인조가 하늘을 대신해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한 것이다.


‘李倧率群臣伏地請罪’를 ‘이종이 군신을 이끌고 땅에 엎드려 청죄하였다’와 ‘이종이 군신을 이끌어 땅에 엎드려 청죄하게 하였다(이종이 이끈 군신이 땅에 엎드려 청죄하였다)’ 중에 어느 것으로 해석해야 맞을까? 사실, 문법적으로는 어느 쪽으로 해석하더라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문맥상의 흐름이나 다른 기록과의 비교 등을 통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만약, 인조가 하늘에 청죄하는 절을 한 것이 맞다면, 다시 또 청태종에게 청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승정원일기에서는 하늘에 청죄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청실록에서는 그냥 하늘에 절을 하였다고 하여, 어떤 이유로 하늘에 절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앞에서 ‘(청태종이) 이종과 그 일행을 이끌어 하늘에 절을 하는 예식을 행하고 마쳤다’라고 하여, 언뜻 청태종이 하늘에 절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청태종은 하늘에 절을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여기 ‘(인조가) 군신을 이끌어 땅에 엎드려 청죄하였다’에서도, 군신만 복지청죄하였고 인조는 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앞에서 ‘率李倧及其諸子文武群臣’이라 하였고, 바로 뒤에서 ‘李倧在前。諸子。及群臣。以次列於後’라고 하여, 諸子가 여러 행위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는 빠져있다. 하늘에 절을 할 때에도 함께 하였고, 청태종에게 절을 할 때에도 함께 하였는데, 청태종에게 청죄할 때만 빠졌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임금과 신하들은 땅에 엎드려 있는데, 왕자들은 멀뚱멀뚱 쳐다보며 서있다? 인조와 신하들은 죄가 있는데 왕자들은 죄가 없는가? 아버지는 땅에 엎드려 있는데 자식들은 멀쩡히 서있고, 그것을 청태종이 가만 놔두었다?


즉, 왕족은 땅에 엎드려 청죄하는 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청태종 보다 왕자들의 신분이 낮으니, 왕자들이 청태종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행하지만, 복지청죄는 신하들만 한 것이다. 인조는 청태종에게 공식적인 절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비공식적인 절, 선물을 받고 나서 감사를 표하는 절을 했을 뿐이다. 당연하지만, 인조의 절에 청태종이 맞절을 하였을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연려실기술에서, 선물을 받고 신하들은 감사의 절을 한 번 하였지만, 인조는 세 번의 절을 하였다. 삼전도를 떠나 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사를 할 때에도, 세 번의 절을 하였다. 신하들이 청태종에게 감사의 절을 할 때에는 한 번의 절을 했고, 윗사람인 청태종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의 인사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조가 감사의 절을 하였을 때, 청태종은 감히 앉아 있을 수 없으니, 일어나서 맞절을 하였을 것이다. 동등한 입장끼리 인사를 나누는 동양의 예법상, 인조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청태종이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라고 했을 것이고, 인조는 다시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청태종이 다시 ‘정말로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인사를 무한으로 할 수 없으니, 암묵적으로 세 번 정도를 하는 것이 동양의 관습이다. 즉, 인조와 청태종의 관계는,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혹여, 청태종이 인조에게 항복을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무릎을 꿇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인조가 청태종에게 반항한 것이므로, 청태종에게 죄를 지은 것이지만, 명분상 인조가 죄를 지은 대상은 하늘이다. 만약, 인조의 신분이 청태종 보다 낮다면, 하늘에 죄를 지었니 어쩌니 할 것이 없이, 청태종 앞에 청죄를 하였을 것이다. 청태종 보다 신분이 높으니 하늘에 청죄를 한 것이다. 동국과 중국의 관계와는 별개로, 동국의 왕이 중국의 황제 보다 신분이 더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代奏, 轉奏는 언어의 불통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다. 동국과 청나라가 한 집안이 되었고, 동국의 신하가 청나라의 신하도 되는 것이므로, 동료의식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다. 또, 동국은 신하들만 복지하고, 청나라의 신하들이 대주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은, 짜고 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대주하는 내용 속의 신하에 인조는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 가장 큰 책임은 인조에게 있는 것인데, 세계관이나 신분제 등에 의해 인조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대주를 한 것이다. 인조가 지켜보는 가운데 동국의 신하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고하거나 인조의 잘못을 고하는 행위는, 다른 것 다 놔두고 두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주(전주)는, 동국의 신하들이 아뢰는 말을 통역을 하여, 청나라 신하들이 전달하여 아뢰는 것이 아니라, 3자인 청나라 신하들이 당사자의 마음과는 별개로 자신의 의견을 아뢰는 것을 말한다. 친구끼리 다투고 나서, 당사자가 서로 사과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3자인 다른 친구가 둘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중간에서 대신 사과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인조의 존경을 깎으려는 행위가 종종 있지만,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것과 같은 굴욕, 무릎을 꿇는다든지 청태종에게 절을 한다든지 약소국이기에 겪는 어려움 등과 같은 굴욕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나름의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


