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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22 16:47
[기타] 고조선 영향권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7,621  


잘보고 가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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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있네 15-11-22 17:51
   
저는 교과서를 통해서만 고조선을 접한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는 학생인데요.
흥미로운 동영상인것 같네요. 제가 알고 있는 고조선이란 변방의 청동기 문화를 통해 발전한 제정일치의 부족국가와 위만조선 이후 철기를 수용하여 부흥을 하다가 우거왕때 한나라의 한무제에 의해 멸망한 나라로 알고 있었거든요
가이우스 15-11-22 20:22
   
정확하네 ㅣ이거 보고 제발 공자니 한자니 우리선조가 만들엇다고 하지 말았으면

요즘 학계에서 말론 고인돌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가장 왕성하고 그것이 동남아쪽으로 전파됬다고 합니다.
꼬마러브 15-11-22 22:38
   
개인적으로 한반도 남부를 왜 고조선 영토에서 빼는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특히 영향권이라면 더욱 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죠.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신라를 건국한 사람들은 조선의 남겨진 백성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은 신라가 있었던 지금의 경삼남도 지역이 고조선의 영토였음을 알게 해줍니다.
특히 고려사 지리지에는 강화도 마리산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은 단군이 하느님께 제사지내던 곳이며 강화도의 전등산에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것이라고 나왔습니다. 이는 경기도지역도 고조선의 영토였음을 알게 해주죠. 즉 한반도 남부가 고조선의 영토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물로 볼 때 역시 한반도남부를 고조선 영향권에서 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특히 동영상에 나오는 고인돌같은 경우는 북한에 1만여기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전라도지역에서만 북한의 고인돌 수의 두배인 2만여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남한 전체도 아니고 남한 중에서 전라도 지역에서만 2만기입니다. 이것만 해도 북한의 2배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반도남부를 고조선 영향권에서 제외한단 말입니까..
     
두부국 15-11-22 23:10
   
저도 그게 이해가 안갑니다 왜 고조선 영향권에 한반도가 빠져 있는지

고조선 영향권 높게 잡으면 연해주 내몽골 몽골 일부까지 들어갑니다

고조선 직접지배영토는 교과서 내용 영토인것 같습니다
     
나이thㅡ 15-11-23 10:21
   
그러게요 제가 알기로는 우리 대한민국 영토에도 2만여개의 고인돌이 있다고 하던데..
운드르 15-11-23 00:58
   
동일한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유물이 곧 동일한 국가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지 의문입니다.
     
해달 15-11-23 11:34
   
영향권이라고 나와있는데..
     
청춘시대 15-11-23 11:38
   
이동이 용이한 유물이라면 님 말도 설득력이 있지만, 유적의 경우 수백 수천도 아닌 수만기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 해있는걸 생각 해보면 저 영상쪽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그노스 15-11-23 12:09
   
비파형 동검같은 경우는,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던 집단이 그 같은 우수 문물을 수입했을수도 있을거 같아요.
대륙의 유물이 한반도에서 나왔다고 한반도를 대륙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고 볼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마식 유리구슬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반도를 로마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고 볼수 없겠지요.
단순한 문화 수입으로도 볼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인돌 같은 경우는 변변한 도구도 없던 시절에 거대한 돌을 옮기고 고임돌을 세우고 뚜껑돌을 올리는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거 같아요.
그 당시에 타 집단간의 기술교류가 용이했을리도 없구요. 이건 고조선의 영향권으로 볼수 있지 않나 합니다.
          
부르르르 15-11-23 13:23
   
물론 어느 지역에서 특정 유물이 나왔다고 그 지역이 영향권에 있다고 단정 할수는 없지만, 그 유물의 성격이나 분포도를 보면 어느정도 알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로마식 유리구슬과 비파형 동검은 분포도나 그 유물의 정치적, 경제적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교류의 의미인지 정치적 지배권의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노스 15-11-23 14:20
   
저는 견해가 좀 다르네요.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은 모두 고조선의 영역이라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시나, 비파형 동검의 형식이 요동 지방의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서 지방의 비파형 동검 문화가 차이를 보이고 대체로 다양성을 띠기 때문에 모든 출토 지역을 고조선의 영역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 학계의 주된 설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내몽고 및 요서 지역 답사를 통해 본 한국 고대문화(송호정)' 참조

비파형 동검의 출토가 로마식 구슬과 정치적, 경제적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시는데요. 비파형 동검이 제례용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도 사용했다고 학계에서 보더군요.
무기가 전투에서도 사용되었다면 전투시 노획, 부족간의 물물거래등으로도 충분히 습득이 가능한만큼 꼭 고조선인만이 비파형동검을 사용했을까 하는것이 제 견해입니다.
                    
