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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14 12:15
[한국사] 질문드립니다.
 글쓴이 : 플립플롭
조회 : 2,309  

정중하게 질문드립니다.

제가 그동안 궁금했던것이 있는데 오늘에서야 쓰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역사 고수들이 많아 보이고 사실관계에 있어 저도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럼, 질문 내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워 한족에게 변발령을 내려 많은 한족인들을 무참히 도륙하였고 청나라문화를 강요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인접 국가이면서 조공으로 군신 관계를 맺은 조선은 왜 그런 변발의 문화나 의복같은 문화 강요를 받지 않았는지요? 만약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조약이나 조공이 있었다면 그 부분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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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6-01-14 12:25
   
만주족들에게,
중원땅은 직접 지배할 공간이고, 한족들은 피지배 민족입니다.

그에비해,
조선은 중원으로 가기전에 미리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외국이구요.

그 차이입니다.
     
플립플롭 16-01-14 12:27
   
내 감사합니다. 참고 하겠습니다.
          
mymiky 16-01-14 12:31
   
당시 동아시아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 입니다.
오늘날처럼, 국제법과는 많이 다른 세상이예요.
 
중원을 중심으로, 여러 번국들이 있고, 서로간엔 질서가 있습니다.
중원의 주인이 한족이 될수도, 다른 이민족이 될수도 있지만
시스템 자체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국(=종주국) 보통, 중원땅을 차지한 나라는 상국으로써 권위을 가지고,
번국(=속국, 조공국,제후국) 중국 이웃국가들을 잘 조율할 필요가 있고

번국은 상국을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 본분에 맞게 행동하며,
양국은, 서로간에 조화로움을 추구합니다.

이것을 체계화 한것이,
서로간에 책봉과 조공이란 형식이구요.
 
이 관계는,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다양한 면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만
 
번국이 된다고 해서, 그게 중국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식 행정의 군,현이 설치된 것과는 다른 의미니까요.

따라서, 제국주의적 식민지처럼 말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속국이란 단어도, 당대엔 나쁜 의미로 쓰이지도 않았구요.
( 단, 요즘엔 속국이란 말이 부정적인 느낌이 풍긴다고,
방송이나 사극에서도 형제국이나, 제후국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세기에 서양으로부터 만국공법이란 국제법 개념이 들어오고,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이런 시스템은 깨지게 됩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다, 중국 경제가 떠오른다고 할지라도
이미, 예전처럼 책봉을 하고, 조공을 하고 하는 관계로 돌아갈순 없습니다.

(중국은, 자기들이 한창 잘 나가던 시대의 향수가 있으니까,
패권주의로 나갈려고 하는건 있지만 ㅋㅋㅋ
중국 또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국제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지요)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김한규 교수가 쓴
[천하국가-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질서] 라는 책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좀 두껍긴 해도, 님이 역사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플립플롭 16-01-14 13:02
   
네 긴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개소문 16-01-14 13:33
   
플립플롭님  mymiky  글은 어지간하면  참고하지 마시고,  나중에 다른사람이 댓글달면 그때 참고하세요!  그대로 믿을까 싶어 이렇게 댓글 답니다.
                         
mymiky 16-01-14 13:36
   
연개소문님.
제 글 어디에 잘못된 점이 있나요?
님이 보기에 부족한 면이 보이면, 어디가 이렇다고 말씀하세요-
                         
Helios 16-01-14 13:47
   
흠........연개소문님이 참고를 하지말라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_-

저도 궁금했던 내용이라 보고 있는데
한반도가 중국 변천사에서 일제시대마냥 포함된적은 있었던가요?

속국이라는 표현에서 조금 흥미로웠네요
mymiky 16-01-14 13:22
   
아.. 그리고

속국이면 자주를 못하고, 자주를 못하면 속국이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속국과 자주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은 아니였습니다.

이것은
19세기, 조선이 외국들과 수교를 할때도 드러나는데요,

조선이 쇄국정책을 할 때는
우리는 청나라의 속국이라서 / 우리 마음대로 할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이것은 그냥 핑계였는데,
우린 너희들과 친해지고 싶지 않으니, 이만 돌아가 달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말입니다.

반대로, 조선이 개방정책을 할 때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한다. 청나라에 대해서는 신경쓸거 없다고 나왔죠.

이것은, 청나라도 마찬가지라,

공친왕은 미국 대사에게,
조선은 우리 청나라의 속국이지만/ 내정에 간여하지 않으므로/ 미국과 조선이 알아서 하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상국과 번국은, 수도-지방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간에 외국-외국이기 때문에
중국이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에 프랑스/ 조선에 일본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들자
청나라는 무척 반발하죠.

