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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18 17:30
[일본] 일본 신국 건설과 백제 유민
 글쓴이 : 해달
조회 : 5,273  

본 내용은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김종성)]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좋은 내용이라 생각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략) 660년 백제 멸망을 계기로 일본이 새로운 나라로 바뀌었으며 그 새로움이 한민족과 관련이 깊다는 증거는 상당히 강력하다. 일본이란 국호가 생기는 과정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일본의 원래 국명은 왜국倭國이다. '왜국'이 '일본'으로 바귄 시점은 흥미롭게도 백제 멸망 직후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문무왕文武王 편에 일본 국호 변경의 역사적 순간이 기록돼 있다.
(문무왕 10년) 12월, 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 "해 뜨는 곳과 가까워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고 스스로 말했다.
국호가 변경된 시점인 문무왕 10년 12월은 양력 671년 1월 17일부터 2월 14일 사이다. 이 조치가 일본 율령에 반영된 시점은 30년 뒤인 701년이다. 율령에 반영되기 전에도 새로운 국호가 사용됐다는 점은, 678년에 중국 서안(시안)에서 사망한 백제인 예씨의 묘지명에 일본 국호가 등장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 묘지는 2010년 서안 근교에서 발견됐다. 관련 내용은 2011년 10월 23일자 <아사히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 국호 변경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역사서에도 나온다. <삼국사기>와 유사한 설명이 <구당서> 동이 열전 일본 편에, "일본국이란 것은 왜국의 별종이다. 그 나라가 태양 쪽에 있다 하여 일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라고 나온다.
왜국이 671년에 국호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을 말하면, 이것은 백제 멸망과 관련이 깊었다. 이 점은 그 이전에 벌어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다.
2001년 12월 1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다"고 발언했다. 백제와 왜국 왕실의 상호 연관성을 <속일본기> 표현을 빌려 인정한 것이다. 일왕이 인정한 것처럼, 왜국 왕실은 경제, 정치, 문화, 사회뿐 아니라 혈통으로도 한민족과 긴밀한 연관을 가졌다.
백제가 왜국의 연곤성이 긴밀하다는 증거는 이 외에도 많다. 4세기 때의 오진應神 일왕과 5세기 때의 닌토쿠仁德 일왕이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또 왜국은 기본적으로 친親백제의 나라였다. 친백제파를 타도한 정변인 다이카 개신으로 645~649년에 친신라파가 잠시 정권을 잡은 적은 있지만, 이것은 예외에 속했다. 왜국은 가야와도 친했지만, 백제와는 더욱 친했다. 가야가 사라진 뒤로는 더욱 그랬다. (중략)
백제 난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왜국은 많은 것들을 배려했다. 왜국은 새 식구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터전부터 만들어주었다. 665년에는 난민 400여 명에게 정착지를 제공했고, 666년에는 난민 2,000여 명에게 집터를 지원했다. 이쁜이 아니었다. 671년에는 약 70명의 백제인들에게 관직을 부여했다. 군사학에 조예가 깊은 백제인들을 가장 우대했고, 의학, 유교, 음양학을 전공한 백제인들을 그 다음으로 우대했다. 지금보다 관리 숫자가 훨씬 적었던 옛날에, 약 70명의 신입자를 정부에서 새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백제인 수용은 상당히 체계적인 준비작업 속에 이루어졌다. 그 긴박한 와중에도 왜국 정부는 유민 수용을 위한 제도적, 정치적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다. 664년에는 종전의 16관등제를 26관등제로 확대 개편했다. 백제인들에게 관직을 내줄 목적에서였다. 671년의 인사조치는 이런 제도개편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중략)
이 같은 움직임을 관찰하면, 671년에 일본이란 국호가 탄생한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진문명을 가진 백제 유민들이 왜국에 대거 유입되고 그들이 국정에 참여함에 따라, 종전의 국호로는 백제인과 왜국인을 하나로 통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제 유민의 대거 유입이 왜국의 기존 사회체제를 압박하고, 그 결과 새로운 국호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토착민과 도래인이 동참해서 신국新國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본이란 국호가 창안된 것이다.
<구당서> 동이 열전 일본 편에서는, 국호 개정 당시 일본열도 안에서도 기존 국호인 '왜국'을 혐오하는 움직임이 있엇따고 소개했다. 이는 왜국이란 국호를 마뜩하지 않게 여기는 외부 세력이 일본열도에 대거 유입되었으며, 그들의 발언권이 국가경여에 영향을 주었음을 방증한다. 일본이란 국호는 백제인과 왜국인들의 공동작품이지만, 채택 과정에서 백제인들의 입장이 좀더 강하게 반영됐으리라고 추론할 만한 근거가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해 뜨는 곳과 가까워서' 일본이란 국호를 채택했다고 했고, <구당서>에서는 '태양 쪽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채택했다고 했다. 왜국인들의 눈에는 자기 나라가 '해 뜨는 곳'일 수 없다. 왜국을 '해 뜨는 곳'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왜국의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이란 국호 속에는 왜국에 대한 백제 유민들의 고나점과 철학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국호 변경 과정에서 백제인들의 입김이 훨씬 더 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신국 건설 과정에서 백제인들의 영향력이 매우 막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후략)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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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릿 15-12-18 23:27
   
