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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19 18:27
[한국사] 중국과 일제와 이땅의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잃어버린 한국사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5,764  

홍산문화 우하량에서는 무려 BCE 3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적석총[塚], 신묘[廟], 대형 원형제단[壇]을 모두 갖춘 동북아 최고最古 문명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5,500년 전에 이미 종교를 중심으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국가조직을 갖춘 상고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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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명은 인류의 4대 문명이라 불리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문명보다 1~2천 년이나 앞선 인류의 시원문명으로서, 인류 제천祭天문화의 고향이요, 동서양 피라미드, 거석문화의 원조이다.
 
홍산문화는 동북아 신석기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漢族)과는 계통이 전혀 다른 문화이다. 오히려 그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동이족의 독자적인 문화이다. 홍산문화는 환국·배달·고조선이라는 동북아 시원역사를 알아야 홍산문화를 포함한 발해연안의 그 엄청난 유적과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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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의 호칭 천자(天子)라는 말과 천자제도가 한민족에게서 유래했음을 중국의 사서에서도 증명하고 있다. 한나라의 채옹이 지은 『독단』에 보면 “천자는 동이족이 부르든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는 대목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도 “치우(蚩尤)는 구려(九黎)의 천자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孔安國曰 九黎君號가 蚩尤라.(『사기색은史記索隱』), 應劭曰 蚩尤는 古天子之號라(『사기집해史記集解』)]라고 하였다.
 
처음으로 천자天子라는 말을 쓴 것은 배달국 1세 거발환환웅(BC3897~ BC3804) 때부터였다. 중국에서는 6국을 통일한 진秦왕 영정嬴政이 최초의 천자로 ‘황제皇帝’가 되었다. 배달국 환웅천황 때보다 3,600년이나 늦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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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전해진 천자문화, 금간옥첩(金簡玉牒) 전수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동북아에는 9년 홍수라는 사상 최대의 대재난이 있었다. 당시 초대 단군왕검은 우주변화원리로 무사히 홍수를 다스렸고 순임금은 이를 다스리지 못해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때 순의 신하로서 사공司空 우禹가 도산塗山에서 부루 태자에게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之法,금간옥첩)을 전수 받아 홍수를 해결하게 된다. 그 공덕으로 우는 하夏 왕조를 개창하게 되는데 나중에 죽을 때에도 부루태자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자기를 회계산(도산)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오월춘추』)
 
우가 전수받은 금간옥첩(金簡玉牒)은 치수治水의 요결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道와 동방 고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된 국가 경영지침서이다. 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내용도 실려있었다.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이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왔다. 즉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 있는 금간옥첩洪範九疇이 전해짐으로써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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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其五行治水之法(차기오행치수지법)과 黃帝中經之書(황제중경지서)가 又出於太子扶婁(우출어태자부루)오 而又傳之於虞司空(이우전지어우사공)하고 後(후)에 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부위기자지진홍범어주왕자)가 亦卽黃帝中經(역즉황제중경)과 五行治水之說(오행치수지설)이니 則蓋其學(즉개기학)이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본신시구정균전지유법야)니라.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이 부루태자에게서 나와 우虞 사공(司空)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洪範九疇)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대저 그 학문은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邱井法)과 균전법에서 전해져 내려온 법이다. 『( 태백일사』「 신시본기」)
 
 
 
순임금의「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
‘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구절은『 서경 』「 우서虞書의 순전舜典」에 나온다.“ (순임금이) 동쪽 지역을 순수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 제사를 지내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마침내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東巡守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여기서 동후(東后)는 결코 제후가 아니다. 그런데 중국 사가들은 한결같이 동후東后를‘ 동방의 제후’[東方之諸侯也]라 해석해 왔다. 또한 요즈음 나오는『 서경』번역서들도 모두 중국측 억지 해석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심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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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后:君后. 我后. 夏后. 夏言后者. 白虎通云: 以揖讓受于君, 故稱后. 告于皇天后土.”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后’ 자는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후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 근覲’ 자는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 드린다는 말이다.『 강희자전』은“ 천자가 즉위하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일러 근覲이라 한다”[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 而見天子曰覲.]라고 하였으니,
 