바람노래방 15-11-23 22:34
   
비파형 동검 자체가 일체형 동검과 확연히 구분되는 검 양식입니다.
어느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비파형 동검의 문화권과 완전히 분리되는 문화권이라 보는건 너무 나간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게 학계의 주된설도 아닙니다.

비파형 검뿐 아니라 청동 기구 및 돌도구들의 통일성이 비파형 검의 출토 지역에서 일관성을 갖습니다.

제가 알기론 송호정 교수는 대표적인 한반도 고조선설을 떠받들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 입장에서야 비파형 동검의 차이만으로 분리하려 들겠죠.

(고)조선은 국가 시작 단계에서 부터 최대의 영역이 정해진 상태로 시작되었습니다.
(윤내열 교수님의 주장이고 저는 이게 맞다고 봅니다.)
     
굿잡스 15-11-23 16:13
   
비파형 동검은 서토의 단순동검과 구분되는 정교한 합금비율의

발달한 선진 동검에 서토의

일체형과 다른 분리형에 비파라는 독특한 모양등에서 학계에서도 고조선의

대표적 발달한 청동문화로 인식하는게 정설이군요. 이건 짱국 학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군요.

그리고 오늘날에도 가장 싼게 철입니다. 즉 구리가 더 비싸다는 말은 이런 철보다

구리가 흔하지 않다는 말을 뜻하는 것이고.

지금이야 제철 기술이나 야금술이 발달해 있지만 고대에는 야외에서 이런 천도 이상의

용융점을 가진 구리부터 1500도씨 이상의 철을 야금할 초기 기술력은 대단히 혁명적

사건이군요. 마치 불이나 바퀴의 발견, 구석기 시대의 수렵생활에서 점차 저장,보관의

획기적 개념 인식 전환과 정주화되는 문명사회로의 진입단계에서 보이는

토기의 혁명적 사용등으로 구,신석기 시대를 구분하는 것처럼.

그리고 특히나 이런 비파형 동검의 경우는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실용적 살상보다는

당시 지배계층의 정치적 귄위성이 크게 부각되는 유물이군요. 그기에 야금술이라는

대단히 혁명적 진화기술력에 희소성의 이런 청동금속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체는

마치 이후 고대왕국시대에 통치자가 혹은  제후들이나 신하들에게

보검을 하사하는 식으로 권위의 증표와 같은 것들임.

한마디로 이게 어디 흔하게 발에 차이면서 굴러단니는

돌멩이 같은게 전혀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구나 이런 비파형 동검의 경우는

우리 고조선의 대표적 묘제 중 하나인 석곽묘등 묘제에서 발굴되는 것들이군요.

(사람들이 언뜻 고인돌만 고조선의 대표 묘제로 생각하는데 이런 석관,석곽묘도

고조선의 대표적 묘제 중 하나로 고인돌이 지상에 우뚝 솟아나 두드러지는 측면이

강한 것이지 이 석곽묘등도 요하를 중심으로 요서와 요동 한반도에 밀집되어 나오는

대표적 석(石)묘제 양식중 하나임)

대표적 지금의 요동반도를 경계로 하는 요수보다 더 서쪽의 대릉하일대의

기원전 10~9세기 사이 것으로 판명난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의 석곽묘에는

이런 초기 비파형 동검부터 고조선의 대표적 잔무늬구리거울(다뉴세문경)과 여러

청동유물이 1950년대에 이미 발굴된 상황이군요. 그리고 이는 요하를 기점으로

이런 요서 대릉하와 요동 한반도로 밀집되어 나오고 있고 더구나

이동성이 제한되고 그 일대 토착 재지 거주자들에 의해 묻혀 나오는 묘제에서

동반되어 나오고 있기에 상식적으로 이 지역은 거의 고조선의 지배지나 최소

세력권(영향권)이라고 해도 전혀 무방하지 않군요.
     
