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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11 04:12
[기타] <기황후>, 몽골군이 고려인을 총알받이로 동원했다고?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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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좀와라 16-01-11 04:24
   
이글을 보면 몽골을 싫어 하는 분들이 떼거지로 오겠네요. 저도 길게 쓰기 싫어서 짧게 쓰자면 한국의 전통사상은 삼자가 둘째가 되어서 왕이 된다면 영원한 제국을 이룩한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인 또는 한국계만이 할 수 있는 사상이며 이는 신족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징기스칸은 큰 아들 주치를 이상한 놈으로 만들고 셋째 오고타이를 왕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태종은 세종을 똑 같이 하지요. 역시 이병철도 이건희를 똑 같은 형식으로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태양이라는 북한 놈들도 이짓을 하던데요. 이건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진정한 제왕은 세째가 둘째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 되거에요.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몽골은 한국인이 아니라 하지만 자신들은 한족이라 믿었다는 겁니다.
     
그노스 16-01-11 07:59
   
김운희 교수님의 글에서 배울점이 많은것 같고 몽골과 우리나라가 한민족일지 모르나, 셋째가 둘째가 되어서 왕이 된다면 영원한 제국을 이룩한다는 한국계들의 사상이 있고 오직 신족(?)만이 할 수 있다며 칭기스칸, 이병철 회장 등등과 연관지으시는 님의 견해에 의문이 듭니다.

유목민족의 전통상속법은 셋째아들이 둘째가 되어 계승하는게 아니라, 말자상속(막내)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왕위계승은 일반적으로 2세기 후반에 가서야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려는 부자상속제를 도입했으나, 조선과 같이 부자상속제가 확고하지 않았고, 초기부터 형제상속이 흔했으며, 부자상속제가 확고해진것은 후기라 알고 있습니다.
조선의 경우엔 왕손이 워낙 귀해서 셋째가 둘째가 되어 계승했는지 논하기 어려우나, 유명한 첫째 양녕대군과 셋째 충녕대군의 경우에는 셋째의 계승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걸 님께서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premium&contid=2015011503666&Dep0=twitter&Dep0

칭기스칸이 큰 아들 주치를 이상한 놈으로 만들고 셋째 오고타이를 왕위에 올렸다 하시는데, 칭기스칸 전기를 보면 주치의 출생이 의심스웠음에도 불구하고(메르키트 부족의 자식일 확률) 중세 몽골어로 '손님'이라는 뜻의 '주치'라는 이름을 얻게 하고 칭기스칸 생애에는 그를 다른 아들들과 똑같이 대접했으나 사후, 후계자 분쟁에서 이 문제가 터져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칭기스칸은 전통적인 말자상속(셋째가 아니라)을 충실히 따랐다고 봅니다.
큰 아들은 먼 곳으로 분가했고 막내아들 툴루이는 2년동안 대리로 칸의 임무를 수행했으며(셋째가 아니라) 몽골족의 말자상속 전통에 따라 '가장 가깝고 중요한 영토인 몽골 본국(중원이 아니라)'을 상속했지요.
https://books.google.ca/books?id=8gLRAwAAQBAJ&pg=PA339&lpg=PA339&dq=%ED%88%B4%EB%A3%A8%EC%9D%B4+%EC%98%81%ED%86%A0&source=bl&ots=OkJoqUDqC1&sig=Jmhdnrhmp8GJFSEg3caTBhbMvOg&hl=en&sa=X&ved=0ahUKEwir14e4zqDKAhUFdh4KHZr-CnYQ6AEIWzAS#v=onepage&q=%ED%88%B4%EB%A3%A8%EC%9D%B4%20%EC%98%81%ED%86%A0&f=false

칭기스칸이 영토 상속위치는 이렇게 몽골의 전통에 따랐지만, 첫째와 둘째아들 사이의 극심한 대립상황 속에서 관대하고 정치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셋째 오고타이를 칸으로 추대했다고 보더군요.
일개 몽골부족이 아니라 몽골제국을 유지하는 칸의 자리는 전통 상속법이 아니라 칸으로서 합당한 인물을 지명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봅니다.
명군으로 추앙받는 후대의 쿠빌라이칸도 전통적인 상속법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영원한 태양(?)이자 제왕의 나라, 북한의 경우에, 김정일이 한국의 유목민족 시절의 전통과 사상을 기억해서 말자상속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주변 증언에 의하면 온화한 형 김정철에 비해 승부욕이 강했던 김정은이 자격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계승한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http://m.lady.khan.co.kr/view.html?med_id=lady&artid=201012311726331&code=4

이건희 회장이 진정한 제왕의 나라를 세울거라 믿고, 유목민족식 말자상속을 원했는지 셋째가 둘째가 되어 상속하길 원했는지 이병철 회장의 속내는 모르지만 알려진 사실은 이렇다 합니다.

'애초 고 이병철 회장은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는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고 그룹의 경영권은 장남 맹희씨에게 물려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실제로 이맹희 전 회장은 1968년 삼성의 모태기업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부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 등 그룹의 주요 직위에 오르며 그룹의 경영권에 한 발 다가서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이 당시 삼성의 참모진에게 '맹희 부사장에게 세 번을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내게 가져오라' 고 했다는 일화는 당시 이맹희 회장의 위치를 대변해준다.

...청와대 투서 사건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변한다. 이병철 회장이 투서의 주범이 이맹희 회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병철 전 회장과 이맹희 전회장의 부자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http://msuperich.heraldcorp.com/view.php?ud=20150814000111&sec=01-74-02
     
구름위하늘 16-01-11 12:11
   
무식하면 용감하네요.

그노스 님이 차분히 설명했으니, 부가적인 첨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막내가 남아서 집안을 지키고, 위의 형들은 새로운 땅으로 나가는 것,
이런 기본적인 유목민족의 상속(?) 방법도 모르면서 무슨 글을 쓰신다고....
     
비좀와라 16-01-11 12:29
   
제가 말한것이 말자 상속입니다.

본래 신화에는 세명의 아들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세째가 계승자이자 창업주가 되기에 막내인 세째가 주인이 되기에 말자 상속이라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4명 이상일 경우 무조건 3명으로 만듭니다.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의 경우 막내와 장남은 죽고 둘째인 조비가 왕이 됩니다. 여기서 조비와 조식이 싸움이 붙는 이유가 그런 때문이고 당태종도 형과 싸우고 막내 동생이 일찍 죽습니다. 그리고 세종의 경우도 막내 동생은 의문의 병사로 역시 죽고요. 징기스칸의 막내 툴루이도 일찍 죽지만 계속해서 그 후손들은 왕권에 대립할 정도의 힘을 갖추어진 것이 역시 신화를 바탕으로 나오는 힘 입니다. 쿠빌라이도 역시 둘째이고도. 제일 좋은 것이 세째가 둘째가 되어서 왕권을 이어 받는 것이 좋으나 그렇지 못 할경우 서자나 차자에게 물려 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노아도 둘째에게 줍니다. 이것은 그외 기타 왕조에서 나오는데 대체로 한국계로 여기지는 국가에서 나옵니다. 터어키에서 뇌제의 아버지가 같은 경우 인가? 하여간 그 시기의 비슷한 일이 있지요. 하여간 그런 전통 사상이 있는데 이병철은 알다시피 이런 사상에 심취한 사람입니다. 이건희도 다를거라 보지 마세요. 현재의 삼성 후계자 구도를 한번 살펴보세요. 세상일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구름위하늘 16-01-11 13:23
   
유목국가를 제외하면,
그 반대의 경우가 휠씬 많다는 상황은 어떻게 하고
특수한 사례인 당태종과 조선 세종 이야기를 언급하시는지요.

대부분의 안정된 국가는 장자상속 입니다. 언급한 예는 몇몇 안되는 특수 경우이고요.
물론 고대에는 왕권이라는 개념이 권력이라기 보다는 회의 주재권이나 제사 주재권에 가깝기 때문에 형제상속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부자 관계의 상속에서 3자 (또는 만들어진 2자) 상속은 그렇게 사례가 많다고 보이지 않네요.

비좀와라님이 심심하시면 고려 또는 조선 (아니면 멀리 신라)의 상속관계를 경우의 수 별로 분류한번 해보시죠. 저는 시간이 없어서 그만...
          
그노스 16-01-11 13:26
   
우선 님의 '셋째아들이 둘째가 되고'란 의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셋째(막내)가 상속을 한다는 말이 더 이해가 쉽네요.

'신화에는 세명의 아들 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4명 이상일 경우 무조건 3명으로 만듭니다.' 고요??
무슨 방법으로요? 아들을 죽이나요?
님의 신화해석을 평소에도 독특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신화를 가지고 기존에 알려진 역사적 사실까지 흔드시는건... 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를 둘째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삼국지 연의(소설)를 인용하시는 건가요?
정사에 따르면 형제 서열은 조앙, 조삭, 조비, 조창, 조식이라 알고 있습니다.
조비와 조식의 분쟁은 둘째와 셋째간의 분쟁이 아니라 셋째와 다섯째간의 분쟁이며, 더욱이 훗날 조비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조창의 일화는(셋째와 넷째) 어떻게 설명해야지요?

애당초 장자상속은 중국의 오래된 문화이며, 큰 아들, 둘째 아들이 죽었으니 그 다음인 조비가 잇는게 당연할텐데, 조비와 조식의 예를 셋째상속 사상(?) 이라며 인용하시는건...
그리고 셋째상속은 한국계만의 사상이라 하셨는데 조조의 일가를 예로 드시는건 그들도 한국계라는 뜻이시겠네요.
중국인들이 들으면 좀 화낼듯요...

세종의 막내동생은 병으로 죽은 것으로 압니다...
님께서는 어느 초월자가 셋째 승계 사상을 껴맞추기 위해 죽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칭기스칸의 막내 툴루이는(셋째가 아니라) 칭기스칸 사후까지 확실히 생존해서 말자상속의 원칙에 따라 몽골 근거지를 상속받습니다.
툴루이가 일찍 사망한 후의 일을 논하시는건 좀...
때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라고 들립니다.

쿠빌라이도 역시 둘째이고 제일 좋은 것이 셋째가 둘째가 되어서 왕권을 이어 받는 것이 좋다고 하시나...
일단 쿠빌라이는 둘째가 아니라 네번째 아들이라 알고 있고, 말자상속에 따라 승계가 예상되었던 막내 아리크 부카는 일곱번째 아들입니다.
셋째와 둘째가 분쟁을 벌인게 아니라 네번째와 일곱번째와의 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그런 사상과 원칙에 따라 승계한게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몽골의 승계 원칙을 부정하고 개평부(開平府)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권좌를 쟁취한 혁명적인 인물입니다. 적어도 역사적 사실로는 그렇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의 말씀대로라면 셋째가 아닌 둘째인 쿠빌라이가 승계해서 명군으로서 원나라의 기틀을 다진건 모순이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도 세상일에 다 이유가 있다며 님의 추측성 견해로 두리뭉실하게 말씀하시는건 좀 그렇네요.
아무리 남의 집안일이라지만요...

님의 견해는 자칫하면, 셋째가 둘째를 제치고 상속받는 모든 경우는 한국계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질수 있어 좀 위험한것 같아요.
mymiky 16-01-11 09:47
   
나는 그 드라마, 기황후가 아니라, 괴황후라고 부름 ㅋㅋㅋ

해괴할 怪를 써서, {괴황후} 따위는 한국 사극계의 수치임.
시청율은 높았는지는 몰라도, 건강에는 안 좋은 불량식품 같은 드라마.

요새, 정통사극 쓸수 있는 작가들이
연로하거나, 은퇴해서
근본도 없는 퓨전사극이랍시고, 작가가 지 멋대로 역사를 재창조하는 수준까지 와 버렸음;;

특히, mbc 사극은 매번 역사왜곡이 너무 심해서, 사람 황당하게 할 정도임-.-
자료가 없어서 작가가 창작을 해야 한다면?
대장금 정도가, 딱 좋았는데;;

버젓이 사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평가]란 명목하에 지 맘대로 만드는 사극은 정말로 이해 불가능;;
정 안되면, 학계에 도움이나 조언을 좀 받던가 -.-

지들 맘대로 만들어서, 한류네 뭐네 하며-
해외에 팔아먹기 바쁜 이상한 사람들임;;
기황후가 악역이면, 수출에 지장있다나? ㅋㅋㅋㅋㅋㅋㅋ

kbs [정도전]이 모처럼 인기가 많았던 것도
다 끊어져 가던 정통사극이 다시 부활했기 때문이죠.
정 작가, 현대극 어쎔블리는 말아먹긴 했지만 ㅋㅋㅋ

조선시대 사극 지겨워 죽겠음-.-
kbs가 정신차리고, 다시 고려시대로 갔으면 ㅜㅜ

이왕, 좀 안해본 시대를 하라니깐 제발! ㅋㅋㅋㅋ
고려시대 사극이 생각보다 참 적음.