열도로 건너간 백제 유민들은 숫자만 보면 상당히 극소수 아님?? 당시 열도 토착민의 몇퍼센트를 차지했길래 그런 영향력을 끼치나요.
     
흑요석 15-12-18 23:55
   
열도 토착민의 인구가 상당히 적었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 인구보다 일본 열도의 토착민 인구가 훨씬 적었거든요.

갑자기 일본 열도의 인구가 급증하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도래인들이 많이 넘어갔을 때입니다.
     
호랭이해 15-12-18 23:58
   
     
버섹 15-12-19 04:44
   
극소수라니오...수십만명은 됩니다.

삼국사기 아신왕 원년조에

고구려와의 전쟁에 지친 백성들이 대거 신라로 도망갔다. 그로 인해 인구가 쇄감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인구가 쇄감할 정도면 엄청나게 신라로 갔다는 말이죠...

한데 이들은 신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동시기 다른 기록들을 보면
일본서기에 백제 궁월군이 120현민을 데리고 귀화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120현민이면, 한 현에 천 명씩만 잡아도,
12만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문에
신라국경에 왜인들이 가득해 구원을 청한 기록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은 왜인, 왜군, 왜적 등으로 명확하게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구려군이 남하하자 싸워보지도 않고 모두 도망을 가죠.
즉, 이들은 군인이 아닌 일반 백성있었다는 말입니다.

아신왕조에 신라로 갔다고 한 백성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들은 가야를 거쳐 왜국으로 건너간 궁월군의 백제인들이었던 겁니다.

비슷한 시기 백제인 아지사주도 대거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때의 일본은 백제왕족이 다스리고 있어서 이러한 사민이 가능했던 겁니다.
          
컴플릿 15-12-19 12:29
   
신라 국경에 가득찬 왜인들이 백제인들이었단 말씀은 왜인들과 백제인의 구별을 못했다는 거군요? 왜 못했죠?

그리고 열도로 건너간 그 수만명이 당시 열도인구의 몇퍼센트 정도를 차지 했느냐가 중요한거죠. 당시 열도인구가 대략 얼마였는데요 ?
               
버섹 15-12-19 19:49
   
사민해 가는 백성들을 인솔해 가기 위해 일본에 있는 백제왕족이 병사들을 보냈거든요...
그와 관련된 기록은 일본서기에 장수 누구누구를 보냈다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일본에서 온 병사들이 인솔해가고 있으니 신라에서는 왜인들이라고 판단했겠죠...