굿잡스 15-11-23 16:21
   
그리고 예전에 자칭 고조선 전문가 어쩌고 하든 송모 교수가 이런

요서 대릉하 일대의 비파형 동검 마저도 고조선 대표적 유물을 부정하고 동호

어쩌고 드립만 치면서 복기대나 기타쪽에 일반인들을

호도 왜곡시키는 주장에 두들겨 맞곤 했는데

이 요서라고 무조건 고조선과 관련 없는 지역 어쩌고는 사서나 동반 유적등으로

통해 단순 획일화 해서는 곤란합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요서일대라도 노노아호산맥을 경계로 동쪽의 대릉하 일대는

고조선의 대표적 문화가 상당히 짙게 이어지고 요동 압록과 연계되어 나오고

있다는 점이군요.

아래에도 쭉 이야기 해왔지만

지금 엄연히 고조선 전기 중심지인 만주 요하일대를 중심으로 고조선 국가라는 건국

연대와 맞물린 기원전 20세기 전후의 초기 청동기인 요서일대 하가점 하층문화부터 이

런 요서와 요동을 아우른 고태산 문화, 압록강일대 마성자 문화 및 별도의 쌍타자 2기

문화등이 발견된 상황. 여기에 국가적 규모의 우리 성곽의 전통적 특징인

치와 옹성을 갖춘 산성이나 토성도 밀집으로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고.

기원전 20세기 하가점 하층 문화의 삼좌점 고구려 치의 원형 석성으
 
로 보이는 방어형 성곽.(사진)

http://daily.hankooki.com/lpage/culture/201410/dh20141025100423138640.htm


그리고 이런 하가점 하층 문화는 요서일대 노노아호산맥을 경계로 대릉하 동쪽

지역으로 이어져 고태산 문화와 연계되어 릉하문화(비파형 동검)로 이어지는

양상.
          
그노스 15-11-23 16:35
   
님 말씀이 제일 설득력이 있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굿잡스 15-11-23 16:35
   
그리고 수수영자일대의 청동꺾창(기원전 15세기경)의 경우는 몸체부터 날까지 완연한

청동류로 비실용적 의례(儀禮)에 권력을 상징하는 권장(權杖)이 발굴되었는데

이정도의 발달한 청동문화라는 건 이미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초기형 초보 청동

문화나 교류가 싹트고 있었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아셔야 하는게 청동문화라고 대다수 생활이 청동기 제품으로 도배된게

전혀 아닙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청동 자체가 철보다 흔한 금속이 아닐 뿐더러

이런 야금술이라는 전문 집단이 형성되고 이런 희소성의 금속을 독점하는 집단은

당연히 정치적 상위 계층일 수 밖에 없고 더구나 고조선의 청동문화는 서토보다

훨씬 발달한 정교한 합금 기술 성분의 뚜렷한 우리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단 말이죠.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현재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아래에도 거듭 말했지만 기존에 우리가 말하는 고조선 전기 혹은 중기 기자조선

시대에서 후기 열국시대의 열국 중 하나인 위만 조선으로 정권 교체 되는 앞선

시기 현재 삼국시대에 점차 굳어진 요동반도 일대의 요를 중심으로 하여

이런 기자조선이 연과 맞물려 진개의 침략으로 후기 서북한 일대로 밀려났다는

식으로 잽강점기 이후 이야기되어 왔지만

도리어 서토의 대표적 지리서인 태평환우기나 산해경 기타 유적 발굴에서

이런 주무왕에게 도망간 기자에 봉지 어쩌고 하는 곳이 이런 비파형 동검보다

더 요서일대의 위치로 명확히 기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연나라와 대표적 고조선의 공간인 요동반도일대 사이에 기자조선성이 있었다는

말은 진개의 침략이나 이후 위만조선의 위치등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고 고조선시대의 요라는 게 지금의 우리가 인식하던 요동반도를

기점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실제 이런 요는 서토의 멀 요 즉 변경을

의미하며 특정 위치를 지칭한게 아님)
     
굿잡스 15-11-23 16:37
   
태평환우기를 봐도

(平州 盧龍縣) 朝鮮城, 卽箕子受封之地.-太平寰宇記 卷一百七十 河北道 一十九

은나라의 후예인 기자가 달아난 곳에 주 무왕이 하다 안되니

무슨 봉해줬니 어쩌고 하던 조선성이 노룡현 즉 지금의 산해관 요서

일대 진황도 근처에 있음을 명확히 기록


즉 이런 기존 비파형 동검의 중심지로 보던 요서 대릉하와 지금의 요동반도일대보다

더 서쪽에 이런 기자조선의 봉지에 대한 기록.