이번에, 이준기 나올,
보보경심 려? -.- 리메이크 이거 왜 하나?  원작 망치게스리 ㅉㅉㅉ
괜히, 중국애들하고 웹상에서 어느 국가 작품이 더 좋니? 하면서 개싸움될게 뻔한것을;;;
     
karin123 16-01-11 15:48
   
다른건 몰라도 정말 사극만큼은 사랑노름이며 왜곡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누군가 씹선비라고 하겠지만, 역사를 기반으로 만드는 드라마를 너무 망쳐놓는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육룡이 나르샤인가 뭐시기도 싫더라구요.
하얀그림자 16-01-11 19:40
   
고등학교 역사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었죠
게다가 사극이  판타지화되서 판타지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이 분명 생길겁니다
고려가 망한것은 몽골이 망했기 때문입니다
공민왕이 친명 배원을 표방했어도 그 자신이 몽골의 피를 가진 한계가 있었죠
공민왕도 멸원적 청산 대상이었던 겁니다

그 정도로  고려와 원은 가까웠던거죠
삼국지연의에 보면 양부 동탁의 첩 초선을 여포가 가로채는데
여포는 지금의 내몽고지역 출신입니다
삼국지 연의를 쓴 나관중은  원명교체기인 14세기 사람입니다
현실적 필요에 따라 초선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서
1500년전  몽골 사람인 여포를 유교적 도덕관념의 입장에서 개XX로 만들어 버리죠
(실제로는 첩이 아니라 시녀....)
역사는 강자의 역사입니다
조선과 명이  고려와 원을 멸했기에  그런  과거 왕조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임란 후 명나라가 우리나라에 남기고 간 것 중 하나가 관우묘죠 은본위제(경제)를 권고했음은 물론 종교(관우묘) 까지  영향을 줍니다
 전쟁과 같은 한시적 문화접변이 만든 영향이  지대한데 하물며  링크의 글처럼  여몽관계의 특수한 상황하에서는 더 큰 문화접변이 있었던거죠
 여몽관계는 고려왕이 다루가치보다 위에 있었고  심양왕을 겸임하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였죠
조선시대 청나라에 간 우리 사신이 궁궐 문지기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그런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여몽관계에서 고려군은 삼별초진압이나 일본 원정에서  비교적 평등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역사의 기본지식도 없이 판타지를 만드는데
역사가 시청률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죠
과거 사극에는  민감한 부분에 대해  실록에는 ~~~라고 나와있다는 부연 설명이 나레이팅됬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지라도
 ' 이드라마'는 혹은 ' 이 에피소드는 역사적 배경을 빌린  픽션이다'라는 안내문이라도 좀 달아 줬으면 하네요
     
mymiky 16-01-11 21:11
   
공민왕이 단순히 반원정책 했던 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원과 명에 한발씩 다 걸쳐놨던 왕입니다.
(오히려, 후대에 과대평가 받는 조선 광해군보다, 공민왕이 실제적인 중립정책 쓰시던 왕인데;;)

대륙의 권력 교체기 시대였고, 원이 쇠퇴하긴 했지만, 북쪽으로 밀려나,
북원세력이 잔존했기에 아예 팽~하기도 어려웠거든요.

기황후 아들이자, 북원의 황제인 아유시리다라가
[ 나도, 그대도 칭기즈칸의 후손이니, 우리 두 사람이 협력해서, 적들을(명군) 물리칩니다!]
하는 편지도 보내오고,

또, 그후로도 황실통혼도 계속 되었기 때문에
(아유시리다라 황후가 고려인이고, 만주에 잔존하던 동북왕가 카사르 집안과 고려조정이 통혼도 계속 이어감, )

주원장은, 북원과 여진+고려가 손 잡을까봐 전전긍긍했죠.
이것은, 조선초기로 쭉- 이어져, 친명파들이 새로운  나라를 개국했지만, 주원장은 여전히 못 믿어서 조선에 까칠하게 대하는 원인이 됩니다.

여포의 출신은 가설이 분분하기에,그닥 믿을게 못된다고 생각하구요.

청나라에 간 조선 사신이 궁궐 문지기 잡고 사정한다는건 뭔 뜻인지 모르겠네요 -.-
사신단은, 황제에겐 외교적 손님인데, 그들이 궁궐 문지기 잡고 징징댈 신분도 아니구요;;
고려 뛰울려고, 조선을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청나라에서 조선 사신은, 몽골과 티벳 담번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에따라, 의례나 접대 절차도 마찬가지구요.
사실상, 몽골과 티벳이 청나라의 내번(속지)이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조선은 청나라 예부(외교부)가 관리하던 외번(중국 주변의 외국들) 중에서 가장 첫번째 지위로 대우하던 나랍니다.

뭐,, 근대기가 오기 전까지
역대 중국왕조들이, 자기가 최고고,
나머지 자기 밑에 여러 번국이 줄줄이 있다고 여기는게 관례이긴 했지만요. 

사람들이, 항상 착각하는게 전근대사회는 전근대적 시각으로 봐야 이해를 할수 있다는 겁니다.
전근대사회를 현대적 시각으로 보자면, 이해되지 않을 것들 투성이죠.
그걸 비난하면 곤란합니다.
그때는, 그게 당시의 룰이였을테니까요.

물론, 그걸 현대에 와서 다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요.
          
하얀그림자 16-01-11 22:05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1051070283
제가 읽었던 것은 이게 아니지만 이규태 코너로 대신하죠
그리고 공민왕의 배원정책은 나름대로의 생존 논리이며 외교정책이죠
신세계 질서내지는 힘의 균형에 변화가 일자(부명 몰원) 나름대로의 균형적 감각을  통해 등거리 외교를 한것이지만
전임 왕들에 비해서는 극명한 반원적 색체를 가진  현실정치에 비판적인 행보를 보인 군주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포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武將)으로 지금의 네이멍구자치구[内蒙古自治區] 주위안구[九原區]인 오원군(五原郡) 구원현(九原縣) 출신이며, 자(字)는 봉선(奉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포 [呂布] (두산백과)
여기에 이의나 다른 설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지요?



역사는 당시의 눈높이로 봐야 함은 지당할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적 인과관계를 이해하기 쉬울테죠
사신이라는 지위를 오늘날 국빈 정도로만 생각하면 그게  비 역사적인 시각이 아닐까요?
저  개인적으로도 이런 일은 많이 겪어 봤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빌딩에 입주한 업체의 총무과 직원이 있었습니다  대회의실을 대관하려고 그 빌딩 총무과( 단순한 임대업체가 아니라 자체 브랜드가 있는 업체임)에 대관신청을 했습니다 물론 서식에 따라  말이죠 이미 대관 스케쥴이 잡혀 있다고 해서 스케쥴이 없는 날이 언제냐고  물은 후 없는 날로 대회의실 대관을 요구하니  그날도  스케쥴이 잡혔다고 안됩답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대관을 요청한 업체에서 생산한 물건을  뇌물로 달라고 그 건물 총무과 직원이  입주업체 총무과 직원을 골탕먹인겁니다
제가 바로 입주 업체  총무과 직원이었습니다
나는 서식과 절차에 따라 총무과 직원의 업무로서  정당하게 대회의실을 빌리려고 했지만  거기의 실권자가 뇌물을 요구한 겁니다 물론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계속 핑계를 대며 말이죠
저는 아무것도 아닌일로 그 사람으로 인해  중역 임원들에게 갈굼을 당했더랬죠
역사의 이면에도 이런 꽌시가 작용하고 있었죠
님이 외국 사절에게 한 낱 문지기가 그런 횡포를 벌였을까 라고 생각하시는 것이야 말로
태국 인도네시아등  외교사절에 대한 우리의 예를 기준으로 생각하시기 때문이 아닐지요?
하지만 먼 훗날  윤창중 사건에 대해서 말한다면 설마 외교사절로 가서 그런짓 했겠냐라는 말이 나오겠죠....인도네시아 사절에게는 숙박중인  호텔방을 털었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mymiky 16-01-11 23:20
   
여포의 민족구분에 대해선, 중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단, 여포가 살았던 시대엔 아직 몽골족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일부에서, 몽골족보다는 강족(羌族)이라고 보는 의견과

당시, 남흉노를 밀어낸 한나라가, 변방의 방어와 주둔을 위해, 많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이주하게 했는데, 여포의 할아버지가 군인으로, 그렇게 이주해갔고, 아버지가 세습하였고, 그런 환경에서 여포가 자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는 이 의견을 반영해 한족이라고 하고 있구요.

다만, 한족이긴 한데, 혼혈일 가능성? 이란 의견도 있고, 강족이란 의견도 있고
중국인들끼리도 의견은 분분해요. 지금와선 정확히 알긴 어렵죠.

한때, 쌍성총관부 출신인 이성계가 몽골족이라느니, 여진족 혼혈이라느니
하는 소리가 웹상에서 떠들던것과 비슷한듯?

조선사신이 문지기에게 애걸복걸했다는 내용은
어디서 나온 소스인지만 밝혀주시면 됩니다.
그럼 간단한거 같은데요?
                    
mymiky 16-01-12 00:15
   
답글 먼저 쓰고, 님이 붙여준 참고물을 뒤에 읽었습니다.
저게, 그 소스란 거네요  ㅋㅋㅋ

일단, 저분의 오류는 만국공법이 보편적인 개념이 되기 전
당시, [동아시아는 수직 관계]로 이루어졌다는걸 의도적으로 무시하는듯 합니다.
자기딴엔 민족주의 시각으로 잘 썼다고 여길지 모르나;; 명백히 오류죠.

삼궤구도구란 것은 만주족식 큰절입니다..
인조가 청태종에게 한걸로 유명하죠.

사실, 따지고보면 삼궤구도구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론, 명나라 황제에게 절할때도 숫자가 그와 비슷하거든요.
황제는 몇번, 제후는 몇번 다 정해져 있으니까..

다만, 조선사회가 받은 충격은,
[오랑캐에게 우리왕이 절했다]- 요부분이 충격이였죠.
 
근데, 동양식 예법은 다 절하는 겁니다.
일본사신은 조선와서, 절 안했는줄 아나-.-

서양식처럼, 손만 가지고 악수하는건 우리 풍습이 아니죠.
요샌 다 서양식처럼 인사하는게 더 익숙하지만요.

한가지 더, 고종때
조선사신이 미국에 가서, 미 대통령을 보며 절하는 모습을 다룬 기사가 있습니다.
마치, 그걸로 미개하다는 뉘앙스로 까는 어그로들이 많음 ㅋㅋ

실은, 앞서, 큰절은 우리 조선식으로 한 인사법일뿐이고,
조선 사신들은 큰절후 다시 서양식으로 미국 대통령과 악수 했는데 말이죠.

게다가 본문에, 사람 오해할만하게 쓴게,
구품돌에 조선사신들을 세워서, 미리 인사드릴 준비를 시켰다고 적여있는 부분,

행사전에, 미리 앞에나가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건, 당연하죠.
특히, 열하일기가 언제 쓰여진 겁니까?
건륭제 70생일 파티에 참석해서 쓴 것임.
당시, 청나라가 심여를 기울여 벌인 국가행사인데, 미리 리허설 준비하는건 당연한 겁니다.

설마, 구품석에 세운게, 본 행사에서 세웠다고 생각하시나;;
당시, 연회상만 해도, 조선사신들은, 몽골왕들과 같은 요리 받았습니다.
몽골 부마왕들 다 청나라 황실과 친척들임. 

다른 나라 사신단들은 다른 요리 먹었습니다. 한단계 낮춰서 말이죠.
유교가 절하는 법에서 부터 지위고하에 따라 격식 엄청 따지거든요--

게다가, 건륭제가 자기딴에 신경써서, 조선사신들에게 특별히 판첸라마 보여준다고 해서 기겁했죠ㅋㅋ
라마교를 믿은 청나라라, 살아있는 생불(生佛) 보는게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여서 기껏 만나게 해주었더니,

(박지원은 만나러 갈까 말까하다, 보긴 봤는데, 판첸라마 못 생겼더라고 적었고;;) 귀국할때 건륭제가 정조 대왕 장수하라고 , 불상도 하나 하사했는데 ㅋㅋ
(조선사신들은, 유학자들이라, 압록강에 던져버리고 옵니다 -.-)

또, 이 사람이 예를 든
죽천일기는 왜란때 활약한 이덕형이 남긴 겁니다.
오성과 한음할때 (한음)으로 유명한..

징비록을 봤으면 알겠지만.. 당시, 조선이 찬밥 더운밥 따질 상황도 아니였음;;
게다가, 만력제가 방구석 폐인이라,, 어떻게든 줄을 대서라도 원병을 구해야 했던 상황이구요.
명나라도 만력3정이라고, 자기들 내란 먼저 막는다고 바빴기 때문에, 조선파병을 하자, 말자, 명나라 조정에서도 입장이 갈린 상태였거든요.
          
하얀그림자 16-01-12 02:23
   
님의 굉장히 풍부한 지식에 놀랬습니다
다만 제 글의 구석 구석을 까시면서 까불지 말라는  것으로 보이는것은 왜 일까요?

이건 자기 자존심이 긁혔을 때 하는 짓으로 사료됩니다만
저한테  감정있으세요? ㅋㅋ


네 그렇습니다 전의 전공은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를 재미있어  했기에 주워듣길 좋아하죠
다만
오성과 한음이 이항복과 이덕형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있을까요?ㅋㅋ
내 경우 만화, 인형극,  티비 어린이 드라마 ,라디오 어린이 드라마, 아동용 위인전등을 통해 수십번 본것인데요...
근데 말이죠 여기서 이덕형은 한음 이덕형 즉 오성 이항복의 친구이자 이산해의 사위가 아닌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죽천 이덕형입니다
임란당시 원군을 요청하러 청원사로 간 이덕형이 아니죠
인조 반정을 승인받으러 간 주청사 이덕형입니다


근데 님이 중국어를 하시는지 아니면 자동번역 프로그램으로  번역하시는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 중국유학 다녀오셨는지  모르지만 님 의견의 쏘쓰 좀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본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마시고(여포에 관해)
...
단순한 삼괘구도구만 말씀하시는데  이덕형의 죽천일기에 관청에 들어가서 섬돌을 잡고 쫓겨나지 않기 위해 사정했다는 문구는 못보셨던 모양이죠?  이게 쏘쓰냐고 ㅋㅋㅋ 거리시네요?
누가 예행연습 때문에 그랬데요? 구품돌 있잖아요?  품계별로 쭉 서게 만드는 돌 아시죠 ????
이규태 코너의 말대로  9품자리의 품계석에  조선 사신이 섯다면 조선의 정 1품 승정대부가
 저어~ 뒷쪽  명나라 구품돌 앞에 섯다는게 됩니다 
그래서
죽천선생이  님에게 ㅋㅋㅋ의 대상이 될만큼 우수워 보이셨는지요? 
직책이나 미션이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반정을 승인받으러 간 자리였지만 7순을 바라보는 노신이  그런 처사를 받았다나네요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1050770281

명군이 임진란 때  조선군을 개끌듯 목에 줄 묶어 끌고 다니고요(징비록)
조선 관리가 장마비에 썩은  , 거기다가  누가 삥쳐 먹은 모래 섞인 군량미 인수거부하다가  명군에게 쳐맞는게 현실이었습니다
정1품 승정대부가  명나라가서는 데 구품돌 앞에 선다는 것을 상상해 보셨습니까?(섯는지 않섯는지는 모르겠음) 말직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줘야 했던게 현실이라는 거죠
 제 말은 충혜왕같은  싸이코 말고는  고려왕이나 관리들이 이런 모욕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죠
 

여기는 여포의 고향입니다
당시 강족의 영역이었을까요?
사천성(四川省), 섬서성(陝西省), 감숙성(甘肅省), 청해성(靑海省),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라고 나오네요

 몽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라....이건 뭐 백제와 지금의  충청 전라도 사람과는  관계가 없다라는 애기로 비춰지는 이유는 뭘까요?
중국의 역사공정의 냄새가 나네요
 쏘스 좀 부탁드립니다
여포가 한족???
징기스칸은 위대한 중국인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 아닌지요?
그렇다고 해도
몽골인으로 대표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나관중은 님의 주장대로  여포를 강족이나 한족 혼혈로 인식했을까요?
아니면 여포가  몽골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로 이를 갈았을까요?
나관중은 삼국지내의 캐릭터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창조했습니다
내가 나관중이라면 여포가 진짜 몽골 계통인지 아닌지 보다는 몽골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님의 의견의 쏘쓰 좀 부탁드려요^^
               
그노스 16-01-12 08:39
   
고대로부터 몽골지역에는 흉노, 돌궐 등 여러 유목민족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13세기에 칭기스칸의 몽골부족이 초원을 통일하고 역사 전면에 등장합니다.

