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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19 23:56
[기타] 동방의 스파르타 토번제국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5,857  

토번 제국(吐蕃 帝國)

 

AD 7~8c 후반까지 동아시아에서 사실상 패권을 거머쥔 국가는 어디였을까?

사람들은 흔히 당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그도 그럴게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현 중국인 대다수를 이루는 화하족[혹은 한족] 역사중 가장 화려한 전성기였으니.

하지만 세계사에선 당나라가 아닌 토번제국. 현재 티벳의 전신을 동아시아의 패자로 인정하고 있다.

얼마나 위압적이었냐면 당시의 당(唐),남조(南詔),위구르(回紇),압바스(大食),팔라(天竺)의 연합공격을 받아야 했을 정도.

『자치통감 권227 당기45(資治通鑑 卷227 唐紀45)』,『자치통감 권232 당기48(資治通鑑 卷232 唐紀48)』,『구당서 권195(舊唐書 卷195)』,『신당서 권217 상(新唐書 卷217 上)』

 

토번제국 최전성기.

사진출처:http://valley.egloos.com/viewer/?url=http://songij21.egloos.com/1402951

 

 

 

 

지도1):792년 후반 토번(吐蕃)의 영토

그들은 막강한 제국이었으며 유일하게 당(唐) 제국 수도를 점령한적이 있는 이민족이었다. 

실상 안사의 난 이후 위구르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실상 토번제국의 유아독존(有我獨存)시기나 다름 없었다.

*자료 원문작성자의 블로그에선 이 지도가 거란과 발해에 불리,왜곡되게 나왔단 내용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거란과 발해의 영역은 더 넓고 거란은 사실상 발해의 속국입니다.

 

당시 토번의 군사들 무장에 대해선 아래의 기록에서 알수 있다.

 

『통전(通典) 卷190』

토번(吐蕃) 병사(兵士)와 군마(軍馬)는 모두 훌륭한 솜씨로 제작된 갑옷을 입는다. 

갑옷은 눈만 빼고는 온몸을 감싸며 아무리 강한 활과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그들을 해치지 못한다. 

싸울때는 말에서 내려 정렬해 싸우며 앞의 병사가 죽으면 뒤의 병사가 그 자리를 메운다. 

그들은 끝까지 싸우며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창은 우리 중국(당제국)것보다 길고 창 끝은 매우 날카로우며 활쏘는 솜씨는 신통치 않다. 

전투를 하지 않을때도 병사들을 칼을 차고 다닌다.

 

『신당서 권216(新唐書 卷216)』

그들은 활과 칼, 방패와 창, 갑옷과 투구를 갖고 있다....(생략)...인간과 말은 정교하게 가공된 쇠로 만든 갑옷으로 덮어져 있다.

 

 

 

중세 티베트의 기병과 보병

중세시대라 고대와 많이 다르지만 아마도 고대 토번인들도 창에 철을 돌돌 감아 잘 부러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또한 창 길이 역시 기록을 볼때 저것보다 더 길었으리라 본다.(당나라 창 길이가 1.5~2.5m 정도라는걸 볼때 아마도 

토번의 창 길이는 3~5m정도 되었으리라 본다.)

 

그럼 전술은 어떨까. 역시 구당서(舊唐書)에 기록되어 있다.

 "군법(軍法)은 엄하여 매 전투에서 맨 앞열이 모두 죽임을 당한뒤 뒷열이 진격하며"

앞렬과 뒷렬의 의미는 방진(方陣)을 의미한다. 그리고 엄한 군법은 이러한 방진을 짯을때 물러서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이긴것은 그리스 방진(方陣)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 크다.)

 

 

 

 

 

마케도니아의 방진(方陣)

그들은 4~5m짜리 창과 방패로 무장하였으며 이러한 방진은 큰 효과를 가지고 왔다. 

마케도니아 외에도 창 길이는 이보다 짦지만 그리스 폴리스국가들도 이러한 방진을 사용했으며 

방진이 흩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토번의 방진이 다른 국가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토번 특유의  반정주(半定住) 반유목(半遊牧)의 특성에서 기인한 이동시

기마병으로 전환한다는것. 그리고 취사병이 필요없도록[단기간 전쟁에서 지만] 휴대식 "짠파"와 육포를 각자 지니고 다년다는 점. 

이로서 토번의 창보병은 중무장보병대의 약점인 기동력을  상당부분 커버할수 있었다.

이는 징기즈칸의 몽골에서도 볼수 있는 특성이다. 보병은 보병이되 승마보병(乘馬步兵)인 것이다.

 

제목에도 써 있듯이 이 당시의 토번제국은 고대 유럽의 스파르타(Sparta)와 많이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중 가장 닮은게 바로 노예제도. 두 국가 모두 인구중 70%가 노예로 구성되어 있다.