이게 뭘 말하느냐? 기자조선이란 고조선 말기 열국시대로 분화되는 위만조선 정권 교체기 전의 전기나 혹은 중기

고조선 시대로 보는데 이런 연나라 소왕 시기 진개의 2천리 이후 고조선의 중심지가

서북한 일대로 밀려났다고 보았는데 이건 당시 이런 요하의 개념을 삼국시대 요동반도 일대로

보아서였고 되레 이런 비파형 동검보다 더 서쪽에 이런 기자 조선의 위치에 대한

자료들이 나오면서 진개의 2천리가 이런 요동반도일대를 완전히 넘어 오지 못했다는

후결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실제 진개 침략기의 적석목곽묘등에 연나라 토기

관련 출토 유물이 요서 대릉하 입구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전국 7웅중

가장 약해든 연나라가 소왕시기에 합종연횡을 통해 일시 제나라를 위협하면서

강해졌지만 여전히 제나라 세력과의 알력등에 결국 30여년의 그리

길지 않는 즉위 기간의 소왕시기가 끝나고는

연나라는 급격히 와해 약화되어 이후 멸망해 버림. 즉 현실적으로 봐도

이런 외지 요동일대를 제대로 자신의 지배지로 갖출 여력도 없던 국력에

여전한 서토권내의 제나라 세력과의 다툼의 정세 상황이였음.)  이외에도

산해경, 요서에서 발견된 두로영은(豆盧永恩)의 비문에

조선건국 고죽위군朝鮮建國 孤竹爲君’(조선이 건국을 하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

등.



東海之內 北海之偶 有國名曰 朝鮮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

"동해(서토 동해안)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다”

-산해경(춘추전국시절 편찬된 지리서)


동아시아 최초의 금속 갑옷인

고조선의 갑옷과 장화에 붙이든 청동단추 출토 분포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rva11&logNo=220279301580
 
삼국시대 고(구)려 영역.
http://cafe.daum.net/alhc/4xOO/11341?q=%B0%ED%B1%B8%B7%C1&re=1


후한서 "고구려, 옥저, 예는 다 조선 땅에 있다"

제왕운기 "신라 고례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맥은 모두 단군의 자손(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皆檀君之壽也)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

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삼국사기


이미 서토 사서나 우리 사서고 이런 열국시대 나아가 이후 사국 삼국시대를 낳게 한 나라들이

엄연히 고조선에서 나온 땅이며 자손으로 명칭하고 있는데 우리 민족의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신석기의 발달한 정주문명을 토대로 나온 고조선 청동문화와 건국 시기를 빼고

어떻게 우리 민족의 형성을 논하려고 하는지??(고조선의 홍익인간 자체가

이런 고조선의 천하관이자 통치 이념이구만)

그기에 이미 고구려도 이런 고조선 토착 재지 세력인 기존 왕을 자처하는 엄연한 국가 체재를

갖춘 5부 소국들을 토대로 해서 나온게 고구려.

아래 보니 무슨 고구려를 5부족 어쩌고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이

여전한데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송양왕이 괜히 왕이 아니며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성읍 성읍 어쩌고

방어형 정주 성곽들의 기록이 괜히 자주 나오는 게 아님.(이런 고구려 5부는

지금의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교육부, 노동부,국방부 같은 최고 의결 중심 기관

식으로 보아야 할 것임.  초기에는 이런 고구려 건국에 참여한 5부 기존 군장 혹은

소왕급을 대표하는 최고 의사 결정권의 개념에서 이후 이게 3세기를 지나면서

점차 중앙집권화가 가속화

되면서 고구려 수도 중심을 토대로 사방의 행정체계로 변화 이후 발해 5경체재로

이어진 것이고 이게 다시 금나라 역시 이런 후발해와 연합 5경 체재를 물러받고 빠르

게 대국으로 오른 것임)

잽강점기 이후 80년대 교육부에서도 이미 부족국가 부족연맹 같은 용어는 부족과 국가

라는 개념자체가 상치, 모순과 왜곡된 개념을 불러 일으켜 공식적 폐기.