청나라로써는 상국으로써 체면이 상하는 일이라 여겼고,
이 두 나라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불전쟁과 청일전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졌고,
더이상 예전처럼 권위를 세우지 못한채 빠르게 쇠퇴하게 됩니다.

동아시아에서 수천년간 이어져 온 시스템이 종말을 맞게 되죠.

청일전쟁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게 되는데,
1조에 조선이 독립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이건 조선이 청나라령에서 독립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구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옛 봉건 시스템에서 탈피한다는 뭐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일본에 잡아먹혀 식민지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 뒷 부분은 잘 아실테니 패스할께요~ ㅋㅋ
     
플립플롭 16-01-14 16:38
   
부연 설명 고맙습니다. 질문정도가 아동틱하지 않았나 걱정했지만 정말로 많이  궁금하였고 지금까지 우리민족이 중원의 변방에서 어떻게 흡수 되지 않고 살아 남았는지 대단하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Centurion 16-01-14 15:08
   
위에 밀키님이 설명 잘해두셨는데..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외국과 내국의 차이지요.

조선은 왕이 항복해서 청나라 황제한테 숙이긴 했는데..
청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해서 뭐내놔라 요구는 해도,
조선왕조 폐지하고, 직접 관리를 파견해 통치를 하던 그런 직할령은 아니었죠.

반면, 명나라 땅쪽은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가서,이자성의 잔당과 명나라 잔당들과
계속 전쟁을 벌이며 직접 통치하던 직할령이었죠.

변발령의 의미도.. 청나라의 지시를 받아들이고, 청나라에 충성하느냐? 아니면 반항하느냐?를
확인하는 차원도 있었기에, 변발령을 따르지 않은 중국인들은 싹다 반역자 혹은 미래의 화근으로 보고 죽인것이죠.

반면, 조선은.. 왕이 항복을 해서 청나라의 명목상의 신하가 되었고,
청나라로썬.. 그냥 명나라 쳐들어가기전에 뒤통수나 치지 말았으면 하는게 목표였던 나라였던터라..
조선에 대해선 변발령을 강요한다거나 팍팍하게 굴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청나라에는 조선 말고도 삼번이 있었는데..
오삼계 등 명나라 출신 장군들이 청나라에 협력해 청나라 외곽지역의 번왕이 되었죠.

이들 세력이 막강해서 강희제가 3번을 어찌 없앨까 많이 고민을 했고,
녹정기 같은 무협소설이나 중국 역사 드라마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번국이긴 하지만, 사실상 청나라 내부의 번국 개념이었고..
조선은 외부의 번국이라 딱히 없앨 생각도 안했죠..
고구려정씨 16-01-14 20:22
   
청나라는 여진족출신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고 건국하였고 예전의 금나라를 잇는다고 하여 처음에는 국호를 (후)금이라 하였습니다. 뒤에 청 태종이 청으로 국호를 바꿨고요.

예전 금나라는 신라가 망하고 김씨 세력이 요나라 북동쪽의 여진족으로 건너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후손이 여진족을 통합하고 금나라를 건국하고 송과 연합해서 요를 멸망시키고 송의 화북을 점령하여 남송으로 내려가게 합니다.

이 금나라는 자신들의 조상이 신라 김씨라고 밝혀놓고 고려를 모국으로 여기고 금나라가 건국되고 강성하기 전까지 고려에 조공하였습니다. 이 후 금나라가 강성해지자 고려에 사대하라고 요구하자 당시 고려에 외척 이자겸이 집권해있었는데 전쟁을 피하려고 순순히 응했구요.

청나라는 다들 알겠지만 광해군과 인조의 대응이 다르다는 것을 넘어가구요.
청나라도 금을 잇는다는 것은 신라 김씨세력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것이고 실제로 금나라, 청나라 모두 김씨 후손이라고 중국사서에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은 중국 땅을 획득하고 강성해지기 전에는 고려와 조선을 모국이나 형제국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깐 변발의 문화나 의복같은 문화를 강요하지는 않지요. 중국이야 사람이 많아 통제하고 반란을 대비하고 한족을 통솔하기 위한 것이지 우리나라는 인구도 별로 많지 않지요.. 가뜩이나 임진왜란 겪은 후인데..
누르하치가 임진왜란 때 왜구의 진격이 거센 것을 보고 선조한테 원군보내줄까 했는데 선조와 대신들 거부.. 명나라에 원군 요청..
     
mymiky 16-01-14 20:59
   
1.) 문헌상으로 보이는, 누르하치의 첫 국호는 [건주국] 입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건주위에서 나온 이름이고, 

그뒤 금을 잇는다는 뜻으로 대금국(大金國)으로 고치는데,
아골타의 금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뒷 후(後)자를 넣어 역사학계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고조선을,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위해 옛 고(古)를 쓰는 것처럼 말이죠.)