즉 전한, 후한까지(기원전 202년~220년) 흉노는 있었지만 몽골이란 개념은 없었다고 합니다.
정사에도 당연히 몽골에 대한 언급이 없고, 흉노라면 언급이 된것으로 압니다.
아마 삼국지 연의(소설)의 '몽골고원' 언급 때문에 이런 혼란이 생긴게 아닌가하며 추측하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그럼 여포가 흉노 출신이었다고 봐야 할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조금 희박하다고 봅니다.
일단 흉노족의 경우, 대체로 창술이 아니라 궁술과 한쪽 날만 있는 도검술로 활약을 하는데, 여포는 궁술로도 유명하지만 도검술이 아닌 창술로 더 유명하지요.

그리고 흉노족이 한나라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삼국지에도 언급되듯이 고조가 흉노족에게 참혹한 패배를 당해 황녀와 조공을 바치는 치욕을 당한후, 마치 우리 한국인이 왜인들에게 치를 떨듯이 그 당시 한나라인들은 흉노족이라면 치를 떨었다 합니다.
흉노(匈奴) 라는 이름을 봐도 중국인들이 얼마나 흉노를 혐오했는지 다시 생각이 되네요.
그런 흉노계가 전란시대도 아닌데 병주자사의 수하로 들어가 주부(主簿)로서 대우를 받았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일제의 경우처럼 특별히 한무제의 총애를 입어 흉노 출신이 제후로 봉해진 사례도 있으나 그건 일반적인 사례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김일제가 흉노 출신이라고 역사에 기록을 분명히 한만큼, 정사에서도 여포의 출신을 굳이 속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덜 중요한 인물인 마등도 강족계라고 분명히 밝히는데, 여포가 진정 흉노계였다면 한족마냥 출신지만 기록되지 않고, 이민족인 흉노라고 분명히 정사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여포가 흉노계라면 여포와 동향이라고 나오는 사도 왕윤도 흉노계라고 해석이 될수도 있을지도요.

정사와 연의를 통틀어 여포 자신이 존경받는 인물도 아니었는데, 굳이 나관중이 여포가 이민족 출신이라는 사실에 분개해서 마음대로 역사왜곡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흉노(匈奴)인은 흉노하다고 과장을 했다면 몰라도요.

중국의 역사공정을 비판하셨는데, 타민족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시각이 지금의 중국과 그 옛날의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
지금의 중국은 과거사까지 왜곡하며 타민족들마저 자신의 역사에 포함시키려하나, 과거의 중국은 자국내 타민족들의 출신지역을 일일이 기록하며 자기들과 차별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당대의 우리 한민족 출신만 보아도 고선지, 이정기에 관한 신•구당서나 흑치상지의 비석 등등의 사례를 보면, 모조리 그 출신지역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더군요.

여포의 출신에 대해 제가 주절주절 했지만 저도 추측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mymiky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현재로서는 무엇이라 단정할 수는 없고 여러 이설이 있다가 옳은 것 같아요.
                    
하얀그림자 16-01-12 08:56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하셔서 아주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한가지 의문인건 그렇다면 조조는 선비족으로 알고 있는데요 진수의 삼국지에는 그에 대한
출신지나 민족이 기제되어 있는지요?
제가  삼국지를 처음 읽었던  어린시절부터 가져온 의문인데    삼국지에는 나관중 자신의  호감도에 따라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재생산해 낸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호감도라는것이 단순한 개인적 차원인것인지 한족 민족주의 차원인것인지요?
(저는 중학교 때 국사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는데 한족 민족주의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노스 16-01-12 10:49
   
님께서 딱히 배우실만한 내용도 아닌 개인적인 견해였습니다^^

정사에 조조가 선비족이라는 문구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제기에서, 아버지 조숭은 하후씨의 후손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하후씨를 선비족이라며 조조도 선비족이라 단정하시고 그래서 조조가 중국사에서 미움을 받았다는 어느 분들의 주장을 저도 접해보았으나, 정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제 견해도 좀 다르네요.
조조가 이민족 출신이어서 배척 받았다기 보다는 환관의 후예이고 나관중의 촉한정통론에 반대하는 세력이어서 그런게 아닐까 통속적인 생각을 합니다.
삼국시대 이후 선비족은 하북성에서 한족과 유민 민족이 결합한 민족을 뜻한다 하므로 확률적으로 차라리 당고조 이연이 선비족이란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삼국지 연의에 대한 평을 제가 님께 답해 드릴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린다면 정사와 비교해서 연의에 한족 민족주의가 강하게 실려 있다고 저도 느낍니다.
나관중이 삼국시대 수많은 군상들의 출신지를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뜻으로 물으신다면 거기에 동감합니다.
                         
하얀그림자 16-01-12 20:35
   
그노스님 //
세간의 소문이  확정적 사실이 아니었군요
 선비족이라기 보다는 유비를  띄우려나보니 간웅으로 묘사한 거네요
명쾌한 고견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얀그림자 16-01-12 08:59
   
아 그리고 인조반정  땜에 생긴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씀하실까봐 한번 더 적습니다?  조명간 역사적으로 이런 긴장관계는 한두번이 아니었죠.....그리고 제가 쓴글은 님의 첫번째 댓글만보고 적은거고  나머지는 나중에 봣어요 님이 링크를 나중에 봤듯이..
그노스님의  가르침의 댓글로 인해 수정하지 못해 적습니다
                    
mymiky 16-01-12 10:19
   
1. 여포에 대해서 입니다.

여포의 출신은 가설이 분분합니다.
첫째, 한족/ 둘째, 소수민족설/ 셋째, 혼혈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볼수 있습니다.

첫째, 한족설

有关吕布传奇性的出生和神话般的成长,在五原县有很多流传。相传东汉章帝年间北匈奴进犯南匈奴及汉朝领地时,吕布祖父吕浩(时任宪部越骑校尉)奉命留守边塞。吕浩携妻儿率部驻扎五原郡地,定址北河(黄河旧道现乌加河)南岸五原县塔尔湖五分桥东,大兴土木,建城筑堡(今城圪卜就是由此而得名),开荒农耕,并逐步发展畜牧业,纺织业,冶炼治陶业等,固守边关。
吕布祖父去世后,其父吕良继任,娶妻黄氏,系五原郡补红湾(今五原县城西补红村)人,是一大户富豪财主之女。黄氏聪明贤惠,知书达礼,善染织(后成为染织作坊主事)。黄氏生有四女,苦于无子。一日,随夫到白马寺庙(今五原县锦旗东五里处,由于黄河淘堤已毁于河底)拜佛求子。归来当晚,黄氏得一梦,梦见有一猛虎扑身而来,黄氏见状急唤丈夫赶打,老虎却温顺地卧于身旁。不日黄氏身感有孕,怀孕12个月未见生产,百感焦虑。

(한나라가,  남흉노 땅을 뺏어서, 황제가 군인들을 변방 방어를 위해 이주케했고,
여포 조부가 그렇게 가서, 쭉 살아 아버지, 여포 가계가 이어왔다는 내용)

2. 소수민족설
강족출신이란 것도 여기에 하나입니다.
당시는, 아직 몽골족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칭기즈칸이 통일하기 전까지, 역사무대에 몽골족들이 등장하지도 않았고요.
흉노, 강족(애네도 유목민 중 하나) 설이 있는거 같은데,
세월이 흘러 전란등으로, 이주하거나 하는 일은 역사상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현재, 강족이 사는 곳이 내몽골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고대에도 그랬을꺼라고 생각할순 없죠.

하다못해, 신라도 일부 흉노족들이 남하했다는 가설이 운운하고
베트남의 월족은 원래 중국 광동지방에서 남하한 겁니다.
묘족도, 지금은 저기 남부에 살지만, 고대때는 또 달랐다고 하죠.
베트남과 가까운 운남성에, 거란족 후손도 일부 살고 있어요.
민족의 이주는 흔한 것이기에, 강족이란 가설도 나오는거 같습니다.

그외에, 3. 혼혈설로 바이두에 중국인들도 의견이 분분한데
吕布是哪个人种的 感觉他有点白人血统
(이 사람은 백인혈통이라고 생각한다는군요)
可能是他父母在西域通商时见识生的混血儿
(이 사람도, 부모가 서역에서 와서 혼혈아를 낳았을꺼라고 생각한다고)

+ 덧붙여,  이분은 이민족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거 같은데
http://blog.naver.com/daesim37/220367470561
이런 의견도 있네요.

뭐, 이래나 저래나
여포를 무덤에서 꺼내, 유전자 조사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겁니다.
죽은지 2천년쯤 되니까 뼈도 다 삭았을거 같구요 ㅋㅋㅋ
                         
mymiky 16-01-12 10:35
   
[조선시대 (청나라)에 간 우리 사신이 궁궐 문지기의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여기 소스를 이규태 사설을 붙여주셨는데,

문지기 운운이 나오는 부분은 청나라가 아니라, (명나라)군요.
그리고, 그 소스가 죽천일기구요.

9품자리의 품계석 운운하는데, 이건,
삼배고두례 연습시킨다는 것을 보니, 이건 (청나라)때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조선의 정 1품 승정대부가 저어~ 뒷쪽  명나라 구품돌 앞에 섯다는게 됩니다]
란 문장은 말이 안되는거 같은데요-

이규태 사설 1째 문단을 아무리 읽어봐도,
죽천 이덕형이 9품돌에 섰다는 문장은 없는데요?
그리고, 내용도 뒷쪽에서 절하는걸 연습시켰다지.
거기에 계속 세워두었다?란 내용도 아니구요.

청나라라는건지, 명나라라는건지,
아마? 둘이 뒤섞어 쓰신거 같습니다.
                         
mymiky 16-01-12 10:45
   
조명간에 역사적 긴장관계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조명간에 역사적 긴장관계는 조선초기밖에 없을텐데요.
후반에 왜란? 

왜란도 엄밀히 따지면, 조명간 긴장관계라고 볼수는 없죠.
양국은 적이 아니라, 아군관계였는데요 -.-

조선이 긴박한 상황이라, 찬밥 더운밥 따질 여유도 없었고
그 와중에,명나라군이 갑질한건 알겠는데,
모든 명나라 군인이 다 그런건 아니죠;;

어디나, 사고치는 군인이야 있는 것이고, 오늘날, 미군범죄가 있다고 해서
미군 전체다 문제있다, 나가라라고 하진 않으니까요.

징비록에 문제가 많이 기록된 것은, 요동에서 파병온 거칠기로 유명했던  북병들입니다.
기마병이 주축이라, 산이 많은 우리땅에서 잘 싸우지도 못했지만.

조선에서 식량 다 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우리도 어려워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죠. 그래서 굶어죽은 북병군대 말이 3만필인가? 되구요;;
그래서, 더 열받아 북병군이 조선군들 패고 다닌건 있죠 -.-

약속했던 내 쌀밥 내놔라! 이것들아. 죽은 내 말 살려내라! 이것들아.
거리면서;;

(물론, 우리도 굶는 형편인데다가, 우리가 안주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다만..)

그래도,
중국 강남지방에서 차출된 남병들은 잘 싸웠고, 평가도 좋았습니다.
이왕 사나운 북병보다도, 남병들 좀 더 보내달라고 명나라에 부탁도 하구요.
(그와중에, 북병은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같은 명나라 군인 남병들도 패고 다님 -.- )

이러니 저러니해도, 당시 명나라 군이 도움은 많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뭔가 과소평가 당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왜란 후기엔, 육군 주축군이 명군입니다. 파병도 10만이 넘어가니까요..
뭐, 덕분에 조선군은 대부분은 지방 복원한다고 정신 없었구요.

학계에선, 명나라군 만큼이나 우리 조선군과 백성들도 힘껏 싸웠다!
뭐 그런걸 강조하는건 있지만.

(명나라군이 아니라도) 우리힘으로 잘 싸우면, 일본과 이길수 있었다!라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이런 주장을 한다면, 걍 정신승리 국뽕이지;;
625도, 미군없이도 우리 단합된 힘만으로 이길수 있을꺼라고 주장하는 꼴..
                         
mymiky 16-01-12 11:05
   
이덕형이라고 해서 ㅋㅋㅋ 한음인줄 알았죠.
그리고, 님이 인조반정 땜에 생긴 특별 케이스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역시나 안할수가 없네요;; ( 게시판을 님만 보는건 아니니까요.)

솔직히, 광해군이나 인조나 정통성이 후달렸죠-.-

그래서, 적장자나 왕비소생으로 태어나, 세자에 오르고, 무난히 왕위에 올라가는 엘리트 코스대로 밟았다면, 그런 험한꼴 안 당했을 겁니다.
솔직히, 저러고 쌩 지 랄 할 필요도 없었겠죠. 

둘다, 정통성이 딸렸고, 더구나 인조는 반정쿠테타란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올라갔기에, 명나라에 책봉받는 것도 어려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마? 광해군이 세자 시절부터 포함해서 5-6번 거절당했는데,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이 거절 당해본 왕일껄요. 광해가..
(당시, 명도 비슷한 이유로 태자 문제로 싸울때라;;)

그래서, 광해가 명나라에 엄청 퍼다줬죠;; 전후에 재정상태가 개망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엄청퍼줘서, 명나라측에 봉(호구)로 잡혔구요.

