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자유게시판에서 일본과 몽골중에 어느 나라가 피해가 많냐?는 질문에
대몽항쟁기 피해가 컸으나, 옛날 일이라 관련자들이 다 죽고 없으며,
통치방식도 일본과 다른 면이 있다는 점을 썼는데,
댓글에 이런 글이 달렸더군요.
오해는 마시고,
전, 몽골통치를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몇가지 부분에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어서, 동아판에 좀 더 첨가하겠습니다.
[원나라화를 시키지 않았다.. 몽골에 의해 바지사장처럼 왕이 되고 왕은 몽골에 충성하라는 의미에 왕호에 충을 넣고 왕실과 관료의 복장 몽골식 복장을 하고 백성들도 변발과 몽골의복을 입도록 하였죠. 전근대의 뒤떨어지고 낙후된 통신과 체제의 중세시대에 이정도 까지 통제를 한건 충분히 병합에 가까운 일입니다.
실제로 세계사에선 몽골통치기에 고려를 몽골영토로 표기합니다. ]
(1.)몽골에 의해서, 왕이 바지사장이 되었다? ~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사실, 무인정권 뒤로, 백년간 고려 왕실은 걍.. 허수아비 신세였는데.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원나라 덕분에, 고려 왕실과 국체가 보존된 면도 있습니다.
실제로, 원종은 몽골의 도움을 받아 강화도 촌구석에서 개경으로 환궁 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뒤 원의 부마가 된 충렬왕, 외손자인 충선왕때까지는 실로 오랫만에 위신도 세우고, 왕권이 강했던 시기기도 합니다.
(2.)충자-라는건 님의 말씀대로 충성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3.)왕실과 관료의 복장은 몽골식 복장을 했다- 맞습니다.
(4.) 백성들도 변발과 호복을 한다?- 이 말은 틀렸습니다.
변발과 호복은 귀족같이 고려 상류층들의 특권이였습니다.
마치 청나라의 만주족들이 한족들에게 순종하라는 의미로 돼지꼬랑지 변발을 강제로 시킨 것처럼,
원도 고려에게 그랬다고? 오해하는 분이 있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원나라는, 유목민족이 건설한 왕조라서 그런지?
매우 국제화적인 나라였기에,
이민족의 문화나 종교같은데 터치하는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또한, 쿠빌라이의 세조구제 중, 가장 첫번째 항목이 -불개토풍-이였어요.
고려의 문화와 풍습을 존중하기로 한 항목이죠.
순전히, 귀족들에게 불었던 몽골풍이란 것도, 실제론 원의 강요가 아닌
고려 귀족들이 대국의 풍습이라며 너나 나나 따라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공민왕의 반원정책 중에 첫번째인 변발과 호복금지도
제일 쉽게 할수 있었던 부분이였기에, 그것부터 바로 잡은 것입니다.
거기에, 원나라가 뭐라곤 못 했습니다.
뭐, 애초에 몽골풍이란게 원측이 강요한게 아니였거든요.
니들이 우리 따라해놓고, 왜 저래 -.-? 뭐 이런 분위기..
또한, 관료의 복장은 원나라가 아니라도,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중국의 양식을 따라한 부분이 많습니다.
원 이전에는 송나라나 당나라 양식 복장도 관료복으로 입었고,
조선에 와선, 명나라 관복도 받아들여 잘만 입었습니다.
오늘날로보면, 관복이란건 수트개념이라고 볼수 있죠.
(5.) 세계사에서, 고려를 몽골 영토로 표기하는건, 순전히 우리나라가 외국에 인지도가 떨어지고, 잘못된 내용도 많이 떠돌아다녀도, 그것을 시정하려는 노력도 없었고, 정부도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한류다 뭐다 코리아가 알려졌지,
그 전에는, 우리나라가 중국어 쓰는 나라,
또는 일본어 쓰는 나라라고 외국책에 잘못 써있다던지,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몽골의 영토였다면,
고려에서 여러차례 입성론(몽골과 정식으로 합병하자)는 말이 나올리가 없죠-.-
이미, 합병당한 나라에서, 또 합병하자고 나온다?
이 무슨 모순법임?ㅋㅋㅋ
원간섭기간 중, 고려에서 입성론이 네다섯번 정도 나왔는데, 다 실패했습니다.
기황후 드라마가 유행했을때, 기황후가 고려의 민족혼? 때문에,
그녀가 입성론을 저지시킨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론, 고려왕이 황제의 친척이였기에, 황실 행사등에도 참여하고, 서로간에 얼굴도 다 아는 사이에,
그런 말 오가는게 꼬롬하기도 했고
고려는 변방인데, 뭐 그 땅까지 꼭 먹어야 되나? 돈 많이 들텐데;;
라는 현실적인 원나라 조정의 여론도 있었고
고려측도 일부 콩고물 얻어 먹으려는 부원배들이 선동하는 것일뿐, 대다수는 반대함.
그리고, 세조구제를 잊으면 안됨! 이라고 했기에, 입성론 자체는 번번히 실패합니다.
그리고, 공민왕이 입성론 나불거리는 부원배들 조져버린 뒤로는,
다신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안 나왔고.
뭐,, 그때쯤이면, 원도 민란과 자연재해로 제 코가 석자였던 상황이라, 고려에 신경도 못 쓸 형편이였음.
+ 덧붙여, 일제가 조선인 학생들에게 일본어 교육시키며, 조선어 쓰면 벌 받던거에 비해
몽골은 고려인에게 몽골어 강요도 없었고요.
이런 점에서,
전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을 쓰던 일제와
몽골 간섭기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