李倧及其群臣。聞言大悅曰。皇上萬歲恩德小邦不勝頂戴於是令李倧朝見。禮臣贊禮李倧在前。諸子。及群臣。以次列於後行三跪九叩頭禮畢復位禮部官引至儀仗下立奏請李倧班次上諭曰以威懾之不如以德懷之朝鮮王雖迫於兵勢來歸亦一國之王也命近前坐於左側禮部官從儀仗外引王由北向入至壇下東坐西向

이종과 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고서 “황상의 만대의 은덕을 소방(小邦)은 공손히 받들겠습니다.”하였다. 이에 이종으로 하여금 황제를 배알하게 하였다. 예부의 관원이 이종을 앞에 세우고 여러 아들과 신하들을 뒤에 세우고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게 하였다. 예부 관원이 의장을 이끌고 아래에 서서 이종의 반차(자리의 서열)을 주청하였다. 황제가 말하였다. “위엄과 두려움으로 복종시키는 것은 덕을 품어 복종시키는 것보다 못하다. 조선국왕이 우리의 병세兵勢에 밀려 내부하였으나 그래도 일국의 왕이다.” 가까운 곳 앞쪽 좌측에 앉도록 명하였다. 예부관원이 의장을 따라 왕을 인도하여 북쪽으로 단 아래에 이르러 동쪽방향으로 앉아 서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이종과 그 군신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가로되, “황상의 만세은덕을 소방은 머리에 이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 이에 이종이 조현하여 예신하고 찬례하게 하였다. 이종이 지나간 후, 여러 아들과 군신이 차례로 늘어서서 뒤이어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치자, (청태종이) 자리로 돌아갔다. 예부관이 의장을 아래로 세우고 인도하여 이르러서, 이종의 반차를 주청하였다. 청태종이 깨우쳐 가로되, “위엄으로 두렵게 하는 것은 덕으로 품는 것만 같지 않으니, 조선왕이 비록 병세에 몰려서 돌아온 것이지만, 역시 일국의 왕이다.” 가까운 앞쪽 좌측에 앉히도록 명하였다. 예부관이 의장의 밖을 따라 왕을 인도하여, 북향하여 들어가서 이르러 단의 아래 동쪽에 서향하여 앉았다.