스파르타의 국유노예- 헬로트(Helots)

토번제국의 국유노예- 방금락(邦金洛)

 

이러한 노예제도외에 또다른 닮은점은 양국이 전사를 우대하는 사회란 것이다.

『구당서 토번전(舊唐書 吐蕃傳)

- 군법은 엄하여 매 전투에서 맨 앞열이 모두 죽임을 당한뒤 뒷열이 진격하며 중상을 입은자와 악질에 걸린자는 죽임을 당한다...

(생략)... 전투에 임하여 패배한 자는 공개적으로 여우의 꼬리를 머리에 올려서 비겁한 자의 본보기로 삼아 모욕을 당하게해서

대중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해 스스로 자결하거나 전쟁에 패해한 것에 모욕을 당하여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양손모두 땅바닥을 집고  개처럼 짖으며 몸을 구부렸다 폈다하기를 반복했다.』

전사위주의 민족들이 다들 그렇듯 이들도 명예를 목숨처럼 여김을 알수 있다.

패배와 후퇴를 하느니 장렬히 전사한 스파르타의 테르모필라이(Thermopylae)전투[영화 300]에서 처럼 위에 나온 창보병대의 방진은 

이러한 정신이 뒷바침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자연스레 강자숭배로 이어졌다.

『구당서 토번전(舊唐書 吐蕃傳)

- "혈기왕성한 건장함을 중시하여 늙으면 천시하였고 어머니는 아들을 섬겼으며 아들은 아버지의 뒤에 걸었으며 

출입시엔 어린자는 앞에서고 늙은자는 그 뒤에 걸었다."』

『의사 古 gYu-thog 傳 Derge판 목판본 141

- 토토리 첸포의 시대에 두명의 의사가 인도에서 토번을 방문했다.

그들은 병자가 집 밖으로 실려나가는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은 병자를 쫓아내는것이 티벳의 관습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티벳인은 "만일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그들을 문 밖으로 쫓아내지 않지만 부모가 아프면 자식들은 부모님을 쫓아낸다."

라고 답해주었다.』

어엿한 집안의 가장이 나이들고 키우던 자식이 장성하면 무시받는게 운명이며 심지어 병들면 버려지기 까지 하는게 당연시 되는 사회. 

어머니가 아들을 지아비로 섬기는건 조선시대 유교에도 나오지만 그 강도는 토번쪽이 더 고압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병폐에 대한 자각이 아예 없던건 아니었다.

『Ma-ni bka'-bum, Dreg판, 목판본 2권

-"부모의 자애로움에 대해 악하게 보답하지 말아야한다. 토번 33대 왕, 송첸캄포. 16조 도덕적 규칙』

물론 이 법령은 중앙티벳에서 실행되었지만 동부와 서부에서는 부모를 버리는 일들이 계속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악습은 불교가 전역에 퍼지고서야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사상은 다른 족속들에 대한 오만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남부 외지사람들은 남쪽오랑캐라는 몬(mon),   

북쪽 사람들은 날것이나 먹는 북쪽 오랑캐라하여 호르(Hor:이말은 이후 위구르를 칭할때 사용된다.)라 칭하며 자신들과 별도로 취급하였다

이 역시 스파르타와 마찬가지.

 

물론 스파르타와 토번제국이 마냥 똑같기만 한것은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빈부격차.

스파르타(Sparta)의 경우 귀족이나 왕이나 노예(헬로트Helots)나 모두 먹는건 비슷했다고 한다. 

그건 검은죽으로 불리는 것이었는데 외국인 방문자들은 죽음의 맛으로 평가했다고.

반면 토번은 당시 실크로드의 혜택을 받는 나라들에 둘러 싸여 

그 강력한 군사력으로 당나라든, 압바스든, 무역에서 손해 볼 위치가 아니었고 귀족들은 상당한 축제를 할수 있었다. 

그러나 노예인 방금락(邦金洛)계층은 하루 두끼가 끝이었다.

 

두번째의 차이는 병역의무이다.

스파르타는 병역의 의무는 신성한 것으로 오로지 왕족과 귀족들의 특권 비슷한 것이었다. 

인구의 70~80%나 되는 헬로트들은 잡역에만 종사할수 있었으니 

은 국유노예 방금락들이 병역에 종사할수 있는것과 비교하면 크나큰 차이다.

다만 토번의 방금락도 토번내의 방금락과 전쟁 포로로 잡혀온 방금락 사이의 계급차가 존재했다.

포로 방금락은 팔과 머리에 노예를 의미하는 문신을 새기고 병역에 종사할수가 없었다.

 

군사제도는 이렇다.