인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4세기를 잃어버린 4세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4세기에 관한 기록만 빠져 있기 때문이죠...
왜 빠졌는지는 그만큼 그 시대가 혼란기였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 즈음 일본 인구가 250만 가량이었는데, 4세기가 지나고 나서 500만 명이 됩니다.
한 세기 동안 2배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증가율을 훨씬 웃돈다고 일본학자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인구로 대략 판단하시죠...
그리고 4세기 이전의 250만 인구도 그 이전 가야에서 꾸준히 건너갔던 사람들이 대거 포함되었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할 것입니다.
                    
컴플릿 15-12-20 12:22
   
그럼 거의 대다수가 한반도 도래인 출신이라는건데..
제가 일본에 가본적 있는데 생김새가 한국이랑 너무 달라서 의아하더군요.
약간 동남아 사람처럼 보이던데 아무래도 가야 같은 경우는 그런 남방민족의 국가고 한반도에는 피를 아주 조금만 남기고 대부분 열도로 건너갔기 때문에 생김새가 많이 다른게 아닌가합니다.
                         
흑요석 15-12-21 02:56
   
우리가 일본인 하면 생각나는 외모의 사람들도 많고 그냥 한국인 처럼 생긴 사람들도 많죠.

과거에 한반도에서 도래인이 많이 넘어 갔으나 그 후부터는 수 천년간 서로 떨어져 독자적으로 지냈으니 그 사이에도 생김새는 변할 수 있습니다. 피부 까무잡잡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죠. 한국엔 뭐 없나요. 그거 가지고 남방이니 북방이니 나눌 순 없습니다 ㅋ
환쟁이토벌 15-12-19 06:12
   
그럼 백제는 결과적으로 한반도에서 멸망했고 일본으로 계승된거면  이게 일본놈들 역사겠네?  응? 반박해보셈

고구려 발해의 대한 중꿔에 동북공정을 비난하는 우리 학계의 엄청난 모순이 발생하겠구만??
     
세끈한펭귄 15-12-19 08:39
   
그럼 이전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와 포르투칼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스페인의 역사와 포르투갈의 역사에 대한 소유권이 있나요? 두 나라의 유럽인들은 남미대륙의 원주민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수임에도 발전된 문명으로 그들을 학살하고 식민지로 개척했습니다. 오늘날 남미의 여러식민지들이 독립한 이후에도, 그들은 강하게 그들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죠? 종교도 가톨릭이고, 심지어 이들은 언어까지 위 두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기까지합니다. 남미의 원주민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백인종계통은 훨씬 적고 소수지만 그들은 그 사회에서 굳이 말하자면 상류층이죠. 그러면, 그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언어적, 문화적으로 계승했으니 오히려 두 나라의 역사는 남미의 것이라 보는게 맞는건가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과거 로마제국이 점령해 개척한 땅에 불과하고, 서이슬람 제국이 점령했으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로마제국의 역사와 이슬람제국의 역사를 계승한 위대한 나라겠군요? 점령당했고 침략해온자가 식민지건설을 할 때 당연히 자신들의 문화로 덧칠하게되죠. 점령당했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피지배층이 그들의 후손이라 주장하는건 어이없는거 아닙니까? 정통후손인 한국인이 있는데 말이죠.  님이 아래에서 말하셨습니다. 삼한의 인구가 왜인보다 압도적으로 인구가 적다고. 어디서 나오는 근거불명은 말이지만, 어디 그렇다칩시다. 삼한인들이 왜인보다 적으면....상당히 인구가 협소했다는 거군요?  그럼 이주해온 부여인들이 비중이 훨씬 많다고도 예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한국인의 80퍼센트가 부여계 후손입니다. 반면 일본인들 중에 북방계통 부여계 수는 한국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고요.  백제가 삼국 중에 가장 인구가 많았고, 그 인구가 고스란히 인구가 적은 신라에 합쳐졌으니, 애초에 이주민이 선주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시점에서 님이 한반도 남부와 열도가 똑같이 부여인이 점령했을 뿐이란 소리는 개소리가 되는거 아닌가요? 동북공정을 비난하면서 동북공정을 옹호하는 지극히 노예다운 발상입니다. 노예는 스스로 노예인줄 모르니 한국인들은 자기야말로 백제의 후손이라며 한국인들은 걸레같이 피가 섞여 후손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일본인들을 비웃는거고 몽골이 자기 역사라는 중국인을 비웃는겁니다.  자위?  그건 그쪽의 망상 아닌가요? 방숭이들 특기가 해상에서 자위하는거 아니였나 ㅎㅎ
          
환쟁이토벌 15-12-19 16:13
   
그니까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느니 일본왕가가 백제세력이라든지 그런것들로 자위할필요없다이겁니다.

