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6-02-14 04:28
[한국사] 단군조선 연대기와 배달의 자오지 환웅천황 치우천황
 글쓴이 : 고구려정씨
조회 : 4,013  


환국(桓國) 환인 계보 (7대, 재위년수 : 3,301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R>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홍익/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그리하여 다섯 곳의 덕지(德地)이냐 오덕(五德)을 갖춘 한 곳의 땅이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 되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소위 신지비사를 언급하면서도 단군조선의 번한 5경제도를 오해한 것이 되며, 결론적으로 서효사의 구절을 잘못 해석한 것이 되기도 한다.  

위 서효사에서 마한(馬韓)은 왼쪽을 보좌하고 번한(番韓)은 남쪽을 보좌한다고 적고 있는데, 원래 마한(馬韓)이라는 말은 남쪽의 한(韓)으로서 남쪽을 보좌하는 것이 되고, 번한은 차례(次例), 번(番)를 서서 지키는 한(韓)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단군왕검 시대에는 마한은 남쪽을 보좌하고 번한은 서쪽을 보좌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는데, 서기전2049년에 이르러 마한은 왼쪽인 동쪽이 되고 번한이 바로 남쪽이 되어, 나라의 중심이 동쪽의 송화강 아사달에서 서쪽에 위치한 상춘의 백악산아사달로 이동한 것으로 상정(想定)하였다는 것이 된다.  

한국(桓國)의 오훈(五訓)은 다섯가지 가르침으로서, 성신불위(誠信不僞), 경근불태(敬勤不怠), 효순불위(孝順不違), 염의불음(廉義不淫), 겸화불투(謙和不鬪)이다. 즉 정성과 믿음으로 거짓되지 아니하고, 공경하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고, 효도하고 순종하여 어기지 아니하며, 청렴하고 의로워 음탕하지 않고, 겸손하고 화목하여 다투지 아니한다는 다섯가지 인간윤리인 가르침이다.  

또 신시(神市)의 오사(五事)는 배달나라 시대에 오가(五加)가 담당하였던 직무를 가리키는데, 저가 주병(猪加主病), 구가 주형(狗加主刑), 양가 주선악(羊加主善惡), 우가 주곡(牛加主穀), 마가 주명(馬加主命)이다. 즉, 저가는 질병을 담당하고, 구가(개)는 형벌을 담당하며, 양가는 선악을 담당하고, 우가는 농사를 담당하고, 마가는 명령과 목숨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오가(五加)를 오방(五方)의 오부(五部)로 보면 저가(豬加)는 중부(中部), 구가(狗加)는 서부(西部), 양가(羊加)는 북부(北部), 우가(牛加)는 동부(東部), 마가(馬加)는 남부(南部)에 각 해당한다. 오가(五加)를 중앙의 행정조직으로 보면, 현시대의 정치조직에 대입할 때, 대통령 아래에 있으면서 실제 정치를 펼치는 행정부(行政府)에 해당한다.  

저가(豬加)는 돝 즉 돼지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部署)로서 청결(淸潔)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질병(疾病)을 담당한 것이 되고, 구가(狗加)는 개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안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치안(治安)과 형벌(刑罰)을 담당한 것이 되고, 양가(羊加)는 양이나 염소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착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선악(善惡)을 담당한 것이 되고, 우가(牛加)는 소를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에서 농사를 담당한 것이 되고, 마가(馬加)는 말을 상징으로 하는 부서로서 명령(命令)을 전달하고 전쟁과 국방을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목숨(命)을 담당한 것이 된다. 

이들 오가(五加)를 통할(統轄)하는 삼사(三師)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인데, 풍백은 입법담당이며, 우사는 행정담당이고, 운사는 사법담당이다. 지금으로 보면 풍백은 입법부인 국회, 우사는 행정부, 운사는 사법부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양가(羊加)의 직무는 선악(善惡) 담당인데, 교육(敎育)과 사법(司法)의 직무를 수행하는 바, 행정담당인 우사(雨師)와 사법담당인 운사(雲師)에 겸하여 속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오가(五加)는 삼사(三師) 아래에 있으면서 업무적으로 소속된 것이 된다. 이는 근세조선 시대 영의정(領議政), 좌의정(左議政), 우의정(右議政) 아래에 행정부인 6조가 소속된 것과 유사한 체제가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배달나라의 삼사오가(三師五加) 제도가 실시되었던 것이며, 추가로 호가(虎加), 용가(龍加), 웅가(熊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등을 설치하여 각각 업무를 담당하였다고도 기록되며 단군 8가(加), 9가라고도 불리운다. 이와 같이 오가와 별도로 가(加)를 설치하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기본 행정부서가 되는 6부(部)나 6조(曹) 외에 별도의 업무를 관할하는 관청(官廳)을 둔 것과 같은 이치(理致)가 된다.