‘제후인 순舜임금이 그 종주국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는 것이‘ 사근동후(肆覲東后)’의 본뜻이다. 그러므로“ 동방의 제후를 찾아뵙다”라고 한 중국측의 해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아전인수격의 억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서경』의 이 구절이야말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사실 그대로 극명하게 밝힌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여기서『 서경』 본래의 뜻을 살려 원문을 해석하면,“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 차례로 천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천자이신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肆覲東后]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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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한 중국 초대총리 주은래
주은래
1963년 6월28일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과 조선,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중략<중국 초대총리 주은래(周恩來,1898년~ 1976년)>
 
 
천자는 용봉(龍鳳)으로 상징된다. 용봉은 ‘상서로운 동물[吉祥物]’로서 천지음양 기운을 상징하는 영물이다. 용龍은 음을 상징하는 신수(神獸)이고, 봉鳳은 양을 상징하는 신수神獸이다. 그래서 용은 천지의 물의 조화를 다스리고, 봉은 불의 조화를 다스린다.
 
일월에 비유하면 용龍은 달의 광명을, 봉鳳은 태양의 광명을 상징한다. 용봉龍鳳이 음양, 수화(水火), 일월(日月)을 나타내는 상징적 신물이기 때문에, 용봉은 인간 세상에서 천자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천자天子는 하늘에 계신 상제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제사장이다. 한마디로 상제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환국·배달·고조선 이래로 이 땅은 원래 천제의 아들이 다스리는 천자국天子國이었다. 천자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춘하추동 제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책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배달 시대에 지은 한민족 최초의 달력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태백일사』「신시본기」) 또는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는 인류 최고最古의 달력이다.

천자(天子)가 등극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하늘에 비는 천제(天祭)를 올리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천자는 통치자이며 스승이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대무大巫였다. 우리는 무당을 단골(단군) 또는 당골로 불렀다.
 
단군은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통치자의 의미이다. ‘단군왕검’은 정교(政敎)가 합일(合一)된 호칭이다. 동방 신교神敎에서는 예로부터 군사부君師父 일체를 얘기한다. 다시 말해 천자는 다스리는 군君이자, 가르치고 깨우치는 스승(師)이고 새로운 생명을 열어주는 아버지(父)이다.
 
군사부 문화가 신교의 삼신문화에서 나왔다. 또한 군사부는 삼신의 현현顯現인 천지인의 덕성이기도 하다.
 

하·상·주 3왕조는 고조선(古朝鮮)의 신하국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교체될 때에도 고조선의 힘이 작용하였다. 상나라 개국공신인 이윤은 고조선 11세 도해단군 때의 국사(國師)인 유위자의 제자였다. 상나라 말기의 도읍지였던 하남성 안양시 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궁전, 성벽, 무덤 등이 동북방(고조선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고조선을 상국(上國)으로 지극히 받들었음을 보여준다.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나라도 그 창업 당시부터 고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상나라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 주 무왕은 동이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무왕을 도운 동이족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다. 주나라도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조공과 방물을 바쳐 예를 표하였다.『 단군세기』에는 주나라 왕 하가 고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친 일, 32세 추밀단군 때 주나라가 번조선에 방물(方物)을 바친 일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상·주 중국 3왕조는 모두 고조선을 문화의 조국으로 모시던 제후국이었다.
 