그래도, 가져다 푼 돈빨의 위력이 있었던지,
명나라 황실에서 광해는 참 충성스러운 사람이란 평가를 듣게되죠 ㅋㅋㅋ

인조반정이 일어났을때, 인조측근들이 광해군이 청나라랑 친하게 지내고,
니들이랑 안 놀려고 해서 우리가 바꿨다!라고 했을때.

오히려, 명나라측이 당황했죠.
광해군처럼 우리한테 뒷주머니 빵빵하게 채워준 왕 없다면서,
왜 멀쩡한 왕을 내쫒고, 새 왕을 세웠느냐구요;;

오히려, 다시 물리라고 할까봐,
인조측이 초난감하게 되버림 ㅋㅋㅋ

광해군이 왕권강화와 자기 입지를 위해 명나라에 들이댄것처럼,
역시나 많이 부족했던 입장에서 인조 측도 그에 못지않게
황제에게 줄을 대어볼 요량으로, 쌩쇼를 해야 했습니다.

이덕형도, 책봉 못 받아가면, 지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섬돌을 잡든, 지푸라기를 잡든 받을때까지 안 간다고
버티고 배째라고 나와야지. 그 상황에서 뭐 어쩝니까..
 
뭐, 어쨎거나 엎어진 물이라, 명나라도 한두번 거절했나? 하여든
옥신각신 끝에 인조에게 책봉을 내리게 되는데,
그 과정이 죽천일기(죽천행록).
                    
mymiky 16-01-12 11:35
   
그리고, 조선시대 때,

요동은 중간에 완충지대라서, 그까지는 우리쪽에서 지원하고,
책문을 통과하면, 그뒤부터는 중국측이 지원하는 시스템 입니다.

육로와 해로 코스가 있는데, 바닷길은 날씨에 따라 사고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왠만해선 사신단들은 육로로 가는걸 선호 했는데,
(단, 조선초 명나라 수도가 남경이였을때와, 후반에 요동이 후금에 막혔을때는 해로를 이용)

요동을 통과할때, 그 사이에 날씨 흐려져 노숙할때 고생했다는 기록이 아주 많음.

책문 건너기 전에는, 사신단들의 식비나 숙박비 등 전반적인 여행비용 등을
조선측에서 세금으로 부담하고,

책문지나고선 중국측에서 반대로 자기땅에 들어온 사신단의 식비, 숙박비, 연회비 등 부담합니다.

뇌물요구는, 솔직히 중국 관리마다 케바케 였을거 같은데요.
조선 관리들이 알아서 적당히 처리했겠죠.
우리 사신단이 중국에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쪽에서도 그동안에 쌓아온 꽌시가 있을테구요.

게다가,
그리 따지자면,
역대 중원왕조와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일은 쭉 있던 일일텐데요?

그 이전 고려, 백제, 고구려, 신라 등등..
애네들은 중국갈때 그쪽 관리들이,
뇌물요구 한번도 안 받고, 안 줬을꺼라고 어찌 장담할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게 우리나라만 해당될까요?

베트남에서 올라오는 사신, 태국에서 올라오는 사신,
류쿠에서 가는 사신.
애네들은 뒷돈 좋아하는 중국관리들 안 만나봤을꺼라고
누가 장담합니까?

말그대로, 순전히 케바케죠.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는거고,

일본처럼 바다건너 섬이라, 개인 플레이 하는게 아닐바에야.
(애네들도, 남쪽 영주들은 중국과 무역은 함.  여긴, 지방별로 노는 나라고)

중국과 국경대고 있는 나라들중에,
왠만하면, 중국과 척을 지는 경우는 드물죠.
전략설계 16-01-11 20:22
   
사극의 소재라...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 드라마틱한 부분이 많아야겠죠..

징비록이 망한 것도.. 류성룡 연기도 연기였지만, '불멸의 이순신' 재탕이란 늘고.. 자꾸 오버랩이 돼서..
식상한 감이..
선조 연기 보는 맛에.. 그나마..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려말선초.. 방송사 바꿔가며 하고 있고..
기황후까지 했으니.. 장희빈도 그렇고.. 영정조는 영화로 숱하게 했고..
세상도 시끄러운데 골 아푼 연산군 다루기도 그렇고..

'고려 현종'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했나 모르짐나..).. 볼만한 장면.. 역사적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강감찬이 드라마에 많이 비추지 않았죠..

강조가 정변 일으키면서.. 현종이 왕에 오르는 시작부도 나름 긴장감이 있고..
고려-거란 전쟁사만 가지고 드라마 절반 채워도 재미납니다.

서희가 나오고..
요 성종 침입때 나주까지 피난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죠.. 왕 목숨이 여러번이 들왔다 나갔다..
30만 요나라 군대에 고려가 40만 거병하여 20만이 북계에 배치되는 과정..
요즘 동북아 정세를 보면.. 이 때 기상을 다시 찾을 필요가 있어 교육적이고요..

(윤관도 좋습니다만.. 동북 개척 험난한 것 그것으로 끝이라.. 드라마화 하기엔 내용이 좀 부족하죠)

다시 쳐들어왔을 때.. 강감찬, 강민첨이 등장해 달려버리고..

전쟁후에 궁궐이 불나서 없어진 훈요10조가 뜬금없이 신라계 집구석에서 나오는..
거까지 다루고 승하하셨으면..

전쟁드라마가 되겠네요.. 어차피 '불멸의 이순신'이나 '징비록'이나.. 전쟁드라마이기에..
소재는 좋다고 보는데..
PD나 작가가.. 고려 현종 대중적으로 알려진 왕은 아니기에..
그간 현종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없어서 그렇지..

양규도 빼먹었네요..
전쟁사 대가 임용한님이 우리 나라 전쟁사에서 가장 감명깊은 장면으로 꼽았던..
이 대단히 잘난 양규장군..

등장인물도 좋네요..
징비록 보면 한숨 팍팍 나오는데..
이거는 보면서 으쓱해질 만한 장면이 많은 전쟁드라마같네요..

언제 채시라가 나와서 한 것도 같은데.. 그래도 주인공은 현종이 아니었을거라 밑고..
서희부터 강감찬까지..
현종이 1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현종 당대 신하들이 현종을.. "가장 적절하고 무난한 처신을 한 왕"으로 꼽았죠.

귀주대첩에 승전한 강감찬을 현종이 멀리까지 나가 손수 환대했다는 책 글귀가..
마치 내가 본 것처럼 느껴지는게.. 드라마틱 장면들이 많아요..
그러나.. 나는 알지만.. 방송사는 모른다는 ;;;
     
mymiky 16-01-11 21:26
   
09년 kbs [천추태후] 말씀하시는듯
당시 나름 재밌게 봤지만..
뭔가.. 여자 주인공 띄워주기? 천추태후 미화 작렬이 에러;;

현종부분 뒷부분에 잠시 나왔습니다. 강감찬도 나왔구요.
이덕화가 강감찬, 강조는 최재성 서희는 임혁, 양규는 나왔는데 배우를 모르겠음--
(여명의 눈동자이후 채시라랑 최재성이 오랜만에 찍었다고 기사도 나왔죠 ㅋㅋ)

현종은, 초반에 고려판 선조가 될뻔하다,
구사일생으로 대반전의 주인공이 된 왕이죠..

이분 일생도 재밌는데, 사생아 출신의 왕이라,, 님말씀처럼, 현종이 주인공으로 해도 재밌을듯 합니다.

천추태후에선, 채시라가 주인공이다보니, 현종은 조연이였기 때문에,

근데, 요새 제작비 때문에, 전쟁사극을 모두 피해서 -.-;;
징비록도 제작비의 한계때문에, 전쟁씬 많이 줄였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별로 없었죠.
사람들이 [불멸의 이순신]처럼 왜군들 팍팍- 물리치고 그런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이번 징비록은, 전쟁사극이 아니라, 컨셉자체가
당시 바다가 아닌, 육지쪽 이야기, 전쟁에 대처하는 임금과 조정 신료들이 주인공이였기 때문이죠.

전, 징비록도 나름 재밌게 봤습니다.
사실, 주인공 류성룡보다, 선조의 잔대가리 보는 재미로 봤지요 ㅋㅋㅋ
김태우씨가 실제 선조가 가졌던, 간사한(?) 영악한(?) 성격을 참 잘 표현해서 대만족이였음.

이번, 장영실 끝나고, 정약용 한다던데.
내년이나 내후년쯤엔, 다시 고려사로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정도전 작가 본인이, 삼별초에 관심있다던데 ㅋㅋㅋ 차라리 그걸 하던가.
정현민 작가라면, 단순한 인물들의 선과 악 이분법 구도를 피해서 쓸것 같거든요.
간신이지만, 노련했던 이인임처럼 말이죠.

그리고, 본격적으로, 원간섭기를 제대로 다뤄봐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제대로만 쓴다면 말이죠.
하얀그림자 16-01-12 16:11
   
먼저 님 글 다 못 읽었고 생각나는데만 적겠습니다
님 딴엔  원문까지 써가면서  잘 썼다고 여길지 모르나 출처가 명기되지 않았고요
죽천은  한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음을 들먹이며

  "이 사람(이규태)이 예를 든
죽천일기는 왜란때 활약한 이덕형이 남긴 겁니다.
오성과 한음할때 (한음)으로 유명한.. " 이라고 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죽천과 한음을 같이 쓰면서
임진란 (인진란 때 주청사로 간 이덕형의 다급함을 유추해서) 얘기하는 무식함을 아주 태연히 자랑하면서 말이죠
그럼 너는 왜 여포를 몽골계로 단정했냐?라고요?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건  역사라는 것은  상징조작을 통해 조작된다는 겁니다
연의는 연의일뿐이지만 사실로 믿는 경우도 많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모호하죠
사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도 다 사실일까요?

나관중은 여포가 이민족이기 때문인지  한족이지만 단지 배신의 아이콘이라서 인지  모르지만 필요이상의 악역으로 분장시켰습니다
유비는 관리를 폭행하고 도주한 폭력범이죠
조조가 살려줬는데 배반하고요 자기 아들을 조자룡 앞에서 집어던지죠
물론 유교적인 군자상으로 포장됩니다
나는 링크에 걸린 중화에 대한 사대적 관념의 잔재가  과거 고려와 몽골의 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논지에 동의해서  지금의 몽골지역 출신인  여포의 예를 들며 상징조작의 의미로 쓴겁니다
원명교체기의  한족의 몽골족에 대한  복수심에서 나온  소설가의 의도적 캐릭터 설정이 아닐지라도
내가 의도한 대의에는 크게 벋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포가  유전적으로  지금의 몽골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죠ㅋ
하지만 죽천과 한음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


님의 지식이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상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시고  설득하려고 하셨으면 하네요^^
나머지에 대한것은 밤에 자세히 읽어보고 있다  다시 쓰던가하겠습니다
원문링크 좀여^^ 걍 붙여 넣기만 하셨네? ㅋ
그리고 초반 밖에 없었다고요? 긴장관계가?????
음 왕자의 난이나 세조 단종문제 연산군 중종반정  세자 책봉문제등 많았던걸로 아는데요 ㅋ

여포가 흉노가 아닐지 모르지만 그리고님 말처럼 강족이나 혼혈 ,혹은 한족일지 모르지만
여포 자신이 변방인의 열등감?같은 것이 있었고 나관중도  여포에게 나쁜 이미지를 불어 넣었습니다

두서가 없는데  지식이라는 것은  자기 만족을 위한것입니다  얻는것 차제로 기쁨이요 나누면 배가 됩니다
그 지식이 우월감을 느끼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죠
     
하얀그림자 16-01-12 20:13
   
좋습니다 우선 가지치기 좀하죠
뭐 하나 얘기할 때마다  그 세부적인것에 대한 부연 설명 자제하시고요
 내 말은
1. 고려와 몽고의 관계는  조명관계처럼 사대의 연이 아닌 뭔가 다른 차원의  공유된 아이덴티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님 말처럼 조선을 까기 위해 고려를 들고 나온게 아니죠
( 글쓴 분의 링크 내용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원명 교체기 나관중은  한족 중심적 사고로서  여포에게 가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의 논지를  강화하려고 예를 들었는데 여포가  지금의 몽고계통이라고  확정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말하려는 대의에는 크게 어긋나지 않아 보이네요
원명 교체기는 단순히 나라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습속이나 가치관 중심 사상도 바뀝니다
나관중은  여포가  양부를 죽인 사실에 더해서,  역사를 각색해서 자신의 양모를 취한    용인할 수 없는  존재로  각인시키는데요
더블어 유비를 접대할 때 자신의 아내의 침상에 앉히고 마누라에게 술을 따르도록 했답니다
여포가 실제로 그렇게 했든  나관중의 각본이든  대중에게  부여된 유교적인 시각과 잣대를 이용해  대중에게 도덕적 이질감을 부추기는 장치로 활용됬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나관중이 여포를 이민족으로 인지하지는 않았어도  14세기의  중심적 관념에서 볼 때
  여포를 초원의 유목민족의 습속을 가졌던 변방 건달로  인식했던것 같습니다 
  나는 나관중의 이러한 의도성을 민족주의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민족주의와는 다른 시각이겠죠
 중원이 조선처럼 민족적으로 비교적 고립된 상태도 아니고 말이지요
나관중은 유학자로서 이러한 유교적 덕목에 대칭되는  비질서 내지 그런 비질서를 갖은 무리 들을  혐오했던거죠
 
역으로 유비는  조자룡 마음을 다잡으려고 아두를 땅에 내치는데 이것마져 유교적 의리라는 덕목으로 포장합니다
나관중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유교적인 이상의 시각에서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을 바라봤고  유비를 그 중심에 놓고 여포는 변방 오랑케 X놈으로 본거죠
그리고 여포의 행동(아내의 침상에 손님을 앉게하고 술을 따르는)도  당연히 저급한 습속으로 혐오했을 것입니다 혹은 대중이  혐오하도록 그렇게 각본을 짯겠죠