달문(達門) 천왕은 화합정치를 펼쳐 사형제도를 없애고, 책화(責禍)와 국경경비와 화백회의(和白會議) 등을 공개하였으며, 화합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겸손하고 낮춤으로써 어진 정치를 실행하였던 것이다. 

때에 동맹을 맺어 조공을 바친 곳이 큰나라가 둘(2)이며, 작은나라가 스물(20)이며, 마을부락이 3,624곳이나 되었다 하는 바, 큰 나라는 천왕격인 비왕(裨王)의 나라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이며, 작은나라는 그 외의 군후국을 가리키는데, 군후국 중에서 크게는 청구, 남국(藍國), 구려, 진번, 부여, 숙신, 예, 개마, 옥저, 졸본, 비류, 고죽, 몽골, 선비, 흉노, 낙랑 등이 있으며, 천자국(天子國)이 되는 하(夏)나라도 여기에 포함되고, 그 외 제후(諸侯)가 다스리는 소국(小國)들이 있어, 모두 20여개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단군조선은 16개국을 거느린 천축국(天竺國)처럼 대제국이라 풀이되기도 한다. 

조공(朝貢)을 한 마을부락이 3,624곳이라 한 것은, 큰나라와 작은나라에 속한 마을의 총 숫자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명하나, 상국(上國)인 진한(眞韓)과 대국(大國)인 마한(馬韓) 및 번한(番韓)과 소국(小國)으로서 삼한(三韓) 관경에 속한 제후국 안에 있는 마을부락의 숫자라고도 보인다.  

다만, 마을부락을 삼한(三韓)과 제후국(諸侯國)들로부터 독립된 마을단위로 보면, 각 추장(酋長)들이 맡고 있던 곳으로서 별도로 조공을 바친 것이 된다. 서기전1666년의 호구(戶口) 조사에서 1억8,000만명이라는 기록을 보면, 삼한 관경내 제후국과 별개인 마을부락으로 보이며, 이 인구는 파미르고원에 있던 9족(族) 전체의 수가 될 것이다.  

이떤 지역에 제후국을 봉하더라도 다른 제후국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마을부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마을부락으로서 단군조선에 조공(朝貢)을 별도로 바친 마을부락이 3,624개나 된다고 한 것이 된다. 

서기전2048년 계축년(癸丑年)에 달문(達門) 천왕께서 붕어하시니 양가(羊加) 한율(翰栗)이 즉위하였다.  

제7대 한율 천왕은 달문 천왕의 태자가 아니라 차자나 삼자 등의 다른 아들이 되며 양가(羊加)의 직에 있었던 것이 된다. 양가(羊加)는 선악(善惡) 담당으로서 착한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하고 악(惡)한 자는 처벌하는 관청이며, 지금의 교육부와 법무부에 해당한다.

치우환웅의 개화사상과 중원정복, 삼신문화

1. 머리 말  
2. 치우환웅의 개화사상 
3. 치우환웅의 중원 정복 
4. 환웅의 佺戒와 祭天  
5. 首尾均平位와 和白  
6. 치우환웅의 수련법 
7. 맺는 말  

1. 머 리 말   

중국의 여러 문헌에는 치우환웅을 나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자가 『서경(書經)』을 쓰면서 치우를 중국 헌원(黃帝)에게 반역한 악인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사마천도 사기를 쓰면서 공자를 따라 “치우가 난을 일으켰다(蚩尤作亂).”란 말을 그대로 이어 받아 결국 치우는 역사의 악역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헌에는 치우환웅을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환단고기』에서는 치우환웅이 단순한 군신(軍神)이 아니라 우리민족 고유의 삼신(三神)문화를 드높인 명군으로 기록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치우환웅이 헌원과 10년 전쟁을 벌였다는 내용은 한․중 양국 기록에 공통적으로 나오는데, 공자와 사마천은 치우가 져서 중원 땅을 잃었다고 기록한 반면 우리 문헌에는 치우를 중국의 시조 헌원(황제)을 당당하게 토벌한 군주로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한․중 간의 상반되는 역사기술은 중국이 중화사관(中華史觀)에 따라 기록했으나 우리는 사실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치우환웅은 비단 무력으로 중원을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을 식민지화하여 우리 문화를 심어준 분이었다. 즉 중국문화를 만들어준 분이었다. 그러니 중국에서 1995년 탁록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지어 치우제를 황제, 염제와 함께 중화문화의 공동시조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 북경 근처 가짜 탁록에 모셔져 있는 치우천왕(왼쪽)과 황제헌원, 염제신농. 중국은 이미 치우를 중화 3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    