1500년 전 베이징에 살던 한민족 무덤 발견?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500년전 원적(原籍)이 ‘조선현(朝鮮縣)’인 이의 무덤이 발굴됐다. 무덤 주인공이 우리 민족일 가능성이 커 주목된다.

경화시보(京華時報) 등에 따르면 베이징시 문물국은 최근 다싱(大興)구 황춘(黃村)진 싼허좡(三合庄)촌 일대 고대 무덤군 발굴 작업(사진) 중 북조(北朝) 시대의 묘 2기를 발견했다. 이중 한 무덤에서 나온 벽돌모양 묘비에는 무덤에 묻힌 이가 ‘韓顯度’(한현도ㆍ중국어 한셴두)이며, 원적이 ‘낙랑(樂浪)군 조선현’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무덤 주인공은 원상(元象) 2년 사망했다. 원상은 동위(東魏) 효정제 원산견의 2번째 연호로 서기 539년이다. 베이징시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남서쪽으로 20여㎞ 떨어진 이 곳을 재개발하던 중 1,000년 이상 된 무덤 129기가 발견되자 지난해부터 발굴 작업을 해 왔다.

중국 매체들은 무덤 주인공의 원적인 ‘낙랑군 조선현’에 대해 “낙랑군은 한무제(漢武帝)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평정한 뒤 지금의 한반도 내 설치한 사군(四郡) 중 하나이고, 조선현은 지금의 평양시”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원 왕조들의 힘이 쇠약해지면서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탈취’당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사군이 존속한 기간은 25년에 불과했고 가장 오래 남아있던 낙랑군도 사실상 상업적인 무역기지로서 명맥만 유지됐다는 게 우리 학계 입장이다. 중국이 이런 낙랑군을 강조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무덤 주인공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현재로선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 매체들은 “고조선 유민이 왜 베이징에 묻혔을까”라며 한민족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북위(北魏) 태무제 탁발도가 서기 432년 ‘조선민’을 비여(肥如ㆍ중국어 페이루)로 이주시키고 ‘조선현’을 다시 설치했다는 기록이 근거다. 비여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50㎞ 정도 떨어진 현재의 친황다오(秦皇島)와 창리(昌黎), 루룽(盧龍), 첸안(遷安)현 일대로 추정된다. 당시 중국으로 유입된 한국인이 이 곳에 살게 됐고 이들은 원적을 ‘낙랑군’으로 계속 유지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그러나 북위가 ‘조선민’을 강제 이주시킨 시기는 낙랑군이 사라진 지 100여년도 지난 때다. 무덤이 조성된 것은 이로부터 또 다시 100여년이 지난 시기다. ‘조선민’이 강제 이주됐다 해도 그들이 수백년 전 사라진 낙랑군을 굳이 원적지로 썼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1,500년전 우리 선조들이 베이징까지도 활동 무대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적일 수도 있다. ‘낙랑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베이징 부근에 설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http://www.hankookilbo.com/v/21717baee16f438192bb820e0d2c7f28
부르르르 15-11-23 15:17
   
우선 실제 전투에 사용 되었다는 전제의 근거가 중요 하겠구요...
전투에 사용 되었다면 어느 선까지 무장이 되었는지도 중요하겠지요. 그것은 생산성에 대한 이슈 이기도 하고,
권력의 상징성으로써의 비파형 동검이 아니라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비파형 동검이 보편화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노획이나 물물거래를 통해 특정 지역에 의미있는 양의 유물로
발견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몇년, 몇십년 단위로도 비파형 동검의 디자인 등 양식이 바뀌어 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시기에 따라 변형된 모습을 유물을 통해 알수도 있구요...
그것을 문화의 차이라고 보는게 합당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도 지방문화 라는게 있어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가지는 물건들이 있지만,
그것을 민족 단위의 문화적 차이라고 보지 않듯이 말입니다.
굿잡스 15-11-23 16:58
   
그리고 추가로 비파형 동검에 주목할 만한 두가지 의미심장하고 재미난 유적 발굴이 있었는데

이 고조선의 대표적 발달한 선진 비파악기 형식의 독특한 모양이 어디서 모티브를 잡고 나왔으며

연속성으로 이어졌느냐 인데 기존에 신석기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나 석관묘등은

기존 시베리야 계통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았지만 이게 현재는 요하일대의 발해만을 중심으로

거듭 발굴이 진행되면서 다 깨진 상황이군요.