여기서는 광해군이 몇번 세자 승인을 받으려고 노력했다거나 그런거 나열하는 자리 아니지 않습니까?
이덕형이 7순이 가까운나이에(지금으로 치면 80대) 나이에 그런 모욕을 당했다는거죠
그 이외(조선 초 포함)에는 그런거 없었다구요?
 외교는 기브앤 테이크고 지금도 일부러  국가간의 현실적 이득을 위해 긴장을 유도하곤합니다 구테타나 세자책봉등 유교적 이념에 반하는 사건이 있을 때 마다는 물론 소소한 것 마져 트집 잡아서  명나라는 자신의 영향력이나 종주권을 확인하기 위해 딴지를 걸었을 겁니다 이덕형이  그 고생을 한것처럼 말이죠
님은 조선초 빼고 없었다고 그러는데 있다는(이덕형과 같은 수모) 증거 없습니다
누가 그런 치부를 책으로 냈을까요? 죽천말고 말이죠 하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님이 증거 대보라고 하면  못댑니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아니 그이상(이덕형사건)의 사건이 있었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사를 보면  원의 간섭같은 것도  조명 관계보다 더 직접적이고 집요할 때도 있었지만(그래서 조명간의 관계나 커뮤니케이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통합체적  연결고리와 교류가 있었던거죠   
고려 띠울려고 조선깐다는 말이 뭔말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저는 유교가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습니다 ㅋ
광해군이 적자가 아니라서 몇번 명황제를 찿아갔는가나  사신의 지위 조명 왕실의 관계에 관한것은 새로운 스레드를  님이 여세요
자꾸 주제와 상관없는 거 꺼내서  자신의 현학성을 자랑질해서  주제가 뭐였더라 ? 라고 생각하게 하지 마시고 ㅋㅋ
     
mymiky 16-01-12 21:48
   
1.출저는 바이두입니다. 중국판 네이버죠.
바이두 지식판에서도, 중국인끼리, 여포의 출신이나 민족구분에 대해 의견은 분분합니다.
링크는
http://baike.baidu.com/link?url=jFe-CaigdSyRWfjxqnBsTaKIeVMybvOWJ_rOCSk4V5ACYAjxxnpaI7xolLHqSHQ7xEswRmcpFBHIogYdhg3uXB2M7eLwD20oEt-cuU7rMO_
참고하세요.
그밖에, 바이두에 여포를 한자로 치거나, 여포 민족, 소수민족이라고 치셔도 됩니다.
일단, 바이두의 백과사전에서 여포의 민족구분은 한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2.이덕형이라고 해서 ㅋㅋㅋ 한음인줄 알았죠.
그건 제 착각이 맞고,  저의 실수입니다.

3. 나관중의 삼국지엔 한나라 정통성을 띄울려고 유비를 밀어줬다는 평가가 있긴하죠.
여포의 출신을 보고, 깍아내리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웠다는 의견은 저도 들어본적 있습니다.다만, 위에서도 썼듯이, 여포의 민족구분은 지금와서 별 의미는 없습니다.

4.왕자의 난이 명나라와 긴장 관계였나요?
오히려, 왕자의 난의 승리자는 이방원입니다. 이방원은 일찍히, 명에 사신으로 간적이 있으며
연왕이던 주체(영락제)와 직접 만나, 술자리도 같이 한 사람이고.
그 인연으로, 비교적 무난히, 책봉을 받았지요
( 태종 이방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명의 책봉을 정식으로 받은 조선왕입니다.)
이방원은 개국초기였기에, 명과 척을 세워도 좋을바 없으니 , 왠만하면 명의 요구를 잘 들어줬던 왕이구요.  조공품 숫자가 많으면 좀 줄여달라고 했던건 있겠으나 기본적으론 명과 긴장관계 벌인일은 없습니다.

세조반정을 말할 요량이면, 세조는 며느리를 잘 얻었지요 ㅋㅋㅋ 인수대비. 아버지 한확은 누이 둘이나 명의 황궁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한확 본인도 명에서 작위가 있었구요. 세조 또한 왕자시절 주청사로 명에 가서, 인맥이 있었고, 사돈인 한확도 외교관으로 활동했기에, 명과 긴장관계 일으킨 왕이 아닙니다.

중종반정때는 잘 모르겠네요.
연산군이 역대급이였으니 이 경우엔 왕바꾸는게 차라리 나았던거 같고-

근데, 세자 책봉문제에 명이 태클을 거는 일이 그 이전에 있었나요? -.-
선조 이전에는, 적장자나, 왕비소생의 직계들이 올라갔습니다.
딱히 명나라가 딴지걸만한 일들이 없었던거 같는데;;

세자문제로 골치가 아팠던건 역시나 광해군 정도고,,

님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봐도, 딱히 없음.
효종부터 현종, 숙종까지 외동아들이였고, 영조도 경종이 무자식이였니 청에서도 추정 왕위계승자로 대우했었고, 그 이후에도 딱히 없네요.

사실, 역대 중국이 조선 왕의 책봉을 거절했던 예가 없긴 하죠.
광해도 세자 책봉을 번번히 거절당했지만, 일단 왕에 오르자, 왕으로써 책봉 받았고요.
인조도 갑툭튀 한 사람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받았고.
어차피, 명이나 청이나 자기나라 일도 아닌데, 외국 왕인 조선왕을 바꿀수도 없구요.
그에비해,
원은 고려왕이 원의 황족이기도 하니깐, 원으로 소환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수밖에 없죠.
          
mymiky 16-01-12 22:13
   
개인적으로는, 조선이 최후의 왕조이고,
비교적 타시대와 달리 자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많이 필요이상 까이는 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고려나 삼국시대 자료가 조선보다 훨씬 부족, 빈약하기에
뭘 알아야 까지 ㅋㅋㅋ
(디시 역사갤을 가봐도, 조선까는 수두룩하나, 그 이전 시대까들은 적음.)

꼭 웹상에서 네티즌 말 들으면,
우리나라는 당장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로 들리는 것처럼,

조선도 말기 빼놓고는,
그리 쓰레기 막장국가 대접 받을만한 나라는 아닌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건 좀 있어요.
(기록유산 나라의 아이러니ㅋㅋ)

본인께서 조선까가 아니시라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학성을 운운 하시는데 참, 당황스럽네요 ㅋㅋ
제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인가요?
역으로, 제 스타일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이해하기 쉬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님과 싸우고자 하는 의도도 없구요,
사람마다, 제각자 받아들이는게 다 다르기 마련이니까, 그려려니 하겠습니다.
               
하얀그림자 16-01-13 08:50
   
자 ~ 세자 책봉문제나 왕자의 난을 또 물고 늘어지시는데
제가 많이 모자라서요^^ 이해하시고요

바빠서 할만만 하겠습니다

자꾸만  달을 쳐다보라는데 손가락 쳐다보고 계시네?????
내 얘기는  명나라가 유교적 이상과 정의 를 실천하려고  조선에서의 반정이나 장자 적통  상속을 위배했을 때 무력으로 바로 잡았던적 있습니까?
몽고처럼  충혜왕 잡아간적 있던가요????
명은 단지  껀수 잡았을 때  갑질했던겁니다
그래야 자기 말 잘 듣기 때문이죠
 명나라도 역시 유교의 국가입니다
왕자의 난은 그렇다쳐도 세조나  중종반정때 명이 수월히 넘어가줬을까요?
광해의 세자책봉문제  그 이전에 갈등이 있었는가?라고 하셨는데.....
왕자의 난은 명과 이방원의 인연으로 오히려 그런 문제 없었다고 하셨는데........
세조와 중종때는 어땠는지요?
그리고 이항복의 친구 이덕형의 호는 죽천이 아니라 한음이지요
님은 죽천일기,,,,,,,라고 하며 "오성과 한음의 한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을 천일동안 먹은 일기가 아닌바에야 죽천이 사람의 호인건  자명한거 아니겠습니까?
한음을 아호로 착각하셨던가 죽천이 한음의 정식 호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여포의 출신성분에 의미가 없다고 하셨는데
(물론 이부분은 내가  한족 나관중이  저물어가는 원나라와 같은 족속인 여포를  유교적 도덕관념으로 팻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몽고 계통이라고 단정한 것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포가 조조에게 사로잡혔을 때  배신도 했지만  유비를 도와준 여포이기에  옆에 있던 유비에게 포박을 느슨하게 해달라고 조조에게 말해달라고 합니다
여포는 유비와 상부상조한 전력이 있고  스스로 아우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이면 조조가 자신을 살려줄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유비에게 한것인데 유비는 조조에게  여포를 죽이라고 합니다
나관중의 연의는 소설입니다 한나라 정통성을 밀어주려고 했다는 평가가 있는게 아니라
나관중이 열열히 밀어 준겁니다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성문을 열어 준 사람을 여포의 장인으로  둔갑시키죠
나관중에게는  유비라는 군자가 배신을 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유비는 자신의 수하에게 배신당할 수 없는 완벽한 리더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여포를 조조에게 죽이라고 했던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여포는 더더욱 나쁜 놈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죠
그리고 중국 55개 민족중 중국외에 그 소수민족과 동일한 민족의 국가가 있는 나라가 4나라(한국 몽골등)있는데  여포의 고향은 지금의  내몽고 지역입니다
내가  공정의 관점이 아니냐고 물었던건  중국에서는  한족으로 보고있다.....라는 중국의 관점을  님이 내세워서 그리 말한겁니다
중국은 고구려를 자신들의 지방정권으로 보고 있는데  이에동의하십니까?
여포가 서주의 유비에게 의탁할 때 자신을 받아 준 유비에게 고마워하며 자신의 아내의 床에 유비를 앉게 하고는 술을 따르게  했는데  이건 유목민의 습속 특히 흉노 몽고의 습속입니다
한족에게도 귀한 손님에게 아내가  응대를 하지만 침소에서 하지 않습니다
유목민의 습속중엔 형사취수와 같은  것도 있었고    형이  새장가를 가서  기존의 처를 동생에게 생전에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손님에게 자신의 처를 를 제공하기도 하고요
꼭 유비를 동생으로 칭한 여포가 자신의 아내를 유비에게 빌려주려고 했다는게 아니라
남녀유별의 유교적 도덕관념이 희박한 흉노의  세레모니일수도 잇고 일상일수도 있다는거죠

이게 위서나 후한서에 있는 내용인지 삼국지 연의에만 나와있는  나관중의 시나리오인지 모르지만 정사에 나와있다면  여포는 몽골인의 조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연의에만 있는 픽션이라면  자신들을 지배한 이민족에 대한 증오를 여포에 담아서 그쪽(몽고) 계통이라는 올가미를 쒸운게 되겠죠 (꼭 이민족의 개념이 아니라 유교적 도덕질서에 대한 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는 쌍놈 야만인  오랑캐 정도로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여포가 유비를 자신의 처의 침대에 앉게  나관중 감독이 시나리오와  미쟝센을 준비한게 된겁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에 대한 시놉시스를 쓸 때 오랑캐 개X놈으로  여포 캐릭터를 준비한겁니다
왜? 유비가 죽이라고 했으니까요
조금이라도  여포의 인간적인 매력을 끼워넣는다면
유비가 절대 선이 될 수 없기에 여포를 그런 인간으로 그려 낸것입니다

마술이나 기병전술 활에 대한 조예도  이민족이거나 변방인으로서의  특징 사항이랄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여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여포자신도 변방인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요
워낙 무예가 출중했기에  정원이나 동탁에 의해 사용되었을뿐이란거죠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여포 흉노족설입니다
중국에서는~~~~ 로 보고 있다라는 것에 내가 반감을 느꼈을까요?
다짜꼬짜  여포출신설은 분분해서 믿을게 못된다
=============================
'이 사람이 예를 든
죽천일기는 왜란때 활약한 이덕형이 남긴 겁니다.
오성과 한음할때 (한음)으로 유명한.. "

징비록을 봤으면 알겠지만.. 당시, 조선이 찬밥 더운밥 따질 상황도 아니였음"
=============================================
님이 말한 이 부분

여기서  내가 빵터져서요 ㅋㅋㅋ

내가 하는 얘기는 그게 아닌데 친명배원이라고 했다고 딴지걸고
여포는 중국에서  한족으로 보고 있다고 그러니 짜증나기도 해서요 ㅋㅋㅋㅋ
거기다가
조명간 긴장관계를 설명할 때 유리한것만 끄집어 내서(광해의 세자책봉문제나  왕자의 난 이방언) 설명하고 세조나 중종 얘기는 언급도 않하면서 토론으로 너를 눌러 버리겠다라는 폼으로 느껴져서 웃음이 나네요 ㅋㅋㅋㅋㅋ
언급하는거 마다 터치하려는 그 태도 말이죠
 근데 그 내용이 거의 아는것들이라서요  신선하지도 않고,,,,,,
고작해야 내겐 오래동안 덮어 놔서 긴가민가 하는 정도뿐이라서요 ㅋㅋㅋㅋ
  한몽얘기하다가  삼국지 여포 얘기를 잠깐했더만
 조선이 어떻고,,,,,,,, 기승전 조선인가요?????? 결국  끄쪽으로 옮겨 붙었네요ㅋㅋㅋㅋ
조선이 쪽발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륙의 속국은 아니어도
님의 말처럼 현대적인 평등의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禮의 개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님이야말로 현대의 외교관례 +禮 = 조선의 사대로 보는것은 아닌지요?
글구
 나관중이  그럼 중립적이었다는 말씀인가요? 뭔가요????
                    
하얀그림자 16-01-13 14:04
   
아까는 시간이 없어 핵심을 못짚었네요
중국에서 여포에 대한 견해는  기본적으로 한족이다
 바이두에  그렇게 나와있다 여포출신성분이  무슨상관이냐 이런입장이신데
님의 견해는 중국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식민사학,,,아니 사대사학이라고나 할까요?
중국의 입장에서는 여포는 한족이고 2000여년 전에 이미 우리 땅이었는데 몽골족에게 빼낀거 다시 수복했을뿐이다라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거죠
하지만 여포가 비 한족이라고 추정되는 요소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견해를 비판없이 받아들여야할까요?
같은 한자 문화권에  기록도 충분합니다
한학?을  깊이있게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대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 문화의 깊이와 방대함에 저절로 복시하게 되는거죠
근데 님은 그런 경지가 절대 아닌거 같은데  중국의 견해를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시는지요? 그런 비판능력이 없으신지요?
님이 말하는 잔지식은 조선왕조실록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모든 학문에서 그렇지만 중요한건
 잔지식이 아니라  학문하는 방법 즉  인식론적 주관이 있어야 하는것 아니겠는지요?

