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2-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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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김종성)]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좋은 내용이라 생각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략) 660년 백제 멸망을 계기로 일본이 새로운 나라로 바뀌었으며 그 새로움이 한민족과 관련이 깊다는 증거는 상당히 강력하다. 일본이란 국호가 생기는 과정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일본의 원래 국명은 왜국倭國이다. '왜국'이 '일본'으로 바귄 시점은 흥미롭게도 백제 멸망 직후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문무왕文武王 편에 일본 국호 변경의 역사적 순간이 기록돼 있다. (문무왕 10년) 12월, 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 "해 뜨는 곳과 가까워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고 스스로 말했다. 국호가 변경된 시점인 문무왕 10년 12월은 양력 671년 1월 17일부터 2월 14일 사이다. 이 조치가 일본 율령에 반영된 시점은 30년 뒤인 701년이다. 율령에 반영되기 전에도 새로운 국호가 사용됐다는 점은, 678년에 중국 서안(시안)에서 사망한 백제인 예씨의 묘지명에 일본 국호가 등장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 묘지는 2010년 서안 근교에서 발견됐다. 관련 내용은 2011년 10월 23일자 <아사히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 국호 변경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역사서에도 나온다. <삼국사기>와 유사한 설명이 <구당서> 동이 열전 일본 편에, "일본국이란 것은 왜국의 별종이다. 그 나라가 태양 쪽에 있다 하여 일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라고 나온다. 왜국이 671년에 국호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을 말하면, 이것은 백제 멸망과 관련이 깊었다. 이 점은 그 이전에 벌어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다. 2001년 12월 1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다"고 발언했다. 백제와 왜국 왕실의 상호 연관성을 <속일본기> 표현을 빌려 인정한 것이다. 일왕이 인정한 것처럼, 왜국 왕실은 경제, 정치, 문화, 사회뿐 아니라 혈통으로도 한민족과 긴밀한 연관을 가졌다. 백제가 왜국의 연곤성이 긴밀하다는 증거는 이 외에도 많다. 4세기 때의 오진應神 일왕과 5세기 때의 닌토쿠仁德 일왕이 백제인의 후손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또 왜국은 기본적으로 친親백제의 나라였다. 친백제파를 타도한 정변인 다이카 개신으로 645~649년에 친신라파가 잠시 정권을 잡은 적은 있지만, 이것은 예외에 속했다. 왜국은 가야와도 친했지만, 백제와는 더욱 친했다. 가야가 사라진 뒤로는 더욱 그랬다. (중략) 백제 난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왜국은 많은 것들을 배려했다. 왜국은 새 식구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터전부터 만들어주었다. 665년에는 난민 400여 명에게 정착지를 제공했고, 666년에는 난민 2,000여 명에게 집터를 지원했다. 이쁜이 아니었다. 671년에는 약 70명의 백제인들에게 관직을 부여했다. 군사학에 조예가 깊은 백제인들을 가장 우대했고, 의학, 유교, 음양학을 전공한 백제인들을 그 다음으로 우대했다. 지금보다 관리 숫자가 훨씬 적었던 옛날에, 약 70명의 신입자를 정부에서 새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백제인 수용은 상당히 체계적인 준비작업 속에 이루어졌다. 그 긴박한 와중에도 왜국 정부는 유민 수용을 위한 제도적, 정치적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다. 664년에는 종전의 16관등제를 26관등제로 확대 개편했다. 백제인들에게 관직을 내줄 목적에서였다. 671년의 인사조치는 이런 제도개편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중략) 이 같은 움직임을 관찰하면, 671년에 일본이란 국호가 탄생한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진문명을 가진 백제 유민들이 왜국에 대거 유입되고 그들이 국정에 참여함에 따라, 종전의 국호로는 백제인과 왜국인을 하나로 통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제 유민의 대거 유입이 왜국의 기존 사회체제를 압박하고, 그 결과 새로운 국호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토착민과 도래인이 동참해서 신국新國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본이란 국호가 창안된 것이다. <구당서> 동이 열전 일본 편에서는, 국호 개정 당시 일본열도 안에서도 기존 국호인 '왜국'을 혐오하는 움직임이 있엇따고 소개했다. 이는 왜국이란 국호를 마뜩하지 않게 여기는 외부 세력이 일본열도에 대거 유입되었으며, 그들의 발언권이 국가경여에 영향을 주었음을 방증한다. 일본이란 국호는 백제인과 왜국인들의 공동작품이지만, 채택 과정에서 백제인들의 입장이 좀더 강하게 반영됐으리라고 추론할 만한 근거가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해 뜨는 곳과 가까워서' 일본이란 국호를 채택했다고 했고, <구당서>에서는 '태양 쪽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채택했다고 했다. 왜국인들의 눈에는 자기 나라가 '해 뜨는 곳'일 수 없다. 왜국을 '해 뜨는 곳'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왜국의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이란 국호 속에는 왜국에 대한 백제 유민들의 고나점과 철학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국호 변경 과정에서 백제인들의 입김이 훨씬 더 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신국 건설 과정에서 백제인들의 영향력이 매우 막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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