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공격적인 전략전술로 알렉산드로스 우세. 그러나 아마추어였던 페르시아 병사들과는 다르게 로마군은 전문가들이므로 미션이 더 어려워짐 - 로마는 페르시아와 다르게 라틴동맹으로 끈끈히 뭉쳐있으므로 몇번의 결전에서의 승리로 나라 전체를 먹을수 없음. 로마의 끈질긴 저항으로 공세가 둔해짐 - 후대에 피로스 때처럼 로마는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음. 해군이 약한 알렉산드로스에게 카르타고의 해군이 골칫덩이가 됨 - 로마의 레기온 스타일의 전술적 유연함으로 알렉산드로스의 망치와 모루 전술에 익숙해진 로마장교들이 역시 후대의 한니발에게 배웠던 것 처럼 점점 그에 적응해 감. 더군다나 보급은 현지약탈로 해결해야 하는 가난한 알렉산드로스를 초토화 전술로 압박하며 알렉산드로스와의 직접적인 전투를 피하고 소모전을 강요함. 이후는 아리송.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폴리스들만큼의 체계적인 무장이나 전술이 전무했던 이민족 군대를 상대로는 팔랑크스가 막대한 위력을 발휘 할 수 있었으나, 기원전 168년 마케도니아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피드나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으면서 팔랑크스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된다. 전투 초 중반까지 마케도니아군의 위력적인 팔랑크스의 위세에 짓눌린 로마군은 섣불리 공격을 하지 못하였으나 암석지대를 기동하면서 틈이 벌어진 팔랑크스의 약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가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고작 100여명이 전사한 데 비해 마케도니아군은 3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사 또는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팔랑크스와 레기온의 비교를 그렇게 단순하게 할수 없습니다. 분명히 레기온이 더 전술적으로 유연한 편제이긴 한데, 지휘관이 여러 병종을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팔랑크스가 꼭 불리한건 아닙니다. 알렉산드로스 이후의 마케도니아군이 로마군에게 계속 발린건 그들의 왕과 지휘관들이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유산인 기병과 보병의 합동작전을 그 후예들이 전혀 이해하질 못하고 오히려 로마군이 한니발 덕분에 제대로 학습해서 유기적인 전술능력을 보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