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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28 20:17
[한국사] 인구수 질문.
 글쓴이 : 해달
조회 : 4,478  

TimeMaster 15-11-28 20:10
답변  
근데 동시대 유럽 왠만한 나라들의 수도도 인구가 20만이 안되는 곳이 많았으니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현재에 비해 작은것일뿐... 

심지어 고려의 수도 개경은 50만명이었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의 신라 서라벌 인구는 97만명으로 세계 4대 도시에 들어갔다고 하니 오히려 현대이전에는 고대로 갈수록 도시가 발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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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을하면
시대가 지날수록 인구도 늘어나고, 도시도 커져야하는데.
신라가 백만
고려가 오십만
한양이 이십만
.. 줄어드는 이유가 뭐죠??
전쟁도 신라가 더 많았을테고.. 시설-환경도 후시대에 비해 낙후되었을텐데 납득이 안가네요..
고대로 갈수록 출산률이 늘어나고, 발전할수록 출산률이 떨어져서 그런 것도 아닐테고.

아시는 분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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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리 15-11-28 21:19
   
쉴라는 통일이후 인구 일꺼에요.
mymiky 15-11-28 23:28
   
신라의 서라벌은 지금 경주를 시작으로, 점차 커져서 오늘날에, 경주 주변에 포항인근까지 다 포함됩니다.
조선의 경우, 향촌발달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콜라코카 15-11-29 00:44
   
개경,서경,남경,동경 4경에 고루 분포해서 아닐까요??
세종시 15-11-29 01:04
   
"시대가 지날수록 인구도 늘어나고, 도시도 커져야하는데.."-> 이 전제가 잘못 된 듯 하네요...우리 역사는 오히려 시대가 지나면서 인구가 줄었다고 봐야 합니다...

맬더스 인구론은 우리 보다 먹는 문제가 좀더 해결이 잘 된 유럽의 얘기일 뿐입니다. 즉,...인구가 늘기 시작한 것은 먹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수명이 늘게 된 근세 이후이지요...

조선시대 이전만 해도 워낙 평균수명이 짧아서 인구가 늘지 않다가 전쟁이 나면 인구가 확 줄어들었지요...농사에 있어 이양법 등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인구는 결코 늘 수가 없었다고 봐야합니다....

부부가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낳아도 두 명까지 장년으로 키울 수 있는 집이 과연 많았을까요? 예를 들어 자식을 열명이나 낳아도 병으로 죽고, 전쟁으로 죽는다고 치면...최소 3명 이상은 살아 남아야 인구가 느는건데...3명이상 자식을 장수할 수 있었던 집은....아마도 먹고 사는데 별 문제가 없는 양반집이나 가능했겠지요.

그리고 삼국시대만 해도 성읍국가들이 통합되면서 인구는 늘 수밖에 없지요...민족 개념이 형성되기 전이니...정복하면 끌어다가 자기 백성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하지만 지금보다 개간된 땅도 많지 않아 생산력 보다 사람이 북적거리니 오히려 일본이나 만주 쪽으로 건너가면서 사람은 계속 줄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그 당시 통계가 없으니 이러한 관점에 한계는 있고...중국과는 또 다른 생산환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합니다...조선후기 때에도 우리 나라의 평균수명은 30세 정도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먹을 것 찾아 함경도나 만주로 넘어가 야인이 되는 상황도 생각해 보면...인구가 늘 요인은 별로 없고, 줄 요인은 많았다고 봐야겠지요?
     