***해설=> 조현(朝見)을 단순히 신하가 임금을 뵙는 것이라 한다면, 인조는 이미 청태종을 진작 만났고, 궁으로 돌아갈 때까지 청태종을 실컷 뵙게 된다. 그래서, 여기에서 ‘조현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정말로 뜬금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조현은 예신찬례를 하기 위한 전단계(前段階)의 예식 절차를 말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조현은 ‘신하가 임금을 뵙는 것’이 아니라, ‘임금과 무엇을 하기 위해 누군가 임금 앞에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즉, 인조가 청태종에게 조현하였다는 것은, 인조가 청태종과 무엇을 하기 위해, 청태종의 앞에 인조가 나타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전에는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뵘’이라 나와 있지만,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과 무엇을 하기 위해 임금을 뵘’이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단순히 인사를 하기 위해 조정에 나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벼슬을 한다든지 물품을 받는다든지 등의 어떤 것을 하기 위해 조정에 나아가는 행위가 조현이지, 얼굴만 보고 돌아오는 것을 가리켜 조현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정말 웃긴 일이다.


조현(朝見) : 신하(臣下)가 조정(朝廷)에 나아가 임금을 뵘

예신(禮臣) : 신하(臣下)가 병들거나 곤궁(困窮)할 때에, 임금이 의약(醫藥)이나 물품(物品)을 주는 일

찬례(贊禮) : 나라의 제사 때에, 임금을 인도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던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던 벼슬아치. 제향(祭享) 때 임금을 전도(前導)하여 행례(行禮)하게 하는 일 또는, 그 관원(官員). 예조판서(禮曹判書)가 맡음


그러면, 인조가 청태종과 무엇을 하기 위해 조현한 것인가? 바로, 예신과 찬례이다. 조현과 예신과 찬례의 주체는 인조이다. 즉, 인조가 청태종에게 예신과 찬례를 해주기 위해 조현한 것이 된다. 조현해서 예신하고 찬례하는 것은 어떤 예식의 절차에 있어, 어떤 목적을 위해 하나로 묶여, 각각 별개의 절차가 아닌 하나의 절차로서 연속 실행되는 행위이다.


예신(禮臣)은, 서양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왕의 즉위식에서, 추기경이 왕관을 씌워주거나 홀을 쥐어 주는 행위, 결혼식에서 주례가 신랑신부에게 반지 등을 주는 행위이다. 우리 동양에서도 비슷한 절차가 있는데 옥새나 홀, 조서 등을 주는 행위이다. 찬례(贊禮)는, 즉위식에서 왕을 인도하여 맹서를 하게 하거나 예식의 진행을 이끄는 행위, 결혼식에서 주례가 신랑신부에게 맹서를 하게 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인조가 조현해서 예신을 하고 찬례를 한 것은, 인조가 {청태종 앞에 서서} {청태종에게 황제의 상징물을 주고} {청태종이 황제로서 맹서하게} 한 것이다. 즉,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於是令李倧朝見禮臣贊禮’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청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아준 것은 무엇인가를 받아내기 위해서다. 승자가 패자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것이지, 승자가 패자에게 무엇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승자인 청태종이 패자인 인조에게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것인데, 명조에 하던 것을 그대로 청조에 하라는 것 등의 요구인데, 그러한 것을 상징적인 예식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삼전도의 예식이다. 그 삼전도의 예식에서, 인조가 청태종에게 내어준 것이 예신과 찬례이다. 예신과 찬례를 해주기 위해, 인조가 하늘에 절을 한 것이며,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청태종이 밍크코트와 밍크모자를 선물한 것이다.


청실록의 이 부분은, 승정원일기 등의 우리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용으로서, 삼전도의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교황이나 추기경이 왕의 즉위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이것은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하는 예식이다. 항복하러 왔다면서, 하늘에 절을 하고 예신하고 찬례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국의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청나라를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고, 청나라의 기록에서 보이는 것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중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즉, 자기들 끼리 황제로 추대하고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동국의 인정을 받아 적법한 황제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필자의 말이 헛소리로 들리는가? 마음의 문을 열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왕운기는 중국의 몽고인이 읽으라고 만든 것이며, 훈민정음을 비롯한 운서들은 중국어를 통일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용비어천가는 중국의 한인이 읽으라고 만든 것이며,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모두를 위해 만든 것이다.