是歲冬(시세동)에 殷人(은인)이 伐夏(벌하)한대 其主桀(기주걸)이 請援(청원)이어늘 帝以邑借末良(제이읍차말량)으로 率九桓之師(솔구환지사)하사 以助戰事(이조전사)하신대 湯遣使謝罪(탕견사사죄)어늘 乃命引還(내명인환)이러시니 桀(걸)이 違之(위지)하고 遣兵遮路(견병퇴로)하야 欲敗禁盟(욕패금맹)일새 遂與殷人(수여은인)으로 伐桀(벌걸)하시고 密遣臣智于亮(밀견신지우량)하사 率畎軍(솔견군)하시고 合與樂浪(합여낙랑)하사 進據關中邠岐之地而居之(진거관중빈기지지이거지)하시고 設官制(설관제)하시니라.
이 해(BCE 1767) 겨울, 은殷 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치자 하나라 왕걸桀이 구원을 청하였다. (13세 흘달단군)임금께서 읍차邑借 말량末良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셨다. 이에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하셨다. 이때 걸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께서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은밀히 신지臣智 우량于亮을 보내어 견군畎軍 을 이끌고 낙랑樂浪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邠·기岐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官制를 설치하셨다. 「( 단군세기」13세 흘달단군)
 
 
열국시대에서 고려까지 대부여를 계승한 북부여는 물론이고 해모수의 후예,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역시 천자(天子)가 다스리던 나라였다. 천자국(天子國)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이 만주 집안현(集安縣)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잘 나타난다.
 
비문에는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 문구가 있어 그들이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 역시 당나라에 예속된 지방정권이 아니라 당당히 천자국의 위상을 떨친 독립국이었다. 이것은 최근에 발굴된 상경성의 제2궁전지의 전면이 19칸인 사실(당나라 장안성의 함원전은 11칸)과 1980년 발견된 정효공주의 묘지명에서 그 아버지인 문왕을 ‘황상皇上’이라 부른 것, 왕비의 묘비명에서 황후라는 표현을 쓴 것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고려 역시 출발은 천자국이었다. 태조 왕건은 천수天授, 광종은 광덕光德, 준풍峻豊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수도 개성을 황도(皇都)라 일컫고 원구단을 설치하여 천제(天祭)를 올렸다.
 
甲午三十四年(갑오삼십사년)이라 十月(시월)에 東明國高豆莫汗(동명국고두막한)이 使人來告(사인래고)하야 曰(왈)
我是天帝子(아시천제자)라 將欲都之(장욕도지)하노니 王其避之(왕기피지)하라 한대 帝難之(제난지)러시
니 是月(시월)에 帝憂患成疾而崩(제우환성질이붕)하시고 皇弟解夫婁(황제해부루)가 立(입)하시니라.
재위 34년 갑오(단기 2247, BCE 87)년 10월에 동명국(東明國)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 달에 고우루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解夫婁가 즉위하였다.(「북부여기 上」)
 
 
時(시)에 下夫餘人(하부여인)이 將欲殺之(장욕살지)어늘 奉母命(봉모명)하사
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여오이마리협보등삼인)으로 爲德友(위덕우)하시고 行至岔陵水(행지차릉수)하사
欲渡無梁(욕도무량)이라 恐爲追兵所迫(공위추병소박)하야 告水曰(고수왈) 我是天帝子(아시천제자)오
河伯外孫(하백외손)이라 今日逃走(금일도주)에 追者垂及(추자수급)하니 奈何(내하)오 於是(어시)에 魚鼈(어별)이 浮出成橋(부출성교)하야 始得渡(시득도)하시고 魚鼈(어별)이 乃解(내해)하니라.
 
당시 동부여 사람들이 주몽을 죽이려 하므로, 주몽이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세 사람과 친구의 의를 맺고 함께 길을 떠났다.
 
차릉수岔陵水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뒤쫓아 오는 군사들에게 붙잡힐까 두려워하여 강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으로 오늘 달아나는 길인데 쫓는 자가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하리까?” 하니, 물속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수없이 떠올라 다리가 되었다. 주몽이 물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졌다.(「북부여기 下」)
 

국통 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3단계씩 세 번에 걸쳐 이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국 → 배달 → 조선으로 3단계, 이어 열국 시대(북부여 · 동부여 · 남삼한) → 사국 시대(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남북국 시대(대진국(발해)·통일(후)신라)로 3단계, 그리고 고려 → 조선 → 대한민국(남한·북한)으로 다시 3단계인 것이다. 한국사에서 국통은 이처럼 면면히 아홉 굽이를 거쳐[九變之道] 오늘까지 이어 왔다. 한민족의 9천 년 역사는 계승되어 내려온 국가들의 마디만 따져 보아도 삼신(三神)의 3수 원리가 그대로 펼쳐진 것임을 알수 있다.