2. 치우환웅의 개화사상   

사마천은 『사기』에서 치우(청구)가 헌원(황제)을 정벌하였다는 사실을 거꾸로 헌원이 치우를 잡아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치우가 헌원과 싸워 이긴 전투를 탁록 전쟁이라 한다. 치우는 이 전쟁을 하기에 앞서 헌원에게 격문을 보냈다.  

너 헌원은 들어라. 하늘의 아들은 단 한 사람 나다.  
너는 삼신의 가르침 즉 천명을 어긴 역적이다. 항복하라. 

이리하여 헌원은 치우환웅에게 항복하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헌원이 이겼다고 왜곡하였다. 그러니 사마천의『사기』는 중국 최초의 동북공정이었다. 

『환단고기』 「신시본기」에 보면 치우환웅은 한국인(청구인)이었고 천병(天兵)을 이끌고 헌원(중국의 조상)을 토벌하여 서토(중원)를 점령하였다고 기록하였으며 아울러 중국에 우리의 삼신문화를 심었다고 하였다. 중국은 당초 한국의 식민지였던 것이다. 헌원이 무식하여 치우와 싸워 연전연패하다가 후에 동방의 선진문화를 배워 치우와 싸워 다소 유리하였으나 끝내 이기지 못하였다. 치우는 중국인이 아니며 무만 알고 문을 모르는 장군이 아니라 문무를 겸비한 군왕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치우환웅이 중국을 정복한 뒤 야만국인 중국에다 우리 삼신문화를 심어 교화하였다는 사실이다. 싸울 때는 무(武)로 이겨야 하지만 이긴 후로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와 항복하는 적을 어루만져야 한다. 적이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죽이거나 노예로 부려먹으면 안 된다.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을 ‘교화(敎化)’라 한다. 교화한 다음에 비로소 치화(治化)되는 것이다. 교화 없이 치화하면 적이 마음속으로부터 귀순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으로 무를 다스린다는 말 즉 문승(文勝) 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치우환웅을 군신으로 알고 씨름이나 궁술의 시조로 알고 있으나 치우환웅에게는 다른 일면이 있었으니, 환국의 삼신문화를 계승하여 배달국을 강국으로 만들고 이웃한 후진국들을 개화(開化)시켰던 것이다. 개화는 무화(武化)가 아니라 문화(文化)를 말한다. 化는 ‘바꾼다’, ‘고친다’는 뜻으로서 야만인을 문명화시키는 것을 이화(理化)한다, 교화(敎化)한다, 치화(治化)한다고 하는 것이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 치우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편집부


3. 치우환웅의 중원 정복   

『환단고기』에 의하면 치우환웅은 배달국 신시의 자오지 환웅(14대)이었다. 치우환웅은 먼저 무력으로 중원을 정복하여 배달국 신시의 영토를 동서 1만 리의 대국으로 만들었다. 이 같은 치우환웅의 정신은 단군을 거쳐 부여, 고구려로 이어졌다. 그리고 광개토대왕과 을지문덕 그리고 연개소문으로 이어졌다. 고구려는 비단 치우환웅이 물려준 강토만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어 국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치우환웅의 무력 즉 그의 강한 주먹만 기억하고 그의 부드러운 문화를 잊고 이어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환단고기』를 다시 정독하여야 한다.   

치우환웅께서는 서쪽으로 탁예(琢芮 탁록과 예성)를 정벌하고 회대(淮垈 회수와 대산)를 평정하여 산을 개척하고 길을 내시니 그 강토가 1만 리에 이르렀다. 