백제를 계승한게 일본이라는데 신라로 통일된 한반도에서 정통후손을 주장하는게 너무 웃기잔아요 ㅋ 백제왕가 부여씨는 중국으로 강제이주됬거나 열도로 전부 도망가서 소멸해버렸는데 ㅋㅋ 그나마 고씨 대씨는 한반도에서 계승된 개체가 많지만 백제 왕가나 위대한 백제 불교 건축물들은 현재 일본에 남아있을 뿐이죠
이게 현실입니다^^
               
세끈한펭귄 15-12-19 16:38
   
백제를 계승한 일본은 님이 원하던 결과아니였나요?
글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단지 식민지배당했을 뿐인 왜가 왜 백제를 계승하냐고 묻고있는데, 제 의견을 마치 자신의 의견마냥 말하시는게 참 방숭이들 도둑놈심보 하나는 하나같이 타고난듯
그럼 신라 이후에 고구려유민 중심으로 통일되었으니 우리는 고구려 후손임이 자명한개 맞겠군요
그게 님이 아주 좋아하시는 현실입니다^^
                    
환쟁이토벌 15-12-19 16:45
   
여기 계신분들은 하여간 식민 지배 정복 이런거 너무 좋아함    휴..
현실은 1945년 전까지 한반도는 일본에 식민지배되었단 사실..
               
남궁동자 15-12-19 18:59
   
헛소리.

일본은 백제를 계승한적이 없음.

지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는거.

반면 대한민국은 삼한을 계승했다고 명시.
환쟁이토벌 15-12-19 06:22
   
일본열도를 개척한 도래계 백제인은 만주 북부가 기원인 부여민족이다
열도 이전에 한반도 또한 선주민을 정복 복속시켜 일부 개척 지배한 땅에 불과하다

여기서 일부 몰상식한 민족주의 광신도들은 확대해석하며 현재 국가와 대입시켜 갑과 을 을따지면서 자위하는게 참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환쟁이토벌 15-12-19 06:31
   
열도에 죠몬 원주민이 있었듯이 한반도 남단 끝자락과 제주도 일부에 고대 죠몬원주민과 남방왜인 민족이 거주했으며 한반도 중부와 북부지역까지 말갈 수렵민족이 선주민이였다 그이후 부터 삼한인이 이주했으며 부여인이 차례로 남하 도래하여 한반도를 정복한것이고 그들(고구려 백제)의 한반도 내에서의 세력다툼이 거세져 몆세기 이후 열도까지 세력을 팽창한것이다.
     
남궁동자 15-12-19 09:24
   
근데 왜  한반도 선주민과 삼한인과 부여인이 같은 문화를 가졌을까요?

석기시대에 인종적으로 전혀 관련없는 민족들이 문화만 공유한다라...

노벨상 감이네요 ㅋㅋㅋㅋ
          
환쟁이토벌 15-12-19 15:59
   
한반도 선주민과 삼한 부여인이 같은 문화를 가졌다는 근거는?

부여인의 남하로 같은문화를 공유 동화된것이 아니고?

삼한의 주인으로 알려진 마한인은 가죽옷과 옥을 매장 하는풍습으로 그들에 부에상징은 옥이다 그들은 기록으로 당시에 금동제를 취급하지않았다고 한다 당신들이 알고있는 삼국시대 금동제 왕관및 귀걸이 석상 무덤 유물은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부여계 지배 세력으로부터 한반도에 도래한것들이다 그이후 비단과 같은 중화의 물건이 유입되고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인이 마한인 처럼 왜인계 문신을 하고있단 기록은 없다 그리고 고대 삼한 유적중에 고분벽화나 적석총이 존재하는지?
               