예란 글자는 재단........ 좀있다가 다시 적죠
                         
하얀그림자 16-01-13 15:08
   
예는 제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예는 계급과 지위에 따라 ,신분 격차와 때 장소에 따라 세분되죠
정말 조선과 명은 예라는 형식을 빼고나면 평등했을까요?
수많은 조선의 사신중 수모를 당한 사신은 오직 죽천하나뿐일까요?
죽천이 수모를 당한것은 유교적 이념에 반하는 행동을 한 댓가이기도 하겠지만 명나라입장에서는 껀수 잡았던 겁니다
다시 여포 얘기로 돌아와서
그럼 그당시  한족은 정확히 말하면 한족의 귀족들은  자기 마누라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
성룡과 김희선 나오는 영화있죠
진시황의 첩 김희선이 성룡 앞에서 춤을 추자 성룡이 눈을 가리며 "이것은 오직 폐하(진시황)만이 볼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대명률의 기초가 되는 개념은 한나라 때  거의 다 완성됩니다
임진란때 명의 관리를 오성과 한음이 접대하고 있었는데
한음 이덕형(광주이씨)이 이산해(한산이씨)의 딸과  혼인하였는바 같은 이씨끼리 결혼했다고  그 중국 관리가 쌍놈이라고 대노했다죠?
 유비 여포가 생존하던시기 .... 이미 한족은 유교적인 도덕관으로 무장됬었습니다
유비가 진짜 군자라면  그의  눈에는 자신을 부인의 침대에 앉힌 여포가 혐오스러웠을 겁니다
연의에서 초선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낸것은 의도가 명확합니다
오늘날  우디앨런은 연인인 미아 페로의  한국계 입양아 순이와 결혼했는데
 범인들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이나 조선에서는 개쌍놈이 되는거죠
그 당시의 도덕관념에서는 말이죠
유비를 접대할 때  여포 아내의 침대가 단순한 나관중이 마련한 소품이었는지 진짜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그 장면은  삼국지라는 드라마에서  초선과 마찬가지의 기능을 하는 소품인것입니다
나관중은  여포를 당시의 도덕관념으로  부관참시한겁니다
여포가 죽은지 1000여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시체를 꺼내 한족 민족주의  혹은 유교적 부흥을 위해 붓으로 난도질한것이죠

 역사는  당시의 관념이나 눈높이에 맞춰야 가장 정확한 인과관계가 설명된다하겠습니다
반대로 여포는 자신의  아내를 여차하면 빌려줄 의향도 있었는지 모르죠(현대적 도덕관념으로 보지 마시길 계급이 낮은자가 높은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제공하는 것 혹은 우호의 뜻으로 아내를 제공하는 것도  흉노의 관습이지요)
여포가 왕따 당한 이유가 흉노족이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광해군 인조시대 우리네 유학자 양반들 눈에도 역시 떠오르는  주역 청나라가 그렇게 보였던 겁니다
한학자들은 학문의 깊이를 넓힐수록  모화사상에 빠지게 되는걸  나는 목격한 바 있습니다(고등학교 한눔선생님) 그래서  이덕형뿐만 아니라 많은 사신들이 그런 모욕을 감내했고  그런 피학(명)의 역사를 가학(청)의 시선으로 바라본거죠
그래서 비교적 호의를 보인 청나라를 희롱한거구요
조선을 필요이상으로 까는 것도 문제지만  미화하는 것도 바른것이 아니죠
                         
하얀그림자 16-01-13 20:44
   
님이 말하는 눈높이 역사관( 현실의 관념이 아닌 당대의 관념과 예절에 따른 역사해석)이라는 것은
현실적 관념 인식 가치관에 기반해서 +예라는 절차가 첨가된  역사인식에 불과한것으로 사료됩니다
눈높이를 빙자한 자기만족적 해석이지 주체적 역사관이랄 수 없겠죠
그럼 너가 말하는 눈높이 역사 인식은 뭐냐?라고 물으신다면
뭐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당대 14세기 명시대에 명이 바라보는 오랑캐에 대한 인식은 걸어 다니는  개돼지쯤으로 생각했다고 판단합니다

그럼 조선은?  비교적 인간된 도리와 예를 흉내 낼 수 있는 오랑캐죠
그럼 우리는 자신과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오랑캐에 대한 입장은 중국과 동일하고
자기 자신(조선)에 대해서는 중국 다음의  문명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중국은 명시대의 중국이 아니요
지금의 한국은 조선시대의 한반도가 아닙니다
중국은 청시대를 거쳐 문화 대혁명을 치루면서  유교적 가치관이 현저히 희석됬습니다
한국도 일제와 현대화를 거치며 희석됬습니다
국가간의 평등이라는 개념은 생긴지 얼마되지 않죠
그런 평등의 개념에 예를 추가한 스펙트럼으로 과거를 비추면 ...
왜곡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잘못된 재료로  가공한  요리가 제 맛을 내겠는지요?
죽천만 재수없게 반정승인받으러 갔다가 수모 당했을까요?


현란한 스킬을 뽐내는 셰도우 복싱하지 마시고
.제대로 된 역사관을 장착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저 위에 뭐라고 그랬더라? 과거를 현재의 사고방식으로 풀지 말라고 그랬던가 하는 말 취소하던지...
달을 가리키는데 자꾸 손톱에 때꼈다고  타박하지마시고 말입니다
                         
mymiky 16-01-13 21:35
   
-여포에 대한 님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이덕형의 이름만 눈에 띄어, 죽천과 한음 호를 헷갈린 것은 저의 실수구요.

-근데, 비교적 조선에 호의를 보인 청나라를 희롱한것이란 부분에선 갸우뚱 거리게 만드네요.
 
친명배금은 사실, 일종의 간판달기일 뿐입니다. 실상은 전혀 달랐거든요.
뭐, 이건 훗날 효종의 북벌론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청은 떠오르는 나라 포지션이였던건 맞죠,, 단,명도 전성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할순 없었습니다. 청나라가 젊은 늑대라면, 명은 늙은 호랑이였고

보통, 조선이 명만 따르고, 청은 무시해서 호란이 일어났다고 통상적으로 그런 이미지로 아는 분이 많고, 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그 논조 따릅니다.

그래서, 중립외교를 한 광해군 성군이고, 호란을 불러 일으킨 인조는 죽일놈이구요-.- 사실, 이 두 왕이 외교가 많이 다른 것도 아니거든요;;

인조의 반정공신 들이였던 김류나 최명길도, 고려가 송, 금에게 사대했듯
명, 후금에게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양다리 걸치는건 이미 전례가 있는 일이고, 사대로써, 나라를 보전하면 된다고요.

보통, 일어나는 청을 무시하고, 명만 쫄쫄 따라붙는 바보 조선이란 이미지는
일본인들이 씌운 식민사관 중 하나입니다.
(자기들이, 쇠퇴해가는 청나라 붙잡고, 일어나는 우리 일본제국에 안 붙는 조선을 그렇게 욕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

사실, 따지고보면, 인조는 호란이 일어나기 반년전에(1636,6월) 청국을 인정한다는 국서를 보냅니다. 당시, 후금은 황제국이라 칭하며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조선보고 형제국에서 황제국으로 격상해 인정하라고 하죠.
물론, 조선측에선 반강제적으로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는게 맞겠죠.

하지만, 그해 겨울 청은 조선을 칩니다.
-어차피 청을 무시했다는 내용은 청나라측의 명분일 뿐입니다.

당시, 조선인들이, 당시 낙후되었던 여진족들을 무시하긴 했지만,
이미 당장 눈앞에 커버린 청이란 나라는 무시할수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인 개개인보고는 미개하다니, 잘 안씻는다니, 시끄럽다고, 궁시렁 댈지몰라도, 중국이란 국가 자체는 무시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보통, 한국인들은 호란 책임을 우리측에서 이해하기 바쁘지만,
청나라가 후금시절부터 조선을 약탈하고, 어그로끈 것은 잘 모르죠.
대접문제로 걸고 넘어지고, 후금에 간 조선사신들 박대하고,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힐난하고, 인조 왕비가 죽었을때 초상집 와서 트집잡아 분위기 싸하게 만들고, 청도 명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기를 누르기 위한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재 역사 학계 연구나 논문경향은
호란의 요인이, 조선보다 청의 내부사정에서 나왔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알려진 광해-인조대의 정책들도 재평가 받고 있구요.

명과 싸우느라, 조선은 후순위였던 누르하치에 비해,
홍타이지는 아버지때부터 조선부터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였고,
그런 생각을 가진 그가 다음 보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뭐, 조선이 엎드리든, 고개를 쳐들던, 그냥, 청의 입장에선 중원으로 가기전에 좀 손 봐주고 시작할 나라였습니다.
거기다 청의 식량난과 처갓집 몽골 부족들에게 콩고물을 챙겨줘야 했던 상황이구요. (병자호란때 약탈은 참전의 댓가로 몽골팔기들이 주도하고, 만주팔기는 방조,묵인하였습니다.)

왜란이 조선이 일본에게 잘못한게 있어 생긴 전쟁이 아니듯,
호란도 따지고보면, 조선이 청에 잘못이 있어 일어난 전쟁이 아닙니다.
적국의 수장이 정벌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 단행한 것이죠.

이런 이웃을 둔 우리나라가 복이 없었던 것일수도 있고,
문치주의로 무가 약했다거나, 인조의 인사정책에 대한 비판은 있을수 있겠지만요.

산해관도 못 뚫고 있던 청은, 명의 내분과 오삼계 도움으로 중원땅으로 나가는데 성공하고,알다시피 최후의 정복왕조가 됩니다.
그리고, 중원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고, 중원의 지배자가 주변 나라들을
번국(실제 통치를 의미하는건 아님)으로 삼는 전례에 따르게 되죠.

조선 안에선, 일부 선비들이 오랑캐 운운할지라도 그거야, 안방 놀이인거고,,  (고려때도 원에 사대해도, 몽골족 오랑캐 운운하는 사람은 늘상 있었음. 그들 역시 걍. 안방이니 하는 소리고)
표면적으론, 조선은 청나라에게도 사대의 예는 다 했습니다.
청과 날을 세워봤자 엄연한 국력차가 있으니 ㅋㅋ
청나라의 중원지배가 확고해지고, 번영을 맞이하자, 차차 청나라를 배우자는 현실론이 대세가 되죠.

19세기에 서구사상이 들어오면서, 그 틀이 깨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이건, 님도 알고, 저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팩트일 뿐입니다.
제가 중국을 띄워준다고 생각할실 필요도 없는거죠.)

제 역사관이 바르지 않다고 타박하시니 당황스럽네요-.-
(과거를 현재의 사고방식으로 풀지 말라고 그랬던가 하는 말 취소하던지?)
이 부분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든다는건지 모르겠군요;; 

봉건시대는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하고,
현대의 관점으로 그 시대를 보는건 오류일수밖에 없다는게
잘못된 말이 아니죠.

저 또한, 조선시대처럼 하자고 주장하지도 않구요 ㅋㅋㅋ
이미 그럴수도 없는 시대구요.

다만,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국들에 둘러쌓여있는 분단국으로써 염려됨과
미중사이에서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된다고 생각할 뿐이죠.
하얀그림자 16-01-13 23:37
   
여포에 대한 ?나의 생각 알겠다고요?
뭐를요?? 나는 여포를 얘기했지만
나는 여포가 살던시대의  지배관념 그리고 14세기의  지배관념 그리고 17세기의 지배관념(조선)에 관해서 얘기했습니다
자꾸 꼬리 물지 마시구요 한주제에  대해서만 얘기합시다
홍타이지를 조롱했다는것에 갸우뚱 하신다면서 자신있는 부분인지 모르지만 또 물고 늘어지네???ㅋㅋㅋㅋㅋ
하나 해결하고  그쪽으로 건너가든  위에 미결된 부분으로 건너가죠 ㅋㅋㅋㅋ
셰도우 복싱 그만하시고요
내가  조명의  갈등을 얘기하면서 왕자의 난을 언급한것은 어떤 정변에 있어서 명의 터치나 간섭이 개제됬을까하고 다른 구테타와 함께 끼워 언급한것입니다 ㅋㅋㅋ 다음 부터는 검색을 하던지  조금 보충적으로 상황파악 좀 하고 대답할께요 ㅋㅋㅋ


 님은 사대의 예는 단지 그 시대의 예를 따른 형식에 불과했다고 했습니다
님은 그 시대의 상황으로 역사를 이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예라는 것은 단순한 외교 관례상의 예라는거죠
근데 님의 의견을 곡해 한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예를 빼면 조명은 평등했다라는 말인가요 뭔가요????
내가 한음이 이산해의 딸과의 결혼했다고 명의 관리가 대노한 것을 말한것
여포가 흉노의 예법을 시전했다거나  나관중이  여포를  음모(이민족 흉노)에 몰아 넣었다거나 장황하게 설명한 것 그리고 나관중이 살던 시대상  그리고 초선이 가져오는 여포에 대한 타격같은 것은
여포가 흉노라고 말하려는게 아니라 그 당시(3 14 17세기)의  지배적 관념  즉 사회 윤리적 가치에 대한 설명을 하는 방편이었습니다
내가 표현력이 부족한가 님의 이해력이 따리는건가는 몰라도 자꾸 대의와는 상관없는 역사적 사실의 열거를 제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토론입니까???????님은 여포가 어느 출신이건 상관없다고 하셨는데 그게 뭔 의미신지요?????
님의 동북공정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갑자기 이얘기를 꺼낸건 님은  나에 대한 반박을 위해서  여포를 중국에서는 한족으로 보고 있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님의 역사 인식은 과거의 눈높이 역사를 표방하지만 그건 눈높이가 아니라 21세기가 만든 사고의 방식에  예라는 절차를 첨가한것뿐이라는 내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님의 과거 글을 보면  그리고 나와의 글을보면 님이 말했습니다
과거를 현실의 사고체계로 보지 말라고..... 그리고는 죽천은 반정 승인받으러 갔기 때문에 당한 특수한 경우의 수모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손님인데 박대했겠냐..... 음식은 뭘로 대접했다더라......
이건 21세기 사고입니다
근데 자꾸 핵심과는 거리가 있는 말꼬리 잡기를 해서  본질적 토의가 성립하지 않는군요
 조선이 그런 유교에 입각한맹목적  윤리의식 ? 소화주의사상(유교자체를 까는게 아님)에 젖었기 때문에
 그런 유교주의적 세계관이 어떤것인지 설명하기 위해 여포처와 침대 유비  한음과 명관리를 끌어 낸 겁니다
오늘날의 기준 ,가치, 사상 선입견이 아닌  중국이 우리를 보는 눈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말하려고 장황히 설명했던거죠  여포 얘기한것은 그런 고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시대의 지배관념 도덕의식 같은 것을 말하려고 한것입니다 이런것 없이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난  나무기둥 그리고 있는데 님은 자꾸 가지를 그려 가니  답답하네요