재전(在前) : 이미 지나간 그때


‘李倧在前。諸子。及群臣。以次列於後行三跪九叩頭禮畢復位’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사전에 의해 해석하면, ‘이종이 지나간 후, 여러 아들과 군신이 차례로 늘어서서 뒤이어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치자 자리로 돌아갔다.’가 된다. 글자 뜻 그대로 해석할 것 같으면, ‘이종이 앞에 있고, 여러 아들과 군신이 차례로 늘어서서 뒤에서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치자 자리로 돌아갔다.’가 된다. 즉, 왕자들과 신하들이 절을 한 것이지, 인조는 절을 하지 않았다.


만약, ‘이종을 앞에 세우고 여러 아들과 신하들을 뒤에 세우고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게 하였다.’로 기록하려면, ‘李倧及諸子群臣 以次列 行三跪九叩頭禮畢(이종과 여러 아들과 군신이 차례로 늘어서서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마쳤다)’라고 기록하면 된다. 임금과 왕자와 신하가 늘어서게 되면, 자연히 신분에 따라 차례로 늘어서는 것이라, 당연히 임금이 앞에 서고 그 뒤에 왕자들이 서고 그 뒤에 신하들이 서는 것이다. 굳이, 임금을 앞에 세우고 왕자와 신하를 뒤에 세우는 등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在前과 於後를 문장에 집어넣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조가 예신찬례를 마치고 나서 인조가 있던 자리에서 뒤를 이어 아들과 신하가 절을 한 것이거나, 인조의 찬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하는 예식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절차로서 동국의 왕자와 신하가 황제에게 절을 하는 예식을 인조가 찬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인조가 청태종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청태종과 동국인 사이에 서있게 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찬례는 행사진행자와 같은 것인데, 행사진행자가 그 행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인조가 청태종에게 절을 한 것은 아니다. 서양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추기경이 왕에게 왕관을 씌워줄 때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으면서 예를 표하는데, 추기경은 왕관을 씌워주기만 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지 않는다.


복위(復位) : 폐위(廢位)되었던 임금이나 후비가 다시 그 자리에 들어앉음


왕자와 신하가 절을 하고 난 다음에 復位라는 단어가 오는데, 왕자와 신하들이 복위했다는 것인지, 인조가 복위했다는 것인지, 인조와 일행 모두가 복위했다는 것인지, 언뜻 알기 어렵다. 여기서의 복위는, 폐위되었다가 다시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삼전도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폐위되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즉, 어떤 물리적인 위치에 다시 돌아갔다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삼전도에 자리(位)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바로 단 위에 있는 황제의 자리이다. 즉, 복위한 사람은 청태종이다.


이 청실록은 청나라의 기록이다. 기록의 중심은 청태종의 행위에 있다. 인조와 일행은 주인이 아닌 손님에 해당한다. 인조와 일행이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절을 하고나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복위라 할 수 있는가? 뒤에 이어지는 내용 ‘禮部官引至儀仗下立奏請李倧班次'와도 부합하려면, 청태종이 복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청태종과 인조가 같은 위치에 있다가, 청태종이 단 위의 자리로 돌아가고, 예부관이 인조를 인도하여 청태종의 앞에 이르러 반차를 주청한 것이 된다. 인조가 자리로 돌아간 것이라면, 청태종 앞에 있던 인조를 저 멀리 어떤 곳으로 보냈다가, 예부관을 시켜 다시 청태종 앞으로 데려온 것이 되는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예신찬례하기 전에는 上離座, 上還座라고 기록했고, 예신찬례한 후에는 復位라 하였다. 즉, 예신찬례는 황제의 즉위식(卽位式)이었고, 예신찬례의 주체인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한 것이다. 청태종이 복위했다는 것은, 예신찬례를 하기 위해 청태종이 단 위에서 평지로 내려왔고, 예신찬례 후에 단 위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말한다. 청태종이 복위함으로써 모든 예식이 끝나고 잔치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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