남궁동자 15-12-19 18:57
   
고인돌. 전세계 고인돌 절반이 한반도 + 만주

전세계 석기시대 인들중 왜 하필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만주, 한반도에 살던 석기시대인들만 고인돌을 많이 만들었을까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데 말이죠!

그리고 석기시대는 훨씬 전이고요. 고조선 부터는 청동기시대입니다. 후기 고조선부터는 철기시대고요.
환쟁이토벌 15-12-19 06:42
   
그리고 백제 성립 수세기 이전부터 이미 왜국에 국가는 존재하고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 남부 영산강 일대 존재하던 세력이 큐슈등지의 서일본지역 고대 왜인과 같은 지배집단으로 추정하고있다 전라도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땅을 접함으로써 왜국과 백제의 직접적인 인적교류가 성립된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장 현실적이다. 고대 중국측 사료나 국내사료에 기재된 내용만으로도 고대 왜인의 개체수는 삼한의 인구를 압도하는 수준인데 윗 댓글은 아무 근거도 없이 너무 억지스럽다
     
남궁동자 15-12-19 09:22
   
열도 인구가 반도 인구를 따라잡은게 고려말.
환쟁이토벌 15-12-19 06:51
   
당시 신라나 백제 대방군 등지에 체류하는 왜인종이 상당했으며 삼한이전 부터 마한과 변한과 땅을 접하고있어 그들에게 문신을 하던 왜인의 풍속이 더불어 성행했었다고 기록되있음
세끈한펭귄 15-12-19 08:17
   
동북공정을 비난하면서 동북공정 논리를 따라가는 논리란....무식하면 용감하군요 ㅎㅎ
환쟁이토벌 15-12-19 16:00
   
그리고 삼한열국시대 마한이나 변진 진한의 민족구성은 진나라 노역을 피해 건너온 유민과 부여세력에 밀려난  한사군 유민  중국본토의 전란중에 건너온 유이민의 수가 엄청났기때문에 그들이 다수이며 삼국시대로 넘어가 신라나 백제또한 기록으로 다수의 중국인과 왜인이 국내에 체류하고있어 함께 혼재하고있다고 기록되있다 저나 당신들의 조상도 족보는 있겠지만 분명 토착민일 가능성은 많지않다 이겁니다.  단일 민족주의는 허상이자 역사적으로 국가 내부단결을 위한 우리같은 하층민을 주무르고 갖고노는 의미없는 나랏님들의 정치놀음일뿐

근데 글쎄 그 나라만의 문화라는 틀로 함축하면 그렇지만은 않을수도있네 근데 그건 조선시대로 한정해서만 가능할듯
     
세끈한펭귄 15-12-19 16:42
   
우리나라 인구의 80퍼센트가 부여계임은 이미 자명한 사실입니다만?
님의 말대로라면 이런 비율은 나올 수 없습니다.
환쟁이토벌이라 이름붙였지만 결국은 동북공정과 친일,식민사관 주장만 옹호하는거 보니 당신의 수준이 딱 보입니다.
당신은 환쟁이들같은 버리지들 비판할 주제못됩니다. 버러지가 버러지한테 일침놓는데 일반인들은 벌레마냥 처다볼뿐 들어주진 않죠.
그게 현실입니다^^
핫초코님 15-12-21 12:25
   
지나가다..그냥 끼어들면.. 한일고대사는 민감한 사안이죠.. 섯부른 주장은 서로에게 독이 될 뿐...

하여간 쟁점1..... 일본은 백제를 계승 했을까?
위에 누가 댓글에 자료를 올려놨던데.. 백제 멸망 이후 열도의 인구 증가가 급증합니다...
많은 유민들이 열도로 이주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로 계승이라고 까지 하긴 그렇습니다..