고조선 대표적 묘제 양식중 하나인 석관묘의 가장 오랜 기원은 기존 시베리아보다

1500년~1000여년 앞서 발해만 일대에서

나오고 있고 이런 대릉하 일대 우하량의 제16지점 4호묘에서 5,500년 전 이미 이런 고조선

비파형 동검의 모티브가 되는 비파형 옥검이 발굴된 상황.

여기에 한반도 남부의 경남 고성의 솔섬에서는 석관묘에 고조선 후기형의 세형 동검 양식의

철검이 발굴된 상황입니다.

즉 같은 묘제 양식의 신석기 후기부터 청동말 철기 초기시대의 연속적 흐름에서 비파형 양식의

옥검이 청동기 시대 동검으로 다시 점차 전쟁이 빈번해지고 살상력이 극대화되면서 가늘어지는

세형동검 양식의 초기 철제검으로 이어지는 연속성과 같은 묘제의 지속성 그리고 모티브성을

이어받아 나왔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입니다.
     
Windrider 15-11-23 18:57
   
광대한 지식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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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 [기타] 아래아(.)의 발음이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줄 것… (4) 열심히공부 02-15 7380
19030 [대만] 머니에 대한 의견 (3) 애국자 11-21 7379
19029 [기타] 일제시대 생활수준이 크게 나아졌다길래... (5) 찢긴날개 02-05 7379
19028 [한국사] “한복인 줄 알았는데..한푸?" 요새 눈에 띄는 이유.jp (16) 소유자™ 11-17 7375
19027 대만 쉴드치지마라!! 2 (5) 쉴드치지마 11-20 7373
19026 대만언론들은 각성하라 (4) 각성하라 11-20 7373
19025 [일본] "일본 전쟁범죄 美 고교에서 교육하자" 백악관에 청… (4) hotstory 02-02 7369
19024 [북한] 중국의 북한 분할안 (4) 창기병 08-06 7367
19023 [북한] "여진족역사 한국사에 넣어야" - 네티즌반응 (30) 커피는발암 09-08 7365
19022 [중국] 대륙의 전래동화.txt (8) 휘투라총통 11-11 7364
19021 8인 천황을 날조한 일본학자 스스로 날조임을 밝히는 (1) 역사공부 09-03 7360
19020 [일본]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 수군 (11) 막걸리한잔 11-02 7360
19019 [다문화] 루마니아 여성그룹 한 멤버 부모의 임금이 20만원 (7) 내셔널헬쓰 09-30 7357
19018 뉴스게시물에 鄭총리발언 관련 회원님들 댓글에 관… (8) 객님 05-20 7355
19017 [기타] 서울의 주요 외국인 타운 - 서울이 벌써 이 지경이고 … (18) 슈퍼파리약 07-16 7354
19016 [기타] 한민족/만주족/몽골족/거란족 등의 친연관계 (15) 꿈이부자 08-22 7352
19015 [일본] 일본 인정하는게 4가지있다 (13) 오호호 02-19 7351
19014 [기타] 서울은 말갈의 수도 (7) gagengi 12-10 7351
19013 [필리핀] 필리핀 여성, 한국인과 결혼하면 2000만원 지원? (38) 슈퍼파리약 11-03 7350
19012 자꾸 대만 옹호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6) ㅋㅋ 11-19 7347
19011 [일본] 일본 전쟁게임 대제국 (20) 푸하하합 01-21 7345
19010 [베트남] 미국에서 한국녀 눈 비하하던 베트남 여자 (17) 정상인임 10-24 7345
19009 [기타] 위,촉,오 삼국시대 지도/ 한, 중, 일 비교 (20) 관심병자 06-06 7345
19008 [대만] 대만의 반한 감정은 국가 전략인가 (5) 라무 11-19 7341
19007 [기타] "일본인 조상은 한국인" -98년도 홍콩 주간지 (20) 할움 09-07 7335
19006 [대만] 대만의 물품을 사지맙시다. (10) 131 11-20 7334
19005 [중국] 대륙의 공사. (9) 휘투라총통 04-19 7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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