그뒤, 청태종 홍타이지는 명나라 밝을 명(明)의 음양오행을 고려해
/ 맑을 청(淸)을 써서, 청나라라고 고칩니다.
그리고, 국명뿐만 아니라 여진족의 부족명도, 지혜를 나타내는 문수보살(만주슈리)을 따서
만주라고 고칩니다.

2.)  보통, 조선이 명만 따르고, 청은 무시해서 호란이 일어났다고
통상적으로 그런 이미지로 아는 분이 많고, 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그 논조 따르기 때문에,

중립외교를 한 광해군 성군이고, 호란을 불러 일으킨 인조는 죽일놈으로 알지만
사실, 이 두 왕이 외교가 많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친명배금은, 어차피 광해군을 내쫒기 위한 간판달기일 뿐이고
(새눌당이, 항상 통일론을 말하면서, 뒤로는 빨갱이 카드 내어 놓듯이;;)

일단, 광해를 내쫒은 후, 현실에서는 인조의 반정공신 들이였던 김류나 최명길도,
고려가 송, 금에게 사대했듯  명, 후금에게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양다리 걸치는건 이미 전례가 있는 일이고, 사대로써, 나라를 보전하면 된다고요.

보통, 일어나는 청을 무시하고, 명만 쫄쫄 따라붙는 바보 조선이란 이미지는
일본인들이 씌운 식민사관 중 하나입니다.
(쇠퇴해가는 청나라 붙잡고, 일어나는 우리 일본제국에 안 붙는 조선을 그렇게 욕하기 위한 것입니다. )

사실, 따지고보면, 인조는 호란이 일어나기 반년전에(1636,6월) 청국을 인정한다는 공식적인 국서를 보냅니다.
당시, 후금은 황제국이라 칭하며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조선보고 형제국에서 황제국으로 격상해 인정하라고 하죠.
거기에, 신하들의 반발은 있었으나, 조선측에선 반강제적으로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는게 맞겠죠.

하지만, 그해 겨울, 청은 압록강을 건너와 조선을 칩니다.
(-어차피 청을 무시했다는 내용은 청나라측의 명분일 뿐입니다.)

당시, 조선인들이, 낙후되었던 여진족들을 무시하긴 했지만,
이미 당장 눈앞에 커버린 청이란 나라는 무시할수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인 개개인보고는 미개하다니, 잘 안씻는다니, 시끄럽다고, 궁시렁 댈지몰라도,
중국이란 국가 자체는 무시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호란 책임을 우리측에서 이해하기 바쁘지만,
 
오히려, 현재 역사 학계 연구나 논문경향은
호란의 요인이, 조선보다 청의 내부사정에서 나왔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알려진 광해-인조대의 정책들도 재평가 받고 있구요.

명과 싸우느라, 조선은 후순위였던 누르하치에 비해,
홍타이지는 아버지때부터 조선부터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였고,
그런 생각을 가진 그가 다음 보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조선이 엎드리든, 고개를 쳐들던,
그냥, 청의 입장에선 중원으로 가기전에 좀 손 봐주고 시작할 나라였습니다.
거기다, 병자년의 청의 식량난과, 몽골 부족들에게 콩고물도 좀 챙겨줘야 했던 상황이구요.
(병자호란때 약탈은 참전의 댓가로 몽골팔기들이 주도하고, 만주팔기는 방조,묵인하였습니다.)

왜란이 조선이 일본에게 잘못한게 있어 생긴 전쟁이 아니듯,
호란도 따지고보면, 조선이 청에 잘못이 있어 일어난 전쟁이 아닙니다.
적국의 수장이 정벌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 단행한 것이죠.

이런 이웃을 둔 우리나라가 복이 없었던 것일수도 있고,
문치주의로 무가 약했다거나, 인조의 인사정책에 대한 비판은 있을수 있겠지만요.