꼬마러브 15-11-29 03:29
   
글세요. 조선후기를 포함한 예전시대의 평균수명을 30세로 잡고 인구가 늘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평균수명이 30세인것은 영유아 사망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의료기술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아 아기를 낳면 낳는 족족 그 아기가 계속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유아의 경우 면역력이 성인들보다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사망율이 높죠. 그렇기 떄문에 10명을 낳으면 보통 성인이 될 때 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3~4명정도라고 하죠. 지금은 재왕절개라든지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낳는 족족 낳지만요.. 50년,60년전만해도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하러갈 때 낳자마자 등록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영유아때 죽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이 60세 이상의 분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보면 자신이 태어난날과 다른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렇게 영유아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이 30세라고 하는 거에요. 님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이런 영유아때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균수명을 보면은.. 조선왕조실록을보면 왕족과 귀족들의 평균수명은 60세 전후로 그 외 양민과 천민의 수명은 45세 전후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특히 조선시대를 보면 양반을 제외한 양민,천민은 무슨 매일 굶고..? 평균수명은 짧고? 그런 의식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런 의식은 일제시대때 조선을 비하하기 위한 일제의 왜곡으로  시작된 의식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굶고 죽고.. 그런 지옥같은 생활은 절대로 아니라는 겁니다. 통계를 보나 문헌을 보나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간단한 통계로만 봐도 조선후기때 쌀 생산량은 일본의 2배입니다. 인구는 일본이 조선의 2배인데도요..
          
세종시 15-11-29 13:18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통계 데이터가 없던 시절이니 정확한 평균수명은 알 수 없겠지요...하지만 영유아가 포함되어 낸 평균수명도 적절치는 않은 듯 하네요...예를 들어 로마시대의 평균수명이 30세 전후라고 하는 것은 영유아를 포함하여 낸 통계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30세 정도까지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언급되는 평균수명은 영유아를 포함한 산술평균(mean)이라기 보다는 중앙값 중심의 메디안(median) 성격이 가깝지요. 어쨌든 제 관점에도 문제가 있곘지만...저의 통계지식과 경험을 기준으로 보면...양민과 천민의 평균수명이 45세 전후라는 통설이라는 것도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만^^
               
mymiky 15-11-29 14:00
   
조선왕의 평균수명은 약 46세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조가 80넘게 사셨고, 단종이 17인가에 죽어서 평균을 확 까먹었지만;;
뭐 대충 그렇게 나온다고 하더군요.

내시들은 거세를 해서인지 무척 장수했습니다. 관련 논문도 있구요.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40줄에서 오차 범위입니다.
대략 30대중후반- 40초반으로 잡습니다.

이건, 비단 조선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인간의 수명은, 19세기 후반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각종 약품들이 개발되고, 특히 페니실린 덕분에 확- 늘어난 것이지.

그 이전사회에서 3,40은 중년이고, 60까지 살면 오래 산 것이였습니다.

조선초기 36세/ 조선후기 42세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고 하는군요.
조선후기 동시대 오스트리아인들의 평균수명도 40세 정도였는데.

대중들에게, 요절한 작곡가로 알려진 모짜르트도, 38살에 죽었는데
동시대에선 별로 요절했다고 보진 않았다는군요.
                    
mymiky 15-11-29 14:29
   
그리고,
님말씀처럼
중간에 왜란과 호란으로, 조선의 인구가  팍 꺽인 시점이 있었습니다.

이때를 두고,
일본이나 만주로 건너가, 사람이 계속 줄었다고 표현하신듯 한데?

그 시점을 보자면,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래서, 계속? 인구가 줄었다?고 하는건 좀 어폐가 있습니다.

양란이후부턴 또 인구는 늘어나거든요.
인구는 조선이 망할때까지 계속 늘어납니다.

원래 있던 인구가 팍 깍이고 다시 채우는 시간은 걸렸지만
전후 복권이 마무리 될 숙종시대부터는 또 사회가 안정기에 들어가거든요.

숙종 4년 1678년 525만명
순종 10년 1910년 1300만명-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통계.