쟁점2... 일본은 왜의 나라인가?
여기서 왜라는 명칭은 국가..민족으로써의 왜가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에서 해안지역 거주민들을
통칭하는 용어로써의 왜입니다. 왜는 중국 동부해안, 한반도 남부 해안에도 서식했습니다.
그냥 해양 부족.. 해적들을 왜라고 통칭하죠....
하지만 일본이라고 부를 때..그들이 왜의 연합인지는 불명확합니다.. 일본에서도 요즘 민감해서
말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일본 극우론자들이 제국주의 시대에 자신들의 민족적 근원을 마한에서
찾았다는 것이죠.. 이는 일본서기에 근거합니다. 일본 서기는 가야(한국)을 자신들의 직할지로 기술하고..
신라를 번국(식민지)이라고 표현합니다. 가야가 직할지가 되고 신라를 번국이라고 멸시할 수 있는
역사적 집단은 마한 밖에는 없습니다. 킨메이조에 보면 백제 서남부에 한국이라는 존재를 언급합니다.
이 한국이 마한의 한반도 잔존 세력을 명칭하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나주지역의 전방후원분이
유력한 증거이죠... 즉 일본-최소한 야마토 일본은 왜의 세력이 아니라 삼한.. 그 중에 마한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기존 토착의 왜인들은 있었으나 국가로 발전한 단계가
아니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한을 중심으로 한 삼한의 세력이 열도로 진출하면서 국가가 생겨났다는
것이죠.. 가장 유력한 것은 부여족의 남하에 따라서 밀려났을 가능성입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한반도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마한과 변한이 열도로 밀려났고.. 진한이 홀로 남아서
신라라는 국가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게 가장 합리적입니다.

쟁점3.. 마한=일본일까?
일본의 최초 국가기원이 마한으로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일본이 곧바로 마한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본에서 부르는 도래인들의 출신은 다양했고 초기 주요 세력은 마한계 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후 다양한 세력들이 한반도와 중국 남부를 통해서 유입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가 실질적으로 개국했다고 할 수 있는 다이카 개신의 경우 명백히 백제계 주도
였고.. 초기 일본국가 체제의 완성에는 백제계와 마한계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한=일본으로 까지 주장하는 건 무리겠죠..