3. )왜란때 누르하치가 원군을 보내준다고 조선에 입 턴건 사실입니다만 /
당시 그는 아직 크기 전으로, 당시 요동은 명의 관리하에 있었습니다.
누르하치는 명나라가 씌워준 건주위 부족장 감투을 쓰고, 부족인들을 통솔하고 있었고요.

다분히, 그의 행동은 조선반응을 한번 떠보는 목적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조선을 도와줄 입장은 못 되었을꺼라고 생각이 드는데,
역시 조선의 신하들도, 누르하치의 꿍꿍이를 모르진 않았으므로, 거절합니다.
어차피 지가 단독으로 보내주고 말고 할 입장도 아니였구요..

그렇게, 요동에 주둔중이던 명의 북병(北兵)들이, 조선으로 파병간다 내려가고,
명-조선-일본이 한창 쌈박질 할때, 그 공백기을 이용해, 누르하치는 확-성장하게 됩니다.
꼬마러브 16-01-14 22:20
   
역사적으로 조공 - 책봉 체제가 성립된 것은 한나라때부터 입니다. 한나라는 동쪽으로 위만조선을, 북쪽으로 흉노, 남쪽으로 남월국, 서쪽으로 서역을 공격해 전성기를 이루는데 이 때 부터 조공국가 라는 개념이 생겼죠. 이 조공국가의 개념은 당시 유럽에서도 나타나는데 바로 로마동맹국가입니다. 동맹국가는 말 그대로 동맹, 즉 깊은 우호 관계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즉 내정에도 한정적인 간섭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동맹국가에는 아르메니아, 트라키아, 갈리아 등이 있는데 이 중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지역)을 예로 들면 갈리아가 로마에게 조공을 하면 로마는 그의 몇배는 값진 최고급제품들을 하사했습니다. 이것때문에 갈리아가 재물을 낼름 가지고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요. 하지만 갈리아는 로마에게 조공은 했지만 로마가 갈리아를 직접 지배하진 않죠. 이것이 동맹국가의 개념입니다. 황제국(동양에서는 한나라, 서양에서는 로마)가 주변국을 직접적으로 통치할 수 없으니 조공관계(=로마의 동맹관계)를 맺어 한정적인 간섭만 가능토록 한 것이죠. 단 로마의 경우 동맹국가를 속주화 시킴으로써 동맹국가의 개념이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 한나라는 주변국들을 속주화시키지 못하고 혼란에 휩싸여 속주화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의 차이죠. 이후 조공 - 책봉 관계는 형식적으로 이어져왔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와서 조공 - 책봉관계는 서양문물이 들어오고 나서 무너지죠.. 그리고 조공 - 책봉관계 역시 서양의 관점대로 보게됩니다. (종주국 - 식민지관계로..))
즉 동양에서 조공 - 책봉관계는 서양처럼 종주국 - 식민지 개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예로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장수왕시기 장수왕은 후대에 조공왕이라고 불릴 만큼 중국에 조공을 합니다. 조선같은 경우도 중국에 끊임없이 조공을 했고요. 왤까요? 이유는 간답합니다. 중국의 하사품때문입니다. 조선을 예를들어 조선이 중국에 조공을 하면 중국은 거기에 몇배나 값진 하사품을 줘야했습니다. 갈리아가 로마에게 값진 하사품을 받았던 것 처럼요 (그래서 당시 조선은 중국에게 계속 조공하려고 했고 중국은 조공하지 말았음 했죠) 그래서 중국(당시 명나라)는 주변국들에게 조공을 3년에 1번씩 받기로 합의를 봤는데 조선만 1년에 3번씩 받습니다. 이는 조선의 국력이 강대하였기 떄문이라 해석할 수 있죠.
좌우지간 즉 조선은 청나라에게 있어 제후국 즉 조공관계를 가진 외국이였고 명나라의 한족들 같은 경우는 피지배민족 지배를 당하는 민족이었다의 차입죠
꼬꼬동아리 16-01-15 17:56
   
꼬마러브님 말씀이 제일 맞는거 같애요 조선도 처음부터
약했던건 아니니까요 속국이란말 식민사관 맞습니다
예를들어 조선이 가격이싼 여진족 말 1마리를 사서 명에게 조공하면
명이 체면상 명마10마리를 주는것과 같죠  현대에서 인식하는
속국은  완전 다르죠 그어떤  나라도 우리나라를 완전 식민지로 만든건
일제시대 한번 뿐이없죠 쳐들어와서 손해만 잔뜩  보고가니.. 어쩌면
청나라도 완전굴복  시킬수없다 역사를 통해서  알게된 것일 수도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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