크게 보면 천하병마도원수(天下兵馬都元帥)인 태상룬(國相)의 지휘하에 보통 있었고 나라는 크게 6개로 나누어 6루첸으로 두었다. 

이러한 군사개편은 주로 7c 가르통첸(祿東贊)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구당서 토번전(舊唐書 吐蕃傳)』) 7c에 그는 전국을 6개로 나누었고 자신은 그 6부의 수장으로 올랐다. 

6개의 부는 행정과 더불어 군사에 적용되었고(이는 티벳이 민군정일치(民軍政一治)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5개의 부를 따로 만들어 2개의 부는 "노역자의 집단"으로 만들었고 나머지 3부는 "전사 집단"으로서 국경을 수비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전사 3부를 61개의 천명 단위의 조직으로 만들어 61000명의 정예전사들을 따로 선별해냈다.[이부분은 걍 복붙]

 

티벳문서에 의하면 전사는 "최고의 국민"으로 칭송받으며 대접도 화려했다. 

그들은 법에 의해 징발된 노역자와는 차별화 되었고 

이러한 전사3부는 토번이 팽창하면서 20만 정도, 즉 200개의 1000단위 조직으로 나뉜듯 하다.

 이것은 토번의 국력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들은 "군역에 종사하는 최고의 국민"이든 "법에 징발된 노역자"이든 13세 부터 군에 종사하여 40~50세가 되어서야 끝난다.

그리고 은퇴한 노병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광이 아닌 자식들에게 무시받고 버림받는 쓸쓸한 최후였다.

그럼에도 이런 민군정일치의 군사행정은 그들의 나라를  7~9c, 특히 8c에 막강한 제국으로서 군림할수 있게 하였다.

 

앞서 토번제국의 특성을 반정주(半定住) 반유목(半遊牧)이라 했는데 이는 기마술 외에도 축성기술을 보유했음을 뜻한다.

이는 미란(米蘭)요새가 증명해주는데 8c에 티벳이 점거한 미란에 요새는 높이가 11m~13m일정도로 높았고 

그 성벽 위에 또 2m짜리 성벽이 있었다.(『실크로드 이야기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저』)

 

 

 

:미란(米蘭)요새 평면도

『실크로드 이야기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저』에 나오는 이 평면도는 티벳 요새의 구조를 알 수 있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들은 성벽위에 성벽을 만들었고 성 내부는 복잡한 미로같은 길로 만들어 성 안에서도 방어가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티벳[토번] 최초의 궁궐 윰프라캉

출처:http://valley.egloos.com/viewer/?url=http://songij21.egloos.com/1356832

 

[-이하 자료 출처에서 복붙...계속 쓸려니 시간도 그렇고 허리도 아프고...ㅡㅜ]

요새의 수비는 보통 3시간씩 8교대를 하였으며 적군대가 올 곳에는 미리 방책이나 나무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를 만들어두어 

수성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또 각 방책과 나무말뚝에는 소규모의 궁수부대를 배치하여 적은 병력으로 다수의 적에게 피해를 

입히도록 만들었다.(『실크로드 이야기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저 p84』) 토번의 수성전은 쇠날요새전투나 여러 요새전투

에서 이미 보여준 바이다.

 

토번군의 신호는 주로 봉화를 통해 알려졌다. 

그들은 각 요새 근처와 요충지에 봉화를 설치하였고 소봉화의 경우 6~12명이 근무하였으며 대규모 봉화의 경우 수백명이 지켰다. 

그들은 봉화 아래에 막사를 치고 근무했는데 봉화대위에는 봉화받침대 3개가 솟아있고 바침대에서 그 아래 막사까지 

도화선이 이어져 있어 적들이 급습해도 막사에서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바로 적들의 침입을 알릴수 있었다. 

소봉화의 경우 3개의 봉화가 있었으며 2개에서 연기가 오르면 경계 3개는 적이 나타났다. 1개는 경보해제를 알렸다. 

봉화에는 약 3~4주간의 식량이 비축되있었다.(『실크로드 이야기 수잔 휫필드(Susan Whitfield)저 p84』)

 

공성무기로는 중국의 무기 영향을 많이 받은것으로 보여지는데 아마도 그들은 충차나 투석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때로는 투석기에 석회가루와 비소를 천으로 싸서 얇은 토기속에 체워 넣어 유독 가스를 내뿜게 만드는 발연탄을 넣어 쏘기도 하였다.

 또한 토번군은 창에 가연성 물질을 바르고 있다고 적의 병사들이 돌격해오면 

불을 붙여 불타는 창을 적진에 던져 적진을 무너트린뒤 진격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술은 적의 진영을 무너트린 다음 방진으로서 적진을 공격해버렸기에 효과적이었던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강점외에 빼먹어선 안될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갑옷이다.[다시 자료 보면서 작성...ㅡ,.ㅡ]

보통 유목민들은 가죽만 두르고 전투를 치룬단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건 많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등에서 범하는 흔한 오류다.