쟁점4...임나일본부를 통한 한반도 남부 경영은 존재했을까?
이는 존재 가능성이 제로입니다.. 임나일본부는 일본서기 킨메이조에 명확히 나옵니다.. 땅이 아니라
사람들이고 이 일본부는 야마토왕의 명령을 듣지 않으며 신라와 친밀한 세력입니다.
백제 성왕은 야마토 왕에게 니들이 임나일본부에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청하지만..
일본부는 야마토왕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쟁점5...그러면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에 영향력 정도는 행사하지 않았을까?
백제는 마한 내부에 땅을 빌어 정착했습니다. 헌데 어느 순간 마한은 사라지고 백제가 남았죠..
백제는 명백히 부여족이고 온조가 자신의 어머니와 남하해서 만든 국가이며...
고구려와 그 기원이 같은 형제국가입니다. 따라서 마한과는 무관한 종족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마한과 대립적 관계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한때는 서로 공존했지요...
신공황후의 전설을 가만이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신공황후가 신라와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고 주장하는
과정을 보면.. 임신한 신공황후가 배에다 돌을 대고 물고기와 파도를 일으켜서 한반도를 침공합니다..
그러니까 생선들을 병사로 삼아 쳐들어온 것이죠..  호태왕비문의 문제적 기사를 보면..다들 왜가 바다를
건너와 XX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부분의 해석에만 집중하는데.. 더 중요한 건 그 앞뒤 문맥과 기사들이죠..
왜가 백잔과 신라를 격파했다면 백잔과 왜는 원수관계여야 하는데.. 뒤이어 기사는 백잔이 왜와 손잡고
신라와 고구려에 대항합니다. 또 왜가 침공했다는데 신라의 성에는 안라수병들이 가득합니다. 안라국은
대가야 아래의 작은 소국 가야이죠.. 다시 신공황후로 돌아와 보면 신공왕후는 생선 병사들로 신라를 치고
백제와 손을 잡아 백제에게 영토를 주고 돌아갑니다...자 종합보면 신공황후의 생선병사들은 백제와
안라국 병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도 왜는 실질적 군사력도 열도에서 한반도로 넘어올
해군 역량도 되지 않았는데.. 신라를 괴롭힌 겁니다...그 이유는 백제와 가야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이죠..
열도에 군사력이 미약했음은 고대 한반도 대규모 전투인 관산성 전투에서도 확실히 드러납니다...
성왕은 왜에 군대를 요구했으나.. 왜왕은 고작 천명의 군사 정도를 보내주는 게 맥시멈이었고...
신라가 금관가야를 복속시킬 때.. 왜왕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신라의 복수와 가야의 회복에 대해 백제에
대해 전적으로 의존하며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요..
왜 이런 관계일까요? 다시 신공황후로 돌아가서.. 신공황후는 실질적 정치지도자가 아닌 상징적인 존재
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후한서와 위지동이전에서도 단서가 추론되는데요...
야마토의 여왕이 실질적 국가 지도자가 아닌 신앙적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한으로 다시 와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으로 마한에 비슷한 존재는 무엇이 있을까요?
소도와 천군.. 솟대가 있습니다. 소도라는 신성불가침 지역이 있고.. 범죄자등 무뢰배들은 자주 그 소도로
도망칩니다.. 각지역의 실권자들은 자신의 아들 등을 천군이라 하여 소도에 보냅니다.. 그리고 소도를
상징하는 솟대가 있죠.. 아스카지역(교토인근)은 삼한의 소도였을 가능성이 있고.. 그곳에는 도이리가
있습니다..이게 고대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민감성으로 한일 양측 모두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백제 멸망 이후 유민들이 소도를 향해 몰려들었던 것이고.. 그 이전까지 열도의 왜는 국가체계를
갖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로 존립하지 않다가.. 국가로 발전하게 됐다는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 추론했을 경우.. 일본의 한반도 영향력은 그저 마한 세력의 종교적인 상징 정도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질이라는 용어도 이렇게 대입해야만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백제는 당시대 마한지역의 관례를 유지하기 위해서 소도로 천군을 보낸 것이죠..
더불어 열도왜가 신라를 번국이라고 부르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인질을 요구했던 것도 풀리게 됩니다.
열도 왜가 신라를 지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번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상징의 의미로 신라를 번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라가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받아들인
법흥왕 시대 이후 열도왜와의 관계는 더 나빠지고.. 법흥왕의 아들인 진흥왕은 국호를 개국이라고 칭하며..
열도와 좀 더 대립관계가 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쟁점6... 그러면 백제는 어떤 이유로 왜와 우호적이었을까?
다시 호태왕 비문으로 가 봅시다. 고구려는 백제를 백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열도 왜가 신라를 신라라고 부르지 않고 번국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고구려는 백제를 멸칭하여 백잔.. 즉 도망자 무리라고 부릅니다..
마치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북괴 또는 북한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대결이 중요했고.. 한반도 남부에서 이민족이었던 백제는 삼한의 관계를
형식적으로라도 그대로 따랐다고 보는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7...결론적으로 그러면 일본의 구성원은??
단순히 한반도 중심의 도래계의 국가로 보는 게 맞습니다..
초기..삼한계의 열도 이주가 있었고.. 백제 패망 이후 부여계의 열도 이주가 있었죠..
간단히... 미국을 개척했듯이... 한반도 거주자들이 일본이라는 신대륙으로 오사리 잡탕들이 넘어가서
국가가 형성된 것이죠.. 만약 초기 일본의 도래인이 누구인가라고 하면 마한,가야의 삼한계인들이고..
일본의 국가 형성기의 도래인이 누구인가라고 하면 불교를 수입하고 다이카 개신을 이룩한 백제계라고
할 수 있겠죠...