물론, 오늘날 인구조사처럼 정확하진 않을겁니다.
산속에 사는 화전민이나, 떠돌이 거지들이나, 뭐 이런 자들이 통계에서 빠지기도 했을 것이고,

조선시대 인구조사는 군역을 질수 있는
성인(오늘날처럼 만 20세가 아닌, 유교의 관례식를 치룬 15세 이상)
양인 신분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많았다는 것을 참고해야 합니다.
고로, 여자와 아이들은 빠져있을 확률이 높아서, 그것까지 감안해야 합니다.
꼬마러브 15-11-29 03:38
   
그리고 저는 시대가 지날수록 도시의 규모가 커져야된다는 말은 전혀 틀린거라고 봅니다. 오히려 조선시대떄 향촌발달을 한 것이 시대를 뛰어넘는 대단히 선진적인 것이라 봐야합니다. 지금 현대에도 보면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있어 이를 분산시키기 위해 신도시를 세우는 등 많은 계획을 하죠. 생활수준이 높은 북유럽의 인구밀도를 보면 현저히 낮습니다. 인구가 한곳에 집중되있는 것이 아닌.. 인구가 중심과 지방 골구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더 선진적이라는 겁니다. 이로 볼 때 조선시대의 향촌발달은 현대에서봐도 대단히 선진적인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죠.
Centurion 15-11-29 04:08
   
경주를 가보면 느끼실테지만....
평야지대에 논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지역이 대부분 사람 살던 집터죠.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 느낌이 납니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61IB&articleno=15974934
이걸 보면 감이 오실듯..
물론 신라왕이 살던 궁궐과 그걸 둘러싼 도성인 반월성도 있지만,
그 바깥으로 드넓은 평야지대가 집으로 꽉 들어차 있는 형태죠.

반면 한양은 도성인데..
http://everyday-prayer.tistory.com/m/post/123
http://www.nanumilbo.com/sub_read.html?uid=898

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한양 도성 자체의 둘레는 대략 10km로
현재의 서울광역시에서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규모입니다.
덜덜덜 15-11-29 21:53
   
신라 경주 100만인구는 구라입니다.

상식적으로 경주에 백만 인구 살수 없네요.

신라인들 식수와 대변 양도 커버 못할듯..
밥밥c 15-11-30 01:26
   
당시 기록상 인구 백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곳은 단 한군데 뿐입니다.

 실크로드의 종착점 , 당시 "동경"이라고 불리는 낙양 단 한군데 입니다.

 동북아시아 전체를 통틀어서도 백만의 가능성은 없지요.

 자연지형, 당시경제 여건상 백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모일 수 있는 곳이 단 한군데 입니다.

 사실 이정도면 동북아시아가 아닌 유라시아전체를 포함해도 가장 큰 규모입니다.

 6세기경 낙양의 인구가 11만호 겨우 넘는 수준이였습니다.

 이것이 동북아 최대입니다.
 
 17만호라면 당시 이보다 더 거대한 도시는 없죠.
밥밥c 15-11-30 02:10
   
정말 하다못해 17만 8천호보다 많은 인구수가 있었던 도시가 당시에 존재 했었느지가 중요하죠.

 존재하고 있었어야, 있다고 하죠.
     
남궁동자 15-11-30 08:22
   
공식 문서에 그렇게 적혀있는걸 어쩌겠어요. 당나라도 아니고 공식문서에 가짜로 적진 않았겠죠.

아마 경주 + 그 근처 인구이거나 당시에는 경주가 범위가 엄청 넓었나보죠.
알샤밥줘영 15-11-30 21:00
   
개간지역의 차이와 치안때문입니다.
  고대국가일수록 개간된 지역은 도시주변이었고, 도적떼나 군벌등에게 약탈등 범죄를 당하지 않기위해 모여살은것이지요.
그러다가 치안이 안정되고 개간지역이 늘어남에 따라 점차 새로운 개간지를 찾아 퍼져나감으로서 도시인구는 감소하게 됩니다. 그게 정점을 찍은게 조선후기와 대한민국 초기이고 산업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다시 도시로 몰려든것이지요.
중세 유럽을 봐도 알수있는데 사람들이 살던곳은 영주성주변이나 방책이 둘려쳐진 마을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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