징기스칸의 몽골도 철제찰갑이 있었을 정도이니.

[자료 http://valley.egloos.com/viewer/?url=http://kyb0417.egloos.com/5147934

        http://blog.daum.net/exdelhi210/1867108 ]

 

위에 잠깐 나온 통전을 다시 보자.

『통전(通典) 卷190

 -토번의 갑옷을 가리켜 "갑옷은 눈만 빼고는 온몸을 감싸며 아무리 강한 활과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도 그들을 해치지 못한다."』

다른 기록에는  "토번의 병사들은 모두 갑옷을 입는다." 라고 하였다. 

두 기록을 합하면 갑옷의 성능, 보급률 모두 상당히 좋았음을 알수 있다.

 

시노다 고이치(篠田 耕一)의 저서 『무기와 방어구(중국편)』을 보면  티벳이 냉단법(冷鍛法)을 최초로 개발했다고 나온다.

정확한 개발시기는 모르겠지만 토번 문헌에서는 지굼첸포(志共布,Gri-gung btsan-po)때 이러한 발달이 있었다고 한다.(『dPa'o gTsug-

lag phreng-ba 연대기, Lhodrag판, 목판본,1545~1565』) 물론 그것은 전설상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그러한 갑옷이 나오는것은 빨리 잡으면 남리루첸 늦게 잡으면 8c로 볼 수 있을것이다.[자료 출처에서 작성자는 이에 대해

티벳의 지리적 위치가 중원과 사산왕조의 철기술을 모두 전해받을수 있는 위치이며 그 이점을 충분히 살렸으리라 보고 있다.

이 증거로 토번제국의 의술만 봐도 서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중국 의술의 혼합체인것을 들고 있다.

그런데 저 무기와 방어구, 판타지 라이브러리 같은데 얼마나 정확할런지?;;;]

 

 

 

토번(吐蕃)의 갑옷

8~9c 토번(吐蕃)이 점거했던 미란요새에서 출토된 갑옷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냉단법(冷鍛法)을 사용해 만들어진 토번의 갑옷은 단단하면서도 잘 안부러졌고 생산속도가 빨랐다.

 

 

 

 

토번(吐蕃)의 갑옷과 투구

전형적인 티베트(Tibet) 갑옷으로 티베트 갑옷의 형태는 5~6c로 시작하여 특별한 변화없이 오랜 세월 유지되었다. 

러멜러(lamellar)형식이며 이러한 티베트 러멜러(lamellar)갑옷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것이 몽골의 러멜러(lamellar) 갑옷이었다. 

그만큼 티베트 갑옷은 성능이 좋았으며 그들에 제철기술과 갑옷제작 기술은 여러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냉단법은 철을 달구지 않고 두드려 만드는 것이고 소입(燒入:달금질로 불에 달군 철을 급격히 냉각 시키는것을 말한다. 

철을 다루던 보통적인 방법이다. 단단하지만 잘 부러진다.)의 기술과 달리 제작시간이 보다 짧고 부러지는 단점이 보완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13c정도부터 냉단법을 사용했는데 냉단법은 플레이트 아머를 만들때 유용.)

이때문에 성능좋은 갑옷의 보급률이 빠르고 그것은 곳 군사력 증대로 이어졌을 것이다.

토번의 남부와 숭파땅은 철의 산지로 청해지방의 강족들은 철을 잘 다루었다. 가끔 보이는 티벳엔 철이 안나온다는 말은 루머인 것이다.

『Les tribus anciennes des marches sino-Tibetaines, Melanges publ. par l'lnstitut des Hautes Etudes chinoises, XV, Paris.196』

[그런가 하면 토번과 비슷하게 반정주,반유목의 특성을 갖춘 고구려는 현대기술에 맞먹는 80~90%의 탄소강을 만들었다고 하니....]

 

토번은 이렇듯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기에 7~9c 특히 8c에  대제국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들의 반정주 반유목에 기반한 다양한 장점들.

그리고 강력한 노예제는 그들만의 특별한 군사제도를 만들어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여 강대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이다.


 











http://blog.naver.com/df3714/220080702172



잘보고가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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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1004 16-02-20 00:14
   
동방의 스파르타 300이 고구려 아니었나여 몽골한테 40년간 뻐겻으니...
양원장 16-02-20 00:47
   
엑박인데, 볼수잇을까요?
동방불패 16-02-20 00:54
   
수정부탁드려요
에치고의용 16-02-21 00:09
   
토번이 이렇게 강한 나라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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