 
천자국의 위상이 무너지는 과정, 고려의 쇠망
고려 초기에는 천자국으로서 당당히 건원칭제建元稱帝를 하였다. 고려는 예종 때 와서 윤관을 앞세워 여진을 물리치고 동북쪽에 9성을 구축함으로써 고구려의 후예라는 건국이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나 동북 9성은 설치된 지 1년 만에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매년 공물을 바친다’는 언약을 받고 다시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된다. 이후 여진은 성장을 계속하여 9성을 환부받은 지 6년째에 금나라를 세우게 된다. 드디어 고려 인종 3년(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거두고 고려에 군신(君臣)관계를 강요해 왔다. 전쟁을 두려워한 고려 조정은 금나라에 상표(上表)를 올리고 칭신(稱臣)하였다.
 
고려를 부모로 섬기던 여진족을 이제 고려가 임금의 나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유교식 정치체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고려는 어느 새 문약에 빠져 버렸다. 이후 금나라, 송나라의 연호를 쓰기 시작하며 사대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말엽에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면서 황제국 고려는 제후국으로 전락하였고 국왕에 대한 칭호는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었다. 그 첫째 왕인 충렬왕은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을 왕비로 맞았다. 이후로 고려는 줄곧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환국, 배달, 조선 이래 줄곧 천자국이었던 우리의 위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이암 때에는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더욱 강화되어 오잠, 류청신 등이 국호 ‘고려’를 폐지하고 원나라의 일개 성이 되고자 하는 청원을 원의 조정에 제출하였고 원으로부터 ‘원나라의 삼한성으로 한다’는 칙령이 내려오기도 하였다. 이즈음 이존비와 이암은 상소문을 통해 자주독립정신을 상실한 고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本國(본국)이 自桓檀朝鮮北夫餘高句麗以來(자환단조선북부여고구려이래)로 皆富强自主(개부강자주)하고 且建元稱帝之事(차건원칭제지사)는 至我太祖初(지아태조초)하야 亦嘗行之(역상행지)나 而今則事大之論(이금즉사대지론)이 定爲國是(정위국시)하야 君臣上下(군신상하)가 甘受屈辱(감수굴욕)하고 不圖所以自新(불도소이자신)하니 其畏天保國則誠美矣(기외천보국즉성미의)어니와 奈天下後世之笑(내천하후세지소)에 何(하)
우리나라는 환단.조선.북부여.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를 유지하였습니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 때에 이르러서도 일찍이 실행하였으나, 지금은 사대(事大)의 주장이 국시로 정해져 있어 군신상하가 굴욕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천하 후세의 비웃음은 어찌하겠사옵니까? 「( 고려국본기」<이존비(李尊庇,1233∼ 1287)의 상소문>
 
國界(국계)를 不可破也(불가파야)며 民俗(민속)을 亦不可混也(역불가혼야)니이다. 况我國(황아국)이 自桓檀以來(자환단이래)로 皆稱天帝之子(개칭천제지자)하고 行祭天之事(행제천지사)하니 自與分封諸侯(자여분봉제후)로 元不相同(원불상동)이오 今雖一時爲人轅下(금수일시위인원하)나 旣有魂精血肉(기유혼정혈육)하야 而得一源之祖(이득일원지조)하니 是乃神市開天(시내신시개천)과 三韓管境之爲大名邦於天下萬世者也(삼한관경지위대명방어천하만세자야)니이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고 제 풍속으로 민속을 삼으니, 나라의 경계를 깨뜨릴 수 없으며 민속 또한 뒤섞이게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환桓·단檀(환국-배달-고조선) 시대 이래로 모두 천상 상제님의 아들(천제자天帝子, 天子)이라 칭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분봉을 받은 제후와는 원래 근본이 같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일시적으로 남의 굴레 밑에 있으나 뿌리가 같은 조상[一源之祖]에게 물려받은 정신과 육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배달의) 신시개천神市開天과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이 천하 만세에 대국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것입니다. 「( 고려국본기」<이암(李嵒,1296~1364)의 상소문>
 