치우환웅이 청구(靑丘에서 일어나시어 / 만고(萬古)에 무성(武聲)을 떨치시니 / 회수태산(淮水泰山) 일대가 모두 천황에게 귀순하였고 / 어느 누구도 침략해 들어오지 못하였다.   

치우환웅이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황무지를 개간하고(闢土地), 지하에서 동철을 채광하여(採銅鐵) 무기를 만들어, 군대를 훈련하고 산업을 일으키니(練兵興産), 구환이 모두 하나가 되어 그를 한 조상으로 삼았다(時九桓皆以三神爲一源之祖). 

그러니까 농업과 산업과 군사의 여러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신 분이었는데 그가 그렇게 큰 공을 세우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문화였다. 이 문화는 선대의 환웅에게서 물려받은 탁월한 통치술이었다.  
환웅 1세는 개천(개국)하여 천경(천부경)과 신고(삼일신고)를 강론하여 백성들을 크게 깨우치시었다.  




원본 기사 보기:greatcorea.kr
                                  

오성취각으로 배달국을 증거하다!

박석재 연구위원, 국학원 148회 국민강좌에서 밝혀


▲ 제148회 국민강좌가 열리는 가운데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가 천문기록으로 확인됐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국학원 주최로 열린 제148회 국민강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배달국”이라며 “배달국의 오성결집 기록이 천문류초에서 발견됐다”라고 말했다.

이날 박 위원은 ‘천문으로 개천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박 위원이 밝힌 ‘천문류초(天文類抄)’는 세종의 명에 의해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06∼1465)가 옛 기록들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한 곳에 모이는 오성결집(五星結集) 기록은 중국 삼황오제의 전욱 고양씨(顓頊 高陽氏, BC 2513 - BC 24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갑인년 (BC 2467)
해의 이름이 갑인일 때, 갑자월 초하루 아침인 동짓날 한밤중에 해와 달 및 오성이 자방에 합하였다.

“한국아마추어학회에서 오성결집현상을 30개 이상 발견했다고 합니다. 4500년 전의 천문기록을 제가 맞춰보는거에요. 천문소프트웨어를 돌리려니 제 손이 벌벌 떨렸습니다.”

▲ 제148회 국민강좌가 열리는 가운데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BC 2467년보다 3년 전인 BC 2470년 9월 새벽 ‘오성취각(五星聚角)’이 있었다. 오성이 28수 각(角) 별자리 주위에 모여서 취각이라고 한 것. 오천년 전의 기록에서 3년의 오차는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오성취각의 발견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박 위원은 삼황오제의 시대가 전설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천문기록을 통해 관측하는 천문대가 있었고 이를 통치하는 국가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배달국의 역사 또한 허구가 아니라는 점으로 연결된다.

박 위원은 중국에서 발견한 동이족 유적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요하문명의 우하량 유적의 적석총, 상투를 튼 고대인의 무덤, 곰토템 여신상 등이다. 특히 옥으로 상투를 틀었다는 점에서 동이족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는 배달국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헌은 잇는가? 현재는 <환단고기>가 유일하다. 1911년 독립운동가 계연수가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모은 책이다. 일부 학자들의 위서론에 대해서도 박 위원은 “환단고기도 가필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필이 없는 역사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위화도회군 이후 조선왕조는 명을 큰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니 작은집에서 제사(천제)를 지낼 수가 없었죠. 대륙을 통치한 단군의 역사서도 수거했습니다.”

세조실록에 기록된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三聖記)가 대표적이다. 이는 <환단고기>에 담긴 책명과 같다. 이는 조선왕조의 수거령에 불구하고 단군사서가 후대로 전승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군세기> 오성취루 현상은 1993년 박창범 교수와 라대일 박사의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논문으로 밝혀졌다.

▲ 제148회 국민강좌가 열리는 가운데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이 강연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박 위원은 오성취루 현상보다 앞선 오성취각의 발견으로 배달국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5가지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첫번째는 개천이다.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조선을 세운 것이 아니라 BC 3,897 거발환 환웅이 태백산 신시에 풍백, 우사, 운사와 함께 배달국을 세운 것이 개천이라고 했다. 이어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은 환국의 장자국을 상징한다. 환국에 대해서는 이마니시 류가 삼국유사에서 환국을 환인으로 변조한 사례를 들었다. 환국은 존재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 조선 이전부터 구전된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론이라며 현대의 CC (Continuous Creation) 우주론, 정상우주론 (定常宇宙論)과 같은 개념과 비슷하다고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치우천황은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이고 태호복희는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의 막내 아들이다.