자 !조선은 어떤 나라였습니까?
이 문제를 토론하기에 앞서 님의 대중국관이  내지 역사관  역사를 보는 방식이바뀌지 않는다면
얘기가 평행선을 타겠죠
글다시면 대답은 낼 할께요 축구봐야 되서 일찍 잘랍니다^^
     
mymiky 16-01-14 00:22
   
저의 중국관을 운운 하시는데 -.-
참 당황스럽네요 ㅋㅋㅋ

위에서도 말했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 입니다.
오늘날처럼, 국제법과는 많이 다른 세상이예요.
(님이 이걸 받아들이는게, 싫든 좋든 간에 말이죠)

중원을 중심으로, 여러 번국들이 있고, 서로간엔 질서가 있습니다.
중원의 주인이 한족이 될수도, 다른 이민족이 될수도 있지만
시스템 자체가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국(=종주국)은 상국으로써 권위을 가지고, 번국(=속국, 조공국,제후국)들을 잘 조율할 필요가 있고
번국은 상국을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 본분에 맞게 행동하며,
양국은, 서로간에 조화로움을 추구합니다.

이것을 체계화 한것이,
서로간에 책봉과 조공이란 형식이구요.
 
(여기까지 이해되십니까? )

상국의 갑질을 말해주신 부분은 알겠습니다.
단, 사대외교는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다양한 면에 걸쳐져 있기에, 일방적인 면만을 
봐서는 안됩니다. 조공관계가 삼국시대부터 수천년간 이어져 왔는데, 다 같을수도 없습니다.

번국이 된다고 해서, 그게 중국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식 행정의 군,현이 설치된 것과는 다른 의미니까요.

따라서, 제국주의적 식민지처럼 말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속국이란 단어도, 당대엔 나쁜 의미로 쓰이지도 않았구요.
( 요즘엔 속국이란 말이 부정적인 느낌이 풍긴다고,
티비, 사극에서도 형제국이나, 제후국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세기에 서양으로부터 만국공법이란 국제법 개념이 들어오고,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이런 시스템은 깨지게 됩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퀘퀘묶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다, 중국 경제가 떠오른다고 할지라도
이미, 예전처럼 책봉을 하고, 조공을 하고 하는 관계로 돌아갈순 없습니다.

(중국은, 자기들이 한창 잘 나가던 시대의 향수가 있으니까,
패권주의로 나갈려고 하는건 있지만 ㅋㅋㅋ
중국 또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국제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지요)

그래도, 제가 말주변이 없는것인지? ㅋㅋㅋ
정~ 뭔 말인지 맘에 안든다거나, 잘 모르겠다 하시면,

김한규 교수가 쓴
[천하국가- 전통시대 동아시아 세계질서]란 책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좀 두껍긴 해도, 님이 역사에 관심 있으시다니, 한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무리수이자, ㅄ짓이라고 생각하고요,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가 많이 훼손되고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얀그림자 16-01-14 14:00
   
풉 ㅋㅋㅋㅋㅋ
내가 뭔 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ㅋ
 누구에게 사사 받았는지 모르지만 사사받은 사람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시네 ㅋㅋㅋㅋㅋㅋㅋ
다시한번 묻습니다
죽천이 재수없어서 모욕당한 유일한 사신이었을까요? ㅋㅋㅋㅋ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왜곡되는게 역사가 아니에요 ㅋㅋ
역사란 무엇인가 먼저 읽고 자랑질하세요 ㅋㅋㅋ
 여포는 강족이고  뭐 어쩌고 저째 ㅋㅋㅋㅋㅋㅋ
바이두에 그렇게 써있기 때문에
한족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에게는 학문하는 방법내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잘못되있습니다
양으로 질을 까려고 하네 ㅋㅋㅋㅋㅋㅋ
동북공정은 병/신짓이라고 말하면서  중국쪽(한족 강족 )얘기를 비판없이  자기 지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물론 그쪽에 전혀 개념이 없는건 아니고요?ㅎ
바이두가 말했다 한족이라고........강족이고 강족은 옮겨다녔다고요???? ㅋㅋㅋ
여포 고향은 대대로 흉노지역이었고
당시찿아보니 비슷한 시기  강족은  흉노보다 더 서쪽에 있습니다
흉노와 강족이 교류는 있었지만 여포가 태어난 서기 150년대는
그 지역은  강족이 발흥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강족에게도 형사취수 부사취계모같은 습속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찿아보니 마등 정도가  강족의 혼혈이더군요
결국 강족 어쩌구 저쩌구는  중국의 역사공정이라고 사료됩니다
 
당시의 언어로 읽으면 역사는 더욱 풍부해집니다




 서진시대의 민족 분포도입니다
님이 여포가 강족이라고 그랬고 민족의 이동이 잦았다고 그랬는데 걍 두리뭉실 묶어서 말하지 말고 증거 좀 대주세요
강족은 찿아보니 98.13%가 스촨성에 모여 살더라고요  위 지도의 남서쪽이죠 ㅋ
위강역도하고도 중첩되죠(보이지는 않지만 짤려서)
님 글에 영혼을 불어 넣어보시죠
절 설득시켜보세요 ㅋㅋㅋ
님 글이 현학적인 무리수가 아니길 빕니다 강족이동 어쩌구 저저꾸가 님 머리속의 피상적 망상이나 중국 이나 바이두에 의존해서 ,,바이두의 권리로 나를  찍어 누르려 했음이 아니길 바랍니다 ㅋㅋㅋㅋㅋㅋ
     
mymiky 16-01-14 14:11
   
애초에, 인조가 제대로 정통성을 갖춘 왕으로 즉위했으면,
죽천이 그런 꼴 안 당했겠죠-.- 명도 인조의 책봉을 거절할 명분도 없는거구요.

강족이란 것도 중국에서 나온 여포 소수민족 혈통 가설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 가설을 소개해 드린 것 뿐입니다.
저에게 따지지 마세요 ㅋㅋㅋ 님이 왜 여포에게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여포가 어느 민족이던지간에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습니다.
여포가 한족이든, 강족이든 뭔 상관입니까?

설사, 여포가 강족이든, 흉노계든, 어느 한쪽 혼혈이든,
하다못해 백인 유목민의 후손이든 지금와서 알수는 없는 것이고

여포는 걍. 중국인이죠 ㅋㅋㅋ
          
하얀그림자 16-01-14 14:26
   
님 말대로라면 연개소문은 중국인이군요 ㅋㅋㅋㅋ
그럼 역사란 무엇입니까?????ㅋ
               
하얀그림자 16-01-14 14:31
   
님은 소개를 그따위로 하시나 보네요 ㅋㅋㅋㅋㅋㅋ소개만 하시지 왜 까세요 님이 내 글에 단 첫 댓글? 별로 믿을게 못된다면서요? ㅋㅋㅋ 위에서 보는 시각 이거든요 ㅋㅋㅋㅋ

 지가 까놓고 반박하니 왜 집착하녜 ㅋㅋㅋㅋㅋㅋ
결례가 아니라면 님 몇살이세요?라고 물어봐도 될까요?????

붉은 점은 여포 고향이고요



몽골인들이 생각하는 몽골이전의 몽골입니다 한나라 시대의 몽골 강역도입니다

글구 님은 회피하는건지 못알아 먹는건지 내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mymiky 16-01-14 15:54
   
몽골인들은 유목민족이라, 칭기즈칸 이전 시대의 역사는 남긴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그 지방에 최초의 민족이라 부를만한게 흉노라,
(저기 시웅누라고 영어로 적힌거 보이시죠?)
흉노를 자기 조상격(?)으로 보는 것은 있겠지만요.
흉노족이 곧 몽골족은 아닙니다.

물론, 흉노족이란게 어느 단일한 민족이 아닙니다.
부족연합과 같은 성격으로, 흉노족 유물 중에는 중앙아시아 계통도 발굴되구요.
걍. 그 근방의 유목민족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것이 흉노족이라고 하는게 맞습니다.

당시, 한나라가 남흉노를 쳐서, 그 땅을 빼았았고(여포 고향)
그 변방땅을 지키기 위해, 한나라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그런 가문에서 여포가 출생했다라는게 현 중국의 공식 입장같은데,

그걸, 제가 맞다 아니다고 할순 없죠-.-

그밖에도, 소수민족설이나, 혼혈아 설도 있다는거구요.

제말 모르시겠어요?
               
mymiky 16-01-14 15:48
   
이분 정말 왜 이러시나? -.-
연개소문은 고구려인이죠;;
하얀그림자 16-01-14 18:45
   
흉노는 몽골이 아니죠 ㅋㅋㅋㅋ
코카소이드가 포함된  다양한 인종의 유목민 집단이죠
  내가 일부러 몽골인이 생각하는 몽골이라고 표현한것은 현재 몽골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야기 할 때 저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라고 몽골이라고 고집스럽게 얘기한겁니다 저 사진도 몽골 싸이트에서 퍼온거고요
여포를 중국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면  연개소문도  결국 중국인이죠
여포는 지금으로 보면 로버트 할리씨나 후인정(과거 국가대표 배구선수 대만화교)같은 존재죠
물론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남흉노를 후한이 제압했을 때 한의 풍속이 유입됬지만 흉노는 동화하지 않았는데
여포가 흉노짓을 했다면 여포는 한족이 아닙니다 ㅋ
한족이 흉노에게 동화됬겠어요? ㅋㅋㅋ

" 여포의 출신은 가설이 분분하기에,그닥 믿을게 못된다고 생각하구요"
그럼  내 반박에 대해서 반박해보세요
바이두의 중국식 시각을 내게 강요하지 말고 ㅋㅋㅋㅋㅋ

고구려나 부여의 왕을 중국은 선우라고 했고 고구려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인식했죠
선우는 흉노의 우두머리를 뜻하는거죠

비판없이 수용한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참다운 지식일까요?
이분 왜 그러실까?????
난 여기 동아게시판에 잘 오지도 않을뿐더러 댓글도 많이 안다는데 뭔가 꼬았던지
기다렸다가 저격해놓고 이분 왜 그러실까?ㅋㅋㅋ
내가 설득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님같은 사람입니다 ㅋㅋㅋㅋ
여포는 중국인입니다 맞고요....
물론 지금의 시각에서는 말이죠
고선지는 중국인입니까??????ㅋㅋ
여포는 중국인이고 내가 알바 아니다
나도 여포가 한족인지 강족인지 흉노인지 모릅니다
근데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논거를 대는데
님은 아몰랑
하지만 니말이 맘에 안들어서 꼬투리 잡고 싶어
이러는거그덩요>??? ㅋㅋㅋㅋ
친명반원이다 몽골이 생각하는 고대의 몽골..........
그 깊이나 의도(계속 몽골몽골거린것) 차별성(공민왕과 다른 충자돌림왕과의)보다는 단어 자체를 까는 버릇.... 왜?
자랑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자꾸 달을가르치는 손가락을 보는거죠 ...깊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금방 고갈되고 말죠 ㅋㅋㅋㅋㅋㅋ

여포는 아몰랑 중국인이야
연개소문은 고구려인이고..........

나몰랑 그러는데 어떻게 설득시켜요 ㅋㅋㅋㅋ
님이 그런 말하지 않았던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이중 잣대를 사용하세요 ㅋㅋㅋㅋ
님은 뭐가 불만인지 모르지만
나를 벼르다가 저격했습니다
그것도 불확실한 근거로 말이죠
바이두?????
ㅋㅋㅋ

=====================
사람들이, 항상 착각하는게 전근대사회는 전근대적 시각으로 봐야 이해를 할수 있다는 겁니다.
전근대사회를 현대적 시각으로 보자면, 이해되지 않을 것들 투성이죠.
그걸 비난하면 곤란합니다.
그때는, 그게 당시의 룰이였을테니까요
========================
님이 내 뱉은거 가져왔습니다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물어요?
님이 이렇게 말해놓고
 그 당시의 룰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룰로  역사를 바라보니까 그렇죠 ㅋㅋㅋㅋ

남을 까려면 그에 걸맞는 근거를 가지고 까세요
그래서 중국인의 세계관을 언급한건데요
왜 중국인의 역사인식으로 세계를 보려고 하세요
 진수가 방대한 사료를 모으면서 자료부족으로 아니면 고의로 누락시켰는지 모르나
여포는 이민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님은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고  나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타깃형 저격을 한거그덩요? ㅋ
     
하얀그림자 16-01-14 19:00
   
님이 말끼를 잘 못알아들으니 요약해 드리죠
여포가 이민족 흉노라는 전재하에 (여포가 흉노짓을 했다면 흉노를 정복하고는 오히려 한족이  흉노에게 동화됬다는 의미가 되기에) 여포가 중국인이라면
연개소문이나 고선지는 중국인입니까?
여포는 중국인이고 연개소문은 고구려인이라면
여포와 연개소문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더 정확히 하자면 고선지를 예로 들까요?
님은 단지  일본이나 중국책을 참고한  미국 교과서 속의 한국 역사가 진실이라고 말하겠습니까????ㅋ
          
mymiky 16-01-14 19:28
   
아니? 혼자 도대체 뭔 말이세요? -.-

연개소문은 고구려인이구요.
고선지는 고구려계 당나라인이예요.