조선왕조의 멸망
고려를 계승하여 새롭게 열린 조선왕조는 고려 때보다 더한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조선 사회는 철저한 모화사대주의 慕華事大主義 사회였다. 선비들은 말끝마다 명나라를 본조(本朝) 또는 천조(天朝), 성조(聖朝)라고 했고 조상의 비문에도 항상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고 내세웠다. 유교를 국교로 숭상한 조선은 개국초 태종 때에 서운관에 보관되어 있던 한민족의 고유사서를 이단이라 하여 모조리 소각하였다. 그 이후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사서(史書)수거령을 내려 유교 지상주의에 반하는 수많은 사서史書들을 압수, 소각하였다. 이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파괴하는 해괴한 행위이다.
 
이미 국초(國初)부터 망국으로 가는 비운의 단초가 시작된 것이다. 1910년의 경술국치는 사실상 죽어가는 환자의 숨통을 일본이 와서 끊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은 이미 정신적으로 한·중합병으로 망한 상태였다. 조선의 명운이 촛불처럼 꺼져가던 1897년 고종 임금은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스스로 천자의 보위에 올라 새로운 국호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비록 대한제국은 곧바로 망했지만 이 사건은 끊어진 한민족의 천제문화의 맥을 되살리고 동방의 한민족이 본래부터 천자국(天子國)임을 만천하에 알린 역사적인 대사건이다.


 

한·중·일은 역사전쟁 중
 

한·중·일은 역사전쟁 중
일본은 자국의 교과서까지 왜곡하면서 집요하게 독도 침탈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통해 만주 지역에 있었던 우리의 고대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강탈해갔다. 이러한 역사전쟁의 이면을 보면 한·중·일 삼국(三國)이 사실상 종주권(宗主權)싸움을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나라’라고 해서 나라 이름을‘ 중화中華’라고 한다. 그들은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으로 패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름 그대로 자기네가 인류 역사의 천자국임을 내세워 앞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넘버원 행세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나라’라고 해서 나라 이름을‘ 중화中華’라고 한다. 그들은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으로 패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름 그대로 자기네가 인류 역사의 천자국임을 내세워 앞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넘버원 행세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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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떠오르는 근본’이라는 일본日本 역시 그들의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해서 진짜 천자국임을 표방한다. 천자국이 성립되려면 제후국을 점령
 
하여 다스린 역사가 필요하다.「 임나일본부」라는 가공의 역사가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 독도 침탈 야욕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그 깊은 심연에는 천황제가 자리잡고 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이 다툼을 벌이는 것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자 동북아의 원형 문화인 홍산문화에 대한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 것과 같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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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쟁이토벌 15-12-19 19:42
   
ㅋㅋㅋㅋ 증산도 환쟁이 노답 ㅋㅋㅋ
     
그렇답니다 15-12-19 19:55
   
노답이 노답보고 노답이라하는 장면인가요?
     
고독한늑대 15-12-20 16:04
   
아니 단군은 국가에서 인정하고 우리가 반만년 역사라고 국가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환쟁이라뇨..
님 한국인 아니신가요????

그럼 단군 조선을 부정하시는 당신은 한국 역사가 몇년이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밝혀야 할듯..
두부국 15-12-19 21:57
   
다 좋은데 왜 환단고기를 가져오셨나요? 서점가서 환단고기 보세요 역사책 이아니라 종교책코너에 있을겁니다
뚜리뚜바 15-12-19 22:01
   
환단고기... 충분히 역사적 연구과정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나;; 종교적 색이 너무 짙음... 거기에 더해 증산도가 책까지내면서 저러니 확실히 대중들의 관심에는서는 저멀리 떨어져 나간상태. 정신병원에 정상인 가둬놓으면 아무리 정상인이라고해도 정신병자 취급받는 꼴이랑 매한가지... 누군가 한발나서서 연구하는건 분명좋은데 그걸 증산도가 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듯... 연구가 점점 역사에서 종교로 바뀌는 듯한 느낌
     