한반도는 대륙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인종,문화가 변화되어 온 것이고...
일본은 한반도에서 이주한 이후 고립된 상태에서 변화한 것이죠....
     
버섹 15-12-21 14:37
   
일본이 마한의 도래인이라니...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로군요...
마한은 백제가 커지면서 한반도 남부로 밀려났다가 근초고왕에 의해 멸망합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은 응신왕이 집권을 하는데, 그와 그의 아들 인덕의 무덤을 보면 엄청난 토목기술이 있어야 가능할 피라미드보다 더 큰 거대한 무덤을 만듭니다.
한반도에 있던 마한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나라였어요.
그런 나라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 정권을 세워요? 말도 안되는 소리마세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 겁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국은 마한이 아니라 가야를 일컫는 말입니다.
가야의 구지봉 건국신화와도 흡사하고요...구야한국이라는 말과 함께 구지후루타케로 신이 내려왔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덕왕의 무덤에서 나온 몇가지 유물은 백제의 것과 같습니다.
그 거대한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와 관련있는 인물이지 마한과 관련있는 인물이라는 건 터무니 없는 소리에요...

또한 광개토대왕비문의 백잔이 도망자라는 뜻에서 백잔이라고요?
잔이라는 말에 도망자라는 뜻이 있나요?
광개토대왕비문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천년을 가라는 뜻에서 돌에다 새긴 엄중한 유물입니다.
백잔은 도망자라는 뜻이 아니라 백제의 나머지 즉 남은 백제라는 뜻입니다.
나머지 잔자에요.
일본으로 대거 건너가고 남은 백제라는 뜻에서 백잔이라고 한 것이에요.
멸시의 의미로 쓴 것도 아닙니다.

북괴, 괴뢰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는데...
우리도 북한과 사이가 좋을 때는 북괴, 괴뢰라고 하지 않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를 멸시할 이유가 없었어요...아신왕이 이미 항복을 해 신민이 되었기 때문에요...백잔은 사실 그대로를 적은 거에요...일본으로 대거 건너가고 남은 백제라는 뜻입니다.

당시 일본은 백여 개의 작은 소국들로 이루어진 나라였어요.
작은 나라들끼리 전쟁도 많았는데, 13대 츄아이왕은 웅습이라는 나라를 공격하다 화살에 맞아 전사합니다.
그 작은 나라들을 통합해야 중앙집권국가를 세울 수 있는데, 마한의 군사력으론 어림도 없어요. 백제도 정벌을 위해 많은 병력이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그래서 근초고왕 당시 백제와 싸우던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할 정도로 고구려보다 우위에 있던 백제의 군사력이 절반 정도 일본으로 건너가 정벌전쟁을 한 탓에 백제의 군사력이 약해진 것입니다.
     
환쟁이토벌 15-12-21 17:03
   
일본이라는 국명이 백제인이 쓰던 지명이던 왕족과 지배층이 백제계이던 과거와 현재까지 일본에 과반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문신을 하던 해양족속 왜인입니다
그러므로 일본국은 과거 왜국의 별종이라 기록되있는것이구요^^
비슷하게 한반도 남동쪽 신라는 진한에서 파생한 별종으로
북방과 중부지역까지의 고구려 백제 동예 옥저 발해등의 국가는 부여의 별종으로 기록되어있는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서로 다른 민족이며 다른문화를 계승발전되어 현재 국가 한국과 일본이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열도 고대 죠몬인은 왜인 민족이 아닙니다. 선사시대 원주민으로 그들은 문신과 같은 왜인의 풍속을 갖지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아이누인종을 보시면 알수있는 모습이죠 왜인은 한반도 남부와 서일본 지역에 존재하던세력으로 고구려에 쫒겨 전부 일본으로 넘어가 백제 일부세력과 함께 일본을 만든것입니다. 그치만 저도 윗 댓글처럼 왜인의  지배세력이 마한 보다는 가야인들이란 추측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물론 당시에 그들이 고구려나 백제와 같은 중앙집권적 형태을 띄고있었 국가 체계는 아니라생각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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