박 위원은 직접 작사한 개천가라는 노래를 들려주면서 “대한민국은 개천사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내달 국민강좌는 8일 조성제 무천문화연구소장이 ‘상고사 속의 무속문화’를 주제로 강연한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배달의 14대 자오지 환웅천황, 치우

 

    ‘환국(환인)-배달(환웅)-조선(단군)…’으로 내려오는 한민족사의 국통을 보면, 3301년간 일곱 분의 환인천제가 다스린 환국을 이어 배달 환웅천황이 배달국을 건국한다. 그 배달국 당시, 서기전 2707년에 즉위하여 109년간 배달국을 다스린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천황이 곧 치우천황이다. 치우(蚩尤)란 세속의 말로 ‘우뢰와 비를 크게 지어 산천을 바꾼다’는 뜻이다,
  
  당시 염제 신농씨 나라의 8대 마지막 임금인 유망이 쇠퇴의 길을 걷자 치우천황은 웅도(雄圖)의 대망을 품고 서방으로 출정하여 모든 제후들을 정벌하고 유망의 수도를 함락시킨다. 이 때 유망의 제후로 있던 헌원이 치우천황의 입성소식을 듣고, 대신 천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이에 대항해 온다. 그리하여 동방 고대사에서 저 유명한 탁록 대전투(동방 최초의 국제전쟁)가 벌어져, 10여 년 간 무려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간다. 치우천황은 도술로 큰 안개를 지으며 최초로 제작한 금속병기를 동원하여 마침내 대승을 거두고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는다.3)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東夷)라고 부른 것도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 때부터이다. 이후 치우천황은 동방 무신(武神)의 시원이 되어 수천년 동안 동방의 조선족은 물론 한나라 진나라의 백성들에게까지 위력적인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 된다.      
  
  치우에 대한 역사왜곡, 사마천의 『사기』
 
탁록의 대결전 중에 치우천황의 장수 치우비(蚩尤飛)가 헌원군에게 성급히 공격을 시도하다 몰살당한 사실이 있다. 이것을 두고 훗날 고조선과의 대전쟁에서 크게 패한 한무제와 그의 사관 사마천은 『사기』에서 “금살치우(擒殺蚩尤)”, 즉 ‘헌원이 치우천황을 사로잡아 살해했다’고 사실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또 당시의 상황을 “치우작란”(蚩尤作亂), 즉 치우가 헌원에게 복종하지 않고 난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후의 위치에 있었던 헌원이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군사를 일으켜 천자인 치우천황에게 도전해온 것이니, “황제작란”(黃帝作亂)이라 함이 역사의 진실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헌원은 황제로 격상되어 지존의 존재, 하늘과 같은 존재로 떠받들어 놓고, 치우는 수신인어(獸身人語, 짐승 몸에 사람 말을 함)로 묘사되어 짐승 같은 존재, 요술부리는 아주 하찮은 존재로 격하시켜 놓았다. 근원적인 역사왜곡의 첫 페이지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배달국 14대 자오지환웅 치우천황은 우리민족과 관련 없는 사람이다. 묘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는 분이다?
 

환단고기에는 우리민족의 조상으로 나온다. 환단고기 이외에는 치우가 우리민족의 조상이라 전하는 고유사서가 거의 없다. 그것은 고유사서들이 강탈되어 그런것이다.

 

