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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30 23:00
[한국사] 조선통신사에 대한 당시 일본의 대접(반응)
 글쓴이 : 해달
조회 : 3,472  

(전략)

" 이 같은 현대 일본인들의 태도는 18세기 말 이전에 일본인들이 보여준 태도와 상반된다. 왜냐하면 18세기 말 이전의 일본인들은 어떻게든 조선 문화를 수용하고 싶어 안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조선과 자신들의 연관성을 부정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었다.

 일본 측의 요청으로 파견된 조선통신사 사절단은 한양에서 부산과 대마도를 거쳐 교토 혹은 에도까지 이동했다. 통신사 사절단은 보통 몇 백 명으로 구성됐다. 예컨대, 인조 임금 때인 1636년에는 579명이고, 효종 임금 때인 1655년에는 488명이었다. 통신사가 조선-일본의 공동 속국인 대마도를 지나는 순간, 사절단의 규모는 확 불어났다. 대마도인들로 구성된 수행단이 통신사 사절단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1682년에는 대마도 수행원들만 1,760명이었다. 조선통신사 일행보다 대마도 수행단이 훨씬 더 많았다. 양쪽을 다 합치면 전체 규모가 2천 명을 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대규모 행렬의 이동 경비는 일본 측이 부담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사신단이 외국 경내에서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신단의 이동 비용은 초청국이 부담하는 게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에 따라 막부는 통신사 행렬이 '지상 최고'의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막부는 통신사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나 교량을 정비 혹은 신설하고 중간 중간에 휴게소나 간이 화장실을 마련했다. 이들이 육로로 이동할 때는 말들을 제공했다. 말들이 아프거나 다칠 경우에 대비해서 비슷한 숫자의 말을 예비로 준비했다. 통신사 행렬이 중간에 선박을 이용하게 될 경우에는, 선박들을 호위할 일본 배들을 따로 준비했다. 6척의 조선 선박과 50척의 대마도 선박을 942척의 일본 선박이 호위한 적도 있다.

 통신사 행렬이 육로나 해로가 아닌 강을 통해 이동할 경우에도 많은 비용이 소모됐다. 이런 경우에는 사전에 지역민들을 동원해서 강바닥을 준설해두었다. 한 지역에서 몇 만 명의 주민이 동원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준설 작업에 그치지 않고, 일본 주민들이 직저 배를 끌어당겨야 할 때도 있었다. 강 양쪽에서 몇 백 혹은 몇 천 명의 일본인들이 통신사 선박들을 끌고 가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일에 인원을 동원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었다.

 지방 관리 입장에서는 통신사 행렬이 자기 지역을 지나가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자기 지역에 체류하는 것은 훨씬 더 난감한 일이었다. 최고의 요리와 숙소와 여흥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을 사전에 준비할 목적으로, 통신사가 지나가는 지역에서는 1년 전부터 주민들에게 특별세가 부과되었다. 이 부담이 어찌나 컸던지, 이것이 계기가 되어 농민반란이 일어난 사례도 있었을 정도다. 2천 명이 넘는 인원이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6개월 내지 1년간 일본 땅에 체류했으니, 통신사가 한 번 방문할 때마다 일본 전체가 홍역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제임스 루이스 교수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통신사 접대 비용은 일본 국가재정을 휘청거리게 할 만한 것이었다. 1682년 에도로 가는 중간 거점인 긴키 지역에서 통신사 접대에 투입된 비용은 쌀 320만 석 정도였다. 17년 뒤인 1697년에 일본 전국에서 생산된 쌀은 2,580만 석이었다. 통신사 행렬이 얼마나 대단한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통신사가 방문할 때마다 일본 재정이 휘청거렸기 때문에, 일본의 국력이 어느 정도 신장된 18세기 후반에는 "이렇게까지 조선을 접대해야 하느냐?"는 불평의 목소리가 막부 내부에서 나왔다. 이 정도로 통신사의 방문은 18세기 말 이전의 일본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부담스러운데도 조선 사신을 극진히 대접한 이유는, 18세기말 이전만 해도 조선이 일본에게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선,오키나와 외에는 수교국이 없었던 일본으로서는 조선을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대륙과의 무역에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통신사를 열렬히 환대한 것이다.

(후략)

-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김종성) 중에서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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