두부국 15-12-19 22:07
   
한번 서점에 가보세요 환단고기요 역사책코너가 아니라 종교책코너에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조선상고사를 사러 갈때쯤이 었습니다 조선상고사까지는 역사책으로 분류되어 있더군요
          
부르르르 15-12-21 15:46
   
구약을 역사로 인정 하면서 환단고기는 종교색이 강하다 하여 역사로 인정 못한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꽤 많은듯 합니다.
호랭이해 15-12-19 22:20
   
포교는 자제해주세요
그노스 15-12-20 00:24
   
'아즈텍'을 우리말로 아사달이라 하시는, 배재대학 손성태 교수님의 설까지 받아들인다면 우리 한민족 역사에,

제1왕조: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시대: 삼한
제2왕조: 백악산 아사달(장춘) 시대: 삼조선
제3왕조: 장당경 아사달(개원) 시대: 대부여
.
.
.
제x왕조: 아즈텍 아사달(북미) 시대: 대아메리카

...도 포함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두부국 15-12-20 00:37
   
47대 단군은 인정하겠는데요 근대 18대환웅? 이거는 근대에 나온거 아닌가요?

47대 단군은 단기고사 [발해] 단군세기 [고려] 규원사화 [조선]에서도 일치하게 나오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을것 같네요
4x4rider 15-12-20 07:05
   
상고의 역사를 먼저 부정하는 자손이 어디 있습니까??
짱깨니 쪽..이니 하면서 욕하면서도 역사에 대해서만은 스스로 비하하는 민족...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암기는 공부가 아니라고....
공부좀 하세요...들....
지금 있는 위치인 한반도에서 그것도 이남에서 바라보면 상고 지도가 이상하게 보일겁니다.
하지만 만주나 더 위쪽에서 보면 우리 시각과 다른점이 보일 겁니다.
비좀와라 15-12-20 09:48
   
환단고기라 아주 뜨거운 감자를 가지고 오셧네요. 환단고기에 대한 저의 입장은 고려 할 만하나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내용을 담은 책이라 봅니다. 환단고기에 담긴 내용이나 한국의 무속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소위 요새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하죠. 즉 환단고기의 내용이 역사는 아닐지라도 전세계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내용이라 종교나 문학으로 구분 해 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상당히 오류도 많고 본래의 내용 (이것은 전 세계적인 공통의 신화)을 조작 되 었을 의심도 들고요. 하여간 그렇다고요.

왕좌의 게임에서 불과 얼음의 노래라는 의미를 이해 하시는 분들 있으셨나요? 아님 나디아 전기에서 나오는 사자의 의미는요? 왜 노르만 정복왕 월리암은 Bastard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달고 있느지 등등 은 한국을 비롯한 고대의 신화를 이해자지 못하면 알 수 가 없습니다. 이러면 환빠라고 하지요. 그럼 답을 주시던가.....

서구에선 저런 교양은 엘리트 계층에선 기본교양 입니다. 우리만 아주 특이 한 것 이지요.
     
고독한늑대 15-12-20 16:11
   
환단고기에 단군을 부정한다?
우리는 교과서에서도 엄연히 기록하고 있고..
또 단군에 대해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는 기록들이 있는데 소설이라고요???
또 우리 역사를 국가에서부터 반만년이라고 하고 역사적으로 꾸준히 연대를 단군시대로 부터 시작된 연대를 기록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환타지라고요???
천문학으로도 입증된 사안인데요???
또 유물로도 밝혀진 사안이고요..

신시배달국 이전에 환국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이 환국은 자체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배달국으로 신시를 열었다..
즉 동북아에서 최초 시작되는 우리역사라고 봐야합니다.
밥밥c 15-12-20 21:11
   
환단고기는 정사로서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환단고기가 위서로서 명백하게 입증되었다는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죠.

 현재 증명가능한것은 이 거짓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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