치우를 우리 민족이 모셔온 흔적은 [둑신사纛神祠]라는 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독 또는 도>라고도 읽는다. 일제시대 말까지 동대문밖 <뚝섬>에 있었다고 하는데 [뚝섬] <>는 바로 <>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치우蚩尤와 황제黃帝가 싸움을 한 [탁록전涿鹿戰]의 대형벽화가 있었는데 길이 36-높이 6자 정도라고 하니 크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방을 전후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민속 곳곳에 남아 있는 [치우蚩尤]에 대한 신앙이 돋보이고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단오 날 <적두적설赤舌의 부적符籍>으로 백병百病을 쫓는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치우부적蚩尤符籍]으로 [둑신묘纛神廟-둑신사纛神祠]에서 전달되었다. 조선 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조상으로 특별하게 인식한 군신軍神 치우蚩尤에게도 꾸준하게 제사를 올렸다. 이름 하여 [둑제纛祭] [둑소제纛所祭]의 준말이다. 일 년에 두 차례 정기적으로 지냈는데 무장武將들 또한 임지任地로 떠가기 전에는 반드시 둑신纛神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려시대에도 [둑제纛祭]를 지냈다는 기록을 <고려사高麗史>에서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祠堂이 바로 둑신묘(纛神廟-둑신사纛神祠)로서 <둑도纛島> [뚝섬]에 있었다. [뚝섬]이란 명칭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 유래되었다. 이렇듯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하게 군영軍營을 대표하는 대장기大將旗로서 [치우蚩尤]의 상징이라고 전해지는 []이라는 깃발을 [둑소纛所]에 둔 뒤 매년 갑옷을 입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묘족은 <머리채를 삼끈으로 묵은 상투쟁이로서 마치 싹이 돋은 듯하여 라 했다-회남자淮南子 11 제속훈> 라는 구절과 <산해경> 17 대황북경에 <서북해 밖 흑수 북쪽에 날개달린 사람(鳥夷系)이 있으니 이름하여 苗民이다>란 기록에 비추면 이족이면서 머리에 상투를 튼 민족이다. 그리고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왕동령王桐齡 중국민족사>라는 구절이 있다. , 묘족은 우리와 공통의 조상을 가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오히려 묘족이 있던 영역까지 배달국의 영역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고, 환단고기에 의하면 이러한 모든 추정들이 사실임이 밝혀진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5,27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16 [한국사] 고려 라는 국호에 대해서 (5) 하얀돌 07-31 2158
415 [한국사] 가야의 미스터리 (1) 엄빠주의 07-29 2006
414 [한국사] 훈민정음 해례본 (1) 엄빠주의 07-28 2758
413 [한국사] 조몬인이 가야를 세웠다고? (86) ZeroSun 07-28 2690
412 [한국사] "日문자 '가타카나' 신라서 유래 가능성" (65) 엄빠주의 07-28 5331
411 [한국사] 제4의 제국 가야 (32) 호랭이해 07-28 2602
410 [한국사] 해태도 호랑이도 용도 봉황도 모두 동이 태생인가요? (8) 아스카라스 07-28 2099
409 [한국사] 특집·국어에 나타난 일본어의 언어적 간섭】 일본어… (13) 권커니 07-27 3357
408 [한국사] 조선은 왜 도로정비를 하지않았나요? (40) 아스카라스 07-26 3880
407 [한국사] 신라/백제 유물, 복식 및 갑옷. jpg (5) 흑요석 07-26 7659
406 [한국사]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좋게 평가가 되나요???? (9) 흑요석 07-25 2666
405 [한국사]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의 재편 -1부/2부-우… (1) Thomaso 07-25 1901
404 [한국사] 고대사 잡생각들 (1) 관심병자 07-24 1639
403 [한국사] 조선시대 무인들 17~18세기 한양은 군사도시 (3) shrekandy 07-23 4297
402 [한국사] 17-18세기 조선의 37만 대군 (113) shrekandy 07-21 7687
401 [한국사] 삼국유사, 삼국사기 원본이 일본에 있는건가요? (4) 아스카라스 07-21 3394
400 [한국사] 재밌는 조선-명나라 조공 기록 (명나라 기록!!) (4) shrekandy 07-20 4414
399 [한국사] 장옥정 사랑에 살다 보고 있는데요.. (12) 에치고의용 07-19 2009
398 [한국사]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꿈꾸신 나라 (17) 두부국 07-18 3220
397 [한국사] 대만 드라마 고려와 송나라 (34) 고독한늑대 07-17 8423
396 [한국사] 유물로 보는 한국사.. (4) 고독한늑대 07-17 2158
395 [한국사] 한자어가 우리말임은 어떻게 확신하나요? (33) 아스카라스 07-17 3147
394 [한국사] [고려] 쿠빌라이 딸이자, 충렬왕비- 제국대장 공주의 … (9) mymiky 07-14 5366
393 [한국사] (개인 경헙담) 한국의 브랜드화를 하는 방법. (13) shrekandy 07-14 4143
392 [한국사] 엥흐바야르 (6) 왕후장상 07-12 1816
391 [한국사] 내가 알고 싶은 것은 ... (1) 바늘천사 07-12 2058
390 [한국사] 우리민족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6) 바늘천사 07-12 2951
 <  181  182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