모르셨어요?
               
하얀그림자 16-01-15 00:15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ㅋㅋㅋㅋ
네 고구려계 당나라인 맞습니다
여포가 흉노족이라면  흉노계 중국인이죠
걍 중국인이 아니죠 ㅋㅋㅋ
흉노라는 나라는 없기에 중국인이라고요?
지금 몽골은 흉노를 자신의 전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12-3세기에 지금의 몽골사람들이 갑자기 생겨 난것은 아닐테고 말이지요?
지금 중국이 북강공정을 하고 있나 마쳤나 모르겠는데
원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징기스칸을 위대한 중국인 위대한 소수민족이라나 그러고 자빠졌는데요
물론 지금도 내몽골이 중국영토구요
독립 몽골보다 네이멍구 몽골인이 더 많답니다
그리고 독립 몽골과  내몽고 몽골인의 차이는 한국인과 조선족의 차이보다 더 심하게 내몽고
중국인이 중국화 되었다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징기스칸이 중국인은 아니죠
여포를  닥중국인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말이죠
님의 시각이라면 연개소문도 중국인이죠ㅋㅋㅋㅋ
 

나 참 초딩 앞에 두고 말하는것도 아니고 이렇게 힘들어서야 ㅋㅋㅋㅋㅋㅋ
                    
하얀그림자 16-01-15 00:29
   
자 정리하죠
나는  여포가 몽골계다라고 해놓고 그노스님의 말씀을 듣고 한발 물러섯 습니다 아닐지도 모른다

님은
" 여포의 출신은 가설이 분분하기에,그닥 믿을게 못된다고 생각하구요" 라고 한마디로 제 주장을 깟어요  그쵸?
그 여러 썰들이라는 것은  그 후 댓글에 나옵니다
나는 딱히 동북공정과 븍강공정을 연결지어 말하려 했던 건 아닌데
님이 바이두를 걸고 넘어졌죠
지금 중국에서는 한족으로 보고 있다~라고
나는 님의 지식의 깊이나 비판의식을 문제삼으며 내주장을 하고 있는데
뭔 왜그럴실까?라는 말을 하시는지 모르건네요????
완전한 사실이 아니라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둔 경우를 두고
니말은 신뢰할 수 없고 모르면 조용히 하고  댓글 달지 말어 여긴 내구역이야 이러고 있어서 내가 님을 반박하고 있는거그덩요?????
바이두??? 민족 이동이 심했다?????????
내 주장 뒤에는 바이두의 권위가  있으니 나보고 짜지라는 님의 인식에 헛웃음이 나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mymiky 16-01-15 00:33
   
여포가 뭐시라고 이 난리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왕, 게시판도 뒤로 넘어갔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는게 서로에게 좋을듯 하네요.
하얀그림자 16-01-15 00:39
   
내가 여포만 가지고 뭐라는게 아니잖아요?ㅋㅋㅋㅋ
여포문제를 둘러 싼 님의 의식이 문제라는거지?
바이두의 권위로 너를 짜지게 하겠노라? ㅋ
자꾸 내 말을 왜곡하고 있어요 님은 ㅋㅋㅋ
난 님같은 사람 설득할 자신이 없어요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같은 한국 사람인데도 말이 안통하는데 어떻게 설득시켜요?ㅋㅋㅋㅋ
대답을 못하면  자존심 땜에 님같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왜곡하죠
역사에 대한 중심된 가치관이나 인식, 그리고 겸허함이 없으니 님에게 그런 태도와 논리적 구멍이  생기는 겁니다

자랑하고 싶은마음 찍어 누루고 싶은 마음 같은거 ㅋㅋㅋ
내 글에 댓글 달려면 보다 정중해 지세요 ㅋㅋㅋㅋㅋ
난 님이 하는 행태만 봐도 님의 인격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ㅋ
그리고 단순한  카세트 테이프인지  진짜 실력가 인지도 판단할 수 있지요 ㅋㅋ
mymiky 16-01-15 00:54
   
저두요-.-
말길을 못 알아먹으니,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네요 ㅋㅋㅋ

이만, 소모적인 ㅄ릴레이는 마치는게 좋을듯 합니다.

님과 제 스타일이 안 맞는가본데
너를 짜지게 하겠노라?  혹시 저에게 자격지심 있으세요? -.-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ㅂㄷㅂㄷ 재밌네요 ㅋㅋㅋ

담부터, 제 글에 님도 답 달지 말고,

저도 님의 질문에 답을 안 다는 것이
서로간에 좋을듯 합니다.

서로 아이디 보고, 패스해 갔으면 좋겠네요.
아셨죠?

기껏 성의껏 달아주면,
현학적이라니, 잘난척 한다니, 카세트냐? 감히 니가 날 가르치냐?고 나오는 사람에게
저도 제 귀한 시간을 낭비 하고 싶진 않아요.
     
하얀그림자 16-01-16 10:14
   
자 최종정리하죠 ㅋㅋㅋㅋ
★나" 공민왕 반원 친명정책(이건 역대 충자돌림 왕과 공민왕의 차별성적 차원의 말임)
->◆ 너님" 등거리외교다
★공민왕이 과거와  다른 외교정책을 펼친 이유는 기존의 국제질서(원천하)가 무너지고 균형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포 몽골 지역 출신인데 한족 민족주의에 의거  여포를 개X쌍놈으로 만들었다
◆->바이두에 여포는 한족이라고 되있고 강족등 기타 인종일지도 모른다 무슨 족이든 무슨 상관이냐
★ 여포의 고향이나 행태로 보아 흉노일 가능성이있거나 나관중이 현실의 적인 원나라의  조상 흉노로 여포를 분장시켜 한족과 몽골족의  도덕적 우수성 내지는 야만성을 비교하게꾸ㅡㅁ 햇을 수 있다 글구 강족은 지금 사천성 섬서등에 분포해있다
◆ 민족들이 이동했다  그 시간 그곳에 강족이 있었을 수 있다
★ 그 당시 그곳은 강족의 영역이 아니었다 다만 강족과 흉노는  교류가 있었다
◆ 나몰랑
★역사란 과거와의 끝없는 대화다
 나관중이 왜 그렇게 (서촉 즉 촉한정통의 입장에서)썻을까?
이건 일종의 멸원복한의 입장에서 14세기  시대성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진수는 과연  현대의 몰가치적  객관성을 가지고 역사를 썻을까?
여포는왜 지 마누라 침대위에 유비를 앉게 하고 마누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했을까?
관념이라는 것은  행동양태와 사고방식을 규율한다
역사를 결과론적 측면에서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 당시 사람의 의식 속에 들어 가야 한다
◆죽천은 재수가 없어서 반정 승인받다가  그짓당한거다
나머지 사신들은 그런거 없었다
사대는  당시의 외교적  관례일뿐이다
◆ 바이두에 대한 해명 같은거  없음
 (몽골에게 흉노는 우리나라에 있어 고구려같은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한시대 흉노 강역도보고 자꾸 몽골이라고 그러냐
◆ 그외 자꾸 꼬리물기하며 주제를 바꾸며(----------------->이것을 님이 현학적이라고 하는 것임 ㅋㅋㅋㅋ) 깊이 있는 토론을 거부함


토론의 쟁점
1.◆여포는  걍 중국인
by 바이두
★바이두?
.◆ 나몰랑~

2. .◆ 조명관계에 있어 바지가랑이 잡고 늘어진거 근거 대봐라 조선과 명은 형식적인 사대관계에 의거  갈등 별로 없이 지냈다
★죽천일기,,,,중국의 세계관 대조선관 ,,,,,,,,, 죽천의 모욕은 죽천말고도 다른 사신도 당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역사라는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짜깁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을 넓혀라
그 시대 사람의 사고로 역사를 봐야 실체를 알수 있다

이거거든요 ㅋㅋㅋ
계속 핵심은 도외시 한체 쟁점을 요리조리 피하며 주제하고 상관없는  잔지식 나열하는게  성심성의?????????
나는 달을보라고  몇번 얘기 했지만 자꾸 논점의 핵심을 피하고  계속 다른 부분을 싸질러 놓고 꼬투리 잡는게
성심성의 입니까?
기껏 님이 말하는  눈높이 역사라는게  사대의 행위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지 말라? 이정도???
상대국 크기에 비례한  위치찿기 서열관계 확인????? 이정도?????

나는  애초 님의 의도를 (나를 타킷으로 벼르다가 저격함) 알기에 이렇게
나도  이런식으로 나오는거임 ㅋㅋㅋㅋㅋ
나에게 정중하라는  둥 ㅋㅋㅋ그런거임
  남하고 토론할 때는 말이지
점점 주제를 좁혀서 그 쟁점가지고 토론하는 거랍니다 ㅋㅋㅋㅋㅋㅋ
댓글 하나 달때마다 상관없는 주제로  쟁점을 옮겨가려고 하는 것은 님의 지식이
헛껍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거그던요.
뭐 나랑 말섞기 싫다면 일부러
내가 들이대지는 않겠지만
역사의 아무 주제나 들고 나한테 테클 걸라면 걸어 보세요 ㅋㅋㅋㅋ
양적으로는 몰라도  님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일깨워 드릴테니 ㅋㅋㅋㅋㅋ

유교에는 형식이?  예절이 많거든요??????라고요?????
유교에 대해 아세요?????? ㅋㅋㅋㅋㅋㅋ
경서같은거 읽어 보셨나요???? ㅋㅋㅋㅋㅋ
나도 많이 모르지만 님보단  많이 아는 것이 확실합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한문선생님(대학 전공 이나 교양 수업보다 질적으로 높은 강의임 포괄적임),,,,그리고 대학 때 전공으로  동양철학사 그리고  교양으로 경서 대강(여러경서들 맛베기만 보여주는 책)을  수학했습니다
님이 보는 것, 님이 볼 수 있는것은 제가 보기엔 매우 제한적인  수박 겉핥기식 같습니다
님처럼 보면 유학자들의 머리 속은 뭘로 채워져 있기에
최만리 같은 사고를 할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죠
역사는 대화입니다
몇개의 개개의 사실들을 엮어서 결과와 짜맞추는 퍼즐이 아니랍니닼ㅋㅋ
그래서 어느 시대를 연구하든 당대의  미술사나 문화사  철학사 같은것을 병행해서 공부해야죠

조선사를 떠들기 전에  싸이버 대학 같은 곳에 가서 경서같은거 한번 공부하세요 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더!
 님은 님 지식을 통합 분류하지 못하고
 나열하는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부족한 논리를 바이두로 체우려다가  창피당하는것 아니겠습니까?
논리의 일관성에도 문제가 생기고요
동북공정은 동북공정이고 북강공정은 북강공정이 되는 겁니다
둘 사이에 일관적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님의 지식이 님의 것이 되지 못한 증거입니다

 그  속에서의 어떤  나름대로의 주관을 갖지 못한 것이죠
하얀그림자 16-01-16 21:44
   
===========================
기껏 성의껏 달아주면,
현학적이라니, 잘난척 한다니, 카세트냐? 감히 니가 날 가르치냐?고 나오는 사람에게
저도 제 귀한 시간을 낭비 하고 싶진 않아요
===========================
님은 성의 껏 댓글 단게 아니라  나를 찍어 누르려고  저격한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그 가벼운 지식으로 말이죠

  깊이를 아는 사람
내공이 있는 사람이이라면
내  위에 글 속에서  내 표현력 이상의 것을 캐취할 수 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몇겹으로 이렇게 말해보고 저렇게 말해봐도  님은  내가 말하는 대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거죠

 내가 위에서 바이두 만을 언급했지만(님의 논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인  논거를 뒷받침할 근거가 바이두라는 의미)
이런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명 관계에서나 역대  동아시아에서의 국가간 조공 관계는 당시의  관습화된 외교 방식이라는 님의 말은  님이 처음 한말이 아닐것입니다
님이 누가 한말을 줏어 들었거나  그 누군가에게 사사받았건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이겠죠
이 말의 뜻은
즉 이 말을 처음 말한 사람은
 중국의 관점에서 조공은 속국의 증거라는 중국식 해석에 대한 반박의 의미로
조공을 바친 나라라도  그 뒤에  입법 사법 행정의 자율성이 보장됬다라는 의미이며
서양의 식민지 개념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근데 님은 
 그런 조공 관계 상에서 나타나는 불평등한  상황 마져 부정하고 있는 겁니다
즉  내가 조명은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조명관계는 현대의 한미 동맹같은 관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는 한국은 미국과 가장 친하고 미국도 한국과 가장 친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게 아니잖아요?
근데 님은 그런 관계 비슷한 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근데 님은 내가 조선은  명나라의  속국(식민지 수준)이라는 말을 하는것도 아니데
죽천의 예나 죽천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정황을 예로드니 중종이나 세조의 예는 도외시 하고 왕자의  난만 가지고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습니다
나는 중국인의 세계관도 언급했지만 님은 그 누군가 말한 "조공은 외교적 형식에 불과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지식을 자기것화하지 못한 님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는거죠
그래서 카세트 테이프라고 한것입니다
님은 어떤 지식을 받아들일 때 비판없이 맹신하고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내뱉기만 하기 때문에  그  주제의 토론 방향이 약간만 틀어져도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거 마냥
나의 글에 달린  님의 님의 댓글은  상대의 지식을 보충해 주기 위한게 아니라
내가 너보다 잘났다라는 의미인  트집용이 분명하며
그것도 아주 벼뤘다가    기획한 저격인것입니다


아닙니까?
자신을 속이지 마시고
게시판에서 놀더라도
지식을 나누고  그리고 배운다,받는다는 자세로 댓글 다세요 ^^
 내가 너보다 잘났다라는 자기 만족으로 댓글 다시지 마시고요
 그러다가  지금처럼 님은 님이 가지고 있는 지식 이상의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게 되는거죠

님의 수준은 같은 주제(고구려 - 조선/ 흉노 -몽골)에 대해  통일된  인식의 기준을 마련하기는 커녕 구분하지도 못하는 경지인 것입니다

거기다가 자꾸 상대는 다른 논거를 들이데도
조공은 형식에 불과했다는 말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는겁니다

저와의 이번 토론이 님에게 교훈이 되서 다시는 이런 식으로 타인을 저격하지 마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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